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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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Propagating Truth No.4 -
포덕 166년 11월 30일 천도교중앙대교당 시일설교 "13관법 : 무극대도"포덕 166년 11월 30일 천도교중앙대교당 시일설교 "13관법 : 무극대도" 상암 오문환 선도사 -
[특별기고] 『신인간』 통권 900호 특집 - 권두언신인간 12월호(900호) 표지 “우리가 바라는 바는 오직 ‘신인간’의 창조이다.” 포덕 167년 4월 1일 발행된, 『신인간』 창간호, 통권 1호 권두언 <무하설>의 핵심 문장입니다. 그로부터 99년 9개월, 1,197개월을 지나, 오늘, 통권 900호입 니다. 『신인간』 편집자나 교단(중앙총부)만이었다면 결코 이룰 수 없었던 현재 입니다. 『신인간』 독자는 물론 천도교인 모두의 마음이 있었기에 이를 수 있었 던 오늘입니다. 고맙습니다! 그러나 한편 “『신인간』이 충분히 ‘신인간 창조’의 제 길을 걸어왔느냐” 하 면, 말문이 막힙니다. “지금 세상이 『신인간』이 예견하고, 약속한 대로, ‘신세 계’냐”고 자문해 보면, 두렵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신인간』 통권 900호에 즈 음하여 『신인간』 자신의 장래를 기약하는 일보다, 『신인간』의 사명을 재확인, 재천명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인류는 지금 ‘거대한 전환’의 시간, 후천개벽 전환기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최근 몇 년의 시간은 유별난 데가 있습니다. 후천개벽은 현실적으로 선천 물질개벽과 축의시대 인지認知혁명까지를 포괄하면서, 이를 다시 개벽하 는 인문개벽과 산업産業혁명까지입니다. 그중에서도 지금은 ‘디지털혁명’, 즉 ‘4차 산업혁명기’로서, AI가 산업구조는 물론 인간의 인식 체계까지도 혁명적 변화의 흐름 속에 밀어 넣고 있습니다. 더욱이 인류세人類世라는, 일찍이 경험 하지 못했던 전 지구적 기후위기 속에서 ‘지구 개벽’의 층이 보태지고 있습니 다. 문자 그대로 “하늘과 땅과 사람과 만물이 새로워지는” 때입니다. 하늘(한울)의 새로움은 한울(神性)의 재발견, 재발명(밝힘)입니다. 호모 데우스 (Homo Deus)는 각자위심하던 그 인간의 신화神化를 이야기할 뿐, 신성의 내면 화와 동귀일체를 말하지 않습니다. 내 몸에 모신 내재적 신성이자 우주에 가 득차고 무위이화하는 기화적 신성인 한울님으로의 존재론적 전회를 결여한 ‘신神인간’은 인간중심주의의 극단적 과잉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한울 됨, 즉 영성을 회복하고 다시 밝히며, 생명의 문명이 작동하는 천도의 복권이 곧 새 한울(新天)입니다. 땅의 새로움은 지금까지 인류가 만들어 온 제도, 기술, 경제, 국가와 세계 체 제의 재편성, 재수립 과정입니다. 그동안의 지구 질서는 한계에 도달하여 새로 운 질서를 기다리며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미국내의 내전 상황, 러시아 대 우 크라이나(미국, 유럽) 전쟁,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 영토를 둘러싼 일본과 중 국의 갈등, 미국과 남미의 전쟁 위기 등에서 파열음이 나고 있습니다. 낡은 틀 이 부서지고 새로운 틀이 모색되는 중입니다. 미국 일극 체제가 종말을 고하 고, 중국, 러시아, 인도, 중동, 아프라카가 제 목소리 내는 다극체제가 부활하 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도덕문명, 생태문명으로 인류의 생활 윤리를 새롭게 하여 새로운 세계의 창조적 재구축을 도모하는 것이 곧 새 땅(新地)입니다. 사람의 새로움은 기하급수적 속도로 기술, 자본, 데이터의 부속물로 전락하 며 개인화하는 인간의 재탄생, 재창조입니다. 한울의 신성이 재발견되는 만큼 내재적 신성의 대변자로서의 인간으로 재발명再發明된 것이 곧 신인간입니다. 