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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에 도착한 따뜻한 마음청주교구에 온정을 베푼 교인들의 손길이 있어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청주교구 대덕당 주선자 동덕은 65인치 TV, 마이크, 엠프, 스피커 등의 기증 물품을 보며 한울님 은덕에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전 종의원 의장을 지낸 수암 염상철동덕, 연원회 부의장 수암김산 동덕, 마포교구 김정호 동덕이 기증한 물품을 지난 9월14일 김정호 동덕과 서울교구 정상기 동덕이 직접 청주교구를 방문하여 설치하고 성금을 전달하였다. 대덕당 주선자 동덕은 "한울님과 성사님 덕분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마움은 정말로 큰데요, 마음에 무게는 많이 무겁습니다.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 힘든데 이렇게 도움을 받으니 더 힘내서 일하라고 하신뜻인걸 알기에 힘이 닫는데 까지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소감을 전했다. 교구와 교인이 서로 돕는 유무상자의 정신이 널리 퍼져 나가는 천도교의 공동체의식이 빛나는 사례로써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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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덕 164년 전국 교구장회의지난 9월 8일 14시 수운회관 907호에서 정갑선 교무관장의 집례로 현장 참석자 30여 명과 온, 오프라인으로 1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전국 교구장회의가 열렸다. 광암 박상종 교령은 격려사를 통해 "동귀일체할 수 있는 세상을 열어가기 위해 앞장서주시는 전국 교구장님들께 감사드리며 교단의 힘든 일을 극복하고 큰 뜻을 갖고 개벽에 앞장서 주시기를 부탁드리며 앞으로 천도교중앙총부는 교구에 보탬이 되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 포덕에 힘을 모으고 천도교의 발전에 힘을 다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종무보고 내용은 1)교역자 간담회 총평 보고 2) 포덕163년, 164년 연월성미 납부현황 3) 포덕 164년 하반기 권역별 순회 강도회 실시에 따른 협조 요청 4) 지방교구 활성화 지원 사업(안) 5) 2023 성지순례(기획안) 등이 있었고 토의 안건으로 1) 지방 교구 순방 2) 대신사 탄신 200주년 기념사업(안) 3) 천도교 인터넷 신문 활성화(안) 4) 성지순례(안) 5) 수도원 발전방안(안) 그 외에 동학혁명참여자의 독립유공자 서훈 촉구 결의문 낭독이 이어졌다. 교역자 간담회는 지난 1월 15일 부산시교구에서 개최한 1차 간담회를 시작으로 2월 26일 삼천포교구, 3월 19일 호암수도원, 4월 23일 대전교구, 5차는 7월 16일 춘천교구에서 진행되었으며 수도권 간담회는 11월04일 의창수도원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지방교구 강도회 및 특별수련은 신앙회목을 목적으로 모두가 함께하는 수련,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는 수련이 되게 하는 것을 방침으로 9월부터 12월에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총부 종무보고서에 따르면, 각 교구별 합동강도회는 교구에서 전체를 기획하여 인원을 모집하고 강사를 초빙하거나 총부에서 강사를 파견하는 등의 방법이 있다. 진행비와 식사비, 강사비를 지원한다. 각 교구에서는 시행계획 등을 세워 지원 요청 공문을 보내 신청하면 된다. 지방 교구 활성화 지원 사업은 '즐거운 도가 모임'을 지원하며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부제로 1기를 모집한다. 