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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민족통일회, 제1차 운영위원회의 개최사단법인 동학민족통일회(상임의장 주선원)는 지난 7월 25일(금), 서울 수운회관 8층 종학대학원 강의실에서 제13기 제1차 운영위원회의를 열고, 새로운 임기를 맞이한 운영위원들과 함께 향후 통일운동의 방향을 모색하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이날 회의는 최용근 수석공동의장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주선원 상임의장은 인사말을 통해 “광복 80주년을 맞는 역사적 해에 새롭게 구성된 운영위원회가 동학의 정신을 바탕으로 남북 간 상생과 평화를 실현하는 구체적 실천을 만들어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새롭게 위촉된 신임 운영위원들의 자기소개가 이어졌으며, 각자의 전문성과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통일운동에 기여하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참석자들은 동학민족통일회의 설립 취지와 활동 정신을 되새기며, 통일운동의 지향점을 재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회의에서는 특히 ‘광복 80년 8·15 시민대회’ 참여 방안에 대해 중점적으로 논의되었다. 운영위원들은 동학·천도교 사상을 바탕으로 한 시민사회 통일운동의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심도 있게 협의하고, 실천적 과제를 공유했다. 더불어 각계 시민사회와의 연대 강화, 대중적 교육 프로그램 확대, 남북 공동행사 추진 등 실질적 활동 방안에 대한 제안도 활발히 오갔다. 동학민족통일회는 이날 회의를 통해 민족의 자주와 평화통일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가슴에 새기고, 동학정신을 기반으로 한 실천적 통일운동을 지속해나갈 것을 결의했다. 운영위원들은 앞으로 정기적인 회의와 사업을 통해 동학사상의 현대적 의미를 시민사회에 확산시키고, 남북관계의 평화적 진전에 기여하는 조직으로 거듭날 것을 다짐하며 회의를 마무리했다. -
중앙총부-부산예술대-동천고, 문화예술 MOU 체결중앙총부는 지난 7월 21일 부산예술대학교(총장 안원철), 동천고등학교(교장 유석운)와 예술·문화 분야의 협력과 상호 우호 증진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협약식은 부산예술대학교 본관 대회의실에서 진행되었으며, 중앙총부에서는 박인준 교령을 비롯해 강병로 종무원장, 최인경 사회문화관장 등이 참석했고, 부산예술대학교에서는 안원철 총장과 안영수 기획처장, 김종군 산학협력처장 등이 자리했다. 동천고등학교에서는 유석운 교장과 박효 교감이 참석했다. 이날 협약은 천도문화와 문화․예술 교육이 융합하는 새로운 협력 모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협약에 따르면, 부산예술대학교는 천도교의 각종 행사에 교수와 학생들이 참여해 공연·전시 등의 예술 활동을 펼치며, 중앙총부는 이들에게 공간과 기회를 제공하고 천도문화에 현대적 감성을 접목해나갈 예정이다. 안원철 총장은 환영사에서 “저희들이 갖고 있는 기술, 그리고 학생들의 재능이 활발히 펼쳐져 실질적인 MOU가 되기를 바란다”며, “이번 협약이 저희 대학과 중앙총부, 같은 재단 소속의 동천고등학교 모두에게 win-win이 되기를 바란다”고 기대를 전했다. 박인준 교령은 축사에서 “감회가 새롭다. 창설자이신 흥암 안관성 종법사님 생각이 또렷이 난다”며, “제가 동천고 교장을 역임할 수 있었던 것도, 천도교 교령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그분의 배려와 사명 덕분”이라고 회고했다. 이어 “교령으로서 부산예대와 동천고를 도울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돕고 싶다. 학생들에게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주는 것이 저의 몫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동천고 유석운 교장은 답사에서 “우리 학교는 안관성 초대 이사장님의 동학·천도교 정신과 3.1운동 정신을 이어받아 설립된 학교”라며, “이번 협약은 그 정신을 예술과 문화교류를 통해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평가했다. 협약식은 각 기관장의 인사말과 함께 협약서 서명, 기념촬영, 자유 대담 순으로 진행되었으다. 중앙총부는 이번 협약을 계기로 예술을 통한 포덕과 교화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며, 부산예술대학교, 동천고등학교와의 실천적 협력의 모범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할 계획이다. -
