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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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여성회 지도자 워크숍(동학기행) 성공적 개최포덕 164(2023)년 10월 30일(월) ~ 31(화) 천도교 여성회본부(회장 성수당 박징재)는 경주 용담성지 일대와 울산 여시바윗골, 양산 적멸굴을 성지순례하고 여성회 발전을 위한 토론의 시간을 갖는 천도교 여성회 지도자 워크숍을 개최하여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였다. 10월 30일 12시 40분 용담수도원 진성관에서 봉행된 개회식에서 박징재 여성회장은 “지부장님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여성회 100주년 행사를 비롯해서 여성회 큰 발전을 이루도록 참고하겠다. 많은 협조바란다”고 인사하였다. 주용덕 종무원장은 격려사에서 “지금 중앙총부 종무원에서는 여성회를 최대한 지원하고자 하지만 여성회에서 자체적인 발전방안이 나오지 않으면 어렵다. 이번 워크숍에서 좋은 의견이 많이 도출되기를 바란다.”라고 주문하였다. 최상락 용담수도원장은 “경전에 일남구녀의 운이라고 했다. 우리 천도교 여성회의 어깨가 무겁다. 이곳 구미산의 정기와 수운대신사의 숨결을 느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격려하였다. 여성회 워크숍 행사에 처음 참여하였다는 모 여성회 지부장은 “여성회장을 갑자기 떠맡고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어려움이 많았지만 이번 행사로 천도교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고 마음을 다잡는 기회가 되었다. 이런 행사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 행사는 올해 두 번째 개최된 워크숍으로 제1회 워크숍은 대전 이북의 전국 교구 여성회 지부장의 워크숍이었고 이번은 대구 이남 지역의 여성회 지부장을 대상으로 한 워크숍이다. 문화체육관광부 후원으로 천도교 중앙총부에서 주최하는 ‘2023 인내천 지도자 아카데미’ 사업의 하나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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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사 · 대사모 숭모비 제막봉고식 봉행천도교 중앙총부는 포덕 164년 10월 28일, 경주 현곡면 가정리 수운 최제우 생가에서 대신사·대사모 숭모비 제막 봉고식을 봉행했다. 봉고식은 전국에서 350여 명의 교인이 모인 가운데, 이미애 교화관장의 집례로 경전봉독(포덕문- 최중환 용담교구 교무부장), 제막식, 경과보고 (신명식 유지재단 이사장), 봉고사(주용덕 종무원장), 격려사( 박상종 교령) 순으로 진행됐다. 박상종 교령은 격려사에서 “우리는 지금 개벽을 열어가는, 지상천국을 열어가는 길목에 서 있다. 다 함께 동귀일체 하여 포덕과 교단 발전을 위해 힘을 모아 주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주용덕 종무원장은 봉고사에서 “대신사 탄신 일을 맞아 온갖 고난과 역정 속에서도, 한결같이 도를 펼치기 위해 평생을 헌신하신, 그 불굴의 정신을 온전히 계승하며, 부화부순의 종지를 온 천하에 알릴 수 있는 대신사·대사모 숭모비를 건립하게 된 것을 뜻깊게 생각한다. 또한 전국의 동덕님들이 성경신으로 정성을 모아 건립에 임했음을 함께 고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대신사·대사모 숭모비 건립 성금은 동참해주신 동덕님들의 덕분으로 23,780,000원이 모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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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2023 경주동학문화제’ 경주 용담정 일대와 동학수련원에서 개최천도교중앙총부(이하 천도교)가 10월 28일 경주시에서 ‘2023 경주동학문화제’ 행사를 개최한다. 2023년 10월 28일은 동학천도를 창명한 수운 최제우 대신사께서 탄생한 지 199주년이 되는 기쁜 날을 맞아 동학교육수련원에서 개최한다. 경주는 동학의 발상지이자 산실이다. 동학을 창명한 수운 최제우 대신사(1824~1864)께서는 1824년 10월 28일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에서 탄생했다. 동학의 기초를 세운 해월 최시형 신사(1827~1898)께서는 1827년 3월 21일 경주시 동촌 황오리에서 탄생했다. 천도교중앙총부는 동학의 성지인 경주에서 동학이 추구하는 가치, 동학이 추구하는 사회를 같이 꿈꾸고 나누고자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했다. 행사는 당일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동학어린이백일장 본선을 시작으로 전통연희 예인열전 줄타기, 풍물놀이, 개막식 및 동학어린이백일장,숏폼 영상 시상식, 스트림챔버와 남성4중창, 국악전자유랑단의 공연 순으로 진행된다. 이외 각종 부대프로그램으로 매직버블벌룬쇼, 전통놀이 체험하기, 캐리커쳐 등을 운영한다. 숏폼 영상 콘테스트와 동학백일장은 10월 24일까지 접수하며 행사 당일 사진콘테스트도 진행한다. 천도교는 코로나19로 움츠려 있었던 시민들이 풍성한 체험을 하며, 야외에서 마음껏 체험할 수 있는 ‘2023 경주동학문화제’에 많은 방문 바란다고 밝혔다. 