지방교구 활성화와 포덕교화, 즐거운 신앙생활을 구현하여 교당에 오는 것이 즐거운 일이 되도록 하며 신앙심을 회복할 수 있는 마중물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신청 자격은 각 교구 만 18세 이하 자녀가 있는 도가, 위 도가 3~4가족이 모여 소모임을 구성하며 휴면 교인, 신규 교인이 있는 모임을 우선 선정한다. 지원 내용은 1회 1인당 2만원 최대 4회 지원한다. 홈페이지와 SNS, 전화, 이메일 등으로 신청 및 접수를 진행한다. 또한 성지순례에 대해서는 동학(천도교)의 유적지를 찾아보고 스승님들의 성스럽고 숭고한 정신과 가르침을 되새기는 답사를 취지로 하며 동학혁명에 대한 역사적 재인식과 사적지 답사를 통한 스승님들의 삶 체험, 성지순례를 통해 신앙심을 다지고 교인들에게 성지순례의 의의를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히며 10월 12일~13일(1코스), 10월 13일~14일(2코스)에 대한 안내가 이어졌다. 1코스는 서울에서 출발하여 중앙대교당, 윤봉길의사 기념관, 승전목, 춘암상사 유허비, 예산 동학공원 등이며 2코스는 부산에서 출발하여 부산시교구, 대구 달성공원, 최제우나무, 관덕정, 용담정, 대신사 태묘, 생가터, 경주 황성공원 울산 여시바윗골 등을 체험한다. 이 외에도 지방교구를 순방하며 총부와 지방교구의 소통, 포덕, 교화 사업의 발판을 이루고자 하는 지방교구 순방, 대신사 탄신 200주년을 준비하며 수운 최제우 대신사의 삶과 동학의 사상과 정신을 재조명하고 현대적으로 계승하고자 하는 기념사업, 교단의 홍보 매체로서 민족혼과 동학 천도교의 정체성을 담아낼 수 있는 기사와 콘텐츠를 제작하여 포덕, 교화에 앞장서고자 창간한 천도교인터넷신문 활성화 방안, 성지순례와 수도원 발전방안 등의 토의가 이어졌다. 이번 전국 교구장 회의를 통해 지역 교구의 현황과 향후 각 교구 발전 방안에 대해 현안을 모색할 수 있는 뜻깊은 자리였다. 각 교구장은 다양한 지역의 성지순례 건의, 대신사 탄신 200주년 기념 문화콘텐츠 제작 등의 의견을 제시하였으며 회의가 끝난 후 동학혁명참여자의 독립유공자 서훈 촉구 결의문 낭독 후 해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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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유적지를 찾아서(2)2022년 11월 20일 아침 6시에 일어나 동면 화암약수터 입구까지 산책하다가 오는 도중에 정선문화원과 정선군 향토사연구소에서 설치한 동학유허지 싸내에는 (동학교조 수운 대신사 부인 박씨 사모님이 말년에 기거하시던 곳이다) 대신사가 1864년 참형을 받아 순도하신 이후 박씨 사모님은 단양접주 민사엽(閔士葉)의 도움으로 정선 문두곡에서 사시다가 민사엽이 환원하자 이곳저곳을 전전하면서 고통스럽게 살았다. 그후 2세 교조 해월신사(海月神師)가 정선지역에서 자리를 잡게 되자 도접주 유인상(劉寅常) 등의 주선으로 1872년 이곳 싸내(米川)에 정착하시게 되었다. 대신사부인 박씨 사모님은 동학도인(東學道人)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다가 1873년 12월 10일 향년 49세로 환원하셨다고 적고 있다. 그 후에는 사시던 터라는 곳은 찾을 길이 없이 싸내에 유허지만 남아 있다. 우리 일행은 유허지 밑에 꽃씨를 뿌리고 아침식사를 마치고 점심도시락을 각자 받아가지고 숙소 근처에 있는 화암동굴(畵岩洞窟)을 견학하기로 하여 도보로 동굴에 도착, 화암동굴은 금광석과 석회석 자연동굴이 함께 어울러져 있는 세계 유일의 화암동굴은 세계문화 유산이 되었단다. 대자연의 신비 화암동굴은 동양최대 규모의 유석폭포는 높이 28m의 황금색 종류 폭포로 웅장한 규모가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조금 더 내려가면 6억년 동안 생성된 대석순과 석주(石柱)가 자리잡고 부처상과 성모마리아상은 정교하기가 극치를 이루고 남근(男根)은 천하일품이다. 화암동굴을 관람하고 우리는 해월신사께서 49일 기도를 하신 적조암(寂照庵)으로 자동차 편에 분승하여 태백산 고한으로 출발하였다. 적조암 입구에 고한(古汗) 사랑이라는 서비(石碑)가 있으며 아래쪽에 정선문화원에서 세운 동학유허지에 기록을 보면 적조암은 동학2세 교조 해월신사 최시형(海月神師 崔時亨, 1927-1898년)가 1872년 10월 15일부터 12월 5일까지 49일의 특별기도를 드린 곳이다. 당시 해월신사는 적조암의 老스님 철수좌(哲首座)의 양해를 얻어 강수, 윤인상, 전성문, 김해성 등 동학의 지도자를 대동하고 특별기도를 하였다. 