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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1922년 5월 1일, 최초의 어린이날천도교소년회는 1923년 5월 1일 어린이날을 공포하고 첫 어린이날 행사를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크게 열었다. 이에 1년 앞서 어린이날이 제정된 1922년 5월 1일을 기억하자. 102주년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과거의 오늘, 어린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어린이날을 선포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1919년 3·1혁명 당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고문 받고 1주일만에 석방된 방정환 선생은 1920년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동경 도요대학에서 아동문학과 아동심리학을 공부한 선생은 어린이들의 인권신장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한다. 1921년 '천도교소년회'를 조직하여 본격적으로 소년운동을 전개한 선생은 1922년 5월 1일 어린이날을 제정하고 1923년 3월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아동잡지 '어린이'를 창간한다. 소춘 김기전 선생은 1921년 4월부터 천도교 청년회 소년부를 특설해 5월에는 천도교소년회를 조직하고 총재를 역임하며 박내홍, 방정환 등과 함께 어린이 운동을 시작하였으며, 1922년 어린이날 제정, 세계 최초의 어린이헌장인 '소년운동의 기초사항'을 선포하였다. 옛 기사로 보는 오늘 1922년 5월 1일, 첫 어린이날이 제정된 날이다. 이날 천도교소년회는 '어린이의 날' 취지와 선전문, 거리 행렬과 자동차 선전대, 저녁의 축하기념식과 강연회 등을 개최하였다. 1921년 5월 1일 창립된 천도교소년회 1주년을 기념해 1922년 5월 1일 '어린이의 날'을 제정하였다. 천도교 청년들은 '10년 후의 조선을 생각하라'며 민족의 장래를 위해 어린이를 잘 키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인식하였다. 당시 신문과 잡지에서는 「십년 후 조선을 려慮하라」, 「조선 초유의 소년일」, 「가로로 취지 선전」, 「조선에서 처음 듣는 어린이의 날」 등의 기사와 선전지를 소개하였다. 십년 후 조선을 여하라 십년 후 조선을 여하라 조선 소년 운동의 시작으로 금일 천도교 소년회의 활동 희망을 품고 사는 사람에게 과거와 현재는 소용이 없고 그들에게는 오직 장래가 있을 뿐이다. 더욱이 조선사람은 과거와 현재에 무엇을 가졌는가. 설령 지난 일과 당장 눈앞의 일이 화려하다 할지라도 이것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함이 있으리오. 우리는 다만 내일과 내년의 화려한 희망으로 살아가는 것이라. 따라서 새로운 살림을 부르짖는 우리 사회도 장래를 위하여 사는 것이오, 장래가 곧 우리가 춤출 때라는 것은 누구나 바라고 믿는 바이다. 한 나라 한 사회나 한 집안의 장래를 맡은 사람은 누구인가. 곧 그 집안이나 그 사회나 그 나라의 아들과 손자일 것이다. 장래에 희망을 두고 어린이에게 장래를 맡기는 가정이나 사회에서 어찌 어린이의 일을 등한시할 수 있으며 새로운 살림을 부르짖는 우리 사회에서는 과연 아들과 손자를 위하여 어떠한 일을 하였는가. 옛날 일은 지나간 일이라 말할 필요가 없거니와 수년 동안 우리의 학부형은 그 자손을 위하여 이전에는 없던 애를 써왔다. 다시 말하면 그 자제를 가르치기에 열심히 하며 여러 가지로 자손을 인도하는 데 노력한 것은 근래의 교육열과 향학열이 증명하는 바다. 이는 실로 경하할 만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의 학부형 가운데에는 배우고자 하는 자식을 막아서 한강에 빠져 죽게 만드는 완고한 일이 없지 않다. 이러한 일을 볼 때 뜻있는 사람으로서 누가 한숨을 쉬지 않으며 눈물을 흘리지 않으리오. 이에 자극을 받은 천도교소년회는 어린이를 위한 부모의 도움이 더욱 두터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오늘을 기회로 삼아 ‘어린이의 날’이라고 이름하고 “항상 10년 후의 조선을 생각하십시오.”라고 쓴 네 가지의 인쇄물을 시내에 배포하며 소년회원이 거리마다 늘어서서 취지를 선전했다. 이러한 일은 조선 소년 운동의 처음이라 할 수 있으며, 다른 사회에서도 많이 응원하여 “조선사람의 10년 후의 일”을 위하여 노력하기를 바란다. 