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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인터넷신문」 개국에 부쳐오늘 「천도교 인터넷신문」 창간을 국내·외 동덕들과 함께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비록 늦은 감은 있지만 오늘을 기점으로 우리는 새롭게 동학⦁천도교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고, 수운 최제우 대신사님께서 한울님으로부터 받으신 후천 오만 년의 무극대도가 이 세상에 널리 펼쳐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을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수운 대신사님께서는 <흥비가>에서 “글도 역시 무궁하고 말도 역시 무궁이라. 무궁히 살펴내어 무궁히 알았으면 무궁한 이울 속에 무궁한 내 아닌가”라고 설법하셨습니다. 대신사님께서 창명하신 무궁한 대도를 우리는 인터넷신문을 개국함으로써, 무궁히 살펴내어 무궁히 인류에게, 후세에게 전달하고 체행하는 장을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오늘은 매우 그 의미가 크고 뜻깊은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천도교는 그동안 기관지로 『만세보』를 비롯하여 『천도교회 월보』, 『신인간』, 『천도교 월보』, 『천도교 신문』 등을 발행했으며, 현재는 『신인간』과 『천도교 신문』 발행하고 있습니다. 더하여, 오늘 『천도교 인터넷신문』을 개국하게 된 것은 현 사회, 시대와 짝하여 나아가겠다는 용시용활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유튜브, E-메일, 포털 사이트, SNS 등을 통하여 방대한 지식과 정보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빠르게 변화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디지털 미디어 시대를 맞이하여, 오늘 창간하는 천도교 인터넷신문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동학⦁천도교를 널리 알릴 수 있는 기관 매체로써 굳건하게 자리매김하기를 간절히 천사님께 심고 드립니다. 더 많은 독자와 호흡하고 소통하면서, 지치지 않는 열정과 사명감으로 뭉쳐 일하겠습니다. 실시간으로 동학⦁천도교의 뉴스와 정보를 제공하고, 모든 동덕들 한분 한분의 소식까지 역사의 기록물로 충실하게 남기고자 노력하겠습니다. 다양하고 흥미로운 내용을 찾아, 작은 교구의 소식에서부터 종단 내·외 전체 소식까지 함께 호흡하며 정감이 있고 인정이 넘치는 신문으로 발전토록 노력하겠습니다. 천도 교단의 기관 홍보 매체로서 민족혼과 동학의 정체성을 담아낼 수 있는 다양한 기사와 콘텐츠를 제작하여 포덕 교화에 앞장서겠습니다. 또한, 동덕들 상호 간의 정보교류와 소통의 장이 되어서, 동덕 간의 친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하여 동귀일체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끝으로 첫 출발선에 선 『천도교 인터넷신문』이 개벽 역사 주인의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면서 그동안 창간을 위해 수고하신 담당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앞으로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천사님께 심고 드리면서 개국사에 가름합니다. 감사합니다. 포덕 164년 8월 14일 천도교 교령 박 상 종 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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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천도교신문 개국을 축하합니다인터넷 신문 개국이 동귀일체하는 교단 발전의 계기가 되길 기대합니다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 문명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꾼 사건이 세 번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1만년 전의 농업혁명이며 두 번째는 200년 전의 산업혁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세 번째로 기존의 삶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정보화와 4차산업혁명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방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온 세계에 전파할 수 있는 초고속의 지구촌 시대가 된 것입니다. 