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11.21 17:00
TODAY : 포덕165년 2024.11.21 (목)
여름은 나에게 매우 곤혹스러운 계절이다. 따갑고 자외선이 강한 햇살을 피해야 하는, 치료되지 않는 피부질환이 있어서다. 20대부터 여름에는 좀체 움직이지 않았고 이런저런 모임이나 여행도 여름에는 피했고 야외활동을 할라치면 해가 지고 난 후에 했다. 이번 여름에도 오랜 습관처럼 지내겠거니 생각했는데 종학대학원 하계수련을 한단다. 여름이기도 하고 나는 청강생이라 참여하지 않으려 했지만, 우리 교구에서 연암 부산분원장을 비롯한 종학대학원 수강하는 어르신 여러분과 최근 입교한 신입 교인-말이 신입이지 실은 동학을 오랫동안 공부한 분들이다-중 종대원생 세 분 모두 참여하신다니 우리 교구의 원우들은 다 가는 셈이다. 안가겠다고 말할 수 없었다. 햇살 대신 비가 오면 좋을텐데... 다행히 하계수련 내내 비가 올 것이라 한다. 일기예보가 반가울 수도 있구나. 게다가 의창수도원은 한 차례 방문은 했어도 한 번도 수련해 보지 못한 곳이라서 수련 의지가 조금 솟아올랐다. 이곳은 의암성사께서 독립정신을 고취하고자 수차례에 걸쳐 전국의 동학 지도자들을 불러들여 49일 수련을 시키시던 곳이 아닌가. 원우 여섯 분과 분원장님을 부산역 대합실에서 만나 사진 찍고 두런두런 담소도 나누다 보니 나들이 가는 느낌이었다. 의창수도원에 모인 전국 각지의 서른다섯 분 동덕님들을 만나 보니 그 옛날 동학 지도자 못지않게 각오와 도력이 단단하셨다. 지난 용담정 겨울수련에는 짧은 기간 참여해서 여러 원우들과 서로를 알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는데 이번에는 함께 밥을 먹고, 설거지하며, 쉬는 시간에 차를 나눠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누었고 각자의 직업과 신앙 이력 등 서로에 대해 알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매일 오후마다 한 차례씩 열린 특강은 천도교의 주문수련과 경전, 역사 등 교인이라면 누구나 관심 가질 만한 주제였고 여느 강의 못지않게 알찬 강의였다. 혜원당 김춘성 상주선도사님은 오랜 수련경험과 경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입문자를 위한 수련법」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셨다. 종학대학원생 대부분은 이미 오랜 수련을 해온 분들이라 신입 교인이나 자녀들에게 올바른 수련의 절차와 방법을 안내하고 지도할 위치에 있어서 혜원당님 강의는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혜원당님은 소춘 김기전 선생님이 「신인간」에 기고하셨던 글과 당신의 수련체험을 맛깔나게 잘 버무려서 우리에게 알려 주셨는데 매우 구체적이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주문을 외울 때 한울님에 대한 경외지심, 한울님 기운과 하나가 되려는 강렬하고 간절한 마음, 오직 일념으로 주문의 뜻을 생각해야 하는 점을 강조하였고, 수련 중에 일어나는 여러 현상을 소개하는 등 타성에 젖어가던 나의 주문공부를 다시 돌아보게 했다. 특히 강화에 대한 해원당님의 말씀 중에 깊이 와닿았던 것이 있다. ‘질문이 없으면 강화가 없다’는 말씀이다. 나는 ‘스승님의 가르침이 지금 여기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며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경전의 어떤 말씀을 두고 그게 무슨 뜻일까 깊이 고민하는 중에 어느 날 느닷없이 답을 얻은 적이 여러 차례 있었는데, 혜원당님의 말씀을 듣고 그 일이 강화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다른 원우가 또 이렇게 질문했다. “천도교인과 동학을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 차이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살겠습니다’와 ‘잘 알겠습니다’의 차이가 아닐까요.”라고 답하셨는데 정리를 참 잘해주시구나 싶다. 아니, 그렇게 살아오셨으니 쉽고도 명쾌한 대답이 저절로 나오는 것일 게다. 앞으로 포덕하는 현장에서 잘 활용할 수 있는 강의였다. 물론 체험이 선행되어야겠지만.
