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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동학어린이날 행사 동심꽃 한마당세계 최초의 어린이날은 1922년 5월 1일 소파 방정환을 중심으로 하여 천도교청년회에서 시작했다.2024년 지난 5월 1일, 오후4시부터 7시까지 그 첫 번째 어린이날의 의미를 새기며 용담정과 동학교육수련원에서 어린이와 다시어린이(어른)가 함께 <동심꽃 한마당>으로 동심을 회복하는 새날을 열었다. (사)경주동학역사문화사업회가 중심이 되어 방정환배움공동체, 한살림경주, 동학사상을 근간으로 하는 세 단체가 공동주관하였다. 먼저 용담정에서 어린이와 다시어린이가 5월의 초록 용담정 숲을 산책하며 ‘방정환’,‘동심꽃’,‘어린이’로 삼행시를 쓰고, 나무방울에 서로의 얼굴을 그리고, 어린이 말꽃을 표현하며 달달콩을 먹고, 맑은물에 마음을 담은 뒤 마주 보고 큰절을 하였다.동학교육수련관으로 내려와서 체험놀이와 공연관람을 하였는데, 경주동학역사문화사업회에서는 자연물과 구슬로 마음팔찌 만들기, 방정환배움공동체에서는 풀과 나뭇가지 등 자연물 붓으로 자유롭게 그림그리기, 한살림경주에서는 샌드위치 만들기와 어린이 홍삼액을 제공하였다. 공연은 방정환선생의 동화 중 ‘4월 그믐날 밤’과 ‘시골쥐의 서울구경’을 은행나무어린이도관 선생님들이 빛그림으로 귀맛나게 보여주었다.‘우창수와 개똥이들’은 참가자들의 마음을 열어주는 노래로 참가자들이 감동하고 공감하는 무대를 펼쳐주었습니다. 공연 마지막에는 참가자 모두가 함께 어우러지는 무대를 만들어 주었다.행사를 주최한 관계자는 “동심꽃 한마당을 응원하며 정성 보태주신 천도교 경주교구와 교인들, 용담교구와 교인들, 부산남부교구, (사)경주동학역사문화사업회 이사님들, 어린이홍삼을 제공해준 가림다마을영농조합(도상록)에 고맙절 올립니다. 경주와 인근지역에서 참여해준 시민들께도 고맙습니다. 경주동학역사문화사업회는 방정환배움공공체, 한살림경주와 함께 동심꽃이 활짝 피어나는 세상을 소망하며 <동심꽃 한마당>을 펼쳐 나아가겠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사진 및 자료제공 : 최경미_경주동학역사문화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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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한울학교, 어린이와 함께수원교구 어린이 지도교사(초등 및 유치원 교사)들이 유소년과 학생들을 위해 운영해오던 경기한울학교가 개최된다. 이번에는 천도교대학생단에서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서울, 경기 인근 교구의 어린 한울님들을 위해 마련된 이번 행사는 5월 18일부터 19일까지 1박 2일에 걸쳐 진행되며, 아이스 브레이킹을 시작으로 자연과 교감하는 숲 체험, 자연과 함께하는 미술놀이, 몸으로 놀아요, 보물 찾아 삼만리, 우리끼리 시일식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서울, 경기 인근 교구의 도가에서 많은 관심과 참여가 기대된다. 웹포스터에 안내된 연락처로 이름/나이/교구/거주지역/보호자 번호를 문자 메시지로 신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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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상을 향해 새로운 문을 연 사람, ‘한울사람 손병희’ 공연의암 손병희 성사가 태어나 자란 충북 청주에서 선생의 삶을 그린 음악극 '한울사람 손병희'가 제작되어 무대에 올랐다. 종교지도자, 독립운동가, 교육가 등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다 순국한 의암 손병희 성사의 일대기가 음악극으로 재현되었으며 청소년부터 어른까지 전세대가 공감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인 흔적이 엿보였다.특히 올해는 의암 성사가 일제강점기에 국권회복을 위해 민족대연합을 통해 민족대표 33인의 대표로서 3·1혁명을 주도해 대한민국의 자주독립의 기초를 세운지 105주년을 맞아 그 의미가 더 크다. 이번 공연은 의암 선생의 일대기를 단순히 나열하지 않고 의암 선생이 걸어온 길, 사람 사는 세상의 닫힌 문을 열려 했던 100년 전 사람들의 극진한 삶을 표현하는 음악극이다. 이번 공연은 3.1운동을 이끈 민족의 지도자 '의암 손병희'를 넘어 동학혁명의 지도자로서 전봉준과 형제의 연을 맺고 동학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갔던 인물로서, 그보다 앞서서는 신분의 벽을 넘어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소년 '응구'의 꿈을 그리고 있어 더 의미가 있다. 