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10.18 17:18
TODAY : 포덕165년 2024.10.19 (토)

  • 흐림속초13.7℃
  • 흐림19.1℃
  • 흐림철원18.0℃
  • 흐림동두천19.2℃
  • 구름조금파주19.1℃
  • 흐림대관령10.6℃
  • 흐림춘천18.0℃
  • 맑음백령도12.0℃
  • 비북강릉13.6℃
  • 흐림강릉14.4℃
  • 흐림동해14.5℃
  • 구름많음서울19.7℃
  • 맑음인천17.2℃
  • 흐림원주17.6℃
  • 비울릉도12.6℃
  • 구름조금수원19.4℃
  • 흐림영월18.4℃
  • 흐림충주17.6℃
  • 흐림서산17.1℃
  • 흐림울진15.4℃
  • 비청주17.2℃
  • 비대전17.4℃
  • 흐림추풍령18.1℃
  • 비안동18.6℃
  • 흐림상주22.5℃
  • 비포항18.5℃
  • 흐림군산18.1℃
  • 흐림대구21.9℃
  • 흐림전주18.6℃
  • 흐림울산20.1℃
  • 구름조금창원28.5℃
  • 흐림광주19.8℃
  • 흐림부산24.5℃
  • 맑음통영27.5℃
  • 흐림목포19.3℃
  • 맑음여수25.9℃
  • 흐림흑산도18.2℃
  • 구름많음완도21.1℃
  • 흐림고창18.6℃
  • 구름많음순천19.2℃
  • 구름많음홍성(예)17.4℃
  • 흐림17.0℃
  • 흐림제주22.7℃
  • 흐림고산21.0℃
  • 맑음성산25.2℃
  • 구름많음서귀포27.7℃
  • 맑음진주27.0℃
  • 구름조금강화16.7℃
  • 흐림양평19.9℃
  • 흐림이천18.6℃
  • 흐림인제16.2℃
  • 흐림홍천18.0℃
  • 흐림태백12.4℃
  • 흐림정선군15.6℃
  • 흐림제천17.7℃
  • 흐림보은17.2℃
  • 흐림천안16.8℃
  • 흐림보령17.1℃
  • 흐림부여17.1℃
  • 흐림금산18.4℃
  • 흐림16.6℃
  • 흐림부안18.7℃
  • 흐림임실17.3℃
  • 흐림정읍18.3℃
  • 흐림남원18.6℃
  • 흐림장수18.2℃
  • 흐림고창군18.6℃
  • 흐림영광군18.0℃
  • 구름조금김해시28.1℃
  • 흐림순창군19.1℃
  • 구름조금북창원27.8℃
  • 구름많음양산시23.4℃
  • 구름많음보성군21.8℃
  • 흐림강진군21.4℃
  • 흐림장흥20.0℃
  • 흐림해남20.5℃
  • 구름많음고흥23.0℃
  • 맑음의령군29.4℃
  • 구름많음함양군22.8℃
  • 구름많음광양시26.9℃
  • 흐림진도군19.6℃
  • 흐림봉화16.8℃
  • 흐림영주17.1℃
  • 구름많음문경21.8℃
  • 흐림청송군18.4℃
  • 흐림영덕15.7℃
  • 흐림의성20.4℃
  • 흐림구미21.3℃
  • 흐림영천19.3℃
  • 흐림경주시20.1℃
  • 흐림거창23.6℃
  • 맑음합천27.5℃
  • 구름조금밀양28.0℃
  • 구름많음산청25.3℃
  • 구름많음거제25.0℃
  • 맑음남해26.5℃
  • 구름많음23.7℃
기상청 제공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나동환 교장 임명장(천도교중앙총부 소장)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나동환 교장 임명장(천도교중앙총부 소장)

03_나동환 교장임명장.jpg
나동환 교장 임명장

 

 

동학의 2대 교주 해월 최시형 신사는 1884년부터 교장교수도집집강대정중정의 육임제를 실시하였는데이는 오늘날 천도교의 교역자 제도의 효시이다


1885년부터는 각 지방에서도 육임제를 확장하면서 동학의 교세가 크게 늘어났다교장은 자질이 알차고 덕망이 두터운 사람에게 수여된 직책이었고교수는 성심으로 수도하여 가히 교리를 전할 수 있는 사람’, 대정은 공평하며 부지런하고 중후한 사람에게 수여된 직책이었다.

 

위 세계기록유산은 위 육임제의 직책에 따라 해월신사가 나동환에게 교장의 임명장을 수여한다는 증서이다.


관련 역사적 사실
나주의 접주 나동환(羅東煥, 1849~1937)은 본관이 나주이며 영암 택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자는 도경(道卿), 호는 일암(日庵)이다. 그는 나주의 명문 양반가 출신으로 일찍이 동학에 입도하여 1894년 1월에는 교단으로부터 해월신사로부터 교수 겸 교장 직책을 받았다. 동학혁명군의 1차 기포 때는 나주의 접주로서 활동하였다.
동학군이 나주성을 공격할 때도 500명의 동학군을 이끌고 싸웠다. 그 후 전봉준의 체포 소식을 듣고 재기를 도모하기 위해 그의 부인 진주정씨와 함께 함평군 월야면 연암리 다라실에 있는 나동환의 처가로 은신했다. 관군이 들이닥쳤으나, 부인 진주정씨(晋州鄭氏)는 남편과 아들을 다른 곳으로 피신시켰고, 자신은 관군들에게 잡혀 압슬형(壓膝刑) 등 혹독한 고문을 받았으나, 끝내 남편의 행방에 대해 함구하다가 사망했다. 이들을 기리기 위해 의열각(義烈閣) 안에 〈나주나공동환의적비(羅州羅公東煥義蹟碑)〉와 〈효열부진주정씨행적비(孝烈婦晋州鄭氏行蹟碑)〉가 함께 세워졌다.
7.jpg
나주 동학접주 나동환 기념비(나주시 과원동121-10)

 

 

8.jpg
의열각안의 기념비〈나주나공동환의적비(羅州羅公東煥義蹟碑)〉와 〈효열부진주정씨행적비(孝烈婦晋州鄭氏行蹟碑)〉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