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5.01.31 14:45
TODAY : 포덕166년 2025.01.31 (금)
(지난 호에 이어)
전투가 일단락되었다.
급선무는 시신을 묻는 일이었다. 벌써부터 얼어붙기 시작한 땅은 곡괭이로 내리찍고 삽날로 후벼도 쉽사리 파지지 않았다. 애먹는 와중에 진동하는 피비린내는 머리를 돌게 만들었다. 시신은 온전한 것 하나 없이 뭉개지고 구멍이 뚫려 팔다리를 잡아당기면 헛소매 관절이 쑥 빠져나왔다. 어쩔 수 없이 땅을 얕게 파 토감(土坎)한 자리에 시신을 눕히고 흙을 덮었다.
혈해(血海)의 전장은 이곳만이 아니었다. 이인의 북접군이 채 토감을 마치기도 전에 영동과 옥천포 군의 피습 소식이 들려왔다. 대교에 진을 쳤던 북접군 역시 관군과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참살을 면치 못했다는 전갈이었다. 북접군의 중구난방과 달리 적들의 군사 지휘 체계는 일사불란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이로써 공주를 삼면에서 포위 공격하기로 한 애초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헛되이 땅을 치는 소리가 이인 들판을 울음바다로 적셨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도망자가 속출했다. 가뜩이나 병력 손실이 많아 애기손, 조막손이라도 빌려야 할 판에 군량미 자루를 짊어지고 베잠방이 휘날리며 달아나는 도망병의 모습이 부지기수였다. 쫓아가 붙잡을 수도 없어 그저 멀거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출진에 부화뇌동하여 함부로 따라나선 부랑자나 도적, 협잡꾼이 사라지고, 새롭게 전의를 불태우는 젊은이들과 정식으로 입도한 도인들 상당수가 남았다는 사실이었다. 골이 깊으면 산도 높은 법. 병력이 반으로 줄긴 했어도 사기는 오히려 충천했다.
병장기와 전량, 가축을 추슬러 진군에 나선 것은 만 하루가 지난 다음 날 아침.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능선과 고지를 철저히 수색하고, 수시로 정탐을 보내 매복과 기습 공격에 대비했다. 그래서인지 공주가 한달음에 건너다보이는 봉황산 자락 하고개 초입에 당도하는 동안 아무런 적정(敵情)을 만나지 못했다.
이인 전투에서 얻은 교훈은 유리한 지형지물의 선점과 접근전의 중요성이었다. 동학군의 주 무기인 화승총은 사거리가 짧은 탓에 높은 고지를 점령하여 매복과 기습으로 접근전을 펴지 않고서는 승산이 없었다. 이를 위해 몸이 날래고 양총으로 무장한 선봉대를 앞세웠고, 그 뒤로 화승총 부대를 포진해 전진케 했다.
마침내 우금치와 효포 쪽 남접군으로부터 전투 개시를 알리는 파발이 당도했다. 바야흐로 공주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공격에 있어서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회선포를 앞세우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이인벌 전투에서 허투루 탄환을 낭비한 탓에 회선포는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탄환 없는 화포는 우마차꾼을 괴롭히는 애물단지에 불과했다. 과감히 회선포를 버렸다. 크나큰 화력의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공격은 세 방향으로 나누어 북접군이 진을 친 봉황산 자락 하고개, 남접군이 치고 올라오는 우금치 고개와 효포 방면에서 동시에 시작되었다. 남접군이 먼저 교전을 시작했는지 우금치 쪽에서 포성과 총성이 들려왔다. 북접군도 철성 소리를 신호로 포접기의 뒤를 따라 일제히 앞으로 달려 나갔다. 봉황산 고지를 점령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참으로 장관이었다. 멀리서 보면 정수리는 붉고 몸은 눈처럼 흰 단정학(丹頂鶴) 떼가 군무를 추며 날아드는 형상이었고, 가까이서 보면 풍성한 서설(瑞雪)을 맞으며 분합문 밀고 우당탕 뛰어드는 함진아비의 혼례청 마당놀이 같았다. 순식간에 봉황산 밑자락이 북접군의 흰옷에 휘감기며 하옇게 뒤덮였다.
