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목록
-
19일, 옥천 청산총기포령 기념식 및 학술대회 개최오는 10월 19일 충북 옥천군 청산면 일대에서 제130주년 1894 동학농민혁명 2차봉기 청산총기포령 기념식 및 학술대회 행사를 개최한다. 이번 행사는 천도교중앙총부가 주최하고 2차동학농민혁명참여자서훈국민연대가 주관하며 항일전쟁의 시작인 2차봉기 총기포령지인 충북 옥천군 청산에서 개최된다. 해월 최시형 신사는 1894년 9월 18일을 기하여 전국의 동학조직이 총기포할 것을 명령한다. 혁명의 기치와 열기가 충청도와 경상도, 경기도, 강원도, 그리고 황해도와 평안도까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옥천은 해월 최시형 신사가 총기포령을 내린 장소로 전국 동학농민혁명의 총 본부가 되었다. 이른바 옥천에서 동학농민혁명의 전국화가 실현된 것이다. 이리하여 옥천은 물론, 인근 지역인 금산, 진산, 영동, 단양, 상주 등지의 동학도들이 청산으로 집결하였다. 청주 손천민, 이구용, 서산 박인호, 홍주 김두열, 공주 김지택, 배성천, 보은 김인국, 황하일, 신찬 김경산, 면천 박희인, 남포 추용선, 안성 정경수, 임명준, 목천 김복용, 이희인, 당진 박용태, 김현구, 안민도, 주병도, 충주 신재운, 옥천 정원준, 강채서, 태안 김동두, 수원 김내현, 양지 고재당, 이천 김규석, 김창진, 지평 김태열, 여주 임학선, 홍병기, 원주 이화경, 임순화, 홍천 심상천, 차기석, 양근 신재준, 횡성 윤면호 등 각 지역의 동학군 지도자와 함께 손병희는 북접 소속의 통령이 되어 10만 명에 이르는 동학농민군을 지휘하였다. 이러한 동학농민혁명의 2차 봉기의 역사는 항일이며 구국을 근본으로 시작되었다. 보국안민의 기치와 척왜양창의 깃발을 든 청산총기포령의 역사적인 날을 기념한다. 이날 행사는 식전공연으로 2차봉기 동학군 진군행렬기접이 놀이와 진혼무로 문을 열고 천도교중앙총부의 집례로 청수봉전, 심고, 천덕송(천도교 샘 합창단) 본 행사를 시작한다. 윤석산 교령, 전국동학농민혁명연대(전동연) 고재국 대표의 인사말과 축사(유족회장, 내빈)에 이어 전동연 경과보고를 마치면 학술대회가 개최되는 청산초등학교로 이동한다. 같은 날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이어지는 동학학술발표회는 “해월 최시형의 총기포령과 독립서훈”을 주제로 펼쳐지며 학술대회의 다음과 같은 기대효과를 갖고 있다. 1. 동학농민혁명정신은 보국안민정신이며 이 정신이 후대에 3.1정신과 항일독립투쟁으로 이어져 온 역사적 사실을 학문적으로 규명 2. 해월 최시형의 총기포령의 의미를 환기하여 해당 분야의 학문적 발전에 기여 및 독립서훈운동의 정당성근거를 확보. 3. 동학사상의 사회변혁 동력을 일깨우고 인간 존중의 공동체 의식 함양. 한편 동학에 관심있는 일반 시민 및 연구자의 발표와 토론으로 구성되며 2차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 국민연대가 주관한다. 많은 교인 및 관심 있는 일반인들의 참여를 기대한다. 천도교중앙총부에서는 당일 오전 8시 수운회관 앞에서 청산행 버스를 운행한다(버스 좌석 문의 : 02-735-7579)
-
천도교 진주시교구 교당이전 봉고식 개최천도교 진주시교구(교구장 정의적)는 9월 30일 11시 교구 이전 봉고식 및 시일식을 봉행하였다. 진주시 도동로 14 상가건물 2층 새 교당 성화실에서 봉행된 교당 이전 봉고식은 중앙총부 성암 정갑선 교무관장의 집례로 국민의례, 청수봉전, 심고, 주문3회, 경전봉독, 봉고문낭독(진주시교구 감사 도암 박완주), 공로패 수여(교령상, 도암 박완주, 호암 김치수, 옥선당 서경옥), 천덕송, 식사(교구장 정의적), 축사(김산 연원회부의장, 최봉수 순원포 도정, 정덕재 남진포 도정, 주선원 동학혁명유족회장), 설교(이범창 종무원장), 천덕송, 심고, 폐식순으로 진행되었다. 이날 시일·봉고식은 진주, 사천, 삼천포, 마산, 고성, 통영 등 인근 6개 교구 합동으로 열렸다. 