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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장 임명 철회와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동학·천도교 단체 공동성명 발표제 79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동학농민혁명과 3·1독립선언을 통해 일본에 맞서 보국안민의 기치로 싸웠던 동학군의 후예인 동학·천도교 제 단체들이 뉴라이트 인사인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철회와 자진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을 2024년 8월 14일 12시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발표하였다. (사)동학민족통일회 이재용 사무총장의 사회로 동학의례인 청수봉전을 시작으로 성명발표를 시작하였다. (사)동학민족통일회 노태구 상임의장은 취지설명에서 “대한독립의 정신은 우리나라의 근간임에도 그 위대한 역사를 부정하는 이들이 독립정신을 선양해온 독립기념관까지 침범하고 있어 통탄스럽다. 이제 동학혁명과 3‧1독립선언을 통해 민족의 독립정신을 계승해온 동학-천도교 단체들이 뜻을 모아 김형석 관장에 대한 임명 철회와 자진사퇴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동학‧천도교 제 단체 공동성명은 동학민족통일회, 천도교여성회, 천도교청년회 등 천도교 단체들과 동학혁명기념관, 2차동학농민혁명참여자서훈국민연대, 전국동학농민혁명연대 등 동학관련 단체들 총 31개 단체가 연명하였으며 성명발표는 (사)동학민족통일회 임남희 공동의장, 동학혁명기념관 이윤영 관장, 천도교청년회 이재선회장이 낭독하였다. 공동성명에서 이들은 독립기념관은 여와 야, 보수와 진보를 망라하고 조그마한 차이를 아우르고 넘어서며 건립한 민족의 전당이며 그 자체로 독립의 헌장(憲章)이라며 뉴라이트의 삿된 역사 퇴행 망동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며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에 대한 임명 철회와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성명발표에 참가한 이들은 “윤석열 정부는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지명을 즉각 철회하라!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은 즉각 그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구호를 제창하고 성명발표를 마무리하였다. 이하 독립기념관장 임명 철회와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동학·천도교 단체 공동성명 전문 독립기념관장 임명 철회와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동학-천도교 제단체 성명 뉴라이트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철회하라 독립기념관장에 김형석이라니! 그간의 저서와 숱한 발언들을 볼 때 그는 독립기념관의 정반대 편에 서서 독립운동의 거룩한 역사에 주먹질을 하는, 독립운동사 파괴범이다. 독립기념관의 설치 목적으로 보거나, 역대 독립기념관장의 면면을 보거나, 일본의 끊임없는 역사 침탈을 극복하고 분단 조국의 통일을 향해 가야 하는 지금 이 시점의 역사적 과제로 보거나 김형석은 독립기념관장이 될 수 없는 인물이다. 윤석열 정권은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우리가 보건대 지금 윤석열 정권이 가려는 길은 역사적 자해공갈을 무릅쓰고 이 민족의 정통성과 자존심을 팔아넘기려는 무도하고도 위험한 자멸의 길이다. 윤석열 정부는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즉각 철회하라! 김형석은 즉각 물러나라! 이 사태는 이미 독립기념관 이사에 박이택(낙성대경제연구 소장), 오영섭(전 연세대 이승만연구소 연구교수) 등 뉴라이트 계열 인사를 임명할 때부터 예견되어 온 것이다. 우리는 그때부터 역사 퇴행을 일삼는 망동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광복회 등의 단체와 국민들의 여망에 조금이라도 귀 기울여 최후의 선은 넘지 않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마저 여지없이 묵살하였다. 윤석열 정권은 끝내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윤석열 정권은 집권 이래 우리의 빛나는 독립운동의 역사를 지우는 데에 힘써 왔다. 이미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박지향), 국사편찬위원장(허동현), 한국학중앙연구원장(김낙년) 등 우리 역사의 근간을 수호하고 현창하는 자리마다 뉴라이트 계열 인사를 포진시켜 역사 퇴행을 감행해 왔다. 그리고 그 정점에 김형석 관장 임명 사건이 자리한다. 이는 대통령 취임 선서 첫 마디인 “나는 대한민국 헌법을 준수”한다는 약속의 근본 토대를 흔드는 일이다.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김형석은 오래전부터 간단없이 우리의 독립운동사를 부정하는 소신을 피력해 왔으며, 2022년 출간한 『끝나야 할 역사전쟁』에서 역대 보수-진보 정권 하에서의 여와 야가 합의한 친일청산과 단죄 작업마저 부정하였다. 그리고 친일로 단죄된 인사들의 역사적 재평가를 시도하여 한국 근현대사의 정통성을 훼손하는가 하면, 진실ㆍ화해 정신에 입각한 과거사정리의 성과마저도 폄훼하면서, 마침내는 “2007년 이후 국회 특별법에 의해서 새롭게 정리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재평가 작업”을 해야 한다고 공공연히 천명함으로써, 역사 쿠데타 의도를 노골적으로 표시해 왔다. 윤석열 정부는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장을 즉각 회수하라! 이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윤석열 정권이 그의 역사관에 동의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역사를 뉴라이트 역사관으로 오염시켜 우리나라로 하여금 정사(正邪)의 분별이 사라진 후진국으로 전락하게 하는 매국적 행위이다. 개관 이래 37년 동안 전 국민의 관심과 성원 속에 민족의 심장으로 자리매김해 온 독립기념관에 식민 지배를 미화하는 친일·친독재 성향의 뉴라이트 인사를 관장으로 임명하는 것은 독립 선열을 모멸하는 일이요, 민주화, 산업화를 통해 세계에 빛나는 조국을 건설해 온 위대한 역사에 오물을 투척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를 즉각 철회하지 않는 것은 국론을 분열시킴으로써 자신의 치부를 감추려는 또 다른 술책으로 간주하지 않을 수 없다. 김형석 소위 독립기념관장은 즉각 물러나라! 당신의 정체성에 대한 정당한 비판과 요구를 건국절 논란을 둘러싼 문제로 축소 왜곡하여 그 뒤에 숨고자 하는 얄팍한 술책을 당장 거두라! 전국이 들끓는 이 요구를 미봉하여 모면하려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독립운동 선열의 통곡 소리는 커져 갈 것이고, 영면하신 선열들마저 깨워 일으킨 그 죄악은 길이 당신을 옭아매는 업보의 족쇄가 될 것이다. 