종학대학원 하계수련포덕 166(2025)년 종학대학원 하계수련이 7월 16일부터 7월 22일까지 6박 7일간 의창수도원에서 개최됐다. 이번 행사에는 모두 11명의 종학대학원 재원생이 참가했으며, 교리 강의와 수련, 특강, 기도, 답사가 어우러진 일정 속에서 참가자들의 신앙적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이 이어졌다. 16일 개강식은 김혁태 종학대학원 원장의 인사말과 서종환 의창수도원장의 환영사에 이어 교수진이 소개되며 수련 기간의 방향을 안내했다. 수련 기간에는 박인준 교령이 ‘모심의 실천’을 주제로 특강을 진행했고, 김혁태 원장은 ‘주문과 수도’를 주제로, 깊이 있는 강의를 선보였다. 송봉구 교수는 맹자와 해월신사의 사상을 연결지어 새로운 관점으로 고찰했고, 성강현 교수는 ‘미국 하와이 천도교와 민족운동’과 ‘의암 손병희의 3.1운동 준비’를 주제로 강의에 나섰다. 김선배 교수는 ‘현대물리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수운의 지기론’을 통해 과학과 종교의 접점을 탐색하는 한편, 전명운 교화관장은 ‘인공지능과 천도교’를 주제로 오늘날의 기술문명과 신앙 간의 조화를 모색했다. 임형진 부원장은 ‘수운 최제우 탄신의 의미와 과제’를 짚으며 교단의 현재와 미래를 통찰했다. 이외에도 성강현 교수가 수련을 함께하며 참가자들의 교리 실천을 이끌었고, 변종제 종학대학원 총동문회장은 수시로 수도원을 방문해 후배들을 격려했다. 일과는 새벽 4시 30분 기상과 청소로 시작되었다. 5시에는 기도식 및 수련, 6시 30분 운동 및 경내 청소, 이후 아침식사와 휴식을 거쳐 오전 수련과 11시 기도식이 이어졌다. 오후에는 특강과 수련, 답사가 진행됐고, 저녁 시간에는 다시 수련과 9시 기도식, 일일반성으로 하루 일정을 정리하는 등 짜임새 있는 일정 속에서 수련이 진행되었다. 22일 폐강식에서는 참가자들의 수련 소감 발표가 이어졌으며, 모두가 교리 공부와 수련의 중요성을 공감하며 6박 7일 일정을 마무리했다. 참가자들은 “기도식과 강의, 수련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져 일정 내내 의미 있는 시간이 마련될 수 있었다‘며 종학대학원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
포덕 166년 여름, 한울나눔터 참가자 모집천도교 대학생단이 포덕 166년 여름을 맞아 청소년 대상 인성수련 프로그램 ‘한울나눔터’를 개최한다. 이번 한울나눔터는 또래 친구들과 함께 지내며 마음의 힘을 기르고, 공동체적 감각을 키울 수 있도록 기획된 1박 2일간의 단기 수련 프로그램이다. 행사는 오는 9월 6일(토)부터 7일(일)까지 부산 금련산 청소년수련원에서 진행되며, 전국의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청소년 30명을 선착순으로 모집한다. 참가비는 무료이며, 간단한 개인 물품만 지참하면 된다. 천도교 대학생단은 “짧은 일정이지만 청소년들이 건강하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며 서로 배려하고 나누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알차게 준비하고 있다”며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현재 프로그램의 세부 일정과 내용은 계획 중이며, 참가자에게 추후 별도로 공지될 예정이다. ▣ 참가 개요 일정: 2025년 9월 6일(토) ~ 9월 7일(일), 1박 2일 장소: 부산 금련산 청소년 수련원 대상: 초·중·고등학생 인원: 30명 (선착순 마감) 참가비: 무료 ▣ 준비물 염주, 세면도구, 수건, 여벌옷, 개인 상비약 등 ※ 추가 준비물은 추후 별도 안내 예정 ▣ 문의 및 신청 조화정 단장: 010-8318-9220 박현서 부단장: 010-2421-7173 이예나 부단장: 010-6229-5883 이번 여름, 한울나눔터에서 청소년들이 함께 웃고 배우며 성장하는 뜻깊은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단 참가 신청 링크 자료제공 : 천도교대학생단 -
이도천 선도사 순도 47주기 추모, “통일의 불꽃” 다시 되새겨이도천 선도사 순도 47주기를 맞아, 천도교 교단과 시민들이 그의 뜻을 기리는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이도천 선도사는 1978년 8월 5일, 임진각 철조망 앞에서 “조국이여, 통일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평화통일을 염원하며 분신 순도한 천도교 선도사다. 47년이 흐른 올해, 그날의 숭고한 뜻을 기억하고자 추모식을 봉행하였으며, 교단과 신앙인들은 생명으로 통일을 외쳤던 한 신앙인의 정신을 다시 되새겼다. 