약 100여 명의 교인 및 하객이 참석하여 성화실을 가득 채웠다. 조규일 진주시장이 참석하여 축사를 하였다. 진주시교구는 포덕 47(1906)년 전국 72개 대교구 설립 시 설립되어 그해 12월에 23개 대교구로 통합되면서 영남지방에는 유일한 대교구가 되었다. 포덕 60(1919)년 3·1독립운동 당시 손병희 의암성사의 지시로 교구에 비치해 두었던 등사기로 독립선언서를 등사 배포하고 각 군과 면의 장날을 기해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다. 1920년 8월 미래의 희망인 소년들에게 민족계몽정신을 심어주기 위해 진주천도교소년회를 조직했다. 1923년 4월에 백정의 사회적 평등을 요구하는 형평운동을 하기위하여 강상호, 신현수, 천석구의 주도로 진주형평사를 설립하였다. 일제의 탄압과 종교 활동금지로 대교구운영이 사실상 중단되어 8·15광복 다음 해인 포덕 87(1946)년 진주대교구 교당을 매각하고 진양군 속사리에 밭 470평을 매입했다. 이때부터 교구명칭이 진양전교실로 바뀌어졌고 진양교구의 출발이다. 포덕 119(1978)년 8월에 진주시교구 설립추진위원회 위원장 인암 박춘기로 발족되어 포덕 122(1981)년 1월 진주시교구가 인준되어 정상적인 교구운영을 시작하였다. 교인들의 정성과 궁을촌 된장(간장) 제조 판매 사업과 천도교중앙총부, 천도교유지재단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43년 만에 자가 교구 건물을 마련하였다. 정의적 진주시교구장은 봉고식을 마치고 "모시고 공경합니다. 전국 교구장님들의 염원과 후원, 격려로 성황리에 교당 입당봉고식을 잘 마쳤습니다. 진주시교구는 진주대교구 118년의 선배, 선열들께서 이루어놓으신 업적과 정신을 이어받아서 포덕천하의 대업을 달성토록 성력을 다하겠습니다. 대단히 고맙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
대를 이어 동학과 천도교에 헌신, 정순경과 정용근지난해 5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중 천도교중앙총부가 소장하고 있는 9건의 기록물의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천도교중앙총부가 소장하고 있는 기록물은 정순경 교장 임명장, 나동환 교장 임명장, 양수방 접주 임명장, 무장 포고문 필사본 등이다. 이 가운데 정순경 교장 임명장에 주목한다. 해월 최시형 신사는 1884년부터 교장, 교수, 도집, 집강, 대정, 중정의 육임제를 실시했는데, 1885년부터는 각 지방에서도 육임제를 확장하면서 동학의 교세가 크게 늘어났다.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기록물은 이 육임제의 직책에 따라 각각 수여한 임명장이다. 정순경(鄭淳敬)은 동학의 신앙을 깊이 믿었던 인물로, 그의 이름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정순경 임명장'을 통해 더욱 널리 알려졌다. 이 임명장은 조선시대 말기, 동학 농민운동이 일어나기 직전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정순경은 동학을 신앙하며 민중을 위한 대의에 헌신했으며, 그의 아들 정용근 또한 이를 이어받아 천도교를 신앙하고 민족의 독립과 개혁에 앞장섰다. 정용근(鄭瑢根)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 천도교의 정신을 실천하고, 독립운동과 교육 계몽 활동에도 깊이 관여하였다. 이들 부자는 근현대사 속에서 동학과 천도교의 정신을 계승하며 이신환성(以身換成), 즉 자신의 몸을 바쳐 큰 뜻을 이루려는 삶을 살았다. 