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5.01.13 16:13
TODAY : 포덕166년 2025.01.13 (월)
(지난 호에 이어)
보은 충경포 수접주 윤경신은 눈자위와 상체가 헌헌한 중년의 남자였다. 청수잔을 올려 한울님께 심고하는 것으로 상견례를 대신한 후, 신재길은 구해온 총을 더 살펴보겠다며 일행을 남겨두고 자리를 떴다.
윤경신이 두루마기를 벗어 횃대에 걸고는 나달나달해진 짚신을 잔솔가지로 털어 한쪽에 밀어놓았다. 사려 깊음이 몸에 밴 사람처럼 보였다.
“경기도에서 예까지 오시느라 여독도 안 풀리셨을 텐데 이리 찾아주심에 감읍할 따름입니다.”
“작년 보은 취회 이래 전국 각지에서 솔병해 모여드는 도인들을 치르시느라 되레 노고가 많으실 듯하옵니다. 이곳 보은 사정은 어떠하온지요?”
“동학군을 돕는데 너나가 따로 없지요. 보은 땅에서 동학군에 반대하는 민보군이 조직되었다는 말은 아직 들은 바 없습니다.”
“과연 보은이야말로 대도소가 들어서기에 손색이 없는 고장이로군요.”
“하지만 워낙 농촌이다 보니 전량과 무기를 마련하는 데 애로가 많습니다. 곧 겨울이 닥칠 것이기에 월동 준비만으로도 벅찹니다. 이번에 나갔다 온 연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습지요.”
“성과는 있었는지요?”
“삼 년 가뭄 뒤끝이라 몇몇 부농과 지주들의 성의만으로는 신통치가 않습니다.”
“하오면?”
셋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향리 도처를 뒤져보면 고부 민란을 초래케 한 조병갑 같은 탐관이나, 납속(納粟)하여 얻은 관직으로 늑봉(勒捧)을 일삼는 무리가 상당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옥천포, 영동포의 접주와 함께 영동에 행차하여 이용직을 만나고 왔습니다.”
“이용직이라 하오면?”
“백만 냥을 상납하고 경상감사를 제수받았던 인물인데 지금은 파직되어 영동에 살고 있습지요. 그자를 닦달해 겨울옷 일천 벌을 받기로 약속했습니다.”
“큰일을 하셨군요. 순순히 내놓지는 않았겠지요?”
“목숨은 하나인지라 면전에서야 협조했지만 돌아서서는 우릴 화적 취급했을 겁니다.”
보은 수접주가 이 말을 하고는 망나니 칼처럼 손날을 넓게 펴서 목에 대고 긋는 시늉을 하는 바람에 좌중에 폭소가 터졌다. 이천 수접주가 모처럼 피어난 웃음기를 만면에 가득 담으며 말했다.
“허허, 수접주님의 배포가 참으로 호협하십니다그려. 그나저나 해월선생의 기포령이 너무 늦은 건 아닌지요? 하루가 다르게 날이 차가워지고 있습니다.”
“기포령을 내리시던 날도 그런 얘기가 나왔습니다만, 가을걷이를 마친 후에 일어나자는 것이 중론이었습지요.”
“기포령을 내리던 날 수접주께서도 그 자리에 함께 계셨단 말씀입니까?”
“그러하옵니다.”
“그날의 얘기를 듣기 청합니다. 해월선생께서 뭐라 하셨는지요?”
이창진과 한규석이 입을 모아 간청했다.
“어허, 낭패로고. 내 어찌 한울님의 천어(天語)를 들으신 해월의 말씀을 감히 옮긴단 말이오. 당치 않소.”
“해월선생께서 기포령을 발하실 때는 다 그만한 연유가 있었을 것이고, 신교(神敎)도 함께 전하셨을 터, 간곡히 듣기를 청합니다.”
이번에는 수접주까지 나서서 간청하자 보은 수접주가 더는 물리치지 못하고 말문을 열었다.