이날 추도식은 사단법인 동학민족통일회가 주최하고 천도교중앙총부, 전국동학농민혁명연대의 후원으로 봉행하였으며 이문상 동학민족통일회 사무총장의 집례, 신혜원 동학민족통일회 공동의장의 경전봉독(성령출세설), 최용근 동학민족통일회 수석공동의장의 약력보고가 있었다. 최인경 사회문화관장이 대독한 박인준 교령의 추모사는 “오늘 통일열사 이도천 선도사의 분신 47주기를 맞아, 이 행사를 새롭게 되살리고 매년 이어가며, 선도사의 순도 정신을 잊지 않고 동학 이념의 사회적 구현을 이루어가길 바란다”고 밝혔다. 주선원 동학민족통일회 상임의장은 위령문을 통해 “선도사님께서 천사님의 뜻을 받들어서 도를 닦고 불의와 싸우신 그 정신과 뜻을 저희들도 받들어서 수도와 포덕에 더욱 힘쓰고, 기어이 민족통일의 숙원을 완수하여 지상천국 건설의 대원을 달성하고야 말 것을 고인의 영전에 맹세합니다”라고 말했다. 임진각 철책 앞에서 외친 “통일하라” 1908년 함경남도 함주군 삼평면 송호리에서 출생한 이도천 선도사는 함흥농업학교와 수원농업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30년에 천도교에 입교하였다. 1938년부터 함흥정미소를 운영하면서 교회사업을 시작하였으며 1945년 해방 후에는 함흥청우당 선전부장에 선임된다. 1948년 청우당 남북연락책임자로 활약하던 중 내무서에 체포되어 3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월남하여 부산에 거주하여 1952년 부산시 좌천 동전교실을 창설하였다. 1976년 춘천교구장에 선임되어 교구발전에 헌신하다가 1978년 8월 5일 임진강 돌아오지 않는 다리 아래에서 통일을 염원하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 순도하였다. 입암 이도천 선도사는 통일운동을 전개하며, 교단의 포덕정신에 입각해 민족의 하나 됨을 서원해오다가 순도 직전 유언을 통해 “내 죽음이 통일의 씨앗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히며,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시천주의 신앙과 인내천의 실천을 온몸으로 증명했다. 이번 추모식에는 임진각 앞에 걸린 ‘평화통일’ 현수막과 함께 묵념, 헌화, 천덕송 합창 등 순도의 의미를 기리는 시간으로 이어졌으며 추모식에 참석한 참석자들은 이도천 선도사의 신앙과 결단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광복 80년, 분단 80년… 여전히 남은 과제 “한울님의 뜻 따라 민족 하나로” 이도천 선도사의 순도는 통일의 염원을 넘어 신앙적 실천의 결정체로 평가된다. 선생의 외침은 오늘날까지도 천도교인 모두에게 과제로 남아 있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이자 분단 80주년이 되는 해다. 이도천 선도사의 순도는 물리적 분단을 넘어, 신앙과 생명으로 시대를 깨우고자 한 울림이었다. 이번 추모식을 계기로, 교역자 및 교인들은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한 실천적 신앙을 다시 점검하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
천도교 미래세대가 함께한 ‘2025 한울인성어린이캠프’ 성료천도교 어린이·청소년들의 인성과 공동체 의식을 기르는 ‘2025 한울인성어린이캠프’가 지난 8월 1일(금)부터 4일(월)까지 3박 4일간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이번 캠프는 서울 중앙대교당과 서울유스호스텔 일대에서 열렸으며, 전국 각지 교구에서 모인 초·중·고등학생들이 함께 참여해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이번 캠프는 낙안회, 대학생단의 자원봉사 속에 풍성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다. 참가자들은 염주 만들기, 몸살림운동, 운현궁 역사탐방, 스케이트 체험, 연극 관람 등 다채로운 활동을 통해 천도교 신앙과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등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특히 캠프 기간 중 시일일에는 중앙대교당에서 교인들과 함께 시일식을 봉행하며 경건한 시간을 가졌고, 아이들이 직접 준비한 합창 공연도 함께 선보여 큰 박수를 받았다. 3박 4일의 여정 속에서 참가 어린이들은 서로를 배려하며 웃음이 끊이지 않는 따뜻한 공동체를 이뤄냈다. 캠프에 참여한 한 학생은 “친구들과 함께 놀고 배우면서 천도교를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어 좋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천도교대학생단은 “이번 캠프는 교단의 미래를 이끌어갈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신앙과 인성을 함께 키울 수 있도록 마련한 뜻깊은 자리였다”며 “앞으로도 청소년 및 청년 대상 활동을 적극적으로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으로도 미래세대가 천도교의 정신을 배우고 체험하며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확장되기를 기대한다. 기사 및 사진 제공 천도교청년회 -
