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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 <하얀 혁명>(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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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 <하얀 혁명>(3)

(지난 호에 이어)

2. 혁명


괴산전투가 끝난 후, 동학군은 큰물 들어오듯 척양척왜의 깃발과 지역별 포접을 알리는 깃발을 앞세워 보은을 향해 진군해 나아갔다. 워낙 많은 숫자의 이동이라 정해진 길은 따로 없었다. 이천포는 청안, 미원을 지나 보은의 지경으로 접근해 들어갔다. 행군 도중 여장을 푼 숙영지마다 흰옷 입은 동학군이 밀려들어 수천 마리 백로가 날아든 듯 가을 들판을 뒤덮었고, 밥때를 알리는 호군장(犒軍將)의 징소리가 가마솥이 풍기는 밥 냄새와 어우러져 산야로 퍼져나갔다.

보은 장내리 대도소에 도착하기 하루 전, 이천포는 마지막 숙영지로 보은군 산외면과 내북면 사잇길로 접어들어 학림리(鶴林里)라는 작은 마을에 당도했다. 학림이라는 이름처럼 마을 뒤편 소나무 군락지에는 보청천을 먹이터 삼아 둥지를 튼 백학과 왜가리 떼가 평화롭게 새끼를 키우고 있었다. 여기서 장내리까지는 반나절 거리였다. 

이천포 대열이 마을에 당도하자 동네사람들이 밥 짓던 연기를 부지깽이로 다스리며 고개를 내밀었다. 대군의 기세에 눌려 썩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 집이나 헛기침 없이 들어간다 해도 막아설 사람은 없겠으나 이창진과 한규석은 민폐를 염려해 촌장 집을 물어 찾았다. 마을 안쪽 솟을지붕으로 대문을 얹은 기와집이었다.

탕건을 쓴 주인이 나왔다. 초면이었으나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이 합장의 예를 갖추어 인사하자 주인이 손님을 사랑채로 안내했다. 

“우리는 경기도 이천에서 기포한 동학군이오. 마침 길이 저물어 이 마을에서 하룻밤 유숙을 청하오니 무례를 허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창진이 손을 맞잡고 허리를 숙여 유숙을 청하자 주인이 같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무례라니요? 당치 않습니다. 몇 날을 유하여도 하등 신세 될 것 없습니다.”

“그리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어떠한 민폐도 끼치지 않을 것임을 약속드리옵니다.”

“그것도 너무 괘념치 마시오. 사람이 살다보면 피차 신세를 지기도 하고 갚기도 하는 것, 더욱이 침식(寢食)의 신세는 항차 큰 인연으로 이어진다고도 하더이다.”

주인의 손님맞이가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만일 유숙을 거절하면 억지로라도 밀어붙일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라 이창진의 낯빛이 무뎌졌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소생은 경기도 이천에 사는 이창진이라 하옵고, 이녁은 한규석이라 하옵니다.”

“경주김가 김교무라 부릅니다. 가난한 유생의 처지라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한규석의 눈에 안쪽 벽에 걸린 족자가 들어왔다. 예서체로 또박또박 써내려간 족자의 글귀와 말미에 찍힌 낙관을 눈여겨보면서 물었다.

“이 마을이 경주김씨 세거지인 듯하오만?”

“그렇습니다. 보은에는 본시 경주김가 터전이 많이 있습니다. 이 마을 역시 경주김가의 오랜 세거지로 속리산 한 자락을 늘여 펴서 누대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지요. 타성바지는 스무 집 남짓합니다. 보은을 잘 아시는지요?”

“주인장 얼굴을 뵈니 초면이 아닌 듯하여 묻습니다.”

“대처에 나가본 바가 드물어 경기도 이천은 낯선 곳입니다.”

이창진도 주인의 얼굴이 낯익은 듯 미간을 좁혀 말했다.

“하오면 우리가 보은에 왔을 때 뵈었다는 것일 터.”

“보은에 온 적이 있다는 말입니까?”

“작년 3월 보은 취회 때 장내리에서 한 달을 유하다 간 적이 있습니다.”

“옳거니. 그렇다면 거기서 만났을 겝니다. 소생도 거기에 간 적이 있으니까요.”

김교무가 작년에 있었던 기억을 냉큼 끌어와 화답했다.

“어쩐지 낯이 익는다 싶었는데 내 눈이 틀림없군요. 입도는 하셨는지요?”