이들의 헌신은 동학과 천도교의 역사적 가치와 대한민국의 독립과 근대화에 중요한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정순경의 아들 정용근은 1894년 3월 13일 동학 내에서 교장을 맡고 있던 아버지 정순경과 외삼촌 김국현(金國炫), 그리고 같은 마을에 살고 있던 오지영(吳知泳)의 영향으로 동학에 입교하였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자 정용근은 당시 대접주(大接主)였던 김방서(金邦瑞) 휘하의 중견 간부로 집강소(執綱所)에서 사무를 보았다. 동학농민혁명이 실패하자 피신 생활을 하다가 1896년 대접주 장경화(張敬化)의 휘하에 들어가 동학 교단 재건 활동에 참가하였다. 동학천도교인명대사전(개정1판, 2023)에 의하면, 정순경은 익산군, 익산시 신동 출신으로 1894년 8월 해월 최시형 신사로부터 동학 교장(敎長)의 도첩을 받는다. 같은 책에 아들 정용근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정용근(鄭瑢根) : 양암樑菴 족보 정두채(鄭斗采), 異名 정양채(鄭 亮采), 1874년 전주군(全州郡) 북일면 창동 출신(혹은 1973년 익산 군(益山郡) 신동 출신), 1894년 3월 대접주 김방서 휘하로 黃登시 장대도소에서 활동하고 10월 봉기에 참가(1894), 도집(都執), 대정(大正), 접사(接司), 대접주(大接主)로 활동, 갑진개혁 때 교인을 이끌고 태인(泰仁)에 회집(會集)하여 단발(斷髮)(1904.8), 일진회 (一進會)로부터 천도교로 귀교(歸敎)(1906.1), 도호(道號)(1906.11.30.), 교당건축 희사금(喜捨金) 3만환(1906.11), 전주교구 이문원(理文員) (1907.11), 교훈(敎訓)(1909.5.6), 전주교구장(1911-1913.2), 도선사(道 詵寺)-제2회연성인(1912.11.12.19), 교구장(1914.4), 익산대교구 총 인원(叢仁院) 의사원(議事員)(1914.8), 익산대교구장 및 교구장(191 5.11-1918.6), 도호(道號)(1917.4.5), 의사원(1918.4), 이중열, 김원근, 박성호 등과 출연하여 익산교구실을 신축(1918.9), 삼일운동으로 피검(被檢)(1919), 익산교구장(1921.1), 교인대회 대표위원(1922.6), 익산(益山)/옥구(沃溝)/김제(金堤) 포덕사(布德師)(1922.2), 제8구-종법사(宗法師)(1922.11), 익산대교구 경도사(敬道師), 수경포 주간포 덕사(1925.4), 종덕사(宗德師)(1926.8), 포덕과(布德課) 위원(1926), 종법사(宗法師)(1927-1930), 흥법포 주간포덕사(布德師)(1931) 등을 역임하였으며 제2차 분열 후 중앙종리원 감사정(監査正)(1932.5), 흥원포-주관도정(1933.4), 상무도정(道正)(1934), 익산대교구 법정 (法正)(1935.4), 중앙종리원 고문실(顧問室) 고문(顧問)(1936.4), 현 기실(玄機室) 현법사玄法師)(1937-1940)등을 역임하다. 1939년 10월부터 전라도 지방 순회 중 고향 익산에서 11월 24일에 환원하다. 동학천도교인명대사전과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에 기록된 자료와는 정용근 선생에 대한 환원 연도가 차이가 있다. 이에 대해 정정할 필요가 있으며, 향후 세계기록유산 자료와 천도교중앙총부의 자료를 바탕으로 연구와 고증이 이어질 전망이다. 한편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185건은 동학농민군, 정부, 관료, 진압군, 민간지식인 등 여러 주체가 직접 생산한 종합적인 역사 기록이다. 이 기록물에는 동학농민군이 작성한 문서, 정부 보고서, 개인 일기와 문집, 각종 임명장 등이 포함됐다. 이 중 동학농민군이 생산한 기록물은 30건으로, 이 중 18개의 생산자가 해월 최시형 신사이다. 동학혁명의 최고지도자가 해월 최시형 신사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 기록물로서 가치를 인정받은 동학농민혁명 기록을 비롯한 천도교의 자료들이 역사를 바로잡고 국민의 자긍심을 일깨우는 데 이바지할 것을 기대한다.