종래의 산업화 시대 경제의 틀이 바뀌고 기존의 국가 사회의 개념도 바뀌고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 사회에 다가온 4차산업혁명의 물결은 엄청난 속도로 이 세상의 구석구석을 휩쓸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변혁의 시대, 우리 교회가 새로운 문명의 세계와 함께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인터넷신문을 개국하게 된 데 대하여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이번의 인터넷 신문 개국으로 교단 내의 다양한 소식을 실시간으로 신속하고 정확하게 보도함으로써 4차산업혁명 시대 동귀일체로 함께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오늘의 인터넷신문이 개국되기까지 수고를 아끼지 않은 많은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다시 한번 역사적인 천도교 인터넷 신문의 개국을 축하합니다. 연원회 의장 호암 이정희 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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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인터넷 신문 개국 기념 축사모시고 안녕하십니까? 오늘 뜻깊은 지일 기념일을 맞아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천도교가 세상과 소통할 또 하나의 길인 천도교 인터넷 신문이 개국하고 봉고식을 거행하는 일입니다. 특히 오늘은 해월신사님의 승통 기념일입니다. 해월신사님의 가르침 중에 ‘대저 도는 때를 맞추어 쓰고 활용하는 데 있나니 때와 짝하여 때를 알고 때에 맞추어 쓸 줄 알아야 한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변화에 발맞추어 소통의 방식도 달라지고 있으니 인터넷 신문 역시 그 바탕은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천도교가 한때 세상의 흐름을 바꾸어 간 적이 있습니다. 또 그렇지 못한 때도 있었습니다. 천도교는 같지만 이처럼 시기에 따라 천도교가 다른 모습을 보이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천도교가 얼마나 세상과 잘 소통하느냐의 문제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도교 인터넷 신문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우리의 얘기를 전하는 것만큼 세상의 변화와 문제점을 우리의 고민 속으로 끌어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의암성사께서 말씀하신 삼전론 가운데 ‘언전(言戰)’을 제대로 수행하기를 바랍니다. 천도교 인터넷 신문이 포덕천하 광제창생 보국안민의 목적 달성에 중심에 설 수 있기를 간곡히 바라는 말씀드리며 축사에 갈음합니다. 감사합니다. 인암 박남수 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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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천도교신문 개국을 축하드립니다천도교신문의 인터넷판 개국을 축하합니다. 만시지탄의 심정으로 우리 도의 숙원이었던 정보화, 디지털화가 실현되어 매우 기쁘고 감격스럽습니다. 인터넷 천도교 신문은 교인들 곁에 한층 가깝게 다가가고 무엇보다도 젊은 층에 우리의 진리를 알릴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할 것입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중앙총부 임직원 여러분들의 노고에 우선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언론은 사회적 공기로서 민주주의를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라고 합니다. 금번의 인터넷 천도교 신문의 개국은 우리 도를 위한 공기이고 우리 도의 민주적 확대입니다. 그동안 우리 도의 가장 뒤진 부분이 홍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제는 그 역할을 천도교 신문이 담당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이제 천도교 신문은 인터넷으로 우리의 활동을 보다 속도감 있게 전달하여 우리의 도가 살아있음을 만천하에 알리게 될 것입니다. 의암 성사님의 삼전론에서 언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다만 천도교 신문은 우리의 진리를 홍보하되 내부의 소리도 담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사회나 조직도 내부의 비판기능이 활발해야 만이 발전할 수 있습니다. 칼 도이치라는 학자는 언론을 인체의 혈액순환에 비유해 올바른 언론의 역할과 건강한 사회를 연결했습니다. 모쪼록 천도교 신문이 진정한 천도교의 대변지이자 천도교 언론의 역할을 해 주기를 심고 드립니다. 신암 송범두 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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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인터넷신문 개국을 축하하면서모시고 안녕하십니까. 