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목록
-
국회의원회관서 동학농민혁명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념 특별전시 열려윤석산 교령은 지난 8월 1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동학농민혁명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념 특별전시 개막식에 참석하여 "저도 동학혁명 기록물 유네스코 등재 위원회에서 위원으로 참여하여 심의를 하였는데, 국민의 권익을 대변하는 국회의원회관에서 등재 기념 특별 전시회를 하게되어 매우 의미있고 뜻깊은 행사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 행사가 대한민국을 넘어 전세계 사람들에게 동학의 사상과 동학혁명의 숭고한 정신을 널리 알리고 선양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전시는 202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을 소개하는 특별전시로 오는 16일까지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과 전북자치도, 윤준병 의원실이 공동 주최하는 특별 전시로서 ‘100년을 숨겨온 기록, 세계의 기억이 되다’를 주제로 세계기록유산 등재 과정과 동학농민혁명 명칭 변천사 등을 소개한다.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은 지난해 5월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돼 세계에 영향력을 미친 인류의 기록으로 인정받았으며, 대한민국의 18번째 세계기록 유산이 됐다. 이번 전시에서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군의 편지인 ‘한달문 편지’와 동학농민혁명의 평등, 평화, 인권의 정신을 기리는 각종 영상 기록물, 예술작품 등이 전시된다. 지난 12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개막식에는 윤석산 교령을 비롯하여 신순철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 용호성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 정동영 의원, 김윤덕 의원, 이원택 의원, 윤준병 의원 등이 참석했다.
-
8월 14일, 제161주년 지일기념식 봉행포덕 165(2024)년 8월 14일(수) 제 161주년 지일기념일을 맞이하여 기념식이 서울 중앙대교당 및 전국교구에서 일제히 봉행한다. 서울 중앙대교당에서 열리는 지일기념식은 현암 윤석산교령을 비롯하여 내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봉행한다. 오전 11시 기념식은 인화당 이미애교화관장이 집례를 맡아 진행하며 ▲기념사 ▲천덕송 ▲해월신사법설_守心正氣(수심정기)▲해월신사 약력 등의 순서로 진행한다. 또한 기념식에 이어서 천도교연합합창단 [샘], 서울교구합창단 [삼경], 역사음악연구소 [어린이역사음악합창단]의 문화공연이 있을 예정이다. 이날은 해월신사(海月神師, 최시형)께서 천도교 제1세 교조(敎祖)이신 수운대신사(水雲大神師, 최제우)로부터 도통(道統)을 이어받아 천도교 제2세 교조가 되신지 161주년이 되는 날이다. 천도교중앙총부는 지일기념일을 앞두고 "기쁜 날을 맞아 다함께 신사의 삶과 수행에서 길어 올린 귀한 가르침을 몸으로 체득 체행하고, 이웃에게 실천하여 더불어 살아가는 한울세상을 이루어 내길 심고한다"고 밝혔다. 한편 천도교의 5대 기념일은 다음과 같다. 천일기념일 : 매년 4월 5일 수운대신사께서 한울님으로부터 무극대도인 천도를 받아 동학을 창명한 날을 기념함 지일기념일 : 매년 8월 14일 해월신사께서 수운대신사로부터 도통을 전수받은 날을 기념함 인일기념일 : 매년 12월 24일 의암성사께서 해월신사로부터 도통을 전수받은 날을 기념함 도일기념일 : 매년 1월 18일 춘암상사께서 의암성사로부터 도통을 전수받은 날을 기념함 현도기념일 : 매년 12월 1일 의암성사께서 동학을 천도교로 세상에 선포한 날을 기념함
-
신나는 어린이 시일학교어린이 · 청소년 시일학교를 더 뜻깊게 보내는 방법은 없을까? 서울교구 어린이 청소년 시일학교가 다양한 체험활동과 함께하고 있어 큰 화제를 불러모으고 있다. 서울교구 어린이 청소년 시일식은 매주 일요일 11시 서울교구 성화실에서 이뤄지고 있다. 30분 정도는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시일식을 진행하며, 이후 30분 정도는 시일학교 활동을 하고 있다. 주로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구체적인 프로그램은 에어로켓만들기, 클레이아트, 보드게임, 아이스크림만들기, 물놀이, 영화관람 등으로 이어진다. 서울교구 관계자는 어린이 시일식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시일날은 즐거운 날"이라는 인식을 담아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밝히며 "아이들이 한울님이 만드신 세상에서 꽃처럼 환하게 피어나길 바라며 시일학교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많은 어린이, 청소년들의 관심과 참여를 기대한다.
