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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사는 남자, 영월, 그리고 동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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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사는 남자, 영월, 그리고 동학

  • 성강현
  • 등록 2026.03.11 11:30
  • 조회수 1,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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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사남.png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포스터

 

요즘 세간의 관심사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이다. 조선의 6대 국왕이었던 단종의 비애를 주제로 한 이 영화는 지난 2월 4일에 개막해 약 한 달만인 3월 6일 천만 관객을 돌파해 지금도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에서 상영된 영화로는 34번째이고, 우리 영화로는 25번째라고 한다. 2년 전인 2024년 개봉한 “파묘”, “범죄도시4” 이후 2년 만의 쾌거이다. 사극으로는 “왕의 남자(2005)”, “광해(2012)”, “명량(2014)”에 이어 네 번째로 천만 영화에 등극했다. 최근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로 대표되는 OTT(Over-the-top media service, 셋톱박스라는 하나의 플랫폼에만 종속되지 않고 데스크톱, 스마트폰, 태블릿 컴퓨터, 콘솔 게임기, 스마트 TV 등 다수의 플랫폼으로 서비스)의 확장으로 더 이상 천만 관객 영화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통념을 깨고 신기원을 이뤘다는 점에서 장항준 감독을 비롯한 영화인들이 고무되어 있다. 


영화가 개봉되고 3주 정도 지난 2월 20일경에 기족과 함께 오랜만에 영화관을 찾아 이 영화를 관람했다. 당시 약 500만 명의 관객을 넘길 시점으로 영화에 대한 호평이 방송과 입소문으로 번지던 시기였다. 단종 이야기는 역사가 스포일러라고 할 정도로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러나 유해진, 박지훈, 유지태, 전미도 등 주연들의 연기와 권력 투쟁이라는 정치 서사가 아닌 인간의 감성에 주목한 단단한 스토리는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역사를 전공한 필자도 여러 번 훌쩍였고, 영화가 끝난 후에도 쉽게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감명깊었다. 영화의 감상평을 짧게 하자면, “인간을 상(傷)하게 하는 것도 인간이고, 인간을 화(和)하게 하는 것도 인간을 느끼게 해준 영화이다.” 그래서 인지 연령대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영화관을 찾고 있다. 


영화의 흥행과 맞물려 영화의 주무대인 강원도 영월을 찾는 이들이 줄을 잇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예년에 비해 다섯 배 많은 관광객이 영월을 찾고 있다고 한다. 단종앓이의 주무대인 청령포, 단종 어소, 장릉을 비롯해 고씨동굴, 한반도 지형과 선돌 등 영월의 명승지를 찾는 이들로 시골이 북적이고 있다. 필자는 영화의 무대가 된 영월을 지금부터 50년 전인 초등학교 6학년 때 부모님과 함께 방문했었다. 당시 강원도 삼척에서 살아서 남들보다 쉽게 방문할 수 있었다. 영월역에서 택시를 타고 청령포 입구에서 내려 배로 강을 건너 소나무 숲을 걸어 단종이 유배되었던 어소와 장릉을 찾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때 청령포에서 어떤 알지 못하는 힘이 사람을 누르는 듯한 섬뜩함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단종의 유배지 말고도 고씨동굴을 방문했었다. 고등학교 때 반 친구가 영월 출신이어서 영월과 청령포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나누었다. 그 뒤로도 또 가봐야 지 했지만 다시 청령포로 가는 배를 타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영월을 찾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동학 유적지 답사를 위해 여러 차례 영월을 꾸준히 찾았다. 왜냐하면 영월은 동학에 있어서 중요한 유적이 적지 않기 때문이었다. 먼저 영화에서 박재홍 배우가 촌장의 역을 맡았던 노루촌은 지금 영월 김삿갓면의 노루목 마을에 해당한다. 잘 알지 못하지만 이곳으로 유배 온 인물이 많았던 것 같다. 영월의 노루목[獐項]은 단양 의풍의 노루고개[獐峴]로 이어지는데 이곳에 “장간지(獐間地)”라는 산속 깊숙한 마을이 있다. ‘장(獐)’ 자가 노루라는 뜻으로, 장간지는 (영월) 노루목과 (의풍) 노루고개 사이의 땅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이곳 주민들은 “장건지”라고 부른다. 장간지는 영월의 김삿갓 문학관에서 의풍1리 마을회관을 지나 영춘의 배틀재로 넘어가는 935번 국도인 영부로를 타고 오르막길을 약 2km 올라 오른쪽 아래의 산밭이다. 이곳은 동학을 창도한 수운대신사의 순도 이후 1872년 3월 박씨 부인과 가족들이 은거했던 곳이다. 그러나 이해 9월 들어 영춘 관아에서 장간지의 박씨 부인을 지목해 정선 싸내로 옮겼다. 장간지는 약 6개월간 수운대신사 가족이 은거했던 동학의 유적지이다. 


