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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 문바위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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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문바위골01.jpg 청산문바위골02.jpg

조재벽(趙在壁)은 자신의 포중인 청산군 문바위골(文巖里) 김성원(金聖元)의 집으로 해월선생을 이주시켰다. 

덕기의 병세는 악화되어 10월 15일에 19세의 나이로 운명하고 말았다. 김씨 사모님의 소생은 딸 최윤(崔潤)만 남았다. 

최윤은 동학혁명운동 당시 체포되었다가 청산현 아전 정주현(鄭周鉉)과 결혼하여 훗날 아동음악가로 활동한 정순철(鄭順哲)을 낳았다.

1894년(갑오) 1월(음력) 새해에 접어들면서 신사가 문암리에 강석(講席)을 마련하여 강도회를 베풀었다. 신앙심을 기르고 동학이 지향할 방향을 잡아 주기 위해 교육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무엇보다 문바위골이 동학혁명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청일전쟁을 통해 본격적으로 야욕을 드러낸 일본의 침략의도를 막아내고 만민평등의 세상을 이루기 위해 다시한번 전국적으로 총기포를 결정한 곳이라는 것이다. 

1894년 9월 18일, 문바위골에 머물던 해월선생은 동학지도자들을 모아 놓고 무력봉기를 선언 했다. 선언 이후 즉각적으로 전국의 동학군이 장내리와 청산문바위로 모여 들었다. 

 

충청.경상.경기.강원 지역에서 온 동학농민군들은 전라도 동학농민군과 논산에서 합류하러 갈때까지 문바위골에서 군사훈련을 했다고 전해진다.

해월선생이 문바위골에 머문 가장 큰 이유는 옥천이 삼남의 중심이었던 지리적 요건이 좋고, 주변의 상주, 영동, 옥천, 금산, 보은, 문경, 괴산 등으로 언제든 가기가 쉬운 곳이다. 산간지방이라 은신하기도 좋아 포교활동에 적격이다. 때문에 당시 옥천에는 동학교도와 가족 등 5만 여 명이 모여 있어 동학의 교세가 상당 했음을 알수 있다.

 

소재지) 충북 옥천군 청산면 한곡리 396

 

글_조성갑


* 이 글은 천도교중앙총부 동학혁명정신선양사업단에서 발행한 매거진 <동학집강소>에 게재된 글을 재구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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