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목록
-
천도교 등 민족종교협의회, 선열들의 애국헌신의 그 굳은 뜻을 이어가고자한국민족종교협의회(회장 김령하)와 종로구(구청장 정문헌)가 공동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한 ‘2024 전쟁 희생자 위령대제 및 평화 캠페인’이 호국 보훈의 달을 맞아 전쟁으로 희생된 수많은 이들의 넋을 위로하고자 현충일인 6일 탑골공원에서 개최됐다. 이번 전쟁 희생자 합동 위령대제는 천도교를 비롯한 한국민족종교협의회 소속 12개 교단의 위령의식으로 경건하게 시작해 청수봉전, 심고, 위령식사, 추모사, 위령무에 이어 평화 캠페인으로 마무리되었다. 박차귀 한국민족종교협의회 여성회장(천도교부산시교구장)은 심고문을 통해 "오늘 단기 4357년 6월 6일 현충일을 맞아 3·1혁명의 발원지인 이곳 탑골공원에서 이 땅, 이 민족, 이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과 애국지사들, 그리고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 수많은 전쟁에 의해 희생되신 이들을 추모하고 위로하고자 이렇게 한국민족종교인들이 모여 합동위령식을 봉행하오니 숭고하신 선열들과 신명이시여 감응하옵소서. 국조 단군의 홍익인간 가르침 이래로 우리 민족은 언제나 평화를 사랑하였으며 사람답게 사는 후천개벽의 새 세상을 이룩하기 위해 창도된 여러 민족종교의 가르침으로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이 땅을 지키고자 헌신하였습니다. 당신들의 숭고한 희생을 오늘 위령하고자 하오니 굽어 살피시옵고 명우(冥祐)가 있어지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각 종단의 추모 의례 봉행이 있었으며 천도교에서는 청수봉전에 이어 주문3회 병송과 함께 법신당 고윤옥 여성회본부 부회장의 위령문 낭독이 있었다. 또 위령대제를 마치고 이범창 종무원장은 추모사를 통해 "한국민족종교협의회와 종로구가 공동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여 민종협청장년회가 주관하는 2024 민족종교 전쟁희생자 추모 및 세계평화를 위한 위령 대제가 진행됨을 매우 뜻깊게 생각합니다. 오늘 위령대제가 열리는 이곳 탑골공원은 3.1독립 혁명의 성지입니다. 3.1독립선언은 천도교 3세 교조이신 의암 손병희 성사님의 근 10년간의 준비로 대중화 일원화 비폭력 3대 원칙으로 우리나라가 자주국이며 우리 민족이 자주민임을 세계만방에 선포하였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민족은 전쟁과 폭력을 멀리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입니다. 우리 천도교 뿐 아니라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원 교단이 모두 모여 전쟁희생자를 위한 합동위령대제를 봉행함으로써 세계 곳곳에서 전쟁으로 희생되신 수많은 영령들이 성령으로 출세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제는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전쟁과 폭력을 없애고 평화로운 한울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을 이 자리를 빌어 다짐합니다. 작년에 이어 위령대제가 성대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애쓰신 한국민족종교협의회 김령하 회장님을 비롯한 회원 종단의 민족종교인들과 정문헌 종로구청장님 그리고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분들께도 깊이 감사드리며 추모사로 갈음합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밝혔다. 김령하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은 “전쟁은 인류의 모든 죄악의 총합이자 인류 스스로 파멸을 걷는 행위”라며 “굴곡진 역사의 흐름 속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들의 원혼을 풀고, 유족들의 아픔을 되새길 뿐 아니라, 갈등과 폭력의 과거를 넘어 상생과 평화의 시대로 가는 디딤돌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이번 행사의 취지를 밝혔다. 정문헌 종로구청장은 추모사에서 “전쟁이 남긴 상처를 보듬고, 희생자를 마음 깊이 위로하는 추모행사가 우리 사회에 깊은 울림으로 남았으면 한다”라며 “다시는 전쟁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평화와 화합을 위해 모두가 끝없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재우 한국민족종교협의회 사무총장은 “우리 민족종교는 나라가 어려움에 부닥칠 때 마다 국난 극복을 위해 누구보다 앞장서 왔다”라며, “전 세계적으로 갈등과 전쟁으로 인한 아픔이 커지는 시기에, 우리 민족종교인들의 평화를 향한 목소리를 통해 한반도를 넘어 전 세계에 상생과 평화의 도덕 문명을 이룩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겠다”라고 전했다. 아래는 위령문의 전문이다. 위 령 문 한울님과 스승님 감응하옵소서. 오늘 6월 6일 현충일을 맞아 이 땅, 이 민족, 이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애국지사들과 전쟁으로 인해 희생되신 이들의 성령출세를 기원하고자 이렇게 천도교를 비롯한 한국민족종교인들이 모여 합동위령식을 봉행하오니 성령이시여 감응하옵소서. 우리나라는 수많은 외세의 침략과 집권층의 부패로 인하여 구한말 이 땅의 백성들은 고통스런 착취를 당해왔으나 수운 최제우 대신사께서 고통받는 민초들이 사람답게 사는 후천개벽의 새 세상을 이룩하기 위해 무극대도를 창명하신 후 선각자들에 의해 지상천국 건설의 대업을 위하여 수 많은 애국지사들이 이 땅을 지키고자 헌신하였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다만 한 몸과 한 집을 위하여 살다가 안방에서 편안하게 죽어도 슬퍼하는 것이 인간의 상정이거늘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 선열들께서는 일제로부터 나라를 되찾고자 또, 해방은 되었으나 나라가 분단되는 상황에서 이 땅을 지키고자 그 소중한 생명을 바치셨으니 그 숭고한 뜻과 불멸의 공덕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일본의 침탈에 맞서 싸운 동학혁명 이후 이나라 민족의 평안을 위해 싸워온 수 많은 애국지사들의 성령이시여! 오늘 현충일을 맞아 이 3·1혁명의 발원지인 이 곳 탑골공원에서 뒤늦은 일이지만 이제라도 선열들을 위로할 수 있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아직도 저희는 분단된 나라에서 전쟁의 아픔을 아직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전쟁의 암울함을 벗어나 한반도에서 완전한 전쟁 종식과 함께 평화통일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우리 민족 모두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한울님께서 사람을 만물 가운데 가장 신령한 자로서 만기만상의 이치를 모두 한 몸에 갖추어 화생시켜 육신을 마련한 것은 바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지상천국 세상을 실현하고자 함입니다.