『동아일보』, 1922년 5월 1일, 「10년 후 조선을 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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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의 생명관: 대생명(大生命) (2)(지난 호에 이어) III 해월이 ‘갓난아기의 마음(赤子之心)’이라고 한 이 마음이 바로 내 안으로 두번째 내려온 ‘신령(神靈)’이다. 외유기화에 의하여 마련된 유기체적 몸에 신령이 내려온 것이 바로 내 마음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은 본래 영이라 할 수 있다. 즉, 마음이란 내 몸에 내려온 신령인 것이다. 그러므로 해월은 ‘심령(心靈)’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였으며 의암은 ‘성령(性靈)’이라는 표현을 애용하였다. 표현의 차이가 있지만 영은 오직 하나의 영일 뿐이다. ‘신령’, ‘심령’, ‘성령’으로 표현되는 영성은 근대철학에서는 종교영역에서나 다루는 낯선 개념이었다. 과학기술이 주도하는 현대문명에서 영(靈)은 더욱 생경한 개념일 수 있다. 시대정신에 투철한 현대인을 위하여 영성이 무엇인지 조금 풀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행스럽게도 천도교에는 영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개념들이 적지 않다. 그 가운데 몇 가지를 풀어서 이해해 보자. “천령(天靈)이 강림하였다고 하는데 어찌된 일인가?”라는 제자들의 질문에 수운은 “무왕불복의 이치를 받은 것”이라고 대답하게 된다. 무왕불복은 수운의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 역학(易學)에서 자주 쓰이는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가서 돌아오지 아니함이 없다”고 해석되는데 이에 대한 적지 않은 기존 논의들이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거울의 비유로 대신하고자 한다. 신령이란 그 앞에 오는 것을 하나도 예외없이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과 같다는 것이다. 이 영성의 거울은 어디 특별히 머무는 곳이 없다(無所住). 특정 장소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은 어느 곳이나 있지만 상주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역설적 표현으로 들리는 것은 성령 자체의 특성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수운은 도는 ‘보려하나 볼 수 없고 들으려 하나 들을 수 없다(視之不見 廳之不聞)’고 하였고, 의암도 성심본체는 ‘보려 해도 볼 수 없고, 들으려 해도 들을 수 없고, 물으려 해도 물을 곳이 없고, 잡으려 해도 잡을 곳이 없다’고 표현하였다. 해월은 “보였는데 보이지 아니하고 들렸는데 들리지 않는데 이르러야 가히 도를 이루었다 할 것이요(視之不見 聽之不聞 可謂成道也)”라고 하였다. 이러한 표현들을 근거로 하여 ‘무극대도’, ‘천도’, ‘성심본체’, ‘영성’은 세상과 사물과 인간을 떠난 초월성으로 이해되지만 ‘적자지심’으로 불리우는 ‘본래의 나’의 마음으로 내려와 임재(臨在)한다. 그러므로 해월은 “한울은 만물을 지으시고 만물 안에 계신다”고 하였으며, 의암은 성령은 “전부 세간과 합치된 것이요, 세간에 나타난 것(全然合世間的出世間的)”이라고 표현하였다. 수운 또한 ‘여세동귀(與世同歸)’라는 표현으로 천도와 천운은 세상과 더불어 함께 함을 강조하였다. ‘중첩’으로 번역되는 양자역학의 Superposition 개념은 양자뿐만 아니라 영성을 묘사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즉 영성은 특정 위상(位相)을 넘어서지만 세상과 만물 그리고 사람을 떠나지 않고 그 한가운데 중첩되어 있으면서도 보려하나 보이지 아니하고 들으려 해도 들을 수도 없는 무형계라 할 수 있다. 도가의 무(無)나 허(虛), 불가의 공(空) 개념들도 세상과 만물 그리고 사람을 떠난 초월적 절대영역이 따로 있지 아니함을 강조하기 위함이나 오히려 니힐리즘처럼 오해되곤 한다. 영성은 ‘새는 하늘을 날지만 자취를 남기지 아니하고 도인은 강을 건너지만 물에 젖지 아니한다’라는 비유로 묘사되기도 한다. 