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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심정기와 심고

기사입력 2023.07.11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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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의교구장 태암 고태형

    지금 우리는 어떤 것으로부터 시작된 절제된 생활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린 지 벌써 2년 정도가 되어가고 있습니다만, 아직도 통행금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방에 적이 가득한 전쟁 상황도 아닌데 가능한 외출을 자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외출을 하여도 얼굴을 가리고, 사람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남이 만졌던 물건에 손을 대는 것을 꺼려합니다. 자주 만나서 얼굴을 마주하고 식사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가족들, 친한 이들과의 만남도 거의 없어지고 간간이 전화로 안부를 물으며 아쉬운 대로 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우리의 마음을 지키고, 기운을 바르게 하고자 찾던 우리의 그 주문소리가 넘치던 수도원을 출입을 할 수가 없게 된지 역시 오랩니다.

    모두가 벗어나고 싶은 지금의 이 상황은 무기를 앞세워 전쟁을 해서도, 돈을 앞세워 물자 전쟁을 해서도, 내 편이 많다고 수를 앞세워 기싸움 해서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나만 아니면 괜찮다는 이기심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 배려하고, 조심하고, 그 동안 자연스럽게 해 오던 것을 과감히 접고, 익숙하지 않은 것을 내 몸에 맞게 어울리게 가꾸고 만들어 나아가면서 극복해야 할 때입니다.

     

    이 상황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수심정기”입니다.

    “수심정기 네 글자는 천지가 운절되는 기운을 다시 보충한 것이니라“하신 해월신사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아, 수심정기하면서 한울에 불효한 것이 있는가 곱씹어 보며 흔들림 없는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수덕문에서 대신사께서는 “인의예지는 옛 성인의 가르침이요, 수심정기는 오로지 내가 정한 것이니라”하셨습니다.

    이 수심정기를 풀이하면 “마음을 지키고, 기운을 바르게 한다는 말입니다.

     

    마음이란 형상이 없어 손으로 잡을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지만, 세상 물정을 잘 비치고 있습니다. 하얀 화선지에 먹물 한 방울이 떨어지면 금방 까만 물이 번지고 본래의 하얀색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워집니다.

    우리의 마음에 물이 들지 않게 본래의 바탕을 지키며 의지를 나타내는 것만이 바른 뜻으로 진리와 같이 행동을 하며, 검게 물든 마음에서 나오는 뜻은 올바르지 못한 뜻으로 진리와 어긋난 행동을 하게 되니 모든 일의 성패는 여기에서 갈립니다.

    이렇듯 마음이 성패를 좌우하게 되고 그 결과물은 기운을 담아 자라게 됩니다.마음과 기운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마음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 좋은 기운이 담길 수 없습니다. 기운 역시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만물이 자라는 힘의 근원으로 그 힘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마음을 지키고, 기운을 바르게 해야 개인도 잘 살고, 사회도 안정된다는 것이 여기에 담겨 있는 우리 천도교의 중요한 심법입니다.

    대신사께서 득도 하실 때 갑자기 몸이 이상하였고, 보려 하나 보이지 않으며, 무슨 말씀이 들리는 듯도 하였으나 들리지 않아 하신 것이 수심정기입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리고 하신 후에 한울님께 묻기를 “어찌하여 그렇습니까?”하시면서 천사문답을 합니다.

    만약 대신사께서 두려운 마음에 수심정기를 아니하시고 그 상황을 피하셨다면, 과연 천사문답이 가능했겠으며, 지금의 천도교가 이렇게 존재해 있겠습니까?

     

    저는 이 수심정기는 내 몸과 마음속에 늘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나깨나 일서서나 앉으나 내가 숨을 쉬고 살아가는 한 나와 함께 해야 합니다.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는 현재 커다란 변혁의 시기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 고민합니다. 하지만 우리 교인들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뿐만 아니라 전 인류적인 큰 변화가 앞을 가로막아도 이겨내 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한울님이 나 자신과 함께 한다는 것을 알기에 두려움에도 굽히지 않고 이겨내고 또 이겨 냈습니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그 변화를 이겨내고 결과를 완성하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때로는 그 성과가 미미한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결국 변화를 이겨내었고, 그 결과는 소위 말하는 잘난 사람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힘을 받아 이루어져 왔습니다.