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헌신하신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의 성령이시여 이제 우리 후생들의 심령 가운데 영원히 함께 하시면서 그 불굴의 정신을 받들어 후천의 새 세상을 이룩할 수 있도록 지혜와 용기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수도와 포덕에 힘쓰면서 대도의 목적인 포덕천하 광제창생 보국안민 지상천국 건설의 대원을 달성하고 선열들의 애국헌신의 그 굳은 뜻을 이어가고자 선열들의 영전에 맹세하오니, 성령이시여 굽어 살피시옵고 명우(冥祐)가 있어지이다. 포덕 165년 6월 6일 천도교여성회본부 부회장 법신당 고윤옥 심고
-
[속보] 수운 최제우 대신사 탄신 200주년 기념 행사 기자회견천도교중앙총부(윤석산 교령)는 오늘 오전 11시, 천도교수운회관 807호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한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수운 최제우 대신사 200주년 기념 행사 보도자료를 배포할 예정이다. 올해 수운 최제우 대신사 200주년을 맞아 기념공연, 천도교중앙총부 소장 유물 전시회, 기념사진전, 기념 퍼포먼스, 기념 학술대회, 기념 출판 등을 계획하고 있다. 한편, 천도교는 지난 5월 신임 윤석산 교령의 취임식을 개최하였다. 윤석산 교령은 취임사를 통해 올해 수운 최제우 대신사 탄신 200주년 맞이 행사에 대한 포부를 밝힌 바 있다.
-
‘일상 속 보훈문화 체험’…호국보훈의 달 맞이 다양한 행사 풍성보훈부는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일상에서 보훈문화를 체험해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헌신한 국가유공자를 비롯한 제복 근무자 등이 범국민적으로 예우받고 존중받는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올해 호국보훈의 달 주제는 보훈이 일상 속 살아있는 문화로 정착하기를 바라는 의지를 담아 ‘일상 속 살아있는 보훈, 모두의 보훈’으로 선정됐다. 호국보훈의 달 사업은 국가를 위해 헌신한 영웅들에 대한 ‘기억과 감사’, 일상 속 살아있는 보훈을 실천하는 ‘보훈문화 확산’, 보훈의 가치를 통해 미래세대의 국가정체성을 확립하는 ‘미래세대 전승’ 등 세 가지 추진 방향으로 기획됐다. ◆ 기억과 감사…정부 기념행사, 보훈 토크콘서트 등 개최 먼저, 보훈부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 영웅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기 위해 현충일 추념식, 6·10만세운동 기념식, 6·25전쟁 행사 등 정부 기념행사를 거행한다. 제69회 현충일 추념식은 ‘대한민국을 지켜낸 당신의 희생을 기억합니다’라는 주제로 6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엄수한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뿐만 아니라 국군장병·경찰관·소방관 등 국민 일상 속 안전을 위해 헌신한 모든 이들을 기억하고 예우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예정이다. 제98주년 6·10만세운동 기념식은 10일 훈련원공원(서울 중구)에서 거행한다. 3·1운동, 학생독립운동과 함께 국내 대표적 독립운동으로 평가되는 6·10만세운동의 역사적 의의와 가치를 공유할 예정이다. 6·25전쟁 제74주년 행사는 25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리는데 역대 처음으로 6·25전쟁 초기 낙동강 전투의 주 무대인 대구에서 개최한다는 데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더불어 보훈부 승격 1주년(6월 5일)을 맞아 국가유공자와 제복 근무자, 청년세대 등이 참여해 보훈 정책을 이야기 중심으로 전달하는 보훈 토크콘서트를 현충일에 방송한다. ◆ 일상 속 보훈문화 체험을…코리아 메모리얼 페스타 등 추진 보훈부는 국민 모두가 일상에서 보훈문화를 체험하고 보훈의 가치를 공유해 우리 사회에 보훈문화가 널리 확산할 수 있도록 다양한 행사들을 추진한다. 7일에는 한국경제인협회와 함께 히어로즈 패밀리의 꿈과 희망 행사를 개최해 전몰·순직군경의 남은 자녀와 가족들에게 가족사진을 전달하여 영웅의 가족이라는 자긍심을 선물할 예정이다. 보훈과 문화를 융합한 종합 보훈문화행사인 제1회 코리아 메모리얼 페스타는 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에서 개최한다. 기억과 감사의 메시지를 담은 케이-팝 공연을 비롯해 더본코리아 백종원 대표의 보훈과 음식문화를 결합한 독창적인 먹거리를 선보이는 한편, 국민 참여형 먹거리시장(푸드 마켓)도 운영한다. 아울러 게임 등 미래세대의 놀이문화와 융합한 보훈 주제 체험공간 운영 등도 다채롭게 펼쳐진다. 국가유공자와 지역주민, 미래세대가 어우러져 보훈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보훈 문화행사도 전국적으로 연다. 1일 메모리얼 로드 페스티벌(서울 홍대 레드로드), 8일 제복근무자와 함께하는 호국 힐링 음악회(청주 오창호수공원), 달구벌 보훈문화제(대구 수성못 상화동산), 13일 보훈 새싹과 함께하는 FUN&FUNG 페스티벌(광주 월봉초등학교) 등을 지역 특성에 맞게 진행한다. 6월 한 달 동안 보훈의 상징인 나라사랑큰나무 배지 달기 캠페인을 전개하는 동시에, 나라사랑큰나무와 태극기의 요소를 녹여내 디자인한 보훈캐릭터 ‘보보(保報)’를 활용해 어린이들에게 친숙하게 나라사랑큰나무를 알려 나간다. ◆ 미래세대 보훈 가치 전승…체험형·맞춤형 보훈 교육 프로그램 보훈에 대한 미래세대의 관심을 높이고 보훈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도록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보훈콘텐츠를 제공하고 체험형·맞춤형 보훈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3일, 용산 어린이정원 내 어린이 보훈전시관 보보의 집을 개관하였다. 보보의 집은 나라사랑큰나무를 모티브로 제작한 보훈캐릭터 보보를 활용해 어린이 눈높이에 맞는 놀이와 보훈을 결합한 나라사랑 체험 공간이자 국가유공자와 제복근무자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자연스럽게 체화할 수 있는 콘텐츠로 구성됐다. 보훈부는 또 19~22일과 27일~29일 학생들의 리더십 함양과 올바른 국가관 확립을 위한 나라사랑 리더십 캠프를 운영해 국립서울현충원과 평택 해군 제2함대, 한미연합사 등 방문과 연계해 현장감 있게 진행할 예정이다. 강정애 보훈부 장관은 “국가유공자를 비롯한 제복근무자분들의 희생과 헌신 덕분에 오늘의 자유와 번영된 대한민국이 있음을 우리는 항상 기억해야 한다”며 “이를 실천하는 보훈이 국민의 일상 속에서 살아 숨 쉴 때 비로소 그 가치가 빛나는 만큼 올해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국민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가는 ‘일상 속 살아있는 보훈, 모두의 보훈’이 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www.korea.kr)
