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11.21 17:00
TODAY : 포덕165년 2024.11.21 (목)
지난 11월 11일 동학농민혁명 130주년 기념 고성산 동학농민혁명군 위령식이 경남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 고성산 위령탑에서 봉행되었다.
이날 행사는 문화체육관광부, 경남동학혁명계승사업회, 하동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의 주최·주관으로, 천도교중앙총부, 하동군, 하동의회, 옥종면, 천도교경상도연원회, 하동문화원의 후원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위령식은 130년 전, 하동 지역에서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동학농민혁명군 선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마련됐다. 또한 유족들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모든 시민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고자 열린 이번 위령식은 식전공연, 1부와 2부 추모식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위령식에 앞서 식전 추모공연으로 초혼 진혼(이윤옥 명창), 추모시 낭독(부활의 시-김동련 작, 이상민 낭독)이 있었다.
1부 위령식은 하재식 사천교구 교화부장이 집례를 맡아 내빈소개-개회선언-국민의례-청수봉전-심고-주문 3회 병송-경전봉독(성령출세설, 강선순 부산시교구 여성회장)-동학혁명군 폐정개혁안 12개조 낭독(정의적 진주시교구장)-추념사(천도교 이범창 종무원장)-추모사(하승철 하동군수 외)-분향-만세삼창(신만석 동학혁명군 유족, 천도교사천교구 선도사)-심고-폐회식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2부 축하 특별공연으로는 천도교 부산연합합창단(박차귀 부산시교구장 지휘)의 동학농민혁명군 추도가 공연과 “여장협장군과 동학군과의 화합 한마당”을 주제로 경상국립대 사물놀이패의 공연이 이어졌다.
1부와 2부 행사를 마치고 야외에서 뷔페식으로 마련된 식사를 나누는 등 다채로운 행사가 이어졌다.
하동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김동련 공동의장은 내빈소개에 앞서 “동학혁명이 일어났던 지난 갑오년과 지금의 국내 외적인 상황은 중첩되는 바가 많습니다. 이곳 하동의 하승철 군수님은 갑오년 민족이 당면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백성 속에서 동학이 나왔듯이, 오늘 우리가 당면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혜 역시 시민 속에서 나와야 하며 이것은 민족의 위대한 문화자산인 동학의 지혜를 반추하고 계승하고 선양하는 노력을 통하여 가능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다. 저희 하동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는 이러한 군수님의 뜻을 받들어 작은 부분에서부터 성실하게 노력하고자 합니다.”라고 말했다.
천도교중앙총부에서는 이범창 종무원장이 참석하여 추념사를 하였다.
천도교 원로 교인 김덕칠 선도사, 백복기 선도사 등이 자리에 함께하였으며 김 산 천도교연원회 부의장, 정덕재 천도교감사원장, 신명식 천도교유지재단 이사장, 천도교경상도연원회운영위원회 박충구 사무국장, 박인준 전 종무원장, 정갑선 교무관장 등이 참석하였으며, 정의맹 남정포도정, 최봉수 순암포도정, 김영욱 동원포도정 등이 참석하였다.
동학농민혁명 기념재단에서는 신순철 이사장을 대신하여 한민욱 기념사업부장이 참석하였다.
전국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에서도 참가하여 자리를 빛냈다. 전국동학농민혁명연대 고재국 대표와 김명재 사무국장, 경남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시암 정의적 이사장, 남해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용암 김환용 이사장, 부산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호암 이용 이사장과 허채봉 대표, 순천영호도회소기념사업회 이하윤 대표, 하동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김종관 의장과 송찬영 박경희 부의장과 임원 등이다.
그 외에도 하승철 하동군수, 주영채 동학농민혁명 유족회장, 하재호 산청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회장, 강대선 하동군의회 의장, 강태진 하동문화원장, 이춘호 하동교육지청 교육장, 신재범, 박희성, 최민경 하동군의원, 박규식 옥종면장, 이종수 이병주문학관장 등이 참석하였다.
아래는 추념사 전문이다.
추 념 사
오늘 우리는 130년 전 정의를 실현하고 나아가 독립 국가 건설을 위해 이곳 고성 당산 전적지에서 산화하신 선열들의 성령출세를 위해 심고 합니다.