또한 이날 11시 30분 수운 대신사 생가터에서는 수운 대신사, 대사모 숭모비 제막식도 함께 진행된다. 교인과 시민들의 많은 참여와 관심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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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동학을 소재로 펼친 지역 간 문화예술교류논산지역의 동학농민혁명사를 소재로 한 마당극 ‘소토산 새 하늘’이 경남 남해에서 공연되어 화제입니다. 지난 10월 21일(토) 오후에 남해문화센터에서 펼쳐진 논산동학농민혁명 마당극 ‘소토산 새 하늘’ 공연은 남해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이사장 김환용)의 초청으로 논산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회장 김선덕)가 주최했습니다. 논산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윤여진 부회장이 극본을 쓰고 ‘극단 처용’ 장용석 대표가 연출한 이 마당극은 2020년 ‘제1회 논산시민 평화대동 한마당’에서의 첫 공연을 시작으로 2021년과 2022년 ‘논산동학 한마당’ 공연, 2023년 논산시민연극 ‘나도 배우다’ 프로그램 2회 공연을 합해 총 5회 공연한 작품입니다. ‘소토산 새 하늘’은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 2차 기포 당시에 전국의 수만 동학농민군들이 논산 소토산에 집결하여 단일대오를 갖추고 공주 우금치로 출정했다는 사실(史實)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지역 근대사의 한 장면을 극화하여, 고난 속에 피어난 민본 민주주의의 태동을 널리 알리며 지역민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고 있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전문 연극인들과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공연으로 민족예술을 생활예술 차원에서 구현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이번 공연에는 남해 예술인들도 배우로 출연해 남해지역 동학농민군의 활약상을 보여줘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공연에 처음 참여한 논산민예총 김병진 님은 “이번 공연을 통해 불과 129년 전에 우리 민족이 동학의 평화대동 정신으로 하나 되어 거대한 외세와 봉건에 치열하게 맞서 싸웠다는 것에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동학 정신이 일제치하 독립운동,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 촛불혁명으로 이어지며 우리 민족의 가슴에 살아 있다는 것을 이번 연극을 통해 확인하였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남해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와 천도교 남해여성회의 회원님들이 이 공연을 관람하며 성원해주셔서 더욱 뜻이 깊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시민이 지역 간 예술교류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당극을 다 보시고 눈시울을 붉히며 감격하시던 천도교 남해여성회원님들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2023 남해 동학문화예술제’의 일환으로 논산과 남해를 여러 번 오가며 이뤄낸 이번 논산동학농민혁명 마당극 공연은 동학과 천도교 사상을 소재로 펼친 지역간 예술교류의 모범으로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글_ 윤여진(논산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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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수운문화제 후기인내천 서·예 명인모심전은 2019년에 싹트기 시작했다. 2019년 3·1운동100주년 기념 한국 서예 정예작가전을 기획했다. 3·1운동 하면 천도교와 손병희선생을 빼놓을 수 없다. 천도교인으로서 은근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터에 천도교 이정희 교령을 찾았다. 이러한 취지의 행사를 하는데 천도교가 후원을 좀 해 주시면 주최를 천도교, 주관을 정예작가 협회(회장 염정모)로 행사를 하겠노라 했더니 500만원 후원이 이뤄져서 행사가 성사되었다(101명 참여). 지금도 기록된 영상이 생생하다. 다음해 천도교(교령 송범두)에서 제 1,2회 인내천서예문인화명인모심전이 이뤄졌고 (교령 박상종)3,4회를 맞이 했다. 이렇게 범 서·화단 작가들을 초대해서 하는 큰 행사는 4대 종단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문화, 예술면에서 선두주자가 천도교라 할 수 있다. 종교행사이다 보니 한계가 있게 마련이지만 어느 정도 극복한 상태다. 전국 서예· 문인화 유명작가들 중 1회 182명, 2회 184명, 3회 220명, 4회 137명 초대되었다. 초대된 작가는 전부 제자들을 거느린 지도자급이다. 4회이다 보니 어느 정도 홍보된 상태다. ‘꼭 이어져야 할 전시’라고 말하는 작가가 있으니 성공 아니겠는가? 