그러나 북접군이 채 능선에 다다르기도 전에 고지를 선점하고 있던 관군과 일본군으로부터 집중사격이 쏟아졌다. 철성 소리는 일시에 사라지고 빗발치는 총성만이 산야에 울려 퍼졌다. 소리 위에 소리가 겹치면서 한 소리는 쇠하고 다른 한 소리는 시퍼런 작두날 위에서 흔들어대는 박수무당의 무령(巫鈴)처럼 맹위를 떨치며 날아들었다. 양총을 든 북접군 선봉대가 즉각 반격에 나섰다. 공방이 극한으로 치달으면서 하고개 일대는 바람을 가르는 총소리로 귀청이 찢어졌고, 군마라도 몰려와 달린 듯 양쪽 진영에 뽀얀 먼지가 일었다.
초전의 어수선함이 사라진 뒤 주변을 살펴보았다. 양측 모두 사상자가 많이 발생했으나 적군은 여전히 고지를 점령하고 있었고, 북접군은 아직 능선을 타지 못했다. 이대로 전선이 고착된다면 북접군의 피해는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방어전이 아닌 공격전이었기에 이인에서의 전투 경험도 소용이 없었다. 방어전이라면 고지를 선점하고 있다가 아래를 향해 내려 쏠 수 있지만 지금은 공격전이라 그럴 수도 없는 처지였다. 당장 전세를 역전시킬 묘안을 찾아야만 했다. 적과의 거리를 좁혀 접근전을 펼치는 수밖에 없었다.
공격이 뜸해진 틈을 타 북접군이 은밀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방이 노출되어 큰 나무 뒤에 숨어도 쉴새 없이 날아드는 총탄에 줄기가 터져 나갔고, 마른 풀포기조차 설맞은 돼지처럼 허옇게 뒤집혀 잔뿌리를 털어댔다. 그대로 있다가는 벌집이 되기 십상이었다. 가장자리에 엎드려 있던 몇이 용기를 내어 갈지자로 뛰어나갔으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북접군의 움직임이 멈추자 전장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으나 이번에는 북접군 머리 위로 대완포 포탄이 날아들었다. 포는 총과 달리 바닥에 엎드려 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포까지 동원해 공격해올 줄은 몰랐다. 포탄은 제철 만난 망둥이처럼 사방에 쿵쿵 떨어지며 파편을 튀겼다. 그대로 있다간 비명 한번 못 지르고 곤죽이 될 판이었다. 답은 하나였다. 엎어져서 포 맞아 죽으나, 뛰어가다 총 맞아 죽으나 매한가지였다. 누구의 명령이랄 것도 없이 북접군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고지를 향해 달려 나갔다.
북접군이 다가가자 이번에는 회선포 공격이 잇따랐다. 여러 대의 기관총에서 연발로 쏟아지는 총탄 앞에 선봉대는 전진을 멈추었고, 총알 세례를 받은 병사들의 무릎이 턱턱 꺾이며 속절없이 쓰러져갔다.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도 선두에 선 자가 총 맞아 쓰러지면 뒤따르는 병사가 피 묻은 총을 주워들고 사격하며 공격해 올라갔다.
이창진 수접주와 신재길 접주를 비롯한 지휘부가 선두에 서서 독전을 다그쳤다.
“흩어져서 고지를 점령하라. 고지를 향해 뛰어라.”
북접군은 전방의 봉황산 대신 길 양편에 솟아 있는 산봉우리를 향해 달려 나갔다. 그러나 늦가을 산비탈은 돌돌 말린 가랑잎과 마른 솔잎이 수북해 세 걸음 올라가면 여섯 걸음 미끄러졌고, 풀로 삼은 짚신 끈은 맥없이 끊어져 발목에서 덜렁거렸다. 차라리 맨발이 나았다. 짚신을 벗어 던지고 각개 전투로 흩어져 고지를 향해 뛰었다. 대열이 흩어지자 회선포 소리가 잦아들고 이번에는 소총 소리가 뒤를 이었다.
북접군이 양쪽 산봉우리를 점령하면서 전투는 다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산마루에 도착한 북접군은 찬 바닥에 엎어진 채 참았던 숨을 뱉으며 휴식을 취했다. 겹친 피로감이 삼년상 여막(廬幕)에 누운 것처럼 무겁게 내려앉았다. 한규석은 화승총의 무게감과는 전혀 다른 피묻은 양총을 가슴에 얹고 누워서 밭은 숨을 골랐다. 그것은 여러 군데 가슴이 뚫려 피 칠갑으로 나뒹굴던 병사가 숨이 끊어지면서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양총이었다. 총신의 열기가 남아서인지, 흘린 피가 식지 않아서인지 총 잡은 손바닥이 미끈거렸다.
