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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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4년 정치참여를 기대하며2024년 벽두부터 정치뉴스가 암울하다. 4월에 있을 제22대 국회위원 선거를 앞두고 여당과 야당의 격돌이 도를 넘는 위험 수위이더니 양당 모두 소외 그룹들이 신당 창당을 발표하고 있는 등 혼란의 연속이다. 그러나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야당 대표에 대한 테러(거칠게 표현하면 암살시도)이다. 아무리 상대방이 밉더라도 그가 이토 히로부미도 아니거늘 죽일 생각을 했다니. 정말 갈 데까지 간 한국 정치의 단상이다. 정치가 존재하는 목적은 갈등하는 여러 사회세력과 개인들을 화합시켜서 조화시킴으로써 한 사회의 공동체를 유지시키는 것이다. 건강한 공동체 유지를 위해 법과 제도 그리고 문화, 예술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분야를 망라해 저마다의 역할을 맡기고 제 기능을 다 하도록 하는 것이 정치이다. 따라서 정치는 공동체의 형성과 유지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정치를 하는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정치학을 전공한 박사가 전문가일까. 아니다. 그들은 정치학을 전공한 사람들일 뿐 정작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아니다. 그래서인가 정치 전문가에게 지급되는 라이센스(자격증)는 존재하지 않는다. 의사도, 변호사도, 엔지니어도 모두 자격증이 있는 자들만이 전문가로 활동할 수 있지만, 전문화 분업화된 현대사회에서도 유독 정치 분야만은 자격증이 없다. 정치인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주변만 보아도 온갖 직업군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심지어는 전공의 다양성을 넘어 학벌도 대학 졸업자부터 초등학교 졸업자까지 있다. 왜 그럴까. 그만큼 정치는 모든 분야의 사람들이 모두 참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통은 민주주의 기원인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아테네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아테네 시민들의 정치 참여는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였다. 즉, 아테네 시민이고자 한다면 직업, 학벌과 무관하게 누구나 아테네의 운명을 함께 고민하고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다. 그것이 오늘 민주주의의 출발이 된 것이고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 시대를 구가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국가 사회든 반드시 정치가 있게 마련이고 그것의 건강성 여부는 구성원들의 정치 참여가 얼마나 활발하느냐로 판단된다. 최근 1,2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고 있는 영화 『서울의 봄』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얼마나 허무하게 본분을 망각한 군인들에 의해 유린되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1979년 12.12 사태를 다룬 영화는 아이러니하게도 제목이 서울의 봄이다. 봄이 과연 왔는가? 아니 분명히 봄은 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제목이 봄인 이유는 박정희 통치 18년을 끝내고 간절히 봄을 기다리던 국민들의 염원이 좌절된 절박함의 표현이라고 해석된다. 분명한 사실은 12.12 사태이후 정치는 실종되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장악한 군인들이 지배하는 나라가 되다 보니 어느 틈에도 국민들이 들어갈 틈새는 없었다. 완벽한 정치실종의 시대를 우리가 겪은 것이 지난 5공화국 시대였다. 그런데 과연 작금의 정치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 국민의 참여가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관과 민의 소통은 원활하며 국민은 활기에 넘치는가 말이다. 안타깝게도 오늘의 정치 현실은 국민과의 소통단절과 일방통행에, 정치권은 극렬한 대립과 갈등 그리고 증오와 적대감만이 확대일로가 되고 있다. 많은 국민의 기대 속에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시간이 갈수록 모든 것을 퇴보시키고 있다. 코로나 이후 세계 경제가 회복되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도 코로나 상태이고, 외교는 미국과 일본 일변도로 나가다 보니 브릭스(BRICS) 체제가 출범해도 기후 정상회의에도 무관심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은 장기화하는 가운데 남북이 각기 상대국에 무기 지원을 함으로써 깊은 늪에 빠져들고 있으며, 정권의 호언과는 달리 작년 말 엑스포 투표 결과 29표가 우리 외교의 현주소가 아닌가. 더욱이 남북관계는 언제 6.25 전쟁이 다시 발발해도 무방할 분위기로 급냉되고 있다. 국민은 통합되기보다는 시대착오적인 이념 논쟁으로 다시금 7-80년대식 이념으로 갈라져 대립과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언론과 시민단체에 대한 규제와 탄압 그리고 노조의 적대시 등 도시 종잡을 수 없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것 같다. 이를 다잡아 주어야 할 정치가 역할 방기 아니 무능력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동학 창도 이래로 우리 도의 가장 큰 특징은 현실 참여를 통한 이상세계의 실현이었다. 즉, 내세에서의 지상천국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에 지상천국을 만들기 위해 진력을 다하는 것이 동학 천도교가 다른 종교와의 가장 큰 차이다. 그래서 우리는 국가와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단 한 순간도 그것을 피하거나 숨지 않았다. 