두 번째 특강은 윤석산 교령님께서 맡아 주셨다. 연일 바쁘신 중에도 방문해 주시니 우리로선 감사하지만 교령님의 건강이 염려된다. 피로가 쌓인 모습에 의자에 앉아서 강의하시길 권했다. 수련생들 모두 걱정스런 시선으로 교령님을 쳐다보는 가운데 오히려 교령님께선 여유있게 유머를 구사하며 강의를 이끄셨다. ‘동학’에서 ‘천도교’로의 大告天下 당시 시대상황과 일본 제국주의의 억압에 맞서 의암성사님께서 용시용활하는 전략을 짧은 시간 동안 드라마틱하게 보여 주셨다. 동학의 종교화를 위하여 오관을 제정하고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간행하는 한편, 교리강습소를 운영하고, 출판사를 인수하여 교리해설서를 출간하여 일관된 교리체계를 세웠던 과정을 학술적 근거 자료를 제시해 가며 생생하게 설명하셨다. 또한 성사께서 일제의 탄압을 뚫고 천도를 계승 발전시키고, 전국의 지도자들을 천도교 신앙심으로 결집하고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독립과 개화에의 열망으로 승화시켜 가는 과정을 배운 값진 시간이었다. 이번 특강은 현재 교단의 엄중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의암성사님과 같은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교령님의 마음이 담긴 것으로 다가왔고, 교인들의 同歸一體, 同歸一心을 촉구하는 간절함을 간접적으로 보여 주시는 것이 아닌가 싶다. 원우들의 힘찬 박수에는 교단발전을 위해 애쓰시는 교령님이 항상 건강하시길 바라고, 오랫동안 교인들에게 스승님의 가르침을 전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세 번째 특강은 탁암 심국보 전 신인간 주간이 진행하셨다. 나는 진작에 탁암님의 진가를 엿보았다. 「신인간」의 기획 기사와 저서 『동학의 비결』, 블로그의 여러 글에서 웅숭깊은 글을 보면서 조용히, 그리고 오랜 시간 스승님의 가르침을 속독상미하여 재해석해 내고 마음공부도 많이 하신 분이구나 생각했다. 탁암님의 강의는 ‘마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서양철학의 치열한 논증과정을 보여주었고 뇌과학의 최신 성과까지 다루었다. 나는 평소 서양이라는 지리와 그 산물인 서양인도 한울님 조화의 흔적인데 당연히 몸과 마음, 정신, 이성과 감정 등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 철학과 종교에서 많은 연구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비록 과문하여 전체를 조망할 수 없지만 서양의 주류가 아닐지라도 동양사상 또는 동학의 사상에 필적하는 흐름도 있지 않을까 짐작하고 있었는데, 탁암님의 강의는 이런 점을 잘 짚어 주셨다. 그럼에도 탁암님의 강의 방점은 행도(行道)에 있는 것 같다. ‘정명선의(正明善義. 바르고 밝고 착하고 의롭게)’(의암성사, 「성범설」), “주문 천 독하는 것이 선한 마음 한 번 쓰는 것만 못하고, 선한 마음 천 번 쓰는 것이 한 번 기운 상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묵암 신용구 강론집, 『글로 어찌 기록하며』), “지상천국이란 ‘개인과 공동체가 고통받지 않는 것’”(성해영,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 등 이런 말씀을 들려줌으로써 ‘마음’을 닦는 것은 물론이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기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그나저나 막걸리 한잔 나누게 빨리 건강 회복하시길...
네 번째 특강은 지암당 서소연 교무처장님이 맡으셨다. 지암당님은 종학대학원에서 축구선수 박지성과 같은 존재다. 그는 미드필더였다. 미드필더는 전체 경기흐름을 조율하고 공격과 수비의 밸런스를 유지한다. 그 역량에 따라 경기의 승패가 갈리는 핵심적인 포지션이다. 팀이 위기에 처하면 직접 골을 넣어서 팀을 패배에서 구하기도 한다. 나는 지암당님이 그런 존재라고 생각한다. 지암당님이 아니라면 종학대학원이 이 정도의 안정된 시스템을 갖추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학기 중 뿐만 아니라 여러 차례 동, 하계수련을 잘 조직하였고, 다양한 콘텐츠가 갖춰진 수련회를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이번에는 급기야 직접 골(특강)까지 넣지 않았는가. 종학대학원 원우님들의 연세가 높은지라 첨단(?) 테크놀로지 활용능력이 조금 떨어지는 상황에서 매번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는데 특강을 통해 원우들의 디지털기기 활용능력을 조금이나마 높였다고 본다. 지금까지 학기 중 강의가 온라인으로 진행되어서 전국 각 지역의 원우들의 어려움이 많았는데 이번에 좀 해소되었기를 바란다.
