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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주년 3.1절 기념식 곳곳에서 열려우리가 만세를 부른다고 당장 독립이 되는 것은 아니오. 그러나 겨레의 가슴에 독립정신을 일깨워주어야 하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꼭 만세를 불러야 하겠소. 의암 손병희 성사께서 1919년 2월 22일 서울 우이동 봉황각에서 3.1독립운동을 앞두고 실시한 49일 특별기도가 끝나는 날 아침, 전국의 천도교지도자들에게 남긴 말로 독립기념관 손병희 어록비에도 이 말씀이 새겨져 있다. 지난 3월 1일 3.1운동 제105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가 종교계 곳곳에서 열린 가운데 3.1운동의 주역인 천도교에서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오전 11시 중앙대교당 기념식에서는 개식-국민의례-청수봉전-심고-주문3회병송-독립선언서 낭독-천덕송 합창(제17장 공락가)-기념사-삼일절노래 합창-만세삼창-심고-폐식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박상종 교령은 제105주년 3.1절 기념사를 통해 "삼일운동을 영도했던 의암 성사는 결국 서대문 감옥에서의 옥고로 말미암아 일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조국의 독립과 민족을 위해서 온몸을 바쳐 헌신했던 의암성사의 멸사봉공(滅私奉公)한 일편단심(一片丹心)에 숙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천도교인은 삼일독립운동을 거족적으로 승화시킨 의암성사의 거룩한 신념과 순국정신을 귀감으로 삼아 국가의 평화 번영과 교단중흥을 위해서 정성을 다해 헌신할 수 있도록 한울님과 스승님께 한마음으로 심고해야 하겠습니다. 삼일운동 당시 생명과 재산을 바쳐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순국 순도하신 선열들의 성령출세를 심고합니다"라고 말했다. 독립선언서는 이재선 청년회장이 낭독하였다. 3.1독립만세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끈 천도교는 3.1절을 맞아 1일 서울 종로구 중앙대교당에서 제105주년 3.1절 기념식, 3.1재현 거리행진, 탑골공원 의암 성사 동상 참례 등의 기념행사를 열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3.1독립운동의 역사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재조명의 행사를 열었다. 오전 11시 중앙대교당 기념식에서는 개식-국민의례-청수봉전-심고-주문3회병송-독립선언서 낭독-천덕송 합창(제17장 공악가)-기념사-삼일절노래 합창-만세삼창-심고-폐식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105년 전 3.1운동의 핵심 세력은 ‘종교 지도자들’이었다. 3.1운동의 기폭제가 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은 천도교(15명), 기독교(16명), 불교(2명)로 구성된 종교 대표들이다. 천도교는 3.1운동의 주역으로서 거사일을 이틀 앞두고 2월 20일부터 보성사 인쇄소에서 독립선언서를 극비리에 인쇄하였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의암성사는 거사 전날인 2월 28일 춘암 상사에게 유시문(諭示文)을 통해 차후 교회사에 대한 책임을 당부하였으며 민족대표들을 가회동 자택으로 초청하여 인사를 하면서 “금번 우리의 의거는 위로는 조선(祖先)의 신성유업(神聖遺業)을 계승하고 아래로는 자손만대의 복리를 작흥(作興)하는 민족적 위업입니다. 이 성스러운 과업은 제현(諸賢)의 충의(忠義)에 의지하여 반드시 성취될 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천도교는 3.1운동을 주도함으로써 큰 타격을 받고 의암 성사를 비롯한 교단의 지도자들 대부분이 체포 구금되었다. 3.1운동은 천도교단의 헌신으로 보국안민과 인류 보편의 가치인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고자 했던 혁명이었다. 비폭력 독립운동의 역사를 되새기는 3.1운동 105주년 기념행사에 많은 시민들이 참여했다. 천도교중앙총부는 만세운동을 재현하며 탑골공원으로 거리 행진을 했으며, 탑골공원 내 의암 손병희 성사 동상앞에서 참례식을 봉행했다. 