윤석열 정권은 독립기념관을 욕보이는 망발을 즉각 중단하라! 독립기념관법 제1조에 밝힌 바대로 독립기념관은 “외침(外侵)을 극복(克服)하고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지켜 온 우리 민족의 국난 극복사와 국가 발전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보존·전시·조사·연구함으로써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의 투철한 민족정신을 북돋우며 올바른 국가관을 정립하는 데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독립기념관은 여와 야, 보수와 진보를 망라하고 조그마한 차이를 아우르고 넘어서며 건립한 민족의 전당이며 그 자체로 독립의 헌장(憲章)이다. 더 이상 독립 선열과 독립 역사를 욕보이지 말라! 일찍이 동학을 창도한 수운 최제우 선생은 하늘을 이고, 땅을 딛고 선 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하는 최후의 한마디는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라 하였다. 윤석열 정권, 그리고 김형석 관장의 행보는 무지의 결과가 아니라,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기의 부끄러움마저도 감춰 버리는 파렴치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는 확신이 점점 짙어진다. 두렵고도 안타까운 일이다. 갑오년 겨울, 일제의 경복궁 침탈과 국권 농단에 맞서 재기포한 전봉준은 “거짓말하고 마음을 속이는 자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고 단언하고 “일본의 도둑들이 군대를 움직여 우리 임금을 핍박하고 우리 백성들을 걱정스럽게 하니 어찌 참는단 말인가?”하고 통탄하였다. 정녕 ‘일본을 이롭게 하는 도둑’이 되고 말 터인가. 그 길 끝에는 파멸과 파국이 있을 뿐이다. 즉각 임명을 철회하고, 독립운동사 계승 사업의 퇴행과 매판 행위를 중단하라! 우리는 일찍이 최후의 1인까지, 최후의 1각까지 싸워온 독립운동 선열의 후손이자 후예이다! 우리는 윤석열 정권이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철회하고, 또 독립기념관장 스스로 그 자리에서 물러날 때까지 우리 요구를 계속할 것이다. 그리고 일개 정권의 획책과 한주먹도 안 되는 뉴라이트 계열 사학자들의 삿된 생각으로 도도한 독립운동 역사의 전통을 왜곡하고 뒤집을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망상을 일휘소탕(一揮掃蕩)하는 그날까지 저항의 범위를 확장하고, 강도를 높여갈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지명을 즉각 철회하라!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은 즉각 그 자리에서 물러나라!! 독립기념관장 임명 철회와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동학-천도교 제 단체 일동 연명단체 (31개 단체-무순) (사)동학민족통일회, 천도교여성회, 천도교청년회, 천도교한울연대, 동학혁명기념관, 2차동학농민혁명참여자서훈국민연대(참여단체55개), 전국동학농민혁명연대(참여단체42개), 동학학회, 사)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정읍), (사)예천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서울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동학농민혁명 부산기념사업회, 동학농민혁명 영호도회소 기념사업회, 사)김제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남원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남해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동학농민혁명 천안기념사업회, 경남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고성산동학혁명군기념사업회, 산청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사)고창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동학실천시민행동, 경기도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경기3‧1운동기념사업회, 개벽하는사람들, 천도교서울교구, 천도교광주교구, 천도교장흥교구, 천도교전주교구, 천도교부산남부교구, 동학천도교보국안민실천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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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61주년 지일기념식 봉행포덕 165년 8월 14일 오전 11시 천도교중앙대교당 및 전국 교구에서는 제161주년 지일기념식을 봉행하였다. 지일기념식은 현암 윤석산 교령을 비롯하여 내빈들이 참석하였다. 집례는 인화당 이미애 교화관장이 맡았으며 기념사-천덕송-해월신사법설_守心正氣(수심정기) 등의 순서로 진행하였다. 이번 지일기념식에는 교단 발전에 기여한 바를 인정하여 명암 정윤택 교당관리실장과 북암 김선배 천도교유지재단 서무과장에게 공로상을 수여하였다. 기념식이 끝나고 천도교연합합창단 '샘'의 "한울세상, "아름다운 나라", 서울교구 삼경 합창단의 "임진강", "해월신사 가신 길", 역사음악연구소 어린이역사음악합창단의 "빛의 자손들", "해월 최시형" 등의 문화공연이 이어져 참석한 교인 및 내외빈으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한편 현암 윤석산 교령은 기념사를 통해 "신사님의 삶과 수행에서 길어 올린 귀한 가르침을 몸으로 체득 체행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나가야 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아래는 제161주년 지일기념사 전문이다. 기념사 국내외 동덕 여러분! 모시고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포덕 4년(1863) 8월 14일 해월신사님께서 천명(天命)에 따라 수운대신사님으로부터 도통을 전수받은 지 161주년이 되는 지일 기념일입니다. 이런 뜻 깊은 날을 맞이하여 우리는 거룩한 신사님의 삶과 사상을 가슴속 깊이 되새기고 새롭게 결의를 다져야 하겠습니다. 대신사님의 가르침을 받은 이후부터 평생토록 지극한 정성으로 쉼 없이 수도(修道) 정진한 신사님은 수행자의 표상(表象)이셨습니다. “내 눈을 붙이기 전에 어찌 감히 수운대선생님의 가르치심을 잊으리오. 삼가서 조심하기를 밤낮이 없게 하느니라”고 말씀하셨으며, 일이 있으면 사리를 가리어 일에 응하고, 일이 없으면 조용히 앉아서 마음공부를 하셨습니다. 그러한 독실한 수련의 결과 하루아침에 활연관통(豁然貫通)하니, 길을 가면 발끝이 평탄한 곳을 가리키고 집에 있으면 신(神)이 조용한데 엉겼으며, 자리에 앉으면 숨결이 고르고 편안하고, 누우면 신이 그윽한 곳에 들어 하루 종일 어리석은 듯하며 기운이 평정하고 심신이 청명하였습니다. 