의암 성사가 꿈꾸던 세상,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오늘을 돌아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한울사람 손병희’ 출연진은 신태희(손병희 역), 이상범(최시형 외), 홍정연(주옥경 외), 장재영(이용구 외), 진향래(조화정 외), 이예은(삼식이 외), 진성호(이등박문 외), 최은성(손응구 외), 한명일(전봉준 외) 등이다. 작품의 각색 및 연출 겸 전봉준 역할을 맡았던 온몸 주식회사 한명일 대표는 이 작품에 대해 '100년 전 이 땅을 다녀간 사람들의 정성을 확인하는 일'이라고 작품을 소개한다. 한명일 대표에 따르면 이 작품은 파란만장한 의암 성사의 일대기를 단순히 나열하지 않으려고 했으며 사람 사는 세상의 닫힌 문을 열려고 했던 사람들, 그 중심에 서 있던 의암 성사의 삶을 담아내고 싶었다고. 심수영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기억하자고 말하고 싶다. 마지막 한 사람까지 새 세상의 문을 열고자 했던 갑오년의 그 날과 기미년의 그 날을 산 사람들을. 우리가 기억하는 한 그들은 실패한 것이 아니리라."라고 밝혔다. 음악극 '한울사람 손병희' 무엇을 담아냈나 소년 손응구의 문-1861년 청주 금암리에서 태어난 손응구는 귀천빈부 적서노주의 차별, 그 벽들이 사라지는 세상을 꿈꿨다. 그렇게 선택한 것이 동학이었다. 동학은 응구에게 새 세상으로 가는 문이었다. 청년 손병희의 문-해월 최시형 신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는' 새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1894년 갑오년 녹두장군 전봉준과 의형제를 맺으며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로서 나아가지만 전국의 수많은 동학군들은 녹두꽃으로 스러진다. 이상한 나라, 이상헌의 문-'이상한 나라'를 떠나 다른 '이상한 나라'로 건너간 손병희 성사는 '이상헌'으로 불린다. 갑오년의 동지들, 의로운 맹세를 가슴에 품는다. 3.1만세운동, 의암의 문-1906년 일본에서 돌아온 의암 성사는 교단을 정비하고 천도교로 개칭한다. 천도교는 학교를 세우고 신문과 잡지를 발행하고 여성운동과 어린이운동을 펼친다. 새로운 독립의 문을 열기 위해 마침내 그날, 기미년 3월 1일이 온다. 의암 성사가 태어나 자란 청주에서 의암 손병희를 만나다 이 작품은 청주시,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의 주최로 무대에 올랐다. 청주민예총과 '온몸'에서 주관하였다. 청주예술의전당 대공연장에서 열린 이 공연에는 음악, 미술, 영상 다양한 장르와의 콜라보레이션이 돋보인다. 지역에서 이러한 대작이 무대에 오르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또한 이 지역의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기반으로 제작되는 것은 어쩌면 책무처럼 지역 예술가들에게 주어지기도 했다. 왜 의암인가, 왜 동학인가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6인이 이 지역 출신이라는 점에서 충북 지역은 3.1운동과 관계가 깊다. 그보다 앞서 1893년 대규모 집회와 동학혁명의 사실상 마지막 대규모 전투라고 할 수 있는 `북실 전투지`이며 동학교단의 중심지였던 보은 장내리는 대도소가 있던 지역이기도 하다. 해월 최시형 신사는 1892년 12월 6일 보은 장내리에 교조신원운동에 필요한 지휘본부인 도소(都所)를 설치했다. 이 때부터 갑오년 내내 장내리 도소는 동학교단의 본부로 활용되는 동시에 혁명운동의 저수지 역할을 했다. ‘메이드인 청주’ - 한울사람 손병희 문화도시 청주를 대표할 문화예술 콘텐츠를 발굴하는 ‘메이드인 청주’는 청주의 기억과 기억을 소재로 문화도시 청주만의 대표 문화 콘텐츠를 발굴·제작하기 위해 기획한 지원사업으로 음악극 '한울사람 손병희'는 지속·집중육성 분야의 선정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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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경기한울학교수원교구 어린이 지도교사(초등 및 유치원 교사)들이 유소년과 학생들을 위해 운영해오던 경기한울학교가 개최된다. 