오늘 우리가 자랑스럽게 되내이는 1백만 명에 이르는 순도자의 종단인 동학 천도교의 역사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자각하는 2024년이 되었으면 한다. 물론 우리가 참여할 수 있는 영역이 정치 분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 유지와 공공선을 달성하고자 하는 가장 커다란 영역이 정치이기 때문에 끈임없는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글, 임형진(년암, 동서울교구,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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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리 인생은 연습이란 없다늑대는 평생 한 마리의 암컷만을 사랑한다. 그러다 암컷이 먼저 죽으면 가장 높은 곳에서 울어대며 슬픔을 토해낸다. 늑대는 암컷을 지키기 위해 목숨 바쳐 싸우는 유일한 포유류이며, 심지어 호랑이하고도 일대일로 맞붙는다. 늑대는 암컷이 죽으면 홀로 어린 새끼들을 돌보다가 새끼가 성장하면 암컷이 죽었던 곳에 가서 자신도 굶어 죽는다고 한다. 또한 사냥하면 먼저 암컷과 새끼에게 먹이를 양보하고, 자신은 주위를 살피며 경계하다가 온 가족이 다 먹은 후에야 남은 먹이를 먹는다. 또한 늑대는 독립한 후에도 종종 어미에게 찾아와 인사를 한다. 한결같이 변치 않는 사랑을 하고, 희생하고, 효도하는 늑대가 사람보다 나은 점도 많은 것 같다. 그리고 물고기도 물과 다투지 않는다. 조금 차가우면 차가운 대로, 조금 따뜻하면 따뜻한 대로. 물살이 조금 빠르면 빠른 대로 물과 같이 어울려 살아간다. 삶이란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마음을 크게 움직이는 어떤 계기가 있어야 비로소 인생은 바뀐다. 현재의 삶보다 더 발전적이고 진취적인 삶을 살게 될 수 있는 그런 계기를 만나는 순간 자신의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복 있는 사람이 되려면 자신을 불평하지 않고 언제나 현실에 충실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안에서 모든 걸 되도록 해소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경천명 순천리는 누가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도(道)란 때에 따라 생활 속에서 훌륭하게 적용되고 또 활용되어야 한다는 천도교의 용시용활…. 그러나 세상 사람은 험난한 세파를 극복할 생각과 내일을 위한 기다림보다 게으름으로 땅속에서 똬리 틀고 겨울잠을 자는 뱀처럼 조만간 찾아올 춘삼월 호시절만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천도교는 개벽의 종교이기에 세상이 극도로 혼탁해지고, 어지러울 때 다시 개벽하여, 새 세상을 열기 위해 태어났다. 우리의 역사가 그랬듯이 때를 대비하여 철저히 준비해야 하고, 때가 되면, 새로운 모습을 갖추고 세상에 나오라는 용시용활을 항상 기억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었다. 혹자는 때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하지만, 무왕 불복의 이치를 알고, 천운의 순환을 믿는다면 그때가 분명 도래할 것으로 확신한다. “세상 만물이 나타나는 때가 있고 쓰는 때가 있으니 달밤 삼경에는 만물이 고요하고, 해가 동쪽에 솟으면 모든 생명이 다 움직이고, 새것과 낡은 것이 변천함에 천하가 다 움직인다.” 하셨으니 때를 기다리며 수련에 정진해 나가야 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에게 제자들이 “인생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제자들을 사과 숲으로 데리고 갔다. 소크라테스는 제자들에게 과수원 끝에서 끝까지 걸어가며 각자 가장 마음에 드는 사과를 하나씩 골라오도록 했다. 다만 다시 뒤로 되돌아갈 수 없으며 선택은 한 번뿐이라는 조건을 붙였다. 제자들은 사과나무숲을 걸어가면서 유심히 관찰한 끝에 가장 크고 좋다고 생각되는 사과를 하나씩 골랐다. 그 결과 제자들은 서로의 것을 비교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크라테스가 “왜 자기가 고른 사과가 만족스럽지 못한가 보지?” 물으니, 제자들은 “선생님 다시 한번 만 고르게 해 주세요”하는 것이었다. 한 제자는 “숲에 막 들어섰을 때 정말 크고 좋은 사과를 봤었는데, 더 크고 좋은 걸 찾으려고 따지 않았더니, 숲 끝까지 와서야 첨 보는 사과가 가장 크고 좋다는 걸 알았다” 하였고, 또 다른 제자는 “숲에 들어가 조금 지나 제일 좋다고 생각되는 사과를 골랐는데 나중에 보니까 더 좋은 게 있더라”라고 했다. 다른 제자들도 약속이나 한 듯이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소크라테스가 껄껄 웃더니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으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바로 인생이다. 인생은 언제나 단 한 번의 선택을 해야 하거든.”…. 그렇다. 우리의 인생은 연습은 없다. 예행연습 없이 오늘, 지금 최고의 선택과 결정이 바로 우리의 인생이다. 험난한 인생의 길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의지만 있다면, 관점이 바뀌고 삶도 조금 더 쉬워진다고 한다.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해 걱정하며 인생을 보내지 말고, 자신에게 책임감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 지금, 이 순간 현재를 살며 자기 행복을 위해 설계하면서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멋지게 살자. 글, 용암 주용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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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따라가면서 거스를 때2023년이 저문다. 풀어야 할 산적한 국내외 과제를 안고 해가 바뀌고 있다. 지금 국민은 민주주의 위기와 경제난 심화로 인해 불안과 실의에 빠져있다. 인구급감과 사회구성원들의 갈등은 날로 심각하다. 