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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적 문명 전환을 위한 결단의 시간

기사입력 2023.08.09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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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종교인평화회의 생명평화분과위원장 성암 김용휘

    모시고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저는 지난 2년간 인도 오로빌 공동체를 체험하고 지난 4월에 귀국했습니다. 원래는 3-5년 정도 계획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생각보다 일찍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인도의 체험담은 다음에 다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은 기후변화를 비롯한 전 지구적 생태위기와 그 위기의 근본적 원인이 어디 있는지, 그리고 천도교는 여기에 대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 시대 천도교의 역할과 과제에 대해서 같이 생각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19라고 하는 세계적인 팬데믹, 역사책에서나 봤던 괴질을 현실로 마주하면서 고통스런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시간이 얼마나 길어질지,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코로나는 진정되기는커녕 점점 더 확산일로에 있는 것 같습니다. 백신이 언제 나올지, 나온다 하더라도 코로나가 끊임없이 변종되고 있어서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 지도 의문입니다. 어쩌면 평생 코로나와 함께 공존하면서 사는 삶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문제의 심각성은 코로나보다 더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나올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코로나는 동물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야생동물을 남획하면서 생긴 재앙, 즉 환경파괴에서 비롯된 환경재앙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미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은 바이러스, 괴질뿐만이 아닙니다. 코로나 외에도 생태 위기는 갈수록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기후변화, 종다양성 소멸, 열대림 파괴, 사막화, 토양침식, 홍수와 가뭄, 폭염과 한파, 지하수 고갈과 오염, 산호초 파괴, 쓰레기 매립지 확대, 독성 폐기물과 살충제 및 제초제, 농약과 화학비료로 인한 땅의 황폐화, 핵폐기물, 미세먼지, 천연자원의 고갈, Gmo 농산물 등등 이루 다 헤아리기도 힘듭니다.

     

    이 중에서도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가 기후변화입니다. 최근의 세계적인 홍수와 가뭄, 기록적인 폭염과 한파는 대부분 기후변화로 인한 것입니다. 최근 유럽은 150년만에 최악의 폭염으로 약 3만 5천명이 사망했으며, 인도는 50도가 넘는 폭염으로 약 1500명이 사망했습니다. 2010년 일본에서 쓰나미로 원전이 폭파되어 2만명이 넘는 사망자를 냈으며, 중국과 브라질, 파키스탄은 기록적인 폭우와 홍수로 수천명이 사망하는가 하면, 스페인과 포르투칼, 아프리카는 극심한 가뭄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북극과 남극의 빙하가 녹으며 영구동토층이 감소하고 있으며, 제트기류의 이상과 바닷물의 열순환이 방해받고 산호초가 멸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쪽 수림대와 아마존의 밀림도 감소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지난 100년간 약 1도가 상승했으며, 그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습니다.

     

    2006년 발표된 영국 정부의 ‘기후변화의 경제학’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의 온도가 1℃ 오를 경우, 안데스 산맥 빙하가 녹으면서 이를 식수로 사용하고 있던 약 5000만 명이 물 부족으로 고통을 겪으며, 매년 30만 명이 기후 관련 질병으로 사망한다고 합니다. 지구의 온도가 3℃ 오를 경우 아마존 열대우림이 붕괴되고, 최대 50%의 생물이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되며, 4℃가 오르면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터키가 사막으로 변하고 북극 툰드라의 얼음이 사라져서 추운 지방에 살던 생물들이 멸종한다고 예측합니다. 5℃ 오를 경우 히말라야의 빙하가 사라지고, 바다 산성화로 해양 생태계가 손상되며, 뉴욕과 런던이 바다에 잠겨 사라지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평균기온이 6℃ 오를 경우 인간을 포함해서 현재 생물종의 90%가 멸종한다고 예측합니다.

     

