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상세페이지
새로운 나를 위한 첫걸음
탄핵 집회를 마치고 뒤풀이 자리에서 한 친구가 그랬다. “사람이 술을 과하게 먹으면 실수도 하는 법인데 윤석열이 한번 봐 주자”고. 다들 농담인 줄 알지만, 옆자리 친구는 “한두 번도 아니고 안 돼”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예수가 일곱 번씩 일흔 번 용서하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마태복음에 있다. 그때 예수가 ‘윤석열이 말고’라는 말을 안 했으니 용서하자”라고 거들었다. 여기까지는 탄핵 집회의 뜨거운 열기가 뒤풀이 자리까지 이어진 농담 섞인 대화였다.
한 친구가 옆 의자에 놓아둔 손팻말을 집어 들었다. ‘국민의 명령이다. 윤석열 퇴진’과 ‘내란 수괴 윤석열 탄핵’이라는 손팻말이었다. 그 친구가 진지한 표정으로 수괴라는 말을 쓰지 말자고 했다.
수괴(首魁)는 국어사전에 보면 못된 짓을 한 집단의 우두머리라고 나온다면서 그게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 지도자를 그렇게 부른 게 시작이었다는 것이다. 박정희나 전두환 군사 독재 때도 그랬다. 인권운동과 민주화 운동 지도자에게 보안법을 걸어 감옥에 가두면서 수괴라고 했다. 이런 어두운 역사를 가진 폭력과 지배의 용어보다 그냥 ‘우두머리’라고 하자는 제안이었다. 수괴라는 표현의 대상이 된 적이 있는 나는 치 떨리는 기억이 스쳤다. 길고 긴 수배 생활. 납치되어 고문실을 견뎌야 했던 시간들. 안기부와 기무사에서 당한 치욕의 순간들.
사뭇 달라진 분위기는 탄핵이라는 역사 반동이 왜 되풀이되는지, 김대중과 노무현과 문재인 정부의 한계는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대한민국 대통령 개개인 인간성과 인격의 문제인지, 우리나라 국민성 문제인지, 현대 문명은 어디로 흘러가는지까지 얘기가 번졌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내 책임이다’라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이 현상. 대한민국 국민을 들먹이면서 그걸 윤석열 단죄의 지표로 삼는 현실. 자기 자신도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대통령 선거에 참여했다는 것을 망각하고 규탄과 비난과 요구를 먼저 앞세우는 이 거리와 이 함성을 내다보면서 우리는 진중해졌다.
지금 줄을 잇는 종교인과 대학교수들의 탄핵 지지 성명과 기자회견들. 길거리를 가득 메운 시위대. 대한민국 모든 사람을 윤석열 탄핵을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로 갈라 세우는 이 흐름. 윤석열과 국민의 힘을 규탄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순간, 자신의 과오는 면책되는 이 현상. 탄핵 뒤가 더 중요하다면서 ‘사회 대개혁’을 내세우는 사람들.
국민의 평안과 행복을 위해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겠다면서 윤석열의 퇴진을 요구하는 종교인들. 풍자와 해학으로 윤석열을 비판하는 예술인들. 죄수처럼 국회 소위원회 증언대에 선 국무위원들과 군 장성과 경찰 고위층. 집회장에서 만나는 어린 여학생들의 순박한 열망. 갈채와 비난과 함성. 나는 그들 모두에게서 내 모습을 본다.
나는 겁이 많고 비열하고 때론 용감하다. 당장 한순간을 넘기려고 뻔한 거짓말을 한다. 곧 후회할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대고 해서는 안 될 짓도 한다. 그리고 탄핵 집회에도 간다.
나는 오늘의 윤석열을 만들었다고 지적되는 극우 유튜버들이 주장하는 부정선거와 계엄령의 논거가 궁금해서 유튜브에서 찾아봤다. 찾을 수가 없었다. 검색어로 ‘비상계엄’과 ‘부정선거’를 입력하면 나와 견해가 같은 사람들의 영상만 주르륵 뜬다. ‘극우’라고 검색해도 안 나온다. 구글은 나 좋아하는 것만 보여 준다. 그래서 나는 온 세상이 내 편인 줄 안다. 이미 나는 정보의 편식, 사고의 편향이 심각하다는 결론이다.
인간이 점점 극단으로 치닫는 구조다. 사회가 두 동강 나는 원리다. 우리는 물질(돈)의 종이 되어 넘치고 넘치는 물질에 묻혀서 신성을 잃고 소박함과 청빈을 내버렸다. 반면에 외로움과 불안과 긴장과 공격성으로 나를 채웠다. 작은 비판에도 내 인격 전체가 부정당했다고 피해의식을 뻥튀기해서 공격한다. 편을 짜고 나서야 비로소 안도한다. 윤석열이 국회와 야당과 비판적인 시민들을 반국가세력, 척결해야 할 종북세력으로 봤기에 법률도 헌법도 국민도 다 팽개쳤다. 자기 목숨까지 팽개쳤다. 윤석열을 치매라고도 하고 신경쇠약 환자라고도 한다. 진단과 단죄는 쉽다. 현대 인간은 누구나 다 그럴 수 있는 질병에 걸려있다는 사실이 끔찍하다. 미친 짓을 우리는 매일매일 조금씩 한다. 돈 써 가며 제 무덤을 판다. 현대인들의 질병이다.
혐오와 차별을 금하고 언어폭력과 시선 폭력마저 못하게 벌을 주면서 국가라는 이름으로 저지르는 전쟁터에서의 대량 살육은 이제 만성이 되어 그냥 넘긴다. 이게 오늘날의 인간 실상이다.
나는 정보중독자다. 한쪽 주장의 과식 상태다. 우리 사회가 그렇다고 여겨진다. 어느 편에 설 건지 늘 기웃거린다. 상반되는 선택을 하면서 스스로를 변호한다.
현대 문명을 이루게 한 이성과 논리와 지성과 합리성은 이제 폐기되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든다. 윤석열이가 비상계엄으로 제 무덤을 팠다면 현대 인류는 자연에 대한 폭군으로 군림하면서 이들에게 사시사철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살아가는 과정 자체가 제 무덤 파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호모사피엔스의 비극이다. 나는 탈퇴서를 쓴다. 호모사피엔스 동네에서 벗어나는 탈퇴서다.
비가 새면 우선 양동이를 가져와서 빗물을 받아내야 하지만, 비가 그치면 지붕을 고쳐야 한다. 안 그러면 비 올 때 또 샌다. 되풀이되는 탄핵과 길거리 외침. 어떻게 잘라 낼 것인가? 그래서 호모사피엔스 탈퇴서를 쓴다.
새로운 나를 위한 첫걸음이다. 신성을 회복하고 낮아지고 낮아지기 위한 첫 단추다.
목암 전희식(진주교구, 한울연대 공동대표/ 마음치유 농장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