「천도교 인터넷신문」 개국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21세기 사회는 전 분야가 인터넷 디지털 시대입니다. 모바일로 검색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실상과 실시간으로 송출되는 기사로 인터넷신문으로의 추세는 빠르게 변화되고 있습니다. 교단의 발전을 위해서도 인터넷신문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인터넷신문이 제2의 부흥을 개척해 가는 계기가 되어 천도교의 눈과 귀의 역할을 하는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 주기를 심고 합니다. 그리고 교단의 소식을 제대로 알리고 활성화에 보탬이 되어 모든 분이 상생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또한, 천도교의 교리와 교사 그리고 새로운 지식 정보를 제공해 주고, 다양한 문화를 전달하는 뉴스매체로 성장해 나가기를 기대합니다. 아울러 그동안 인터넷신문 개국을 위해 애써주신 여러분의 헌신 노력에 감사드리며, 더 큰 열매가 열리기를 기원하면서 무한한 지지와 박수를 보냅니다. 모쪼록 건강한 눈과 진솔한 마음으로 이 시대에 걸맞은 언론매체로 거듭 나가기를 기대하며, 「천도교 인터넷신문」의 뿌리가 나날이 깊어지고, 그 열매는 더욱 튼실해지도록 많은 관심과 지원을 바랍니다. 종무원장 용암 주용덕 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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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국을 축하합니다.모시고 안녕하십니까? 우리가 늘 생각하고 바라던 천도교 인터넷 신문을 창간하게 되어 무척 반갑고 기쁜 마음 뭐라고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천도교 인터넷 신문을 준비하고 발행하신 중앙총부와 담당자분들 정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천도교 인터넷 신문이 발행되어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고 천도교의 소식을 빠르게 전달하여 교인 여러분의 마음을 전달 할 수 있는 천도교 인터넷 신문이 되리라 믿습니다. 천도교 인터넷 신문을 보다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도 교인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격려가 필요하며, 중앙총부와 담당자께서는 인적 자원과 재원의 투입, 체계적인 조직관리와 지속적인 운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종무원장님과 관계자분께서는 지금까지 천도교 인터넷 신문을 개국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과 수고가 있었기에 오늘의 인터넷 신문 개국이 가능하였다고 봅니다. 앞으로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전진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기상의 변화로 올해는 비가 많이 오고 무더운 날씨에 건강 관리 잘하시고 교인 여러분들의 가정이 모두 행복하시길 심고 드립니다. 종의원 의장 명암 선우철수 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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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인터넷 신문 개국!모시고 안녕하십니까. 급변하는 세계정세와 극단화되는 정치 성향과 갈등으로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러한 때에 세상 돌아가는 사실을 진실하게 보도하고 세상을 선도할 매체가 과연 어느 곳인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영논리에 경도된 보도 매체들에 현혹되어 실제 상황이 어떤 진실을 담고 있는지 무척 알기 어려운 상황에 계시는 동덕님도 많으시리라 생각됩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 천도교에서 천도교 신문을 전자적 매체로 구현하게 된 점은 무척 고무적이라 아니 할 수 없겠습니다. 잠시나마 세상을 선도해 오던 우리 도가 침체에 빠진 지 무려 50년을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 안팎의 공감대입니다. 우리 동학 천도교가 세상을 구하는 유일한 무극대도라는 것을 세상에 알리는 매체로서 인터넷 천도교 신문의 출발을 진심으로 환영하는 이유는 이 매체 도구가 세상을 구하는 포덕의 대도가 되어야 한다는 희망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유사 종단조차 방송 매체를 소유하고 세상에 영향력을 전파하는 작금의 현실을 볼 때 만시지탄이 있다는 소회는 뒤로 하고 천도교 신문을 이어 더욱 활활 발발하게 우리 도의 전파, 포덕을 책임질 매체의 탄생을 염원하면서 우리 천도의 포덕에 인터넷 천도교 신문이 그 영역에서 맡은 바 임무를 백분 발휘하여 줄 것이라는 믿음을 우리 동덕님 모두와 함께 가슴에 품고 그 성공을 기원하면서 진심으로 축복하는 마음을 전합니다. 