천도교중앙총부, ‘나는 한울인’ 전자 교보 작성 참여 요청천도교중앙총부는 전국 교인을 대상으로 천도교 홈페이지 내 ‘나는 한울인(전자 교보)’ 시스템에 교보 정보를 작성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번 요청은 교단 운영의 기반이 되는 정확한 데이터 확보와 행정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나는 한울인(전자 교보)’는 전국 교인의 기본 현황을 체계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기초 자료 시스템으로, 교인의 인적 사항과 연락처 등 현황 정보를 바탕으로 교단 행정, 각종 공지 및 자료 배포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에 따라 교단은 모든 입교 교인에게 전자 교보 작성을 독려하고 있다. 작성 대상은 전 교인으로, 신입 교인의 경우 각 교구의 교보 작성 담당자가 정보를 입력해야 한다. 참여 방법은 천도교 홈페이지(https://www.chondogyo.or.kr)에 접속 후, 상단 메뉴 ‘나는 한울인’을 선택하여 개인정보를 입력하면 된다. 모바일의 경우에도 홈페이지에 접속해 같은 절차를 따르면 된다. 천도교중앙총부는 “이번 전자 교보 시스템은 교단의 행정력 강화와 소통 기반 마련을 위한 중요한 첫걸음”이라며 “모든 교인의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문의는 천도교 중앙총부 교무관(02-6488-6825) 또는 이메일(chondogyo.kyomu@gmail.com)로 가능하다. 자료제공 천도교중앙총부 -
천도교와 3 · 1운동(13) "만세 일자와 규모"『천도교와 3.1운동』은 천도교중앙총부 교화관에서 발행한 책으로, 3.1운동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천도교의 역할을 깊이 있게 조명하고자 이창번 선도사가 집필하였으며 동학을 계승한 천도교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에 앞장선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그 사상적·조직적 기여를 알기 쉽게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은 3.1운동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함께 천도교가 지닌 민족사적 의미를 되새기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유익한 자료로 제공하고자 저자의 동의를 얻어 천도교인터넷신문에서 연재한다. - 편집자 주 - (지난 호에 이어) 4. 맹산교구의 만세운동 포덕 50년 초의 교세 평남 맹산에 동학이 들어온 것은 언제 누구에 의해서인지 알 수 없다. 천도교 『맹산군연원록』에 의하면 지덕면 오봉리에 사는 최정섭이 포덕 40년(1877) 11월 16일에 입도한 것으로 되어 있다. 최정섭은 포덕 18년(1877) 9월 2일 생으로 23세 때 입교한 셈이다. 이듬해인 포덕 41년(1900)에는 입교하는 사람이 늘어나 오봉리의 최기언, 봉인면,팔봉리의 이양섭, 지덕면 소창리의 김석조, 애전면 함온리의 박윤조, 초평면의 방효준, 지덕면 효리의 방은준, 학천면 고하기의 박치홍 부자가 입교하였다. 다시 포덕 42년((1901)에는 더욱 늘어나 맹산면 원남면 옥천면 동면에 포교되었다. 포덕 45년(1904) 8월 30일에는 맹산에서도 진보회를 개최하여 상투도 자르고 검정색 의복도 입었다. 진보회 조직에 관한 천도교창건사의 기록에 의하면 맹산에서는 방기창이 주도한 것으로 되어 있다. 다만 어디서 몇 명이 모여 단발흑의의 시위와 개회를 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이로부터 천도교세는 점차 늘어나기 시작하여 포덕 51년(1910)에 이르면 약 150호 정도가 된다. 역대 교구장들 기미독립운동이 일어났던 포덕 60년(1919)까지의 역대 교구장은 다음과 같다. 교구 창립일은 알 수 없으나 초대 교구장은 김창각이었다. 포덕 51년 9월에도 재선되어 52년 2월까지 역임하였다. 포덕 52년 3월부터는 김영율이 교구장으로 선임되었고, 그 해 9월에 김영율 교구장이 사정이 있어 교구장을 사임하게 되어 김창수가 임시로 그 후임이 되었다. 포덕 53년(1912) 11월에 조병칠이 교구장에 선임되었고, 포덕 55년(1914)에 이봉준이 새 교구장으로 선임되었다. 이 해 7월에는 중앙총부의 직제개편에 따라 맹산교구는 덕천대교구에 소속되었다. 덕천대 교구장은 박왕식이었으며 맹산 교구장에는 방기창이 선임되었다. 방기창은 맹산 천도교의 연원대표로서 이때 교훈이었으며 후에 도정이 되었다. 