누운 채로 하늘을 올려보았다. 얼기설기 뭉쳐진 소소한 구름밭이 흐르고 있었고, 음영이 겹쳐진 곳에서 빛줄기가 쏟아져 내려왔다. 구름의 무늬였고 흩어지는 바람 소리였다. 전투가 아니었다면 마냥 한가롭게 보였을 빛내림이었다.
쉬는 동안 부산해진 건 관군과 일본군 쪽이었다. 전투가 일단락되기 무섭게 적진에서는 보급품이라도 나르는지 소란스러웠고, 밥을 배식하는 듯 그릇 부딪치는 소리도 들려왔다. 소강상태를 이용해 보급과 배식이 이루어지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북접군이 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누어 먹을 음식도 없고, 운반할 보급품도 없었다. 거리가 멀어 총을 쏠 수도 없었고, 일어설 기운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할 일이라곤 고작 찬 바닥에 깔 가랑잎을 긁어모으는 게 전부였다.
오후가 지나 해거름이 되자 눈구름이 몰려들고 바람이 거세지더니 급기야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입성이 허술한 북접군에게 때 이른 북풍한설이 찾아든 것이었다. 바람벽 하나 없는 산마루에서 맨발로 엎드려 밀려드는 추위와 배고픔, 졸음을 참는다는 건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차라리 전투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골짜기 하나도 건너지 못하는 화승총으로 선제공격을 한다는 건 맨발로 옹기전에 뛰어드는 격이었다.
접주들이 모인 지휘부 회의에서 정예병을 뽑아 기습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시야가 확 트인 개활지에서 무슨 수로 은밀히 접근하느냐는 퉁이 나오자 모두들 입을 닫았다. 선제공격을 할 수도 없고, 추위와 배고픔을 해결할 수도 없다면 방법은 하나, 퇴각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지휘부가 진퇴를 결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사이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산에서 밤을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오늘은 일단 철수했다가 다른 경로를 통해 다시 공격하기로 하고 산에서 내려왔다.
북접군이 전열을 정비하면서 작전회의를 거듭했지만, 진영과 무장의 열세를 극복하고 승기를 잡을 수 있는 묘안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사흘째 되는 날, 간부들이 모인 도소 회의에서 이창진 수접주가 한 가지 의견을 냈다.
“적군이 고지를 선점하고 있고 무기도 우세한 상황이라 이대로 전방을 뚫기는 곤란합니다. 공격 방향을 둘로 나누어 양동작전을 펴보는 것이 어떨까요? 하나는 측면에서, 다른 하나는 정면에서 말입니다. 측면군이 먼저 금강 변을 따라 접근하면서 공격을 개시하면 적은 공격 방향이 바뀐 줄 알고 측면으로 방향을 돌릴 것이며, 그러면 전선이 길어져서 정면에 빈틈이 생길 것입니다. 제가 우마와 총 없는 병사를 주력군으로 위장해 측면을 교란할 터이니 이때를 노려 총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정면에서 치고 올라간다면 승산이 있을 듯합니다. 성동격서(聲東擊西)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는지요?”
이창진의 말이 끝나자 마땅한 공격 방법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던 참이어서인지 재청이 빗발쳤다.
이창진이 위장군의 전권을 위임받아 준비에 나섰다. 전량도감인 한규석이 주동이 되어 사격이 가능한 무기를 주력군에게 전달했고, 주력군으로 위장하기 위한 방책을 서둘렀다. 우마차는 검불 짚단을 높이 쌓아 군량미로 위장했고, 형형색색의 포접기도 만들어 군사의 숫자가 많아 보이게 했다. 총을 든 것으로 위장하기 위해 목총도 깎았다.
위장군의 숫자는 북접군의 반 이상이 총 없는 병사라 인원은 차고 넘쳤다. 전선에 뛰어들고 싶어도 총이 없어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로 삼천 명 대군이 꾸려졌다. 대군이라고 해봤자 목총을 든 농민이 태반이었지만 언뜻 보아서는 여지없는 정예부대였다. 전의(戰意) 하나만큼은 관운장 못지않았다.