-
수운 최제우 대신사 출세 200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도첩수여8월 9일 오후 3시 수운회관 907호에서 천도교 중앙총부 윤석산 교령은 ‘수운 최제우 대신사 2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의 분과별 위원장들에게 도첩을 수여하였다. 도첩수여식은 정갑선 교무관장의 집례로 청수봉전, 심고, 교령 인사말, 도첩수여, 사업설명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윤교령은 인사말에서 “멀리 부산, 경주에서도 오시고, 바쁘신 와중에도 참석해 주신 위원들게 감사드린다. 그간에 위원 확정에 어려운 점이 있었다. 여러분들이 중심이 돼서 200년의 행사를 잘 이끌어 주기 바란다.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찾아내고, 경향각지에서 모두 대신사 출세 200년의 기념행사가 잘 치룰 수 있기를 기원한다.”라고 당부하였다.
-
대한민국 선수단, ‘2024 파리패럴림픽’ 선전 결의 다져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유인촌 장관은 8월 12일(월) 오후 2시, 올림픽파크텔 올림피아홀에서 열리는 ‘2024 파리하계패럴림픽(이하 파리패럴림픽) 대한민국 선수단 결단식’에 참석해 선수단을 격려하였다. 문체부와 대한장애인체육회(이하 장애인체육회)가 함께 개최하는 결단식에서는 선수단과 종목단체, 시도 체육회 등 2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선수단 훈련 영상 상영, 장애인체육회 정진완 회장의 개식사, 선수단 소개, 배동현 선수단장의 출정사, 단기 수여, 축하 공연 등을 진행하였다. 유인촌 장관은 ‘파리패럴림픽’에 참가하는 선수와 지도자 전원 각자에게 보내는 격려 편지를 준비해 선수단 대표인 탁구 김영건 선수와 사이클 이도연 선수에게 전달하고 선수단의 활약을 응원했다. 8월 28일부터 9월 8일까지 열리는 ‘파리패럴림픽(제17회)’에는 182개국 선수단 4,400여 명(22종목 549개 메달 이벤트)이 참가한다. 우리나라는 17개 종목 선수단 총 177명(선수 83명, 지도자·임원 94명)을 파견해 대한민국 장애인체육의 저력을 세계에 알릴 예정이다. 문체부와 장애인체육회는 대회 개회에 앞서 8월 14일부터 26일까지 파리에서 사전 훈련캠프를 운영하며 선수단의 적응을 지원한다. 최적화된 한식 식단도 마련해 사전 훈련캠프 때부터 폐회식까지 제공할 계획이다. 또한 우리 선수들이 무더위와 심한 일교차에 대비해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의·과학적으로 지원한다. 아울러, ‘파라 팀 코리아하우스’를 운영(8. 28.~9. 6.)해 한국 장애인스포츠 정책을 알리고 장애인스포츠 확장현실(XR) 체험, 선수단 유니폼·의복 체험, 한국 전통 놀이 체험, ‘열린 관광’ 홍보 등 케이-콘텐츠를 적극 소개한다. 유인촌 장관은 “평생 꿈꿔온 무대 위에 하나의 발자국, 하나의 땀방울을 남기고 오는 것. 2024 파리패럴림픽, 이번 무대의 주인공은 바로 선수단 여러분”이라며 “찬란히 빛날 영광의 순간을 온 국민과 함께 응원하겠다. 건강히 다녀오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
9개국 청년 35명, 전 세계에 대한민국 바로 알린다문화체육관광부(장관 유인촌, 이하 문체부)는 8월 13일(화) 오후 2시, 코시스센터(한국프레스센터 10층)에서 ‘제17기 대한민국 바로알림단(이하 바로알림단)’ 발대식을 개최한다. ‘바로알림단’은 국내외 청년들이 해외 언론매체, 누리집 등 해외에서 유통되는 한국 관련 정보에서 오류를 찾아내고 바로 잡으며 전 세계에 한국을 바로 알리는 홍보단(서포터스)이다. 2013년 제1기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한국에 대한 이해와 함께 수준 높은 외국어 실력을 갖춘 국내외 청년 총 635명이 단원으로 활동해 왔다. 제16기 단원, 한국 관련 정보 오류 총 242건 발굴해 신고 올해부터는 인력을 확대해 연간 2회 단원을 선발함에 따라 지난 3월에 제16기 단원을 선발한 바 있다. 제16기 단원들은 태권도와 일본의 무술인 가라테의 혼동,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최초로 금속활자 인쇄술을 발명했다는 설명 등 해외에서 발생한 한국 관련 정보 오류 총 242건을 발굴해 신고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프랑스와 영국, 인도네시아 등 세계 각국에서 문체부가 운영하는 한국바로알림서비스(www.factsaboutkorea.go.kr)*를 알리고 한지·한옥 등 한국문화에 대한 전문 교육을 통해 쌓은 지식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한국을 홍보했다. * 내외국인이 한국 관련 오류를 신고할 수 있는 온라인 서비스 이력도, 거주지도 다양한 9개국 청년 35명, 해외 한국 관련 정보 조사해 올바른 정보 확산 주도 올해 12월까지 활동하는 제17기 단원으로는 미국, 스페인, 프랑스, 인도네시아 등 9개국에 거주하는 한국인과 외국인 총 35명을 선발했다. 