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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4년 정치참여를 기대하며

기사입력 2024.01.10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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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학 천도교의 역사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2024년 벽두부터 정치뉴스가 암울하다. 4월에 있을 제22대 국회위원 선거를 앞두고 여당과 야당의 격돌이 도를 넘는 위험 수위이더니 양당 모두 소외 그룹들이 신당 창당을 발표하고 있는 등 혼란의 연속이다. 그러나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야당 대표에 대한 테러(거칠게 표현하면 암살시도)이다. 아무리 상대방이 밉더라도 그가 이토 히로부미도 아니거늘 죽일 생각을 했다니. 정말 갈 데까지 간 한국 정치의 단상이다.

    정치가 존재하는 목적은 갈등하는 여러 사회세력과 개인들을 화합시켜서 조화시킴으로써 한 사회의 공동체를 유지시키는 것이다. 건강한 공동체 유지를 위해 법과 제도 그리고 문화, 예술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분야를 망라해 저마다의 역할을 맡기고 제 기능을 다 하도록 하는 것이 정치이다. 따라서 정치는 공동체의 형성과 유지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정치를 하는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정치학을 전공한 박사가 전문가일까. 아니다. 그들은 정치학을 전공한 사람들일 뿐 정작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아니다. 그래서인가 정치 전문가에게 지급되는 라이센스(자격증)는 존재하지 않는다. 의사도, 변호사도, 엔지니어도 모두 자격증이 있는 자들만이 전문가로 활동할 수 있지만, 전문화 분업화된 현대사회에서도 유독 정치 분야만은 자격증이 없다.

    정치인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주변만 보아도 온갖 직업군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심지어는 전공의 다양성을 넘어 학벌도 대학 졸업자부터 초등학교 졸업자까지 있다. 왜 그럴까. 그만큼 정치는 모든 분야의 사람들이 모두 참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통은 민주주의 기원인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아테네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아테네 시민들의 정치 참여는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였다. 즉, 아테네 시민이고자 한다면 직업, 학벌과 무관하게 누구나 아테네의 운명을 함께 고민하고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다. 그것이 오늘 민주주의의 출발이 된 것이고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 시대를 구가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국가 사회든 반드시 정치가 있게 마련이고 그것의 건강성 여부는 구성원들의 정치 참여가 얼마나 활발하느냐로 판단된다.

    최근 1,2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고 있는 영화 『서울의 봄』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얼마나 허무하게 본분을 망각한 군인들에 의해 유린되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1979년 12.12 사태를 다룬 영화는 아이러니하게도 제목이 서울의 봄이다. 봄이 과연 왔는가? 아니 분명히 봄은 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제목이 봄인 이유는 박정희 통치 18년을 끝내고 간절히 봄을 기다리던 국민들의 염원이 좌절된 절박함의 표현이라고 해석된다. 분명한 사실은 12.12 사태이후 정치는 실종되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장악한 군인들이 지배하는 나라가 되다 보니 어느 틈에도 국민들이 들어갈 틈새는 없었다. 완벽한 정치실종의 시대를 우리가 겪은 것이 지난 5공화국 시대였다.

    그런데 과연 작금의 정치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 국민의 참여가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관과 민의 소통은 원활하며 국민은 활기에 넘치는가 말이다. 안타깝게도 오늘의 정치 현실은 국민과의 소통단절과 일방통행에, 정치권은 극렬한 대립과 갈등 그리고 증오와 적대감만이 확대일로가 되고 있다. 많은 국민의 기대 속에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시간이 갈수록 모든 것을 퇴보시키고 있다. 코로나 이후 세계 경제가 회복되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도 코로나 상태이고, 외교는 미국과 일본 일변도로 나가다 보니 브릭스(BRICS) 체제가 출범해도 기후 정상회의에도 무관심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은 장기화하는 가운데 남북이 각기 상대국에 무기 지원을 함으로써 깊은 늪에 빠져들고 있으며, 정권의 호언과는 달리 작년 말 엑스포 투표 결과 29표가 우리 외교의 현주소가 아닌가. 더욱이 남북관계는 언제 6.25 전쟁이 다시 발발해도 무방할 분위기로 급냉되고 있다.

    국민은 통합되기보다는 시대착오적인 이념 논쟁으로 다시금 7-80년대식 이념으로 갈라져 대립과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언론과 시민단체에 대한 규제와 탄압 그리고 노조의 적대시 등 도시 종잡을 수 없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것 같다. 이를 다잡아 주어야 할 정치가 역할 방기 아니 무능력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동학 창도 이래로 우리 도의 가장 큰 특징은 현실 참여를 통한 이상세계의 실현이었다. 즉, 내세에서의 지상천국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에 지상천국을 만들기 위해 진력을 다하는 것이 동학 천도교가 다른 종교와의 가장 큰 차이다. 그래서 우리는 국가와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단 한 순간도 그것을 피하거나 숨지 않았다. 오늘 우리가 자랑스럽게 되내이는 1백만 명에 이르는 순도자의 종단인 동학 천도교의 역사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자각하는 2024년이 되었으면 한다. 물론 우리가 참여할 수 있는 영역이 정치 분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 유지와 공공선을 달성하고자 하는 가장 커다란 영역이 정치이기 때문에 끈임없는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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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임형진(년암, 동서울교구,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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