천도교 궁을풍물패의 길놀이 공연과 함께 교인 및 일반인이 태극기와 궁을기를 들고 행진하여 탑골공원으로 향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함성소리가 눈길을 끌었으며 탑골공원에서는 의암 손병희 성사 동상 앞에서 105년 전 3월 1일처럼 문화공연과 만세 삼창 등의 행사를 이어 나가며 거룩하고 숭고한 독립정신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탑골공원 내 참례식 집례는 대학생단 성치호, 조영은이 맡았으며 역사어린이합창단, 역사여성합창단의 기념공연이 이어졌다. 한편 3·1절을 기념해 강북구 봉황각에서 강북구청주관으로 진행된 3·1절 기념식에는 천도교 의창수도원 서종환 원장이 참석하였으며 천도교 각 교구 및 지자체에서도 전국적으로 다양한 행사가 개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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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3·1운동이 아니라 3·1혁명이다올해는 3.1운동 105주년이다. 모든 언론이 3·1운동 105주년이라고 쓰고 있다. 오랫동안 사용해 화석화된 잘못된 용어이다. 105년 전 3월 1일 민족대표들은 탑골공원 인근의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을 했고 일경에 체포되어 갔다. 독립만세를 외치는 경성 거리의 민중들을 바라보며 끌려가던 그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3월 1일의 거사를 준비하는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동학혁명이 좌절된 후 혁명의 최후 지도자였던 의암 손병희는 동학을 천도교로 변경하고 1900년대 초의 민족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그는 언론과 교육, 출판 운동 등으로 민도를 높이는 개혁을 전개하다가 1913년부터 전국의 천도교 교역자 483명을 차례로 불러 특별 연성 수련을 실시하였다. 이는 전적으로 장차 국가를 위해서 쓰일 인재를 미리 양성해 놓고자 한 지도자의 혜안이었다. 세계 제1차 대전이 종결되고 민족자결의 운동이 세계적으로 유행되자 의암은 우리의 독립을 위한 시점에 이르렀음을 직감했다. 드디어 1919년 천도교는 전체 인구 1,800만 명에 300만 명의 신도 수를 가진 조선 최대의 종단이 되었다. 천도교는 일제의 압제에 대항할 충분한 인원과 조직 그리고 자금을 가지고 있었지만, 동학도들만이 참여했던 동학혁명의 실패를 누구보다도 절감했던 손병희는 거대한 민족운동을 천도교만의 단독으로 할 수는 없었다. 그에게 3.1의거는 제2의 동학혁명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국외에서의 독립선언과 의문스러운 고종황제의 죽음으로 민중의 분노가 치솟자 손병희는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그는 비밀리에 각계의 지도층에게 함께 할 것을 제의했지만 대부분 동학의 후신인 천도교를 무시하며 함께 하기를 거부했다. 그러나 개신교의 이승훈 선생과 길선주 목사 등은 이미 개신교의 독단으로 독립청원을 준비하고 있었다. 두 종단이 비밀리에 접촉했고 함께 독립선언을 하기로 합의했다. 다른 교단과 함께한다는 것이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던 시절임을 고려할 때 이들 종단 지도자들의 결단은 돋보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 당시 서울에서 활동 중이던 불교계의 큰 스님인 용성 스님과 만해가 함께 하니 비로소 종교연합으로 민족대표를 꾸릴 수 있게 되었다. 당시에 독립선언에 동참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다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이들 지도자들의 위대한 희생과 헌신적 정신이 바로 3.1의거의 출발점이었고, 그들의 고뇌 어린 결단이 있었기에 3.1의거는 추진될 수 있었다. 의거의 중심인 천도교는 과거 실패했던 동학혁명을 다시 일으킨다는 자세로 준비했다. 손병희는 최남선을 시켜 작성된 독립선언서를 자체 인쇄소인 보성사 사장 이종일에게 비밀리에 인쇄할 것을 지시했다. 인쇄 중 종로경찰서의 악질 조선인 순사에게 발각되기도 하고, 완성된 선언서를 옮기는 과정에 파출소에서 불심검문을 당하는 등 곡절 끝에 3만 5천 장의 선언서를 종교 조직을 이용해 전국에 퍼트리는 데 성공하였다. 