이들은 교환학생, 한국어 강사, 통·번역가 등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 경험과 수준 높은 외국어 실력을 갖추고 있어 세계 각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올해는 ‘위키피디아’ 등 세계적인 온라인 사전 등에서의 올바른 정보 확산에 주안점을 두고 한국에 대한 해외 인식과 시각, 기술된 정보의 정확성과 보완점 등을 조사해 한국과 관련된 다양하고 올바른 정보를 알리는 데 참여한다. ▴제17기 신규 단원 나이지리아 국적의 무이잿(Muizat Ayoola Abioye, 18세) 씨는 “한국의 문화와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 데 힘써 진취적인 한국문화 홍보대사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제16기에 이어 제17기 단원으로 선발된 한국 국적의 시지원(20세) 씨는 “바로알림단이 대한민국에 대한 자긍심을 나타내는 의미 있는 역할임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책임감을 갖고 활동에 임하겠다.”라고 말했다. 바로알림단 단장을 맡은 문체부 최보근 국제문화홍보정책실장은 ????지난 12년간 바로알림단 단원 635명이 한국에 대한 잘못된 정보 1만 1천여 건을 찾아내는 성과를 냈다.”라며 “문체부는 한국을 국제사회에 제대로 알리려는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바로알림단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겠다.”라고 밝혔다.
-
부산 동학의 힘, 힘차게 달려온 1년창립 1주년을 맞이한 동학농민혁명 부산기념사업회의 허채봉 대표를 만났다. 허채봉 대표는 오랫동안 동학을 기반으로 활동해 왔으며, 동학을 주제로 학위과정을 마친 연구자이기도 하다. 열정적인 활동을 이어온 허채봉 대표에게 이 시대 동학, 천도교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동학의 가르침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허채봉 대표를 만나보자 동학농민혁명 부산기념사업회 창립1주년을 맞이하셨습니다. 기념사업회를 어떻게 창립하게 되었는지 그 계기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제가 2022년 2월에 동학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는데 그 논문이 2023년 1월에 정읍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아카이브에 등재 되면서 동학 신진연구자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어요. 그때 우리 천도교단 활동과는 조금 결이 다른 동학을 주제로 활동하시는 분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중에서도 2021년부터 동학 서훈 운동을 했던 분들, 동학혁명 유족회, 그리고 전국의 기념사업회 분들을 만나게 되면서 제가 활동하는 부산에도 동학 기념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가 작년 6월이었고 동학 신진연구자 모임을 한 이후 7월 8일에 기념사업회를 창립한 것입니다. 그 흐름에 이어 전국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회 전국 워크샵이 열리기도 했고요. 그렇게 일사천리로 이뤄졌습니다. 첫 번째로 연구자로서 논문을 쓴 게 계기가 됐을 거고 동학 신진연구자 워크숍에서 다양한 분들을 가면서 활동의 폭이 넓어진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이 과정들에는 굉장히 깊은 고민과 또 오랜 성찰이 있었을 것 같아요. 제가 동학을 하기 전에, 오랫동안 택견이라는 무예를 했어요. 택견은 우리 민족 무예로서 국가 중요 무형문화재 76호로 지정돼 있고, 2015년도에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재로 등록이 되었습니다. 세계 인류 무형의 유산이면서 수련종목인 택견을 하면서 새롭게 현대의 스포츠로 계승하는 일을 해왔고, 그런 과정들을 한 30년 정도 하다보니 동학을 알게 되고부터는 자연스럽게 내가 무엇을 할 건지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모색해왔습니다. 전국을 다니며 동학의 역사를 찾고, 알아가는 과정이 삶의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동학을 접하게 된 최초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천도교에 입교하게 된 계기도 궁금합니다. 2016년도 가을에 녹색당 농업특별위원회의 농업 먹거리 활동을 했는데 흔히 우리가 녹색 농부라고 얘기해요. 이분들이 저력이 있는 사람이 많아요. 어느 날 녹색농부 중 한 선생님께 여쭸어요. 혹시 종교가 있으시냐고요. 그냥 묻고 싶었어요. 그분이 천도교라는 거예요. 내가 다시 물었어요. 천도교가 뭔가요? 천리교인가요? 천리교는 일본 종교잖아요. 그게 아니래요. 동학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깜짝 놀랐어요. 