마침내 수운대신사님의 말씀 그대로 ‘지극히 지기와 화하여 지성 (至聖)의 경지’에 도달하셨습니다. 그 가르침은 가물던 하늘에서 단비가 내리는 것 같았고, 그 절개 는 겨울 산마루에 외로운 소나무 같았으며, 그 법도는 가을 서리 같 았습니다. 이에 따라 신사님을 한 번 뵈온 사람들은 모두 감복하여 입도하였으니, 이것이 이른 바 ‘성인의 덕화(德化)’입니다. 그 결과 당대에 보따리 하나 둘러메시고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시면서 마당 포덕이란 위업을 이룩하셨고, 후대에 ‘민중의 성자’ 소리를 듣게 되셨습니다. 우리는 평생 일하시면서 수심정기(守心正氣) 공부로 일관하신 신사님의 더 없는 수도자상에서 깊은 감명과 감화를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신사님은 어렸을 적에 성인과 같은 위대한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번 수운대신사님을 뵙고 심법(心法)을 배운 후에는 ‘성인도 별 사람이 아니요, 누구나 다 마음으로 작정(作定)하고 독실하게 마음 공부를 하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도 한울님을 모셨으니 누구나 독실하게 공부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더욱 수련에 매진하여 자아 완성하고 포덕광제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하겠습니다. 중앙총부에서도 동덕 여러분의 수도 생활에 도움을 드릴 수 있도록 수도원의 활성화를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존경하는 동덕 여러분! 신사님은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셨기 때문에 어렵고 힘든 생활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머슴의 설움을 익히 알았고, 가난을 뼈저리게 겪었으며, 세상의 부조리와 모순을 온몸으로 체득하셨습니다. 그래서 해월신사님은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는 당시 민중의 열망을 그 누구 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민중의 열망을 실현시킬 방법이 없어서 절망스런 나날을 보내고 계셨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다가 천운(天運)으로 수운대신사님이 동학을 창명하여 세상을 새롭게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가 흔연히 입도한 후에 천도(天道)를 터득하시면서, 모든 것을 천명에 부치고 천리(天理)에 순응하여 시운(時運)에 따라 용시용활(用時用活)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수운대신사님의 순도 후에는 35년간 고비원주(高飛遠走)하는 삶을 살아 내시면서도 전국적인 포덕 교화망을 구축하셨습니다. 또한 다양한 교조신원운동을 적극 전개하여 평화적이고 민주적이며, 비폭력적인 종교인의 참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이러한 높은 도덕성을 바탕으로 전개한 교조신원운동은 오늘날 학자들에 의해 ‘현대 시민운동의 원류’로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해월신사님의 ‘때에 가장 적절하게 사신 삶’을 본받아서, 우리 사회의 변화와 시대정신에 따라 적의하게 대응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하겠습니다. 독립 유공 서훈 문제로 논쟁이 있는 듯한데, 2차 동학농민혁명 지도자들은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제4조에서 규정한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위하여 일제에 항거하다가 그로 인하여 순국한 자’에 해당하는 역사적 증거가 분명히 있으므로 서훈 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따라서 정부는 이러한 국민들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여 조속한 시일 내에 독립유공자로서 서훈해 주기를 오늘 지일기념일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촉구합니다. 중앙총부에서는 앞으로 관련 단체와 적극 협력하여 서훈이 조속한 시일 내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힘써나가겠습니다. 존경하는 동덕 여러분! 해월신사님은 엄혹한 시절 경전 간행을 완수하여 대신사님의 가르침을 전승토록 하였으며, 시대에 응하여 민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교리를 재해석하고 확장한 영적 스승인 동시에 대사상가의 면모를 보이셨습니다. 수운대신사님의 ‘다시 개벽’ 사상을 인문개벽 사상으로 밝히시면서, 어둠 속에서 절망하는 민중과 도인들에게 희망의 횃불을 높이 치켜들으셨습니다. “우리 도의 운수에 요순 공맹의 성스러운 인물이 많이 나리라”고 하셨으며, 장차 천도교가 세계 인류의 정신을 지도하고 우리나라가 세계의 선도 국가 역할을 할 것이라는 비전을 제시하셨습니다. 이는 신사님이 영적 능력으로 미래를 예지하고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틀림없이 실현되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신사님은 경천(敬天)과 경인(敬人), 경물(敬物)의 삼경설 (三敬說)을 가르치셨습니다. 이 중에서 특히 경물 사상은 현대의 고질적인 병폐인 생태계의 파괴를 막고, 목전에 닥친 지구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인 생태철학으로서, 오늘날 부각되고 있는 ‘생명 사상의 근간’이 된다는 것을 현재 많은 석학이나 생명 평화 운동가들이 모두 인정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반려동물의 시대’라고 말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반려견이나 반려묘 등을 기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동물 학대자는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등, 동물보호단체가 동물권을 보호하기 위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사님이 지으신 <내수도문>을 살펴보면 거기에는 ‘육축 (六畜)이라도 다 아끼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는 오늘날 강조되고 있는 ‘동물권(動物權)’ 혹은 ‘생명권(生命權)’에 대한 선각자로서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신사님은 여성과 어린이를 존중하고, 모든 사람을 한울님 처럼 섬기라는 사인여천(事人如天)의 가르침을 늘 강조하셨고 몸소 실천하여 본을 보이셨습니다. 이러한 신사님의 가르침을 계승하여 훗날 천도교에서는 어린이운동, 여성운동, 노동운동 등 7대 부문의 신문화 운동을 전개하게 됩니다. 