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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 <하얀 혁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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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 <하얀 혁명>(1)

중편소설 <하얀 혁명>(1)

 

1. 출진


“이보게, 규석이. 소식 들었는가?”

이창진은 접소 안을 민틋하게 정리한 후 청수상(淸水床)을 닦아 선반 위에 올리며 물었다.

“무슨 소식?”

“해월선생께서 드디어 기포령을 내리셨다네.”

“전봉준의 호남동학군이 기포했다는 소식은 들었네만 우리 경기동학군에서도 기포를 했단 말인가?”

“그렇다네.”

“경거망동하지 말라 하신 게 칠월 아니었던가?”

“그랬었지.”

“그런데 왜 이리 경황이 없으신 게야?”

“오늘은 접주(接主)와 접사(接司)들만 은밀히 모이라 했으니 도소(都所)에 가면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있을 걸세. 어서 서두르세나.”

이천포의 이창진 접주와 한규석 접사는 교인들이 빠져나간 접소의 문을 꼼꼼히 닫아걸고 길을 나섰다. 

들판 가득 누렇게 일렁이던 벼가 아름 단으로 묶여 누워 있는 논두렁길로 접어들었다. 늦장마가 길어진 탓에 개울물이 벙벙하게 흐르고 있었다. 논바닥이 쩍쩍 갈라질 때는 코빼기도 뵈지 않던 비가 사흘돌이로 쏟아지는 바람에 베어둔 낟가리에서 싹이 틀 지경이었다.

이천의 도소까지는 걸어서 한 시간 거리. 둘은 마음이 바빠져 볏단 거둬들일 생각 대신 동학의 주문을 소리 내어 외우며 걸음을 재촉했다.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 영세불망만사지(永世不忘萬事知)”


이천의 도소에 당도하니 평소에 보이지 않던 도인들이 여럿 모여 있었다. 인근의 여주와 안성, 지평, 양근 쪽에서 온 사람도 보였다. 그들의 눈에 묘한 불안감과 기대감이 뒤섞여 있었다. 불안감의 원인은 아무래도 경기동학군에 내려진 기포령 때문으로 짐작되었고, 기대감은 작년 보은 취회(聚會) 이후 늘어난 동학 입도자의 증가세에 힘입은 것으로 보였다. 특히나 지난 4월, 전봉준 장군의 전주성 입성과 전라도 각지에서의 집강소(執綱所) 개소 소식은 오랜 세월 가렴주구(苛斂誅求)에 시달려왔던 경기도 지역 농민들에게도 칠년대한(七年大旱)에 쏟아진 단비였고, 지주나 마름들까지 동학도 되기를 서슴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아직 가을걷이가 끝나지 않은 농번기였지만 각 접에서 모여든 도인들로 도소 안이 그득했다.

좌중이 갈라지며 이천포 수접주가 도소의 임원을 대동하고 접소 안으로 들어서자 곧바로 회의가 시작되었다. 

“모시고, 강녕들 하셨는지요? 추수하느라 분주하실 텐데 왕림하신 동덕님께 감사 말씀드립니다. 오늘 오전에 각 접소에서 제례를 올리셨을 터이니 지금은 청수를 모시는 것으로 식전 의식에 갈음하겠습니다.”

수접주가 인사의 서두를 떼자 도인 하나가 청수상을 모셔왔다. 수접주가 잔을 높이 들어 절하고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각설하고, 작년 봄, 서울 광화문에서의 수운대선생 신원(伸冤)을 위한 복합 상소(伏閤上疏)와, 보은 취회에서 기치로 내걸었던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를 기억하실 겁니다. 그 당시 서울에 모인 동학도의 통곡이 백악(白岳)과 인왕(仁旺)을 흔들었고, 보은 장내리에 모인 동학도의 숫자가 무려 3만 명 이상. 그런데 조정에서 약속한 서정쇄신(庶政刷新)의 언약은 어찌 되었습니까? “무리를 풀고 집에 돌아가 그 업을 편안히 하면 소원에 의하여 실시하리라.” 하던 임금의 칙교(勅敎)는 간데없이 사라지고, 오히려 그 일이 있은 후 제읍(諸邑)의 수령과 토호들은 우리 동학도를 죄없이 붙잡아 가두고, 가솔들까지 화적의 패당으로 몰아 함부로 능멸하고 있으니 그 원성이 하늘을 찌를 듯합니다. 

다행히 전봉준 장군의 전주성 입성을 계기로 다시금 서정(庶政)을 쇄신하겠다는 언약을 하였기에 이제야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제할 기회가 왔다 싶었는데, 그러나 이 또한 어찌 되었습니까? 조정의 탐학한 무리들이 동학도와 맺은 맹약을 깨고 외국 군대를 끌어들이는 우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조선은 어찌 되었습니까? 청군과 왜군이 전쟁을 벌여 청국은 쫓겨나고, 날카롭게 벼려진 일본의 독수(毒手)가 조선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지 않습니까?