만세 시위는 당일 오후 2시 경성 등 전국 6개 도시를 시작으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었다. 당황한 일본은 민족대표들에게 잔혹한 고문을 가하고 전국의 시위에는 강력한 무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밟으면 밟을수록 일어서는 우리 민족이었다. 특히 경기도의 시위가 가장 격렬했다. 수원 화성 지역은 장날마다 시위가 일어났으며 제암리와 고주리의 학살은 대표적인 피해 사건이 되었다. 3월부터 3달 동안에만 시위에 나선 이가 전국적으로 210만 명에 이르고 체포·투옥된 수도 4만6,948명, 부상자 5만 명 이상이었으며 사망자도 7,500명이 넘었다. 그런데 운동이란다. ‘쓰리 포인트 원 스포츠’라고 비하하기도 한다. 도대체 무슨 운동을 하다가 이렇게 많은 사람이 희생된단 말인가? 3·1운동이란 말은 언제부터 쓰이기 시작했는가. 해방 이후 헌법을 만들기 위한 위원회의 헌법전문 초안에도 분명 3·1혁명이었다. 그러나 국회로 넘어가 심의 중에 바꾸었는데 일설에는 대통령에 유력한 이승만의 온화한(?) 이미지와 혁명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며 아첨꾼들이 권했고 이승만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헌법전문에 운동으로 수록되었다고 한다. 이승만도 일제강점기 시절 내내 사용하던 3·1혁명을 버린 것이다. 실제로 임시정부를 비롯한 대부분의 독립운동 단체들은 3.1운동이 아닌 3·1혁명, 3·1대혁명이라고 했다. 임시정부의 건국강령(1941)과 대한민국 임시헌장(1944)에도 명백히 3·1혁명이라고 명명되어 있다. 지난 3·1혁명 100주년 당시 정명(正名) 운동이 일어났었다. 그러나 아직도 정명 되지 못하고 있다. 제국의 신민이 아닌 민주공화국의 국민이 된다고 선언한 것은 분명 혁명이었는데. 이제 우리부터라도 제대로 된 명칭을 사용하자. 3.1혁명이라고.◎ 글 임형진(년암, 동서울교구,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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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성당 조동원 종법사님을 만나다(1)가을 햇살이 따뜻하게 내려앉던 날이었다. 홍천에 있는 가리산수도원으로 조동원 종법사를 만나러 갔다. 조동원 종법사는 1926년 평북 구성에서 타어나 19세에 우암 김동화 선생(1987년 환원)과 혼인하면서 천도교인이 되었다. 선생의 삶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지극한 정성과 수련으로 천도교의 참진리를 깨닫게 되며 자기완성과 함께 많은 교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스승으로서 교단 발전에 기여해왔다. 가리산수도원은 1982년 8월에 작고하신 남편 김동화 선생과 함께 창설하여 현재 40년이 넘는 세월동안 천도교인이라면 한번쯤 깊은 수련의 참된 경험을 안겨준 성지로서의 기능을 해 왔다. 글쓴이가 선생의 긴 이야기를 듣기 위해 찾아간 날, 이야기를 들으며 스스로에게 더 깊은 질문을 향하게 되었다. 이날 조동원 종법사님의 말씀을 옮겨 적으며 선생이 살아오신 삶을 상상해보며 긴 호흡으로 꾹꾹 눌러 담았다. 모시고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제가 이제는 떠나기 전에 우리 후학들에게 간곡히 한 말씀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가 수도원 원장으로서, 하루에 40명, 50명, 60명까지 지도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바르게 수도를 하는 사람은 흔치 않았어요. 내가 밝아지는 것부터 원하니 그게 틀렸거든요. 내 마음부터 고쳐야 합니다. 이 마음속에 한울님이 계시거든요. 그러니까 마음을 잘 닦아서 성령과 쌍령이 돼야 해요. 스승님께서 경전으로 말씀을 다 하셨습니다. 탄도유심급을 보면 아주 구체적으로 정답까지 다 나와 있습니다. 천지부모님 편, 내수도문 편, 거기 전부 정답이 있어요. 그러니까 딴 거보다도 그 세 편은 반드시 외워야 합니다. 입으로 달달 외우는 것이 아니라 거기 정답이 나와 있어요. 그 정답을 그대로, 그대로 실천에 옮겨야 하거든요. 그걸 그렇게 가르쳐 주어야 하고 수도생은 그 정답에 따라야 하는데 제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무슨 수도를 얼마나 했다, 경전을 얼마를 봤다는 것을 내세우려고만 했지, 자기가 바뀌어야 하는데 그런 사람들이 별로 없다 이거요. 지금 우리 천도교가 쇠운이거든요. 