천도교사에는 수운이 억수로 오는 빗속에 부친 성묘를 다녀왔지만 갓과 도포가 젖지 아니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또한 해월은 ‘땅을 어머님 살처럼 공경하게 되면 빗속에 진흙길을 걸어도 버선이 더럽혀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금강경]의 “응무소주생기심(應無所住生其心)”은 부처의 마음을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간명하게 소명해주는 유명한 구절이다. 비어 없는 이 경지에 응하여 마음을 쓰는 것이 바로 부처의 집착없는 마음 씀씀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중생은 비고, 고요하고, 없는 마음에 조응(照應)하여 마음을 쓰지 아니하고 물욕, 감정, 집착, 편협함에 사로잡힌 마음을 쓰는 것이 차이점이다. 의암은 [후경2]에서 나의 성품과 나의 마음을 묘사하는 가운데서 ‘항상 머물러 있는 곳도 없다(常無住處)’는 표현을 하였다. 위상과 시간에 매이지 않으므로 해탈의 마음이 되고 자유로운 마음이 되는 것이다. 의암은 [무체법경]에서 “한울님이 반드시 바르게 보이고 바르게 듣는다(天必正示正聞)”고 하였다. 바르게 보인다는 것은 거울처럼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며, 바르게 듣는다는 것은 ‘한울님은 높으시나 낮은 소리도 다 듣는다는 천고청비(天高廳卑)’의 뜻이라 하겠다. 보이지도 않는 빈 거울이지만 그 앞에 오는 것은 무엇이든지 정확하게 비추어주는 성령을 이렇게 말하였다. 의암은 ‘정시정문’을 누구나 다 알아듣기 쉽게 설명한다. “마음이 흰 것을 구하고자 하면 흰 것으로 보이고, 붉은 것을 구하면 붉은 것으로 보이고, 푸른 것을 구하면 푸른 것으로 보이고, 노란 것을 구하면 노란 것으로 보이고, 검은 것을 구하면 검은 것으로 보이느니라.” 그러므로 아득한 고대로부터 성령을 거울에 비유하였다. 성령은 구하는 그대로 주기 때문에 ‘말없고 소리없는 한울님이 가장 무섭다’고 해월은 강조하였다. 그렇다면 성령은 특별히 머무는 곳이 없이 어떻게 모든 것을 정확하게 보여주며 분명하게 들려주는 것일까? 우주를 ‘혼원일기’로 생각하면 자명해진다. 해월은 동양의 전통에서 말하는 ‘귀신, 기운, 음양, 조화는 오직 하나의 기운(一氣)일 뿐이라’고 하였다. 또한 “우주는 한 기운의 소사요, 한 신의 하는 일이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우주만유는 오직 하나의 신, 하나의 기운, 하나의 이치로 꿰뚫어져 있다는 것이다. 우주가 하나의 기운, 하나의 이치, 하나의 몸이므로 어떤 것이 가면 반드시 되돌아올 수 밖에 없다. 반대로 우주가 하나가 아니라면 어떤 것이 가더라도 되돌아올 수 없다. 길이 끊어져 버렸기 때문에 되돌아 올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주는 하나로 연결되어 하나로 통하기 때문에 생각이든 기운이든 행동이든 일단 촉발된 것은 반드시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우주가 하나가 아니라 상대성 우주론이라면 증대되거나 감소되어 되돌아올 것이다. 상대적 세계에서 살아가는 몸과 마음에게는 모든 것들이 상대적일 뿐이다. 중첩과 얽힘이 양자세계에서 일어나는 것을 설명하는 개념인 것처럼 정시정문도 영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설명하는 개념일 뿐이다. 우주가 하나라는 것은 영의 세계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신령(神靈)은 오직 하나(唯一無二)이기에 신령이 곧 내 마음의 영이자 내 성품의 영이다. 타자성과 외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성령(性靈)’과 ‘심령(心靈)’은 ‘성령(聖靈)’과 다르다. 성령(聖靈)은 개별적 존재이지만 천도교에서 말하는 신령, 심령, 성령은 오직 유일무이하다. 다시 말하자면 한울님의 성령과 수운의 성령, 해월의 성령, 의암의 성령, 역대 조상들의 성령, 인류전체의 성령이 나의 성령과 별개의 존재가 아니다. 이러한 논의는 [성령출세설]에서 아주 상세하게 개진되어 있다. 의암은 “대신사는 이미 성령으로 출세하셨으니 일체의 물건마다 마음마다 다 이 성령의 출세한 표현이 아님이 없는 것이니라.”라고 하였다. 만유와 만인을 오직 하나의 성령이 관통하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가능한 것이다. 또한 나의 본래의 마음을 신령(神靈)의 강림, 제2의 강령이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강령이 되지 않은 마음에게는 심령이나 성령(性靈)이라는 표현을 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 첫 호흡을 할 때 예외없이 신령(神靈)이 내려와 내 마음이 되었기 때문에 심령(心靈)이 자신 안에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심령을 믿지 아니하고 키우지 아니하는 사람에게는 심령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해월은 “오직 한울을 양(養)한 사람에게 한울이 있고, 양치 않는 사람에게는 한울이 없다”고 하였다. 