    그 평범한 사람은 다름 아닌 사람이 곧 한울임을 깨닫고 살아가는 우리여야 합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우리는 수심정기를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물질의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고, 그 풍요를 더 많이 누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의 보고 듣는 소식 중 “돈”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습니다.

    하지만, 돈으로 집은 살 수 있어도 가정은 살 수 없고, 돈으로 책은 살 수 있어도 지식은 살 수 없으며, 돈으로 피는 살 수 있어도 생명은 살 수 없고, 돈으로 직위는 살 수 있어도 존경은 살 수 없다는 말처럼 돈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한 수단일 뿐입니다. 눈먼 탐욕으로 인해 정작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고 갖고 있던 것들도 모두 잃어버리고 마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수심정기는 물질이라는 수단을 알맞게 활용하게 하고, 욕심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탐욕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여 지혜로운 한울사람의 삶을 갖게 해 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수심정기를 할 수 있는가?

    수도원에서 수련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인가? 아니면, 특별기도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인가? 물론 수련을 통해서도 가능하지만, 저는 가장 기본적인 신앙수행활동인 심고로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극한 심고로 수심정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심고는 마음으로 한울님께 고하는 의식입니다. 마음을 고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사람은 눈을 보고 대화를 나눕니다. 눈에는 목소리에는 없는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서로 말이 없어도 눈을 보고 말한다고도 하지 않습니까?

    심고는 한울님과의 마음의 대화입니다. 마음은 한울님과 내가 서로 마주보는 또 다른 눈입니다. 얼굴의 눈과는 다르게 눈을 뜨면 할 수 없었던 얘기들을 눈을 감으면 마음으로 한울님께 고할 수 있습니다. 눈으로 봤던 오늘의 하루는 마음으로 봤던 오늘의 하루와 어떻게 다른지 심고를 하면서 차분히 되새겨 보며 눈으로 내렸던 옳고 그름이 단순한 판단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심고는 한울님과의 대화이며 나와의 대화입니다. 심고는 한울님과 함께 내 마음을 다스리고 나를 돌보는 시간입니다. 마음은 뜬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마음은 눈을 감고 봐야 잘 보입니다. 내 마음을 제대로 마주 볼 수 있어야 세상도 바르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눈으로 힘들면 힘들다고 고하고, 즐거우면 즐겁다고 고하고, 기운이 필요하면 기운을 주십사하고 고하고, 유혹에 흔들려 길을 헤매이게 되었을 때 바른길을 알려주십사고 고하면, 한울님은 내게 마음을 지키고, 기운을 바로 세울 수 있도록 답을 줍니다.

     

    심고는 수심정기를 내 몸과 마음에 불어 넣어 줍니다.

    수심정기는 내가 한울님이라는 진실을 알게 해 줍니다.

    수심정기는 내가 한울님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줍니다.

    수심정기는 감정을 억제 하고, 고행을 갖게 하고, 사후영생을 위해 하는 수행이 아닙니다. 사인여천진리를 믿고, 한울님 마음에 때가 묻지 않도록, 티가 묻지 않도록 정성껏 연성수련을 하여 안정된 정신과 마음으로 인간세상을 살아 보겠다는 의지를 같이 키워주는 심법입니다.

     

    이 수심정기를 생활화 하는 것은 지극한 심고입니다.

    만약 매사에 심고를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나 자신을 공경치 않는 것으로 수심정기는 나와 함께 하지 않습니다.