    최근에『2050년, 거주불능 지구 – 한계치를 넘어 종말로 치닫는 21세기 기후재난 시나리오』를 쓴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는 미래에 인류가 멸망한다면 그것은 ‘기후변화’ 때문일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추세대로 간다면 2050년에는 북극과 남극의 빙하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 지표면의 30% 이상에서 극심한 사막화가 동반된다고 합니다. 지구 곳곳에서 산불, 폭염, 가뭄, 침수 등의 이상기후를 겪을 것이고, 강우량이 절반으로 떨어지는 엘리뇨 현상이 만연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 결과 기후재난을 피해 목숨을 부지하려는 새로운 유형의 ‘기후 난민’이 등장할 것이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폭염이 1년에 100일 이상 지속될 것이고, 전 세계 곡물 수확량이 80%가 감소할 것이며, 더불어 만성적 물 부족 문제에 처할 것이다. 이로 인해 국가간 식량 전쟁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UN은 2050년에 기후난민이 2억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으며, 생존에 취약한 빈민층이 10억명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또 IPCC(유엔 산하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의 보고서에 의하면 지구가 2도 상승하는 경우 1.5도 상승할 때보다 대기오염으로 인한 사망 인구가 약 1억 5000만명 더 늘어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심각한 결과를 예상하고도 국제간의 협력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1997년 기후변화협약을 담은 교토의정서가 무색하게 이후 20년 동안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했습니다. 또한 2016년 기온 상승을 2도 이내로 유지하는 파리기후협약에 195개국이 동의했지만, 이를 제대로 이행하는 나라는 단 한 나라도 없습니다. 심지어 미국은 이 협약에서 탈퇴를 공식하기도 했습니다. 세계에서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라가 미국인데도 말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경제성장을 멈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환경 문제는 결국 경제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생태계 파괴의 현상적 원인은 이산화탄소의 과다 방출, 초국적 종자회사의 농간, 부도덕한 기업의 불법적 행위들로 볼 수 있지만, 더 근본적 원인은 결국 돈 되는 일이라면 뭐든 가리지 않고 상품화시키는 자본주의의 성장이데올로기, 시장원리가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합니다. 자본주의는 끊임없는 확장을 동력으로 존속되며,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자연과 노동을 착취하게 됩니다.

     