“그리 말씀하시니 제 부족한 언변을 탓하지 않는다면 몇 말씀 사뢰어보리다. 해월선생께서 청산에 모인 접주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보은 수접주가 옷에 풀 먹이듯 적삼 깃을 정갈히 훑어내려 반듯이 펴고는 헛기침으로 목을 고른 후 그날에 있었던 이야기를 해토머리에 얼음 풀리듯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지난달 보름에서 하루가 지났을 무렵이었습니다. 해월선생으로부터 접주들만 은밀히 청산 대도소로 모이라는 전갈이 당도했습니다. 당시는 해월께서 관군의 눈을 피해 그곳에 계시던 때였지요. 각 고을 접주에게 황급히 연통을 넣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길을 나섰습니다. 가는 도중에 보니 큰 고을은 물론이고, 작은 마을도 출진을 준비하는 동학군으로 가득했고, 군량과 무기를 실은 우마차가 길을 막아 동학군 세상이 되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민초들 모두 가만히 팔 개고 있다가는 왜놈의 손에 나라가 넘어가겠다고 생각하는 듯했습니다.
청산에 도착해 안내된 곳은 허름하게 위장한 초가였습니다. 거기서 하루를 유하고 이튿날 문바위골로 향했지요. 문바위골은 계곡이 깊어 사람이 은거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고, 청산 평야는 바다처럼 넓어 대군을 먹이기에 충분한 터전이었습니다. 게다가 앞은 탁 트이고 뒤는 막혀 있어 인마의 움직임은 물론, 작은 기척도 울림통 속처럼 크게 들려 외적의 방비가 능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보은 수접주가 음성을 낮추어 깔았어도 기실은 말주변이 상당해 당시의 정황을 그림 그리듯 소상하게 들려주었다. 그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문바위는 형상이 마치 사람이 드나드는 문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실제로 가보면 대단한 영험이 깃들어 있다 느끼실 겁니다. 그 문을 들어서면 속세와는 다른 신령스러운 땅에 들어섰다는 느낌, 지금껏 품어왔던 생각을 온전히 바꾸지 않고서는 다가설 수 없는 다시 개벽의 세상, 천 년의 웅지를 펼 도량에 들어섰다는 감동이 절로 솟아날 것입니다.
문바위 앞에 서 있는 소나무 또한 속리 정이품이 환생한 듯 자태가 엽엽하고, 길가에 늘어선 빨간 남천 열매에 눈을 빼앗겨 한 마장쯤 걷다 보면 이번에는 수령이 족히 오백 년은 됨직한 느티나무가 나옵니다. 나무가 어찌나 실하고 울창한지 초열(焦熱)의 폭염에도 가을의 너와집 같고, 세 가지로 나눠 뻗은 줄기 한가운데는 장정 서넛이 둘러앉을 만하고, 나무 아래의 너럭바위 또한 선방 서너 개는 꾸밀 만큼 넓습니다. 이 너럭바위에 누워 하늘을 보면 온 세상이 평평해지고, 만인이 평등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고도 합니다. 동학이 꿈꾸는 세상처럼 말이지요.”
수접주가 없는 정경을 부러 꾸며 말할 리는 없겠으나 곧이듣기에는 너무도 출중한 지세인지라 셋은 언젠가 문바위골에 꼭 가봐야겠다며 속마음을 다졌다.
듣는 이의 수굿한 귀 기울임에 신명이 났던지 수접주가 연달아 말을 이었다.
“삼면에 휘장을 친 너럭바위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니 도레방석처럼 너른 훈련장에는 무예를 다듬느라 여념 없는 군사들이 그득했고, 산비탈을 다듬어 지은 초막에서는 숯불 태워 밥 짓는 연기가 자욱했습니다. 잠시 있자니 흰 무명 두루마기를 입은 해월께서 들어오셨습니다. 접주들이 일제히 일어나 복배(伏拜)로 예를 갖추자 해월은 우리보다 더 깊숙이 허리를 숙여 답례하고는 좌정하셨지요. 그리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접주의 말투가 일순 해월의 목소리인 양 중저음으로 깔리면서 너른 호수처럼 벙벙해졌다. 수접주는 그날의 해월을 상기하려는 듯 청산 쪽으로 머리를 돌려 버성긴 수염을 한 차례 쓸어내린 후 해월선생의 말씀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먼 길 오시느라 노고가 많았소이다. 접주들을 뵈러 내가 직접 보은으로 가야 마땅하나 그곳은 이미 관군이 우리 동학군의 주둔 사실을 아는 고로 거사를 앞두고 혹여 일을 그르칠까 싶어 이리로 모신 것이니 크게 나무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수운대선생님께서 무극대도를 받아 동학을 창도하신 이래 올해로 꼭 삼십 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나는 이 나라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사람이 곧 하늘이라 그 본성에 인내천(人乃天) 한울님이 있음을 알게 하였고, 만민 모두가 골고루 평등하다는 시천주의 가르침, 사람을 한울님같이 대하고 섬겨야 한다는 사인여천을 실천하며 살아왔습니다. 내가 오늘 접주님들께 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이런 믿음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고하고자 함입니다.