이번에는 천도교대학생단에서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서울, 경기 인근 교구의 어린 한울님들을 위해 마련된 이번 행사는 5월 18일부터 19일까지 1박 2일에 걸쳐 진행되며, 아이스 브레이킹을 시작으로 자연과 교감하는 숲 체험, 자연과 함께하는 미술놀이, 몸으로 놀아요, 보물 찾아 삼만리, 우리끼리 시일식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서울, 경기 인근 교구의 도가에서 많은 관심과 참여가 기대된다. 웹포스터에 안내된 연락처로 이름/나이/교구/거주지역/보호자 번호를 문자 메시지로 신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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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3회 어린이날 행사,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천도교중앙총부는 서울 종로구 경운동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올해로 103번째 어린이날 행사를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라는 슬로건으로 개최하였다. 천도교중앙총부는 매년 어린이날을 기념하는 행사를 주최해왔으며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 슬로건으로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개최하는 어린이날 행사이다. 1922년 세계 최초로 ‘어린이날’을 만들고 어린이 운동을 주도했던 천도교에서 103회째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어린이들을 위해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를 성대하게 열었으며, 오전 11시부터 진행된 어린이날 시일식에는 특별히 어린이가 직접 집례와 경전봉독을 맡아 진행하였으며 이재선 천도교청년회장의 설교, 주용덕 교령대행의 축사가 이어졌다. 집례를 맡은 정연서 어린이는 “할머니를 따라 이곳에 와봤는데 직접 집례를 해보니까 재미있고 또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여기 천도교중앙대교당 너무 멋져요. 방정환선생님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져요. 선생님은 어린이들을 사랑하신 아저씨 같아요. 친구들 만나서 같이 체험놀이 하니까 너무 신나요”라고 소감을 말했다. 주용덕 교령대행은 축사를 통해 “어린이날은 어린이의 존엄성과 지위 향상을 위해 제정됐습니다. 어린이라는 단어는 소파 방정환 선생이 처음 사용했으며, 어린이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대우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922년, 천도교소년회에서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선포한 후 1923년 5월 1일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첫 어린이날 행사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1975년에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었습니다.”라고 밝히며 어린이날을 축하했다. 이재선 천도교청년회장은 설교를 통해 “어린이날은 미래의 주인이 온전한 한울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모든 이들이 함께 기뻐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어린이를 존대하고 한울님처럼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어린이날 기념식에는 조이결, 장채원 어린이가 ‘어린이선언문’을 낭독하였다. 2부 축하공연은 김교영 어린이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역사어린이합창단, 역사청소년합창단의 연합공연으로 ‘형제별, ’잘 가거라 열 다섯 살아‘ ’늙은 잠자리‘, ’눈오는 새벽‘, ’산길‘, ’귀뚜라미‘ 등 방정환 선생의 동시에 곡을 붙인 동요들과 함께 했다. 이어 윤석중 작사, 윤극영 작곡의 ’어린이날 노래‘ 등을 불러 어린이날의 의미를 더했다. 역사어린이청소년합창단은 역사음악연구소 산하의 합창단이며 2003년에 창단되어 활동하고 있다. 