우리 스승님께서 참 참혹스럽게 그 고생을 하시고 돌아가셨지요. 편안히 잘 가실 수 있는 능력이 다 있었어요. 그런데, 왜 그렇게 돌아가셨느냐, 앞으로의 천도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가신 거거든요. 앞으로 천도 세상이 됩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 후학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이 큰데, 경전에 정답이 다 나와 있다고 했잖아요. 남의 부모도 내 부모요, 남의 형제도 내 형제요, 남의 자식도 내 자식이요. 이런 마음으로 내 자식, 내 형제, 내 부모를 같은 머리, 같은 생각으로 대해야 남의 부모도 내 부모한테 하듯이 하거든요. 그래서 그 실천의 길을 간곡히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57세에 수도원 개원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 100살이 다 되어 가는데 책 한 권을 못 냈습니다. 제가 일자무식이에요. 저 국민학교도 못 다닌 사람입니다. 책을 한 권 못 내고 말로써, 그러나 많은 말이 필요 없고 간단히 스승님의 말씀을 배워가지고 스승님과 같이 실천에 옮겨 달라. 얼마 안 있으면 우리 천도세상 된다. 그렇게 가르쳐 왔습니다. 춘하추동 사시절이 현실이 그게 도입니다. 봄에는 씨앗 뿌리고, 심어야죠. 부지런히 하는 사람은 수월하게 할 수 있는 거고, 게으른 사람들은 못 해요. 우리가 도를 닦는다고 하면, 현실이 도지 그냥 눈으로 허깨비를 보는 거, 들리는 것을 위주로 하는 것, (지도하는 입장에서)이를 절실히 끊어주지 못한 것은 참 후회가 됩니다. 발령받은 사람은 많은데 발령받으면 도를 깨달아서 사람이 변화가 돼야 하거든요. 선생들이 잘 가르쳐야 하는 겁니다. 제가 전국에 안 다니는 데가 없이 참 부지런히 다니면서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를 하면서는 이런 이야기를 주로 했습니다. 제 어머니, 아버지께서는 다 돌아가셨지만, 돌아가셨다고 어머니, 아버지를 안 찾는 게 아닙니다. 땅은 어머니요, 하늘은 아버지요. 천지 부모님이 내 부모입니다. 그래서 심고 드릴 때, “어머니, 아버지 잘 좀 가르쳐 주세요.” 그렇게 부탁을 해요. 저는 ‘한울님’, ‘천지부모님’이라고 하지 않고 ‘어머니, 아버지라고 그럽니다. 경전에 천지 부모 편을 보세요. 천지 부모님의 부모랑 내 부모가 같다고 정답이 나와 있어요. 정답대로 내가 실천을 해서 하면 내 몸에 모신 한울님이 전부 가르쳐줘요. 천사 문답이라고 하죠. “어머니 아버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면은 정답이 나와요. 또 이것만 기다리고 하지 말고 사람이 한번 바뀌어야 하겠다. 그래서 옛날부터 입버릇, 손버릇, 몸버릇 이 세 가지만 고치면 군자 사람이 된다고 했습니다. 지금 여전히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이목구비, 사지백태, 오장 육부가 다 내 거예요. 한울님이 주신 그것만 바르게 쓰면 되는데. 내가 금덩이가 몇 개가 있다 하더라도 내게 있을 땐 내 거라고 하지만 누가 훔쳐 가면 그 사람 것이 되지, 그때부터는 내 것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내 물건을 누가 훔쳐갔을 때, 욕을 하고 미워하고 그러면 안 돼요. ‘갖다가 잘 써라’, ‘잘 쓰게 해주십사, 그 사람 죄를 주지 마소서.’ 이렇게 심고를 드려야 합니다. 훔쳐가는 걸 봤어도 못 본 척, 누구한테 들어도 못 들은 척, 내가 다 알아도 아는 척하지 말아야 해요. 그 한 가지를 내가 지키고, 마음으로 헤아릴 수 있게 해야 스승님이 가르쳐 주신 정답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가정이 없는 사람은 없잖아요. 자식은 부모님을 잘 모셔야 해요. 내가 부모님께 효도하면 그 복은 거기서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깐 결혼하면 시부모님 잘 모시고요. 일용 행사가 도지 딴 게 도가 아니다 이거야. 그러니까 일용 행사를 절실히 잘해 주십사 하는 것이 내가 떠나기 전에 후학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고, 그게 제 소원이에요. 남이야 잘하거나, 못하거나 나쁘게 말하지 말고 언제든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말하는 것은 그 안에 모셔져 있는 신령님이 가르쳐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똑바로 보고 직관을 잘해야 해요. 