이 특별기도는 이필재의 난(1871년 3월)에 풍비박산이 된 동학교문이 다시 일어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후에 강원도 정선과 영월, 충청도 단양 등 삼남일대로 교세를 넓혀 1894년 갑오동학혁명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곳에서 적조암으로 오르는 길은 산길인데, 바닥이 돌로 되어 있어 울퉁불퉁하여 잠시도 소홀히 하면 넘어질 수 있어 조심조심 가파른 돌길을 오르는데 힘이 들어 몇 번 쉬었다가 오르니 적조암에 도착하였다. 이정표가 있어 살펴보니 정암사 2.8km 만항재 3.7km 자장율사 순례길이라 기록되었는데 적조암은 흔적만 남아 있다. 적조암의 터를 보니 배산(背山)이 병풍을 쳐놓은 듯 좋으며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며 안산(案山)이 조화를 이루었는데 개울물이 돌속으로 숨어 흐르니 물을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우리는 점심식사를 한 후에 기도를 시작하여 오후 4시에 끝나 하산하기 시작하였다. 적조암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는 자동차편으로 고한역이 아닌 민둥산역으로 출발하였다. 민둥산역은 옛 지명은 증산역이었다. 증산역은 지명(地名)에서 유래되었는데 동쪽에 고부산 북쪽에 지억산 남쪽에 두위봉이 둘러선 가운데 시루봉이 있다는 증산 떡시루 갔다하여 증산이라 하였는데 석탄생산으로 한때 번창하였지만 이미 지나가 버렸기 때문에 새로 2009년 주민들이 민둥산역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통하여 관광자원으로 활력을 찾고 있다. 억세풀축제로 말이다. 우리는 민둥산 역에서 서울 청량리 도착하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좌석표가 있어 피곤함을 풀기가 좋았다. 사진, 글_ 허 유 충남 공주 출생. 아호 : 창포(蒼.浦). 서예가. (사)한국비림박물관 관장. 문화예술신지식인. 한국비림박물관서화대전 운영위원장. 중국한원비림 고문. 중국상지비림 명예박물관장. 중국중원공자학회 명예회장. 한국고서연구회 부회장. 세계비림협회 한국대표. 중국한국명예대사. <한빛문학> 수필부문 신인상 수상 등단. 제4회 <한빛문학상> 수상. 한국문학예술저작권협회 회원 *본 글은 2023 제13회 <시와 창착 문학상> 특별문화대상 수상작으로 저자와 잡지사의 허락을 받아 본지에도 게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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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덕 164년 9월 17일 천도교중앙대교당 시일식설교 -무궁한 이 울 속에 무궁한 내 아닌가- 순회교사 윤암 양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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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의 성지 탑골공원 성역화 학술대회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로YMCA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탑골공원 성역화 학술대회’에서는 공원 위치와 건축물 의미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소개됐다. 15일까지 이틀간 진행되는 학술대회는 탑골공원 성역화 발기인회에서 개최했다. 종로 탑골공원은 대한제국 시절인 1897년 조성된 첫 공원으로 3·1운동의 근거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우선 인하대 임정규 교수와 한국천문연구원 양홍진 박사는 조선의 천문학·지리학 연구에서 탑골공원을 기준으로 삼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근거들을 제시했다. 태양이 남산 가장 위에 떴을 때 높이 솟은 원각사 석탑의 그림자는 방향 기준이 돼 이에 따라 도성의 남북선이 놓이고 동서 기준선도 정해졌을 것이라는 가설이다. 