포덕 59년까지 방기창이 교구장을 계속 역임하였다. 공선원은 김창각, 전제원은 임대규, 금융원은 박창도 였다. 포덕 59년(1918) 6월에 문병로가 교구장이 되었다. 한편 포덕 57년부터 각 면 전교사가 임명되었는데 정승주·임대규·박봉림·이승학·박명원·김천석·김대현·이기섭이었다. 3·1운동 준비 1912년부터 실시된 우이동 봉황각 수련에 맹산군에서도 2기에 연원대표인 방기창, 4기에 이관국, 5기에 박승민·방진원·유병순, 6기에 김치송, 7기에 박정간·궁상원 등 7명이 참가하였다. 포덕 60년(1919) 1월 5일부터 2월 22일까지 49일 간의 기도가 전국적으로 행해졌는데 맹산에서도 49일 간의 기도를 맹산면 수정동 교당에서 인근 교인들이 모여 봉행했다. 당시 소학교 2학년생이었던 김득홍(83세)의 증언에 의하면 어른들은 이번 기도는 예사 기도가 아니라 하시며 집에서 물을 데워 목욕재계하고 교당에 가서 기도를 봉행했다 한다. 맹산 교당은 마당이 넓었으며 토방이 높았고 앞에는 큰 강당이 있었으며 뒷방은 네 개로 나누어진 온돌방이 있었다 한다. 이 온돌방에서 기도를 봉행했다 한다. 김득홍 어른의 증언에 의하면 방기창 도정은 서울에 자주 왕래하였는데 직접 지령을 받아 가지고 내려와 급하니 각 전교실에 연락하여 3월 1일 12시에 만세를 부르기로 하였다는 것이다. 맹산교구의 만세계획은 각 면 전교실에서 청년들만 동원하여 거행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소수인원을 동원하여 만세를 부르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박연수 어른이 전해 들었다는 증언에 의하면 독립선언서는 조기간이 가져왔다고 한다. 민족대표 33인이었던 라인협·나용환 두 선생이 천도교 평양교구에 수천 매를 전달했다. 이중에서 교구 간부였던 조기간이 2월 24일 독립선언서 수십 장을 갖고 맹산 북창까지 와서 북창 교구장인 방은준이 맹산교구에 전달했다고 한다. 한편 『독립운동사 권2』에 의하면 맹산에 독립선언서를 전달한 사람은 당시 덕천 천도교구 공선원 현성재였고, 거사를 지도한 이들은 당시 천도교 교구장이던 문병로를 비롯하여 길응철·방기창·정덕화·김치송·이관국·방진원 등 천도교 간부들 여럿이었다고 했다. 만세 일자와 규모 김득홍의 증언에 의하면 3월 1일 12시에 55명의 천도교도가 박창도를 앞세우고 만세를 불렀다 한다. 당시 소학교 2학년이었으며, 수업 중 시장 쪽에서 만세소리가 들려오면서 학교 앞을 지나갔다는 것이다. 이튿날인 3월 2일 12시에도 역시 55명이 만세시위를 벌였다 한다. 1일과 2일은 평일이었으므로 천도교 청년들만 만세를 불렀고 헌병과 경찰의 제지로 해산했다고 한다. 헌병 분대에는 헌병소위 사다께(佐竹) 외에 7~8명뿐이었고 헌병보조원은 15명 정도였다. 3·1동지회 간행 『3·1독립운동사』와 독립운동편찬위원회 간행 『독립운동사 2권』에는 만세를 부른 날짜가 3월 6일로 되어 있다. 그리고 박연수 선생 증언에는 3월 9일이라고 했다. 이 점에 대해서 김득홍 어른에게 확인하였더니 분명히 3월 1일부터 3일간 연속 만세를 불렀다고 한다. 또한 만세를 부른 인원은 55명이라 하였다. 나이 많은 분들은 제외하고 청장년만 만세를 부르도록 계획했기 때문에 각 면 전교실에서 55명만 모였다고 한다. 박창도가 선두에서 지휘했으며 그의 나이는 당시 35세로서 키가 헌칠한데다 얼굴이 잘 생겼고 힘이 장사이며 카이젤 수염이었다고 한다. 박창도는 포덕 53년 8월에 맹산교구가 운영하는 제148강습소 제2회 종업생이다. 이 만세 참가자에 대해서는 『3·1독립운동사』에는 30명이, 『독립운동사』에는 50명 이, 박연수 선생은 400여 명이라고 했다. 김득홍 어른은 3일째 만세시위 때 헌병대로 몰려갔던 인원도 바로 55명이었다고 한다. 일본군의 사격으로 48명이 현장에서 즉사한 사실을 보더라도 55명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3일째의 기억에 의하면 학교 선생이 아침 수업을 시작하려고 기립 경례를 마치자 책보를 싸라고 하면서 집에 돌아가 밖에 나오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집에서 만세 광경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천도교 청장년 55명만이 참가했다는 것이다. 48명이 총살당해 3일째 만세시위는 헌병대로 향했다. 첫날처럼 12시부터 시작하였다. “헌병을 쫓아내야 한다”고 외치면서 현병대로 갔다. 김득용 어른의 증언에 의하면 집이 길가에 있었기 때문에 그날 새벽 4시경에 덕천방면에서 60리를 걸어 20명에 달하는 완전무장한 군인이 헌병대에 도착했다 한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덕천 헌병중대에 증원을 요청한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 만세시위대는 헌병대로 몰려 들어가 물러가라고 항의했다. 그러자 사다께 헌병대장이 욕설을 퍼붓자 박창도는 의자로 헌병대장을 때리는 것이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또(佐騰) 상등병이 권총으로 박창도를 쏘았다. 