어린이날을 맞아 40여 명의 역사어린이청소년합창단이 공연에 함께하였으며, 박용진 역사음악연구소장은 “의미있는 행사에 어린이들과 공연을 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방정환 선생님의 노랫말에 곡을 붙여 함께하게 되어 어린이들도 참 신나는 마음으로 이곳에 왔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2부 사회를 맡은 김교영 어린이는 "작년에 이곳에서 믿음상을 받았어요. 오늘 2부 사회자로 이자리에 서게 되어 기쁩니다. 어린이날은 늘 신나는 날인데 오늘은 사회자의 역할도 하게 되어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번 행사에는 천도교대학생단 및 봉사자들도 함께했다. 인형만들기, 팔찌염주만들기, 모형 대교당 만들기, 비누방울놀이 등의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어린시절부터 부모님을 따라 천도교대교당에 왔던 박대현 동덕은 어린이날 봉사활동을 함께하며 “어릴 때는 많은 어린이들이 이 행사에 참여했는데 어른이 되어 함께하고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청년이 되어 이 자리에 왔는데 동생들에게 더 많은 걸 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라고 말했다. 어린이날은 일제하에서 소년운동을 벌이던 ‘천도교소년회’를 중심으로 제정이 이뤄졌다. 방정환 선생은 천도교 3세 교조 의암 손병희 성사의 사위로 독립운동가이자 ‘어린이’ 잡지를 창간한 아동문학가로 어린이운동에 평생을 바쳤다. 한편 제2회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는 103년 전 어린이날을 만들고 102년전 첫 어린이날 행사를 개최했던 역사와 천도교 교리에 따라 사회적 실천으로서 행한 어린이운동을 계승해가고 있다. 아래는 주용덕 교령대행의 축사 전문이다. 모시고 공경합니다. 오늘은 미래 사회의 주역인 어린이들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된 103회째 맞는 어린이날 이자, ‘제2회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 기념행사가 열리는 날입니다. 어린이날을 맞은 전국의 천도교 어린이 여러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비가 와서 마음이 환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어린이들이 즐겁고 행복한 날이 되어야 합니다. 맑고 고운 눈빛과 순수한 마음을 가진 우리 어린 한울님…! 오늘, 자유롭게 꿈을 펼칠 수 있는 행복한 시간 보내기를 바랍니다. 어린이날은 어린이의 존엄성과 지위 향상을 위해 제정됐습니다. 어린이라는 단어는 아동 문학가이신 소파 방정환 선생이 처음 사용했으며, 어린이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대우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922년, 천도교 소년회에서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선포한 후 1923년 5월 1일 천도교 교당에서 첫 어린이날 행사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1975년에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었습니다. 어린이날을 제정하게 된 배경은 해월 최시형 신사께서 “어린아이를 때리지 말라. 아이를 때리는 것은 한울님을 때리는 것이니라.”라고 한 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어린이 헌장에도 “어린이는 나라와 겨레의 앞날을 이어 나갈 새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린이날은 모든 국민과 부모들이 언제나 어린이의 인격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어린이가 행복하고 즐겁게 자랄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어린이 여러분은 우리의 희망이요, 미래입니다. 어린이 여러분! 오늘 하루 마음껏 즐기며, 꿈과 희망이 가득한 하루가 되기를 심고 합니다. 다시 한번 어린이날을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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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종교협의회 동학혁명기념관 방문5월 1일(수)~5월 3일(금) 사단법인 민족종교협의회가 2박 3일간 전북지역 성지순례를 하였다. 