이번 하계수련의 하이라이트는 수련시간이었다. 새벽, 오전, 저녁에 하루 세 차례 수련하는 시간에는 참여한 모든 분들이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다. 원우들은 물론이고 대구시교구장님의 사모님과 막내 따님, 원처근처에서 격려차 오신 교인, 또 아직 입교하시지 않았지만 동학 천도교에 깊은 관심을 가진 여러 동덕님들 모두가 “주릴 때 밥 생각하듯이, 추울 때 옷 생각하듯이, 목마를 때 물 생각하듯이” 간절하게 큰 소리로 주문을 외웠고, 비고 고요한 경지에서 묵송을 하였다. 특히 서종환 수도원장님은 경전과 수련에 관한 강의는 수련시간을 더욱 가열차게 했다. 젊은 시절부터 이어온 마음공부에 대한 갈망과 여정, 경전에 대한 깊고 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스승님들의 가르침을 일목요연하게 꿰는 놀라운 혜안 등 실로 예상치 못한 말씀이 수련시간마다 이어졌다. 심지어 1시간 30분 동안 주문수련하지 않고 꼬박 말씀으로 이어가도 원우들은 원장님의 말씀을 더 듣길 원했던 적도 있다. 여기에 원장님의 말씀을 옮길 수 없어서 안타깝지만 많은 교인들이 의창수도원에서 하루라도 머물면서 원장님의 말씀을 듣고 수련도 해보길 권한다. 환경이나 재정적으로 매우 열악한 여건인데도 수도원장직을 맡아 몸을 사리지 않는 모습을 보며 존경심이 절로 우러났다. 사모님은 또 어떠신가?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채 하루 세 끼 비할 데 없는 정성으로 수련생들을 대접하셨다. 정말 감사드린다. 그러고 보니 용담수도원을 비롯한 전국의 수도원의 원장님들이 다 그러하지 않은가? 천도교를 지탱하는 또 다른 힘이 드러나지 않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구나. 새삼 원장님들께 감사드린다.
아, 빠트릴 뻔했네. 수암 김희수 마산교구장님은 참으로 독특한 분이시다. 펄펄 넘치는 기운으로 하루 세 번 몸살림 운동으로 굳은 몸을 풀어주셨다. 그냥 몸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 동작에 노래를 곁들여 신명을 이끌어내는 드문 능력을 지닌 분이다. 우리 가락이, 신명이 안에서 샘솟듯이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 같다. 게다가 목청은 얼마나 좋으신가. 높은 음을 쑥쑥 잘도 뽑아내신다. 옆에 있으면 나도 그렇게 될 것 같다. 수련기간 내내 몸으로 노래로 기운을 북돋워 주셔서 감사하다. 천덕송 지도를 해주신 천도교 연합합창단 지휘자 김윤경 선생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오랫동안 천덕송과 송가 보급에 고군분투해 왔고, 합창단 지휘도 맡아 연주수준을 높이고 각종 행사에 활력을 불어넣으신 분이다. 하계수련을 위해 피곤하고 바쁜 와중에도 노래를 지도하러 오셨다. 게다가 수련생들의 성화에 못 이겨 목상태가 조금 좋지 않음에도 열창까지 해주셔서 큰 호응을 얻었다. 아직도 천덕송을 부르는 그녀의 美聲이 귓가에 맴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여름에는 따가운 햇살도 피하고 유익한 강의도 듣게 되어 공부에 큰 도움이 되었고, 수련 기간 내내 오롯이 마음을 한곳에 모을 수 있었는데 앞으로 더욱 정진해야겠다는 각오를 해본다. 아직 나의 마음에 티끌이 많아 순도 100% ‘寶鏡’에 이르기까지 갈 길이 멀지만, 이제부터라도 티끌 한 점 한 점 떼어내 보자.
글 노암 강병로(대동교구)
사진 종학대학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