무릇 모든 생명은 스스로 존귀한 가치를 지니며, 우주 만물과 더불어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 살아가는 것이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다시 개벽의 세상, 즉 모두가 평등하게 사는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우주 만상이 다 한울님이고, 어린이나 아녀자, 관노나 사노, 하다못해 들판에 나는 새 한 마리, 풀 한 포기조차 한울님 아닌 것이 없습니다. 하오나 지금 이 나라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일본이나 청 제국이 서로 취당(聚黨)하여 조선을 겁박하고, 탐학한 관리나 토호들이 반상, 적서, 남녀의 차별에, 토색질, 분탕질까지 저질러 선한 백성 한울님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습니다.
소외와 핍박을 천형(天刑)으로 알고 사는 건 살아도 사는 게 아니며, 그릇됨을 알고도 모른 채 묵과하고 굴종하는 건 다시 개벽의 뚜껑을 닫는 일입니다. 묵묵히 참기만 하고 변화를 도모하지 않는 건 자기 안에 갇힌 기망(欺罔)일 뿐이며, 앉아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것 외에 다른 묘책이 없다고 자탄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혁명이란 무엇입니까? 원악(元惡)에게 머리 조아리지 않고, 내 믿음을 철석같이 믿어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힘입니다. 모든 혁명은 분노에서 비롯하며, 인내가 끝나는 곳에서 열리는 새로운 개벽 하늘입니다. 백성의 궁핍과 치욕이 하늘을 찌르고, 외적의 침탈로 나라가 쇠멸하는 이 마당에 마냥 팔 괴고 앉아 상제님의 강림만을 기다린다면 어찌 우리가 축원하는 세상, 혁명의 하늘이 열리겠습니까?
자고로 민심은 천심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창의하는 것은 곧 온 나라 백성이 창의하는 것이며, 한울님이 도모하는 천운의 기회가 도래함이니, 오늘의 기포를 통해 수운 스승님의 무고함을 바로잡고, 외군(外軍)을 이 땅에서 몰아내어 조선의 대원(大願)을 실현해야 할 것입니다.
무릇 생명은 한울님이 주신 것이고 죽어도 한울님의 세상으로 가는 것이니 성령으로 장생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호랑이가 들어오면 참나무 몽둥이라도 들고 나가 싸워야 하는 것처럼, 이제 나는 우리 동학도 모두가 함께 떨쳐 일어나 죽기를 다해 싸우자는 창의(倡義)의 기포령(起包令)을 발하는 바입니다. 이를 계기로 풍전등화처럼 스러져가는 조선을 되살리고, 한울님의 목숨을 호기롭게 일으켜 세우는 단초가 되기를 앙축(仰祝)하옵니다.
이것으로 내 말은 줄이고 여러 접주님 모두에게 천지신명의 보살피심과 한울님의 가호가 창대하기를 축수하옵니다. 충경포 수접주 윤경신, 한울님의 천어(天語)에 기대어 해월선생의 말씀 대신 전해 드렸습니다.”
보은 수접주가 밭은 숨을 다독여 해월선생의 기포령을 전하고 말문을 닫았다.
수접주가 들려준 해월의 말은 듣는 이로 하여금 생생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특히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것이 혁명이며, 스스로 분노하여 일어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혁명의 시작이라는 말에 가슴이 떨렸다. 그것은 일본군이 쏘아대는 총소리 앞에 썩 나서며 울려대는 동학군의 철성 소리였으며, 그들의 화력에 기죽어 있던 가슴이 뻥 뚫리는 한울님이 목소리이기도 했다.
셋은 숙연한 심정으로 해월선생이 창의하며 품었던 늠연한 기상과 기포령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장내리 대도소를 나섰다. 보청천 강물에 드리워진 윤슬이 길게 이어졌다. 일행은 이천접이 야영하고 있는 숙영지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단정학, 왜가리 들의 귀소가 강을 따라 잔잔히 너울져 함께 흘렀다.
3. 전투
이틀 후, 보은 장내리 대도소에서 출정을 위한 치성식이 열렸다.