-
[칼럼] 보수를 참칭하는 기득권 세력과 동학인의 후예1789년 7월 14일 프랑스의 성난 민중들이 파리의 바스티유 감옥을 공격했다. 세금인상을 위한 형식적인 삼부회에 동원된 평민대표들은 사제들과 귀족층의 일방적인 회의결정에 분노해 민중 폭동을 일으킨 것이다. 자유, 평등, 박애의 민주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프랑스대혁명의 순간이었다. 프랑스의 봉건적 구체제 하에서 고통받던 민중이 비로소 국가의 주인이 자신이라는 자각을 하고 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혁명의 열기는 구체제의 파괴를 명분으로 왕과 왕비를 처형하는 등 극도의 공포정치로 이어졌다. 영국은 프랑스보다 먼저 시민혁명을 달성해 의회정치가 일찍 자리를 잡은 나라였지만 혁명 소식은 바로 전달되었다. 그때 아일랜드 출신으로 영국 의회에서 성공한 정치인이었던 에드먼드 버크는 이 사태를 예의 주시했다. 그는 프랑스 대혁명의 여파가 영국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급격한 변혁보다는 검증된 과거의 전통을 존중하면서 점진적인 변화를 지지했다. 그는 영국의 전통적 가치를 지키는 것이 프랑스처럼 혁명적 변혁보다도 우수하다는 논지의 글을 썼다. 그 글이 유명한 [프랑스혁명에 관한 고찰]이었다. 여기서 버크는 보수주의(Conservatism)라는 정치사상을 창조해 냈다. 버크의 보수주의는 결코 변화를 거부하는 사상이 아니다. 한 사회의 문명은 자신의 경험과 타인의 경험이 결합해서 만들어낸 전통적 도의와 관습의 힘으로 완성되기에 그것을 지키고 새로운 가치가 추가되면서 발전해 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즉, 사회는 점진적인 변화 속에서 발전해 온다는 주장이었다. 그것이 보수주의였다. 버크는 프랑스혁명이 전통을 파괴하여 사회를 피폐화시킬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프랑스대혁명을 공포정치로 몰고 갔던 로페스 피에르와 위기의 프랑스를 구한 나폴레옹의 독재는 분명 부정적인 결과였지만 혁명을 통한 주권재민의 민주주의 완성은 성공이었기 때문이다. 보수주의는 이후 전 세계 정치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영국의 정치는 점진적 개혁을 상징하는 페비안니즘이 자리를 잡았고, 페비안니즘은 로마와 카르타고의 포에니전쟁에서 로마의 사령관이었던 파비우스 장군에서 유래했다. 파비우스는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이 장장 16년을 로마에 들어와 괴롭히고 있을 때 끈질긴 지구전으로 결국은 한니발 부대를 무찌른 로마의 장군이었다. 이처럼 점진적인 승리 또는 변화를 바라는 주의가 페비안니즘이고 영국 정치의 기본이 되었다. 다른 국가들도 비슷하게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이 등장해 급격한 변화보다는 완만한 개혁과 변화를 지향했다. 이들 보수주의 정당의 특징은 전통적 가치의 옹호와 대외적으로 자국 우선주의였다. 철저한 민족주의에 입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오늘 대부분 국가가 취하는 국익 우선주의는 전적으로 보수주의의 영향이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이 대외문제에 관해서는 한결같이 자국 우선주의인 것처럼 보수를 표방하는 모든 나라의 공통된 인식이고 결론이다. 우리나라도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정당도, 언론도, 시민단체도, 보수 국민도 있다. 특히 분단의 극심한 이분법 하에서 더욱 노골적이었다. 이들은 타국처럼 전통과 민족을 중시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 상황을 보면 금방 거짓말임이 드러난다. 국익을 주장하지만 대한민국의 국익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국가를 더 배려하고, 그들의 마음을 걱정한다. 연일 친일적 발언을 경쟁하고, 국내 투자보다는 미국 투자에 열을 올린다. 일본이 군사 대국화를 지향해도 눈 감고 있는듯 하더니 급기야 일본군(자위대)의 국내 진출이 국회의 허가사항이 아니라고까지 한다. 외교에 있어서는 오로지 미일외교 외에는 없는 듯해도 보수를 자랑하는 언론은 이를 지적하기보다는 오히려 응원하고 있다. 보수를 표방해서 이익을 얻은 위장 시민단체는 이런 행위들에 무조건적인 찬양을 하고, 일부 생각 없는 국민은 무차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지식인 세계에서도 보수주의를 앞세우며 세상을 곡학아세하는 지식 판매꾼들만이 출세길을 열어주고 있다. 