한·미·일 동맹과 북·중·러 동맹의 등장으로 한반도가 자칫 최악의 화약고가 될 공산이 크다. 세계로 눈을 돌리면 국가와 진영의 대립과 분쟁이 악화일로이다.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은 여러 국가가 끼어드는 격돌로 비화하고 있다. 알다시피 기후 위기와 환경파괴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문제 많은 세상에 대처할 아무런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는 이 나라의 지도층을 바라보면 탄식이 절로 난다.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공동체성의 해체와 황금만능의 사회상에 우울해진다. 대결과 독점으로 치닫는 국가들의 무한경쟁은 그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국내외 문제들을 해소할 근원적 방안을 찾고자 고민할 때 ‘그래, 우리에게 동학이 있었지!’하고 무릎을 치게 된다. ‘묵은 새것’ 동학사상에는 생명과 생태, 평화와 공존, 인류애의 알짬이 실천궁행의 과제로 고스란히 담겨있다. 우리를 옥죄는 수(壽)를 다한 듯한 인간성 상실의 자본주의 괴물과 답답하고 위험한 국내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우리의 방도는 무얼까. 현실을 따라가면서도 그예 거스르는 도전의 길을 가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하기 위한 철학과 방편이 동학 안에 다 들어있음이다. 일제 강점기와 독재 시대를 겪으며 사장되는 듯했던 동학이 천만다행으로 이제 부흥시켜야 할 귀한 우리 것으로 떠오르고 있다. 2019년 동학농민혁명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이후 이런 움직임은 큰 흐름을 타고 있다. 동학농민혁명을 기리는 다양한 행사가 전국 각지에서 늘어나고 있다. 기념관과 기념물이 만들어지고, 사적(史蹟) 지정이 따르고, 다양한 재현행사나 계승문화예술제가 펼쳐진다. 저술 활동도 활발하고 포럼이나 세미나, 예술공연이 줄을 잇는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생겼고, 민(民) 주도의 동학농민혁명계승(기념)사업회가 곳곳에서 창립되고 있으며, 동학 단체들의 연대와 교류가 활발하다. ‘동학실천 시민행동’과 같이 동학을 널리 알리고 그 가르침을 오롯이 실천하는 모범적인 단체들도 있다. 2차 동학혁명 참여자 서훈 촉구를 위한 부단한 노력은 동학의 존재를 알리며 시민사회의 지지를 얻고 있다. 천도교의 새길도 주목받고 있다. 지금은 한반도전쟁은 물론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때이다. 과거사에 대한 일말의 반성도 없는 전범국가 일본과의 유착은 비극을 잉태할 것이 뻔하다. 여기에 국가 지도층의 무능과 부패까지 더해지고 있으니 국내외정세는 동학농민혁명 당시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렇게 온 세계가 대결과 억압의 국면이지만 우리는 평화 상생 공존의 노선을 가야 한다. 동학으로 오늘을 진단하고 내일을 바꿀 수 있어야 희망이 있다. 한류가 세계로 향할 때도 동학정신이 있어야 오래 가고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다. 평화대동의 후천개벽 새 세상을 희구하는 이들의 움직임이 앞으로 더욱 활발하길 바란다. 도탄에 빠진 민중들을 구하기 위해 탄생한 K-사상 동학은 현재의 시대정신으로도 충분하다. 푸른 용의 해 2024년이 밝아 온다. 아무렇지도 않게 가고 있는 길에 의문부호를 붙이자. 새해에는 우리가 나서서 동학으로 세상을 바꾸는 흐름을 기세 좋게 만들어가자. 따라가면서도 거스르는 기백을 그예 잊지 말자. 글_윤여진(논산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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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한민국 땅에 적정 인구 수는?인구문제로 시끄럽다. 아이를 더 낳아야 한다고 난리다. 엊그제는 북한이 남침한다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났다. 무슨 또 안보 장사꾼이 설치나 했더니 현재의 한국 합계출산율이 0.78명이라면서 이렇게 가다가는 이를 틈타서 북에서 쳐들어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경악할 상상력이다. “아들딸 구별 말고 둘 만 낳아 잘 기르자”라고 했다가 “하나씩 낳더라도 한반도는 초만원”이라더니 “덮어놓고 낳다가는 거지꼴 못 면한다”라고 했었다. 예비군 훈련장에 온 남성들을 거의 강제로 정관수술을 하던 때가 엊그제 같다. 그때 우리나라 인구는 4천만 명에 육박하고 있을 때였다. 1983년이다. 1925년도에 남북한 다해서 인구가 1,900만이었다. 지금은 남한만 5,140만 명이다. 그런데 인구 절벽, 지역 소멸 이야기가 줄을 잇는다. 출산 장려가 도를 넘고 있다. 4천만도 많다고 난리더니 5천만이 넘는 지금은 아이를 더 낳아야 한단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 대한민국 땅은 11만 제곱킬로미터가 좀 안 된다. 이 땅에서 5천1백만의 인구는 1983년 4천만의 인구보다 모르긴 몰라도 두 배나 세 배는 더 쓰고 더 버리고 더 자연을 망가뜨리고 있을 것이다. 소득과 지출과 생산이 인구 배수보다 몇 배 더 늘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이 땅에 적정 인구수는 몇 명인지 헤아리려 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과시적인 소비와 지저분한 욕망과 맹목적인 경쟁을 줄이자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더 챙기고 더 쌓고 더 소비하는 데에 홀라당 정신이 빠져 있다. 남한의 현재 인구는 모든 측면에서 과잉이다. 이 땅에서 나는 것으로 2023년 현재의 5,140만 명이 먹고, 쓰고, 입고 살 수가 없다. 다른 나라의 자원을 가져와야 한다. 그것은 언젠가 한계에 직면한다. 인간의 활동이 자연 생태계에 끼치는 부담을 ‘생태발자국’이라는 개념으로 수치화하여 표시하는데, 1인 기준으로 한국은 기준치의 3.3배다. 그만큼 인구 과밀현상과 과소비가 심각하다는 얘기다. 80억 지구인이 한국인처럼 생태자원을 소비하면서 산다면 3.3개의 지구가 필요한 셈이다. 세계자연기금(WWF) 한국본부가 발표한 <한국 생태발자국 보고서 2016>에 나오는 얘기다. 결론은 쉽게 나온다. 인구를 1/3.3로 줄여야 하는 것이다. 