수도를 하여 한울님을 키우는 제3의 강령인 ‘각지불이(各知不移)’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이 가장 순수한 영을 타고났지만 우주간의 모든 생명체도 모두 다 이 ‘무량광대’하고 ‘청정무구’한 신령계로부터 마음을 받았다. 수운이 [불연기연]에서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음에도 갓난아기가 어머니를 알아보는데 어찌된 일인지, 가난해도 돌아오는 제비는 주인을 알아보아서 그렇게 하는지, 부모를 되먹이는 까마귀가 효도를 알아서 그러한 것인가를 묻고 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수운은 [불연기연]의 마지막 구절에서 “조물자에 붙여보면 그렇고 그렇고 그러한 이치”라고 대답하고 있다. 조물자가 곧 성령임을 이해하면 이러한 질문들에 쉽게 답할 수 있다. 갓난아기가 되었던, 제비가 되었던, 아니면 까마귀가 되었던 모든 생명체는 하나의 성령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다면 갓난아기가 방금까지 한 몸이었던 어머니를 알아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제비가 자기 집을 찾는 일도 당연한 일이며, 까마귀가 어미를 먹이는 것도 다 큰 자기가(새끼) 쇠약해진 자기를(어미) 먹이는 것이므로 그렇고 그렇고 그러한 일일 뿐이다. 그러나 만약 신령을 잊거나 잃어버렸다면 이와 같은 앎은 있을 수 없다. 성령이 아직 존재한다면 모든 것이 하나의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기에 자기가 자기를 아는 일에 불과하므로 그렇고 그렇게 알 수 있고 할 수 있게 된다. IV 외유기화라는 제1강령을 통하여 생명체는 우주의 한 기운에 접하여 잉태하여 유기체를 이루고 내유신령이라는 제2강령을 통하여 생명체는 청정무구한 성령의 마음을 온전하게 받는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태어날 때부터 우주기운에 통한 존재이므로 그 우주적 그물망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뿐만 아니라 ‘무량광대’하고 ‘청정무구’한 오직 하나의 영성을 자기 마음으로 받았으므로 이 마음을 쓰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본래의 길이다. 우주적 혼원일기와 본래청정의 영성을 회복하는 길이기에 수운은 ‘천도’라 하였고 내 마음을 통하여 회복하기에 ‘심학(心學)’이라 하였다. 이 본래성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는 다음을 기약한다. (끝) *본 글은 2023년 5월 12일/대화아카데미 바람과물연구소, 생명애콜로키움 [종교와 생태문제] 에서 발표하였으며 저자(오문환)의 허락을 받아 게재되었음을 밝힙니다. 글_오문환(정치학박사, 선도사, 영등포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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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의 생명관: 대생명(大生命) (1)Ⅰ 「동학의 생명평화 사상」이라는 제목으로 2004년에 논의한 적이 있기에 논의범위를 좀 더 종교철학적으로 심화시키고자 한다. 수운 최제우는 한울님과의 대화에서 ‘영부(靈符)’와 ‘주문(呪文)’을 받아 다른 종교들의 가르침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무극대도(無極大道)’를 받았다고 한다. 주문은 “지기금지원위대강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至氣今至願爲大降 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21자인데 그 가운데 “시천주(侍天主)”에 대한 해월의 해석을 중심으로 천도교의 생명관을 논하고자 한다. 수운은 모실시(侍)를 “내유신령 외유기화 일세지인 각지불이(內有神靈 外有氣化 一世之人 各知不移者也)”로 풀이하였고 해월은 다음처럼 구체화하였다. “안에 신령이 있다는 것은 처음 세상에 태어날 때 갓난아기의 마음이요, 밖에 기화가 있다는 것은 포태할 때에 이치와 기운이 바탕에 응하여 체를 이룬 것이니라. 