    『환경과 경제의 작은 역사』라는 작은 책을 쓴 오리건대학의 사회학과 교수인 존벨라미 포스터는 환경과 경제 사이의 불가분의 관계를 강조하면서, “자본주의 출현과 더불어 인간은 자기 주변의 모든 것, 즉 토지와 자연자원 그리고 인간 자신의 노동을 시장에서 이윤을 낳을 잠재적 상품으로 간주하면서” 광범위한 환경파괴가 이루어졌음을 역사적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사실은 발견이 아니고 점령이었습니다만, 그 이후 얼마나 많은 인디언 원주민을 학살하면서 땅을 뺏고, 그 땅과 그 땅의 동물, 식물을 착취하면서 환경파괴를 자행했는지 모릅니다. 고급 모피를 얻기 위해 수천만 마리의 수달과 비버, 여우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숲은 파괴되었고, 지역민들이 먹을 곡물을 재배하던 땅에는 설탕을 생산하기 위해 사탕수수 단일 작물을 재배하는 엄청난 규모의 플랜테이션, 농장이 건설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땅은 황폐해지고 원주민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쫓겨났으며, 사탕수수 재배를 위해 아프리카에서 수백만 명의 노예를 들여왔습니다. 본격적인 산업혁명 이후의 대기오염과 수질오염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왕자와 제비라는 소설로 유명한 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는 쓰라린 시간들(1854)이라는 소설에서 당시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을의 높은 굴뚝에는 그칠 줄 모르는 뱀불꽃 같은 연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뻗어 올랐다. 그 마을엔 검은 운하가 있었고 지독한 냄새가 나는 염료로 자줏빛으로 변한 강이 하루종일 흐르고 있었다.” 그 이후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본격적인 식민지 개척으로 이어집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 식민지를 개척하면서 제3세계 민중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생태계 파괴와 환경오염을 자행했던 것입니다. 1980년대에 와서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것 역시 또 다른 방식의 경제적 식민지를 건설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더 이상 대놓고 남의 나라 땅을 지배하는 용인될 수 없기에 보이지 않는 자본의 힘으로 세계의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것이 바로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주도한 신자유주의 정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적 경제체제와 경제성장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놔두고 환경문제를 논하는 것은 눈가리고 아웅 하는 격에 지나지 않습니다. 환경문제를 경제문제, 사회문제와 별개로 봐서는 안됩니다. 환경문제는 사회문제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집니다. 환경문제는 경제성장과 산업화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였으며, 그 과정에서 역시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 전쟁, 제3세계의 저발전이라는 사회문제가 동시에 일어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적 경제체제의 근본적인 재편 없이는 사회와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지금 벼랑 끝으로 향하고 있는 생태적 위기를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이제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 자연을 대하는 태도, 생산 양식에 대한 전면적 반성과 전환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사회주의로 가자는 건 당연히 아닙니다. 사회주의 역시 환경파괴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사회주의 역시 근대문명입니다. 이제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모두 넘어선 새로운 생태문명을 고민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폭주하는 자본주의라는 기관차에서 내려서 친환경 에너지로 운행되는 완행버스로, 또는 자전거로 갈아타야 하는 결단의 시간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우리 천도교는 3·1운동에서 이미 도의적 신문명의 비전을 제시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1920년대 개벽 운동을 통해 ‘자본주의의 비인간화’를 비판하였으며, 해방공간에서 청우당이 내놓은 ‘신국가건설’을 위한 4대 강령을 내놓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1947년 천도교의 정치이념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국형의 자본가 중심의 자유민주주의를 원치 않는다. 그 이유는 자본주의 제도 안에 내포한 모순과 폐해를 미리부터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소련류인 무산자 독재의 프로레타리아 민주주의도 필요치 않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조선에는 일찍이 자본계급의 전횡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직 조선의 현단계에 적응한 ‘조선적 신민주주의’를 주장한다.“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이 당시 이미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와 소련식 사회주의를 넘어서는 신한국적 민주주의’와, ‘동귀일체의 순환경제’, ‘사인여천의 새로운 윤리에 바탕한 존엄한 사회’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후 우리의 현대사는 이런 천도교 선배들의 안목과 높은 비전과는 달리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최고의 진리인 것처럼 떠받들어 왔습니다. 이는 민주 정부가 들어서고서도 조금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우리 천도교는 이런 선배들의 높은 뜻을 이어받아서 도의적 신문명, 생태문명의 비전을 이 시대에 맞게 다시 선명하게 제시하여야 합니다. 우리 천도교가 이 시대에 해야 할 역할은 더 이상 천도교 사상이 위대하다고 까마귀 제소리 할 것이 아니라, 이 시대 대다수의 서민들이 느끼는 고통에 응답하는 일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양극화입니다. 저출산 문제,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문제, 최고의 자살률의 원인도 근본적으로 보면 양극화가 심화된 때문입니다. 그 다음은 분단을 극복하는 일입니다. 한국사회의 많은 갈등이 분단으로 비롯되었다는 것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강조한, 절멸적인 환경위기를 극복하고 지구를 보전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도의적이고 생태적인 신문명의 비전과 구체적 로드맵을 제시하는 일입니다. 새로운 경제모델을 천도교가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공히 넘어설 수 있는 비전과 사상을 가진 거의 유일한 단체가 바로 천도교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통일을 준비하는 가장 실제적인 방안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스승님과 천도교 선배들의 열망을 계승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럼 이를 위해서 어떻게 해야합니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전문 연구기관의 설립과 교육기관의 설립입니다. 더 이상 동학사상을 연구하고 보급하는 것으로는 안 됩니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이 사회의 문제와 고통에 응답해야 합니다. 하나는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양극화, 그리고 분단 문제이고, 하나는 절멸적인 위기에 놓인 자연과 생태계의 문제입니다. 이를 해결하고 대안을 내놓을 수 있는 전문적 연구기관의 설립이 가장 우선적으로 요구됩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을 할 수 있는 미래의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지 교육기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일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됩니다. 교단의 총력을 모아 교육기관을 설립해야 합니다. 대학원대학이라도 설립해야 합니다. 늦었지만,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말이 있습니다. 돈 되는 과를 유치하려고 해서는 다른 대학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 시대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대의를 내세운 과를 앞장세워야 합니다. 그냥 천도교대학원대학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천도교 생명평화대학원’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천도교 교리교사를 연구하는 과도 필요하고, 수련을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수련명상학과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의 화두인 생명과 생태, 통일과 평화 문제를 다루는 ‘생명평화대학원’이 되어야 합니다. 그 안에 생명학과, 평화학과, 통일경제학과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 NGO학과, 사회복지학과, 미래문명학과 같은 것도 나중에 추가될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대학이 다 어려운데 지금 대학을 설립해서 운영이 되겠느냐고 걱정하십니다. 하지만 시대적 과제와 사명을 실현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고 그러한 인재를 양성한다는 대의와 명분이 있다면 반드시 감응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시세에 영합해서 돈 되는 학과나 유치한다고 하면, 차라리 안 하니만 못할 것입니다. 반드시 ‘생명평화대학원대학’이어야 합니다. 저는 천도교의 미래가 여기에 있다고 믿습니다. 이 시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문 연구기관과 그것을 실천할 인재양성의 교육기관, 이것을 미뤄둔다면 이제 천도교는 이 땅에서 서서히 이 땅에서 사라질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서서히 사라지는 운명을 앉아서 가만히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이 시대의 사명을 감당하면서 다시 일어설지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전환을 위한 결단의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고맙습니다.


     

     

     

    포덕 161년 7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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