본시 조선과 일본은 빙탄(氷炭)의 관계라 과거 임진(壬辰)과 정유(丁酉)의 묵은 원한을 모르는 이 없건마는, 근간 들어 일본은 조선의 개화와 내정개혁을 구실삼아 더욱 오만방자하게 굴고, 야밤에도 경복궁을 침탈하여 주상(主上) 능멸하기를 공깃돌 굴리듯 한다 하니, 우리가 애초에 혁명의 기치로 내걸었던 보국안민(輔國安民)과 광제창생(廣濟蒼生)보다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티인 왜군(倭軍)을 몰아내는 일에 골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애초 복술(福述)께서 무극대도(無極大道)를 깨달아 동학을 창도하시고 한울님을 모시게 된 것은 사인여천(事人如天)을 실천하여 만민이 평등한 세상을 만들고자 함이었건만, 그가 순도하신 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교조 신원(敎祖伸冤)은커녕 풍전등화 조선의 국운처럼 우리 동학도 역시 광대한 시련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소문을 들어 알겠지만, 지난 구월 열여드렛날 최시형 법헌(法軒)께서 햇곡 갈무리를 마치는 즉시 작년에 모였던 보은 대도소로 출정하라는 기포령(起包令)을 발하셨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 이천포에서도 전량(錢糧)과 무장(武裝)을 갖추어 광혜원(廣惠院)에 모이기로 하였으니 촌각을 다투어 기병하시기 바랍니다. 곧 엄동설한이 닥칠 것이니 출진을 서둘러야 합니다.

생(生)의 말은 이상으로 줄이고, 다수의 논의가 있을 듯하니 각자 품은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내기 바랍니다.”

유학자 출신인 수접주의 진서(眞書) 풍 언변에 평생을 농투성이로 살아온 사람 중에 더러 못 알아듣는 이도 있었으나 어조의 비장함으로 말미암아 그의 말이 끝나자 곳곳에서 분분함이 일었다.

수접주가 유건(儒巾)을 고쳐 쓰고 좌정하는 사이 나이 지긋한 지평(砥平) 고을의 이재현 접주가 좌중을 살피며 입을 뗐다.

“자고로 기포라 함은 무장을 갖추어 일어남을 뜻하거늘, 한갓 농촌에서 들고 나설 것이라곤 쇠스랑이나 낫, 삽자루가 고작일 터인데 과연 무슨 강단으로 총 든 일본군을 대적한단 말이오?”

지당한 말이었다. 신식 총은 고사하고 구식 화승총 하나 변변히 없는데 무슨 수로 싸움을 하겠다는 것인가? 수접주의 연설을 듣는 동안 다들 말은 안 했어도 미구에 곧 닥칠 일인지라 질문이 끝나자마자 옳거니 소리가 절로 쏟아져 나왔다.

그러자 수접주의 대답보다 빨리 황산의 강용구 접주가 냉큼 나섰다. 입도(入道)한 지는 오래되었어도 나이는 제법 젊은 접주였다.

“작년 보은 취회 당시 해월선생께서 마음이 굳고 뜻이 독실하면 능히 대업을 성취할 수 있다 하셨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무장이 없다 하나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이가 기호(畿湖)와 호중(湖中)만 하여도 수백, 수천이라 인(人)으로 무장한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듣건대 음죽과 안성 관아의 방비가 허술하고 병기가 많다 하니 야음을 틈타 불시에 짓쳐 들어가면 능히 무기를 탈취하여 무장할 방도가 나설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 황산접에 천보조총(千步鳥銃) 가진 날랜 포수가 다수 있으니 제가 이들과 도모해 두 곳 관아를 깨뜨려서 병기 부족의 근심을 덜어볼까 하옵니다.”

황산 접주의 말에 여기저기서 우리 접에서도 십시일반 나설 테니 힘을 모으자는 의견이 빗발쳤다. 지평 접주의 질문이 다시 이어졌다.

“관아의 군기고(軍器庫)에는 어떤 것들이 있다 하오?”

“화승총(火繩銃)과 궁전(弓箭), 창, 죽창이 무수하다 들었소.”

“화승총이라 함은 노끈에 불을 붙여 화약을 터뜨리는 총을 말하오?”

“그렇소이다.”

“그렇다면 일본군이 갖고 있는 총은 무엇이오?”

“주력은 스나이더 소총이라 들었소. 무라타 소총을 가진 자도 있고.”

“명중시킬 수 있는 거리는 몇 보(步)나 된답디까?”

“자세히는 모르오나 삼백 보는 장히 난다 하오.”

“그렇담, 화승총은?”

“오십 보쯤 되겠지요.”

“삼백 보에 오십 보라? 어허, 오십보백보도 아니고…… 이래서야 어찌 싸움이 되겠소? 화승총, 활, 창이 아무리 많다 한들 스나이더 한 자루만도 못할 터인즉.”

“대신에 우리는 수효가 많소이다. 일시에 달려들면 중과부적이라 능히 대적할 자신이 있습니다.”

“아무리 수가 많아도 멀리서 날아오는 탄환을 어찌 피한단 말이오. 활이나 창이 가당키나 하오?”

“접주께서는 어찌 싸워보지도 않고 질 궁리부터 한단 말입니까?” 

황산 접주 강용구가 젊은 기운을 다스리지 못해 말꼬리를 가파르게 올렸다. 