그러므로 「밖으로 접령하는 기운이 있고 안으로 강화의 가르침이 있다」는 것과 「지기금지 원위대강」이라 한 것이 이것이니라.” (“經曰 「侍者 內有神靈 外有氣化 一世之人 各知不移者也」 內有神靈者 落地初赤子之心也 外有氣化者 胞胎時 理氣應質而成體也 故「外有接靈之氣內有降話之敎」「至氣今至願爲大降」是也,” 해월, [영부주문]) 이를 근거로 천도교는 생명체는 두 번의 강령으로 잉태되고 마음을 받아 태어나고 주문수행에 의하여 세 번째 강령으로 영성을 자각하게 된다고 본다. 첫째 강령인 ‘외유기화’에 의하여 포태되고, 둘째 강령인 ‘내유신령’으로 갓난아기가 처음으로 호흡할 때 영이 ‘적자지심’으로 내려온다. 셋째 강령인 ‘각지불이’는 주문수련으로 내 몸과 마음이 영성을 깨달아 새로운 인격으로 거듭난다. 이 세 번의 강령이 이루어지게 되면 사람은 비로소 천주를 자신 안에 온전하게 모신 ‘시천주’ 인간이 된다. 이렇게 한울님을 모신 사람을 천도교에서는 신선(神仙), 신인간(新人間), 신인(神人) 등으로 부른다. 이러한 과정으로 대생명이 된다. 이 글은 첫 번째 강령인 ‘외유기화’와 두 번째 강령인 ‘내유신령’을 통하여 천도교의 생명관을 고찰하고자 한다. Ⅱ 생명의 포태가 영(靈)의 강림(降臨)으로 이루어진다는 해월의 설명은 정자와 난자의 만남으로 이해되는 의학과는 다른 설명방식이다. 이기(理氣)와 기운(氣運)이 바탕이 되는 질료(質)를 만나서 포태가 된다는 종교철학적 설명이다. 많은 논의가 필요하지만 이 글에서는 생명의 탄생은 천리(天理)와 천기(天氣)라는 우주적 기운과의 관계맺음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점만 분명히 하면 될 듯하다. ‘외유기화’는 ‘외유접령지기(外有接靈之氣)’로도 표현되는데 밖으로 영에 접하는 기운이 있다는 뜻이다. ‘밖에 있다(外有)’는 표현 때문에 영(靈) 또는 지기(至氣)가 마치 시공간적 타자로 보이지만 영과 지기에 열려(開闢) 우주기운이 곧 나의 기운으로 되는 과정을 기술한 것이다. ‘지기(至氣)’ 또는 ‘혼원일기(混元一氣)’라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음양오행과 같은 기운과 달리 한울님의 하나의 기운이라는 뜻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즉 한울님의 하나의 기운과 접함으로써 생명이 잉태된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물론 수운은 ‘음양합덕으로 수백천만물이 화해난다’고도 하지만 ‘외유기화’는 한울님의 기운이 유기적 생명체로 나타나는 것을 서술한다고 볼 수 있다. 사람만이 아니라 우주의 모든 생명체의 잉태는 다 한울님 기운과의 만남에서 시작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수운의 [불연기연]에 나타나는 우주만유의 알 수 없는 불연에 대한 대답도 외유기화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우주의 모든 생명체 더 나아가 자연사물까지 모두 다 한울님의 지극한 기운과 하나로 통해져 잉태되었다는 실상을 통찰한다면 이전에는 알 수 없었던 우주생명의 신묘함을 그렇고 그렇게 모두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불연기연]은 황하수가 어찌 성인의 탄생을 알아서 천년에 한번 물이 맑아질 수 있는지 묻고 있다. 그렇지만 황하수도 하나의 한울님의 지극한 기운의 산물이고 성인의 마음의 탄생도 똑같은 한울님의 지극한 기운의 소산이라면 통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즉, 성인의 청정무구한 마음기운도 황하수의 진흙탕 물도 한울님의 하나의 기운으로 통해져 있으므로 두 기운이 통하여 같아져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무량수의 생명체들은 오직 하나의 기운에서 태어났음을 알게 되면 해월의 표현대로 ‘모든 사람들이 나와 한 동포이고(人吾同胞) 만물과 내가 또한 한 동포(物吾同胞)’라는 점도 스스로 자명해진다. 천리와 천기는 나와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초월적 자리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몸과 내 마음에 내려와 있다고 본다면 왜 해월이 “향아설위(向我設位)’를 시행하였는지도 쉽게 이해된다. 신위(神位)를 마주보는 벽에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하여 설치하는 이유는 천지정신과 천지기운이 모두 내게 모셔져 있기 때문이다. 내 안에 혼원일기, 우주정신, 신령이 모셔져 있기 때문이다. 영의 강림(降臨)이라고 표현하지만 초월적 영이 내려온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는 잉태 순간에 지극한 한울님 기운과 접하여 자신 안에 모시게 된 것이다. 