감사원장 부암 정덕재 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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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판 천도교신문 개국 축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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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고등학교 학생 18명 입교식 봉행동천고등학교 학생 18명 입교식 봉행 지난 7월 10일 오후 4시 30분 천도교 정신을 건학이념으로 설립한 동천고등학교의 동천교구에서는 18명의 학생이 천도교에 들어오는 입교식을 봉행하였다. 신원기 교화부장의 사회로 시작한 입교식에서 중암 김대석 동천교구장은 전교인인 배미화 원곡학원 이사장을 대신해 학생들에게 주문을 일일이 수여하였다. 이날 입교한 학생은 김성민(2학년), 김하진, 이재연, 이준혁, 최우혁, 홍준재, 강민재, 강준성, 이승모, 강석민, 서창석, 송승윤, 정세헌, 정시현, 이준용, 박정환, 이용민, 김규민(이상 1학년) 등 총 18명이다. 중암 김대석 동천교구장은 입교식 후 학생들에게 “천도교는 미래의 종교로 여러분이 미래의 주인공으로서 천도교에 입교한 것을 축하하며, 천도교를 바르게 신앙해 한울님을 모신 거룩한 존재임을 깨닫고 미래 사회의 주역이 되기를 희망한다.”는 덕담을 주었다. 이어 종학실장을 맡고 있는 덕암 성강현 흥신포 직접도훈은 “천도교 입교를 진심으로 축하하며, 한울님 모심을 찾아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 나아가 우리 사회를 이끌어 나갈 개벽군으로 성장하기를 진심으로 염원하는 심고를 드리겠다.”고 격려의 인사를 전했다. 입교식 후 인근의 못골시장에서 입교를 축하하는 저녁 식사 시간을 가졌다. 이날 입교한 18명은 동천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자율적으로 동천교구에서 주관하는 월요 시일식에 참여해 감화를 받고 천도교의 정신에 공감하여 입교를 결정했다. 총부에서는 매년 400만원을 지원하여 학생들의 장학과 학생 포덕 활동에 지원하고 있다. 동천고등학교는 고 흥암 안관성 종법사가 천도교의 인내천 정신을 갖춘 새로운 인재를 배출하고자 1980년 개교하여 올해 44년을 맞은 부산의 명문 고등학교이다. 동천고등학교는 교직원과 학생들의 교화를 위해 종학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전 교직원이 동천교구에 입교하여 신앙생활을 하며 동학의 정신을 학생들에게 지도하고 있다. 1학년을 대상으로 한 ‘세계시민’과목에서 세계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소양이 바로 동학의 시천주와 인내천 정신에 있음을 지도하고 있다. 또, ‘세계시민과 동학부(이전 종학부)’라는 자율동아리를 두어 희망학생을 모집해 월요시일식 참석, 정신문화유적지 탐방, 인근 교구 시일식 참석 등의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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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병자호란의 영웅 최진립 장군수운 최제우 대신사는 글을 남겼다. “우리 선조 험천 땅에 공덕비를 높이 세워 만고유전 하여보세. 송백 같은 이내 절개 금석으로 세울 줄을 세상 사람 뉘가 알꼬.”, “선조의 충의와 절개는 용산에 남아 있네. 해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의 우리 임금님 성덕을 다시 돌아보네.” 수운 최제우 대신사가 언급한 ‘선조’는 잠와 최진립 장군으로 수운 최제우 대신사의 7대조이다. ‘용산’은 경주 내남면 이조리에 있는 용산서원을 말한다. 유림에서는 최진립 장군의 충절과 학문을 기려 용산서원을 창건하여 공을 제향하고 후학을 가르쳤다. 숙종 37년에 임금이 친히 ‘숭렬사우崇烈祠宇’로 글을 내린 사액 사당이다. 당시 무신으로 사액 사당을 받은 이는 이순신과 김시민 장군뿐일 정도로 드문 일이었다. 용산서원 입구에 공의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정무공貞武公 최진립(崔震立, 1568~1636) 장군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최진립 장군은 신라시대 고운 최치원 선생의 17세 후손이며 사성공 최예의 6세 후손이다. 1568년 경주 현곡면 하구리 구미산 아래에서 참판공 최신보와 평해황씨 사이에서 셋째로 태어나 자랐다. 1592년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4월 21일 경주성이 함락됐다. 