이번 학술대회는 14일에 개최되어 정문헌 종로구청장의 개회사, 이종찬 추진위원장의 기념사, 천도교 박상종교령의 축사에 이어 '탑골공원의 지정학과 역사', '3.1운동 정신과 독립정신', '3.1운동의 세계사적 위상', '탑골공원과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주제로, 15일에는 '서울의 중심 탑골공원 입지의 융합적 분석', '흥복사지와 원각사의 역사적 의미', '탑골공원을 중심으로 한 조선 실학시기의 백탑파의 활동', '대한제국기의 탑골공원', '탑골공원을 중심으로 한 조선후기 선교사들과 조선청년들', '국외와 국내 대일항쟁의 상징', '건축에서 탑골의 의미를 어떻게 투영할 것인가?', '탑골공원과 천도교' 등의 주제로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탑골공원과 천도교'라는 주제로 발표에 나선 성강현 동의대학교 역사인문교양학부 겸임교수는 "탑골공원이 우리 역사의 주목을 받은 것은 기미 3·1독립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기인한다. 일제강점기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으로 대한민국 건국의 출발점이 된 3·1독립운동은 천도교・기독교・불교의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으로 국내외에 조선의 독립을 선언한 민족운동의 쾌거였다. 민족대표 33인이 서명한 독립선언서를 1919년 3월 1일 하오 2시 탑골공원에서 학생대표가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고, 이를 기회로 3·1독립운동은 전국으로 나아가 해외로 확산되었다. 3·1독립운동은 국내 외 민족운동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국내에서는 제2의 3·1독립운동 등 수많은 독립운동과 민족운동이 전개되었고, 해외에서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만주와 연해주의 무장 독립전쟁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밝히며 3.1운동 당시 탑골공원의 장소적 의미와 역사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이어 3.1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천도교단은 3·1독립운동에서 인적 물적 자원을 총집결하였으며 천도교 제3세교조 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 선생을 위시해 전국의 명망이 있는 원로들이 민족대표에 서명하여 천도교중앙총부는 일경이 점령하고 재산을 몰수하였던 바를 강조했다. 이에 따라 천도교는 큰 어려움을 겪었으며 천도교 청년들은 교단을 수습하고 다시 역량을 집결해 민족운동의 한 축을 담당했다는 사실과 3.1운동 이후에도 천도교는 국내에서는 어린이 운동으로 대표되는 신문화운동, 6·10만세운동, 신간회 운동, 조국광복회 운동, 멸왜기도 운동 등을, 국외에서는 무장 독립전쟁을 지원하고 동참하였음을 밝혔다. 동학의 교조 수운 최제우 대신사는 유교적 질서 즉 지벌(地閥)・문벌(文閥)의 철폐를 주장하였으며 2세 교조 해월 최시형 선생에 의해 더욱 실천적으로 민중에 파고들었던 동학의 사상은 의암 손병희 성사 시대에 독립운동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3·1독립운동에서 의암 선생이 차지하는 위치는 당시의 언론 보도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당시의 언론에서는 3·1독립운동으로 재판 보도에 “손병희 일파 47인”, “손병희의 음모에서 발생하였다” “손병희 외 46인”, 더 나아가 “수령(首領) 손병희 이외 46인”으로 표기해 선생을 3·1독립운동의 영도자임을 밝혔다. 일제강점기 의암 선생에 관한 기사가 270여 건에 달할 정도로 일제는 의암 선생과 천도교의 동향을 예의 주시했다. 한편 종로구청은 탑골공원의 위상을 정상화하고, 모두 함께 찾는 공간으로 재정비하려는 계획이다. 이른바 ‘탑골공원 성역화’ 사업이다. 이를 위해 탑골공원의 담장 허물기가 하나의 방책으로 꼽히고 있다. 서울 도심에 조성된 첫 근대식 공원인 파고다공원은 국보 원각사지 10층 석탑, 보물 원각사비가 있고 3.1운동의 성지인데도 불구하고, 주위를 둘러싼 담장으로 인해 외부와 단절된 섬처럼 갇힌 공간이 돼버렸다. 