분위기가 초장부터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수접주가 말막음을 하고 나섰다.

“두 접주의 말씀이 모두 옳소. 왜군은 무장이 우량하고, 우리는 인재(人才)가 우량하오. 그런 점을 염두에 두면서 다른 의견이 있으면 개진들 해보시오.”

이때 양지(陽智) 마을의 오세당 접주가 빈 장죽을 목깃에 꽂으며 일어섰다.

“무릇 전장에서 이기려면 군사를 부리고 먹일 금전과 군량이 있어야 하오. 이에 대한 방도는 어찌 갖추려 하시오?”

이에 대해 즉답을 하고 나서는 이가 있었다. 익히 보았던 인물이 아니었다. 좌중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로 쏠렸다.

“각 고을 접주님께 인사 올립니다. 소생의 자는 일섭이라 하오며, 미력하나마 도소에서 전량도감(錢糧都監)의 소임을 맡고 있습니다. 제가 연전에 작청(作廳)에서 아전(衙前) 일을 보았던 바 있어 감히 사뢰옵니다.

전량의 중요함은 비단 전장뿐 아니라 관가나 민가의 살림살이에서 가히 으뜸이라 할 만합니다. 지금은 햇곡이 그득하여 연중 가장 풍요한 때인지라 거사를 도모하기에 적기로 사료되옵니다. 또한 각 관아의 곳간에는 환곡(還穀)이 즐비하게 쌓여 있고, 백성에게 늑탈한 전엽(錢葉)이 가득 들어차 있어 관아 한두 군데만 탈취해도 능히 천 리를 운행할 만하옵니다.”

그러자 양지마을 접주의 질문이 이어졌다.

“우리가 관아를 공성(攻城)하려 들면 관군들이 수어(守禦)에 진력할 것은 불 보듯 뻔할 터, 동학도의 기포 연유가 장차 왜군과 대적하려 함이거늘 되레 우리끼리 접전하는 꼴이 되는 게 아니겠소?”

“우리가 갖춘 무장이 없으니 별도리가 없을 듯하옵니다.”

일섭이 쓴 입맛을 다시며 곰삭은 말을 입속에서 우물거렸다. 오세당 접주가 답답한 듯 목깃에 꽂았던 장죽을 칼처럼 빼 들고 일섭의 눈자위를 겨누었다. 

“내 말의 진의는 우리가 상대해야 할 적이 일본군에서 관군을 더해 곱절로 늘어난다는 것이오. 하나도 감당키 어려운데 둘은 말해 뭣 하겠소? 게다가 기포에 동참한 우리 동학도가 아무리 심성수련의 내공이 깊다 한들 군율이 엄중한 군대가 아닌 바에야 이들과 대적하기 난감하고, 이에 더해 양반이나 유생 또한 우리 동학도를 사교(邪敎)로 보고 있어 필시 민보군(民補軍)을 조직해 싸우려 나설 것인즉, 우리가 대적할 상대가 도합 셋으로 늘어날 것이오. 하나도 당키 어려운데 셋을 어찌 감당하겠소?”

생각지도 않았던 민보군 얘기까지 나오는 통에 전량도감의 소임을 맡은 일섭이 할 말을 잃고 머뭇거리자 다시 수접주가 갈라서며 나섰다.

“그 말도 장히 옳소. 허나 양반이나 유생들 역시 조선 백성이 분명한 터, 열에 칠팔은 우릴 돕지 않겠소? 어찌들 생각하시오?”

수접주의 간곡한 되물음에 초치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수접주의 말에 동의해서가 아니라 솔직히 일본군이나 관군, 민보군을 이겨낼 자신이 없음에서 기인한 침묵이었다. 투지 하나만 믿고 기포하기에는 너무 지난한 싸움이 되리라는 고심의 결과였다. 

접주들의 속이 타들어갔다. 심기를 일전할 획기적인 방책이 나서길 고대하며 침만 꼴깍거리고 있을 즈음 이창진 접주가 한 걸음 썩 나서며 큰 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동학에 입도하여 한울님을 모시게 되었다함은 곧 한울님의 뜻에 한 치도 어긋남 없이 살기로 맹약했다는 것입니다. 곧 나와 한울님이 동화(同化)를 이루어 하나가 되었음을 깨닫고, 신인합일(神人合一)의 경지를 실천하여 천심(天心)을 회복하기로 언명했다는 뜻입니다. 천심이란 무엇입니까? 사람 섬기기를 한울님 섬기듯 하여 사인여천의 세상을 만드는 것, 나라의 잘못을 바로잡고 빈부 귀천이 없는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것, 임금을 핍박하고 국권을 유린하는 왜양(倭洋)을 몰아내어 보국안민(輔國安民)의 나라, 후천개벽(後天開闢)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계속)

 

작가소개 

김현종 -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동대학원에서 『해방기의 북한소설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간문예지 《한국문학시대》 소설 부문 신인상을 수상했다.  작품으로는 장편소설『천살의 시대』, 소설집 『보다 보이다』가 있다.

 

 

 

* 이 작품은 김현종 작가의 창작 작품이며,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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