이번 성지순례는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한재우 사무총장이 인솔하였으며, 이재선 천도교청년회장이 전반적인 답사를 진행을 하였다. 또한 천도교에서는 박차귀 민족종교여성회장(천도교부산시교구장), 박징재 천도교여성회장, 고윤옥 천도교여성회부회장 등 천도교여성회 지도자들이 대거 참여했으며, 장인갑 천도교부산대동교구장, 이길호 천도교전주교구장(기념관, 전주교구 동참) 등 많은 천도교 교역자들이 참여했다. 동학·천도교 관련 답사는 이윤영 동학혁명기념관장(천도교직접도훈, 세계종교평화협의회 천도교대표이사)이 해설을 하였다. 이번 성지순례는 2박 3일간의 일정으로 120여명이 전북특별자치도 내 민족종교 성지순례를 하였다. 한국민족종교협의회 주최, 문화체육관광부 후원으로 5월 1일에는 전북 남원 갱정유도회본부와 만인의총, 그리고 교룡산성 내 천도교 성지 은적암을 답사했다. 2일에는 전주한옥마을에 위치한 동학혁명기념관·천도교전주교구를 중심으로 동학·천도교 유적지 풍남문과 전라감영 선화당, 그리고 경기전 등을 답사하였다. 또 증산도 덕진도장과 원평 증산법종교를 방문하였다. 3일에는 익산 원불교중앙총부 방문을 끝으로 전북지역 성지순례를 마감했다. 이번 <2024 민족종교 성지순례>는 지난 4월 13(토)~4월 14일(일) 이틀간 사단법인 한국민족종교협의회 주최, 문화체육관광부 후원으로 전북 전주, 남원, 익산, 김제 일대에서 2024 제1차 마음 쉼 힐링캠프 즉 성지순례 사전답사에 이어 제 2차 성지순례가 열리게 된 것이다. 이윤영 동학혁명기념관장은 전주권 풍남문, 전라감영, 전주한옥마을, 동학혁명기념관 등 동학·천도교 관련 유적지 탐방에서 자세한 해설을 하였다. 이윤영 관장은 해설을 통해 "전주 풍남문은 당시 호남제일성으로서 동학농민혁명군이 전주성을 점령할 때 서문과 함께 이곳 남문을 통하여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 장군 등이 무혈입성 즉 피 흘리지 않고 함락한 역사적인 건물이자 장소입니다. 이후 일제강점기 때 전주성을 모두 헐었는데 유일하게 풍남문만 남았고, 전주성을 헐은 돌로 전동성당을 건축할 때 일제에 의하여 성당 밑에 깔아 동학정신을 짓밟게 하였다는 즉 민족정신을 짓밟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전라감영 선화당은 당시 전주성을 점령한 전봉준 동학군 총대장과 김학진 전라감사와의 회담에서 전라도 일대에 동학집강소 설치와 폐정개혁안 실현을 담판한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와 동아시아 최초로 사람이 하늘인 민주자치시대를 연 유서 깊은 곳입니다. 이곳에 「동학농민혁명과 선화당」이란 특별한 안내판 있는데, 이윤영 동학혁명기념관장의 주선으로 2022년 설치되었습니다. 그리고 전주한옥마을에 위치한 동학혁명기념관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1994년 동학혁명1백주년을 기념하여 천도교에서 정부지원금과 천도교인 성금으로 기공하였으며, 완공은 1995년 5월 31일 동학혁명군 전주성 점령일을 기해 개관식을 하였습니다. 동학혁명기념관 전시관은 동학사상부터 동학농민혁명 전체 과정은 물론 3.1독립운동을 중심으로 의병운동, 출판문화운동, 여성운동, 어린이운동 등 우리나라 근대사 1백년의 역사가 전시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윤영 관장은 동학혁명기념관 내 전시관 해설 및 강의에서 동학농민혁명의 전반적인 설명과 대신사 수운 최제우, 해월신사 최시형, 의암성사 손병희, 춘암상사 박인호 선생으로 이어지는 동학사상과 천도교 핵심 교리인 侍天主(시천주) 人乃天(인내천) 事人如天(사인여천) 物物天事事天(물물천사사천) 등을 쉽게 풀어 설명했다. 또한 소파 방정환 선생이 천도교 제3세교주 손병희 선생의 사위로서 “어린이도 한울님과 같은 존엄한 존재이니, 한울님 모시듯 하라.”는 제2세교주 해월신사의 말씀에 근원하여 우리나라 어린이날이 탄생되었다고 말하였다. 이어 “동학농민혁명의 현대적 계승은 평화적 남북통일이며, 천도교의 교리 중에 자연만물도 한울님을 모셨으니, 한울님과 한 동포라는 생명사상에 의해 지구촌의 기후문제를 해결하는데 앞장서야 한다.”고 하였다. 특히 “2차 동학농민혁명 즉 동학의병전쟁은 일제의 침략에 맞선 항일운동이자 독립운동이었으므로, 동학의병군은 독립유공자 자격이 있을뿐더러 반드시 서훈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행사 주최인 사단법인 한국민족종교협의회는 현재 천도교, 원불교, 수운교, 선교유지재단, 갱정유도, 태극도, 증산도, 대순진리회, 증산법종교, 순천도, 청우일신회, 경천신명회 등 12개 종단이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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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교구 창립 43년, 다음 세대들이 교구의 미래를 이어갈 수 있도록한강교구(교구장 주용수)은 지난 4월 28일 교구창립 43주년을 맞이하여 30여명의 교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기념식을 가졌다. 