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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1922년 5월 1일, 최초의 어린이날천도교소년회는 1923년 5월 1일 어린이날을 공포하고 첫 어린이날 행사를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크게 열었다. 이에 1년 앞서 어린이날이 제정된 1922년 5월 1일을 기억하자. 102주년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과거의 오늘, 어린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어린이날을 선포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1919년 3·1혁명 당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고문 받고 1주일만에 석방된 방정환 선생은 1920년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동경 도요대학에서 아동문학과 아동심리학을 공부한 선생은 어린이들의 인권신장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한다. 1921년 '천도교소년회'를 조직하여 본격적으로 소년운동을 전개한 선생은 1922년 5월 1일 어린이날을 제정하고 1923년 3월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아동잡지 '어린이'를 창간한다. 소춘 김기전 선생은 1921년 4월부터 천도교 청년회 소년부를 특설해 5월에는 천도교소년회를 조직하고 총재를 역임하며 박내홍, 방정환 등과 함께 어린이 운동을 시작하였으며, 1922년 어린이날 제정, 세계 최초의 어린이헌장인 '소년운동의 기초사항'을 선포하였다. 옛 기사로 보는 오늘 1922년 5월 1일, 첫 어린이날이 제정된 날이다. 이날 천도교소년회는 '어린이의 날' 취지와 선전문, 거리 행렬과 자동차 선전대, 저녁의 축하기념식과 강연회 등을 개최하였다. 1921년 5월 1일 창립된 천도교소년회 1주년을 기념해 1922년 5월 1일 '어린이의 날'을 제정하였다. 천도교 청년들은 '10년 후의 조선을 생각하라'며 민족의 장래를 위해 어린이를 잘 키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인식하였다. 당시 신문과 잡지에서는 「십년 후 조선을 려慮하라」, 「조선 초유의 소년일」, 「가로로 취지 선전」, 「조선에서 처음 듣는 어린이의 날」 등의 기사와 선전지를 소개하였다. 십년 후 조선을 여하라 십년 후 조선을 여하라 조선 소년 운동의 시작으로 금일 천도교 소년회의 활동 희망을 품고 사는 사람에게 과거와 현재는 소용이 없고 그들에게는 오직 장래가 있을 뿐이다. 더욱이 조선사람은 과거와 현재에 무엇을 가졌는가. 설령 지난 일과 당장 눈앞의 일이 화려하다 할지라도 이것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함이 있으리오. 우리는 다만 내일과 내년의 화려한 희망으로 살아가는 것이라. 따라서 새로운 살림을 부르짖는 우리 사회도 장래를 위하여 사는 것이오, 장래가 곧 우리가 춤출 때라는 것은 누구나 바라고 믿는 바이다. 한 나라 한 사회나 한 집안의 장래를 맡은 사람은 누구인가. 곧 그 집안이나 그 사회나 그 나라의 아들과 손자일 것이다. 장래에 희망을 두고 어린이에게 장래를 맡기는 가정이나 사회에서 어찌 어린이의 일을 등한시할 수 있으며 새로운 살림을 부르짖는 우리 사회에서는 과연 아들과 손자를 위하여 어떠한 일을 하였는가. 옛날 일은 지나간 일이라 말할 필요가 없거니와 수년 동안 우리의 학부형은 그 자손을 위하여 이전에는 없던 애를 써왔다. 다시 말하면 그 자제를 가르치기에 열심히 하며 여러 가지로 자손을 인도하는 데 노력한 것은 근래의 교육열과 향학열이 증명하는 바다. 이는 실로 경하할 만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의 학부형 가운데에는 배우고자 하는 자식을 막아서 한강에 빠져 죽게 만드는 완고한 일이 없지 않다. 이러한 일을 볼 때 뜻있는 사람으로서 누가 한숨을 쉬지 않으며 눈물을 흘리지 않으리오. 