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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성당 조동원 종법사님을 만나다(3)

기사입력 2024.03.18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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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동원종법사02.jpg

    <지난 호에 이어>

     

     

    가을 햇살이 따뜻하게 내려앉던 날이었다.

    홍천에 있는 가리산수도원으로 조동원 종법사를 만나러 갔다.

    조동원 종법사는 1926년 평북 구성에서 타어나 19세에 우암 김동화 선생(1987년 환원)과 혼인하면서 천도교인이 되었다.

    선생의 삶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지극한 정성과 수련으로 천도교의 참진리를 깨닫게 되며 자기완성과 함께 많은 교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스승으로서 교단 발전에 기여해왔다.

    가리산수도원은 1982년 8월에 작고하신 남편 김동화 선생과 함께 창설하여 현재 40년이 넘는 세월동안 천도교인이라면 한번쯤 깊은 수련의 참된 경험을 안겨준 성지로서의 기능을 해 왔다.

     

     

     

    1925년 평안북도 구성군 이현면 진도동 참새골에서 태어난 조동원 종법사는 아버지 조만경, 어머니 김문채 사이에 5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오십 리 밖에 초등학교가 있었지만 다니지 못했다. 길쌈과 바느질 등의 일을 배우며 18세가 되어 열 여섯 살이 많은 천도교인 故김동화 선생과 혼인한다. 일제강점기와 전쟁기의 상흔 속에서 살아왔다. 천도교의 진리를 깨닫고 수련을 이어나가며 수도자의 길을 걸어왔다.

    절망의 순간 속에서도 희망의 불씨를 피워 올리기 위해 염주알을 손에 쥐고 주문을 외웠던 삶의 길이 촘촘히 수도원 가는 길에 이어졌다.

    인생은 때로 너무 짧다.

     

    전쟁이 일어났지. 6.25 때야 뭐 말도 못하게 죽을 고비 다 겪었어요. 스물세 살에 남편을 따라 월남을 했습니다. 삼팔선을 넘어왔지요.

    남편이 몇 달 먼저 월남하시고 내가 뒤따라 왔어. 그때 북한은 공산당이 독재를 할 때였어. 살 수가 없는 거야. 삼팔선을 넘어 남한 땅에 도착했을 때는 늦은 밤이었지. 남편을 만나러 춘천으로 갔어요. 가는 길도 순탄치는 않았지요. 월남해서 춘천에서 지내던 어느 날 밤 춘천 시내에 포가 떨어져요.

    밤새 총소리가 나더니만 아침에 공산당이 춘천에 점령했어요.

    방공호에 숨었지. 사흘을 있었어.

    인민군이 집까지 쳐들어와서는 사람들을 끌고 나와서는 방공호로 쳐 넣어서 따발총으로 쏘았지.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죽었어.

    피난을 가다가, 첫 아기 낳은 거를 안고 있었는데, 애가 죽었어.

    두 살된 첫아기가.

    방공호 속에서 남편을 찾았지. 이렇게 살펴보니까 문턱에 염주를 두른 팔뚝이 보이더라고. 아, 저기다 하고서는 죽은 사람을 막 비집고 나가서 팔을 탁 쳐드니까, 눈을 반짝 뜨면서 날 더러 죽은 이처럼 하고 가만히 있으래요.

    그래서 아이고, 남편이 살아있으면 됐다, 하고서는 아이 있던 자리로 돌아와서 죽은 애를 안아 올렸더니, 피가 주르르 흘려. 그 자리에서 염주를 올려놓고 정신 빠지게 주문만 외웠지. 밖에서 소리치는 여자가 하는 말이 “공산당이 사람 살리려고 나왔지 사람 죽일려고 나온 줄 아느냐”고 말이야.

    공산당들이 나더러 남편 내놓으라, 그래. 남편 돌아가시고 애들만 데리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더니 거짓말이라면서 총을 갖다가 가슴에 대고 쏘려고 하더라고.

    그런데 총알이 안 나가는 거야. 그러는데 대문이 열리더니 중국 군인이 총을 메고 들어오는 거야. 총을 겨누고 있던 사람이 총을 빼앗겼지.

    그런 순간들마다 주문을 외웠어. 그러니까 주문을 많이 외우니까 한울님이 살려주는 거라.

    한울님이 ‘오늘은 콩밭으로 나가라.’ 하시거든.

    그 말씀에 따라 콩밭으로 나가면 집에 와서 천장에 총을 쏘았어. 그리고 다른 날 콩밭에 가 있으면 한울님이 ‘오늘은 들어가라’, 하시거든.

    그러면 콩밭에 와서 사람들을 다 잡아갔어. 그렇게 안 죽고 살았어요.