한울(神性)과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삼경三敬과 물오동포物吾同胞의 신념으로 만 물과의 관계도 재발견한 인간, 새로운 윤리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입니다. 영 성, 즉 한울의 나 됨을 자각하고, 관계의 신성을 자각하여 만물의 지휘자, 대변 자, 조화자로서 역할 하는 것이 곧 새 사람(新人)입니다. 만물의 새로움은 사물의 주체성을 재조명, 재구축하는 일입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만물이 한울님 조화의 결실로서 신령한 존재임, 인간과 더불어 형제자 매임을 자각하는 일입니다. ‘사물 인터넷’을 통해 ‘그들’과 직접 소통하는 것이 가능해진 오늘날, AI를 매개로 만물이 인간의 ‘반려자’로서 자리매김하는 시대 입니다. 인간과 사물 간의 관계 역시 일방적 소비가 아니라 한울이 한울을 먹 는 관계로 다시 자리매김됩니다. 비인간 존재가 동포임을 수긍하고 AI와 물질 이 행위자임을 인정하여, 착취(추출), 남용, 남발(폐기)하는 삶의 방식을 버리고, 공생하고 동귀일체하는 신문명 구성원으로 재발견하는 새 만물(新物)입니다. 오늘, 참 좋은 날입니다. 고맙습니다! 『신인간』 900호까지를 성찰하고, 다 시 새로움을 꿈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될 것이기 때문 입니다. ‘『신인간』의 입에서 나오는 종교, 도덕, 윤리, 정치, 경제, 법률! 그것이 곧 신세계의 창조’이기 때문입니다. 더 높이, 더 멀리[高飛遠走]까지 갈 수 있다 고 믿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너(후손, 후학, 후배)를 만나 성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悟菴) 추신 : 1. 『신인간』 통권 900호, 『신인간』 창간 + 신인간사 창립 100주년에 즈음하여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습니다.(<천도교신문> 광고 참조) 2. 『신인간』 보내기 운동, 『신인간』 구독 확장 운동에도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
화풀이 장단에 몸이 축나다『홀로 피어 꽃이 되는 사람』 천도교신문에서는 시인이자 숲 해설가인 이시백 동덕의 생활 명상 글과 라명재 송탄교구장이 엄선한 동학 경전 구절을 함께 엮어, 자연과 인간, 그리고 동학의 지혜를 전합니다. 독자 여러분이 일상의 삶 속에서 꽃피우는 동학의 길을 함께 사유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화풀이 장단에 몸이 축나다 어릴 때 길을 걷다가, 먼 산 보고 걷다가 돌뿌리에 그만 넘어지고 말았네. 홧김에 돌을 발로 팍~ 아이고, 발가락까지 아파서 주저앉아 눈물을 뚝뚝 흘렸다. 무릎까지 까여 쓰리고 피가 나니 우는 소리가 더 커졌던가? 거기까지 기억나진 않는다. 경솔하고 급작스러워 인내가 어려워지고 경솔하여 상충되는 일이 많으니, 이런 때를 당하여 마음을 쓰고 힘을 뜨는 데 나를 순히 하여 나를 처신하면 쉽고 나를 거슬려 나를 처신하면 어려우니라. <해월법설 : 대인접물>: 어릴 때 왜 그리 성격이 급했던고. 즉흥적으로 행할 때가 많았다. 조급하고 침착하지 못한 성격이 지금도 튀어 나온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더니 속담을 잘 지키고 있는 셈이다. 고요한 강물(chat GPT) -
[칼럼] 오늘의 대고천하-천지부모지난 11월 30일은 제가 전주교구에서 120주년 현도기념 특강을 한 날입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대고천하 – 천지부모>라는 제목이었습니다. 120년 전에 의암 손병희 선생이 천도교로 이름을 바꾼 것은,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고민과 갈등과 혼란 속에서 선택한 비장한 결정이기에 오늘 2025년에 우리는 대중 앞에 뭘 선포해야 할까를 고민하고 정한 제목입니다. 