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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내가 만든 신흥종교

기사입력 2024.06.05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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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장대소하면서 웃음을 전염시키는 종교

    가장 신기하고 의아한 것은 한 사람이 한 이성을 만나 평생을 같이 산다는 것이다. 한 종교만을 갖고 사는 사람도 그렇다. 이해가 안 된다. 사회의 집단 최면에 걸린 결과로 보인다. 집단성은 심적 안전을 보장하는 대신에 이성을 마비 시킨다. 하늘 기운과의 접속을 차단하기도 한다. 

    이렇게 말하면 솔깃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외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평생을 자기가 태어난 지역에서만 살다 가는 사람이 있다면? 평생을 한 가지 음식만 먹고 산다고 하면? 딱 한 가지 옷만 입고 산다면? 그걸 강요하는 종교가 있다면? 나란히 비교될 수 있는 소재들이다.

    내가 심취했던 종교는 다섯 개나 된다. 이제 다 심드렁하다. 심드렁하다기보다 모두가 소중하되 근본은 같아 보이고 차별성이 있다고 한들 시대와 지역 변수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자기 종교의 특정 교리를 들먹이며 신관과 우주관, 인간관과 자연관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보기에 좀 딱하다. 그래서 나는 모든 종교를 아우르는 신흥종교를 하나 만들었다. 내가 해 오던 여러 수행 방편의 진수가 담긴 셈이다. 

    나는 그게 신흥종교인 줄 모르고 지냈는데 존경하는 선배가 그게 바로 신흥종교라고 일러 줘서 이름까지 붙이게 됐다. ‘박장대소교’다. 교리와 경전과 성소가 없는 종교다. 교주도 없다. 이 글의 제목이 ‘내가 만든 신흥종교’지만 스스로 교주라고 여긴 적은 없다. 어느 순간, 딱 네 곳의 인상 깊은 기억이 한 순간에 겹쳐 왔고 그걸 시연한 게 계기였다.

    재작년 봄이었다. 터박이 씨앗을 연구하고 수집하는 단체에서 나더러 명상 수련을 지도해 달라고 했던 때었다. 전혀 계획에 없던 제안이었다. 나는 딱 5초 만에 강의를 끝냈다. “쳇! 자기네 황토집에서 재워준다면서 배 불리 먹이더니 강의 들으라는 것이었군.”하는 눈치가 역력해서였다. 

    이 5초짜리 강의가 ‘박장대소교’의 출현이 될 줄이야! 짧디짧은 강의는 폭소를 자아냈고 더 해 달라고 해서 5분을 더 했고 이어서 1시간이나 강의를 하게 되었다. 박장대소교의 교리와 의례와 전교가 완성되는 시간이었다.

    내가 한 5초 명상 강의는 이랬다. 말과 몸짓으로 나를 따라 하는 것이었다. 오른쪽 어깨와 왼쪽 어깨를 교대로 크게 들썩이며 “이래도 좋아. 저래도 좋아”라고 했다. 그리고 양 무릎을 벌떡 세워 일어나 두 팔로 커다란 원을 그리며 “다~~ 좋아. 아이구 좋아라. 으하하하하....”라고 하는 것이었다. ‘박장대소’라는 농장을 운영하는 친구, 만날 때마다 ‘아이구~ 반가워요’라는 선배, 몸짓을 가르쳐 준 어느 신부님 등의 기억이 결합 된 것이다.

    ‘박장대소교’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기성 종교인에게 양다리 갈등을 유발하지도 않는다. 헌금도 없다. 성직자도 없다. 모든 대상을 행해서 아이구 반가워 하하하. 아이구 맛있다 하하하. 아이구 좋아라 하하하. 아이구 몬 살아 하하하. 아이구 내 팔자야 으하하하하라고 하면 된다. 약간 과장스러운 몸짓을 곁들일 것을 권하다. 이게 다다. 근데 좀 귀 티나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내 얼굴과 입과 팔다리에 완전한 자기 주권이 실현된 종교다. 마음 자기 결정권이라는 게 있다면 그걸 행사하는 종교다. 멋지지 않은가? 

    누구나 스스로 바라지 않는다. 짜증이나 불행이나 화를 진정으로 원하지 않는다. 원하지 않는데도 습관과 기억에 얽매여 그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신의 참 바람을 몸과 마음과 입으로 시도 때도 없이 성취해 가는 종교다. 박장대소하면서 웃음을 전염시키는 종교다. 이 정도라면 세상 모든 종교의 통합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인간 존재의 궁극적 의미라고 해도 될 것이다. 교인이 되시라. 절차도 의례도 없다. 위에 나온 걸 참고로 자기만의 교리와 의례를 적절하게 만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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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_목암 전희식(진주교구. 한울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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