이러한 인권 존중의 민주적인 평등사상은 우리 사회가 점점 수평 사회로 변화하면서 더욱 빛을 발하리라 생각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신사님의 삶과 수행에서 길어 올린 귀한 가르침을 몸으로 체득 체행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나가야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동덕 여러분! 요즘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것을 계기로 전국적인 동학 공부 열풍이 불고, 경북 영양의 해월신사 은거 유허비 제막식 등 각종 동학 선양 사업들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중앙총부에서는 이러한 시운을 맞이하여 특히 올해 스승님들의 위대한 삶과 사상을 현창하고, 시급하고 중요한 교단 혁신책을 우선 시행하여 ‘교단 중흥의 원년’으로 삼고자 합니다. 동덕 여러분의 적극적인 동참과 협력을 간곡하게 요청합니다. 다 함께 교단 중흥의 전기를 마련하는 대업에 참여하여 지혜와 힘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대신사님의 출세 200년을 맞이하여 우리의 마음 가짐을 다시 굳건히 하고 교인 여러분의 적극적 참여도 기대합니다. 모든 동덕님께 한울님과 스승님의 감응이 늘 함께 하여 만사여의 하시길 심고합니다. 감사합니다. 포덕 165(2024)년 8월 14일 천도교 교령 윤 석 산 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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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회관서 동학농민혁명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념 특별전시 열려윤석산 교령은 지난 8월 1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동학농민혁명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념 특별전시 개막식에 참석하여 "저도 동학혁명 기록물 유네스코 등재 위원회에서 위원으로 참여하여 심의를 하였는데, 국민의 권익을 대변하는 국회의원회관에서 등재 기념 특별 전시회를 하게되어 매우 의미있고 뜻깊은 행사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 행사가 대한민국을 넘어 전세계 사람들에게 동학의 사상과 동학혁명의 숭고한 정신을 널리 알리고 선양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전시는 202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을 소개하는 특별전시로 오는 16일까지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과 전북자치도, 윤준병 의원실이 공동 주최하는 특별 전시로서 ‘100년을 숨겨온 기록, 세계의 기억이 되다’를 주제로 세계기록유산 등재 과정과 동학농민혁명 명칭 변천사 등을 소개한다.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은 지난해 5월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돼 세계에 영향력을 미친 인류의 기록으로 인정받았으며, 대한민국의 18번째 세계기록 유산이 됐다. 이번 전시에서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군의 편지인 ‘한달문 편지’와 동학농민혁명의 평등, 평화, 인권의 정신을 기리는 각종 영상 기록물, 예술작품 등이 전시된다. 지난 12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개막식에는 윤석산 교령을 비롯하여 신순철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 용호성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 정동영 의원, 김윤덕 의원, 이원택 의원, 윤준병 의원 등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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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4일, 제161주년 지일기념식 봉행포덕 165(2024)년 8월 14일(수) 제 161주년 지일기념일을 맞이하여 기념식이 서울 중앙대교당 및 전국교구에서 일제히 봉행한다. 서울 중앙대교당에서 열리는 지일기념식은 현암 윤석산교령을 비롯하여 내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봉행한다. 오전 11시 기념식은 인화당 이미애교화관장이 집례를 맡아 진행하며 ▲기념사 ▲천덕송 ▲해월신사법설_守心正氣(수심정기)▲해월신사 약력 등의 순서로 진행한다. 또한 기념식에 이어서 천도교연합합창단 [샘], 서울교구합창단 [삼경], 역사음악연구소 [어린이역사음악합창단]의 문화공연이 있을 예정이다. 이날은 해월신사(海月神師, 최시형)께서 천도교 제1세 교조(敎祖)이신 수운대신사(水雲大神師, 최제우)로부터 도통(道統)을 이어받아 천도교 제2세 교조가 되신지 161주년이 되는 날이다. 천도교중앙총부는 지일기념일을 앞두고 "기쁜 날을 맞아 다함께 신사의 삶과 수행에서 길어 올린 귀한 가르침을 몸으로 체득 체행하고, 이웃에게 실천하여 더불어 살아가는 한울세상을 이루어 내길 심고한다"고 밝혔다. 한편 천도교의 5대 기념일은 다음과 같다. 천일기념일 : 매년 4월 5일 수운대신사께서 한울님으로부터 무극대도인 천도를 받아 동학을 창명한 날을 기념함 지일기념일 : 매년 8월 14일 해월신사께서 수운대신사로부터 도통을 전수받은 날을 기념함 인일기념일 : 매년 12월 24일 의암성사께서 해월신사로부터 도통을 전수받은 날을 기념함 도일기념일 : 매년 1월 18일 춘암상사께서 의암성사로부터 도통을 전수받은 날을 기념함 현도기념일 : 매년 12월 1일 의암성사께서 동학을 천도교로 세상에 선포한 날을 기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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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어린이 시일학교어린이 · 청소년 시일학교를 더 뜻깊게 보내는 방법은 없을까? 서울교구 어린이 청소년 시일학교가 다양한 체험활동과 함께하고 있어 큰 화제를 불러모으고 있다. 서울교구 어린이 청소년 시일식은 매주 일요일 11시 서울교구 성화실에서 이뤄지고 있다. 30분 정도는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시일식을 진행하며, 이후 30분 정도는 시일학교 활동을 하고 있다. 주로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구체적인 프로그램은 에어로켓만들기, 클레이아트, 보드게임, 아이스크림만들기, 물놀이, 영화관람 등으로 이어진다. 