-
국가유공자 480가구 낡은 집 수리…올해 50억 원 투입국가유공자 480가구를 대상으로 50억 원을 투입해 주거환경개선 ‘나라사랑 행복한 집’ 올해 사업의 첫 삽을 뜨고, 롯데마트는 올해 안에 서울 등 전국 10개 지점에 국가유공자 우선 주차구역을 설치한다. 보훈부는 오는 4일 경기도 안양시에 거주하고 있는 이헌주(86세) 월남 참전유공자의 자택에서 보훈부 산하기관인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의 올해 국가유공자 주거환경개선 사업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를 개최한다고 3일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강정애 보훈부 장관과 하유성 보훈공단 이사장 직무대행, 연성대학교 웹툰만화콘텐츠학과 교수 및 학생, 보훈부·행안부·통일부·금융위·공정위 등 5개 부처의 청년보좌역 등 40여 명이 참석한다. ‘나라사랑 행복한 집’은 국가를 위해 희생·헌신한 국가유공자들이 국민의 존경과 감사 속에서 안락하고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주택구조를 개선하고 생활편의 시설을 보완하는 복권기금 사업으로, 올해 480여 가구에 50억 원을 투입한다. 특히, 올해 사업 대상과 규모는 지난해에 비해 120가구(33%), 12억 원(32%)을 늘려 더 많은 국가유공자가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했다. 올해 첫 번째 사업 대상자로 선정된 이헌주 참전용사 자택에서는 ‘나라사랑 행복한 집’ 시작 행사와 함께 강정애 장관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주택 담장 페인트칠과 벽화 그리기, 화단 조성 등 주거환경 개선 봉사활동도 진행된다. ‘나라사랑 행복한 집’은 지난 2009년 사업을 시작한 이후 지난해까지 6899가구의 주거환경을 개선했으며, 복권기금과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의 자체 예산 391억 원을 투입했다. 강정애 보훈부 장관은 “국가유공자 주거환경 개선사업은 고령의 국가유공자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의미 있는 사업”이라고 밝히고 “올해 ‘나라사랑 행복한 집’ 사업을 원활하게 추진해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이 조금이라도 더 편하고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살피겠다”고 강조했다. 보훈부는 이와 함께 국가유공자를 일상에서 존중하고 예우하는 보훈문화 확산을 위해 국가유공자 우선 주차구역을 전국에서는 처음으로 민간 다중이용시설인 대형 할인마트에 설치한다. 보훈부는 4일 롯데마트 본사(서울 송파구)에서 이희완 차관과 신수경 롯데쇼핑 본부장, 롯데마트 주차장 위탁업체인 SK쉴더스 장웅준 부사장이 참석한 가운데 ‘일상 속 보훈문화 확산’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다. 협약에 따라 롯데마트는 올해 안에 서울을 비롯한 전국 10개 지점에 국가유공자 우선 주차구역을 설치하고 추가적인 확대를 위해 보훈부와 상호 협력하기로 했다. 서울의 경우 3일 중계점(노원구)에 설치를 완료하고, 맥스(Maxx) 금천점(금천구)과 삼양점(강북구)은 이달 중으로 설치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또한, SK쉴더스는 향후 내비게이션 서비스인 티맵(T-MAP)에 국가유공자 우선 주차구역 정보 표출 등도 진행할 계획이다. 한편, 지난해 8월 세종 보훈부 청사와 인근 세종청사터미널 옥외주차장을 시작으로 설치 확대에 들어간 국가유공자 우선 주차구역은 지난 4월 현재 서울과 부산, 대전 등 9개 광역자치단체와 56개 기초자치단체 등에서 관련 조례제정을 완료했으며 전국적으로 모두 578면을 설치했다. 이희완 보훈부 차관은 “민간 대형마트에서의 국가유공자 우선 주차구역 첫 설치를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며 “보훈부는 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은 물론 민간에서의 국가유공자 우선 주차구역 설치가 더 확대될 수 있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 나가겠다”고 밝혔다.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www.korea.kr)
-
성북구, 제로웨이스트 캠페인을 담은 특별한 마켓 개최성북구(구청장 이승로)는 오는 6월 15일(토) 환경의 달을 맞이해 길음청년창업거리에서 제로웨이스트를 주제로 하는 ‘일상의 마켓’을 개최한다. 제로웨이스트를 주제로 하는 다양한 생활용품과 체험, 그리고 공연이 펼쳐지는 이번 행사는 지역 안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단체들과 예술가들이 참여해 그 가치를 더 높이고 있다. 성북구의 길음청년창업거리는 길음역부터 미아초등학교 사이에 조성된 거리를 말한다. 이곳은 일명 ‘맥양집’으로 불리던 불법유해업소들이 운집해있던 곳으로, 지금은 많은 맥양집들이 청년들의 창업 점포로 변하면서 주말이면 가족들이 찾는 지역의 명소가 됐다. 성북구와 성북문화재단은 길음청년창업거리에 유입되는 지역의 가족들과 함께 기후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제로웨이스트를 주제로 한 ‘일상의 마켓’을 지난해부터 진행해왔다. 특히 올해는 길음청년창업거리의 가게들과 청년 작가들, 그리고 인디밴드 등 다양한 구성원들이 마켓에 참여해 더 많은 볼거리와 체험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청년 창업가들의 대표 팝업 스토어로 알려진 ‘청년창업실험공간 공업사’에서는 SNS를 통해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청년 작가들의 작품도 만날 수도 있다. 주로 반려동물을 소재로 한 문구류와 팬시 제품들로 구성될 ‘청년창업실험공간 공업사’는 행사 당일 아이들을 위한 포토부스를 운영해 또 다른 즐거움을 줄 예정이다. 성북문화재단은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마켓이 아닌 다양한 제로웨이스트 체험과 공연을 통해 자연스럽게 기후위기 문제를 인식할 수 있는 캠페인의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했다. 이날 판매되는 마켓의 수익 중 5%는 기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노력하는 환경단체에 기부될 예정이다.