우리 천도교가 연례행사로 치르는 기념식이 수도 없이 많은데 그중 하나로 현도기념일을 안일하게 다뤄도 될 만큼 우리는 한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점점 줄어드는 이름뿐인 교구들과 늘어가는 시일식 빈 의자들을 보면서 우리가 서둘러 선언해야 할 긴급한 과업이 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의암 손병희 성사 5년여 만에 다시 전주교구로 와서 보니 참석자들이 많이 줄어있었습니다. 제가 고향 쪽인 경남 진주교구로 가기 전에만 해도 시일식에 20명 이상이 참석했고 지하에는 전용 식당도 있었는데 와서 보니 딱 8명이 참석했고 지하 식당은 없고 다른 단체가 입주해 있었습니다. 피아노 반주자도 없고 음향기기로 반주와 노래가 나왔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포덕일까요?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할 대고천하가 포덕은 아닙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전주 한옥마을 입구인 이 멋진 장소의 전주교구에 사람들이 가득 차는 것일까요? 아닙니다”라고도 했습니다. 120년 전 당시를 떠올리면 그렇습니다. 서기 1905년 11월은 대고천하 한 달 전입니다. 조선의 외교권이 빼앗기고 주한 외국 공사관도 모두 폐쇄된 을사늑약이 강제로 맺어졌습니다. 일본의 조선 지배 기구인 통감부가 설치되었습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이 조선을 집어삼키고 있었는데 동학은 사도난적이니, 동학비적이니, 동학 것들, 동학당, 시천도, 활인도, 사술지무 등으로 불리며 탄압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손병희 선생이 진보회를 만들어 근대화 운동과 민족 계몽운동을 벌였으나 동학에서 뛰쳐나간 이들이 친일파와 손잡고 일진회를 만들어 노골적인 방해 활동을 벌이던 때입니다. 기가 막히지요. 더 심각한 것은 일진회가 “나 친일파요”라고 하지 않고 손병희가 벌이던 갑진개혁운동인 단발과 의복 개량 운동도 했다는 것입니다. 서양을 물리치기 위해 동양끼리 뭉치자면서 일본과 손잡자고 그럴듯하게 백성을 헷갈리게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개혁과 근대화도 부르짖었습니다. 지금 광화문에서 전광훈 등의 태극기부대가 “우리는 친일이고 미국 숭배주의자요”라고 하지 않는 것과 똑같습니다. 이러니 손병희의 고민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동학 지도부는 다 처형당해 없지, 몇 년 가서 살아 보니 눈이 돌아갈 정도로 일본은 발전하고 있지, 대한제국이라고 이름표는 달았지만 조선 조정은 꼴이 말이 아니지, 동학한다고 어디 내놓고 말할 수가 있나. 동학 내부는 사분오열 일보 직전이지.. “당시 상황은 피가 마르고 숨이 막히는 시절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한가하게 요즘 식으로 세미나도 하고 포럼도 열면서 천도교로 개칭을 하니 마니 할 겨를이 없었고 마른침도 없어 입술이 터지고 눈에 핏발이 서는 순간의 연속이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라고 저는 말했습니다. 이것은 박정희나 전두환의 파쇼정권 때 수배되고 투옥되고 했던 사람들은 압니다. 야밤에 삐걱대는 대문 소리나 두런거리는 남정네 목소리만 들려도 맨발로 뒷담을 넘어 튀어야 했던 사람들은 압니다. 동지들은 의문사를 당해 시체도 못 찾고 날이면 날마다 투신과 분신이 일어나던 때를 숨죽여 살아 본 사람들은 압니다. 대고천하 당시 손병희의 처지와 심정이 어땠을지를. 당시에 사도난적으로 몰리는 거나 요즘 비정규직 문제나 보안법 폐지 또는 성소수자나 양심적 병역거부 주장을 하면 빨갱이로 몰리는 거나 똑같은 맥락입니다. 손병희는 동학을 부흥하자, 동학교도를 늘이자. 암자나 동학교도 집에서 만나지 말고 번듯한 건물을 하나 지어보자 등의 주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정식 종교단체로 과감히 변신하면서 조직과 교리를 정비하고 수련과 민족운동을 새로이 펼쳐나가기로 한 것입니다. 정말 혁명적인 발상입니다. 