한강교구는 지난 포덕 122년(1981) 5월 10일 교호수 58호 교인수 81명으로 시작하여, 90년대에는 교호수 223호 교인 350명으로 성장하며 교인들이 교단내외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였고, 포덕 148년(2007년) 3월 17일 현 교당으로 이전한 후 6년 뒤에는 교구의 오랜 숙원이었던 현 교당을 매입하여 교인들의 수도와 포덕교화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주용수 교구장은 기념사에서 교구창립 이래 몇 차례의 큰 어려움이 있었지만, 여러 동덕님들의 관심과 노력, 헌신이 있었기에 자체 교당을 확보하면서 교구를 굳건하게 유지하여 올 수 있었다면서, 다시 한번 마음가짐을 가다듬고 다음 세대들이 교구의 미래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함께 지혜를 모으고 정성을 다하자고 하였다. 한편 이번 창립43주년 기념식은 주영준 경리부장이 집례를 맡았으며, 5월에 예정된 많은 행사들로 인해 당초 창립일인 5월 10일보다 앞당겨 개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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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선포일 기준 어린이날 103회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천도교중앙총부(이하 천도교)는 5월 5일(일) 서울 종로구 경운동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어린이날 행사인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를 개최한다. 올해는 천도교소년회가 어린이인권선언을 한지 101년째 되는 해다. 천도교소년회는 1922년 세계 최초로 ‘어린이 날’을 만들고, 이듬해인 1923년에는 세계 최초로 ‘어린이 인권 선언’을 주도했다. 천도교소년회는 1921년 5월 1일 어린이의 인격옹호, 정서 함양, 건전한 사회성 함양을 목적으로 소춘 김기전, 소파 방정환, 현파 박래홍 등의 천도교 청년들이 중심이 돼 만든 천도교청년회 산하단체다. 당초 천도교는 어린이들을 위한 소년부를 설치했었는데, 소년부의 부원이 늘어나자 천도교소년회가 조직됐다. 그동안 천도교소년회는 어린이들을 위한 운동회와 동화회, 토론회, 등산회 전람회 등 활동을 활발히 전개해왔다. 창립 1주년을 맞은 1922년 5월 1일을 ‘어린이 날’로 정하고 어린이를 위한 행사를 개최했다. 첫 어린이날 행사는 ‘10년 후의 조선을 생각하라’는 구호를 내세우고 기념식, 선전지 배포, 시가행진, 축하회로 진행됐으며 이는 이후 어린이날 행사의 기본틀이 됐다. 또한 어린이를 위해 잡지 ‘어린이’도 창간했다. 동화와 동시, 민담, 소설, 생활 상식, 특집 기사, 퀴즈 등 재미있는 읽을거리가 많아 빠르게 전국으로 퍼져나갔으며, 1925년경에는 3만부의 판매 부수를 자랑할 정도였다. 잡지 ‘어린이’는 일제 강점기 최장수 어린이 잡지로 어린이운동을 대중화하는데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특히 천도교소년회는 1923년 4월 17일 불교소년회, 조선소년군 등 소년운동단체와 연대하기 위해 조선소년운동협회를 결성하고 같은해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다시 정했다. 그리고 서울 종로구 경운동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거행된 어린이날 기념식에서 ‘어린이인권선언’의 효시라 할 ‘소년운동 선언문’이 발표됐다.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이 같은 인식은 천도교의 종지인 ‘시천주’와 ‘개벽’ 사상에서 비롯됐다. ‘모든 사람이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라는 시천주 사상은 시대를 앞서는 근대적 만민평등사상이기에 조선의 신분제를 부정하고, 남녀차별에 반대하며, 세상을 개벽하고자 했다. 이것이 억압하는 이들에 맞서 동학혁명을 일으키고, 3.1혁명을 일으킨 원동력이 됐으며, 천도교는 믿기만 하는 종교가 아니라 행하는 종교인 만큼 1920년대에 농민, 노동, 학생, 상민, 청년, 소년, 여성의 7개 부문에서 활발한 사회운동을 전개하게 된 것이다. 