국민 1인당 소비(또는 온실가스 배출량)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 북한 동포나 다른 가난한 나라 등골을 빼 먹는 ‘기후 악당’ 짓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이 결론이다. 에너지 사용량을 국가별로 그린 지도가 있다. 남한보다 땅이 더 넓은 북한이 에너지 지도는 한국의 1/5쯤 된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재난은 가난한 나라들에 더 치명적이다. 똥 싸는 놈 따로 있고 치우는 놈 따로 있는 게 지구 현실이다. 오늘은 AI나 로봇 때문에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소란을 피우고 내일은 출산율 저하로 일을 할 사람이 없다고 떠든다. 앞뒤 안 맞는 주장이다. 일은 기계가 하게 하고 기계세, 자동화세, 부유세를 도입해서 기본소득과 기회소득을 대폭 늘이면 된다. 최저임금제처럼 소득 상한제를 도입하면 빈부격차도 줄이고 사회적 갈등도 해소된다. 소득 상한제는 미국이 대 공항을 앞두고 1920년대에 도입하여 성과를 본 제도이기도 하다. 끝내 소득재분배에 실패하여 1929년 대공항을 맞았다. 한국 인구. 더 줄어야 한다. 전쟁이나 자연재해나 괴질로 고통스럽게 줄어드는 게 아니라 출산율 저하로 줄어드는 게 천만다행이다. 목암 전희식('밥은 하늘입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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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간을 닮은 고래,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2022년 TV 인기드라마였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예상 외의 좋은 반응으로 각종 매체에서 많은 조명을 받은 바 있다. 이 드라마가 우리 사회에 던져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천재적인 두뇌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우영우 변호사는 강점과 약점을 한 몸에 지닌 캐릭터로서 강점은 대부분이 범접할 수 없을 만큼 탁월하지만, 약점은 우리들 대부분이 깜짝 놀랄 만큼 취약하다.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마다 우영우변호사와 함께 등장하는 고래에 필자는 더욱 관심을 가졌다. 필자는 지난 울산시교구 시일 설교시간에 우리 천도교에 ‘우영우 변호사 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교단의 문제를 정확이 이해하고 해법을 찾아 교단에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우영우 같은 변호사가 있다면 교단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래는 새로운 발상을 하게하는 아이디어의 매개체이다. 집중하고 머리를 싸매어도 나오지 않는 해답이 고래를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왜 그럴까? 그것은 바로 고래로부터 한울님의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보면 문제가 생길 때 마다 혜성처럼 나타나서 해법을 주는 고래는 우리에게 한울님의 영감이라 생각된다. 고래가 던져주는 문제 해법의 지혜를 한울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면 인간을 닮은 고래도 역시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 이 지혜의 말씀은 언제 어디서나 나타날 수 있으니 항상 준비하여 들을 수 있어야 하겠다. 고래의 유유한 모습을 보며 평온함을 느끼는 그 마음이 곧 한울님 마음이 아닐까 생각된다. 바다 깊은 곳에서 늘 따뜻하게 바라보는 고래와 같은 마음으로 우리가 살아갈 수는 없을까? 필자는 2017년 6월부터 2023년 5월까지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이공계연구기초사업으로 연구 자금을 지원받아 지속가능한 고래 콘텐츠개발 연구를 6년간 수행한 적이 있다. 대학에서 정년 은퇴 후에 시작된 야심찬 프로젝트였다고 볼 수 있다. 울산에 소재한 고래박물관에 6년 간의 연구결과물을 금년 4월에 6일 간 전시했는데 4천여 명 이상의 방문객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특히 3D 고래콘텐츠가 담긴 AR글래스(Nreal Light)는 어린이들에게 관심도가 매우 높았고 인기를 끌었다. 고래의 진화과정 역시 흥미롭다. 고래는 약 6천만 년 전에 육상 포유류로부터 진화하면서 강으로 바다로 생활공간을 옮겨 왔다는 정설이 있다. 고대 화석, 해부학적 유사성, 지리적 분포, 유전적 변화 등으로부터 진화의 증거를 찾을 수 있다. 고래의 가장 가까운 친척인 인도휴스(Indohyus)는 6천만 년 전 인도의 카스미르(Kashmir) 지역에서 화석이 발견되었다. 진화하는 과정에서 앞다리는 지느러미로, 퇴화된 뒷다리는 몸속에 남아 있고, 폐호흡을 하고 자궁 내에서 태아가 자라는 등 포유동물의 특징을 그대로 몸속에 지니고 있다. 고래의 특징 중에서 10개월 이상을 엄마 뱃속에서 탯줄로 영양을 공급받은 후 출산을 하고 새끼는 다시 어미젖을 먹고 보호를 받으며 성장하는 것을 보면 인간의 모성애와 닮은 데가 많이 있다. 우리나라 근해에서 발견되는 돌고래들의 몸속에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되고 있는데, 어류나 갑각류 등 돌고래들의 먹이에 미세플라스틱이 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고래가 살아야 인간도 살 수 있는데 해양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된다. 해월신사님이 말씀하신 생태환경 보호와 모든 만물이 한울님을 모시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고래도 한울님을 모시고 있으니 우리는 고래 생태 보호에 적극적이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해월신사님 법설 수심정기편에서 수심정기하는 법은 ‘효제온공(孝悌溫恭)’이라 하셨는데 이를 필자가 고래와 관련지어 표현한 시(하늘의 고래)를 마지막으로 소개한다. 