노루목 아래의 거석리(擧石里)라는 마을도 동학의 유적지이다. 동학 역사책에 거석리(巨石里)로 기록된 이곳은 현재 김삿갓면의 김삿갓묘와 김삿갓문학관이 있는 와석리(臥石里)인데 이 이름은 와인리(臥人里)와 거석리를 합치면서 마을 이름의 한 글자씩을 따서 붙여졌다. 이곳의 거석리는 우리말로 “든돌”이라고 하며 아기장수의 전설이 깃든 곳으로 김삿갓묘 아래“목산미술박물관” 일대이다. 거석리를 지나 김삿갓 묘역을 통과하면 영월 노루목으로 올라간다. 거석리는 1879년 윤3월 초하루 동학의 2세 교조 해월신사가 꿈에서 스승인 수운대신사를 만난 노정식(盧貞植)의 집이 있던 곳이다. 해월신사는 이 집에서 수운대신사의 꿈이 특별해서 잠을 깬 후 동행자에게 그 내용을 알려 『최선생문집도원기서』 등 초기 동학의 역사서에 그 내용이 상세히 실려있다. 이 꿈을 계기로 해월신사는 초기 동학의 역사를 정리하고, 수운대신사가 저술한 한문경전 『동경대전』과 한글경전 『용담유사』를 간행했다. 


영월군 산솔면 화원리 소미원(小味院)도 박씨 부인의 은거지였다. 1870년 10월 영양 일월산 윗대티에 은거하던 박씨 부인에게 강원도 양양에 사는 공생(孔生)이 찾아와 강원도의 도인들이 스승님의 가족을 지원한다고 약속하고 수운대신사의 가족의 이사를 원했다. 수운대신사의 가족은 자신들을 지원하던 해월신사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공생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렇게 해서 옮긴 곳이 영월 소미원이었다. 소미원은 1,087m의 망경대산 자락에 위치한 깊은 산골이다. 수운대신사의 가족은 소미원에서 장간지로 은거하기 전까지 생활했다. 수운대신사의 가족이 은신했던 집은 지금은 2층 양옥으로 변했다. 힘겹게 소미원을 찾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영월의 동학 유적지로 가장 대표적인 곳은 영월군 산솔면 직동리이다. 직동리는 1871년 영해 교조신원운동 이후 와해된 동학 교단의 재건을 시작한 곳이다. 영해 교조신원운동으로 영양 일월산을 떠나 태백산 중으로 숨은 해월신사는 영월 직동 정진일의 집에서 은거하던 중 8월에 이필제가 문경에서 다시 거사를 일으켰다는 내용이 알려지자 강수, 황재민과 같이 산에 은신했다. 산속에서 식량이 떨어지고 추위가 찾아온 9월 15일경 박용걸의 집을 찾았다. 박용걸과 의형제를 맺고 그의 집에서 49일 기도를 봉행하고 한 겨울을 지내면서 교단의 재기를 시작했다. 기도를 마친 해월신사는 정선의 유인상 등 강원도의 교도를 모아 「대인접물」, 「양천주」 등의 가르침으로 교단의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런 측면에서 영월의 직동리는 동학 역사의 중요한 사적지이다. 해월신사가 1871년 10월부터 1872년 10월까지 약 2년간 머물렀던 박용걸의 집터가 지금도 남아있으며, 직동리 입구에는 이를 알리는 “천도교 사적지”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엄흥도의 아들이 곤장을 맞을 때 단종이 한명회를 향해 “네가 왕족을 능멸하느냐?”라고 크게 소리쳤던 영월 관아는 직동의 해월신사를 보호한 수리(首吏, 이방) 지달준(池達俊)이 근무했던 곳이다. 지달준은 선인이 나타나 직동에 있는 내 제자를 잘 보호해 달라는 신비한 꿈을 꾸었는데 이튿날 출근하니 직동의 동학괴수를 잡으러 간다는 관졸의 출정을 정지시켰다. 이 사실을 안 해월신사는 영월 읍내를 찾아 지달준을 만나 북어 한 꾸러미를 선물로 주었다. 이후 지달준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해월신사께 노자 두 꾸러미와 붓, 먹 등을 보냈다. 영월 관아 이방 지달준은 이후 삼척 영장으로 승진했다. 이렇게 영월은 동학과 인연이 깊은 고장이다. 


영월로 유배 온 단종과 엄흥도의 이야기를 줄기로 한 “왕과 사는 남자”는 많은 점을 시시한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재해석, 영월에 대한 재발견, 인간성에 의미와 관계의 중요성 등 이전과 다른 시각을 통해 세상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이처럼 의미와 흥미를 모두 담은 좋은 역사 영화의 후속작을 기대해 본다 또 영월을 찾는 이들도 많아졌다. 영월을 방문해 단종앓이와 명승지도 둘러보고, 우리의 자주적 근대화를 이끈 동학의 유적도 돌아보면 좋겠다. 아울러 사극의 흥행을 불러온 이 영화를 계기로 동학과 천도교를 주제로 한 의미와 흥미를 모두 담은 영화의 제작을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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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성강현(동의대학교 강사, 대동교구 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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