동학이면 1894년 동학농민혁명을 얘기하는 거 아니냐고요. 그랬더니 맞대요. 그래서 내가, 그러면 동학농민혁명이 종교란 말이에요? 그렇게 또 물었어요. 그게 종교였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게 지금까지도 이어진다는 거예요. 나는 민족무예 택견의 지도자로서 몇십 년을 살았는데, 동학농민혁명이 종교였다는 것을 몰랐어요. 뒷통수를 딱 맞는 느낌이었어요. 너무 충격이었어요. 동학농민혁명이 그 순간에 있었던 이벤트나 사건이 아니었고 계속 어떤 흐름 속에서 일어난 건가, 그러면 왜 나는 그런 걸 몰랐지? 너무 충격을 받아서 한 며칠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며칠 고민을 하다가 천도교중앙총부에 전화를 했어요. 입교 같은 걸 할 수 있냐고요. 전교인을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지도 물었어요. 나는 천도교 안에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거든요. 전교인을 선택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 선생님한테 가서 그랬어요. 천도교에 입교를 하겠다고요. 선생님, 전교인이 되어 주세요. 이렇게 얘기를 했죠. 그때 목암 전희식 선생님이 책 <소농은 혁명이다> 북콘서트를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 천도교중앙대교당 이라는 곳을 가 봤지요. 그날이 2017년 포덕 158년 4월 9일이었는데, 4월 5일 천일기념일이 있던 주의 시일, 4월 9일이었습니다. 그날 입교를 하게 된 거예요. 그때 입교를 하신 거군요. 그럼 그 전에는 천도교중앙대교당을 전혀 모르셨나봐요. 와보시니 어떻던가요? 압도적인 어떤 기운이 느껴지시던가요? 첫 느낌이 예수상이나 십자가, 부처상과 같은 우상이 없고 궁을기가 보였어요. 대교당 건물이 굉장히 아름다웠고요. 제가 20대때 길 건너 원서동에 살았거든요. 그런데 천도교중앙대교당을 몰랐단 말이에요. 처음 대교당에서의 모든 느낌이 다 좋았어요. 청수봉전을 보며, 여성이 청수를 봉전 해야 그 의식이 시작이 된다는 게 좀 신기했고 우상이 없는 것도, 성직자 없이 일반 교인들이 돌아가면서 시일을 모시는 것도 참 놀라웠어요. 고정관념을 깨는 종교라는 생각이 들었고 신선했어요. 입교를 한 이후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처음 대교당에서 전희식 선생님의 북 콘서트를 보러 갔는데, 일주일 뒤에 전주에서 또 북콘서트를 하신다고 하더군요. 전주 한옥마을 안에 있는 동학혁명기념관에서요. 그 말씀을 듣는데 전주 동학혁명기념관에 너무너무 가고 싶었어요. 그리고 거기서 당시 임형진 종학대학원장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해부터 종학대학원 전주 분원과 부산 분원이 만들어질거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부산 분원 개원소식을 기다렸고, 여러 우여곡절 끝에 부산에 종학대학원 부산분원이 열렸습니다. 거기서 본격적으로 천도교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열심히 활동하시는 교인분들 한분 한분이 사회적으로 알려지고 사회 곳곳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이 시대 진정한 종교의 역할이 아닌가 싶습니다. 동학농민혁명 부산기념사업회가 창립 후 1년 동안 바쁜 걸음으로 달려오셨습니다. 기억에 남는 일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부산은 알다시피 동학의 유적지가 없잖아요. 기념사업회를 만들어 놓고 보니까 갈 데가 없더군요. 창립을 했는데 기념사업회에서 무엇부터 해야 할지도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창립하자마자 기념재단에서 동학농민혁명 편람을 보내왔어요. 전국에 있는 동학 유적지를 다 모아놓은 거였어요. 경상도권 전라도권 경기권 충청권 이런 게 전국에 있는 권역별로 쭉 있는데 등급이 A, B, C, D 이렇게 나눠져 있는데 부산에 딱 두 곳이 있는 거예요. 그것도 B급이더라고요. 부산성에 1893년에 "척왜양창"의 깃발이 걸려 있었다는 기록이 있어요. 그때는 천도교인이 부산에 없었던 것 같은데 그게 어떻게 붙어 있는지 참 신기하다 이런 식으로 멘트가 되어 있고 그거의 출처는 없는 거예요. 그리고 또 두 번째는 일본군 토벌대가 주둔을 했던 곳인데, 그곳이 재단의 자료에서는 '40계단'이라고 나오는데 중앙동의 40계단은 유명한 곳이에요. 그곳은 6. 25 동란 때 피란민들이 살었던 곳이에요. 그러니까 토벌군들이 있었던 곳은 부산 이사청, 그리고 국립강제동원역사관에 있는 나인협 흉상을 세 번째 유적지로 해서 세 군데가 생긴 거예요. 그게 너무 극적으로 느껴졌어요. 재단에 너무 감사했어요. 내 논문을 아카이브에 등재해준 것도 감사했지만 부산 지역에 동학유적지를 밝혀준 것이 반가웠거든요. 그래서 내가 우리 대학원에 자랑도 했어요. 동학농민혁명재단 아카이브에 논문 등재됐다고요. 축하도 많이 받았죠. 재단에서 보내왔던 동학농민혁명 편람이 너무너무 큰 도움이 됐지요. 