    그때 생각을 하면 말로 다 못해.

    옛날 어른들 하는 말이 염주만 두르고 있으면 난리가 나도 안 죽고 산다고 했어요. 피난길에 남편이 죽은 줄 알았어. 그런데 이 양반이 깨진 얼음을 타고서 건너와서 안 죽고 살아왔어.

    거기서 붙들고 울고 염주 때문에 살아왔다고 했지. 정말 그렇게 생각해. 염주 때문에 살아서 돌아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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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우암 김동화 선생 개원기념식사 (출처:고희기념문집 隱誠當, 포덕137년 발행)


    남편은 수도원을 차려놓고 3년 만에 돌아가셨어. 일흔 아홉에.

    천도교 믿는 사람들은 모든 걸 내가 해야 할 수련으로 해야해. 내 하는 모든 것이 도가 되기 때문에 일용 행사가 도야.

    밥을 할 때도 쌀 다섯 번씩 씻으라고 하잖아요. 쌀을 다섯 번씩 씻어서, 안칠 적에 잘 되게 해달라고 심고하고, 밥 풀적에 심고, 먹을 때 또 심고, 다 먹고 나서 심고.

    하여튼 심고를 수십 번 해야 해요.

    지금도 그렇습니다. 뭐 지금도 누가 뭐 사업이 안 된다고 하면 심고를 해요.

    또 부화부순이 안 된다, 암에 걸렸다, 그런 말을 들으면 그냥 심고부터 하는 거야. 그렇게 심고를 부탁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심고 드리는 사람은 셀 수가 없어.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어요. 

    내가 다리를 못 쓰니까, 어떻게 보면 심고 드리는 것이 내게 주어진 한울님 뜻 같아. 

    그것밖에 이루어질 수가 없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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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68주년 여성회 차립기념식 강연(출처:고희기념문집 隱誠當, 포덕137년 발행)


    제가 유방암에 걸렸을 때도, 수련을 했어요. 저는 화악산에 가서 수련을 하면서 유방암을 다 고쳤어요.

    병원에서, 조동원이는 사람 못 될 거라고 그랬대.

    아휴 말도 못해. 하여튼 도 닦는 일을 그저 열심히, 일용행사로 해야 해요. 딴 거 없어.

    남의 말 듣고서 그렇게 되려고도 하지 말고, 내가 가정에서 으뜸가는 한 식구가 돼야 해. 내가 일용 행사를 잘하면 그 자리에 들어가고 못 하면 못 들어가는 거야.

    남이야 떡을 먹든지 밥을 먹든지 남의 말 하지 말고 이목구비 사지백태 오장육부만 하나 하나 잘 간직하면 돼요.

    그거는 남이 훔쳐가질 못해. 이거 못 훔쳐가. 물질이 많으면 훔쳐가죠. 말도 못해.

    그러니까 묵묵부답하고 닦아도 묵묵부답하고 그리고 사람을 대할 때 한울님으로 대해줘야 해.

    다 한울님이지. 한울님 아닌 사람이 없어. 그러니까 좋은 사람, 나쁜 사람 가리지 말고 다 일체 똑같이 대해주세요.

    내 손에 귀중한 게 있다고 합시다. 먹는 거라든가, 물건이라든가 내 손에 생겨서 누군가에게 갖다 주려면, 내 자식보다 남의 자식에게 더 많이 줄 마음이 생겨야 해.

    내 자식은 조금 줘도, 남의 자식 많이 주고. 내 부모를 조금 드려도, 남의 부모에게 많이 드리고.

    마음을 그렇게 쓰도록 바꿔줘야지. 그거 바꾸지 못하면 주문 암만 외워도 안 되고 경전을 암만 봐도 입에서만 달달 외우지 소용이 없어. 정답으로 들어가야 해.

     

    천도교를 왜 해야 하냐? 천도교를 해서 한울님을 찾아야지. 그리고 한울님을 찾는 것보다도 내가 바로 잘해야 해. 이목구비 사지백태, 오장육부를 똑바로 잘해야 합니다.

    그렇게 살면 딴 거는 다 저절로 돼요. 범인들도 밥 먹고 나면 배부른 거 알고, 배고픈 거 알고 화장실에 가는 거 알잖아요. 알고 가잖아요. 그거는 저절로 다 알고서 느껴서 가는 거지.

    도를 제대로 닦으면 그걸 느껴서 알고 가는 것처럼 매사 이래, 몸으로 느껴져. 그렇게 몸으로 느껴서 알게 되는 거야. 그리고, 중요한 것 또 하나는 남의 비밀은 말하지 말라. 지켜줘라.