세상에 이런 보수주의는 없다. 이들에게는 전통적 가치는 고사하고 역사, 민족주의, 민족의식, 국토 존중의 정신마저도 의심스럽다. 그런데도 그들이 한결같이 자신들은 보수란다. 보수의 의미도 모르면서 보수를 참칭한다. 안타까운 것은 아무런 대가도 없이 무조건 지지하는 진짜 보수를 사랑하는 국민이다. 더는 속지 말아야 한다. 보수주의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 우리 역사를 통털어 가장 진보적인 사상과 정신은 단연코 동학이었다. 동학보다 더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사상은 일찍이 없었다. 엄혹한 신분제 사회에서 모두가 하늘을 모신 존재이므로 만민은 평등하다는 자각을 일깨워준 동학은 이후 눈부신 업적을 쌓아갔다. 130년 전의 동학혁명은 그 절정이었을 것이다. 잘못된 나라를 바로잡아 백성을 안심시키고자 했던 그들이 어쩌면 에드먼드 버크가 설파한 진정한 보수주의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동학혁명은 분명 구체제를 전복시키는 혁명적 내용을 담고 있지만 기존의 왕조체제를 어느 정도 인정하는 구상을 하고 있었으며 외적의 침략에는 단연코 한 치의 땅도 내어줄 수 없다는 척왜양창의를 외쳤다. 그러니까 가장 진보적 이론이면서도 진정한 보수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동학사상의 위대함은 단순히 진보와 보수의 이념을 담을 수 없기에 그 가치가 끝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오늘 우리는 보수를 참칭하는 엉터리 보수주의를 어떻게 바라다보아야 하는가이다.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정권에 동학의 후예답게 단호히 나설 것인가 아니면 가짜 보수에 동조할 것인가 선택은 천도교인들에 달려 있다. 분명한 사실은 1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권은 짧고 국민은 영원하다는 것이다. 년암 임형진(동서울교구, 경희대 교수)
-
포덕 165년 9월 29일 천도교중앙대교당 시일설교설교 : 정성·공경·믿음·법(공암 박돈서 공주교구장)
-
우원식 국회의장, 홍범도 장군 기념공원 방문, 대학 강연 등 보훈외교우원식 국회의장은 10일(현지시각)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州를 방문하여 홍범도 장군 기념공원에 헌화하고, 크즐오르다 국립대에서 <홍범도 장군과 카자흐스탄의 미래>를 주제로 강연하는 등 보훈외교에 박차를 가했다. 우 의장은 먼저 홍범도 장군 묘역 기념공원을 찾아 헌화했다. 기념공원은 홍범도 장군 묘역이 있었던 곳으로 2021년 유해 봉환 이후 국가보훈부의 지원을 통해 기념공원과 전시관이 조성된 바 있다. 우 의장은 이어 크즐오르다 국립대를 방문하여 베이비트쿨 카리모바 총장과 면담하고 현지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에 나섰다. 우 의장은 홍범도 장군 유해봉환 후속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크즐오르다 대학 지능정보대학 신설 등의 성과를 인정받아 이 대학의 명예교수 학위를 받은 바 있다. 강연에서 우 의장은 “홍 장군이 돌아가신 지 78년 만에 선진국이 된 조국의 품에 안길 때, 우리 국민들은 ‘이게 진짜 제대로 된 나라다!’라는 감동을 느꼈다”며 유해봉환 후속사업으로 고려극장 개선사업, 홍 장군 기념공원 조성, 전북-크즐오르다 농업기술 교류 사업 등을 강조했다. 우 의장은 강연 도중 노벨문학상 수상소식이 알려진 한강 작가를 카자흐스탄 학생들에게 소개하면서 “K-팝과 드라마뿐 아니라 한국문학에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우 의장은 강연을 마치면서 홍범도 장군이 연결고리가 되어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한-카자흐스탄 간 에너지·인프라·공급망 분야에서의 활발한 협력, ICT·환경·인적 교류·자동차 분야 협력 가속화 등을 언급하면서 “앞으로도 대한민국 국회의장으로서 우리 기업들이 참여해 양국의 경제발전과 새로운 미래 먹거리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우 의장은 크즐오르다 고려인 대표 초청 만찬간담회도 개최했다. 만찬간담회에서 우 의장은 “척박한 땅이었던 크즐오르다를 카자흐스탄 쌀 생산의 90%를 담당하는 지역으로 변모시킨 것은 고려인들의 개척정신”이라며 “역경에 굴복하지 않고 미래를 열어간 고려인들이 한-카자흐스탄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개척자로서도 소중한 역할을 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고려인 원로 김 례프 선생이 홍범도 장군 묘비를 홍범도 장군기념사업회에 기증하기도 했다. 