어떤 사람에 대해 아무 죄도 없는데 남의 말 듣고 나쁘게 말하면 안 되는 거거든요. 직관으로 봐야 해요. 가정에서도 부모는 부모의 도리, 자식은 자식의 도리를 잘 하려고 서로가 노력을 해야 해요. 그게 도지 딴 게 도가 아니에요. 그래서 24시간을 보내는 동안에 행복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야죠. <다음에서 계속> 인터뷰영상 바로가기==> https://www.youtube.com/watch?v=JPTR63nSXFo&t=1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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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천도교서울교구 故 권암 최병권 선도사 환원천도교서울교구 故권암 최병권(성신포, 향년88세) 선도사가 포덕 165년(2024년) 2월 27일(화) 숙환으로 환원하였다. 유족으로는 상주-최정규, 최창호 딸-최미영, 최경숙, 자부-이명숙, 사위-박왕현, 김재환이다. - 장례식장 : 양주 장례문화원 202호 - 주소 : 경기 양주시 평화로1357번길 8 - 전화 : 031-863-4444 - 환원기도식 : 포덕 165.2.27(화) 오후 9시 - 영결식 : 포덕 165.2.28(수) 오후 9시 - 발인 : 포덕 165.2.29(목) - 장지 : 안성 유토피아 <유족> - 상주 / 최정규, 최창호 – 딸 / 최미영, 최경숙 - 자부 / 이명숙 - 사위 / 박왕현, 김재환 <연락처> 최창호 / 010-4311-1506 <마음전할 곳> 신한은행 / 110123588928 / 예금주 : 최창호 <온라인부고장> https://funein.com/b/f/1551983/118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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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여성회 제2차 중앙위원회 열려천도교여성회본부는 지난 2월 26일(월) 오전 11시 수운회관 807호에서 전국의 중앙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여성회본부 포덕 164년도 사업결과 및 결산을 보고하고 포덕 165년도 사업계획 및 예산안을 보고하는 회의를 개최하였다. 이번 중앙위원회에서는 『천도교여성회 100년사』의 출판 봉고식 날짜를 3월 25일 창립기념일에 맞추는 것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가 있었으며, 일정이 촉박한 것에 대한 우려도 있었으나 본부의 계획안대로 통과되어 봉고식을 3월 25일 오전 11시에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거행하기로 결의하였다. 중앙위원회는 점명(성원보고)-개회선언-청수봉전-심고-주문3회병송-사계명 낭독-강령낭독-개회사-격려사-감사보고-의안심의-천덕송 합창(동학의 딸)-심고-폐회의 순서로 진행되었으며 진수당 박혜정 총무부장이 집례를 맡았다. 박징재 천도교여성회본부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대도 중흥과 천도교 여성회 부흥에 정성을 다하고 계시는 중앙위원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사인여천을 실천하고 동귀일체 되어 경천, 경인, 경물을 생활화하는 천도교 여성회가 성장할 수 있도록 정성을 모아주시길 부탁드린다. 오는 3월 25일 천도교여성회 100주년을 맞이하며 순회사업 강화, 포덕과 교화를 위해 다방면으로 모색할 것입니다. 합동수련과 환경위기극복, 목요강좌, 주요기념식 및 행사를 여건에 맞도록 하나하나 펼쳐 갈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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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교통법규 위반 신고는 안전신문고로 신고해주세요!행정안전부(장관 이상민)는 경찰청에서 운영하고 있는 교통법규 위반 및 치안 신고 시스템인 ‘스마트국민제보’를 ‘안전신문고’로 통합한다. ‘안전신문고’는 행안부에서 운영하는 시스템으로, 자동차·교통위반 등 생활 속 모든 안전 위험요소를 사진 또는 동영상으로 찍어 앱(APP)과 누리집(www.safetyreport.go.kr)을 통해 쉽게 신고할 수 있다. ‘스마트국민제보’는 경찰청에서 운영하는 시스템으로, 경찰 소관 교통법규 위반과 치안 신고를 앱(APP)과 누리집(onetouch.police.go.kr)을 통해 접수·처리하고 있다. 