신위를 자신을 향하여 돌릴 수 있는 것은 물론 한울님 모심을(侍天主) 스스로 깨달은 사람에 의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의암 손병희는 [성령출세설]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신사께서 사람이 곧 한울인 심법을 받으시고 향아설위의 제법을 정하시니 이것은 우주의 정신이 곧 억조의 정신인 것을 표명하심과 아울러, 다시 억조의 정신이 곧 내 한 개체의 정신인 것을 밝게 정하신 것이니라.” 조금 넓혀 표현하자면 개체정신이 곧 우주의 정신이라는 것이다. 이 정신은 나의 정신이면서 동시에 ‘천만년 전 사람이나 천만년 후 사람의 정신과 같은 정신’이라고도 말한다. 한울님의 정신기운이 잉태의 순간에 영으로 이미 내 안에 모셔져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근본적 동일성령이 천차만별의 인과에 따라 다르게 표현된 것이다. 생명위기를 실감하는 현대에 이르러 이러한 생명의 우주적 연계성 또는 인드라망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의식이 열렸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기는 하지만 천도교의 입장에서 보면 가야할 길이 아직 멀다. 생명의 그물망을 느껴보고자 한다면 해월의 언행보다 더 좋은 전범(典範)은 없어 보인다. 해월은 베짜는 며느리를 보고 한울님이 베를 짠다고 하였으며, 어린아이도 한울님을 모셨으니 때리지 말라고 하였으며, 동식물도 다 아끼고 사랑하라고 하였으며, 새소리도 한울님의 소리이며, 나뭇가지도 함부로 꺽지 말라고 하였으며, 어린아이가 나막신을 끌고 가니 가슴에 통증을 느꼈으며, 땅을 어머님 살처럼 여겨 침을 뱉거나 물을 멀리 뿌리지 말라고 하였다. 세상으로 눈을 잠시라도 돌려 보면 현대문명이 어느 곳을 향하여 전력질주하는지 누구라도 알 수 있다. 방향전환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점을 동학·천도교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해월은 “궁을이 문명을 돌이킨다(弓乙回文明)”라고 하였다. 궁을은 수운이 한울님으로부터 받은 “영부”의 또 다른 이름이다. 영부는 말 그대로 신령(神靈)에 그대로 부합하는 형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수운은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종이 위에 뚜렷한 형상을 그려내어 불에 타서 먹어보니 온갖 질병이 나았다고 하였다. 다른 사람에게 주었더니 낫는 사람도 있고 낫지 않는 사람도 있는데 도덕을 따르는 사람은 매번 적중하였다고 하였다. 즉 받는 사람의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 그리하여 해월은 병을 낫게 하는 것은 영에 부합하는 마음이라고 하여 “영부심(靈符心)”이라고 하였다. 즉, 병을 치유하는 것은 천령에 부합하는 마음인 것이다. 이 마음이 문명을 대전환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영에 부합하는 마음을 얻는 마음공부가 된다. 놀라운 점은 사람은 태어날 때 이 궁을마음을 타고났다는 사실이다. (계속) *본 글은 2023년 5월 12일/대화아카데미 바람과물연구소, 생명애콜로키움 [종교와 생태문제] 에서 발표하였으며 저자(오문환)의 허락을 받아 게재되었음을 밝힙니다. 글_오문환(정치학박사, 선도사, 영등포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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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사는 기억하고 기록하며 기념하는 일이다105년 전 1919년 3월 1일, 한반도 전역에서는 태극기가 휘날리며 “대한독립만세”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함성소리는 매해 3월이면 우리의 가슴을 울리고 고동치게 한다. 3.1만세운동은 나라를 되찾기 위한 평화로운 항거였으며 3.1정신은 이후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루는 근간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가 3월이면 잊지 말아야 할 역사적인 인물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서도 유독 공적에 비해서 많이 알려지지 않은 분이 있다. 