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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 완성의 꿈 이뤄
성수당 이화자 선도사가 지난 8월 18일 10시 환원하여 8월 19일 경주교구장으로 영결식을 봉행하였다.
고인은 22세에 천도교 집안으로 시집와 경주교구에서 신혼살림과 신앙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70여 년 동안 천도교에 헌신하면서 도가를 완성하였다.
성수당 이화자 선도사는 1931년 11월 20일 출생(부: 이종도, 모 : 박명수)하였다. 한학을 하셨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찌기 한학을 배웠으며 건천보통학교 졸업 후 가사에 전념하다가 1953년 6월 인암 박상택 선도사와 결혼 후 경주교구에서 신혼살림과 신앙생활을 시작하였다.
천도교 경주종리원장(포덕 52년12월 19일)을 지낸 과암 박인환 종법사의 손부이며, 제7대 천도교 경주교구장을 역임(포덕 82년 8월 ~ 포덕 94년 11월)한 오암 박창근 전 경주교구장의 자부, 전 경주교구장 연암 박상택의 부인이다.
현 경주교구장 인암 박연환의 모친으로 천도교 경주교구 연혁에 의하면 이화자 선도사의 시부이신 과암 박인환 종법사는 경주대표로, 진주 신용구, 언양 곽해진, 영천 이종원 등과 함께 중앙총부 지명 특별기도를 경주교당에서 실시한 바 있다. 당시 의암성사께서는 전국 9곳(서울, 해주, 의주, 길주, 원주, 경주, 서산, 전주, 평강을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특별기도 장소로 지명하셨다.
박창근 전 경주교구장(천도교 도사)묘비에는 아버지(박인환 종법사)를 도와 독립운동 밀정역할을 하다 피체되어 옥고를 치른 사실도 있다고 되어있다.
어른들 말씀에 의하면 아버지께서 피체되어 옥고를 치를 때 아들(창근)이 왜경에 찾아가 아버지 대신 옥고를 치르게 해달라고 부탁했다는 일화도 있다.
포덕 61년에 구입한 경주교당을 시부이신 박창근 선도사께서 포덕 114년 6월에 중수(전면 개보수)하셨고, 이어 남편 연암 박상택 선도사께서 포덕 130년 5월에 다시 교당을 전면 중수한 이력이 있다.
고인은 포덕 122년 6월 24일 성수당(誠守堂) 도호를 받고 포덕 146년 선도사에 임명되었다. 경주교구 여성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슬하의 자녀로는 2남 3녀로 현재 경주교구장을 맡고 있는 인암 박연환과 경리부장을 맡고 있는 정암 박정완, 그리고 큰딸 경순당 박경천, 둘째 딸 화순당 박순천, 현 경주교구 여성회장을 맡고 있는 셋째딸 여심당 박내천이 있다.
손자 박기태는 2년 전 천도교 청년회 부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포덕 164년 8월 18일 10시 환원하여 함께 신앙생활을 했던 많은 교인들의 추모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