     

    “넓고 큰 집이 천간이라도 주인이 잘 보호치 못하면 그 기둥과 들보가 비바람에 무너지나니 어찌 두렵지 않으랴”하시면서, “내 마음을 공경치 않는 것은 천지를 공경치 않는 것이요, 내 마음이 편안치 않은 것은 천지가 편안치 않은 것이니라. 내 마음을 공경치 아니하고 내 마음을 편안치 못하게 하는 것은 천지부모에게 언제나 순종치 않는 것이니 이는 불효와 다름이 없는 일이라, 천지부모의 뜻을 거스리는 것이 불효가 이에서 더 큰 것이 없으니 경계하고 삼가하라.”하고 해월신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심고는 내 마음을 공경하게 하고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하며, 천지부모의 뜻을 알게 합니다. 심고는 수심정기를 하게 합니다. 심고는 내가 한울사람으로써 해야 할 일을 가르쳐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심고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기도식을 합니다. 저도 매일 새벽기도식을 합니다. 부득이 할 수 없는 경우에는 꼭 심고를 합니다. 어쩌다 심고마저 놓치는 날도 있습니다. 아무리 시간이 늦었더라도 꼭 심고는 합니다. 임사호천이라고 하지만 급한 일이 닥치면 더욱 지극히 심고합니다. 무조건 바라는 심고가 아니라 진심으로 마음으로 고하는 심고를 하려고 노력합니다.

    나의 진심을 고하기 위해서는 자세도 바로 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기운을 차분하게 모아야 합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고하고, 즐거우면 즐겁다고 고하고, 슬프면 슬프다고 있는 그대로 고할 수 있어야 비로소 한울님 마음으로 심고할 수 있으며 한울님 감응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몸과 마음이 준비되지 않으면 눈을 감았을 때 보았던 어두운 밤만 아른거리고 아무 답도 받을 수 없지요.

     

    이 기도식은 나를 위한 돌봄의 시간입니다.

    돌봄이란, 사전을 찾아보면 "건강의 여부를 막론하고,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거나 증진하고, 건강의 회복을 돕는 행위"라고 나와 있습니다. 즉, 돌봄 받는 자를 위해 돌보는 자가 자신의 이해관계를 생각하지 않고 헌신하며, 타인을 위해 고통을 감내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무엇보다 쾌락이 우선시되는 이 시대에 그 고통을 감내한다는 일은 아무런 매력이 없어 보입니다만, 돌봄은 돌봄을 받는 자를 위해 어려운 일과 상황도 견디어 인내하는 행위로 나를 성숙시킬 것이며,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난 순간 돌봄을 받는 자로 인생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인생의 어느 순간엔 돌보는 자가 되어있기도 합니다. 우리는 돌보는 자와 돌봄을 받는 자를 여러 번 반복하게 되고 누군가의 도움은 우리의 생을 다 할 때까지 필요합니다.

    돌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돌보는 시간도 누구에게나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도식은 내가 나를 돌보는 시간입니다. 하루를 되돌아보고 또 다른 하루와 미래를 위해 한울님에게 고하는 의식으로 한울님 마음을 갖는 시간입니다.

    나 자신을 잘 돌보는 것이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수심정기입니다.

    수심정기는 사후영생이 아니라 이처럼 살아 있을 때 한울사람으로써의 가치를 실천하고, 실현하며 많은 사람들을 동화시키고 한울사람으로 변화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합니다.

     

    타인을 돌보기 위해서는 나부터 잘 돌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을 돌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없습니다. 타인을 돌보기 위해서는 몸도 건강해야 하지만, 마음을 지키고, 기운을 바르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극한 심고는 수심정기를 우리의 생활 속에 함께 하도록 하는 가장 기본적인 수행법이라는 것을 말씀 드립니다.

     

    우리의 마음은 단순히 윤리적인 본심이나 원리로서의 마음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주적 존재로서의 마음인 동시에 신령하게 활동하는 한울님으로서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지극한 심고로 마음을 잡고, 기운을 바로 하여 나아가 수심정기를 수행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하고 헤쳐 나아가시기를 심고합니다.

     


    포덕 162년 9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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