이에 자극을 받은 천도교소년회는 어린이를 위한 부모의 도움이 더욱 두터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오늘을 기회로 삼아 ‘어린이의 날’이라고 이름하고 “항상 10년 후의 조선을 생각하십시오.”라고 쓴 네 가지의 인쇄물을 시내에 배포하며 소년회원이 거리마다 늘어서서 취지를 선전했다. 이러한 일은 조선 소년 운동의 처음이라 할 수 있으며, 다른 사회에서도 많이 응원하여 “조선사람의 10년 후의 일”을 위하여 노력하기를 바란다. 『동아일보』, 1922년 5월 1일, 「10년 후 조선을 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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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복합상소문상소문 등셔 각도 유학 신 박승호 등 황공 돈슈근 백배 상셔우 요순 같으시고 우탕 같으신 주상전하 천부모 아래에 업드려서 병들고 아픈 즉 부모를 부르짖으며 궁곤한 즉 천지를 부르짖음은 사람의 떳덧한 정이 올시다. 주상전하는 천지부모 올시다. 이제 도를 닦는 신 등은 모다 성상의 화육하시는 중 적자올시다. 오늘날 궁곤한 지경을 당하여 병들고 아프고 망극한 땅에 엎드려 감히 발을 벗고 천위 지척 아래에서 상소하옵니다. 군부 아래에 어지 감히 망령된 말씀을 사뢰오리까. 이같이 극원 망극하온 상소를 천지부모 아래에 아뢰지 못하온 즉 하늘과 땅사이에 어느 곳으로 도리가오리까. 상고이래로 성현인 군과 어진 신하가 천하를 잘 다스린 자- 어찌 천명과 천리를 공경치 아니 하오며 인륜과 삼강을 밝히지 아니 하오리까. 엎드려 오날날 형세를 보건 데 조정이하로 스인 까지 공맹의 도를 숭상하되 그 명명하신 도덕은 깨닫지 못하고 오직 허영뿐 더러 열에 팔구사람이 그 통의를 알지 못하오니 국가를 위하여 어찌 통곡치 안하리오리까. 이같이 망극한 대를 당하여 다행히 경신년과 근사개월을 당하여 황천이 살피시고 구신이 도우사 경상도 도 학생 신 최(제우)가 비로소 천명을 받고 창생을 가르쳐 포덕을 하옵는 데 최(제우) 는 곧 병자년 공신 정무공 진립에 6대손이올시다. 무극한 대도를 가르친 제불과?삼색의? 서학에 명칭으로 갑자 삼월십일에 경상도 대구 영에서 중형을 마침 당하였는 데 그 때의 천지 참담하고일월이 무관하였으니 엎드려 생각하건데 만일 추호라도 죄 들일일 있으면 국법의 당연하거는 오히려 그러치 아니하고 모함에 빠져서 백옥같은 대도로 하여금 만고의 처음 있는 횡액을 당하였사오니 어찌 망극하옵고 한심치 아니하오리잇까. 그 도의 동지는 시서와 주역과 춘추요 그법은 례 악 형 정이요 그 도는 어질고 검소하고 효도하고 우애하고 화목하고 충성하고 의리 있고 성현의 감화로 난 것 뿐이올시다. (최제우) 일 즉 가로되 인의예지는 먼저 성현의 가르친 바요 마음을 닦고 기운을 바르게 함은 우리가 다시 정한 것이라. 하고 또 가로되 공부자의 도를 기다려온 즉 우리도의 이치와 우리도의 이치와 같다 하였으 며 우리도를 의논컨대 큰 것 같고 작은 건 다르다 하였으니 조금 다른 것은 별다른 것이 아니오라 다만 하날을 공경하고 사사히 하날께 고하고 부모 같이 섬기는 게 다른 것이올시다. 이같이 하날 공경함은 먼저 성현이 발견치 못한 일이옵고 최제우에 비로소 처음 가르친 일이오니 하날 섬기기를 부모 같이 함이 어찌 도리에 흠이 있사오리까. 또한 유불선 삼도를 겸하여 합한도로 조금 다르다 이름 하였으나 그러나 불도와 선도로서 말하온즉 삭발도 아니 하옵고 또 한의 관문 물이 여전하오며 그 인군과 부모를 배반치 아니하오며 다만 불 신앙도 겸하온 것은 사랑하고 슬퍼하는 마음으로 성령을 수련하는 것이 조금 공부자 광명증대한 도와 다르외다. 동학이라이름함은 그도가 동학이 아니라 동방에서 창시한 고로 세상사람이 배척하여 가로되 동학이라 하오니 비유하건데 야소 비로서 서방에서 돌르 창시하오매 서학이라 이름함과 같사오다. (최제우) 문인에게 일러 가로되 도가 비록 천도나 비호난걸 이름하건데 동학이라. 하물며 땅이 동서를 나눴으니 서방이 어찌 동방을 이름하며 동방이 어찌 서방을 이름 하리요. 공자-노국에서 나서 추국에 돌르 전하여 추로지풍이 이세상까지 전하였고 우리도도 이 당에 나서 이 땅에 전하였으니 어찌 서학이라 이름 하리요.