바로 3.1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조직하고 자금을 준비하였던 의암 손병희선생이다. 천도교 제3세교조인 의암 손병희선생은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본에게 우리나라가 강제로 강탈당하게 되자 10년안에 나라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독립을 위한 준비를 하나하나 해 나가게 된다. 우이동에 땅을 구입해 수련도장인 봉황각을 짓고 전국에 있는 유능한 지도자들을 모아서 독립의지를 확고하게 심어주기 위하여 심신훈련을 하게 한다. 3년에 걸쳐 7차례 483명이 봉황각 연성수련을 통해서 배출되었으며 이들은 3.1운동때 전국 각 지역에서 앞장서서 만세운동을 지도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중앙대교당과 중앙총부 건물을 신축하기로 부구총회를 통하여 결의하고 교호당 10원이상씩 건축성금을 내도록 하였다. 이 자금은 후에 독립운동자금으로 사용되어진다. 그리고 당시 천도교에서 경영하던 보성사 인쇄소가 적자경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었지만 끝까지 폐쇄하지 않고 훗날 독립선언서를 인쇄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전국 37개 대교구로 하여금 등사기를 1대씩 구입하도록 하여 훗날 독립선언서를 등사하도록 준비시켰다. 또한 의암 손병희 선생은 국권회복을 위한 49일 특별기도를 지시하였다. “먼저 보국안민(독립)이 된 다음에야 광제창생 포덕천하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서울, 해주, 의주, 길주, 원주, 경주, 서산, 전주, 평강 등 아홉 곳에 대표 기도처를 정하고 각 기도처마다 4명씩 대표를 파견하여 기도식을 지도하게 하면서 3.1독립운동을 위한 전국 교단조직을 정비해 나갔다. 그리고 천도교, 기독교, 불교와 대연합으로 33인 민족대표를 결성하기에 이르른다. 의암 손병희 선생은 3.1만세운동을 기획하고 전국 조직망을 정비하고 독립자금까지 전담하는 등 3.1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지도해 나갔지만 매년 3.1절이 되면 손병희 선생님에 대한 업적은 미미하게 들리는 듯 마는 듯하다. 또한 천도교의 3.1운동에 대한 역할 또한 알려지기도 전에 잊혀져 가기만 한다. 역사는 기억하고 기록하고 기념해야만 된다. 그렇지 않을 때에는 그 역사는 사라지고 심지어 왜곡되기까지 한다. 의암 손병희 선생님에 대한 업적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우리의 잘못이며 이대로 가다가는 사라지고 왜곡될 수도 있다. 그러기 전에 우리는 세상이 떠들썩 하도록 매해 기억하고 기록하고 또 기념해야 할 것이다. 기억하고 기록하고 기념하는 방법에 대하여 잠깐 생각해 보자. 독일을 예로 들어보자. 독일은 틀에 박힌 상징과 형식이 아닌, 권위적이지도 않고 위압적이지도 않은 형식으로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참회하며 가장 예술적으로 역사를 작품속에 표현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살아있는 곳으로 피터 아이젠먼의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추모비」(1998~2005)는 홀로코스트(Holocaust)로 희생된 600만명의 유대인을 추모하고 있다. 다음은 나치의 분서사건 60주년을 즈음하여 독일 베벨광장에 세워진 미하 울만의 「도서관」이라는 작품을 보자. 베벨광장 중심부에 가로120센티미터, 세로120센티미터 크기의 정사각형 투명유리창이 있고 그 지하에 텅빈 직방체 공간이 있다. 이스라엘 예술가 미하 울만의 「도서관」작품이다. 책들의 화형식이 있었던 그 장소의 지하에 설치된 경고의 기념조형물이다. 이처럼 그들은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하며 기념하는 방법으로 문화예술 공간을 이용하고 있다. 문화예술공간은 시민들의 삶속에 스며들고 있으며 그들은 생활속에서 역사적인 사실을 보고 느끼면서 다시는 이런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의암 손병희선생님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기념하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글_숙현당 정정숙(근현대사미술관 담다 관장, 천도교선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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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반역사적인 ‘이승만 띄우기’ 시도요즘 독재자와 학살자로 역사적 평가가 내려진 이승만 대통령을 미화하려는 움직임을 자주 접하게 된다. 