동학의 불모지 부산지역에 기념사업회를 창립하여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아서 참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혼자서는 어려운 일이었을 것 같아요. 그렇죠. 이렇게 1년을 돌이켜보면 꽤 많은 일을 했어요. 저 혼자 한 게 아니고 도와준 분들이 참 많더군요. 감사한 일이죠. 그때그때 나타나서 함께해준 사람들이 반드시 있었어요. 지속적으로도 있는데 희한하게 또 시민들 중에도 있는 거예요. 마침 제가 올해 부산시 택견단체 부회장의 마지막 임기거든요. 올해를 끝으로 활동의 방향을 동학으로 전환하게 될 것 같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버릴 건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제가 30년 넘게 택견을 하면서 배운 것들이 또 이렇게 쓰이게 될 테니까요. 기쁜 점은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를 통해서 내가 하고 싶었던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외부에 있는 사람들과 동학혁명 서훈 운동을 하면서 천도교를 알려나가고 천도교의 뿌리가 결국 동학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천도교에 대해 잘 몰랐던 사람들이 이제 귀를 열고 듣기 시작했다는 거죠. 최근 전국 동학혁명 연대가 봉황각에서 취회를 했어요. 저녁 9시 기도식도 하고 주문 수련을 하는 시간들을 함께 하시더군요. 대교당에 가서 시일식도 같이 참여했고요. 이럴 때 천도교인들이 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더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부산이 동학의 역사나 유적에 대해서는 불모지라고 생각을 했지만 , 뚜껑을 열어보니까 유적지는 유적지대로 갇혀서 과거의 기억 운동에만 집중해서 하는데, 저는 부산이 조금 더 역동성을 가질 수 있는 민주시민교육 운동과 함께 동학과 궤를 같이 하면서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 같아서 보람이 큽니다. 기념사업회가 생기기를 기다려준 것만 같아요. 이렇게 동학에 대해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계시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나는 택견을 하면서 어떤 소명이라는 거를 느꼈거든요. 그러니까 사람은 각자의 소명이 있는데 나의 소명은 이제 오래된 전통의 부활 그러니까 Rebirth, 재탄생 이런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낡은 것의 가치를 새롭게 이끌어 내면서 오늘에 맞는 정서나 감성으로 새롭게 콘텐츠로 부활하고 생명력을 불어넣는 게 나의 소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택견을 할 때에도 시나리오를 쓰고 작품을 만들기도 했는데, 동학에 와서도 자연스럽게 그런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어요. 부산기념사업회 1년 동안 딱 한 걸음을 걸었을 뿐인데 같이 걷는 사람들이 생겼어요. 그만큼 기대가 클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 어떤 일을 좀 하고 싶은지 그것도 좀 궁금해요. 부산기념사업회를 만들면서 더 절실하게 느끼는 것은 연구소입니다. 말하자면 부산동학기념사업회를 잘하기 위해서 동학연구소가 있어야 되겠고, 궁극적인 목표는 동학혁명 서훈 국민운동이나 우리 전동연(전국동학연대)을 통해서 동학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확보를 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연결될 수 있는 것들이 굉장히 많아요. 교육적인 차원에서도 그렇고 또 전동연 하고 있는 장흥 동학 무명동학군 묘역 성역화나 이런 게 다 맞물려 있잖아요. 이러한 전 국민적인 움직임과 함께 동학이 국민적 필수 인문 과목으로 자리 잡는 것, 그게 내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운동이 되겠네요. 부산기념사업회는 부산이라는 지역을 통해서 하는 건데 이제 그런 뜻을 펼쳐나가면서 전 세계 인류의 교양 과목이 되는 게 동학의 포덕 사업이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나는 천도교를 해서 참 행복한 사람이고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회를 할래, 천도교를 할래?" 하면 난 천도교를 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나는 처음부터 범신론자였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가 우주적인 어떤 질서 속에 있는 존재라는 것이라고 어렴풋이 알 뿐이었어요. 그런데 천도교의 경전을 접하면서 내 마음속에 있었던 이야기들이 그대로 글로 적혀 있어서 참 놀라웠어요. 경전에 모든 게 다 있어요. 저는 앞으로도 더 천도교에 대해 알고 싶고 천도교의 진리를 깨닫고 싶습니다. 그리고 깨달은 바를 기념사업회 일을 하면서 펼쳐 나가고 싶습니다.