백척간두 진일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특강에서 지금 이 순간 ‘천지부모’를 선포하자고 말했습니다. ‘천지는 곧 부모요 부모는 곧 천지니, 천지부모는 일체니라’를 떠올리며 “이종진은 곧 전주교구요 전주교구는 곧 이종진이다. 이재선도 그러하니 이종진은 곧 이재선이니라”라고 읊었습니다. 하나 됨의 천지부모 사상은 우리 천도교 안에서 하나 됨을 이루라는 가르침이라고 봅니다. 천지부모의 삶을 회복하자는 말은 무시무시한 선언입니다. 오늘날 개발과 발전과 효율과 편안함과 돈벌이에 중독된 세상 사람은 남을 경쟁 상대로 봅니다. 남을 눌러야 내가 산다고 압니다. 남보다 앞서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생물이건 무생물이건 모두 내 편리를 위한 소모품입니다. 이런 마당에 모든 생물과 물건을 다 내 부모님처럼 여기고 산다는 것은 천지개벽 그 자체입니다. 동물권, 식물권, 자연기본권(Plant Rights) 흐름의 완결판이자 기후 위기 해결, 탄소발자국 제로 운동의 종결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준비해 간 <주식회사 에코샵홀씨>에서 산 고급 손수건을 참석자들에게 선물로 나눠드렸습니다. 전주교구로 돌아온 기념 선물이기도 합니다. 손수건은 화장실에서 일회용 수건을 쓰지 않는 것은 물론, 식당에 가서 미세플라스틱으로 된 물티슈나 일회용 냅킨도 쓰지 말자는 것으로 천도교한울연대에서 하던 활동이기도 합니다. 저는 천지부모 개념을 웰다잉 운동으로 선포하자고 말합니다. 요즘 사람들의 죽음은 정말 구질구질합니다. 그 어떤 포유류나 영장류, 고등동물들도 인간처럼 지저분하게 죽지 않습니다. 평생 의료비의 반을 죽기 몇 년에 따 쓰고 자기 팔다리 마음대로 못 움직이고 자기 배변하나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남 앞에 가랑이 벌리고 기저귀 갈아 차는 인생의 말로는 천지부모의 삶을 살지 못한 인간들의 자업자득입니다. 치명적인 문명병입니다. 노인요양원과 치매와 알츠하이머는 인간 외 어떤 동물도 없습니다. 인간이 손대지 않으면 동물과 식물에 병은 없습니다. ‘삼매사(사마지마라니)’나 ‘살레카나’라는 말을 들어봤는지 모르겠습니다. 안락사나 조력사는 들어봤겠습니다. 그것이 합법화된 캐나다에서는 제법 고상하게 ‘죽음에 대한 의료지원 (Medical assistance in dying)’이라고 부릅니다. 자이나교의 ‘살레카나’는 우리의 ‘성령출세설’과 닮아있습니다. 온전한 정신으로 깨어있으면서 맑은 정신 상태로 담담하게 (명상적)죽음을 맞는 것입니다. 껍데기인 몸을 벗고(성령출세) 본래의 영적 자리(잠겨있는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천지부모의 자연순환 이치에 고즈넉이 동참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등바등 소리 지르고 링거줄 붙잡고 발버둥 치는 게 아니라 긴 여행을 마친 순례자가 지친 몸을 누일 고향 집으로 돌아가는 평화로운 저녁 노을빛 같은 모습입니다. 영이 적극적으로 드러나 형체 있는 삶을 살다가 영이 조용히 작용하는 섭리인 형체 없음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두려움도 슬픔도 아쉬움도 아닙니다. 그런 임종을 우리 동덕님들이 맞을 수 있게 하는 방책과 수련을 마련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이는 효과적인 포덕 활동이고 신앙심 확립이며 교구의 건실화 과정이라고 봅니다. 호주의 원주민 아보리진족은 자신의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스스로 깨닫는다고 합니다. 조용히 물병도 가지지 않고 사막 가운데로 가서 꼿꼿하게 앉아서 임종을 한다고 합니다.(좌탈입망). 천지부모의 삶을 살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지지난달에 제가 아는 분도 스위스로 안락사하러 갔습니다. 가기 전에 조촐한 이별식을 했습니다. 4,5천 만원이 든다고 합니다. 대고천하 두 갑자를 맞는 오늘, 천도교에 신 대고천하 추진팀이라도 만들어야 할까요? 글, 목암 전희식(전주교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