-
[칼럼] 내가 만든 신흥종교가장 신기하고 의아한 것은 한 사람이 한 이성을 만나 평생을 같이 산다는 것이다. 한 종교만을 갖고 사는 사람도 그렇다. 이해가 안 된다. 사회의 집단 최면에 걸린 결과로 보인다. 집단성은 심적 안전을 보장하는 대신에 이성을 마비 시킨다. 하늘 기운과의 접속을 차단하기도 한다. 이렇게 말하면 솔깃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외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평생을 자기가 태어난 지역에서만 살다 가는 사람이 있다면? 평생을 한 가지 음식만 먹고 산다고 하면? 딱 한 가지 옷만 입고 산다면? 그걸 강요하는 종교가 있다면? 나란히 비교될 수 있는 소재들이다. 내가 심취했던 종교는 다섯 개나 된다. 이제 다 심드렁하다. 심드렁하다기보다 모두가 소중하되 근본은 같아 보이고 차별성이 있다고 한들 시대와 지역 변수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자기 종교의 특정 교리를 들먹이며 신관과 우주관, 인간관과 자연관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보기에 좀 딱하다. 그래서 나는 모든 종교를 아우르는 신흥종교를 하나 만들었다. 내가 해 오던 여러 수행 방편의 진수가 담긴 셈이다. 나는 그게 신흥종교인 줄 모르고 지냈는데 존경하는 선배가 그게 바로 신흥종교라고 일러 줘서 이름까지 붙이게 됐다. ‘박장대소교’다. 교리와 경전과 성소가 없는 종교다. 교주도 없다. 이 글의 제목이 ‘내가 만든 신흥종교’지만 스스로 교주라고 여긴 적은 없다. 어느 순간, 딱 네 곳의 인상 깊은 기억이 한 순간에 겹쳐 왔고 그걸 시연한 게 계기였다. 재작년 봄이었다. 터박이 씨앗을 연구하고 수집하는 단체에서 나더러 명상 수련을 지도해 달라고 했던 때었다. 전혀 계획에 없던 제안이었다. 나는 딱 5초 만에 강의를 끝냈다. “쳇! 자기네 황토집에서 재워준다면서 배 불리 먹이더니 강의 들으라는 것이었군.”하는 눈치가 역력해서였다. 이 5초짜리 강의가 ‘박장대소교’의 출현이 될 줄이야! 짧디짧은 강의는 폭소를 자아냈고 더 해 달라고 해서 5분을 더 했고 이어서 1시간이나 강의를 하게 되었다. 박장대소교의 교리와 의례와 전교가 완성되는 시간이었다. 내가 한 5초 명상 강의는 이랬다. 말과 몸짓으로 나를 따라 하는 것이었다. 오른쪽 어깨와 왼쪽 어깨를 교대로 크게 들썩이며 “이래도 좋아. 저래도 좋아”라고 했다. 그리고 양 무릎을 벌떡 세워 일어나 두 팔로 커다란 원을 그리며 “다~~ 좋아. 아이구 좋아라. 으하하하하....”라고 하는 것이었다. ‘박장대소’라는 농장을 운영하는 친구, 만날 때마다 ‘아이구~ 반가워요’라는 선배, 몸짓을 가르쳐 준 어느 신부님 등의 기억이 결합 된 것이다. ‘박장대소교’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기성 종교인에게 양다리 갈등을 유발하지도 않는다. 헌금도 없다. 성직자도 없다. 모든 대상을 행해서 아이구 반가워 하하하. 아이구 맛있다 하하하. 아이구 좋아라 하하하. 아이구 몬 살아 하하하. 아이구 내 팔자야 으하하하하라고 하면 된다. 약간 과장스러운 몸짓을 곁들일 것을 권하다. 이게 다다. 근데 좀 귀 티나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내 얼굴과 입과 팔다리에 완전한 자기 주권이 실현된 종교다. 마음 자기 결정권이라는 게 있다면 그걸 행사하는 종교다. 멋지지 않은가? 누구나 스스로 바라지 않는다. 짜증이나 불행이나 화를 진정으로 원하지 않는다. 원하지 않는데도 습관과 기억에 얽매여 그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신의 참 바람을 몸과 마음과 입으로 시도 때도 없이 성취해 가는 종교다. 박장대소하면서 웃음을 전염시키는 종교다. 이 정도라면 세상 모든 종교의 통합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인간 존재의 궁극적 의미라고 해도 될 것이다. 교인이 되시라. 절차도 의례도 없다. 위에 나온 걸 참고로 자기만의 교리와 의례를 적절하게 만들면 된다. 글_목암 전희식(진주교구. 한울연대 공동대표)
-
해월신사 순도 순국 126주기 묘소 참례식 봉행지난 6월 2일 해월신사 순도일을 맞아 중앙총부는 여주시 천덕산(금사면 주록리 산 138) 신사 묘소를 참례하였다. 참례식에는 이범창 종무원장을 비롯하여 송범두 전 교령, 이미애 교화관장, 정갑선 교무관장, 최인경 사회문화관장, 연원회 김성환 연원회의장, 김산 연원회부의장, 종의원 최흥규 종의원부의장, 최용범 종의원 사무장, 여성회 박징재 여성회장, 등 교단 임직원 등 유족대표, 계한경 공항교구장, 김시형 여주교구 전교실장, 내빈으로는 홍일선 경기작가회의 회장 등 여주지역 시민사회단체장 및 시민 60여 명이 참석하였다. 참례식은 이미애 교화관장의 집례로 청수봉전, 심고, 주문3회 병송, 분향, 폐식후 해월신사 약력소개 순으로 진행되었다. 