“동학도를 말씀하시는 게지요?”

“그러하오.”

“입도는 하지 않았으나 만민은 평등하고 사람을 하늘같이 여기라는 시천주, 사인여천의 동학도 교리는 익히 들은 바 있습니다.”

“입도하지 않았다면 우리 취회에 오실 일이 없었을 터인데?”

“외월(猥越)스럽지만 제 집안에서 누대로 살아온 가솔 서넛을 면천(免賤)해 주었다 하여 동학 교주 해월선생께 초빙되어 문안드린 바 있습니다.”

이창진과 한규석은 그제야 주인의 얼굴이 기억났다. 이 댁의 주인인 김교무가 솔선해 양반 가문인 경주김씨 집안에서 대대로 종살이하던 노비들의 면천에 앞장섰기에 해월선생이 광제창생의 모범이라 하여 그를 취회에 모셔온 적이 있었다. 그의 진력으로 노비문서가 소각되고 면천된 자가 부지기수였던바 교주의 칭송이 자자했던 일이 선하게 떠올랐다.

“그런 인연이 있었습니다그려. 다시 한번 면천을 베풀어주심에 감읍하옵니다.”

“부끄럽습니다.”

둘이 한사코 만류하는데도 김교무가 안채에 기별을 넣어 저녁상을 보도록 일렀다. 

“누옥(陋屋)에 소찬(素饌)이라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불청객을 이리도 환대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아직 보은 땅에 민보군이 결성되었다는 소식은 없으니 야습 걱정은 않으셔도 좋을 듯합니다. 하룻밤이라도 편안히 객고를 푸시기 바랍니다.”

“거듭 감읍할 따름입니다. 기왕 말씀 나온 김에 한 가지 묻습니다. 우리는 보은이 객지인지라 이곳 사정에 밝지 못합니다. 혹여 꼭 알아두어야 할 인물이나 관군의 동태에 대해 알고 계신 바가 있으면 듣기를 청합니다.”

“제 말씀보다는 보은에서 기포한 충경포(忠慶包)의 도인 한 사람을 알고 있으니 그를 만나 물으심이 빠를 듯합니다. 장내리에 당도하여 대도소에 연통을 넣으시면 쉬 만나실 수 있을 겝니다. 호협하고 믿을 만한 사람이니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름은 신재길이라 합니다.”

때마침 밥상이 들어왔다. 기름 찬 없는 푸성귀 밥상이었으나 방짜 며느리가 지은 듯 찰지고 오달진 저녁상이었다. 둘은 주인이 일러주는 이름을 새기며 식사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삐뚜름하게 뜬 상현달이 조족등(照足燈) 되어 밤길을 비춰주었다. 사흘 후면 보름이다. 군사들은 벌써 객지에서의 곤궁함도 잊은 채 서둘러 저녁을 마친 후 탈곡한 볏단을 보료 삼아 논바닥에 펴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튿날, 이천포 군은 보은 읍내를 멀리 돌아 장내리로 향했다. 장내리에는 동학군의 총 지휘소 역할을 하는 대도소가 마을 뒤 옥녀봉을 배경으로 서 있었고, 그 앞의 너른 공터에는 초막 사백여 채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아무리 터전이 넓다 해도 그곳에는 이미 충청, 경상, 강원도에서 온 동학군들로 바늘 하나 꽂을 틈 없이 초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이천포는 급한 대로 청산 쪽으로 향하는 보천강 변의 논배미 몇 군데를 정해 야영지를 마련하는 한편, 그길로 이창진과 한규석은 수접주를 모시고 해월선생을 만나기 위해 대도소를 찾았다. 그러나 해월은 거기에 없었고, 접사나 서기, 집사 등의 직분을 맡은 교도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한규석이 바쁜 일손을 막아 세워 신재길의 거동을 묻자 떠꺼머리 도동(道童) 하나가 길 안내를 자청하고 나섰다.

“접주님을 만나시려면 저를 따라오시어요.”

“신재길이라는 사람이 접주이신가?”

“그렇사옵니다.” 

아이를 따라간 곳은 대도소 뒤꼍의 싸리나무 사립문을 단 야트막한 초막이었다. 삼베적삼에 청색 전대(戰帶)를 두른 남자가 손에 쥔 총을 기름종이로 닦다 말고 일행이 들어서자 돌아섰다. 못 보던 총이었다. 