뜬금없이 이승만 기념관을 건립하여 독재자를 기리겠다고 한다거나 영화 ‘건국전쟁’을 통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뒤짚으려고 한다. ‘불의에 항거한 4ㆍ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기술한 우리나라 헌법전문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이런 준동에 분노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현재 기준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인권 말살과 부정부패를 저질러 4.19혁명으로 쫒겨난 그의 말로를 우리가 다 알고 있는 판에, 독재자 이승만을 두고 다시 논쟁하는 자체가 소모적이다. 이승만의 악행은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많다. 8ㆍ15해방 이후에 미국을 등에 업고 대통령이 되어 독재정치를 하면서 학살한 무고한 양민들이 100만명 이상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런 이승만을 국가보훈부가 지난 1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고, 국방부는 그를 혜안을 지닌 지도자로 미화하는 교재를 발간하기도 했다. ‘홍범도 지우기’로 국민의 공분을 산 집권 세력이 ‘이승만 국부 만들기’로 이념전쟁에 불을 붙이고 있는 형국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승만 대통령은 일제 강점기 내내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해방 후 북한·중국·러시아가 공산화된 상황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을 수립했다”고 그를 칭송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1948년 정부 수립과 함께 농지개혁·교육개혁·정치개혁이란 3개 개혁으로 대한민국의 토대를 닦았다.”며 이승만을 한껏 찬양했다. 이승만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격동의 해방 공간에서 그가 내린 선택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고 강변한다. 이승만이 친일파를 등용하고 양민을 빨갱이로 몰아 학살한 역사적 사실도 그들의 눈에는 크게 문제가 될 게 없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말도 안 되는 억지 주장을 편다. 진실을 덮고 거짓을 호도하려는 영화 한 편에 부화뇌동하는 것이 2024년 대한민국의 현주소인 것만 같아 정말 씁쓸하다. 정권은 유한하고 역사의 흐름은 도도하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이런 시도가 성공하겠는가. 말 그대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올해는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이 되는 역사적인 해이다. 학계와 시민사회의 오랜 노력으로 국회에 상정된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들을 독립운동 유공자로 서훈하고자 하는 법률안이 아직도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보훈부는 을미의병 참여자에 대해서는 1962년부터 지금까지 145명을 서훈하면서도, 전봉준·최시형 등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는 단 한 명도 서훈하지 않고 있다. 이는 ‘이승만 띄우기’ 기도와 무관하지 않다. 역사를 거스르는 세력들이 여전히 우리 사회의 중심을 차지하고 역사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독재자 이승만을 구국의 민족지도자로 받들려는 기도를 절대 묵과할 수 없다. 국민 공감대도 없이 진행되는 시대착오적 ‘이승만 띄우기’는 성공할 수도 없고 결국 이념전쟁으로 우리 사회를 갈라놓는 것으로 끝날 것이 뻔하다. ‘이승만 국부 만들기’에 주력해온 뉴라이트 역사관에 따른 반역사적인 악행을 당장 멈추기를 요구한다. 글_윤여진(시인, 논산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