서울교구 관계자는 어린이 시일식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시일날은 즐거운 날"이라는 인식을 담아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밝히며 "아이들이 한울님이 만드신 세상에서 꽃처럼 환하게 피어나길 바라며 시일학교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많은 어린이, 청소년들의 관심과 참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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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 최제우 대신사 출세 200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도첩수여8월 9일 오후 3시 수운회관 907호에서 천도교 중앙총부 윤석산 교령은 ‘수운 최제우 대신사 2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의 분과별 위원장들에게 도첩을 수여하였다. 도첩수여식은 정갑선 교무관장의 집례로 청수봉전, 심고, 교령 인사말, 도첩수여, 사업설명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윤교령은 인사말에서 “멀리 부산, 경주에서도 오시고, 바쁘신 와중에도 참석해 주신 위원들게 감사드린다. 그간에 위원 확정에 어려운 점이 있었다. 여러분들이 중심이 돼서 200년의 행사를 잘 이끌어 주기 바란다.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찾아내고, 경향각지에서 모두 대신사 출세 200년의 기념행사가 잘 치룰 수 있기를 기원한다.”라고 당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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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선수단, ‘2024 파리패럴림픽’ 선전 결의 다져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유인촌 장관은 8월 12일(월) 오후 2시, 올림픽파크텔 올림피아홀에서 열리는 ‘2024 파리하계패럴림픽(이하 파리패럴림픽) 대한민국 선수단 결단식’에 참석해 선수단을 격려하였다. 문체부와 대한장애인체육회(이하 장애인체육회)가 함께 개최하는 결단식에서는 선수단과 종목단체, 시도 체육회 등 2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선수단 훈련 영상 상영, 장애인체육회 정진완 회장의 개식사, 선수단 소개, 배동현 선수단장의 출정사, 단기 수여, 축하 공연 등을 진행하였다. 유인촌 장관은 ‘파리패럴림픽’에 참가하는 선수와 지도자 전원 각자에게 보내는 격려 편지를 준비해 선수단 대표인 탁구 김영건 선수와 사이클 이도연 선수에게 전달하고 선수단의 활약을 응원했다. 8월 28일부터 9월 8일까지 열리는 ‘파리패럴림픽(제17회)’에는 182개국 선수단 4,400여 명(22종목 549개 메달 이벤트)이 참가한다. 우리나라는 17개 종목 선수단 총 177명(선수 83명, 지도자·임원 94명)을 파견해 대한민국 장애인체육의 저력을 세계에 알릴 예정이다. 문체부와 장애인체육회는 대회 개회에 앞서 8월 14일부터 26일까지 파리에서 사전 훈련캠프를 운영하며 선수단의 적응을 지원한다. 최적화된 한식 식단도 마련해 사전 훈련캠프 때부터 폐회식까지 제공할 계획이다. 또한 우리 선수들이 무더위와 심한 일교차에 대비해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의·과학적으로 지원한다. 아울러, ‘파라 팀 코리아하우스’를 운영(8. 28.~9. 6.)해 한국 장애인스포츠 정책을 알리고 장애인스포츠 확장현실(XR) 체험, 선수단 유니폼·의복 체험, 한국 전통 놀이 체험, ‘열린 관광’ 홍보 등 케이-콘텐츠를 적극 소개한다. 유인촌 장관은 “평생 꿈꿔온 무대 위에 하나의 발자국, 하나의 땀방울을 남기고 오는 것. 2024 파리패럴림픽, 이번 무대의 주인공은 바로 선수단 여러분”이라며 “찬란히 빛날 영광의 순간을 온 국민과 함께 응원하겠다. 건강히 다녀오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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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국 청년 35명, 전 세계에 대한민국 바로 알린다문화체육관광부(장관 유인촌, 이하 문체부)는 8월 13일(화) 오후 2시, 코시스센터(한국프레스센터 10층)에서 ‘제17기 대한민국 바로알림단(이하 바로알림단)’ 발대식을 개최한다. ‘바로알림단’은 국내외 청년들이 해외 언론매체, 누리집 등 해외에서 유통되는 한국 관련 정보에서 오류를 찾아내고 바로 잡으며 전 세계에 한국을 바로 알리는 홍보단(서포터스)이다. 2013년 제1기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한국에 대한 이해와 함께 수준 높은 외국어 실력을 갖춘 국내외 청년 총 635명이 단원으로 활동해 왔다. 제16기 단원, 한국 관련 정보 오류 총 242건 발굴해 신고 올해부터는 인력을 확대해 연간 2회 단원을 선발함에 따라 지난 3월에 제16기 단원을 선발한 바 있다. 제16기 단원들은 태권도와 일본의 무술인 가라테의 혼동,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최초로 금속활자 인쇄술을 발명했다는 설명 등 해외에서 발생한 한국 관련 정보 오류 총 242건을 발굴해 신고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프랑스와 영국, 인도네시아 등 세계 각국에서 문체부가 운영하는 한국바로알림서비스(www.factsaboutkorea.go.kr)*를 알리고 한지·한옥 등 한국문화에 대한 전문 교육을 통해 쌓은 지식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한국을 홍보했다. * 내외국인이 한국 관련 오류를 신고할 수 있는 온라인 서비스 이력도, 거주지도 다양한 9개국 청년 35명, 해외 한국 관련 정보 조사해 올바른 정보 확산 주도 올해 12월까지 활동하는 제17기 단원으로는 미국, 스페인, 프랑스, 인도네시아 등 9개국에 거주하는 한국인과 외국인 총 35명을 선발했다. 이들은 교환학생, 한국어 강사, 통·번역가 등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 경험과 수준 높은 외국어 실력을 갖추고 있어 세계 각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올해는 ‘위키피디아’ 등 세계적인 온라인 사전 등에서의 올바른 정보 확산에 주안점을 두고 한국에 대한 해외 인식과 시각, 기술된 정보의 정확성과 보완점 등을 조사해 한국과 관련된 다양하고 올바른 정보를 알리는 데 참여한다. ▴제17기 신규 단원 나이지리아 국적의 무이잿(Muizat Ayoola Abioye, 18세) 씨는 “한국의 문화와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 데 힘써 진취적인 한국문화 홍보대사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제16기에 이어 제17기 단원으로 선발된 한국 국적의 시지원(20세) 씨는 “바로알림단이 대한민국에 대한 자긍심을 나타내는 의미 있는 역할임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책임감을 갖고 활동에 임하겠다.”라고 말했다. 바로알림단 단장을 맡은 문체부 최보근 국제문화홍보정책실장은 ????지난 12년간 바로알림단 단원 635명이 한국에 대한 잘못된 정보 1만 1천여 건을 찾아내는 성과를 냈다.”