전날 밤 은밀히 당도한 해월선생이 의암 손병희에게 통령기를 전수하는 것으로 치성식이 끝나고 출정이 시작되었다. 통령으로 임명된 의암 대접주가 각 포를 사열한 뒤 3만 대군을 원정군과 수비군으로 나누어 2만의 원정군은 논산으로 이동해 전봉준의 호남동학군과 합류토록 하고, 1만의 수비군은 장내리 대도소, 문바위골 대도소를 비롯한 충청도 지역을 방비케 했다.
이동 편의성을 위해 원정군을 다시 둘로 나누어 1대인 영동과 옥천포는 회덕을 거쳐 공주 장기의 대교(大橋)로 이동했고, 2대는 경기포를 주축으로, 강원, 충청, 경상포와 연합해 심천과 진산을 거쳐 논산으로 향했다. 2대의 주력은 괴산전투에서 경험을 쌓은 이천포가 맡았다.
황색기를 든 손병희 통령의 중군을 중심으로 청색기의 선봉, 백색기의 좌익, 흑색기의 우익, 홍색기의 후군이 논산을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다. 오색 깃발을 치켜든 2만 대군이 진군해 나가자 연도의 산과 들녘은 온통 흰옷 입은 동학군으로 넘쳐났고, 군량과 무기를 실은 우마차의 행렬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수접주로 승진한 이창진과 전량도감이 된 한규석은 충경포의 신재길 접주와 함께 후군에 편성되어 보무도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행군 도중 간혹 만나는 소읍의 관군은 대군의 이동에 혼비백산해 무기를 버리고 도망치기 일쑤였고, 그 덕에 적으나마 신무기와 탄약을 습득할 수 있었다. 그중 회선포 두 대를 노획한 것은 동학군의 사기를 높이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총신이 돌아가면서 총알이 나가도록 고안된 회선포는 기왕에 가지고 있던 한 대와 합쳐져 대열의 선두를 이끌었다.
논산에서 2만의 호남동학군과 만난 경기동학군은 도합 4만의 대군으로 진용을 갖춰 공주를 향해 짓쳐나가기 시작했다. 노성을 지나면서부터는 공주를 포위 공격하기 위해 대군을 둘로 나누었다. 손병희 통령이 지휘하는 경기동학군은 좌측의 이인(利仁) 쪽으로 향했고, 전봉준 장군이 지휘하는 호남동학군은 우측으로 돌아 경천을 지나 우금치와 효포(孝浦) 방면으로 이동했다. 한편, 공주의 동쪽으로 진군해 들어간 영동과 옥천포는 금강의 북쪽 강안인 대교에 진을 치고 주력인 호남동학군의 공주 공격 개시 파발이 당도하기만을 기다리면서 세 방면에서의 일제 공격을 위해 무장의 고삐를 바짝 틀어쥐었다.
이인에 당도한 경기동학군은 회선포 3대를 돌출된 형태로 앞세운 뒤 논배미를 두둑하게 쌓아 총안을 만들었고, 너른 이인 평야에 볏짚을 깔아 진지를 구축했다. 호남동학군과의 연합전선을 형성하기 위해 만든 임시 전진기지인 셈이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날은 점점 추워지는데 전봉준의 호남동학군으로부터 개전을 알리는 파발이 나흘째 감감무소식이었다.
이인의 평야 진지는 금방 이동할 것으로 예상해 임시방편으로 구축한 것이라 허허벌판의 추위와 칼바람을 견디지 못했다. 궁여지책으로 화톳불을 피웠다. 그 탓으로 낮에는 매캐한 연기가 종일 진지를 맴돌았고, 밤에는 멀리서 보아도 대군이 주둔해 있는 게 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불빛 속에 환했다.
손병희 통령은 출진이 미뤄지는 것에 조바심이 일어 접주들을 한자리에 모이도록 통문을 돌렸다. 갑주(甲冑)를 떨쳐입은 통령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일전이 임박했습니다. 공주는 천혜의 군사 요충지인바 이곳을 점령하지 못하면 승리를 보장할 수 없습니다. 아직 호남동학군으로부터 개전 파발이 당도치 않아 답답하기 이를 데 없으나, 언제 공격이 시작될지 모르니 무기와 군량을 세세히 점검하고 출진에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조만간 있을 공격을 앞두고 접주들의 의견을 수렴코자 하니 기탄없이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통령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맨 앞줄의 젊은 접주 하나가 큰 소리로 말했다.