청명한 하늘에 아기 고래가 보인다 행복한 하늘은 저 만큼 있는데 다른 곳에도 하늘이 있음을 효도하는 마음 공경하는 마음 따뜻한 마음 공손한 마음이 머무는 곳 그 곳에 하늘이 있다 글, 울산교구 이암 정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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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동학·천도교의 보국안민 정신은 지금도 유효한가?지금으로부터 129전 전(前) 1894년 동학농민혁명(東學農民革命, 이하 동학혁명) 당시 동학이 내세웠던 첫 번째 실천이념이자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가 보국안민(輔國安民)이다. 갑오동학혁명 때나 오늘 날 행해지는 기념식과 재현행사에서도 가장 선두에 펄럭이는 깃발과 선창구호가 보국안민이다. 그 다음으로 제폭구민(除暴救民)·광제창생(廣濟蒼生)·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 등이 줄을 잇는다. 이처럼 동학혁명에서 상징적 이념, 캐치프레이즈의 깃발이 된 보국안민의 어원을 먼저 살펴보고 무슨 뜻이 담겨 있는가를 알아보도록 하겠다. 보국안민에 대해 조명하고자 하는 것은 지금 우리나라 현실이 129년 전의 시대상황과 비슷하다는 생각에서이다. 또한 현재의 위기상황을 역사에서 지혜를 찾아 현명하게 대처하자는 것에 있다. 보국안민의 어원은 수운 대신사로부터 시작되었다. 동학(東學)의 상징이념인 보국안민의 어원(語源)은 수운 대신사 최제우(水雲 大神師 崔濟愚, 이하 , 수운 대신사)로부터 시작된다. 동학·천도교 제1세 교조 수운 대신사는 포덕 1년(1860) 경상도 경주 용담정(龍潭亭)에서 동학을 창도하였으며, 이듬해 1861년에 지은 동경대전(東經大全)_포덕문(布德文) 내용 중에 [輔國安民計將安出_보국안민의 계책이 장차 어디서 나올 것인가]를 한탄하며 거론하였다. 그 후 수운 대신사께서 관과 지배층들의 탄압에 의해 전라도 남원에 오시게 된다. 당시 조선왕조사회는 왕이 천자(天子)라 하여 하늘을 대행한다는 절대 권력으로 백성을 통치하였으며, 양반과 상민의 신분차별이 완고하였다. 그런데 수운 대신사께서 시천주(侍天主,사람에게는 한울님이 모셔져 있다.)하여, 사람과 하늘이 둘 아닌 하나라는 인즉천(人卽天,사람이 곧 하늘)이요, 사인여천(事人如天, 사람섬기기를 한울님 같이)하라는 인권(人權)을 천권(天權)으로 선언, 반만년 역사에서 신분차별이 무너지는 인간존중의 평등시대를 열었다. 이는 개벽(開闢)이요 혁명(革命)과 같은 놀라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에 관리와 지배층의 탄압은 불 보듯 빤한 상황이었다. 수운 대신사께서 보수성이 강한 경상도 경주를 떠나 개혁성이 강한 전라도 남원 땅에 오신 것은 지금이나 그때나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수운 대신사께서 1861년 12월(음력) 중순에 남원에 도착하여 12월 말부터 1862년 5월 중순까지 교룡산성 선국사 암자인 덕밀암(德密庵)을 은적암(隱蹟庵)이라 고쳐 부르고 은거하신다. 이때 지은 경서들은 권학가(勸學歌), 도수사(道修詞) 동학론(東學論,논학문_論學文) 등 동학경전의 핵심을 이룬다. 은적암에서 1월초에 지은 권학가 내용 중에 ‘함지사지 출생들아 보국안민 어찌할꼬’라는 말씀이 나온다. 당시 안으로는 조선왕조체제와 국교인 유교(儒敎)의 지배이념이 뿌리째 흔들리고, 밖으로는 서양세력과 일본(日本)의 침략에 대한 절박한 위기상황이었다. 권학가에 보국안민을 재차 강조한 다음 바로 전주에 오셔서 동학을 포덕(布德)하신다. 수운 대신사께서 남원을 중심으로 전주 등 호남지역을 순회하면서, 그 유명한 동학혁명군의 군가와 훈련 때 쓰인 칼노래를 지어 칼춤을 행하셨다. 이는 1894년 동학혁명이 전라도에서 기포한 역사적인 필연으로 다가온다. 오늘날 보국안민은 자주적 평화통일에서 찾을 수 있다. 국어사전에는‘보국안민(輔國安民,나랏일을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 함)으로 되어 있다. 이런 해석은 넓은 의미로서 많은 해석 중의 하나로 보면 된다. 진정한 의미의 보국안민에 대하여 세 가지로 설명이 가능하다. 첫째-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으로 나라를 돕고, 백성들이 불편해하는 모든 제도를 없앤다. 둘째-외적들의 침략에 나라를 지키고, 백성들의 피해가 없도록 보살핀다. 셋째-세계 각 나라들은 자주적으로 나라를 보전하고, 인류평등에 입각하여 각자 백성들을 편안하게 모신다. 이런 의미를 부여해야 진정한 보국안민을 설명할 수 있다. 현재 국제정세를 살펴보면 진정 보국안민의 계책이 코앞에 닥쳐왔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분단되어 총부리를 마주하고 있으며, 북한은 핵무장으로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미국은 일본과의 동맹이란 이유로 한국 등 주변 국가들의 반대에도 일본의 재무장과 집단자위권의 법률개정을 묵인하였다. 일본은 헌법을 개정하여 언제든지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변신할 것이다. 또한 러시아와 중국은 물론 미국 등 서방국가들은 한반도를 바라보는 눈들이 예사롭지 않다. 또한 최근에 한·미·일 동맹으로 나아가는 것과, 북·중·러의 동맹으로 나아가는 쌍방 삼각동맹은 분단된 우리나라에 있어 다시 신(新) 냉전시대(冷戰時代)에 본격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남북은 물론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 있는 위험한 상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특히 대한민국과 일본과의 밀착된 외교관계는 앞으로 군사훈련 등 일본의 과거사 반성도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는 것에, 바로 129년 전 동학혁명 당시의 국제정세와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여기서 오늘날 보국안민을 논한다면 남북의 자주적·평화적 통일로 나아가는 길을 찾아야 된다는 것에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일본의 국권침탈에 대한 동학의병은 독립전쟁으로 맞섰다. 동학혁명 2차 기포는 바로 일본군에 의한 조선의 심장부인 경복궁 점령 즉 국권침탈에 맞서 척왜(斥倭), 동학·천도교 2세 교조 해월신사(海月神師) 최시형(崔時亨)의 동학군 총기포령에 의한 전봉준(全琫準) 대장과 손병희 통령의 양호의병창의군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대일항쟁 즉 독립전쟁(獨立戰爭)을 일으켰던 것이다. 결국 일본의 조선 식민지 침략전쟁에 의해 수십만의 동학의병들의 희생이 뒤따랐다. 