이미애 교화관장은 발성 심고에서 “해월신사님이시어, 도에 대한 한결같은 생각을 주릴 때 밥 생각하듯이, 추울 때 옷 생각하듯이, 목마를 때 물 생각하듯이 하라고 하시며 이 세상 운수는 천지가 개벽하던 처음의 큰 운수를 회복한 것이니, 새 한울 · 새 땅에 사람과 만물이 또한 새로워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아직은 그 뜻을 알지 못하여 지금은 도를 권하면 사람들이 다 믿지 아니할 것이나 이후에는 사람들이 손바닥에 시천주 주문을 써 달라고 할 것이니 그 때가 오게 되면, 포덕사를 세계 각국에 보내어 모든 나라를 지상천국으로 만들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스승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도에 힘써 배워 지식이 지혜가 되고, 우리의 삶이 곧 스승님의 삶을 실천하는 길이 될 수 있는 진정한 한울 사람이 되어, 한울님을 모시고 사람을 섬기며 만물을 공경하는 한울 세상을 만들어 가겠습니다.”라고 다짐하면서 한울님과 스승님 감응하시기를 심고하였다. 이범창 종무원장은 인사말에서 “스승님들은 전세계 인류가 귀감으로 삼아야 할 많은 진리를 밝히셨다. 일용행사 막비도야(日用行事 莫非道也)라 하셨으니 우리들은 매매사사에 스승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참 한울사람이 되기를 심고한다.”라고 말하였다.
-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한국어교육과, 동학혁명기념관 역사탐방전주한옥마을은 이제 국내 유명관광지를 넘어 세계적인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다. 지난 코로나 시국을 벗어나 최근 들어 외국인들이 무척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전주한옥마을에 위치한 동학혁명기념관에도 전국에서 찾는 관광객과 외국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재 동학혁명기념관 내 동학혁명기념전시관에 오시는 분들은 평일 하루 2백~3백 명 수준이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하루 1천~2천여 명을 웃돌고 있다. 특히 요즘 들어 초·중·고·대 현장학습이 많이 증가하고 있다. 또한 친지들과 가족단위도 증가하는 추세이다. 지난 6월 1일(토) 오후에는 한국외국어대학교 한국어교육과 대학원생들이 교수진과 동학혁명기념관을 단체 방문했다. 이들 외대, 대학원생들은 동학혁명기념관 역사탐방을 위해 동학사상과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자료집을 만드는 등 사전에 꼼꼼히 준비한 흔적들이 있었다. 수운 최제우·해월 최시형·의암 손병희 선생을 중심으로 동학사상을, 전봉준·김개남·손화중 장군을 중심으로 반봉건 1차 동학농민혁명을, 반외세 2차 동학농민혁명 즉 항일의병전쟁을, 이후 의병운동, 독립운동, 해방 후 4.19민주혁명, 5.18광주민중항쟁 등 근현대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만든 자료집을 보면서, 이윤영 동학혁명기념관장은 준비를 철저히 한 대학 측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한국어교육과 대학원생들은 전시관 자료들을 자세히 관람했으며, 전체적인 학습은 미디어 영상실에서 이윤영 관장의 지도에 따라 동학사상과 동학농민혁명을 관람·학습하였다. 이들 대학원생들 중 외국인들은 한국어공부를 나름대로 능통해 대화를 하는데 불편함이 없었다. 한국외국어대학원생들은 동학혁명기념관 일정을 마치고 전주한옥마을 여행하는 자유시간을 가졌다. 사진 및 기사 제공-동학혁명기념관)
-
중앙총부 신임 집행부 봉고식 봉행5월 31일(금) 오후 2시 경주 용담정에서 윤석산 교령을 비롯한 총부 임원과 교인들은 신임 집행부 봉고식을 봉행하였다. 이미애 교화관장의 집례로 진행된 봉고식은 청수봉전 등 의식에 이어 윤석산 교령의 봉고문 낭독이 있었다. 봉고식 후 수운기념관을 둘러본 후 대신사 태묘와 생가를 참례하였다. 윤석산 교령은 봉고문을 통해 “지난 5월 9일 제41차 임시전국대의원대회에서 교령으로 선출되었음을 한울님과 스승님 앞에 삼가 받들어 고합니다. 오늘 봉고식에는 교령인 저를 비롯하여 김성환 연원회 의장, 이범창 종무원장, 김춘성 상주선도사, 최인경 사회문화관장, 서종환 의창수도원장 등 이번에 새로 선임된 교역자들이 함께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곳 성스러운 용담성지에서 스승님의 거룩한 뜻을 되새기면서 대도중흥을 위하여 성력을 다할 것을 한울님과 스승님께 굳게 맹세합니다. 주어진 직책을 천명으로 여기며 오로지 정성과 공경과 믿음으로 소임을 다하며, 우리 앞에 닥쳐오는 어떠한 고난과 역경도 두려워하지 않고 의연히 정진하겠다”고 다짐하고, “또한 천도교인들이 순일한 정성을 태산같이 쌓아 그 힘으로 평화적인 민족 통일을 이룩하고 나아가 세계평화와 인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도록 이 자리에 참석한 교역자들이 솔선수범 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이날 봉고식에는 윤석산 교령을 비롯하여 김성환 연원회 의장, 김산 연원회 부의장, 김춘성상주선도사, 이범창종무원장, 최흥규 종의원 부의장, 최용범 종의원 사무국장, 이미애 교화관장, 최인경 사회문화관장, 문범식 전서실장, 오성식 전서, 최상락 용담수도원장, 서종환 의창수도원장, 최상욱 용담교구장 등 20여 명의 교역자가 참석하였다. 