라며 “문체부는 한국을 국제사회에 제대로 알리려는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바로알림단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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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학의 힘, 힘차게 달려온 1년창립 1주년을 맞이한 동학농민혁명 부산기념사업회의 허채봉 대표를 만났다. 허채봉 대표는 오랫동안 동학을 기반으로 활동해 왔으며, 동학을 주제로 학위과정을 마친 연구자이기도 하다. 열정적인 활동을 이어온 허채봉 대표에게 이 시대 동학, 천도교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동학의 가르침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허채봉 대표를 만나보자 동학농민혁명 부산기념사업회 창립1주년을 맞이하셨습니다. 기념사업회를 어떻게 창립하게 되었는지 그 계기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제가 2022년 2월에 동학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는데, 그 논문이 2023년 1월에 정읍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아카이브에 등재되면서 동학 신진연구자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어요. 그때 우리 천도교단 활동과는 조금 결이 다른 동학을 주제로 활동하시는 분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중에서도 2021년부터 동학 서훈 운동을 했던 분들, 동학혁명 유족회, 그리고 전국의 기념사업회 분들을 만나게 되면서 제가 활동하는 부산에도 동학 기념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가 작년 6월이었고 동학 신진연구자 모임을 한 이후 7월 8일에 기념사업회를 창립한 것입니다. 그 흐름에 이어 전국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회 전국 워크샵이 열리기도 했고요. 그렇게 일사천리로 이뤄졌습니다. 첫 번째로 연구자로서 논문을 쓴 게 계기가 됐을 거고 동학 신진연구자 워크숍에서 다양한 분들을 가면서 활동의 폭이 넓어진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이 과정들에는 굉장히 깊은 고민과 또 오랜 성찰이 있었을 것 같아요. 제가 동학을 하기 전에, 오랫동안 택견이라는 무예를 했어요. 택견은 우리 민족 무예로서 국가 중요 무형문화재 76호로 지정돼 있고, 2015년도에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재로 등록이 되었습니다. 세계 인류 무형의 유산이면서 수련종목인 택견을 하면서 새롭게 현대의 스포츠로 계승하는 일을 해왔고, 그런 과정들을 한 30년 정도 하다보니 동학을 알게 되고부터는 자연스럽게 내가 무엇을 할 건지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모색해왔습니다. 전국을 다니며 동학의 역사를 찾고, 알아가는 과정이 삶의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동학을 접하게 된 최초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천도교에 입교하게 된 계기도 궁금합니다. 2016년도 가을에 녹색당 농업특별위원회의 농업 먹거리 활동을 했는데 흔히 우리가 ‘녹색농부’라고 말해요. 이분들 중 저력이 있는 분들이 많아요. 어느 날 녹색 농부 중 한 선생님께 여쭸어요. 혹시 종교가 있으시냐고요. 그냥 묻고 싶었어요. 그분 종교가 ‘천도교라’는 거예요. 내가 다시 물었어요. 천도교가 뭔가요? 천리교인가요? 천리교는 일본 종교잖아요. 그게 아니래요. ‘동학’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깜짝 놀랐어요. 동학이면 1894년 동학농민혁명을 얘기하는 거 아니냐고요. 그랬더니 맞대요. 그래서 내가, 그러면 동학농민혁명이 종교란 말이에요? 그렇게 또 물었어요. 그게 종교였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게 지금까지도 이어진다는 거예요. 나는 민족무예 택견의 지도자로서 몇십 년을 살았는데, 동학농민혁명이 종교였다는 것을 몰랐어요. 뒤통수를 딱 맞는 느낌이었어요. 너무 충격이었어요. 동학농민혁명이 그 순간에 있었던 이벤트나 사건이 아니었고 계속 어떤 흐름 속에서 일어난 건가, 그러면 왜 나는 그런 걸 몰랐지? 너무 충격을 받아서 한 며칠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며칠 고민을 하다가 천도교중앙총부에 전화를 했어요. 입교 같은 걸 할 수 있냐고요. 전교인을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지도 물었어요. 나는 천도교 안에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거든요. 전교인을 선택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 선생님한테 가서 그랬어요. 천도교에 입교를 하겠다고요. 선생님, 전교인이 되어 주세요. 이렇게 얘기를 했죠. 그때 목암 전희식 선생님이 책 <소농은 혁명이다> 북콘서트를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 ‘천도교중앙대교당’이라는 곳을 가 봤지요. 그날이 2017년 포덕 158년 4월 9일이었는데, 4월 5일 천일기념일이 있던 주의 시일, 4월 9일이었습니다. 그날 입교를 하게 된 거예요. 그때 입교를 하신 거군요. 그럼 그 전에는 천도교중앙대교당을 전혀 모르셨나봐요. 와보시니 어떻던가요? 압도적인 어떤 기운이 느껴지시던가요? 첫 느낌이 예수상이나 십자가, 부처상과 같은 우상이 없고 궁을기가 보였어요. 대교당 건물이 굉장히 아름다웠고요. 제가 20대 때 길 건너 원서동에 살았거든요. 그런데 천도교중앙대교당을 몰랐어요. 처음 대교당에서의 모든 느낌이 다 좋았어요. 청수봉전을 보며, 여성이 청수를 봉전해야 그 의식이 시작된다는 게 좀 신기했고 우상이 없는 것도, 성직자 없이 일반 교인들이 돌아가면서 시일을 모시는 것도 참 놀라웠어요. 고정관념을 깨는 종교라는 생각이 들었고 신선했어요. 입교를 한 이후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처음 대교당에서 전희식 선생님의 북 콘서트를 보러 갔는데, 일주일 뒤에 전주에서 또 북콘서트를 하신다고 하더군요. 전주 한옥마을 안에 있는 동학혁명기념관에서요. 그 말씀을 듣는데 전주 동학혁명기념관에 너무너무 가고 싶었어요. 그리고 거기서 당시 임형진 종학대학원장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해부터 종학대학원 전주 분원과 부산 분원이 만들어질 거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부산 분원 개원소식을 기다렸고, 이후 여러 우여곡절 끝에 부산에 종학대학원 부산분원이 열렸습니다. 거기서 본격적으로 천도교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열심히 활동하시는 교인분들 한분 한분이 사회적으로 알려지고 사회 곳곳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이 시대 진정한 종교의 역할이 아닌가 싶습니다. 동학농민혁명 부산기념사업회가 창립 후 1년 동안 바쁜 걸음으로 달려오셨습니다. 