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11.22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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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독립운동을 주도하고 순국한 의암 손병희 선생 순국 101주기 추모 묘소 참례식이 5월 19일(금) 오전 11시 서울 도봉구 우이동 봉황각 옆 묘소에서 열렸다.
참례식은 이미애 교화관장의 집례로 청수봉전, 심고, 주문3회병송, 헌화, 심고(폐식) 순으로 진행되었다.
헌화는 박상종 교령, 이순희 강북구청장 등 주요 내빈, 이정희 천도교 연원회 의장, 박남수 전 천도교 교령, 최흥규 천도교 종의원 부의장, 주용덕 천도교 종무원장 등이 하였다.
식후 박상종 천도교 교령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을 때부터 의암 손병희 성사는 10년 내에 나라를 되찾겠다면서 이곳 우이동에 3만여 평의 땅을 매입하고 봉황각을 지어 독립투사를 양성하시고 3·1독립운 동을 기획·주도하셨다. 뜻깊은 날에 참석해 주신 내외 귀빈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며 인사했고, 이순희 강북구청장은 “천도교에서 어린이날 행사를 이곳 봉황각에서 열어 강북구 어린이들을 행복하게 해주셔서 감사드린다. 앞으로 도울 일이 있으면 적극 협조하겠다”라고 말했다.
의암 손병희 선생은 1861년 4월 8일 청주에서 태어나 22세에 동학에 입도하였다. 선생은 해월 최시형 선생의 명을 받아 교조 신원운동(敎祖伸冤運動)을 전개했고 1893년 광화문복합상소에도 참여했다. 동학혁명 때에는 북접 통령으로 이인 전투, 우금티전투, 태인 성황산전투, 보은 전투 등을 치루며 항일 구국전선에 나섰다. 이후 1897년 12월 24일 해월 최시형 선생으로부터 도통을 전수받고 1901년 국제정세를 살피기 위해 일본으로 떠났다. 흑의단발을 단행하는 문명, 1905년 동학을 천도교로 대고천하 하였다.
1912년 우이동에 봉황각을 건립하여 3년 동안 483명의 교역자를 선발 수련을 통해 독립운동 지도자로 양성하여 1919년 3·1독립운동을 기획·주도 하였다.
의암 손병희 선생은 3·1독립운동 후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어 고문 후유증으로 1920년 10월 22일 병보석 되었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1922년 5월 19일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