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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9일(토) 제130주년 동학농민혁명 2차 봉기 청산총기포령 기념식 및 학술대회 행사가 충북 옥천군 청산면 일대에서 열렸다.
제1부 청산총기포령 기념식은 19일 오전 11시 청산동학공원(청산면 한곡 1길 114)에서 천도교중앙총부가 주최하고 전국동학농민혁명연대(전국 동학농민혁명 41개 단체)가 주관하였다. 제2부 해월 최시형의 총기포령과 독립서훈 학술대회는 19일 오후 2시 청산초등학교(청산면 지전길 36-19) 강당에서 천도교중앙총부가 주최하고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국민연대(전국 동학농민혁명 55개 단체)가 주관하였다.
동학 천도교 제2세 교조 해월 최시형 신사는 1894년 9월 18일(음력)을 기하여 전국의 동학조직이 총기포할 것을 명령한다. 동학혁명의 기치와 열기가 충청도와 경상도, 경기도, 강원도 그리고 황해도와 평안도까지 전국적으로 확산하게 된다.
옥천(청산)은 해월 최시형 신사가 총기포령을 내린 장소로 전국 동학농민혁명의 총 본부가 되었다. 이른바 옥천, 청산에서 동학농민혁명의 전국화가 실현된 것이다.
해월 최시형 신사는 1894년 9월 18일 각포 두령들에게 교도들을 거느리고 청산(靑山)에 모이도록 초유문(招諭文)을 발령하였다. 이때가 남북접의 동학 조직이 하나가 되어 척왜양창의 즉 일본군을 물리치려는 전국동학의병이 총기포할 수 있었다.
해월 최시형 신사는 청산집회에서 "인심이 곧 천심이라 이는 곧 천운이 이루는 바이니 너희들은 도중(道衆)을 동원하여 전봉준과 협력하여 사원(師寃)을 풀며 우리 도(道)의 대원(大寃)을 실현하라"고 초유하였다.
해월 선생은 의암 손병희를 동학군 대통령으로 지명하고 통령기를 주어 북접 동학군을 지휘토록 하였으며, 남접의 전봉준 총대장과 연대하도록 지시하였다. 이때에 해월 선생의 결단으로 남북접이 하나가 되어 일본 침략군과 맞서게 되었다. 전봉준과 손병희는 논산에서 의형제를 맺고 경복궁을 불법 기습 점령, 조선군 해산, 친일내각 등 국권침탈 즉 조선을 병탄한 일본군과 전면전을 벌이게 된다.
이러한 동학농민혁명 2차 봉기의 역사는 항일이며 구국을 근본으로 시작되었다. 보국안민의 기치와 척왜양창의 깃발을 든 청산총기포령의 역사적인 날을 기념한다.
이날 행사는 식전공연으로 2차 기포 동학군 진군행렬기접이 놀이와 진혼무로 문을 열고 천도교중앙총부의 집례로 청수봉전, 심고, 천덕송(천도교 샘 합창단) 합창 등으로 이뤄졌다.
윤석산 천도교 교령, 고재국 전국동학농민혁명연대 대표의 인사말과 주영채 전국동학농민혁명 유족회장 등의 축사, 청산지역 기관장들의 인사말이 있었다.
동학서훈학술발표회는 윤석산 천도교 교령의 축사에 이어 "해월 최시형의 총기포령과 독립서훈"을 주제로 개최되었다. 주제발표에는 1. 장수덕(내포동학문제연구소장)의 '최시형 총기포령의 역사적 의미'와 2. 박용규(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의 '최시형의 항일 독립운동과 서훈'으로 이어진 종합토론에서는 김용달(전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이 좌장을 맡고, 토론1 정선원(전 동학농민전쟁 우금티기념사업회 이사장), 토론2 성강현(동의대 교수)로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