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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학의 힘, 힘차게 달려온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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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학의 힘, 힘차게 달려온 1년

허채봉 동학농민혁명 부산기념사업회 대표

창립 1주년을 맞이한 동학농민혁명 부산기념사업회의 허채봉 대표를 만났다. 허채봉 대표는 오랫동안 동학을 기반으로 활동해 왔으며, 동학을 주제로 학위과정을 마친 연구자이기도 하다. 

열정적인 활동을 이어온 허채봉 대표에게 이 시대 동학, 천도교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동학의 가르침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허채봉 대표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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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부산기념사업회 허채봉 대표

 

 

동학농민혁명 부산기념사업회 창립1주년을 맞이하셨습니다. 기념사업회를 어떻게 창립하게 되었는지 그 계기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제가 2022년 2월에 동학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는데, 그 논문이 2023년 1월에 정읍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아카이브에 등재되면서 동학 신진연구자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어요. 그때 우리 천도교단 활동과는 조금 결이 다른 동학을 주제로 활동하시는 분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중에서도 2021년부터 동학 서훈 운동을 했던 분들, 동학혁명 유족회, 그리고 전국의 기념사업회 분들을 만나게 되면서 제가 활동하는 부산에도 동학 기념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가 작년 6월이었고 동학 신진연구자 모임을 한 이후 7월 8일에 기념사업회를 창립한 것입니다. 그 흐름에 이어 전국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회 전국 워크샵이 열리기도 했고요. 그렇게 일사천리로 이뤄졌습니다. 


첫 번째로 연구자로서 논문을 쓴 게 계기가 됐을 거고 동학 신진연구자 워크숍에서 다양한 분들을 가면서 활동의 폭이 넓어진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이 과정들에는 굉장히 깊은 고민과 또 오랜 성찰이 있었을 것 같아요. 

제가 동학을 하기 전에, 오랫동안 택견이라는 무예를 했어요. 택견은 우리 민족 무예로서 국가 중요 무형문화재 76호로 지정돼 있고, 2015년도에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재로 등록이 되었습니다. 세계 인류 무형의 유산이면서 수련종목인 택견을 하면서 새롭게 현대의 스포츠로 계승하는 일을 해왔고, 그런 과정들을 한 30년 정도 하다보니 동학을 알게 되고부터는 자연스럽게 내가 무엇을 할 건지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모색해왔습니다. 전국을 다니며 동학의 역사를 찾고, 알아가는 과정이 삶의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동학을 접하게 된 최초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천도교에 입교하게 된 계기도 궁금합니다. 

2016년도 가을에 녹색당 농업특별위원회의 농업 먹거리 활동을 했는데 흔히 우리가 ‘녹색농부’라고 말해요. 이분들 중 저력이 있는 분들이 많아요. 어느 날 녹색 농부 중 한 선생님께 여쭸어요. 혹시 종교가 있으시냐고요. 그냥 묻고 싶었어요. 그분 종교가 ‘천도교라’는 거예요. 내가 다시 물었어요. 천도교가 뭔가요? 천리교인가요? 천리교는 일본 종교잖아요. 그게 아니래요. ‘동학’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깜짝 놀랐어요. 동학이면 1894년 동학농민혁명을 얘기하는 거 아니냐고요. 그랬더니 맞대요. 그래서 내가, 그러면 동학농민혁명이 종교란 말이에요? 그렇게 또 물었어요. 그게 종교였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게 지금까지도 이어진다는 거예요. 

나는 민족무예 택견의 지도자로서 몇십 년을 살았는데, 동학농민혁명이 종교였다는 것을 몰랐어요. 뒤통수를 딱 맞는 느낌이었어요. 너무 충격이었어요. 

동학농민혁명이 그 순간에 있었던 이벤트나 사건이 아니었고 계속 어떤 흐름 속에서 일어난 건가, 그러면 왜 나는 그런 걸 몰랐지? 너무 충격을 받아서 한 며칠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며칠 고민을 하다가 천도교중앙총부에 전화를 했어요. 입교 같은 걸 할 수 있냐고요. 전교인을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지도 물었어요. 나는 천도교 안에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거든요. 전교인을 선택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 선생님한테 가서 그랬어요. 천도교에 입교를 하겠다고요. 선생님, 전교인이 되어 주세요. 이렇게 얘기를 했죠. 그때 목암 전희식 선생님이 책 <소농은 혁명이다> 북콘서트를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 ‘천도교중앙대교당’이라는 곳을 가 봤지요. 