-
[칼럼] 동학기행-수운 최제우 대신사 출세 200년 동학·천도교 제1성지 용담정 순례(2)(지난 호에 이어) 2. 용담정, 그리고 와룡암과 용담서사 용담정은 동학·천도교 제1성지라 일컫는 곳이기에 용담정의 유래에 대해 교중 기록과 표영삼, 한태원 선생의 기록을 중심으로 연혁을 살펴보겠다. 근암문집(수운 대신사 부친 최옥)에 의하면, 구미산은 경주의 높은 산으로서 큰 바위가 솟아있는 것이 마치 거북이와 용이 서려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고 하였다. 근암공은 ‘구미산은 경치가 매우 좋아 일찍이 26경을 읊은 바 있는데, 구미산 밑에 있는 와룡담臥龍潭은 그중의 빼어난 모습중의 하나이다.’라고 하였다. 1778년 복령이란 승려가 와룡담臥龍潭 북쪽에 암자를 짓고 원적암圓寂庵이라 하였다. 그 후 스님들이 흩어져 암자가 폐지되었으므로 처사공處士公 종하宗夏(수운 대신사 조부)가 그 집과 전답 수백평을 사들여 이곳에서 자제분 근암공으로 하여금 학업을 닦게 하였다. 원적암은 근암공의 스승이신 기와畸窩 이상원李象遠 선생이 정자의 이름을 와룡암臥龍庵이라 새롭게 지었다. 그 후 30여년을 지난 후 집이 쇠퇴하여 허물어져, 근암공이 그 자리(와룡암)에 다섯 칸의 집을 새로 짓고, 또한 북쪽에 네 칸을 지어 용담서사龍潭書社라고 이름 하였다. 수운 대신사께서 득도 이전에 이사 왔을 당시 와룡암터 집은 허물어져 방치되었던 것을 가족과 생활하는 집으로 수리하여 기거하였다. 그런데 현재 용담정이라 부르는 건물 이름이 수운 대신사 당시 부른 이름인지 훗날 제자들에 의해 불렀는지 정확하지 않다. 용담정이란 이름의 유래를 추적해보면 다음과 같은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용담정龍潭亭이란 건물 이름은 수운 대신사께서 지은 교훈가 ‘···구미용담龜尾龍潭 일정각一亭閣에···’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지금의 용담정을 가리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운 대신사는 득도 원년(1860, 경신) 4월 5일 11시경 와룡암터 또는 용담서사터 집에서 득도하였다. 그런데 용담서사 터가 현재의 용담정 자리인지, 와룡암 터가 현재의 용담정 자리인지 정확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수운 대신사의 득도 장소인 현재의 용담정이 용담서사龍潭書社자리인지, 와룡암臥龍庵자리인지 지금으로서는 구분하기는 어렵다. 교중 동학·천도교 연구에 평생을 바치신 표영삼 선생과 윤석산 교수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다. 표영삼 선생의 의견은 수운 대신사의 득도 장소가 현재의 용담정 자리 즉 용담서사 자리가 아니고, 와룡암 자리에 무게를 둔다. 그 이유는 수운 대신사께서 용담서사 즉 학문을 공부했던 건물이 아니라, 가족과 생활했던 건물 즉 와룡암터에 근암공이 새로 집을 지었던 것을 수운 대신사가 수리하여 살던 장소라는 것이다. 이는 용담유사 여러 곳에 득도 당시 가족이 지켜보았다는 대신사의 기록에서 근거를 찾는다. 윤석산 교수의 의견은 와룡암과 용담서사 두 곳 모두 인정하고 있다. 수운 대신사의 득도 과정이 한 순간 이뤄진 것이 아니고, 수일을 경과하면서 지속되었던 것을 참고하면 가족과 생활했던 와룡암터 집과, 학문을 연구하고 경전을 쓰셨던 용담서사터 집, 두 곳에서 득도하였다는 추정이다. 그래서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두 장소인 와룡암터와 용담서사터를 모두 인정하고 있다. 이처럼 수운 대신사의 득도 장소인 역사적인 건물은 1863 12월 10일 대신사께서 관군에게 피체되어 이듬해 1864년 3월 10일 좌도난정율左道亂正律이라는‘도를 그릇되게 하고 바름을 어지럽게 하는 법률’ 즉 반역죄反逆罪로 대구 장대에서 순도殉道한 뒤, 살림집 다섯 칸인 와룡암터 집과 용담서사터 네 칸의 집은 돌보는 이가 없어 모두 무너지고 몰락되어 그 곳은 황폐한 터가 되었다. 