이는 홍 장군 묘비 원본으로, 김 례프 선생이 30여년간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가 홍범도 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역임한 우 의장의 카자흐스탄 방문을 맞아 기증의 뜻을 밝힌 것이다. * 홍범도 장군은 1943년 10월 카자흐스탄에서 사망했고, 당시 임시 묘지를 만들었다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크즐오르다 중앙공동묘지에 이장되었음. 그런데 이 묘지가 무너지는 문제가 생겨 1955년경 묘를 단장했는데, 김 례프 선생이 기증한 묘비가 이때 세운 것임. 1982년 이 묘가 이장되면서 1955년경 세웠던 묘비의 앞부분을 김 례프 선생이 장기간 보관했다가 이번에 기증한 것임. 우원식 의장은 “그동안 사진으로만 존재를 알고 있었고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김 례프 선생께서 이 묘비를 조국에 안겨주니 너무나 감격스럽고 가슴이 떨린다”면서 거듭 감사의 뜻을 표했다. 이번 순방에는 더불어민주당 김정호의원·송옥주의원, 조오섭 의장비서실장, 박태서 공보수석비서관, 조경숙 메시지수석비서관, 정운진 외교특임대사, 구현우 국제국장 등이 함께 했다.
-
청명한 가을날, 광화문 앞 ‘의정부지’에서 봉산탈춤 한마당 열린다서울시는 오는 10월 13일 일요일 오후 4시부터 광화문 앞 ‘의정부지 역사유적광장’에서 국가무형문화유산 ‘봉산탈춤’ 공연을 개최한다. 이번 행사는 서울시와 (사)국가무형유산 봉산탈춤보존회가 협력하여 마련한 행사로 청명한 가을날, 역사적 공간인 의정부지 역사유적광장에서 찬란한 우리의 무형유산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이날 행사에서는 봉산탈춤보존회 회원 20명이 장고, 피리, 대금, 해금 등 전통 국악기 소리에 맞춰 탈춤을 선보인다. 관객의 안녕과 복을 비는 ‘사상좌춤’을 시작으로 흥에 겨운 춤 자락을 선보이는 ‘팔목중춤’과 ‘사당춤’을 춘다. 마지막으로는 공연의 백미인 ‘사자춤’을 시민들과 함께 즐기며 봉산탈춤의 진수를 선사할 예정이다. 봉산탈춤은 황해도 봉산군에 전승되던 탈춤으로 202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한국의 탈춤’으로 등재되었다. 전국 18개의 탈춤 중에서도 가장 활기찬 동작이 돋보이며 재치 있는 재담과 함께하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탈춤으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 가수 방탄소년단(BTS), 이효리 등이 봉산탈춤을 활용한 케이팝(K-POP) 공연을 선보여 해외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한편, 서울시는 이번 봉산탈춤 공연을 시작으로 ‘의정부지 역사유적광장’을 다채로운 역사문화행사가 연중 끊이지 않는 문화공간으로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조선시대 최고관청인 ‘의정부지’의 역사성을 살려 시민들이 도심 속에서 역사의 숨결을 가까이서 체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표다. 의정부지 역사유적광장은 경복궁 광화문 앞 조선시대 최고관청인 ‘의정부’가 자리 잡았던 자리를 역사와 휴식이 함께하는 광장으로 조성한 공간이다. ▴의정부 건물 5동(정본당, 협선당, 석획당, 내행랑, 정자)과 ▴기타 주요시설(연지, 우물)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2020년 국가 지정유산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김건태 서울시문화유산활용과장은 “의정부지 역사유적광장은 조선시대의 역사와 현대 서울의 문화가 공존하는 특별한 공간”이라며 “이번 봉산탈춤을 시작으로 앞으로 다양한 전통문화 행사를 지속적으로 개최하여 의정부지 역사유적광장이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문화명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용호성 문체부 제 1차관, 교령사 방문용호성 문체부 제 1차관이 9월 20일 교령사를 예방하였다. 윤석산 교령은, "올해가 수운 최제우 대신사 출세 200년이다. 10월 28일 기념식에 윤석열 대통령과 유인촌 문체부 장관을 초대하고자 한다. 바쁘시더라도 꼭 참석 하셔서 자리를 빛내 주시기 바란다." 라고 말했다. 