올해는 어린이날 102주년, 어린이인권선언 101주년이 되는 해다. 이번 어린이날 축하행사인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는 소파 방정환 선생과 천도교소년회 활동가들의 어린이인권선언에 깃든 만민평등과 인권존중의 의미를 널리 알리고, 이날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5월 5일 서울 종로구 경운동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오전 10시부터 진행된다. 이날 행사는 어린이날 기념식과 특별체험부스를 운영하며 어린이날 선물을 증정한다. 천도교중앙총부는 “1920년대 천도교가 소년운동을 주도하였으며 전국적인 어린이 운동을 전개해 나간 것처럼 어린이의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해왔다.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 행사를 앞두고 기념식과 다양하고 재미있는 체험부스에 많은 어린이들이 참여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소년운동 선언문 1. 어린이를 재래의 윤리적 억압으로부터 해방하여 그들에게 대한 완전한 예우를 허라게 하라. 2. 어린이를 재래의 경제적 억압으로부터 해방하여 만14세 이하의 그들에게 대한 무상 또는 유상의 노동을 폐하게 하라. 3. 어린이 그들이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기에 족할 각양의 가정 또는 사회적 시설을 행하게 하라. 한편, 어린이날 다음 날인 5월 6일 오후 2시부터는 천도교중앙총부가 주최하고 투데이스타, 한국음반산업협회, 엔터원에서 후원하는 <방정환동요제>가 중앙대교당에서 개최된다. 올해 시범적으로 개최되는 방정환동요제는 동요보다 트롯에 물들어가는 어린 동심을 회복하는 여정의 시작이며, 향후 교단 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확대 개편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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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1922년 5월 1일, 최초의 어린이날천도교소년회는 1923년 5월 1일 어린이날을 공포하고 첫 어린이날 행사를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크게 열었다. 이에 1년 앞서 어린이날이 제정된 1922년 5월 1일을 기억하자. 102주년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과거의 오늘, 어린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어린이날을 선포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1919년 3·1혁명 당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고문 받고 1주일만에 석방된 방정환 선생은 1920년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동경 도요대학에서 아동문학과 아동심리학을 공부한 선생은 어린이들의 인권신장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한다. 1921년 '천도교소년회'를 조직하여 본격적으로 소년운동을 전개한 선생은 1922년 5월 1일 어린이날을 제정하고 1923년 3월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아동잡지 '어린이'를 창간한다. 소춘 김기전 선생은 1921년 4월부터 천도교 청년회 소년부를 특설해 5월에는 천도교소년회를 조직하고 총재를 역임하며 박내홍, 방정환 등과 함께 어린이 운동을 시작하였으며, 1922년 어린이날 제정, 세계 최초의 어린이헌장인 '소년운동의 기초사항'을 선포하였다. 옛 기사로 보는 오늘 1922년 5월 1일, 첫 어린이날이 제정된 날이다. 이날 천도교소년회는 '어린이의 날' 취지와 선전문, 거리 행렬과 자동차 선전대, 저녁의 축하기념식과 강연회 등을 개최하였다. 1921년 5월 1일 창립된 천도교소년회 1주년을 기념해 1922년 5월 1일 '어린이의 날'을 제정하였다. 천도교 청년들은 '10년 후의 조선을 생각하라'며 민족의 장래를 위해 어린이를 잘 키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인식하였다. 