“소생이 신재길이오만 뉘신지요?”

“초면에 실례가 많소이다. 이분은 경기도 이천의 수접주 어른이시고, 저희는 이천접의 접주와 접사의 직분을 맡고 있는 도인입니다.”

한규석이 같이 온 일행을 소개했다.

신재길이 황망히 총을 치우고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먼 길 오셨습니다. 인사 여쭙니다. 보은 사는 신재길이라 하옵니다. 괴산에서 이천접의 전공이 눈부셨다 들었습니다.”

“한울님이 도우셨지요.”

“하온데 소생의 이름은 어찌 아셨는지요?”

“오던 길에 학림리에서 유숙하였던 바 김교무라는 선비에게서 접주님의 고명을 들었습니다.”

“고명이라니요? 당치 않습니다. 김교무 어르신이라면 제가 잘 압지요. 덕망이 높아 보은 땅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습니다. 저를 면천해주신 분도 바로 그분이십니다.”

한규석은 신재길의 말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노비를 면천해준 김교무도 대단하지만, 그런 신분의 사람을 접주로 임명한 해월선생의 파격적 인사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실로 신분제를 타파하고 평등한 세상을 열고자 하는 그의 ‘다시 개벽’ 정신을 일깨워주는 산 증거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자신이 예전에 노비였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신재길 바로 이 사람이었다. 제 입으로 면천되었다고 밝히기 쉽지 않을 텐데 그는 거침없이 자기 신분을 말했다. 놀라기는 수접주도 마찬가지였는지 기름을 만져 손이 더럽다며 한사코 물러나는 신재길의 손을 붙잡고 마냥 흔들어댔다.

수접주가 신재길의 손을 놓지 않은 채 말했다.

“해월도 대단하고, 김교무도 대단하고, 신접주 당신도 대단하오.”

수접주의 칭송에 신재길이 눈 둘 곳을 몰라 뚜렷거리며 말했다.

“혹여 제가 무슨 도울 일이라도 있으신지요?”

“초면에 너무 경황이 없었구려. 우선 해월선생께 문안 인사를 드리고자 하는데 어디 가면 뵈올 수 있을까요?”

수접주의 말에 신접주가 잠시 대꾸를 미루다가 입을 뗐다.

“저희도 선생님 종적은 모릅니다. 워낙 조심성이 많은 분이라 행차 말씀을 하지 않으시지요. 하오나 모레 이곳에서 출정을 위한 치성식(致誠式)이 열릴 예정이오니 아마 그때 뵈올 수 있을 겝니다.”

“이틀이야 못 기다리겠소. 하오면 충경포의 수접주 어른은 뵈올 수 있는지요?”

“마침 출타 중인데 곧 오신다는 전갈이 있었습니다. 오시면 뵈올 수 있도록 말해놓겠습니다.”

“감사하기 이를 데 없군요. 그런데 아까부터 손에 든 그것은 무엇이오?”

신접주가 기름종이에 싼 물건을 풀어 보여줬다. 

“이건 일본군이 메고 다니는 스나이더 소총입니다. 제가 소싯적부터 방포 놓는 것을 좋아해 화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속리산에 들어가 포수 노릇도 좀 했었구요. 이 총도 그래서 구한 것입니다. 그간 모아둔 병장기가 좀 있는데 구경이라도 하시겠습니까?”

신접주가 몸을 돌려 초막 안을 가리켰다. 셋이 흔쾌히 그를 따라 들어갔다. 집 안에는 여러 겹 단을 쌓은 선반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 많은 화포가 진열되어 있었다. 신접주가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해주었다.

“이것은 포의 일종으로 극려백포(克慮伯砲), 회선포(回旋砲), 불낭기포(佛狼機砲,) 대완기(大碗器), 천황포(天黃砲)라 부르는 대포이며, 저쪽은 궁시(弓矢)와 시석(矢石) 같은 활이나 화살, 죽창, 마름쇠입니다. 이 앞에 모아둔 것은 화승총이라 부르는 천보총과 조총입니다.”

셋은 생전 처음 보는 화포에 눈이 휘둥그레져 물었다. 

“이만한 무기라면 천하라도 얻을 수 있겠습니다그려.”