그날이 2017년 포덕 158년 4월 9일이었는데, 4월 5일 천일기념일이 있던 주의 시일, 4월 9일이었습니다. 그날 입교를 하게 된 거예요. 


그때 입교를 하신 거군요. 그럼 그 전에는 천도교중앙대교당을 전혀 모르셨나봐요. 와보시니 어떻던가요? 압도적인 어떤 기운이 느껴지시던가요?

첫 느낌이 예수상이나 십자가, 부처상과 같은 우상이 없고 궁을기가 보였어요. 대교당 건물이 굉장히 아름다웠고요. 제가 20대 때 길 건너 원서동에 살았거든요. 그런데 천도교중앙대교당을 몰랐어요. 처음 대교당에서의 모든 느낌이 다 좋았어요. 청수봉전을 보며, 여성이 청수를 봉전해야 그 의식이 시작된다는 게 좀 신기했고 우상이 없는 것도, 성직자 없이 일반 교인들이 돌아가면서 시일을 모시는 것도 참 놀라웠어요. 고정관념을 깨는 종교라는 생각이 들었고 신선했어요. 


입교를 한 이후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처음 대교당에서 전희식 선생님의 북 콘서트를 보러 갔는데, 일주일 뒤에 전주에서 또 북콘서트를 하신다고 하더군요. 전주 한옥마을 안에 있는 동학혁명기념관에서요. 그 말씀을 듣는데 전주 동학혁명기념관에 너무너무 가고 싶었어요. 그리고 거기서 당시 임형진 종학대학원장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해부터 종학대학원 전주 분원과 부산 분원이 만들어질 거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부산 분원 개원소식을 기다렸고, 이후 여러 우여곡절 끝에 부산에 종학대학원 부산분원이 열렸습니다. 거기서 본격적으로 천도교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열심히 활동하시는 교인분들 한분 한분이 사회적으로 알려지고 사회 곳곳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이 시대 진정한 종교의 역할이 아닌가 싶습니다. 동학농민혁명 부산기념사업회가 창립 후 1년 동안 바쁜 걸음으로 달려오셨습니다. 기억에 남는 일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부산은 알다시피 동학의 유적지가 없잖아요. 기념사업회를 만들어 놓고 보니까 갈 데가 없더군요. 창립을 했는데 기념사업회에서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창립하자마자 기념재단에서 동학농민혁명 편람을 보내왔어요. 전국에 있는 동학 유적지를 다 모아놓은 거였어요. 경상도권 전라도권 경기권 충청권 등 전국에 있는 권역별로 쭉 있는데 등급이 A, B, C, D 이렇게 나뉘어 있는데 부산에 딱 두 곳이 있는 거예요. 그것도 B급이더라고요. 1893년, 부산성에 “척왜양창의” 깃발이 걸려 있었다는 기록이 있어요. 그때는 천도교인이 부산에 없었던 것 같은데 그게 어떻게 붙어 있었는지 참 신기하다 이런 식으로 소개가 되어 있고 출처는 없었어요. 그리고 또 두 번째는 일본군 토벌대가 주둔을 했던 곳인데, 그곳이 재단의 자료에서는 '40계단'이라고 나오더군요. 부산 중앙동의 40계단은 유명한 곳이에요. 그곳은 6. 25 동란 때 피란민들이 살던 곳이에요. 그렇게 토벌군들이 있었던 부산 이사청, 그리고 국립강제동원역사관에 있는 나인협 흉상을 세 번째 유적지로 해서 세 군데가 생긴 거예요. 그게 너무 극적으로 느껴졌어요. 

기념재단에 감사했어요.  내 논문을 아카이브에 등재해준 것도 감사했지만 부산 지역에 동학유적지를 밝혀준 것이 반가웠거든요. 

그래서 우리 대학원에 자랑도 했어요. 동학농민혁명재단 아카이브에 논문 등재됐다고요. 축하도 많이 받았죠. 재단에서 보내왔던 동학농민혁명 편람이 기념사업회에 큰 도움이 됐지요. 