임진왜란과 갑오왜란의 주범 일본과 군사동맹 운운하는 것은 잘못하다간 망국이라는 역사가 되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하는 의미로 오늘 날 다시 보국안민을 외칠 수밖에 없다. 동학·천도교(東學·天道敎) 3세 교조이며, 동학혁명군 대통령과 3.1독립운동 영도자 의암성사(義菴聖師) 손병희(孫秉熙)는 도전(道戰) 즉 진리와 사상전, 재전(財戰) 즉 경제와 무역전, 언전(言戰) 즉 정치와 외교전의 삼전론(三戰論)이 보국안민의 계책이라 말씀하였다.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다. 지난 역사 속에 지혜를 찾아 보국안민의 현명한 대처가 꼭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모두 직시해야 한다. 동학·천도교 제4세 대도주 춘암상사(春菴上師) 박인호(朴寅浩)는 ‘참에 살고 거짓에 죽는다.’고 말씀했다. 다시 말씀드려, 보국안민의 참다운 정신에 살고, 사대주의(事大主義)의 거짓에 죽는다는 말씀으로 가슴에 새겨야 한다. 따라서 동학·천도교의 ‘보국안민 정신은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으로 글을 마친다. 글. 송암 이윤영(천도교 직접도훈, 동학혁명기념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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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역사공원과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처형지서울 서소문역사공원에는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이 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당시 동학의 지도자 안교선, 성재식, 최재호, 안승관, 김내현 등이 처형당하고 효시되었던 곳이다. 김개남 장군 역시 이곳에서 효시되었다. 당연히 이곳은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이라는 명칭답게 동학지도자가 처형 효시된 역사적인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곳, 그 분들의 현창탑이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곳은 천주교 순교자 성지로서의 현양탑과 천주교 성지 박물관으로서의 기록물, 조형물, 미사장소 들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도 대한민국과 교황청과의 수교 60주년 특별기획전이 진행되고 있다. 동학관련 자료는 지하 2층에 단 8개의 기록물만이 전시되어 있으며 어느 곳에도 동학지도자들이 처형 효시되었던 자리라는 역사적인 내용은 없다. 이러한 역사적인 장소가 천주교 한 종단의 성지로서 변해버린 것에 대한 역사적인 책임은 과연 누가 지어야 할 것인가? 그것도 역사관광자원화사업으로 국유지를 승인하고 국민이 낸 세금 158억으로 시작한 서소문역사공원은 누구를 위한 사업이었는지 지금에야 더욱 극명하게 그 현황이 드러났다. 역사를 왜곡하고 묻어버리고 한 종단의 역사장소로 바뀌어 버린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은 하늘이 통곡하고 분노할 일이다. 당시 순국하신 동학지도자들이 피를 토하고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는 둣하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그 넓은 서소문역사공원내에 동학지도자들을 위한 현창비가 세워져야 할 것이며 박물관 내에도 동학지도자들에 대한 자료전시가 이루어져야 한다. 참수되고 효시되었던 동학지도자들의 정신이 헛되지 않도록 동학의 후예들은 각성하고 정신바짝 차려서 부끄럽지 않은 후손들이 되도록 지금부터라도 정신차려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찾아서 해 나가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글_숙현당 정정숙(근현대사미술관 담다 관장, 천도교선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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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동학을 소재로 펼친 지역 간 문화예술교류논산지역의 동학농민혁명사를 소재로 한 마당극 ‘소토산 새 하늘’이 경남 남해에서 공연되어 화제입니다. 지난 10월 21일(토) 오후에 남해문화센터에서 펼쳐진 논산동학농민혁명 마당극 ‘소토산 새 하늘’ 공연은 남해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이사장 김환용)의 초청으로 논산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회장 김선덕)가 주최했습니다. 논산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윤여진 부회장이 극본을 쓰고 ‘극단 처용’ 장용석 대표가 연출한 이 마당극은 2020년 ‘제1회 논산시민 평화대동 한마당’에서의 첫 공연을 시작으로 2021년과 2022년 ‘논산동학 한마당’ 공연, 2023년 논산시민연극 ‘나도 배우다’ 프로그램 2회 공연을 합해 총 5회 공연한 작품입니다. ‘소토산 새 하늘’은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 2차 기포 당시에 전국의 수만 동학농민군들이 논산 소토산에 집결하여 단일대오를 갖추고 공주 우금치로 출정했다는 사실(史實)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지역 근대사의 한 장면을 극화하여, 고난 속에 피어난 민본 민주주의의 태동을 널리 알리며 지역민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고 있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전문 연극인들과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공연으로 민족예술을 생활예술 차원에서 구현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이번 공연에는 남해 예술인들도 배우로 출연해 남해지역 동학농민군의 활약상을 보여줘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공연에 처음 참여한 논산민예총 김병진 님은 “이번 공연을 통해 불과 129년 전에 우리 민족이 동학의 평화대동 정신으로 하나 되어 거대한 