박창도는 복부에 총탄을 맞고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사또에게 달려들어 그의 멱살을 억센 힘으로 거머쥐었다. 목이 졸린 사또도 총에 맞은 박창도도 같이 죽었다고 한다. 이때 군중들이 헌병대로 밀고 들어가자 헌병들이 무차별 사격을 가해 48명이 즉사하고 1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6명은 몸을 피했다. 부상당한 사람은 한봉진으로 어머니 쪽 외사촌 오빠였다고 한다. 헌병들은 48명의 시체를 처리하기 위해 들것을 만드느라고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이때 부상당해 쓰러져 있던 한봉진은 재빨리 도망쳤다. 뒤따라 헌병들이 추격했는데 거리로 들어갔을 때 조짚을 지고 오는 사람의 지개를 바꾸어지고 가던 길을 되돌아오니 헌병들이 알아보지 못하고 간신이 피신할 수 있었다 한다. 그는 군청 뒤에 있는 장덕화의 집에 가서 숨었다가 학무리 계중학의 집으로 옮겨 살아났다. 헌병들은 살인마와 같이 들것에 시체를 실어내면서 총검으로 일일이 찔러보며 확인했다고 한다. 순국한 이들의 시체는 2마정 가량 떨어진 골짜기에 버렸는데, 김득홍 어른은 어머니와 같이 밤중에 그곳에 가보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어머니의 외사촌 오빠의 시신을 찾기 위해서였다. 이리저리 돌아 현장에 갔더니 48명의 시체가 그냥 내버려져 있더라는 것이다. 박연수 선생의 유족들과 동향인들로부터 들어 밝혀진 순국 순도자는 다음과 같다. 朴昌道, 桂仲成, 吉成龍, 張龍宣, 安吉甫, 朴必永, 吉錫璉, 朴都官, 李承植, 趙秉七, 方應哲, 李正必, 弓尙元(7회) 朴春日, 金永律, 金鳳保, 禹光卨, 朴道乾, 盧錫璣, 金昌涉부친 韓基斗부친 金昌涉부친 李官俊부친 方士麟부친, 方洛道부친 朴瑞鳳부친 김득홍 어른의 증언에 의하면 맹산 수정리 거리에 살고 있던 박검수 형제도 순국순도했다고 한다. 3·1운동 때 체포되어 감옥살이를 한 사람은 7명이다. 형을 제일 많이 산 사람은 교구장이었던 文炳魯로서 1년 6개월간을 고생하였다. 그리고 1년씩 복욕한 사람은 5인인데 方殷俊 朴應俊 張峻化 朴明源 弓處官 朴準祺 등이다. 독립운동편찬위원회 간행 『독립운동사 제2권』에 의하면 3·1운동을 극대화하고 모의했던 사람으로 文炳魯 吉應哲 朴기창 鄭德化 金致松(6회) 李寬國(4회) 方鎭垣 등을 꼽고 있다. 이들 중 교구장을 제외하고는 거의 체포되지 않았고 학살당하지도 않았다. 다만 김득홍 어른의 증언에 의하면 원로들은 3·1운동의 일선에 나서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무사했다고 한다. 끝으로 김득홍 어른의 몇 가지 증언을 부기해 둔다. 1) 맹산 천도교의 연원 관계는 원래 방기창 도정이 지도하였다. 그 후에 조처항에게 물려주었고 조처항은 문병로에게, 문병로는 길응철과 박용완에게 물려주었다 한다. 따라서 포덕 70년대에는 길응철 연원과 박용완 연원이 맹산연원을 이루었다고 한다. 2) 맹산교구는 3·1운동 직후 헌병대에 점령되어 1년간 빼앗겼다. 헌병들이 물러가면서 경찰에게 인계하여 수개월간 경찰이 점령했다 돌려주었다 한다. 글 지암 이창번 선도사 1934년 평안도 성천 출생 1975년 육군 소령으로 전역 1978년 천도교유지재단 사무국장 직을 시작으로 천도교종학대학원 원감, 천도교종학대학원 교수, 천도교당산교구장, 천도교동명포 도정, 상주선도사, 의창수도원장, 천도교중앙도서관장을 역임하였다. -
[특별기고] 이재명 대통령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대북정책 변화에 찬성, 천도교와 동학민족통일회도 남북평화교류에 앞장서야지난(2025.07) 28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이재명 정부에 대한 북의 공식입장을 담화형식으로 발표했다. 김여정 부부장은 ‘대조선확성기방송중단, 삐라살포중지, 개별적한국인들의 조선관광허용’ 등 한국(남한)의 이재명 정부가 조선(북한)과의 관계개선의 희망을 갖고 집권초기부터 성의 있는 노력을 인정했다. 또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실종된 평화의 복귀와 무너진 남북관계의 복원 등 강대강의 시간을 끝내고 선대선, 화해와 협력의 시간을 열어갈 것을 제안했다’고도 밝혔다. 그러나 김여정 부부장은 ‘최근에는 몇 달 후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회의 수뇌자회의에 그 누구를 초청할 가능성까지 점치며 헛된 망상을 키우고 있다’며, 이전의 윤석열 정부 때처럼 노골적인 비난은 삼가고 그래도 수위를 조절하여 비판한 흔적이 엿보였다. 남북의 신뢰회복에 대해 노력해야 한다 김여정은 대남 담화문의 서론에서 긍정과 부정이 섞인 내용으로 흐르다가 본론에 가서는 남측과 관계개선의 뜻이 없음을 단호하게 천명했다. 강한 어조의 비판 내용은 첫 번째가 흡수통일의 본색에 대한 우려, 두 번째가 대규모합동군사연습, 세 번째가 돌이킬 수 없는 동족개념의 상실 등이다. 