그간 교통법규 위반 신고를 ‘안전신문고’와 ‘스마트국민제보’에서 이중으로 운영하여 왔으나 이번 통합으로 스마트국민제보의 교통위반 신고기능은 안전신문고의 자동차·교통위반 신고로 통합된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안전신문고’ 앱 하나만 설치함으로써 간편하게 신고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현행 ‘스마트국민제보’의 치안분야 중 불안지역, 불법촬영, 2차피해 등 범죄예방과 관련된 신고는 안전신문고에 ‘범죄예방’ 신고 코너를 별도로 마련하여 신고할 수 있도록 하였다. 행정안전부는 안정적인 시스템 운영을 위해 2월 26일부터 두 시스템을 병행하여 시범운영을 시작한다. 이를 통해 문제점을 보완하여 4월 20일에 완전히 통합할 예정이며, 이때부터 ‘스마트국민제보’ 운영은 종료한다. 행정안전부는 기존 ‘스마트국민제보’ 이용자에게 시범운영과 운영중단을 안내하는 메시지를 발송하고(2월·4월), 운영 중단 이후에는 안전신문고로 신고하도록 연계(링크) 기능을 제공한다. 행정안전부는 2014년 9월 안전신문고 개통 이후, 모든 안전신고 기능을 안전신문고로 단일화하기 위해 신고분야를 확대해오고 있다. 2019년에 불법주정차 신고 기능 신설, 2020년에 행정안전부 생활불편신고앱을 안전신문고로 통합, 2023년에 불법숙박, 빗물받이, 계절별 재난안전 집중신고 기능을 신설하였다. 이번 ‘스마트국민제보’ 통합으로 안전신문고로 매년 1,100만 건 이상의 안전신고가 접수될 것으로 예상되며, 앞으로도 범정부 차원에서 관련 기능을 통합‧확대할 예정이다. ※ (‘23년 신고현황) 안전신문고 753만건, 스마트국민제보 343만건 이한경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정부는 앞으로도 국민이 더욱 편리하게 위험요소를 신고할 수 있도록 안전신문고의 신고분야를 지속 통합·확대해 나가겠다”라며, “국민께서도 이번에 통합된 교통법규 위반 신고뿐만 아니라 우리 생활 주변에서 위험요소를 발견하면 안전신문고를 통해 꼭 신고해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경찰청도 “국민의 안전신고가 부처간 협력을 통해 보다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처리되어 국민의 안전 확보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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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위, ‘24년도 본인확인기관 지정 심사 설명회 개최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김홍일, 이하 ‘방통위’)는 3월 8일(금) 오후 2시부터 코리아나호텔(서울 중구 세종대로 135) 2층 다이아몬드홀에서 본인확인기관 지정을 준비하는 사업자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설명회에서 방통위는 ’24년도 심사일정 및 절차, 심사 준비사항, 고시 주요내용 등 본인확인기관 지정과 관련하여 사업자들이 알아두어야 할 사항들을 상세하게 설명할 예정이다. 본인확인기관 지정을 원하는 사업자는 사전 신청 없이 참석할 수 있으며, 참석자는 설명회 종료 시 소정의 설문지를 작성하면 된다. 방통위는 “핀테크(FinTech), 마이데이터(MyData) 등 다양한 서비스의 활성화로 온라인 상 본인확인서비스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면서 “본인확인기관이 국민의 중요정보를 처리하고 있는 만큼 신청기관의 보안성 및 안정성 등을 엄격하게 심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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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원 정기총회, 23일 중앙대교당에서 열려천도교종의원(의장 선우철수) 정기총회가 2월 23일 오후1시 중앙대교당에서 개최되었다. 최홍규 부의장의 집례로 점명(성원보고), 개회, 청수봉전, 심고, 주문3회병송, 인사말에 이어 정기총회가 이어졌다. 심의 안건은 중앙총부 포덕 164년도 사업경과 보고 및 세입세출 결산서(안) 심의의결, 유지재단 포덕 164년 사업실적 보고서 및 결산서(안) 심의의결 등이다. 한편 선우철수 종의원 의장은 인사말을 통해 "종의원 정기총회 결산을 위해 귀중한 내 주셔서 감사드린다. 