아래는 봉고문 전문이다. 봉 고 문 한울님 스승님 감응하옵소서. 오늘 대신사님께서 무극대도를 창명하신 용담성지를 찾아 불초 도생이 지난 5월 9일 제41차 임시전국대의원대회에서 교령으로 선출되었음을 한울님과 스승님 앞에 삼가 받들어 고합니다. 오늘 봉고식에는 교령인 저를 비롯하여 김성환 연원회 의장, 이범창 종무원장, 김춘성 상주선도사, 최인경 사회문화관장, 서종환 의창수도원장 등 이번에 새로 선임된 교역자들이 함께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곳 성스러운 용담성지에서 스승님의 거룩한 뜻을 되새기면서 대도중흥을 위하여 성력을 다할 것을 한울님과 스승님께 굳게 맹세합니다. 스승님께서 경신년 4월 5일에 한울님의 특별하신 감응으로 이곳 용담정에서 득도하시고 저희들에게 포덕천하 광제창생 보국안민 지상천국 건설의 대업을 과제로 주셨습니다. 저희에게 주어진 직책을 천명으로 여기며 오로지 정성과 공경과 믿음으로 소임을 다하며, 우리 앞에 닥쳐오는 어떠한 고난과 역경도 두려워하지 않고 의연하게 정진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시천주의 진리가 온누리에 널리 널리 퍼져 나가도록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사람들이 절망에서 희망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나아가는 길을 찾고, 세상이 어두움에서 밝음으로, 낡음에서 새로움으로 변화하도록 저희가 앞장서겠습니다. 또한 천도교인들이 순일한 정성을 태산같이 쌓아 그 힘으로 평화적인 민족 통일을 이룩하고 나아가 세계평화와 인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도록 이 자리에 참석한 교역자들이 솔선수범 하겠습니다. 용담 물이 흘러 네 바다의 근원을 이루고 이곳 구미산에 봄이 와서 온 세상이 무극대도의 꽃으로 다시 피어날 수 있도록 성심을 다하여 수도에 정진하며 포덕교화에 앞장서겠습니다. 아무쪼록 오늘 저희 새로운 집행부 교역자들은 대도중흥을 바라는 전체 교인들의 간절한 소망을 담아 천도 정신으로 똘똘 뭉쳐 일할 것을 봉고하오니 한울님 감응하옵시고 스승님 감응하옵소서. 포덕 165년 5월 31일 교령 윤석산 심고 윤석산 교령과 총부 임원의 봉고식 모습
-
이창번 천도교중앙도서관장에게 듣다(2)이창번 천도교중앙도서관장님을 만나 일제강점기, 한국전쟁기를 거쳐 우리 역사가 흘러온 절망과 희망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그 시절을 건너 온 어른들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그야말로 한 많은 세월을 살아왔다. 구십 살이 넘은 생을 넘나드는 기억들을 풀어내며 선생의 생을 관통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선생의 말씀 속에 선생이 경험한 모든 것을 표현할 때 ‘감사한 마음’이었다. 주어진 삶에 대한 깊은 감사의 마음이 느껴졌다. (지난 호에 이어) 수용소 안에서의 종교생활은 어땠나요? 그 안에서는 글자를 읽을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러니 성경을 읽었죠. 읽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때 성경을, 아마 기독교 신자들보다 내가 더 많이 읽었을 거예요. 당시 수용소에 있던 분들하고 천도교인이라는 걸 서로 알게 됐을 때 어떠셨어요? 무척 반갑죠. 91수용소에 있을 때는 완전히 우익이 장악하고 있을 때니까 내놓고 얘기를 할 수가 있을 때예요. 그래서 2대대 경비대에 가서 안에 시일을 봤거든요. 황승훈 씨 이분이 경전을 암기한 걸 적었어요. 적으면서, 이게 아니야, 이 글자야, 이 글자야 서로 이러면서 경전을 만들었어요. 그거 가지고서 시일을 보았다니까요. 그때 나 있던 수용소에서는 그렇게 완전히 시일식을 했어요. 시일을 보는데 천덕송은 그때 김영찬 씨라고 하는 분이 아주 잘 가르쳤어요. 그분이 천덕송을 가르치고, 저는 북한에 있을 때도 천덕송을 불러왔기 때문에 수용소에서도 천덕송을 아주 그때 잘 불렀어요. 판문점에 올라가 가지고 거기서도 천덕송 부르고 천덕송 대회도 하고 그랬어요. 거기서. 시일식의 식순은 북한이나 여기나 똑같아요. 당시에 포로수용소에서는 얼마나 계셨죠? 저는 거의 3년 동안 수용소에 있었어요. 투쟁이 너무 심하니까 분리 심사를 하는데, 그때 나오는 방송이 앞으로 며칠 후에 하는 심사는 여러분이 일생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결심을 해야 된다. 이 결심을 한 번 하게 되면 다시 옮길 수가 없다. 신중히 생각해라. 그런 방송이 나왔어요. 그러고 나서 한 줄로 쭉 들어가서 심사관 앞에 가면, 북으로 갈 거냐 남의 잔류할 거냐, 이걸 묻는 거예요. 