이러한 김여정의 담화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부정 속에 긍정의 내용이 포함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건 바로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했던 ‘흡수통일우려 해소, 한미군사훈련축소, 동족개념 복원’ 등에 대한 노력과 박정희, 노태우 정부에서 추진했던 ‘조국통일3대원칙과 남북기본합의서’ 등을 되살려 노력한다면 남북화해와 상생의 기회는 올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남북, 북미 고위급 회담과 정상회담을 촉구한다 남북의 평화와 교류에 있어 실질적인 진전이 있으려면 남북, 북미 고위급 회담과 정상회담에서 찾아야 된다. 그럼 그동안의 남북고위급회담과 정상회담을 살펴본다. *김구 선생이 1948년 4월 19일 방북하면서 ‘3.8선을 베고 죽을지언정 분단만은 막아야 한다.’란 유명한 말을 남긴, 남측의 김구와 김규식, 북측의 김일성과 김두봉의 일명‘4김 회담’을 개최했다. *1972년 7월 4일 남한의 이후락과 북한의 김영주는 남북조절위원회 공동위원장의 명의로 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을 대신하여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는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다. *1990년부터 노태우 정부는 8차례의 남북실무회담 등 남북고위급 회담을 개최 ‘남북기본합의서’를 창출했다. *1994년 6월 지미카터 전 미국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핵 활동 동결’을 합의, 김일성 주석이 카터 전 대통령에게 김영삼 대통령과의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으나, 동년 7월 김일성 주석 사망관련 남북정상회담이 무산되었다. *2000년 6월 15일 김대중 정부는, 1948년 남북분단이후 첫 번째 남북 최고 지도자 정상회담에서, ‘평화공존 인식의 체계합의, 이산가족상봉,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실시 등의 평화정착과 민간교류, 경제 활성화’ 등으로 합의된 ‘6·15남북공동선언’을 발표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12월에 '대한민국과 동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공로 그리고 남북화해와 평화에 대한 노력'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2002년 5월 11일~14일 박근혜 한국미래연합 대표(국회의원)는 3박 4일 일정으로 북측의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2007년 10월 2일부터 4일까지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양남북정상회담을 개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을 하였다.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정부는 판문점 남쪽 평화의 집에서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평화 정착, 남북관계 발전 등 논의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과 미국과 북한과의 정상회담 추진, 북미정상회담을 6월 12일 싱가포르 개최에 합의했다. *2018년 9월 18일 문재인 대통령 일행은 항공편으로 평양을 방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서명한 '9월 평양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2018년 6월 12일 트럼프와 김정은의 북한과 미국 간 정상회담을 싱가포르에서 개최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 판문점 선언의 재확인,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전쟁포로 및 전장 실종자 유해 송환’ 등에 합의했다. *2019년 2월 27일~28일 트럼프와 김정은은 배트남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을 개최했다. 2019년 6월 30일 트럼프 대통령은 29~30일 오전 한미정상회담 이후 판문점으로 이동, 오후 3시 46분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만났다. 북미 정상회동과 남북미 정상의 회동은 1953년 정전 협정 이후 66년만의 기록이었으나 특별한 합의 내용이 없었고, 한반도 평화구축이라는 의미적인 교훈만 남겼다. 