그 후 조선왕조의 동학에 대한 가혹한 탄압에 50여년을 지나는 동안 관의 지목이 두려워 그 누구도 득도 장소이자 성지인 건물복구에 착수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4월 황해도 천도교 교역자 오응선과 교인 이계화 등이 21일 특별 기도를 마친 뒤에 한울님의 감응을 받아 경주 용담성지를 찾았으나, 건물은 흔적조차 없고 잡초만이 무성하여 비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오응선씨는 용담정자 재건을 결심하고 이계화씨와 함께 다시 백오일 기도를 단행하고, 용담정자를 착공하여 1914년 10월 15일에 준공을 하고 용담정龍潭亭이란 현판을 붙였다. 오늘날 용담정이란 건물의 이름이 탄생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후 40여년이 지내는 동안 용담정은 다시 무너지고 몰락되니 인적마저 끊기게 되었다. 현재의 용담정 복원은 천도교 부인회 주최, 천도교 창도 100년 기념사업의 하나로서, 양이제와 권태화 두 할머니가 나서서 천도교인들의 성금을 모아 다시 용담정을 중창하고 1960년 6월 30일에 많은 교인들과 함께 낙성식을 봉행하였다. 3. 와룡암터에 유적표지판 하나라도 세우자 천도교단에서 현재까지 수운 대신사 득도터인 와룡암 자리에는 복원건물은 고사하고 아무런 유적표지판도 세우지 않고 있다. 그 연유는 현재 용담정 건물과 대비되어 득도 장소에 대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에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역사는 분명 역사이다. 우리가 현실에 안주하고자 역사를 바르게 전하지 않는다면 천사天師님을 어찌 대할 수 있겠는가? 다시 말해 수운 대신사님의 제자로서 부끄러움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가 수운 최제우 대신사 출세 200년, 동학농민혁명130년이다. 천도교단은 중지를 모아 와룡암 터에 유적표지판을 세울 것을 논의해야 된다. 와룡암터는 와룡암터대로, 현재의 용담정은 용담정대로 그 역사와 가치가 있다. 지난 와룡암 역사가 사라지고 있는 마당에 무슨 유적표지판이냐고 반대의 의견들도 많을 것이다. 더 나아가 현재의 용담정 자리가 지난 원적암과 와룡암 자리였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분명 용담정 연혁을 역사에 근거하여 살펴보면 현재의 용담정 자리는 지난 용담서사 자리였다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용담서사 자리가 지난 원적암과 와룡암 자리였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용담서사 자리와 원적암과 와룡암 자리는 분명 다른 장소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끝으로 필자는 와룡암 자리에 유적표지판이 세워지지 않더라도 이렇게 글을 써서 역사에 남길 생각이다. 와룡암 터와 용담서사 터는 현재 용담정으로 대변 되지만 두 성지는 후천 5만년 길이 전해질 다시개벽 즉 주문呪文과 영부靈符는 물론 시천주侍天主·인시천人是天·사인여천事人如天으로 압축되는 동학의 진리를 수운 대신사께서 한울님께 받으셨고, 또한 대각을 이루신 곳이다. 그만큼 현재 용담정과 과거 와룡암은 세계인류역사에 길이 빛날 역사적인 장소이다. 이번 글이 ‘와룡암 터를 알리는 공개적인 두 번째 글이다.’는 것을 밝히면서 용담정 순례에 대한 글을 마친다. 4. 수운 최제우 대신사 십상도(일생을 열 개의 그림으로 묘사) <끝> 글 : 이윤영(천도교연원회 직접도훈, 동학혁명백주년기념관장) 그림 : 박홍규 작 2015년, 송암 이윤영 저술 동학이야기 ‘만고풍상겪은손 삽화’
-
수운문화제, 천도교미술인회 한마당전 개막2024 수운문화제 개막식이 8월 7일 오후 3시 경인미술관에서 열렸다. 수운 최제우 대신사 출세 200년을 기념하는 제 34회 천도교미술인회 한마당전 개막식에는 윤태원 서울교구장이 집례를 맡았으며 개식-청수봉전-심고-주문 3회 병송-내빈소개-인사말-축사-시상식-심고-테이프컷팅-기념사진촬영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윤태원 서울교구장은 집례자로서 발성심고를 하며 심고문을 통해 "한울님 스승님 감응하옵소서! 