“호남동학군을 기다릴 것 없이 우리가 먼저 쳐들어가 성문을 깨부숩시다.”
여기저기서 ‘그럽시다’라는 호기로운 목소리가 울흥하게 일었다.
신중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독불장군이 나서면 백전필패란 걸 모르시오? 원래의 계획대로 동, 서, 남 삼면에서 동시에 공격하면 수성군이 도망칠 곳은 금강뿐이라 독 안에 든 쥐 격입니다. 서둘러서는 절대로 아니 됩니다.”
다른 의견도 나왔다.
“우리는 타지에서 이동해 왔기에 이인이나 공주의 지세를 잘 알지 못합니다. 무릇 병서에 이르길 지장(智將)은 지세와 산세, 수세를 우선 살핀다 했습니다. 먼저 동리 사람을 불러 지세를 소상히 들어본 후 움직이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이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근동의 지리를 잘 아는 접주가 있어 그가 자진해 나섰다.
“그렇지 않아도 마침 도스르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보다시피 이인은 땅이 넓어 사방이 트여 있습니다만, 이인부터 공주까지는 산과 능선만이 즐비합니다. 비록 산은 높지 않으나 봉우리가 무수히 많고 산록은 가파르며, 반대로 골이 깊어 대군이 지나가기 쉽지 않습니다. 우마가 다닐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며, 고개를 대여섯 개 연이어 넘어야 공주성에 당도하는 오르막 험로입니다.”
접주의 이 말에 앞으로의 전투가 쉽지 않을 거라는 웅성거림이 일었다. 돌멩이 하나를 굴려도 아래보다는 위가 나을 텐데 공주성 공격은 아래에서 위로 치받는 방식이라 쉽지 않겠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또 다른 의견도 나왔다. 말한 이는 충경포의 신재길 접주였다.
“지금 당장 진지를 옮겨야 합니다. 보다시피 우리 진지는 평야에 포진하여 사방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가진 화승총은 사정거리가 짧아 멀리 있는 적을 맞추기 어렵고, 바람막이 하나 없는 허허벌판인 까닭에 화승에 불을 붙이기도 쉽지 않습니다. 속히 산봉우리로 진지를 옮기고 몸을 숨겨야 합니다.”
다들 동의했지만 금방이라도 호남동학군의 파발이 당도할지 모르는 상황이었고, 당장 애써 만든 진지를 버리고 새로운 진지를 구축해야 한다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는 눈치들이었다. 신재길 옆에서 묵묵히 듣고만 있던 나이 지긋한 접주 하나가 허리부터 세우고 일어나 추임새를 넣었다.
“무릇 정병(精兵)이라 함은 전투를 잘하는 병사가 아니라 방비를 잘하는 병사를 말합니다. 오늘의 수고가 내일의 승리를 약속한다는데 무얼 주저합니까? 군사의 숫자만 믿고 지세가 불리한 평지에 머물렀다가는 화를 키우는 꼴이 될 것입니다. 속히 서둘러야 합니다.”
좌중에 침묵이 흘렀다. 정적을 깨고 또 한 사람이 일어나 조심스레 말했다.
“어제 해 질 녘, 좌측방의 초봉리 산마루에서 원조경(遠眺鏡)으로 주위를 살피는 자가 있었습니다. 멀어서 확실하진 않았으나 그 시간에 산야를 누빌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필시 관군이나 일본군이 우리를 염탐하러 보낸 세작이 아닐는지요?”
이 말이 떨어지자 좌중에 술렁임이 일었다. 당장 진지를 옮기자는 의견과 어차피 하루 이틀 후면 진격할 터이니 쓸데없이 전력을 낭비할 필요가 뭐 있겠냐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손병희 통령이 양측의 의견을 다 듣고 난 후 무겁게 입을 뗐다.
“진퇴양난이란 필시 이를 두고 하는 말인 듯합니다. 이렇게 합시다. 어차피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아침 일찍 기병하여 하루를 진군한 뒤 적당한 봉우리를 물색해 진을 치도록 합시다. 오늘은 급한 대로 선봉군인 안성포에서 전방에 보이는 옥녀봉에 척후를 보내 경계초소를 마련하고 적병의 기습을 살피는 것이 어떻겠소?”