그런데 그때 방송에서, 혹시 북으로 안 가고 남에 남겠다고 해도 정부에서는 여러분의 장래를 책임지지 않겠다는 거예요. 알아서 해야 되는 거예요. 그렇게 돌아가길 바라는 것처럼 이렇게 방송을 했다고요. 그래서 북으로 갈 거냐, 남으로 갈 거냐, 남으로 가면 이쪽, 저쪽 방으로 들어가면 북으로. 딱 갈라놓는 거예요. 북으로 갈 사람들을 따로 모아가지고 수용소에다 잡아놓고 남에 남겠다는 사람은 여기에 남고. 분리 심사 후 북으로 송환을 거부한 사람 3만 5천 명 정도가 북으로 안 가겠다고 그러고, 북으로 가겠다는 사람이 9만 명이 되었습니다. 한 가지 알아야 하는 것은, 여기에 남겠다는 사람이 반공 때문에 남겠다고 그런 것도 아니고 북으로 가는 사람들이 친공 때문에 간 게 아니에요. 그때 누구나가 생각하기를 통일은 앞으로 2~3년 안에 될 거다. 또 하나는 북한이 그 당시만 하더라도 집단 농장이 안 됐어요. 왜정 때와 똑같았어요. 모든 게 다 국유화됐다고 그러지만 내 집에 살고 있었고 내 땅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그거 생각을 한 거예요. 북한도 지금처럼 집단 농장이 되고 그런 식이 된다면 누가 북으로 가요, 아무도 안 가요. 2~3년만 있으면 통일될 거다. 이런 생각을 하고 분류가 된 거예요. 그래서 북한에 간 사람들은 사실은 그것 때문에 갔지요. 선생님은 어떻게 여기에 남게 되셨어요? 여기(남한에) 나와서 제 고향 사람 한 분 집에 내가 그 집 아들로 입양이 돼서 호적을 만들었어요. 대한민국에서 석방되어 나와서 장교로 있을 때, 그때 호적을 만들었어요. 그 고향 분이 아버지하고 친구고 같은 성주 이 씨예요. 촌수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지만. 이분도 분류 심사할 때 머리를 쥐어 뜯으며 고민하시더라고요. 집에 부모님을 모시고 있었고 처자식이 있었는데, 내가 안 가면 부모님은 어떻게 모시고 자식은 어디 갈 거냐고요. 그런데 내가 말렸어. 가지 말자고. 이제 뭐 2, 3년 있으면 통일될 테니까 가서 고생할 필요가 뭐 있냐고, 그냥 있자고. 그래서 내가 그분을 부모처럼 모신 거예요. 여기서 내가 그분의 아들로 내가 입적을 해가지고서 그렇게. 고민을 하면서도 이제 2~3년이면 통일되겠지 하고서 남았던 사람이 있는 것처럼 또 북에 가는 사람도 그랬어요. 가족들을 생각해서 한 2~3년만 참으면 어떻게든 통일될 거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가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 분리 심사할 때 사실상 북으로 간 사람들 있는데 다 불행하게 됐죠. 북에 갔던 사람들은 전부 아오지 탄광으로 가고 그때 그랬어요. 그리고 이후엔 어떻게 되었나요? 우리는 부산 가야 수용소로 왔습니다. 거제도에서 부산 가야 수용소로 왔어요. 그땐 완전히 반공포로 출신이죠. 가야의 수용소가 a, b, c, d, e, f, g, h까지 있었어요. 그 수용소가 a 수용소 b 수용소 이렇게 해서 h 수용소까지 있었는데 b 수용소가 천도교인만이 모인 수용소였어요. 한 수용소가 한 1300여 명씩이나 됐어요. 천도교인만이 모여 있는 곳이 있었지만. 다른 곳에도 천도교인이 있었어요. 나는 그때 H수용소에 있었어요. 반공 프로들이 여러 수용소에서 분리 심사를 해서 오니까 어떤 데서는 91 수용소에도 들어오고 그랬는데, 혼합이 돼 들어올 때 천도교인들은 H 수용소에 있었는데 지금 당산교구에 있는 안명록 씨라고 그분이 나랑 같이 H수용소에 있다가 온 분이죠. 거기에서 그때 하야리아 부대라고 하는 미군 부대가 있었어요. 거기에 식당 요원을 뽑는데 이 양반이 통역관이니까 같이 나가게 됐는데 그때 미군 식당에서 일을 하게 되니까 신체 검사가 보통 심한 게 아니에요. 몇 번을 가서 검사를 받고 합격이 돼야만 그 식당에 갔어요. 그 쪽에 큰 미군부대가 있어요. 미국에서 오는 모든 장병들이 거기에 왔다가 전방에 나가고, 제대해서 나가는 사람들도 거기 왔다가 다시 본국으로 가는 큰 수용소인데 거기에 식당이 여러 개가 있었어요. 그럼 수용소의 포로들이 인근 부대에서 일을 했다는 말씀이신거죠? 네. 미군 식당이 있었는데 우리가 간 데가 장교식당이에요. 소위에서부터 중령까지만 식사하는 데예요. 그리고 거기에 장군 식당은 대령에서부터 장군들만 식당하는 데가 따로 있었는데, 내가 그 식당에 가서 일을 하게끔 됐어요. 원래는 일반 민간인을 채용해서 쓰다가 그 사람들은 월급을 줘야 되잖아요. 그런데 포로를 쓰게 되면 그게 필요가 없어요. 그러니까 미군들이 일반 민간인들 다 내보내고 포로들, 반공포로에서 골라서 데려왔어요. 저도 그때 안명록 씨하고 같이 거기로 나갔어요. 가서 제가 배치된 곳이 창고였어요. 식품이 꽉 찬 창고를 내가 지키는 일을 맡았어요. 반공포로 석방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나요? 6월 18일날 이승만 대통령이 반공포로 석방시킬 때, 내가 있던 곳은 미군 부대니까 여기는 건드리지 못한 거예요. 우리는 전혀 몰랐어요. 포로들이 석방된 걸. 6월 18일 아침이 기억이 나네요. 내가 매일 아침에 커피를 가져다 줬던 장교가 와 있더군요. 