손재주 있는 몇이 목책을 만들자는 의견을 냈다. 통나무를 반으로 켜서 나무 방책을 만들면 포탄은 못 막아도 총알은 막을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때아닌 목공작업이 벌어졌다. 산판을 뒤져 끌어온 통나무를 반으로 켜고 칡넝쿨로 엮으니 훌륭한 방책이 완성되었다. 시험 사격을 해본 결과 효과가 입증되었다. 우마차를 징발해 방책을 포개 쌓으니 그것만으로도 또 다른 군량 위장 마차가 된 셈이었다.
출진 준비를 마친 위장군이 신명 좋은 징잡이를 앞세워 진군을 시작했다. 지축을 흔드는 철성 소리에 맞추어 삼천 대군이 보무도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출정 소리에 놀라 이른 겨울잠에 빠진 산짐승이 깨어나 울부짖었고, 빈 들판에서 이삭을 뒤지던 멧새 떼도 논두렁, 밭 언덕으로 몰려나와 부리를 씻으며 대군을 전송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금강 변을 따라 측면에서 다가오는 대군이 보이자 산마루를 지키던 방어군의 동요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나타난 동학군을 막기 위해 허둥대는 모양새가 산 아래에서도 훤히 보였다. 천기(天氣)가 아군 쪽으로 움직이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대군은 더욱 힘차게 진군해 들어가 부엉산 어름에서 방향을 틀어 봉황산 측면으로 파고들었다. 방어군 쪽에서 다급히 쏜 총알이 대군의 전면에 흙먼지를 일으키며 튕겨 올랐다. 얼떨결에 위장군 대열이 멈추었다. 이창진 수접주가 독전기를 흔들며 소리쳤다.
“겁내지 마라. 총알이 예까지는 닿지 않는다. 오십 보 더 전진한 후 멈추어라.”
이창진의 대갈일성에 대군은 오십 보를 더 전진한 후 진군을 멈추고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
“목책을 앞으로 날라라.”
목책을 실은 우마차가 위장군 사이를 비집고 나왔다. 병사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목책을 일렬로 곧추세우자 나무로 쌓은 성벽의 모양새가 갖춰졌다.
“구령에 맞춰 전진하라.”
병사들이 목책을 방패처럼 들고 구령에 맞추어 일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무게가 무거워 속도가 느리긴 해도 목책은 훌륭한 방패막이가 돼주었다. 목책을 겨냥해 총알이 날아들었으나 두꺼운 통나무를 뚫지 못했다. 목책 부대가 한발 한발 접근해 가까이 다가섰다. 복색을 달리 입은 영장(營將)과 교졸(校卒)의 관군 모습과 누런 군복을 입은 일본군이 확연히 구분되어 보일 정도로 거리가 가까워졌다.
다시금 이창진의 외침이 있었다.
“전진을 멈춰라. 정면 주력군의 공격이 시작될 때까지 절대 움직이면 안 된다. 명심하라.”
목책의 움직임이 멈추자 날아오던 총격도 멈추었다. 방어군은 동학군의 엄청난 숫자에 눌려 산 아래를 주시하고 있었다. 목책 뒤에 숨은 동학군이 언제 돌격해 올라올지 몰라 정세를 살피고 있음이 분명했다.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정면 공격에 대비해 배치되었던 적군의 상당수가 측면으로 이동해 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 주력군이 공격을 시작하면 위장군은 목책을 남겨두고 몰래 빠져나오면 임무는 끝나는 것이다. 위장군이 움직이지 않으니 방어군의 발도 묶일 것이고, 주력군의 공격이 시작되더라도 언제 위장군이 공격을 시작할지 몰라 병력을 빼지 못할 것이다. 칼은 칼집에 들어 있을 때가 무서운 법이다.
위장군은 목책을 옮기느라 땀에 젖은 홑적삼과 베잠방이를 비설거지 하듯 쓸어내리며 작전의 성공에 대한 덕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방어군 쪽에서 미세한 움직임이 보였다. 위장군의 전진이 멈춘 것에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정찰병 몇이 산 아래로 내려오는 게 보였다. 소총 사정거리까지 접근해놓고도 공격을 주저하는 건 충분히 의심할 만한 일이었다.
