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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련 작가 소설 『동학』 원작, 연극 "사람, 한울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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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련 작가 소설 『동학』 원작, 연극 "사람, 한울이 되다"

동학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지혜
17세에 품은 꿈 50년 만에 이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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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사람, 한울이 되다' 부제/이장태 장군, 극단 창, 공연포스터

 

대하소설 <동학>의 저자 김동련 작가와의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하였다. 오는 5월 10일~13일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연극 <사람, 한울이 되다>가 무대에 오른다. 

오랫동안 가슴에 품어왔던 꿈, 동학이 가르쳐준 지혜와 오늘날 동학의 가치를 묻는 대화 속으로 독자 여러분을 모신다. 


집필 계기와 과정

소설 <동학>을 집필하셨습니다. 총 6권 분량의 대하소설인데요, 집필하시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였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서 동학을 주제로 한 소설을 쓰게 되셨는지 말씀해주세요.

저는 강원도 묵호에서 중학을 졸업한 후 집안 사정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17살 먹던 해 봄부터 방파제 축조회사인 흥아공작소에 급사로 일했습니다. 30톤 기중기선 화장으로 일하던 또래의 친구가 당시 태극출판사에서 나온 『위대한 한국인』 전집을 구했으나 도저히 읽어내지 못하겠다고 하여 제가 넘겨받았습니다.

그 전집 두 번째 책이 『해월 최시형』이었습니다. 그 전집에는 이승만이나 김옥균 등 여러 사람이 포함되어 있었으나 저는 그분들에게서는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해월 선생님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저는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특별히 어떤 점에서 충격에 빠지셨는지 궁금해집니다.

스승 최제우가 순도한 후 30년 동안 포졸들에게 쫓기는 절박한 상황 가운데 홀로 전국을 돌며 스승의 뜻을 이어 동학 조직을 재건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신념을 가진 한 사람의 옳고 강한 의지가 불의로 점철된 잘못된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는 강한 확신이 들면서 몸에 전율을 느꼈습니다. 해월 선생님의 행적에 비하면 기독교에서 전하는 바울의 전도 여행 같은 것은 어린아이 장난 같아 감히 비교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해월 선생님에 대한 소설을 써 보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해월 선생님의 이야기를 쓰려면 해월 선생님께 그러한 동력을 제공한 수운 선생님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수운과 해월 두 분의 이야기가 마무리되려면 두 분의 뜻을 행동으로 옮긴 전봉준 장군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험난한 세월이 오래 이어졌으나 저는 이 꿈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정말 험난한 세월이 오래 이어졌겠네요. 스승님들의 고된 여정만큼 작가님의 집필 여정은 그 과정을 고스란히 닮아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는 이 주제를 계속 삭이려 국내에 나온 동학 관련 문헌을 꾸준히 읽어나갔습니다. 그러나 독서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44살 때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들어가 문학을 수업했습니다. 문학사 자격을 얻었으나 마음에 드는 글은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경상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 들어가 문학석사 학위를 받고 철학박사를 수료했습니다. 그 후 두 권의 책을 출간하며 문장 수업을 계속했습니다.

 

열 일곱 살에 처음 해월 선생님에 대해 알게 되고 해월의 이야기로 소설을 쓰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해, 마흔이 넘어 비로소 국문과에 입학하셨는데, 배움의 뜻을 그렇게 이어가는 일도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배움의 틀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경험도 중요하고요.

동학에 관한 소설을 쓰려면 소설 속에서 많은 사람을 죽여야 합니다. 저는 사람의 죽음에 관한 경험을 하기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을 얻어 합천 노인전문요양원에 입사해 8개월 동안 근무하며 사람의 마지막 삶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4년 전 여름, 저는 더는 집필을 미룰 수가 없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당시의 국내외 상황과 작금의 국내외 상황이 중첩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동학이 그 시대의 희망이자 세상을 밝히는 횃불로써 민중들에게 큰 지지를 받았던 것에는 그 시절에 처한 절박한 현실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갑오년 동학군들이 맞이했던 상황을 다시 맞이하고 있다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자세히 살펴보면 갑오년에 실패한 동학혁명은 지금도 진행 중이었습니다. 우리는 혁명 당시 동학군들이 외쳤던 숭고한 이상과 목표를 지금도 완수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갑오년 당시 조선을 지배했던 세력은 당시의 절박한 상황을 인식하지도 못했고 잘못된 틀을 바꿀 의지도 능력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갑오년에 민족의 생존을 보장할 지혜는 결국 민중 속에서 동학이라는 이름으로 나왔습니다. 지금도 우리의 생존을 보장할 지혜는 결국 푸른 눈을 뜬 시민 속에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지혜는 동학의 인내천과 보국안민 같은 동학의 빛나는 사유를 반추하고 계승하고 선양하는 작업에 의해서 나올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뒤로 미루고 책상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야기가 점점 더 흥미로워집니다. 집필 과정에 어려움도 많으셨을 것 같아요. 