뜻깊은 수운 최제우 대신사 출세 200년을 맞이하여 개최한 2024 수운문화제 제34회 천도교 미술인회 한마당전과 제5회 인내천 서, 예 명인 모심전에 참석해주신 내외빈 여러분과 전국에서 천도문화창달에 노력하고 계신 천도교 미술인회원들과 서예 명인 모심 작가들과 미래세대인 어린이 학생 동덕들을 지도하여 참여케 해주신 교구활동에 감사드립니다. 이러한 노력에 하루속히 우리의 소원인 대도중흥과 평화통일을 이루고 한울님과 스승님의 감응으로 세상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고 만사여의하시길 심고합니다."라고 말했다. 남암 염정모 천도교미술인회 회장은 내빈소개에 이어 인사말을 통해 "수운 최제우 대신사 출세 200년 기념 포덕 165년 수운 문화제, 제34회 천도교미술인회 한마당전과 제20회 어린이학생 작품전을 축하합니다. 돌이켜보면, 천도교의 숙덕 어르신 위창 오세창 선생으로 흐르는 물이 춘곡 고희동 선생을 지나 간송 전형필 선생으로 이어져 오늘날의 간송미술관이 이렇게 태동했습니다. 또한 서울대 교수와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을 지낸 동양화가 겸 서화가인 심산 노수현 선생, 서화 수장가와 최초 전시기획자로 불렸던 우경 오봉빈 선생, 평전 발간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동훈 화백도 역시 한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우리 천도교 출신 예술가들 입니다. 이러한 어르신들의 훌륭한 정신을 이어받은 우리 천도교미술인회 한마당 전시가 어느덧 34회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어려운 여건과 상황 속에서 어느 종단에서도 이루지 못한 큰 업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이와 같은 훌륭한 전시회는 우리 종교인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예술활동은 모든 이의 참여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곧 포덕을 의미합니다. 다시 한번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느라 수고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다. 현암 윤석산 교령은 축사를 통해 "우리 교단의 대표적 예술단체인 천도교 미술인회 한마당전이 어느덧 34회째를 맞았습니다. 청년기를 기나 불혹을 바라보는 시점의 이번 미술인회전은 특히 수운 최제우 대신사님의 출세 200년을 기념하는 행사라 그 의미가 더욱 뜻깊고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이번 행사를 준비하느라 삼복더위 속에서도 수고해주신 신의당 이순종 명예회장님과 염정모 미술인회 회장님을 비롯한 모든 미술인회 회원들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말했다. 제20회 전국 어린이 학생 작품전 수상자는 9개 교구에서 29명이 참가하여 학생부는 대상 없이 중등부 특별상 2명이 선정되었으며 어린이 초등부는 대상 1명, 금상 7명, 은상 14명, 동상 6명이 선정되었으며 유치부는 은상 2명이 심사 선정되었다. 대상인 교령상은 삼천포 교구 초등학교 3학년 이진욱 어린이의 <대신사님 출세하였으니>가 선정되었다. 이어 미술인회에서 제정한 '청년착가 대상'에는 올해 다섯 번째 수상자로 서울교구의 김은진 청년작가가 수상하였다. 김은진 작가는 현재 프랑스 유학 중이며 방학 중이라 잠시 한국에 귀국하여 있어 시상식에 참석하여 청년작가 대상을 수상하였다. 마치는 심고에 이어 행사를 마치고 윤석산 교령, 이범창 종무원장, 신의당 이순종 명예회장, 박징재 여성회장, 주선원 동학농민혁명유족회장, 조민환 교수, 염정모 미술인회장, 변종제 미술인회 부회장, 청년작가 대상 김은지 작가 등 주요 내, 외빈의 테이프 커팅식이 있었다. 기념사진 촬영 후 폐신 선언으로 모든 행사가 끝나고 원중 이관수 작가의 문화공연으로 천덕송 중 <제16장 오관가>와 <그리운 금강산> 등을 하모니카와 기타연주로 청해들었다.
-
어린이 인권선언 100주년 기념 토론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