또 커피 가져오라고 그럴 것 같아서 미리 가서 커피 두 잔을 가지고 가서, 그 사람 앞에다 놓고 나도 한잔 마시려고 그랬는데, 나를 딱 쳐다보더니 "너 왜 여기 있냐" 이거야. 난 그 무슨 소리인지 몰랐어요. 왜 도망치지 않고 여기 있냐 이 소리예요. 다 도망쳤다는 거예요. 난 그게 무슨 소리인지 전혀 몰랐어요. 어떻게 수용소 안에서 전체가 다 도망을 칠 수가 있냐, 그걸 모르고 있는데 이 사람이 다 나갔다는 거예요. 그때 밖에서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신문을 가져 왔는데 딱 보니까, ‘포로 전원 석방’이라고 나온 거예요. 우리가 여기에 멀쩡하게 지금 있는데 전원 석방이라고 나온 거야. 아이고, 눈이 캄캄해지는 거예요. 야 이게 우리만 떨어졌구나, 우리만 탈출을 못했구나 이렇게 생각을 했던 거죠. 그래서 그 신문을 여러 사람한테, 같이 일하는 사람들한테, 화장실에다 그 신문을 놓고는 교대로 들어가서 그걸 보고 오라고 했어요. 그때부터는 일을 못하는 거예요. 다들 들떠가지고서. 어디 가야 하나, 우리도 뛰어야 하나. 양놈들이 눈치를 채고 조금 있으니까 무장한 군인들이 확 오더니 그때는 경비 두 명이 따라와 가지고 전부 태워가지고 다시 그 수용소한데다 잡아놓은 거예요. 그날 밤에 한잠도 못 자고 지금도 철조망을 뚫고 나가야 하나, 서로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탈출은 못 했어요. 다음 날 되니까 장갑차가 오더니 무장 군인들이 15명 정도 와가지고 다 태우는 거예요. 문 딱 잠그고서 가는데 우리는 북송하는 줄 알았어. 그랬더니 가야 수용소, 우리가 있던 수용소에다 잡아넣는 거예요. 그런데 a 수용소 b 수용소였는데 거기 가니까 미국 탱크가 정문 앞에다가 또 지키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한국군이 석방을 시켰으니까 탱크들이 와서 지키고 있어요. 우리가(식당에서 일하던 사람들) 그때 한 30여 명 됐어요. 도망치다가 다시 붙잡혀 들어온 사람들 한 60명하고 합류가 된 거예요. 거기다 잡아놨는데 그때부터는 진짜 그 밥이라는 게 먹히질 않는 거예요. 거기서 한 일주일 정도 있다가 갑자기 밤중에 그냥 자는데 그때는 뭐 불침번이고 뭐고 없었을 때예요. 그냥 자고 자는데 밤중인데 막 불을 켜더니 깨우더라고요. 다 배낭 지고서 소지품 가지고 나오라는 거예요. 틀림없이 북송하는 줄 알았어. 절망감이 오면서 어떻게 할 생각이 안 드는 거야. 그래서 어디로 가신 건가요? 어디로 가나, 가만히 보고 있는데 열차를 태우게 되면 북으로 가는 건데... 여수면 역을 지나가더라고요. 수용소에 갔더니 거기도 석방 안 된 사람이 우리 말고 더 있었어요. 한 2천여 명이 거기 있더라고요. 그때부터 9월 달에 판문점 갈 때까지 6월달서부터니까 그 한 서너 달 거기에 있었죠. 그때도 고통스러웠어. 진짜. 거기 있을 때 한국군이 우리 붙잡지 않는다는 거야. 그때는 탈출하게 되면 경찰들도 붙잡아서 미군에게다 갖다 놓는데 이제는 대통령이 석방시켜 주니까 이제 우리 나가면 이제 환영하거든 서로 탈출하려고 그러는 거예요. 철조망이 이렇게 이중 철조망으로 쳐졌는데 땅굴 파기 시작했던 거예요. 또 거기서 그런데 적발이 돼 가지고 탈출을 못 했어요. 그러다 결국은 이승만 대통령이 헌병사령관을 보내가지고 수용소 안에 방송으로 이번에 석방 못 됐지만 여러분들은 판문점에 갔다가 1월달이면 돌아올 수 있으니까 그때까지만 참아달라. 우리 대한민국이 절대적으로 책임지겠다. 그걸 하는 게 그때부터 안심이 된 거예요. 그래서 그러고 나서 그때부터는 우리도 이제 땅굴 팔 생각 안 하고 이제 석 달만 지나면 이제 우리 석방될 테니까, 이렇게 생각하면서 미군하고도 협조가 돼가지고서 미군들도 우리가 해달라는 대로 해주는 거예요. 프랭카트 만들겠다고 하니 천을 가져다 주고 그래가지고 그때 판문점 갈 때는 궁을기를 만들어 가지고 간 거예요. 태극기하고 궁을기 그 당시에 마음대로 만들 수가 있었으니까 나도 그때 궁을기 만드는 방법을 배웠어. 그럼 그 안에서의 신앙생활은 어떻게 하셨어요? 중립지대로 가서는 마음대로 했어요. 그때는 작업도 없이 수용소에 그냥 가만히 있었어요. 그때는 천막 하나를 쳐놓고 교회를 만들었는데, 노상 교회에 가서 살았어. 밥 먹고 가면 교회 가서 천덕송 부르고 그때 경전의 일부가 들어왔던 적이 있었어요. 경전을 가져온 사람이 있었어. 신인철학도 내가 그때 처음 봤어요. 그때 중립지대는 미군은 완전히 손 떼고 인도군이 우리 경비를 했어요. 인도군의 감시하에 경비를 하고 병원 수용소에는 한국 간호원들이 들어와 있었어요. 병원 수용소에서 서로 연락을 하는 거예요. 중앙정보부하고 우리하고의 모든 연락을 간호원들이 했어요. 그래서 그때 각 수용소 간에 연락할 게 있으면 병원으로 입원을 시키는 거예요. 내가 여기에 도서관장으로 오면서, 처음 들어와가지고 그 기록을 찾아보니까, 반공 포로수용소에서 나온 명부가 있더라고요. 나도 그게 있는 줄은 몰랐어. 거기 보니까 내 이름이 나와. 천도교인 그 이름이. (다음 호에 계속) 인터뷰영상 바로가기==>http:// https://www.youtube.com/watch?v=UMIi5P5Dfq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