집필하는 과정에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지금 총부의 감사원장을 맡고 계시는 부암 정덕재 선생님께서 천도교 관련 학자들과 문헌을 지극 정성으로 소개해 주셨습니다. 소개받은 동학의 쟁쟁한 학자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이렇게 섬세하고 명료하게 동학을 현재의 시점에서 재해석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사실 동학은 수운 선생님 나이 20에서 30살 사이에 사유의 기본 뼈대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10년 사이 수운 선생님의 행적에 관한 남아있는 기록이 전무한 상태입니다. "각궁거상" 단 네 글자가 전부입니다. 각궁 즉 활을 손에서 놓았다니 무술을 익혔을 것입니다. 거상 즉 행상을 나섰다니 각지를 돌아다녔을 것입니다. 오지를 돌면서 조선의 실상을 뚜렷하게 목격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홀로 숙고했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작품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남기고 싶으셨나요?

저는 소설 속에서 당시 조선의 제반 상황을 사실적으로 재구성했고 그 당시 범람하던 거대 담론인 유학과 불교와 도교를 일반적인 상식을 넘어 학술적으로 재해석했습니다. 이렇게 재해석된 거대 담론을 바탕으로 행상을 하며 현자를 만나 지혜를 구하던 수운 선생님의 사유로 종합하여 독자적인 동학으로 이루어 가는 과정을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논리로 생생하게 그렸습니다. 이후의 모든 문장은 많은 상황을 문학적 상상보다는 구체적인 자료로써 직접 이야기하게 하는 서술 방법으로 썼습니다. 그리고 소설 곳곳에 나오는 대부분의 대화는 모두 조선 시대의 말로 이어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의 대형 사전에서도 찾지 못하는 고유한 우리 말과 관용어가 수도 없이 들어갔습니다. 이러한 집필 태도는 일반 독자들의 가독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저는 감수했습니다.

 

집필 기간은 어느 정도가 걸렸나요?

집필에서 출간까지 만 2년이 걸렸습니다. 저는 글을 쓰면서 수운과 해월 선생님을 물론 당시의 동학 도인들의 절박하고 안타까운 심정과 자주 동화되었고 그럴 때마다 많이 울었습니다. 두 눈에서 저절로 눈물이 흘렀습니다. 심장이 아리고 억장이 막힐 때도 많았습니다. 어떤 때는 서재 바닥을 뒹굴면서 몸부림치며 통곡을 하기도 했습니다. 글이 막힐 때는 만취해서 자다가 꿈속에서 계시를 받기도 했습니다.

결국, 17살 때 품었던 그 꿈은 그로부터 50년이 지나고 나서야 여섯 권의 대하소설로 세상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자료조사는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궁금합니다. 이 과정을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1차 자료로 참고한 문헌은 동학 경전을 비롯하여 『조선왕조실록』‧『승정원일기』‧『비변사등록』‧『일본외무성자료』 등입니다. 『동경대전』‧『용담유사』에 나타나는 범재신론은 종교철학이 추구할 수 있는 가장 고차원의 단계인데 이러한 사유는 서양에서는 20세기에 들어와서야 영국의 과정철학자 화이트헤드에 의하여 제시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19세기에 수운 선생님에 의하여 종교철학의 가장 높은 단계를 경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승정원일기』‧『비변사등록』은 조정의 입장으로 쓰인 글이므로 제가 백성의 입장에 서서 다시 번역해 소설에 넣었습니다. 『일본외무성자료』도 일본 입장으로 썼기 때문에 사실의 왜곡이나 축소가 심해 제가 조선 백성의 입장에 서서 다시 번역했습니다.

해월과 의암 선생님이 남긴 글들은 도서출판 「모시는 사람」 대표 오암 박길수 선생의 도움을 받아 모두 정독했습니다. 원광대학교 박맹수 총장님께서는 아직 발표하지 않은 여러 논문을 보내주셨습니다. 영산대학교 송봉구 교수님과 동의대학교 성강현 교수님의 도움도 컸습니다. 기타 동학 관련 단행본이나 논문들은 살아오면서 오랜 시간 동안 반복하여 꼼꼼히 읽었기에 이미 횡설과 수설이 자유로운 상태였습니다. 특히 표영삼 선생님과 이이화 선생님의 저작을 읽는 데 공을 들였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더러는 역사에 묻혀 외면당했던 여러 사건을 파내어 드러내기도 했고, 동학을 교단의 입장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재해석하여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려 노력했습니다.

저의 스승인 경상대학교 오이환 교수님은 제 소설을 읽으시고 역사적 사실과 픽션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서술이 섬세하다고 평가해 주셨는데 그것은 허구인 소설을 자료로써 직접 말하게 하려는 저의 무모한 서술 태도가 가져다 준 선물이 되었습니다.