종로구는 학술대회를 통해 이뤄진 연구 등을 바탕으로 문화재청과 서울시와 협의해 탑골공원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공간적 특성을 살리는 방식으로 공간 구조를 바꾸는 정비를 추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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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덕164년 9월 10일 천도교중앙대교당 시일식설교 : 사사상수와 자재연원 선도사 성암 오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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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유적지를 찾아서(1)2022년 11월 19일 토요일 오전 7시 34분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동해 - 중앙선 열차에 몸을 싣고 박동산 선생님의 인솔 아래 16명이 동행하였다. 정선 민둥산 갈대축제로 기차표가 매진되어 입석으로 가게 되었다. 성강현 교수님, 종무원, 정갑선 현 교무관장, 여성회장 등이 합류하여 정시에 출발하였다. 좌석이 없으니 사람이 없는 자리를 찾아다니면서 기차는 달리고 있다. 벌써 덕소, 양평을 지나 용문 지평을 지나더니, 석불(石佛), 일신 매곡(梅谷) 양동, 삼산을 거처 서원주(西原州)에 도착하니 자리가 많이 남아 우리 일행 모두가 의자에 앉게 되었다. 원주(原州)역에 9시에 도착 제천, 연당, 영월, 예미(禮美)을 지나 자미원역 민둥산 역에 10시45분에 도착하여 남면(별아곡역) 옆 청솔가든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목적지 동면 싸네로 도보행진으로 출발하였다. 정성군 남면은 정선아리랑의 발상지로 고려가 망하고 두문동(杜門洞) 72인 중 7인이 정선으로 은거하던 곳으로 매일같이 고려 수도가 있는 송도(松都)에 북향 제배하고 충신불사2군(忠臣不事二君)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 충절로서의 지조를 지키던 곳이다. 두문동 7인은 전오륜, 김충한, 고천우, 이수생, 황의용, 변귀수, 김한 등 7현(七賢)이 매일같이 산위에 올라 통곡하여 한시(漢詩)로 달래니, 이 시(詩)가 인근에 전하여져 정선아리랑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1978년경에 정선문화원 최문규 원장이 두문동 7인의 도원가곡(桃園歌曲)의 자료를 발견하여 정선역 광장에 도원가곡비를 세우게 되었다. 내가 제호를 쓰게 되어 제막식에 참석하여 그후로 매년 화암약수(畵岩藥水)터 시비(詩碑)를 지은 정공채 시인과 같이 최문규 원장의 초청으로 하계학교 강사로 참석하였기 때문에 낯설지 않았는데, 남면에서 동면으로 넘어오는 길은 초행이며 도보(徒步)로 걷다보니 다리도 몸도 말을 듣지 않았다. 중간에 잠시 쉬어가는 길목 작은 동리에 처음 보는 고목이 느릅나무(楡)라고 하는데 730년 되는 수령이며 보호수(保護樹)란다. 그 동네에 군락을 이루는데 3그루가 제일 오래된 보호수다.(정선군 남면 유명리) 고구려 평원왕 공주가 어려서 울기를 좋아하여 왕인 아버지가 자주 울며는 장차 공주는 바보 온달한테 시집보낸다고 하였더니 공주가 자라서 아버지 평원왕 호위무사장군한테 정혼하려고 하니 공주 말이 어렸을 때 바보 온달한테 시집보낸다고 하셨으니 바보 온달한테 시집간다니 바보 온달보다 바보 공주가 아닌가. 시녀 한 명과 금은보화를 가지고 산속으로 바보 온달을 찾아가 보니 늙은 어머니는 장님이고 온달은 나무꾼인데 그래도 공주는 어려서 아버지가 맺어준 인연이라 생각하고 패물을 정리하여 말(馬)을 사고 훈련시켜 장군을 만들었는데, 힘이 천하장사라 젊어서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생계를 하다 보니 그중에 느릅나무로 양식을 하였다는 말이 있다. 지금도 중국 집안시(集安市) 그 당시 고구려 수도에 가며는 느릅나무로 녹말을 만들어 국수와 부침도 해먹고 있다. 남면에 있는 730년이나 되는 느릅나무는 대단한 보호수다. 느릅나무 보호수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싸내를 향하여 걷고 또 걸어 화암 약수터에 도착하였다. 