이어 윤교령은 김구 선생이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마치고 귀국하여 천도교 대교당을 방문하여 말하길, “천도교 대교당은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산실이다. 천도교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라고 언급 하였다. 3.1절 기념식을 유관순 기념관에서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편파적인 것이다. 3.1독립운동은 전국의 각계 각층의 인사가 참여한 것이다. 유관순 열사 한분 만이 한 것이 아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기념식을 하여야 한다고 말하였다. 윤석산 교령은 이어 "전북 정읍에 위치하고 있는 동학혁명기념재단 이사진에 천도교 인사가 한명도 없다. 동학혁명 당시, 관군측 증언에 따르면, 동학군은 항시 종지같은 것을 지니고 다녔으며, 개구리 울음소리 같은 소리를 계속 내었다고 한다. 종지는 청수기를 의미하며, 개구리 울음 소리는 주문을 외우고 다녔음을 의미한다. 동학혁명기념재단 이사진에 천도교 인사를 꼭 포함시켜 주시기 바란다."라고 피력하였다. 이에 대해 용 차관은 "말씀 잘들었습니다. 앞으로 행정을 펴나가는데 있어서 교령님 말씀이 적극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한편 이날 예방에는 문체부 이용욱 종무2실 과장, 최지희 사무관이 참석하였고, 우리 교단에서는, 이범창 종무원장, 이미애 교화관장, 정갑선 교무관장, 최인경 사회문화관장이 배석하였다.
-
포덕 165년 9월 15일 천도교중앙대교당 시일설교설교 : 모심과 돌봄(오암 박길수)
-
2024년 겨레얼살리기 화통한(和統韓) 대축제윤석산 교령은 지난 3일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린 '2024년 겨레얼살리기 화통한(和統韓) 대축제'에 참석하여 축사를 통해 "개천절을 맞아 학생들의 토론과 백일장을 통해 겨레얼을 높이는 의미 있는 행사에 함께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우리의 겨레얼에는 갈등과 전쟁이 끊이지 않는 이 현대사회를 구할 수 있는 상생과 조화의 정신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것을 살리는 것이 곧 인류를 살리는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천도교에서도 이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 큰 행사를 마련하신 모든 분들께 축하드립니다"라고 밝혔다. 천도교청년회는 이번 행사에 '3·1독립운동 발상지 입체블럭' 만들기 체험부스를 운영하였으며 천도교 샘 합창단의 공연으로 행사의 의미를 더했다. 사단법인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가 주최한 이번 행사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종로구가 후원하였으며 '2024년 겨레얼살리기 화통한 대축제'는 한류 열풍의 흐름과 함께 세계 문화의 용광로가 된 대한민국의 생명력인 '겨레 얼'을 알리고 지키기 위해 노력한 올해의 주인공들을 기념하고 축하하기 위한 자리로, 국민 누구나 함께 전통문화와 정신을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화합의 장이다. 이번 행사는 2024년 겨레얼살리기 토론 백일장대회 시상식이 진행되고, '소원 등 만들기', '태극기 아트' 등 체험 부스, 상생 동행 플리마켓이 꾸려지며, 한국민족종교협의회 소속 교단의 공연, 국악팀과 인기 가수의 축하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펼쳐졌다.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한재우 사무총장은 "대한민국의 젊은 인재들이 음악, 연극, 무용 등 다양한 문화예술을 발전시켜 나가는 장소의 중심인 마로니에공원에서 뜻깊은 행사를 개최할 수 있어서 매우 기쁘다"며 "겨레 얼을 살리기 위한 ‘2024년 화통한 대축제’가 우리의 유구한 정신문화와 민족혼이 화합하여 '세계얼'이 되고 '인류 얼'이 되는 마중물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많은 분의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는 지난 2003년 한양원 회장(한국민족종교협의회)이 설립한 비영리 공익단체로 국내는 물론 미국, 독일, 중국 등 세계에 28개 지부가 설치되어 한류(韓流)의 정신적 '얼 살리기'에 매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