외세와 봉건에 치열하게 맞서 싸웠다는 것에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동학 정신이 일제치하 독립운동,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 촛불혁명으로 이어지며 우리 민족의 가슴에 살아 있다는 것을 이번 연극을 통해 확인하였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남해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와 천도교 남해여성회의 회원님들이 이 공연을 관람하며 성원해주셔서 더욱 뜻이 깊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시민이 지역 간 예술교류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당극을 다 보시고 눈시울을 붉히며 감격하시던 천도교 남해여성회원님들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2023 남해 동학문화예술제’의 일환으로 논산과 남해를 여러 번 오가며 이뤄낸 이번 논산동학농민혁명 마당극 공연은 동학과 천도교 사상을 소재로 펼친 지역간 예술교류의 모범으로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글_ 윤여진(논산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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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수운문화제 후기인내천 서·예 명인모심전은 2019년에 싹트기 시작했다. 2019년 3·1운동100주년 기념 한국 서예 정예작가전을 기획했다. 3·1운동 하면 천도교와 손병희선생을 빼놓을 수 없다. 천도교인으로서 은근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터에 천도교 이정희 교령을 찾았다. 이러한 취지의 행사를 하는데 천도교가 후원을 좀 해 주시면 주최를 천도교, 주관을 정예작가 협회(회장 염정모)로 행사를 하겠노라 했더니 500만원 후원이 이뤄져서 행사가 성사되었다(101명 참여). 지금도 기록된 영상이 생생하다. 다음해 천도교(교령 송범두)에서 제 1,2회 인내천서예문인화명인모심전이 이뤄졌고 (교령 박상종)3,4회를 맞이 했다. 이렇게 범 서·화단 작가들을 초대해서 하는 큰 행사는 4대 종단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문화, 예술면에서 선두주자가 천도교라 할 수 있다. 종교행사이다 보니 한계가 있게 마련이지만 어느 정도 극복한 상태다. 전국 서예· 문인화 유명작가들 중 1회 182명, 2회 184명, 3회 220명, 4회 137명 초대되었다. 초대된 작가는 전부 제자들을 거느린 지도자급이다. 4회이다 보니 어느 정도 홍보된 상태다. ‘꼭 이어져야 할 전시’라고 말하는 작가가 있으니 성공 아니겠는가? 초대작가란 서예대전에서 입선1점 특선3점 합 10점이 되어야 초대작가가 된다. 처음 입선하기까지 5번을 냈느니, 7번 떨어졌느니…. 입선 특선하고도 다음 해는 낙선되는 경우도 있다. 어느 작가는 1점 남겨놓고 5년을 가는 경우도 보았다. 이리 초대작가가 어려운 것이다. 천도교인 아닌 작가들 이 동경대전을 탐독하고 글감을 골라 작품 한다는 것은 교화되고 있다는 증거다. 천도교를 알리고 가까이하게 만드는 것, 동경대전을 탐독하게 만드는 교화사업도 이런 교화사업이 없다. 서화단의 활성화와 창작 의욕을 북돋우고 작가들에게 큰 후원이 된다. 타 종교단체 기독교 원불교에서 이런 행사를 한다고 하면 천도교인 내가 원불교, 기독교 경전을 탐독하고 작품 하려고 문장을 찾는다고 생각하 면참 아이러니 할 듯하다. 이런 행사를 천도교가 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고 큰일인가? 작가들이 천도교를 이해하고 좀 더 가까이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문화보국이란 관점에서 보면 대단히 중요하고 의미가 큰 사업이다. 이러한 포덕이 어디 있겠는가 지속 발전되어야 한다. 미술인회 한마당전 미술인회원전은 33회전으로 수운 문화제 덕분으로 처음으로 인사동에서 하는 전시였다. 32년간 전시를 했으나 수운회관에서 하다 보니 미술인회가 있다는 것조차 일반인이 전혀 모르고 있다. 이번에 세상을 다시 태어난 느낌이다. 관람객들이 작품 수준이 높고 좋다고 말한다. 현대 사회는 돈과 연관되어 있듯 돈들여 하면 반응이 있게 마련이고 효과도 있다. 돈 안들이고 궁색하게 하면 흉내만 내게 될 뿐이다. 33년간 교인들끼리의 행사였고 홍보와 교화라는 측면에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헛되었다. 사람들이 지나는 길목에 음식점이 있어야 되듯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천도교 피켓을 들어야 한다. 이번에 청년작가 대상이 4번째이다. 매 회마다 상금 300만원은 교인 중 익명 기부하시는 분의 후원이다. 참으 로 미담이다. 미래세대 어린이 작품전 에 시상도 150여만원이 들어간다. 천 도교의 꿈나무 육성이다. 이렇게 미술 인회 전시는 의미가 크다. 3,4년간 미술인회 예산은 20년 전으로 돌려졌다. 이것은 시정되어야 한다. 근래 예산이 반 이상으로 줄어든 단체는 미술인회 뿐이다. 기현상도 이런 불합리 도 없는 것이다. 깎인 예산은 회복되어야 한다. 국가, 사회, 종교의 핵심은 문화와 예술이다. 수운문화제로 발돋음 하였으니 지속되고 정상으로 뒷 받침 될 것으로 기대해 본다 글_운암 변종제 미술인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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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리 엄마 꽃며칠 전 우연히 추석 특집 ‘신동 가요제’라는 프로를 보게 되었다. 그중에 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 참가자가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인 트로트 신동 김태웅이다. 겨우 8세인 어린이가 ‘엄마 꽃’이란 노래를 나이에 걸맞지 않게 감정을 실어 잘 표현해서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아들딸을 키우시느라 버려야만 했던 것들, 후회한 점 없으시다는 나밖에 모를 사람 꽃이 피었네. 꽃이 피었네. 우리 엄마 젊었을 적에 눈물이 나요. 눈물이 나요. 나 땜에 변한 것 같아 그래도 온 세상 제일 예쁘다. 