나는 몇 차례 약수터에 왔기 때문에 낯설지가 않았는데 화암장(畵岩莊) 숙소가 변하였다. 서울에 계신 김수복(金洙福) 여사가 운영하던 곳으로 정선문화원 최문규 원장과 2박 정도 숙박을 하였었다. 김수복 여사는 5년 전에 고인이 되셨다고 여걸로 소문이 나 있었는데 고인의 명복을 빌 뿐이다. 화암장이 지금은 군청에서 인수하여 화암 콘도를 개조하여 관광객들을 받는다고 하며 화암약수터는 그대로인데 정공채 시인의 시가 나그네를 반기네요. 화암 약수터까지 성강현 교수, 정갑선 교무관장 나와 셋이서 약수 한 잔씩 마시고 탁주일배를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 없어 다시 싸내로 출발 숙소에 도착하였다. 숙소에서 1시간을 기다리니 동학도들이 도착하기 시작, 꿀맛 같은 만찬으로 시작 기도를 하고 12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사진, 글_ 허 유 충남 공주 출생. 아호 : 창포(蒼.浦). 서예가. (사)한국비림박물관 관장. 문화예술신지식인. 한국비림박물관서화대전 운영위원장. 중국한원비림 고문. 중국상지비림 명예박물관장. 중국중원공자학회 명예회장. 한국고서연구회 부회장. 세계비림협회 한국대표. 중국한국명예대사. <한빛문학> 수필부문 신인상 수상 등단. 제4회 <한빛문학상> 수상. 한국문학예술저작권협회 회원 *본 글은 2023 제13회 <시와 창착 문학상> 특별문화대상 수상작으로 저자와 잡지사의 허락을 받아 본지에도 게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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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암 박상종 천도교 교령, '서울 탑골공원 역사적가치 바로알기 심포지엄'참석탑골공원 성역화 발기인회(회장 이종찬)는 9월 14일~15일 ‘탑골공원 성역화를 위한 학술회의’를 종로2가 YMCA 대강당에서 개최한다. 이 학술대회는 3·1운동의 가치를 잃어버린 채 낙후·노후되어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탑골공원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진정한 가치를 되찾기 위한 사업추진을 위한 협력 공감대를 조성하고자 종로구(구청장 정문헌)가 주최하는 ‘탑골공원 성역화 사업’의 일환이다. 9월 14일 오후 1시 개막식에서 광암 박상종 천도교 교령은 “일제강점기 최대규모의 민족운동으로 대한민국 건국의 출발점이 된 3·1독립운동이다. 의암 손병희 성사 등 민족대표 33인이 서명한 독립선언서를 1919년 3월 1일 하오 두시에 탑골공원에서 학생대표가 낭독을 하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를 기화로 3·1운동은 전국으로 뻗어나갔고 해외로 확산되었다. 3·1운동의 성공은 10년 내로 나라를 되찾겠다고 하신 의암성사의 결단과 치밀한 준비과정 결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탑골공원에 있는 의암성사의 동상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탑골공원의 역사적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라며 학술대회의 의미를 강조하였다. 이어서 종로구 최재형 국회의원, 정문헌 종로구청장이 인사말을 하였고 오후 5시까지 학술회의가 진행된다. 축 사 모시고 안녕하십니까. 저는 천도교 교령 박상종입니다. 탑골공원은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근대적 공원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의 탑골공원의 위상을 더 높이고 우리 역사의 주목을 받은 것은 기미년 3·1독립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일제항쟁기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으로 대한민국 건국의 출발점이 된 3·1독립운동은 천도교・기독교・불교의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으로 국내⦁외에 조선의 독립을 선언한 민족운동의 쾌거였습니다. 