선열들께서는 이 나라가 위난에 처했던 갑오년에 보국안민, 제폭구민, 척양척왜의 깃발을 높이 들고 분연히 일어났습니다.
이 혁명은 우리 민족사에 찬연한 금자탑을 세운 빛나는 투쟁이었으며, 꺼지지 않는 불꽃이 되어 한국의 찬란한 오늘을 일으킨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갑오년 3월, 혁명의 첫 횃불을 들고 일어난 동학군은 황토현(黃土峴)과 황룡촌(黃龍村)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여세를 몰아 일거에 전주성을 무혈점령하는 등 기세를 떨쳤습니다.
이러한 동학혁명군의 기세에 압도당한 조정은 전주화약(全州和約)을 체결하고 동학군은 호남 전역에 집강소(執綱所)가 설치 운영하였습니다. 우리 역사상 최초의 민정(民政)을 시행함으로써 ‘백성이 주인’인 이상사회 건설의 첫발을 내딛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권력을 지키는 데에만 혈안이 된 당시 위정자들에 의하여 청나라에 구원의 손을 뻗쳤고, 이를 틈 타 일본군이 우리나라를 침범하여 왕궁을 점령하고 청일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청일전쟁에 승리를 한 일본군은 관군과 연합하여 동학군 토벌이라는 명분 아래 전 국토를 유린하였습니다.
이에 해월 신사께서는 옥천 청산에서 9월 18일 총 기포형을 내리셨고, 진주, 하동을 중심으로 한 경상도 남서부 지역에서도 동학군들이 기포하여 일본군과 맞서 싸우게 되었습니다.
스즈키(鈴木) 대위가 이끄는 일본군은 진주를 거쳐 곤양까지 진출하여 시루봉에서 하동 접주 여장엽이 이끄는 동학군을 격파하고, 진주 인근 수곡(水谷)으로 진격하였습니다.
당시 이곳에는 진주・곤양・남해・하동・산청・단성・함안・의령 등 서부 경남에서 기포한 동학군과 구례・남원・태인・익산 등 호남에서 지원에 나선 동학군이 집결해 있었습니다.
이들 동학군 수천 명은 일본군이 몰려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10월 14일 고성 당산으로 이동하여 산 정상에 방어진을 구축하고 공격해 오는 일본군을 상대로 필사적으로 항전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본군의 신식 무기 앞에 동학군은 여지없이 패하였고, 여장엽・김성룡 접주 등을 비롯한 500여 명의 동학군이 전사하고 아픔과 함께 산청과 하동, 광양 쪽으로 퇴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도 고성 당상 정상에는 당시 동학군이 사용했던 청수대와 돌의자가 남아 있어 결사 항전 당시도 천도교 의식을 치르면서 의지를 다졌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를 볼 때 당시 동학군들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던져 끝까지 항전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무극대도의 신앙으로 다져진 보국안민의 정신이 강한 신념으로 깔려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호국의 제단에 몸을 바치신 동학군 선열들이시여!
선열들께서는 비록 비명에 가셨으나 그 후 동학군 후예들은 선열들의 정신을 계승하여 10년 후 갑진개화운동을 전개한 데 이어 기미년에 일제의 침탈에 맞서 거족적인 3・1 독립운동을 주도함으로써 우리의 민족정기를 세계만방에 과시하였습니다.
고성 당산에서 산화하신 동학군 선열이시여!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명실상부, 자타공인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특히 k-콘텐츠와 문화산업이 세계적인 인기를 힘입어 승승장구하여 훌륭한 문화예술로 꽃피워 집중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분열과 대립의 역사를 극복하고, 다 함께 선열들의 정신을 다시 상기하며, 보국안민의 기치를 드높여 나가야 할 때입니다. 아울러 민족혼을 일깨우고, 우리 국민 가슴속에 민족정신, 애국정신을 드높이는 산실로써 자리매김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동학군 선열들이시여!
선열들께서 앞으로도 우리나라가 영원히 번영하고 다시 개벽하는 천도교 정신이 힘차게 부활할 수 있도록 보우하시기를 기원하오며, 선열들께서 성령으로 출세하시어 길이 명복이 있으시기를 심고 하는 바입니다.
포덕 165(2024)년 11월 11일
천도교 교령 윤 석 산 心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