종의원 여러분들의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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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학대학원, 포덕165년도 1차 운영위원회 및 고시위원회 개최포덕 165년도 2월 21일에 1차 운영위원회의/고시위원회의가 오후2시, 오후 5시로 같은 날 수운회관 907호 회의실에서 열렸다. 운영위원회의를 통해 포덕164년도 결산 및 포덕165년도 사업 및 예산 확정, 1학기 학사 운영 및 일정, 교수진 확정 등의 논의 안건 심의를 통해 주요 사항을 의결하였다. 고시위원회의에서는 포덕165년도 수료 예상자 16명의 수료 적격 심사를 실시하였다. 고시위원회 적격 심사를 통과한 수료자는 오는 3월 2일(토), 오전 11시 수운회관 907호(전체), 대동교구(부산분원)에서 진행되는 수료식에 참석하여 2년간(4학기) 정규/통신 교육과정을 모두 수료하게 된다. (글. 종학대학원 제공) 한편 포덕165년도 종학대학원 수료식이 2024년 3월 2일(토) 11시에 수운회관 907호와 대동교구(부산분원)에서 개최된다. 수료자는 아래와 같다. 강정환(정규39기), 구옥주(정규29기), 김성환(통신28기), 서소연(정규39기), 심국보(정규39기), 이미숙(정규39기), 이영숙(정규39기), 이요상(정규31기), 윤영이(정규39기), 이길호(정규(39기), 장인갑(정규38기), 하연수(정규34기) 이어 3월 2일 13시부터 18시까지 정규(43기), 통신(38기) 과정 입학식 및 개강 특강도 개최될 예정이다. 이상면 종학대학원장의 특강을 시작으로 한 학기동안 진행될 이번 교육과정의 신입생 명단은 다음과 같다. 김명재(진주시교구), 김주연(경주교구), 신동명(동두천교구), 이혜련(진주시교구), 김성수(대동교구), 안분훈(울산교구), 이광호(동대문교구), 이선연(대동교구), 이현배(임실교구), 이하윤, 정외숙(대동교구), 조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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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관찬 지리지 「여지도서」 보물 지정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조선 후기에 편찬된 관찬 지리지(관의 주도로 펴낸 지리지) 「여지도서(輿地圖書)」를 비롯해 「칠곡 송림사 석조삼장보살좌상 및 목조시왕상 일괄(漆谷 松林寺 石造三藏菩薩坐像 및 木造十王像 一括)」, 「‘천수원’명 청동북(‘薦壽院’銘 金鼓)」, 「예념미타도량참법 권6~10(禮念彌陀道場懺法 卷六~十)」 등 총 7건에 대해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하였다. (재)한국교회사연구소가 소장하고 있는 「여지도서(輿地圖書)」는 조선 영조대에 각 군현에서 작성한 자료를 각 도의 감영을 통해 모아 완성한 지리지로, 각 군현에서 작성하다보니 기록 내용이 통일되지 않고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자료를 작성한 시기는 대체로 1760년대 전후로 추정되며, 각 읍지의 호구(戶口)·전결(田結) 등의 내용으로 볼 때 1759년(조선 영조 35)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이전 지리지와 달리 ‘여지도서’는 각 군현의 읍지 앞에 지도를 첨부하였다. 지도는 채색 필사본으로 1면 혹은 2면에 걸쳐 그려져 있는데, 경기도와 전라도를 제외한 6개도의 도별지도와 영·진지도 12매, 군현지도 296매가 포함되어 있다. 지도가 그려진 형식, 구성 방법, 채색은 각 군현마다 다르지만 거리와 방위 등이 비교적 정확하다. 군명(郡名)·산천(山川)·성씨(姓氏)·풍속(風俗)·창고(倉庫) 등 38개 항목에 따른 내용이 담겨 있는데, 항목이 『동국여지승람』 등 이전 지리지보다 확대되었다. 특히 호구(戶口)·도로(道路) 등 사회경제적 내용의 항목이 추가된 것이 특징이다. 조선 후기 사회경제사와 역사지리 연구에 필수적인 자료로서도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현존 유일본으로 편찬 당시 55책의 상태가 비교적 온전히 유지되고 있어 희소성과 완전성도 갖추고 있다. 「칠곡 송림사 석조삼장보살좌상 및 목조시왕상 일괄(漆谷 松林寺 石造三藏菩薩坐像 및 木造十王像 一括)」은 승일(勝一), 성조(性照) 등의 조각승들이 1665년(조선 현종 6) 완성해 송림사 명부전에 봉안한 것이다. 