의암 손병희 성사님 등 민족대표 33인이 서명한 독립선언서를 1919년 3월 1일 하오 2시에 탑골공원에서 학생대표가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고, 이를 기화로 3·1운동은 전국으로 뻗어 나갔고, 해외로 확산되었습니다. 3·1운동은 국내⦁외 민족운동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국내에서는 제2의 3·1운동 등 수많은 독립운동과 민족운동이 전개되었고, 해외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고, 만주와 연해주에서는 무장 독립 전쟁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천도교단은 3·1독립운동에서 인적 물적 자원을 총동원 하였습니다. 3·1독립운동 이후에도 천도교는 국내에서는 어린이 운동으로 대표되는 신문화 운동, 6·10만세 운동, 신간회 운동, 조국광복회 운동, 멸왜기도 운동 등을 전개하였고, 국외에서는 항일무장 독립전쟁을 지원하고 적극 동참하였습니다. 이렇게 천도교가 일제항쟁기 국내 최대의 역량을 가진 조직으로 성장하고 민족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의암 손병희 성사님의 내 나라를 반드시 되찾고야 말겠다는 결단과 치밀한 준비과정, 지도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의암성사님의 결단이 3·1운동의 성공을 가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탑골공원의 의암 손병희 성사님 동상은 평생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탑골공원의 역사적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개최되는 <3·1운동 성지 탑골공원 성역화의 역사적 의미>에 관한 학술대회는 보다 더 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학술대회를 통해 소중한 문화유산인 탑골공원의 역사적 가치가 재조명되기를 심고합니다. 끝으로, 이번 학술대회를 주최하신 정문헌 종로구청장님을 비롯하여 바쁘신 일정 속에서도 참석하여주신, 이종찬 광복회장님, 최재형 국회의원님, 발표와 토론을 맡아 주신 모든 분들과 참석해주신 내⦁외 귀빈 여러분, 그리고 행사 관계자 분들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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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골공원 역사적 가치 바로알기 심포지엄오늘 서울YMCA회관 대강당에서 서울 탑골공원 역사적 가치 바로알기 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 광암 박상종 천도교 교령, 정갑선 교무관장, 문범식 전서실장이 참석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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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 김명진 종법사 추모식 봉행우암 김명진종법사 환원 33주기를 맞아 포덕164(2023)년 9월 13일 11시 남해선구교구에서 추모식을 봉행했다. 이날 추모식에는 신암 송범두 도정을 비롯하여 서울, 부산 등지에서 많은 동덕이 참석하였다. 박 철 선구교구장의 집례로 교회의식에 이어 용암 김환용 도훈의 약력소개, 수인당 손윤자 선도사의 경전봉독(성령출세설), 건암 김대부 동덕의 추모사, 분향, 원암 김용 동덕의 유족대표 인사 순으로 진행되었다. 건암 김대부 동덕은 추모사를 통해 종법사님의 생전을 회고하며 후학으로서 종법사님의 유훈을 받들어 남해지역 천도교 발전을 위해 더욱 정진할 것을 다짐하였다. 추모식을 마친후 참석하신 동덕들은 인근 선산의 종법사 묘소를 참배한 후 예약한 음식점에서 식사를 곁들이면서 종법사님을 기리는 담소의 시간을 가졌다. 김명진종법사는 천도교 남해선구교구장과 중앙총무 종무원장을 역임하는 등 평생을 교단발전과 포덕천하를 위해 애썼고 1971년에는 천도교 최고 예우인 종법사에 추대된 교단의 큰 어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