동학혁명의 불모지라고 할 수 있는 부산지역에 기념사업회를 창립하여 자리를 잡아가고 계시는데, 참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혼자서는 어려운 일이었을 것 같아요. 

그렇죠. 이렇게 1년을 돌이켜보면 꽤 많은 일을 했어요. 저 혼자 한 게 아니고 도와준 분들이 참 많더군요. 감사한 일이죠. 그때그때 나타나서 함께해준 사람들이 반드시 있었어요. 

마침 제가 올해 부산시 택견 단체 부회장의 마지막 임기거든요. 올해를 끝으로 활동의 방향을 동학으로 전환하게 될 것 같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버릴 건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제가 30년 넘게 택견을 하면서 배운 것들이 또 이렇게 쓰이게 될 테니까요. 기쁜 점은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를 통해서 내가 하고 싶었던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외부에 있는 사람들과 동학혁명 서훈 운동을 하면서 천도교를 알려 나가고 천도교의 뿌리가 결국 동학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천도교에 대해 잘 몰랐던 사람들이 이제 귀를 열고 듣기 시작했다는 거죠.

최근 전국 동학혁명 연대가 봉황각에서 취회를 했어요. 저녁 9시 기도식도 하고 주문 수련을 함께 하시더군요. 대교당에 가서 시일식도 같이 참여했고요. 이럴 때 천도교인들이 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더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부산이 동학의 역사나 유적에 대해서는 불모지라고 생각을 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까 유적지는 유적지대로 갇혀서 과거의 기억 운동에만 집중해서 하는데, 저는 부산이 조금 더 역동성을 가질 수 있는 민주시민교육 운동과 함께 동학과 궤를 같이 하면서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 같아서 보람이 큽니다.

기념사업회가 생기기를 기다려준 것만 같아요.


이렇게 동학에 대해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계시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나는 택견을 하면서 어떤 소명이라는 거를 느꼈거든요. 그러니까 사람은 각자의 소명이 있는데 나의 소명은 이제 오래된 전통의 부활 그러니까 “Rebirth”,  재탄생 이런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낡은 것의 가치를 새롭게 이끌어 내면서 오늘에 맞는 정서나 감성으로 새롭게 콘텐츠로 부활하고 생명력을 불어넣는 게 나의 소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택견을 할 때에도 시나리오를 쓰고 작품을 만들기도 했는데, 동학을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그런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어요. 


부산기념사업회 1년, 그렇게 딱 한 걸음을 걷는 동안 같이 걷는 사람들이 생겼어요. 그만큼 기대가 클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도 궁금합니다.

부산기념사업회를 만들면서 더 절실하게 느끼는 것은 연구소입니다. 말하자면 부산동학기념사업회를 잘하기 위해서 동학연구소가 있어야 되겠고, 궁극적인 목표는 동학혁명 서훈 국민운동이나 전동연(전국동학연대)을 통해서 동학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확보를 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연결될 수 있는 것들이 굉장히 많아요. 교육적인 차원에서도 그렇고 또 전동연에서 함께 하고 있는 장흥 무명동학군 묘역 성역화나 이런 게 다 맞물려 있잖아요. 이러한 전 국민적인 움직임과 함께 동학이 국민적 필수 인문 과목으로 자리 잡는 것, 그게 내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운동이 되겠네요. 부산기념사업회는 부산이라는 지역을 통해서 하는 건데 이제 그런 뜻을 펼쳐나가면서 전 세계 인류의 교양 과목이 되는 게 동학의 포덕 사업이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나는 천도교를 해서 참 행복한 사람이고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회를 할래, 천도교를 할래?" 하면 난 천도교를 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나는 처음부터 범신론자였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가 우주적인 어떤 질서 속에 있는 존재라는 것이라고 어렴풋이 알 뿐이었어요. 그런데 천도교의 경전을 접하면서 내 마음속에 있었던 이야기들이 그대로 글로 적혀 있어서 참 놀라웠어요. 경전에 모든 게 다 있어요. 


저는 앞으로도 더 천도교에 대해 알고 싶고 천도교의 진리를 깨닫고 싶습니다. 그리고 깨달은 바를 기념사업회 일을 하면서 펼쳐 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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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7일 부산 민주공원 소극장에서 개최한 동학농민혁명 부산기념사업회 창립1주년 기념식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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