기억에 남는 일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부산은 알다시피 동학의 유적지가 없잖아요. 기념사업회를 만들어 놓고 보니까 갈 데가 없더군요. 창립을 했는데 기념사업회에서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창립하자마자 기념재단에서 동학농민혁명 편람을 보내왔어요. 전국에 있는 동학 유적지를 다 모아놓은 거였어요. 경상도권 전라도권 경기권 충청권 등 전국에 있는 권역별로 쭉 있는데 등급이 A, B, C, D 이렇게 나뉘어 있는데 부산에 딱 두 곳이 있는 거예요. 그것도 B급이더라고요. 1893년, 부산성에 “척왜양창의” 깃발이 걸려 있었다는 기록이 있어요. 그때는 천도교인이 부산에 없었던 것 같은데 그게 어떻게 붙어 있었는지 참 신기하다 이런 식으로 소개가 되어 있고 출처는 없었어요. 그리고 또 두 번째는 일본군 토벌대가 주둔을 했던 곳인데, 그곳이 재단의 자료에서는 '40계단'이라고 나오더군요. 부산 중앙동의 40계단은 유명한 곳이에요. 그곳은 6. 25 동란 때 피란민들이 살던 곳이에요. 그렇게 토벌군들이 있었던 부산 이사청, 그리고 국립강제동원역사관에 있는 나인협 흉상을 세 번째 유적지로 해서 세 군데가 생긴 거예요. 그게 너무 극적으로 느껴졌어요. 기념재단에 감사했어요. 내 논문을 아카이브에 등재해준 것도 감사했지만 부산 지역에 동학유적지를 밝혀준 것이 반가웠거든요. 그래서 우리 대학원에 자랑도 했어요. 동학농민혁명재단 아카이브에 논문 등재됐다고요. 축하도 많이 받았죠. 재단에서 보내왔던 동학농민혁명 편람이 기념사업회에 큰 도움이 됐지요. 동학혁명의 불모지라고 할 수 있는 부산지역에 기념사업회를 창립하여 자리를 잡아가고 계시는데, 참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혼자서는 어려운 일이었을 것 같아요. 그렇죠. 이렇게 1년을 돌이켜보면 꽤 많은 일을 했어요. 저 혼자 한 게 아니고 도와준 분들이 참 많더군요. 감사한 일이죠. 그때그때 나타나서 함께해준 사람들이 반드시 있었어요. 마침 제가 올해 부산시 택견 단체 부회장의 마지막 임기거든요. 올해를 끝으로 활동의 방향을 동학으로 전환하게 될 것 같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버릴 건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제가 30년 넘게 택견을 하면서 배운 것들이 또 이렇게 쓰이게 될 테니까요. 기쁜 점은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를 통해서 내가 하고 싶었던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외부에 있는 사람들과 동학혁명 서훈 운동을 하면서 천도교를 알려 나가고 천도교의 뿌리가 결국 동학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천도교에 대해 잘 몰랐던 사람들이 이제 귀를 열고 듣기 시작했다는 거죠. 최근 전국 동학혁명 연대가 봉황각에서 취회를 했어요. 저녁 9시 기도식도 하고 주문 수련을 함께 하시더군요. 대교당에 가서 시일식도 같이 참여했고요. 이럴 때 천도교인들이 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더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부산이 동학의 역사나 유적에 대해서는 불모지라고 생각을 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까 유적지는 유적지대로 갇혀서 과거의 기억 운동에만 집중해서 하는데, 저는 부산이 조금 더 역동성을 가질 수 있는 민주시민교육 운동과 함께 동학과 궤를 같이 하면서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 같아서 보람이 큽니다. 기념사업회가 생기기를 기다려준 것만 같아요. 이렇게 동학에 대해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계시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나는 택견을 하면서 어떤 소명이라는 거를 느꼈거든요. 그러니까 사람은 각자의 소명이 있는데 나의 소명은 이제 오래된 전통의 부활 그러니까 “Rebirth”, 재탄생 이런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낡은 것의 가치를 새롭게 이끌어 내면서 오늘에 맞는 정서나 감성으로 새롭게 콘텐츠로 부활하고 생명력을 불어넣는 게 나의 소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택견을 할 때에도 시나리오를 쓰고 작품을 만들기도 했는데, 동학을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그런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어요. 부산기념사업회 1년, 그렇게 딱 한 걸음을 걷는 동안 같이 걷는 사람들이 생겼어요. 그만큼 기대가 클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도 궁금합니다. 부산기념사업회를 만들면서 더 절실하게 느끼는 것은 연구소입니다. 말하자면 부산동학기념사업회를 잘하기 위해서 동학연구소가 있어야 되겠고, 궁극적인 목표는 동학혁명 서훈 국민운동이나 전동연(전국동학연대)을 통해서 동학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확보를 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연결될 수 있는 것들이 굉장히 많아요. 교육적인 차원에서도 그렇고 또 전동연에서 함께 하고 있는 장흥 무명동학군 묘역 성역화나 이런 게 다 맞물려 있잖아요. 이러한 전 국민적인 움직임과 함께 동학이 국민적 필수 인문 과목으로 자리 잡는 것, 그게 내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운동이 되겠네요. 부산기념사업회는 부산이라는 지역을 통해서 하는 건데 이제 그런 뜻을 펼쳐나가면서 전 세계 인류의 교양 과목이 되는 게 동학의 포덕 사업이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나는 천도교를 해서 참 행복한 사람이고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회를 할래, 천도교를 할래?" 하면 난 천도교를 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나는 처음부터 범신론자였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가 우주적인 어떤 질서 속에 있는 존재라는 것이라고 어렴풋이 알 뿐이었어요. 그런데 천도교의 경전을 접하면서 내 마음속에 있었던 이야기들이 그대로 글로 적혀 있어서 참 놀라웠어요. 경전에 모든 게 다 있어요. 저는 앞으로도 더 천도교에 대해 알고 싶고 천도교의 진리를 깨닫고 싶습니다. 그리고 깨달은 바를 기념사업회 일을 하면서 펼쳐 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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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동학기행-수운 최제우 대신사 출세 200년 동학·천도교 제1성지 용담정 순례(2)(지난 호에 이어) 2. 용담정, 그리고 와룡암과 용담서사 용담정은 동학·천도교 제1성지라 일컫는 곳이기에 용담정의 유래에 대해 교중 기록과 표영삼, 한태원 선생의 기록을 중심으로 연혁을 살펴보겠다. 