이처럼 남북, 북미 고위급 회담과 정상회담은 나름대로 큰 성과도 거두었고, 국내외 정세의 영향을 받아 흐지부지 되는 아쉬움도 많았다. 이제 이재명 정부 탄생 초기부터 북측(북한)에 대한 남측(한국)이 관계개선의 희망과 평화의 복귀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열 준비를 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의 노력이 더욱 성숙해지만 남북 고위급 회담과 정상회담도 열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천도교와 동학민족통일회도 적극적 남북평화교류에 앞장서야 만약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남북 종교지도자, 종교단체도 교류에 앞장 설 것으로 내다본다. [국정원 등 북한 종교현황 참조] 특히 조선(북한)에 최대종단으로 알려진 천도교(동학)가 보다 적극적인 종교교류에 나서야 한다. 조선에는 천도교가 타 종단에 비해 신도숫자가 많음은 물론 ‘천도교 청우당’이란 정치단체가 있다. 천도교 청우당은 한때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남측의 국회의원에 해당)을 약 20여석 확보하는 등 노동당 다음의 제2당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의 천도교 청우당과 한국의 천도교 소속 ‘동학민족통일회’는 오랫동안 남북교류 파트너로 활동해왔다. 최근 천도교중앙총부(교령 박인준) 강병로 종무원장은 필자에게 앞으로 천도교 남북교류에 앞장설 것이며 최선을 다해 평화통일의 분위기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렇다 ‘사람이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 ‘사람섬기기를 한울님 같이 하라’는 사인여천(事人如天)의 사상과 실천철학을 표방하는 천도교단이 남북교류에 앞장서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좌우 양날개짓으로 남북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들을 봐라! 끝으로 현재 남북관계가 꽉 막힌 현실에서 정치적인 정상회담 등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첫 번째로 이산가족 상봉 등 서로간의 고향방문 같은 인간적인 일들이 성사되어야 한다. 현재 조선(북한)과 한국(남한)만 서로 간 갈 수 없고 전세계에 모든 국가를 얼마든지 갈수 있다. 임진각에서 임진강 넘어 북녘 하늘을 바라보면 좌우 양날개짓으로 남북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들을 봐라! 임진강 급류를 헤치며 남이든 북이든 넘나드는 물고기들을 봐라! 만물의 영장인 사람들이 철책으로 남북을 가르고 분단의 벽으로 남북을 오갈 수 없는 불쌍한 존재로 만들어 놨다. 자! 이제, 남북통일이라는 거창한 담론보다는 남북교류라는 소박한 희망을 이루려는 자세로 다 같이 노력해야 한다. 사진, 글 이윤영(천도교직접도훈, 동학혁명기념관장, 2차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 국민연대 공동대표) -
평민 철학자 해월 최시형 신사의 사상, 온라인 특강으로 만난다동학 2세 교조이자 민중 사상의 상징인 해월 최시형 신사의 철학을 조명하는 온라인 강의가 열린다. 해월 사상의 현대적 가치를 되새기며, 새로운 시대의 공동체 윤리를 모색하고자 마련된 이번 특강은 충북공공정책연구원이 주최하고, 문화공간 아르마리와 직접민주지역자치 우주당이 후원한다. 해월 최시형 신사는 “사람이 곧 하늘이다(人乃天)”라는 사상을 삶으로 실천한 철학자였다. 신사는 양반 중심의 위계적 사회를 부정하고, 평민·여성·천민까지 모든 사람을 하늘처럼 존엄한 존재로 대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굶주린 백성과 밥을 나누고, 핍박받는 민중과 함께 걷는 신사의 실천은 ‘몸으로 살아낸 철학’으로 평가받는다. 이번 강의는 『평민 철학자 해월 최시형』의 저자이자 대구대학교 김용휘 교수를 초빙해 해월 사상의 철학적 · 사회적 의미를 깊이 있게 전달할 예정이다. 강의 개요 강사: 김용휘 (대구대학교 교수 / 『평민 철학자 해월 최시형』 저자) 강의 방식: 온라인 ZOOM 실시간 강의 수강 기간: 2025년 8월 1일(금) ~ 8월 23일(토) 모집 마감: 2025년 8월 22일(금)까지 참가비: 1만 원 입금 계좌: 새마을금고 9002-2025-0686-4 (예금주: 문화공간 아르마리) 문의: 010-2969-6690 해월신사의 철학은 오늘날 공동체와 민주주의, 생명 존중, 평등 사유의 근간으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이번 특강은 인간 존엄과 공동체 정신에 대한 성찰을 원하는 이들에게 귀중한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