 

소설과 연극의 차이

오는 5월에 부산 원곡예술관에서 3일에 걸쳐 선생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연극이 무대에 오르게 됩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50년간 가슴에 품어 온 이야기가 소설로 완성되고 연극 작품으로 제작이 되는데, 감회가 어떠신지도 궁금합니다. 또 이 작품을 보시는 관객분들에게 기대하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앞에 말씀드렸듯이 제 소설은 거의 역사서와 학술서 수준에다가 조선 시대의 언어로 썼기 때문에 가독성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지난 2년 동안 독자들의 요청을 받아 전국을 돌며 북토크를 했습니다. 특히 유학과 불교 그리고 도교와 천주교에 관한 저의 재해석이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오래된 우리 말이 많아 독자들은 사전을 옆에 펴 놓고 일일이 찾아가며 제 소설을 읽는다고 했습니다. 동학은 우리에게 매우 아픈 상처라고 생각했기에 저는 다른 소설처럼 글을 쉽고 재미있게 쓸 수는 없었다고 해명했습니다. 독자들은 그러한 저의 입장을 십분 이해해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소설이 이렇게 적극적인 독자층을 넘어 많은 분에게 알려지려면 좀 더 접근하기 쉽고 이해하기 쉽도록 컨텐츠화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소설 중 일부분을 발췌하여 주제를 강화한 이야기로 연극 공연이 만들어진다면 다면, 좀 더 가깝게 시민들에게 다가가 동학을 알릴 수 있고 또한, 공연에 참여한 분들이 좀 더 쉽고 재미있게 자신의 존재에 대한 성찰을 깊게 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시대 동학의 가치

내내 생각하게 됩니다. 왜 동학이었는가, 그리고 160년이 지나서도 왜 다시 동학이어야 하는가를요. 이 시대 동학의 가치를 참 오래 생각하시고 또 수운 대신사님과 해월 신사님의 정신을 온몸으로 체득해오셨을텐데요. 이 시대 동학의 가치를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현대사회는 사람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숙고할 기회를 빼앗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듯합니다. 자본주의는 개인을 다만 공장에서 생산한 상품을 소비하는 구매자로만 대우하고 있습니다. 돈이 슈퍼에고가 된 세상에서 개인은 생산자가 상품만 판매하면 게임에서 이기는 룰 속에 헤매고 있습니다. 거대한 관료주의는 개인을 자기들이 지향하는 기계속의 작은 톱니바퀴로만 대우하고 있습니다. 권력이 돈을 추구하면서 남발한 오염된 담론으로 인하여 개인은 무엇이 옳고 그른 지를 판단할 수 없도록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에 내동댕이쳐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개인은 자신이 진실로 어떤 존재인지 숙고하기가 어렵습니다.

동학은 인내천이라는 가르침을 통해서 ‘사람은 각자가 이 우주에서 가장 소중하고 아름답고 신비한 존재’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곧 한울이라는 가르침은 암울한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에게 자신과 세상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주어 그들의 삶 자체를 올바르게 바꾸게 합니다. 향아설위는 이러한 사유가 삶 속에서 실천되는 구체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학이 추구하는 보국안민은 국가가 잘못하면 백성이 직접 나서서 그 잘못을 옳게 고쳐 백성을 편안하게 하자는 정의롭고 적극적인 실천의 정신입니다. 부패한 권력에 맞서 백성의 정당한 권리를 되찾고 진정으로 백성을 위하는 권력을 창출하는 것은 동학이 그동안 끊임없이 추구했던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과 상통합니다.

그러므로 동학은 믿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뿐이겠습니까? 제 소설에는 동학이 제시한 여러 강령과 가치들이 구체적인 예를 통하여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동학의 가르침은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빈부격차나 저출산 그리고 안보위기나 사회적인 정의와 환경문제에 올바른 해답을 줄 수 있으며 나아가 사람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을 통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줄 수 있는 대단한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올해 동학혁명 130주년을 맞이합니다. 소회가 어떠신지 여쭙고 싶습니다.

130년 전 동학은 세상의 잘못된 틀을 바꾸려 목숨을 걸고 일어났습니다. 그 혁명은 안타깝게도 완수되지 못하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모두 제2의 동학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하동동학농민기념사업회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동학혁명 당시 경상도 지역의 최대 격전지였던 하동을 재조명하기 위해 전적지를 보존하고 동학을 선양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 초 전국의 기념사업회가 장흥에 모여 전국동학농민기념사업연대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흐름이 민중 속에서 동학의 지혜를 다시 반추하고 계승하여 이 시대에 당면한 문제들은 해결하는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여기에 저희가 기획한 동학의 컨텐츠화를 위한 연극 공연이 조그만 기여라도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부산 공연이 잘 마무리되면 올해 전국을 돌며 재공연할 계획입니다. 서울의 예술의 전당에서 마지막 공연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저희의 계획이 원만하게 이루어지도록 정부를 비롯하여 천도교 총부나 관련 단체의 많은 관심과 격려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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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련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학사/국립경상대학교 대학원 문학석사, 동대학원 철학박사 수료/경상대학교, 진주교육대학교, 방송통신대학교 출강/도서출판 후아유북스 대표/ 카페 여래(다솔사) 대표/하동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대표

<저서> 장편소설 『우리가 사랑할 때』(밥북)/인문서적 『천자문으로 세상보기』(인간사랑)/대하소설 『소설동학』전6권(모시는 사람들)/번역서 『안원의 사존편』(후아유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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