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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를 참칭하는 기득권 세력과 동학인의 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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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를 참칭하는 기득권 세력과 동학인의 후예


 1789년 7월 14일 프랑스의 성난 민중들이 파리의 바스티유 감옥을 공격했다. 세금인상을 위한 형식적인 삼부회에 동원된 평민대표들은 사제들과 귀족층의 일방적인 회의결정에 분노해 민중 폭동을 일으킨 것이다. 자유, 평등, 박애의 민주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프랑스대혁명의 순간이었다. 프랑스의 봉건적 구체제 하에서 고통받던 민중이 비로소 국가의 주인이 자신이라는 자각을 하고 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혁명의 열기는 구체제의 파괴를 명분으로 왕과 왕비를 처형하는 등 극도의 공포정치로 이어졌다.

  영국은 프랑스보다 먼저 시민혁명을 달성해 의회정치가 일찍 자리를 잡은 나라였지만 혁명 소식은 바로 전달되었다. 그때 아일랜드 출신으로 영국 의회에서 성공한 정치인이었던 에드먼드 버크는 이 사태를 예의 주시했다. 그는 프랑스 대혁명의 여파가 영국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급격한 변혁보다는 검증된 과거의 전통을 존중하면서 점진적인 변화를 지지했다. 그는 영국의 전통적 가치를 지키는 것이 프랑스처럼 혁명적 변혁보다도 우수하다는 논지의 글을 썼다. 그 글이 유명한 [프랑스혁명에 관한 고찰]이었다. 여기서 버크는 보수주의(Conservatism)라는 정치사상을 창조해 냈다. 

  버크의 보수주의는 결코 변화를 거부하는 사상이 아니다. 한 사회의 문명은 자신의 경험과 타인의 경험이 결합해서 만들어낸 전통적 도의와 관습의 힘으로 완성되기에 그것을 지키고 새로운 가치가 추가되면서 발전해 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즉, 사회는 점진적인 변화 속에서 발전해 온다는 주장이었다. 그것이 보수주의였다. 버크는 프랑스혁명이 전통을 파괴하여 사회를 피폐화시킬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프랑스대혁명을 공포정치로 몰고 갔던 로페스 피에르와 위기의 프랑스를 구한 나폴레옹의 독재는 분명 부정적인 결과였지만 혁명을 통한 주권재민의 민주주의 완성은 성공이었기 때문이다. 

  보수주의는 이후 전 세계 정치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영국의 정치는 점진적 개혁을 상징하는 페비안니즘이 자리를 잡았고, 페비안니즘은 로마와 카르타고의 포에니전쟁에서 로마의 사령관이었던 파비우스 장군에서 유래했다. 파비우스는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이 장장 16년을 로마에 들어와 괴롭히고 있을 때 끈질긴 지구전으로 결국은 한니발 부대를 무찌른 로마의 장군이었다. 이처럼 점진적인 승리 또는 변화를 바라는 주의가 페비안니즘이고 영국 정치의 기본이 되었다. 다른 국가들도 비슷하게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이 등장해 급격한 변화보다는 완만한 개혁과 변화를 지향했다. 이들 보수주의 정당의 특징은 전통적 가치의 옹호와 대외적으로 자국 우선주의였다. 철저한 민족주의에 입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오늘 대부분 국가가 취하는 국익 우선주의는 전적으로 보수주의의 영향이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이 대외문제에 관해서는 한결같이 자국 우선주의인 것처럼 보수를 표방하는 모든 나라의 공통된 인식이고 결론이다. 

  우리나라도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정당도, 언론도, 시민단체도, 보수 국민도 있다. 특히 분단의 극심한 이분법 하에서 더욱 노골적이었다. 이들은 타국처럼 전통과 민족을 중시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 상황을 보면 금방 거짓말임이 드러난다. 국익을 주장하지만 대한민국의 국익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국가를 더 배려하고, 그들의 마음을 걱정한다. 연일 친일적 발언을 경쟁하고, 국내 투자보다는 미국 투자에 열을 올린다. 일본이 군사 대국화를 지향해도 눈 감고 있는듯 하더니 급기야 일본군(자위대)의 국내 진출이 국회의 허가사항이 아니라고까지 한다. 외교에 있어서는 오로지 미일외교 외에는 없는 듯해도 보수를 자랑하는 언론은 이를 지적하기보다는 오히려 응원하고 있다. 보수를 표방해서 이익을 얻은 위장 시민단체는 이런 행위들에 무조건적인 찬양을 하고, 일부 생각 없는 국민은 무차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지식인 세계에서도 보수주의를 앞세우며 세상을 곡학아세하는 지식 판매꾼들만이 출세길을 열어주고 있다. 세상에 이런 보수주의는 없다. 이들에게는 전통적 가치는 고사하고 역사, 민족주의, 민족의식, 국토 존중의 정신마저도 의심스럽다. 그런데도 그들이 한결같이 자신들은 보수란다. 보수의 의미도 모르면서 보수를 참칭한다. 안타까운 것은 아무런 대가도 없이 무조건 지지하는 진짜 보수를 사랑하는 국민이다. 더는 속지 말아야 한다. 보수주의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

  우리 역사를 통털어 가장 진보적인 사상과 정신은 단연코 동학이었다. 동학보다 더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사상은 일찍이 없었다. 엄혹한 신분제 사회에서 모두가 하늘을 모신 존재이므로 만민은 평등하다는 자각을 일깨워준 동학은 이후 눈부신 업적을 쌓아갔다. 130년 전의 동학혁명은 그 절정이었을 것이다. 잘못된 나라를 바로잡아 백성을 안심시키고자 했던 그들이 어쩌면 에드먼드 버크가 설파한 진정한 보수주의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동학혁명은 분명 구체제를 전복시키는 혁명적 내용을 담고 있지만 기존의 왕조체제를 어느 정도 인정하는 구상을 하고 있었으며 외적의 침략에는 단연코 한 치의 땅도 내어줄 수 없다는 척왜양창의를 외쳤다. 그러니까 가장 진보적 이론이면서도 진정한 보수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동학사상의 위대함은 단순히 진보와 보수의 이념을 담을 수 없기에 그 가치가 끝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오늘 우리는 보수를 참칭하는 엉터리 보수주의를 어떻게 바라다보아야 하는가이다.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정권에 동학의 후예답게 단호히 나설 것인가 아니면 가짜 보수에 동조할 것인가 선택은 천도교인들에 달려 있다. 분명한 사실은 1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권은 짧고 국민은 영원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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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암 임형진(동서울교구,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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