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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용연리)
수운 최제우 대신사는 주유천하를 마치고 울산시 유곡동 여시바윗골에서 수련을 하다 1855년 3월 을묘천서(乙卯天書)를 받았다.
1856년 4월 8일 천성산 내원암(內院菴)에서 49일 기도에 들어가게 된다.
사진제공_최인경
사진제공_최인경
"적멸(寂滅)의 길은 어드메뇨
나도 오늘 와서 보고 또 보았다"
기도에 임하던 중 47일째 되는 날 숙부의 별세를 예견하고 경주 집으로 돌아가 상을 치르고, 이듬해인 1857년 7월 다시 천성산에 있는 자연 동굴인 적멸굴에서 49일 기도를 마치게 되었다. (*이 당시 내원암은 비구 사찰이었다)
"경주의 최복술(최제우)이가 적멸굴에 가서 도통하여 수리가 되어 날아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 후 다시 고향 경주 구미산 용담정에 들어가 기도하여 1860년 음력 4월 5일(양력 5월 25일) 깨달음을 얻게 된다. ‘한울님을 내 안에 모신다’는 수운 최제우 대신사의 시천주(侍天主) 사상은 ‘사람을 하늘처럼 섬긴다’는 해월 최시형 신사의 사인여천(事人如天) 사상으로, 나아가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의암 손병희 성사의 인내천(人乃天) 사상으로 이어진다.
글_조성갑
* 이 글은 천도교중앙총부 동학혁명정신선양사업단에서 발행한 매거진 <동학집강소>에 게재된 글을 재구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