삼장보살은 천상(천장보살), 지상(지지보살), 지옥(지장보살)의 세계를 아우르는 개념으로, 조선시대 사찰에서 봉행한 천도재의 하나인 수륙재에서 공양을 드린 시방세계 성중들 가운데 일부를 형상화한 것이다. 삼장보살은 불화 작품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은데, 송림사 삼장보살상은 조각 작품으로는 국내 유일한 사례로 미술사적으로 의의가 있다. 천장보살상에서 발견된 중수발원문 등을 통해 처음 조성된 시기와 제작 장인, 조성 이후 1753년경 한차례 중수된 사실이 확인되었다. 또한, 일부 조각이 결실되어 근래에 새롭게 조성되었으나, 제작 당시의 모습에서 큰 손상이나 변형, 결손 등이 없이 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크다. 온양민속박물관 소장 「‘천수원’명 청동북(‘薦壽院’銘 金鼓)」은 1162년(고려 의종 16)에 제작된 청동북으로, 표면을 굵고 가는 선을 통해 3구역으로 구획하고 각 구역을 문양으로 장식하였다. 가운데 구역에는 꽃술들을 삼각 형태로 쌓아 삼각형과 역삼각형 형태로 교대로 반복시켰는데, 이러한 표현은 고려시대 청동북에서 처음 보이는 사례로 문양사적 의미가 크다. 또한, 몸체 측면에 제작 시기, 무게, 사찰명, 주관 승려가 적힌 글씨가 있어 12세기 중엽의 중요한 편년 자료로 평가된다. 고려시대에 제작된 청동북의 대다수가 출토지를 명확히 알 수 없는 상태인 것에 반해 이 청동북은 출토지가 분명하기 때문에 역사적 가치가 높다. 「협주석가여래성도기(夾註釋迦如來成道記)」는 중국 당나라 때 왕발(王勃)이 지은 『석가여래성도기』에 송나라 혜오대사(慧悟大師) 도성(道誠)이 본문의 뜻을 알기 쉽게 풀이한 ‘주해’를 붙인 주해서이다. 석가모니의 탄생·성장부터 깨달음과 열반에 이르는 일대기를 담고 있다. 1253년(고려 고종 40) 분사대장도감에서 새긴 목판을 후일 인쇄한 것임을 알 수 있는 간행정보가 담겨 있고, 13세기 중엽 분사대장도감의 운영과 역할 변화 등을 추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역사·문화적 가치도 지니고 있다. * 분사대장도감: 팔만대장경의 조성 사업 분담을 위해 1236년경 설치한 임시 기구 「금강반야경소론찬요조현록(金剛般若經疏論纂要助顯錄)」은 구마라집(鳩摩羅什)의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한역본에 남송의 승려 혜정(慧定)이 본문의 뜻을 알기 쉽게 풀이한 것이다. 『금강반야바라밀경』은 ‘금강반야경’, ‘금강경’으로 약칭되기도 하며 우리나라에서 널리 신봉되는 대표 불경이다. 책 끝부분의 「발문」과 「간행기록」을 통해 1373년(고려 공민왕 22) 은봉 혜녕(隐峯慧寧)의 주도하에 비구 정서(定西)의 발원, 공덕주 배길만(裴吉萬) 등의 시주, 심정(心正) 등의 판각으로 조성된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존에 보물로 지정된 판본보다 앞선 시기에 조성된 판본일 뿐 아니라 현재까지 국내에서 확인된 유일본으로 자료적 희소성과 가치도 뛰어나다. 「예념미타도량참법 권6~10(禮念彌陀道場懺法 卷六~十)」은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참회하고 염불할 때 행하는 13편의 의례 절차가 수록된 10권본의 불교 의식집으로, ‘정토문(淨土文)’이라 불리기도 한다. 1474년(조선 성종 5) 간경도감판본으로 기존에 보물로 지정된 해인사판본보다 앞선 시기에 조성된 판본이다. * 간경도감: 조선 전기 불경 번역 및 간행을 위해 1461년(세조 7) 설치한 임시 기구 ‘선광사 소장본’은 끝부분에 초주갑인자(初鑄甲寅字)로 인출된 등곡 학조(燈谷學祖)의 「발문(跋文)」이 수록되어 있으며, ‘총명사 소장본’은 김수온(金守溫)의 「발문」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1474년 성종 비 공혜왕후가 승하하자 그녀의 명복을 빌기 위해 시할머니인 세조 비 정희왕후의 발원으로 간경도감에서 목판을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 초주갑인자: 갑인자는 1434년(세종 16) 주자소에서 만든 금속활자로 나중에 다시 주조된 것과 구별하기 위해 처음 제작된 활자를 초주갑인자라고 함 조선 성종대 역사와 인쇄문화 등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 왕실 발원판인 동시에 불교학 연구에서도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보물로 지정되는 「여지도서」, 「‘천수원’명 청동북」 등 7건에 대해 해당 지방자치단체, 소유자(관리자) 등과 적극행정의 자세로 협조해 체계적으로 보존·활용해 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