엄마 엄마 우리 엄마 꽃” 노래를 듣는 내내 가사 구절구절이 가슴을 후벼 파 나도 모르게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인터뷰에서 “엄마가 밤늦게까지 일하느라 몸이 아파서 의료기기를 선물로 받아 꼭 안마해드리고 싶다.”라고 말해 더더욱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한창 재롱 피울 개구쟁이 8살짜리 어린아이가 어떻게 저런 속 깊은 마음을 보여줄 수 있을까? 세상은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지만, 어쩌면 저런 효심이 가득한 어린아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본다. 내 기억에 우리 세대의 자식은 살면서 늘 굽이굽이 어머니의 근심이고 걱정거리였다. 자식 키우느라 고생하시는 동안 빠지는 머리카락과 늘어나는 주름살, 허약해져 가는 몸, 말로는 돈 벌면 꼭 부모님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세상일에 시달리다 보니 이런저런 핑계로 또다시 부모 보살핌은 늘 뒷전으로 밀려 버렸다. 이제 철들고 보니 내 곁에는 부모님이 떠나시고 안 계신다.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나는 태웅이처럼 부모 마음을 이해하는 착한 아들이 될 수 있을까? 엄마는 늘 물에 말은 식은 밥, 먹다 남은 생선 뼈, 뭉개진 포도알, 깎고 남은 사과 꼬투리, 이런 음식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으며 오로지 자식을 위해 헌신하신 어머니의 마음을 어찌 그리도 몰랐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리석고 바보같이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가슴이 미어지게 아프다. 반면에 따뜻한 추억도 떠오른다. “어릴 적 어미 품, 배를 어루만지시던 약보다 따뜻한 그 손길이 생각난다.” 가수 송대관과 전영랑이 불렀던 ‘약손’의 노래 가사다.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추억일 거다. 동동 구를 정도로 갑자기 배가 아팠는데, 엄마가 손으로 배를 어루만져주면 감쪽같이 배앓이가 멈춰 버린다. 그래서 엄마 손은 약손이라 했다. 엄마의 따뜻한 온기가 담긴 약손은 어느 진통제보다 효과가 좋았다. 아마도 엄마의 따뜻한 사랑으로 불안과 긴장이 풀려 심리적 안정을 되찾아 위와 장의 경련이 수그러든 게 아닌가 생각한다. 커오면서 우리는 나만 생각했지, 누구보다 헌신적인 사랑을 주었던 어머니의 건강에는 관심을 두지 못했다. 어머니가 평생 가족을 위해 희생하시다 병든 줄도 모르고, 홀로 이 긴 시간 그 고통을 참고 있는 줄 몰랐었다. 이런 불효막심한 자식이 어디 있단 말인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미리 알았으면 조기 치료를 통해 완치도 가능했을 텐데….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이 평범한 말이 이제는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나도 겪었지만, 주위에 어르신의 오랜 투병 생활로 힘들어하는 가정을 지켜봤다. 본인은 물론 가족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극진하게 환자를 돌보던 가족도 병간호가 길어지면 지치게 마련이다. 화목했던 가정이라도 해도 오랜 병치레에 당할 장사는 없다. 마지못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요양병원으로 부모님을 모시게 된다. ‘긴 병에 효자 없다’라는 옛말은 현재 진행형이다. 간혹 나이 드신 분들은 ‘자다가 편히 죽고 싶다’라는 말을 한다. 잠깐 스쳐 지나가는 말이 아니라 진심일 거란 생각이 든다. 나도 환갑을 지나고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 적이 있다. “늙으면 무엇보다 가족들에게 부담 주지 말아야지.”. 남들보다 덩치가 큰 나를 돌보기 위해 힘들어하는 가족의 모습을 생각하니 상상만 해도 끔찍스럽다. 어머니 나이를 살아보니 내 어머니도 그러셨을 것 같다. 특히 나는 외가 식구들이 대부분 당뇨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셔서 당뇨 가족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께서도 오랜 당뇨병으로 고생하셨고, 그 합병증으로 5년간 병마에 시달리다 환원하셨다. 그래서 식생활 습관 개선과 운동밖에 도리가 없다. 육식을 피하고 소식하는 습관을 기르고, 하루에 만 보씩 걷기로 목표를 잡았다. 새벽 기도식 후 걷기 운동을 시작한 지 벌써 넉 달째 접어들었다. 비가 와도 우산 쓰고 걸었고,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걷고 또 걸었다. 자기 몸은 스스로 관리해야 한다. 예전에 신문 기사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요즘 부모들은 어차피 자식에게 죽을 팔자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늘그막에 가진 재산을 진작 물려주지 않다가는 맞아 죽을 판이고, 일찌감치 다 줬다가는 굶어 죽을 지경이다. 그나마 노후를 위해 얼마간의 재산을 갖고 있다가는 졸려 죽는다고 한다.’ 예로부터 효(孝)에 관한 우리의 정서는 각별하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니 그 풍조 또한 바뀌는 모양이다. 부모 돌봄에는 관심이 없고 상속재산에만 눈독을 들여 법정 다툼까지 벌이는 비정한 자식들은 그냥 두고 보자니, 참 세상이 말세다. 아는 지인의 일이다. 평소 어머니를 제대로 모시지도 않았던 사람이 돌아가시고 나니, 갑자기 세상에 둘도 없는 효자가 돼버렸다. 제단도 꽃도 아끼지 말고 제일 거창하고 아름답게 꾸며달라고 부탁한다. 돌아가신 후에는 아무 소용이 없는데 낳아준 부모라고 어머니와의 마지막 이별은 슬픈 모양이다. 마지막 가는 길만은 편안하고 안락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겠지. 효자 트롯 신동 김태웅 어린이의 효심에 커다란 응원의 박수를 보내면서 부모님의 사랑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좋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엄마 꽃’ 노래를 들으면서 어머니의 고마움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글_용암 주용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