근암문집(수운 대신사 부친 최옥)에 의하면, 구미산은 경주의 높은 산으로서 큰 바위가 솟아있는 것이 마치 거북이와 용이 서려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고 하였다. 근암공은 ‘구미산은 경치가 매우 좋아 일찍이 26경을 읊은 바 있는데, 구미산 밑에 있는 와룡담臥龍潭은 그중의 빼어난 모습중의 하나이다.’라고 하였다. 1778년 복령이란 승려가 와룡담臥龍潭 북쪽에 암자를 짓고 원적암圓寂庵이라 하였다. 그 후 스님들이 흩어져 암자가 폐지되었으므로 처사공處士公 종하宗夏(수운 대신사 조부)가 그 집과 전답 수백평을 사들여 이곳에서 자제분 근암공으로 하여금 학업을 닦게 하였다. 원적암은 근암공의 스승이신 기와畸窩 이상원李象遠 선생이 정자의 이름을 와룡암臥龍庵이라 새롭게 지었다. 그 후 30여년을 지난 후 집이 쇠퇴하여 허물어져, 근암공이 그 자리(와룡암)에 다섯 칸의 집을 새로 짓고, 또한 북쪽에 네 칸을 지어 용담서사龍潭書社라고 이름 하였다. 수운 대신사께서 득도 이전에 이사 왔을 당시 와룡암터 집은 허물어져 방치되었던 것을 가족과 생활하는 집으로 수리하여 기거하였다. 그런데 현재 용담정이라 부르는 건물 이름이 수운 대신사 당시 부른 이름인지 훗날 제자들에 의해 불렀는지 정확하지 않다. 용담정이란 이름의 유래를 추적해보면 다음과 같은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용담정龍潭亭이란 건물 이름은 수운 대신사께서 지은 교훈가 ‘···구미용담龜尾龍潭 일정각一亭閣에···’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지금의 용담정을 가리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운 대신사는 득도 원년(1860, 경신) 4월 5일 11시경 와룡암터 또는 용담서사터 집에서 득도하였다. 그런데 용담서사 터가 현재의 용담정 자리인지, 와룡암 터가 현재의 용담정 자리인지 정확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수운 대신사의 득도 장소인 현재의 용담정이 용담서사龍潭書社자리인지, 와룡암臥龍庵자리인지 지금으로서는 구분하기는 어렵다. 교중 동학·천도교 연구에 평생을 바치신 표영삼 선생과 윤석산 교수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다. 표영삼 선생의 의견은 수운 대신사의 득도 장소가 현재의 용담정 자리 즉 용담서사 자리가 아니고, 와룡암 자리에 무게를 둔다. 그 이유는 수운 대신사께서 용담서사 즉 학문을 공부했던 건물이 아니라, 가족과 생활했던 건물 즉 와룡암터에 근암공이 새로 집을 지었던 것을 수운 대신사가 수리하여 살던 장소라는 것이다. 이는 용담유사 여러 곳에 득도 당시 가족이 지켜보았다는 대신사의 기록에서 근거를 찾는다. 윤석산 교수의 의견은 와룡암과 용담서사 두 곳 모두 인정하고 있다. 수운 대신사의 득도 과정이 한 순간 이뤄진 것이 아니고, 수일을 경과하면서 지속되었던 것을 참고하면 가족과 생활했던 와룡암터 집과, 학문을 연구하고 경전을 쓰셨던 용담서사터 집, 두 곳에서 득도하였다는 추정이다. 그래서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두 장소인 와룡암터와 용담서사터를 모두 인정하고 있다. 이처럼 수운 대신사의 득도 장소인 역사적인 건물은 1863 12월 10일 대신사께서 관군에게 피체되어 이듬해 1864년 3월 10일 좌도난정율左道亂正律이라는‘도를 그릇되게 하고 바름을 어지럽게 하는 법률’ 즉 반역죄反逆罪로 대구 장대에서 순도殉道한 뒤, 살림집 다섯 칸인 와룡암터 집과 용담서사터 네 칸의 집은 돌보는 이가 없어 모두 무너지고 몰락되어 그 곳은 황폐한 터가 되었다. 그 후 조선왕조의 동학에 대한 가혹한 탄압에 50여년을 지나는 동안 관의 지목이 두려워 그 누구도 득도 장소이자 성지인 건물복구에 착수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4월 황해도 천도교 교역자 오응선과 교인 이계화 등이 21일 특별 기도를 마친 뒤에 한울님의 감응을 받아 경주 용담성지를 찾았으나, 건물은 흔적조차 없고 잡초만이 무성하여 비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오응선씨는 용담정자 재건을 결심하고 이계화씨와 함께 다시 백오일 기도를 단행하고, 용담정자를 착공하여 1914년 10월 15일에 준공을 하고 용담정龍潭亭이란 현판을 붙였다. 오늘날 용담정이란 건물의 이름이 탄생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후 40여년이 지내는 동안 용담정은 다시 무너지고 몰락되니 인적마저 끊기게 되었다. 현재의 용담정 복원은 천도교 부인회 주최, 천도교 창도 100년 기념사업의 하나로서, 양이제와 권태화 두 할머니가 나서서 천도교인들의 성금을 모아 다시 용담정을 중창하고 1960년 6월 30일에 많은 교인들과 함께 낙성식을 봉행하였다. 3. 와룡암터에 유적표지판 하나라도 세우자 천도교단에서 현재까지 수운 대신사 득도터인 와룡암 자리에는 복원건물은 고사하고 아무런 유적표지판도 세우지 않고 있다. 그 연유는 현재 용담정 건물과 대비되어 득도 장소에 대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에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역사는 분명 역사이다. 우리가 현실에 안주하고자 역사를 바르게 전하지 않는다면 천사天師님을 어찌 대할 수 있겠는가? 다시 말해 수운 대신사님의 제자로서 부끄러움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가 수운 최제우 대신사 출세 200년, 동학농민혁명130년이다. 천도교단은 중지를 모아 와룡암 터에 유적표지판을 세울 것을 논의해야 된다. 와룡암터는 와룡암터대로, 현재의 용담정은 용담정대로 그 역사와 가치가 있다. 지난 와룡암 역사가 사라지고 있는 마당에 무슨 유적표지판이냐고 반대의 의견들도 많을 것이다. 더 나아가 현재의 용담정 자리가 지난 원적암과 와룡암 자리였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분명 용담정 연혁을 역사에 근거하여 살펴보면 현재의 용담정 자리는 지난 용담서사 자리였다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용담서사 자리가 지난 원적암과 와룡암 자리였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용담서사 자리와 원적암과 와룡암 자리는 분명 다른 장소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끝으로 필자는 와룡암 자리에 유적표지판이 세워지지 않더라도 이렇게 글을 써서 역사에 남길 생각이다. 와룡암 터와 용담서사 터는 현재 용담정으로 대변 되지만 두 성지는 후천 5만년 길이 전해질 다시개벽 즉 주문呪文과 영부靈符는 물론 시천주侍天主·인시천人是天·사인여천事人如天으로 압축되는 동학의 진리를 수운 대신사께서 한울님께 받으셨고, 또한 대각을 이루신 곳이다. 그만큼 현재 용담정과 과거 와룡암은 세계인류역사에 길이 빛날 역사적인 장소이다. 이번 글이 ‘와룡암 터를 알리는 공개적인 두 번째 글이다.’는 것을 밝히면서 용담정 순례에 대한 글을 마친다. 4. 수운 최제우 대신사 십상도(일생을 열 개의 그림으로 묘사) <끝> 글 : 이윤영(천도교연원회 직접도훈, 동학혁명백주년기념관장) 그림 : 박홍규 작 2015년, 송암 이윤영 저술 동학이야기 ‘만고풍상겪은손 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