당시 25세였던 장군은 아우 최계종, 당숙 최신린, 최봉천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그해 5월 27일 김호, 손엽, 권사악, 이눌 등의 의병장들과 힘을 합해 계연(김유신 장군 묘 아래 경주 서천 일원)에서 왜적을 무찔렀다. 6월 2일에는 언양에서 경주로 쳐들어오는 왜적을 김기 의병장과 함께 열박재(충의당과 울주군 두서면의 중간)에서 가로막았다. 7월 27일에는 경주 손엽, 권복시, 권사민 의병장들과 함께 영천성 수복 전투에도 참전해 공을 세웠다. 정유재란 때는 결사대 100여 명을 이끌고 울산 서생포에 주둔 중인 적을 기습하여 전과를 올렸다. 장군은 이와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1605년(선조 38) 선무원종공신 2등을 받았고, 훈련부정, 도총도부사, 마량진 첨사, 경원 부사 등을 역임했다. 1636년 12월 13일, 병자호란을 일으킨 청나라 군대는 며칠 지나지도 않은 12월 16일에 인조가 피신한 남한산성까지 포위했다. 최진립 장군은 69세라는 많은 나이에도 군사를 일으켜 남한산성을 향해 진격했다. 그가 전장으로 달려가기 직전, 충청감사 정세규가 ‘늙어 전장에 나가기 마땅치 않다’고 만류했지만 최진립 장군은 “내가 늙어 싸워서 이길 수 없더라도 한번 죽어 나라에 보답할 수는 있다”고 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1637년 1월 2일, 청나라 장수 양고리(楊古利·양굴리)가 이끄는 적과 대치했다. 열세인 상황에서 최진립, 나성 현감 김홍익, 남포 현감 이경징, 금정 찰방 이상재 등은 포기하지 않았다. 훈련이 부족하고 전투력이 미약한 소수 부대지만 잘 통솔하여 적과 대등하게 싸웠고, 하루종일 10여 차례 전투가 벌어졌다. 이후, 아군은 탄약과 화살이 바닥나고 군사도 이미 반이나 잃었다. 최진립 장군은 공주영장으로 군사를 이끌고 용인 험천 전투에 참여하여 용전하다가 장렬히 순절했다. 다음 해에 시체를 수습했는데 ‘그 모양이 살아 있는 듯하고 화살과 총알이 고슴도치처럼 박혀 있었다’ 기록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이름을 떨쳤던 장수 중 1636년 병자호란 때까지 생존한 이는 거의 없었다. 일본군 선봉장으로 참전했다가 조선에 귀화한 김충선이 당시 63세의 고령으로 병자호란에 참전한 사실이 두드러지는 정도다. 그런 만큼 불과 25세의 나이로 임진왜란에 의병으로 참전했던 최진립 장군의 69세 병자호란 참전과 순절은 특별한 이력으로 평가되고 있다. 최진립 장군 묘소는 나라에서 내린 명당 터에 장지를 마련하여 장례를 치르고, 병조판서에 추증하고 정무貞武라는 시호를 내렸으며 청백리에 녹선하였다. 고향 내남면 이조리에 정려비각을 세워 충절을 만대에 전하도록 하였다. 최진립 장군 묘소 뒤편에는 3년 동안 시묘를 살았던 셋째아들 현감공 최동량의 묘소가 있다.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훈을 실천하며,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보내고, 해방 후 대구대학을 설립하여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경주 최부자의 현조이다.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99호인 충의당은 경주 최씨 종가로 최진립 장군이 살았던 집이다. 본래 당호는 흠흠당欽欽堂이었는데, 1760년 무렵 건물을 고쳐 지으면서 집 이름을 충의당으로 바꾸었다. 충의당 일대는 ‘충의 공원’으로 조성하였고, 장군의 기마동상과 유물관인 충의관이 건립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취재진이 충의당 종택을 방문한 날 종손을 만나 집안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중에는 수운 최제우 대신사와 한씨 사모님 이야기도 있었다. 사당인 충렬사와 닫혀있던 최진립 장군 위패도 열어서 보여주셨다. 사당 들어가는 입구에 200년 된 매실나무가 세월의 인고를 견디며 잘 자라고 있다. 기나긴 겨울의 혹한을 이겨내고 꽃 활짝 피는 날 다시 방문하고 싶다. 수운 최제우 대신사가 탄신하신 비슷한 시기에 심어졌으리라 여겨진다. 동학 3대 교주 의암 손병희는 마지막 경주 최부자인 최준을 나이로는 22살이나 많았지만 늘 존중했다고 한다. 최준에게 수시로 “동학은 경주 최씨와 최부자 가문의 가르침”이라며 예우했다. 경주 최씨, 그중 최진립 장군으로 시작되는 가계도를 이해하고 있었기에 이런 표현을 했을 것이다. 최진립 장군 묘소 아래 사패지賜牌地에 울산과학기술원(UNIST)이 건립되니 어찌 우연이라 하겠는가! 동학을 창명한 수운 최제우 대신사가 최진립 장군의 7세손이니 공의 위대한 정신은 자손 대대로 이어졌다. 글 조성갑 사진 최인경 (탐방 팁) 용산서원 : 경북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 659 충의당과 충의공원 : 경북 경주시 내남면 충의당길 15 최진립 장군 정려비 : 경북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 513-1 최진립 장군 묘소 :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반연리 산 157 (울산과학기술원 교수아파트 입구) * 이 글은 천도교중앙총부 동학혁명정신선양사업단에서 발행한 매거진 <동학집강소>에 게재된 글을 재구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