당장 정면 주력군의 공격이 시작되지 않으면 정체가 노출될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정찰병은 일본군 하나에 관군 셋이었다. 그들이 총을 겨눈 채 횡으로 늘어서서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위장군은 목책 뒤에 숨어 갈피에 꽂아둔 낫을 뽑아 들고 숨을 죽였다.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거리가 가까워졌다. 일촉즉발의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선두에 선 일본군이 총구를 겨냥한 채 목책 옆을 돌아서는 순간, 멀리서 포성과 총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주력군의 공격이 시작된 것이다. 총격이 들리자 일본군이 몸을 돌려 돌아가려다 말고 목책 뒤에 숨은 위장군을 발견하고 말았다. 이를 본 위장군 하나가 일본군을 제압하기 위해 뛸 듯이 날아올라 낫을 내리찍었다. 낫의 쇠 무늬가 햇살에 흩뿌려졌고, 기습 공격을 받은 일본군이 손가락에 걸었던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한 방의 총소리와 한 차례의 낫의 번뜩임이 있은 후 짧은 정적이 흘렀다.
처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 둘 다 우두커니 서 있었다. 다음 순간 위장군의 횡격막을 뚫은 총알구멍에서 울컥울컥 번지는 핏물이 베적삼을 적시는 게 보였고, 일본군 역시 자신의 목울대에서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핏줄기가 사방으로 튀는 걸 보았다. 이를 본 나머지 정찰병이 혼비백산 꿩총을 쏘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총소리가 나자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처음에는 위장군이 우세했다. 정찰병이 산으로 도망치고 낫과 죽창을 든 위장군이 뒤를 쫓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공세는 순식간에 역전되고 말았다. 동학군에게 총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챈 정찰병이 맨 앞에서 달려드는 위장군을 쏘아 넘어뜨리자 나머지 정찰병도 방향을 돌려 사격을 개시했다. 정찰병 몇 명의 공격으로 위장군 전열이 무너지자, 산마루를 지키던 관군과 일본군이 속았다는 걸 깨닫고 총을 쏘며 일제히 뛰어 내려왔다.
낫과 죽창을 든 북접군과 총을 든 적군 사이에 백병전이 벌어졌다. 귀를 찢는 총소리와 함께 북접군의 사지에 구멍이 뚫렸고, 낫 날에 베인 적군의 팔다리가 핏물에 범벅되어 사방으로 떨어져 나갔다. 솔가지와 쌓인 낙엽에 검붉은 피 얼룩이 두텁게 덧칠되어갔다.
위장군은 죽을 때까지 싸웠고, 적군은 총알이 떨어질 때까지 싸웠다. 위장군은 쓰러지면 다시는 못 일어났지만, 적군은 총알이 떨어지면 다시 장전해 쏴댔다. 이것은 전쟁이 아니라 일방적인 학살이요, 도살이며, 천살(擅殺)이었다.
위장군은 수백 구의 시신을 산야에 남겨둔 채 철수해야만 했다. 성한 사람은 몇 없었고, 나머지는 피칠갑을 한 인두겁이었다. 이창진 수접주는 간신히 목숨은 건졌으나 허벅지에 관통상을 입고 말았다. 한규석이 이창진을 들쳐업고 목총을 거꾸로 짚어 사력을 다해 사지에서 빠져나왔다.
정면에서 치고 올라갔던 주력군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길게 늘어난 전선 덕에 초반에는 승기를 잡는 듯했으나 고지 점령을 목전에 두고 처참히 무너지고 말았다. 역시 열세한 무기 탓이었다. 구식 화승총으로는 신식 양총을 당해낼 수 없었다. 총기를 다룰 줄 아는 신재길 접주가 이번 전투에서 죽은 것도 북접군에게 큰 타격이었다.
전봉준의 남접군 역시 우금치 전투에서 패했다는 파발이 당도했다. 이로써 남북접 연합군의 공주 공격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패전의 원인은 단 하나. 무기의 열세는 극복할 수 없는 한계였다. 신식 무기가 없는 한 동학군은 승리할 수 없었다.
(계속)
작가소개
김현종 -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동대학원에서 『해방기의 북한소설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간문예지 《한국문학시대》 소설 부문 신인상을 수상했다. 작품으로는 장편소설『천살의 시대』, 소설집 『보다 보이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