당시 신문과 잡지에서는 「십년 후 조선을 려慮하라」, 「조선 초유의 소년일」, 「가로로 취지 선전」, 「조선에서 처음 듣는 어린이의 날」 등의 기사와 선전지를 소개하였다. 십년 후 조선을 여하라 십년 후 조선을 여하라 조선 소년 운동의 시작으로 금일 천도교 소년회의 활동 희망을 품고 사는 사람에게 과거와 현재는 소용이 없고 그들에게는 오직 장래가 있을 뿐이다. 더욱이 조선사람은 과거와 현재에 무엇을 가졌는가. 설령 지난 일과 당장 눈앞의 일이 화려하다 할지라도 이것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함이 있으리오. 우리는 다만 내일과 내년의 화려한 희망으로 살아가는 것이라. 따라서 새로운 살림을 부르짖는 우리 사회도 장래를 위하여 사는 것이오, 장래가 곧 우리가 춤출 때라는 것은 누구나 바라고 믿는 바이다. 한 나라 한 사회나 한 집안의 장래를 맡은 사람은 누구인가. 곧 그 집안이나 그 사회나 그 나라의 아들과 손자일 것이다. 장래에 희망을 두고 어린이에게 장래를 맡기는 가정이나 사회에서 어찌 어린이의 일을 등한시할 수 있으며 새로운 살림을 부르짖는 우리 사회에서는 과연 아들과 손자를 위하여 어떠한 일을 하였는가. 옛날 일은 지나간 일이라 말할 필요가 없거니와 수년 동안 우리의 학부형은 그 자손을 위하여 이전에는 없던 애를 써왔다. 다시 말하면 그 자제를 가르치기에 열심히 하며 여러 가지로 자손을 인도하는 데 노력한 것은 근래의 교육열과 향학열이 증명하는 바다. 이는 실로 경하할 만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의 학부형 가운데에는 배우고자 하는 자식을 막아서 한강에 빠져 죽게 만드는 완고한 일이 없지 않다. 이러한 일을 볼 때 뜻있는 사람으로서 누가 한숨을 쉬지 않으며 눈물을 흘리지 않으리오. 이에 자극을 받은 천도교소년회는 어린이를 위한 부모의 도움이 더욱 두터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오늘을 기회로 삼아 ‘어린이의 날’이라고 이름하고 “항상 10년 후의 조선을 생각하십시오.”라고 쓴 네 가지의 인쇄물을 시내에 배포하며 소년회원이 거리마다 늘어서서 취지를 선전했다. 이러한 일은 조선 소년 운동의 처음이라 할 수 있으며, 다른 사회에서도 많이 응원하여 “조선사람의 10년 후의 일”을 위하여 노력하기를 바란다. 『동아일보』, 1922년 5월 1일, 「10년 후 조선을 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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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주년 천도교서울교구여성회 결성기념식지난 4월 28일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제56주년 천도교서울교구여성회 결성 기념식이 봉행되었다. 이날 행사는 기념식, 기념촬영, 점심식사 등이 이어졌으며 30여 명의 교인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경신당 박태량 여성회장의 기념사, 휘암 윤태원 서울교구장의 격려사, 여성회본부 성수당 박징재 여성회장의 축사가 있었다. 경신당 박태량 여성회장은 기념사를 통해, "서울교구여성회는 반세기가 넘는 56년 동안 천도교여성회 서울시지부로써, 또는 서울교구의 부문단체로서 천도교여성회의 목적 달성과 3대 강령 실현을 위해 독자적인 활동을 전개하여 명실상부한 천도교여성회로서의 사명을 다하여 왔습니다. (중략) 여성회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회원 여러분께서 함께 해주신다면 새로운 각오로 여성회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진력을 다하고자 합니다. 제56주년 결성기념식을 맞아 자랑스러운 서울교구여성회의 회원으로서 보다 많은 애착과 관심을 가지고 협력하여 힘차게 전진할 것을 다짐합니다"라고 밝혔다. 한편, 제56주년을 맞이하는 서울교구 여성회는 오랫동안 지속해 온 학자금 마련을 위한 윷놀이 대회, 유적지 순례, 이웃돕기의 기부활동, 추계바자회 행사 등이 중단되는 등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새로운 각오로 여성회 활동을 지속하고자 하는 포부를 갖고 있다. 포덕 109년 3월 25일 천도교 부인회 서울시지부를 결성하여, 이듬해 12월 명칭을 천도교여성회 서울시지부로 명칭을 변경, 포덕 113년에는 서울교구가 중앙총부의 직할교구로 변경됨에 따라 여성회서울시지부도 여성회 본부로 통합되었다가 포덕 124년 5월 1일 서울교구 소속의 여성회본부 회원 73명이 서울교구 여성회를 재결성하여 다시 서울교구여성회로 활동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