수접주의 말에 수집품을 자랑할 겸 수긍할 법도 한데 신접주의 대답은 의외였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겉보기엔 대단해 보여도 대포는 무게가 무거워 기동이 불편하고, 화승총 역시 신식 양총에 비한다면 목총이나 다름없습니다. 아시다시피 동학군이 갖춘 무장이라고 해봐야 화승총이나 활과 창이 고작인데, 관군이나 일본군이 가진 총은 독일제 모젤 총, 영국에서 만든 스나이더 총, 최근에 일본에서 개발한 무라다 총입니다. 화승총과는 성능 면에서 비교할 수 없는 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차이가 나길래 그리 말씀하십니까?”

이창진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한마디로 하늘과 땅 차이입지요. 토총(土銃)인 화승총은 유효사거리가 고작 일백 보 남짓인데 이런 양총(洋銃)은 일천 보가 넘고, 화승총은 비바람이 불면 심지에 불이 붙지 않아 쏠 수 없지만, 이 총은 총알을 뒤에서 집어넣어 쏘는 후장식(後裝式)이라 하등 날씨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파괴력도 출중해 황소의 대퇴골도 흔적 없이 부숴버릴 수 있다 하옵니다. 한마디로 토총 백으로 양총 하나를 당해내지 못한다 합니다.”

수접주가 기가 막혀 물었다.

“지금 들고 있는 총이 바로 그 양총이란 말이지요?”

“저도 양총의 성능이 믿기지 않아 어렵게 한 자루를 구해 살펴보는 중입니다. 다른 것은 대충 알겠는데 이것 한 가지는 아무리 봐도 모르겠습니다.”

신접주가 들고 있던 총을 세워 총구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수접주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재우쳐 물었다.

“뭐가 그렇다는 말입니까?”

“이 총구 안을 자세히 보십시오. 나선형으로 홈이 파인 것이 보이지요? 도대체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화승총은 전혀 이런 모양이 아닌데 말입니다.”

셋이 돌아가며 총구 안을 들여다보았다. 과연 총구 안에는 나선형의 줄이 여러 겹 새겨져 있어 오래 보고 있자니 눈알이 뱅글뱅글 돌았다. 아무리 궁리해도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신접주가 총을 선반에 얹으며 말했다.

“나선형 줄을 새겼다는 것은 총알이 돌아나가도록 만들었다는 것인데 왜 그렇게 했는지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이 총에 맞는 탄환이 있다면 한번 쏴보고 싶지만 그게 없으니 답답할 따름입니다.”

넷은 무거운 마음으로 초막을 나섰다. 

 “접주의 말이 정 그렇다면 지난번 괴산전투에서는 어찌하여 우리 이천포가 양총을 든 일본군과 관군을 이겼다 생각하시오?”

이창진이 은근히 치밀어 올라오는 부아를 눅이며 묻자 신접주가 진작부터 속에 쟁여둔 생각인 듯 쉽게 대답했다.

“일본군의 숫자에 비해 동학군의 수가 월등히 많았다는 게 첫째 이유일 것이고, 둘째는 꽹과리와 징을 치며 달려드는 소리에 겁먹은 비루한 관군이 황급히 성을 비운 탓이겠지요.”

신접주는 속리산을 누비던 포수답게 앞서 말했던 이천포 군의 괴산전투 승리가 말치레 공치사였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를 탓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이창진이 괴산전투에서 총에 맞아 죽어가던 동학군을 떠올리며 다시 물었다. 

“맞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수가 아무리 많다 해도 어찌 총을 당할 수 있겠소? 그렇다면 정녕 일본군을 이길 수 있는 방도는 없는 것이오?”

“물론 방도야 있겠지요. 기습이나 매복으로 양총을 탈취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겠고, 산세를 이용해 불붙은 장태를 굴리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오. 동학군은 지역 실정을 잘 아니까 천문지리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겠고. 하지만 문제는 총이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설령 총을 구한다 해도 탄환까지 구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점이오. 화승총에 들어가는 납탄이야 저 같은 포수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만, 이런 후장식 총의 탄환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셋은 신접주의 뒤를 따라 걸으며 막힌 속이 더욱 답답해짐을 느꼈다. 무기의 열세를 절감하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마침 도동이 달려와 보은 수접주의 도착 소식을 알렸다. 신접주가 뒤따르는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모레 있을 치성식에 오시는 해월선생께서 큰 비방을 내놓으실 테니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천지신명이 돕고 한울님이 보살필 것입니다.”

넷은 무거운 발걸음을 끌며 보은 수접주를 만나기 위해 대도소로 향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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