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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유적지를 찾아서(2)

기사입력 2023.09.17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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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도교 동두천교구 허유 동덕 作
    제13회 <시와 창착 문학상> 특별문화대상 수상작

    2022년 11월 20일 아침 6시에 일어나 동면 화암약수터 입구까지 산책하다가 오는 도중에 정선문화원과 정선군 향토사연구소에서 설치한 동학유허지 싸내에는 (동학교조 수운 대신사 부인 박씨 사모님이 말년에 기거하시던 곳이다) 대신사가 1864년 참형을 받아 순도하신 이후 박씨 사모님은 단양접주 민사엽(閔士葉)의 도움으로 정선 문두곡에서 사시다가 민사엽이 환원하자 이곳저곳을 전전하면서 고통스럽게 살았다. 그후 2세 교조 해월신사(海月神師)가 정선지역에서 자리를 잡게 되자 도접주 유인상(劉寅常) 등의 주선으로 1872년 이곳 싸내(米川)에 정착하시게 되었다. 대신사부인 박씨 사모님은 동학도인(東學道人)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다가 1873년 12월 10일 향년 49세로 환원하셨다고 적고 있다. 그 후에는 사시던 터라는 곳은 찾을 길이 없이 싸내에 유허지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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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암동굴 석주(石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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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11월 20일 오전 화암동굴 광장 석순앞에서

     

    우리 일행은 유허지 밑에 꽃씨를 뿌리고 아침식사를 마치고 점심도시락을 각자 받아가지고 숙소 근처에 있는 화암동굴(畵岩洞窟)을 견학하기로 하여 도보로 동굴에 도착, 화암동굴은 금광석과 석회석 자연동굴이 함께 어울러져 있는 세계 유일의 화암동굴은 세계문화 유산이 되었단다.


    대자연의 신비 화암동굴은 동양최대 규모의 유석폭포는 높이 28m의 황금색 종류 폭포로 웅장한 규모가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조금 더 내려가면 6억년 동안 생성된 대석순과 석주(石柱)가 자리잡고 부처상과 성모마리아상은 정교하기가 극치를 이루고 남근(男根)은 천하일품이다.

     

     

     

    화암동굴을 관람하고 우리는 해월신사께서 49일 기도를 하신 적조암(寂照庵)으로 자동차 편에 분승하여 태백산 고한으로 출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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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조암터 2022년 1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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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학유허지 적조암 천도교 제2세 교조 (天道敎 第二世 敎祖) 해월신사독공지(海月神師篤工址) 라고 석비(石碑)가 서 있다. 뒷면에는 강수, 유인상, 김성문 등과 같이 독공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적조암 입구에 고한(古汗) 사랑이라는 서비(石碑)가 있으며 아래쪽에 정선문화원에서 세운 동학유허지에 기록을 보면 적조암은 동학2세 교조 해월신사 최시형(海月神師 崔時亨, 1927-1898년)가 1872년 10월 15일부터 12월 5일까지 49일의 특별기도를 드린 곳이다. 당시 해월신사는 적조암의 老스님 철수좌(哲首座)의 양해를 얻어 강수, 윤인상, 전성문, 김해성 등 동학의 지도자를 대동하고 특별기도를 하였다. 이 특별기도는 이필재의 난(1871년 3월)에 풍비박산이 된 동학교문이 다시 일어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후에 강원도 정선과 영월, 충청도 단양 등 삼남일대로 교세를 넓혀 1894년 갑오동학혁명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곳에서 적조암으로 오르는 길은 산길인데, 바닥이 돌로 되어 있어 울퉁불퉁하여 잠시도 소홀히 하면 넘어질 수 있어 조심조심 가파른 돌길을 오르는데 힘이 들어 몇 번 쉬었다가 오르니 적조암에 도착하였다.

    이정표가 있어 살펴보니 정암사 2.8km 만항재 3.7km 자장율사 순례길이라 기록되었는데 적조암은 흔적만 남아 있다.

     

    적조암의 터를 보니 배산(背山)이 병풍을 쳐놓은 듯 좋으며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며 안산(案山)이 조화를 이루었는데 개울물이 돌속으로 숨어 흐르니 물을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우리는 점심식사를 한 후에 기도를 시작하여 오후 4시에 끝나 하산하기 시작하였다.

    적조암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는 자동차편으로 고한역이 아닌 민둥산역으로 출발하였다.

    민둥산역은 옛 지명은 증산역이었다. 증산역은 지명(地名)에서 유래되었는데 동쪽에 고부산 북쪽에 지억산 남쪽에 두위봉이 둘러선 가운데 시루봉이 있다는 증산 떡시루 갔다하여 증산이라 하였는데 석탄생산으로 한때 번창하였지만 이미 지나가 버렸기 때문에 새로 2009년 주민들이 민둥산역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통하여 관광자원으로 활력을 찾고 있다. 억세풀축제로 말이다.

    우리는 민둥산 역에서 서울 청량리 도착하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좌석표가 있어 피곤함을 풀기가 좋았다.

     

     

    사진, 글_ 허 유

    충남 공주 출생. 아호 : 창포(蒼.浦). 서예가. (사)한국비림박물관 관장. 문화예술신지식인. 한국비림박물관서화대전 운영위원장. 중국한원비림 고문. 중국상지비림 명예박물관장. 중국중원공자학회 명예회장. 한국고서연구회 부회장. 세계비림협회 한국대표. 중국한국명예대사. <한빛문학> 수필부문 신인상 수상 등단. 제4회 <한빛문학상> 수상. 한국문학예술저작권협회 회원

     

    *본 글은 2023 제13회 <시와 창착 문학상> 특별문화대상 수상작으로 저자와 잡지사의 허락을 받아 본지에도 게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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