타협안이 그럴듯했다. 진지를 옮기자는 의견과 산봉우리에 진을 치자는 의견 모두를 수렴했을뿐더러 옥녀봉은 이인 들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요충인지라 통령의 중재안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회의가 끝나고 돌아가는 참에 이창진과 한규석, 신재길은 짧게 이야기를 나누고 각자의 포로 총총걸음을 옮겼다.
“동학군의 수가 많다 하나 병법을 아는 이가 드무니 걱정이오. 당장 오늘 밤에 야습이 있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지 않겠소?”
“백수의 왕 호랑이도 여우에게 꽁무니를 보이지 않는다고 하였소. 적이 허를 찌르고 달려든다면 낭패가 될 터인데.”
“그러게 말입니다. 불침번을 갑절로 세워 방비를 튼튼히 하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습니다. 오늘 밤이 무사히 지나길 바랄 뿐입니다.”
걱정을 여러 겹 쌓는다고 하여 행운이 찾아오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고작 하루를 더 넘기지 못하고 그날 밤 평야에 주둔해 있던 경기동학군이 관군과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심각한 타격을 입는 불상사가 발생한 것이었다.
야습은 엉뚱하게도 전방이 아닌 후방에서 비롯되었다.
서둘러 옥녀봉에 경계초소를 마련한 안성포 군이 전방과 측방의 방비는 튼튼히 했지만, 후방에서 접근하는 적을 예상치 못했다. 인근 야산에 몸을 숨기고 있던 적병이 동학군이 피운 시초(柴草) 더미 불기운이 사그라드는 새벽 시간을 노려 일시에 총을 쏘며 달려든 것이었다. 선잠에서 깨어난 동학군 진영은 화승에 불붙일 새도 없이 혼비백산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포진해둔 회선포의 방향을 돌려 응사하기도 전에 진지는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불침번을 선 경비병이 화승총으로 응사했지만, 벌판을 건너온 새벽 된바람에 총은 불땀을 잃고 헛방을 놓기 일쑤였다.
전방에 나가 있던 안성포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적병이 후방 근거리에 매복해 있다가 일시에 달려드는 통에 병장기를 추슬러 구원하러 달려올 틈도 없이 한 식경 가량 이어진 전투에서 동학군은 궤산(潰散)에 궤산을 거듭하고 있었다.
날이 희뿌옇게 밝아 주변 형상이 드러나면서부터 논바닥에 엎드려 있던 동학군이 전열을 가다듬어 반격에 나섰다. 전방에 나가 있던 안성포 군이 도착하는 발소리가 요란해지자 적병은 홀연히 미명의 운무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매복과 기습으로 동학군을 타격하고는 귀신병처럼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날이 밝아 전장을 살펴본 결과 심대한 타격을 입은 전투였음이 드러났다. 관군과 일본군의 시체는 별로 없고, 무더기로 쓰러져 죽은 동학군 시신 사이로 부상자의 비명만이 낭자할 뿐이었다. 인원과 무기, 전량을 점고한 결과는 더욱 참담했다. 시신의 숫자는 일일이 세기 어려울 정도였고, 함부로 쏘아댄 회선포 탄환은 초반에 동나버렸으며, 쌓아두었던 군량미에 불기운이 옮겨붙어 홧홧한 열기와 연기가 자욱하게 맴돌았다. 한순간의 방심이 부른 패전치고는 육단(肉袒)으로 옷을 벗고 땅을 칠 노릇이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적군은 인근 야산으로 퇴각했다가 총탄을 보충해 재차 공격해 들어왔다. 반면에 동학군은 불땀이 일지 않는 화승총을 붙잡고 엎드려 헛헛한 입김만을 부싯깃에 불어넣고 있었다. 완벽한 무기의 열세였다. 적군의 공격은 해그림자가 짧아질 때가 되어서야 칠점사의 꼬리를 감추고 사라졌다.
(계속)
작가소개
김현종 -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동대학원에서 『해방기의 북한소설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간문예지 《한국문학시대》 소설 부문 신인상을 수상했다. 작품으로는 장편소설『천살의 시대』, 소설집 『보다 보이다』가 있다.
강령주문(降靈呪文)「지기금지원위대 강(至氣今至願爲大 降)」 본주문(本呪文)「시 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侍 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수운 최제우 대신사께서는 논학문(...
설교 : 현암 윤석산 교령
지난 여름의 폭염과 올겨울 첫눈의 폭설은 모두 기록적인 기상재해였습니다.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이런 기상재해는 해마다 기록을 경신해 갈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로 인해 인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