     

    나는 평생 천도교를 했어요. 내가 죽기 전에 후학들에게 왜 천도교를 해야 되는가? 이 천도교의 진리에 대해 말해주고 싶어요. 천도의 진리는 내가 깨달은 게 진리야. 내가 사람 되는 게 진리야. 하늘 사람 되는 게 진리야.

    그거 안 되면 껍데기를 찾는 거지. 내가 아무리 배운 글이 없고 무식해도 내가 한울님을 위하는 마음, 식구들을 위하는 마음 그거는 알고 진리를 찾는 거지. 딴 게 없어. 그게 도야.

    우리는 다 한울님 은덕으로 먹고 살아요. 땅에 실려서 하늘이 덮어주잖아. 그게 바로 땅은 어머니고 하늘은 아버지야.

    그러니까 항상 어머니, 아버지를 찾아야 해요.

    내 엄마 아버지도 돌아가셔서 한울님한테 합해진 거야.

    그러니까 천지부모로 엄마, 아빠 찾으면 나를 낳아준 엄마도 거기 다 들어가는 거야.

    그러니까 엄마를 못 봐도 항상 어머니 아버지 감응해 주시옵소서. 하고 심고를 드리는 거지.

     

    종법사님이 마음에 품었던 스승님 말씀이 뭐였어요? 

    마음에 품은 스승님의 말씀은 제일 먼저 그거지. 내가 일용 행사를 잘 해야 한다.

    첫째 부화부순 부모 잘 모시는 것 그거를 100점 만점으로 해야 된다 이거야.

    부화부순도 100점, 부모님 모시는 것도 100점, 자식들 키우는데 때리고 욕하고 그러지 말라.

    어린아이는 한울님이기 때문에, 한울님을 못 쓰게 된다. 애 때리면 죽는다. 내수도문에 다 있잖아요.

    『탄도유심급』에 마음을 닦아야 덕을 알고, 덕을 오직 밝히는 것이 도니라.

    덕에 있고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요, 믿음에 있고 공부에 있는 것이 아니요, 가까운 데 있고 멀리 있는 것이 아니요, 정성에 있고 구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니 그렇지 않은 듯하나 그러하고 먼 듯하나 멀지 아니하니라.

     

    종법사님께서 생각하시는 지상천국은 어떤 모습인가요?

    지상천국? 지상천국이 여기가 천국이여 이게 천국이여 그러면 여기서 천당을 찾아야지.

    여기서 천당을 못 찾으면은 저 세상에는 천당이 있는지 없는지 몰라.

    그러니까 있다 하면 여기서 천당 찾은 사람이 거기 갈 수 있고 천당 못 찾은 사람이 있어도 못 가.

    그러니까 여기서 천당 차원을 찾아야 돼요.

    나 하나 다 닦아라. 한울님으로 닦아 놓으면은, 그러니까 다른 거 여러 가지 자꾸 생각할 거 없고 사심을 버리고 천심으로 발을 디디면 돼. 천심으로.

    모든 게 내 말대로 전부 내 것이지, 다 남의 것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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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도 내 부모, 다 내 형제니까 언제든지 욕심 버리고 남을 미워하는 거 버리고 그것만 따라가면 되는 거야.

    그래서 주문을 많이 외우고 주문 외워서 저절로 열어줘야지. 내가 반드시 열겠다. 이런 생각하지 말고 내가 부지런히.

    생활 속에서 열심히 일하고 내 식구들한테 열심히 해주고 그게 도지 딴 게 도가 아니여

     

    은성당 조동원 가리산수도원 원장 약력

    포덕 67년 평안북도 구성군 이현면 진도동 출생

    포덕 86년 우암 김동화 선도사와 혼인

    포덕 88년 38선은 넘어 월남, 강원도 춘천에 정착

    포덕 103년 충청남도 대덕군 탄동면으로 이주, 우암 김동화 선도사와 탄동전교실 운영

    포덕 109년 충청남도 대덕군 유성읍으로 이주, 우암 김동화 선도사와 유성전교실 운영

    포덕 110년 천도교종학원 수료, 유성전교실 전교사

    포덕 115년 부산시 광안리로 이주

    포덕 118년 강원도 홍천으로 이주, 홍천전교실 운영

    포덕 120~포덕123년 3년간 독공수련

    포덕 123년 가리산수도원 개원, 초대 원장 취임

    포덕 128년 남편인 우암 김동화 선도사 환원(향년 79세)

    포덕 134년 천도교 금강포 연원회 도훈

    포덕 143년 가리산수도원 개원 20주년

    포덕 153년 가리산수도원 개원 30주년

    포덕 163년 가리산수도원 개원 40주년

        

    <끝>

     

     

    인터뷰영상 바로가기==>http://www.youtube.com/watch?v=JPTR63nSXFo&t=1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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