서학이라 이름한즉 반드시 서학에 들어 가리라 하였삽고 그러나 반드시 서학을 지목하고 이단이라 세상사람들이 배척하여 어영어읍에 잡히고 가두워서 중형도 하고 중배도 보내니 어찌 한심치 안하오릿까 마음을 기르고 기운을 바르게 하고 천지를 공경하여 사람마다 각기 착한데 나아가고 공부자 도에 지나지 아니하오며 대저 이도는 마음 화함으로 주장을 삼으며 마음이 화한즉 기운이 화하고 기운이 화한즉 형용이 화하고 형용이 화한즉 천심이 밝아 인도에 떳떳할지라. 진실로-최제우가 먼저 성현이 발하지 못한 근원을 우부우부로 하여금 모두 천리를 알게 하였거늘 어째서 동학으로 편벽되이 이름하여 이단이라 하오리까. 과연 이도는 천하의 무극대도 올시다. 만일 그렇지 아니한걸 감히 전하께 상소 하여서 이도를 천하에 반포 하옵소서. 국가에 조금이라도 효험이없으면 신이 개군 망상지? 죄를 당할 것입니다. 어찌 바른 말로 지극 망극함을 아뢰지 아니 하오리까. 전하는 천지부모요 인민은 적자외다. 어찌 동학의 이름으로 무죄한 창생을 어영어읍의 중형도 하시고 증배도 하시니 망극한 일을 어느곳에 감히 돌아가오리까. 대저 선비란 나라의 원기요 인민은 우리나라의 근본이올시다. 엎드려 생각하건데 이상의 무극대도를 누누이 말 하였거니와 도를 존중하옵셔서 천하에 반포하시며 근본이 굳고 나라가 평안 하심을 북망 전하께오서 가르침을 베푸시고 선비기운을 기르시오면 태조종사의 영혼이 양양하샤 전하 좌우에 살피옵소서 하날이 감동하시게 하고 남산의상서기운이 있고 한강이 무궁하오리다. 주상전하 살피옵소서 신등은 피를 흘리고 감히 존엄지척에 부르짖으며 통곡 하옵내다. (일부 문장을 편집자가 현대어로 바꿈) - 계사년 송암 제수 * 이 글은 천도교중앙총부 동학혁명정신선양사업단에서 발행한 매거진 <동학집강소>에 게재된 글을 재구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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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시} 전쟁의 소리전쟁의 소리 이훈철 소리는 들린다. 야심과 허욕의 觸傷된 오랜 腫物의 터지는 소리 傷한 병사의 고통! 신음 소리로 아울러 소리는 들린다. 대포! 소총! 폭력이냐? 정의이냐? 피 위에 피를 퍼붓고 죽음 위에 죽음을 더 쌓은 曠野로서 오는 바람은 피와 죽음의 비린 냄세를 보내고 彈烟의 餘燼은 봄비에 새로 개이려는 공기를 후리우는데 소리는 들린다. 울음! 吶喊! 고함 장미색의 비행기는 고요한 曉空을 흔들고 발동기의 소리는 고막을 울리어라 무겁게 濛濃한 雲屛 피, 觸鏤, 腐肉으로 채었는데 彈火의 익은 부상한 병사의 등에 첫직을 더하는 잔학한 소리 어린이? 늙은이의 驚身, 恐怖, 悽慘의 울음 풀 위에 꺼구러진 죽어가는 병사의 飢渴, 苦痛, 呻吟 소리는 들린다. 피 흐르는 넓은 뜰에서 나의 가슴은 울렁거려라. 이 소리를 들을 때 끌어오르는 혈관을 강타하며 동맥은 극렬히 진동하여라. 감초였던 새벽의 지상 平靜 나의 단꿈의 평화의 기쁨 쓴 고통의 공포로 끄리라. 이 소리를 들을 때 전쟁? 죄악? 허욕의 공상에 취한 狂人들아 평화의 간판, 통일의 광고지로 형제를 살륙하는 무리들아 直正한 통일 참 평화를 바라거든 값 없는 쇠와 불의 세력을 깊은 지하에 묻어버려라. 너희의 허욕! 야심! 폭력! 모든 것을 불살라 차라리 그 餘灰를 공중에 뿌려라. “지상에 있는 모든 거짓 영웅의 무리를 몰아낸 그 다음에야 완저한 평화가 오리라고” 人道의 집 속에 벌거벗은 정의는 소리친다. 나는 듣노라. 전쟁의 소리, 정의의 소리 ------------------------------- 이 시는 1922년 초반 중국 텐진(天津)에 거주하는 이훈철(李勳哲)의 작품이며, 『천도교회월보』 142호(1922년 7월)에 발표된 글이다. 『동아일보』 1923년 6월 24일자에 「별 아래서」라는 시를 발표한 바 있다. 이훈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1925년경 이민창(李民昌, 李東谷)과 함께 고학으로 베이징(北京)대학에 유학 중이었다. 이 시에서는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지속되고 있는 전쟁의 참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