초대작가란 서예대전에서 입선1점 특선3점 합 10점이 되어야 초대작가가 된다. 처음 입선하기까지 5번을 냈느니, 7번 떨어졌느니…. 입선 특선하고도 다음 해는 낙선되는 경우도 있다. 어느 작가는 1점 남겨놓고 5년을 가는 경우도 보았다. 이리 초대작가가 어려운 것이다. 천도교인 아닌 작가들 이 동경대전을 탐독하고 글감을 골라 작품 한다는 것은 교화되고 있다는 증거다. 천도교를 알리고 가까이하게 만드는 것, 동경대전을 탐독하게 만드는 교화사업도 이런 교화사업이 없다. 서화단의 활성화와 창작 의욕을 북돋우고 작가들에게 큰 후원이 된다. 타 종교단체 기독교 원불교에서 이런 행사를 한다고 하면 천도교인 내가 원불교, 기독교 경전을 탐독하고 작품 하려고 문장을 찾는다고 생각하 면참 아이러니 할 듯하다. 이런 행사를 천도교가 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고 큰일인가? 작가들이 천도교를 이해하고 좀 더 가까이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문화보국이란 관점에서 보면 대단히 중요하고 의미가 큰 사업이다. 이러한 포덕이 어디 있겠는가 지속 발전되어야 한다. 미술인회 한마당전 미술인회원전은 33회전으로 수운 문화제 덕분으로 처음으로 인사동에서 하는 전시였다. 32년간 전시를 했으나 수운회관에서 하다 보니 미술인회가 있다는 것조차 일반인이 전혀 모르고 있다. 이번에 세상을 다시 태어난 느낌이다. 관람객들이 작품 수준이 높고 좋다고 말한다. 현대 사회는 돈과 연관되어 있듯 돈들여 하면 반응이 있게 마련이고 효과도 있다. 돈 안들이고 궁색하게 하면 흉내만 내게 될 뿐이다. 33년간 교인들끼리의 행사였고 홍보와 교화라는 측면에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헛되었다. 사람들이 지나는 길목에 음식점이 있어야 되듯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천도교 피켓을 들어야 한다. 이번에 청년작가 대상이 4번째이다. 매 회마다 상금 300만원은 교인 중 익명 기부하시는 분의 후원이다. 참으 로 미담이다. 미래세대 어린이 작품전 에 시상도 150여만원이 들어간다. 천 도교의 꿈나무 육성이다. 이렇게 미술 인회 전시는 의미가 크다. 3,4년간 미술인회 예산은 20년 전으로 돌려졌다. 이것은 시정되어야 한다. 근래 예산이 반 이상으로 줄어든 단체는 미술인회 뿐이다. 기현상도 이런 불합리 도 없는 것이다. 깎인 예산은 회복되어야 한다. 국가, 사회, 종교의 핵심은 문화와 예술이다. 수운문화제로 발돋음 하였으니 지속되고 정상으로 뒷 받침 될 것으로 기대해 본다 글_운암 변종제 미술인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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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리 엄마 꽃며칠 전 우연히 추석 특집 ‘신동 가요제’라는 프로를 보게 되었다. 그중에 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 참가자가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인 트로트 신동 김태웅이다. 겨우 8세인 어린이가 ‘엄마 꽃’이란 노래를 나이에 걸맞지 않게 감정을 실어 잘 표현해서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아들딸을 키우시느라 버려야만 했던 것들, 후회한 점 없으시다는 나밖에 모를 사람 꽃이 피었네. 꽃이 피었네. 우리 엄마 젊었을 적에 눈물이 나요. 눈물이 나요. 나 땜에 변한 것 같아 그래도 온 세상 제일 예쁘다. 엄마 엄마 우리 엄마 꽃” 노래를 듣는 내내 가사 구절구절이 가슴을 후벼 파 나도 모르게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인터뷰에서 “엄마가 밤늦게까지 일하느라 몸이 아파서 의료기기를 선물로 받아 꼭 안마해드리고 싶다.”라고 말해 더더욱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한창 재롱 피울 개구쟁이 8살짜리 어린아이가 어떻게 저런 속 깊은 마음을 보여줄 수 있을까? 세상은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지만, 어쩌면 저런 효심이 가득한 어린아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본다. 내 기억에 우리 세대의 자식은 살면서 늘 굽이굽이 어머니의 근심이고 걱정거리였다. 자식 키우느라 고생하시는 동안 빠지는 머리카락과 늘어나는 주름살, 허약해져 가는 몸, 말로는 돈 벌면 꼭 부모님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세상일에 시달리다 보니 이런저런 핑계로 또다시 부모 보살핌은 늘 뒷전으로 밀려 버렸다. 이제 철들고 보니 내 곁에는 부모님이 떠나시고 안 계신다.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나는 태웅이처럼 부모 마음을 이해하는 착한 아들이 될 수 있을까? 엄마는 늘 물에 말은 식은 밥, 먹다 남은 생선 뼈, 뭉개진 포도알, 깎고 남은 사과 꼬투리, 이런 음식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으며 오로지 자식을 위해 헌신하신 어머니의 마음을 어찌 그리도 몰랐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리석고 바보같이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가슴이 미어지게 아프다. 반면에 따뜻한 추억도 떠오른다. “어릴 적 어미 품, 배를 어루만지시던 약보다 따뜻한 그 손길이 생각난다.” 가수 송대관과 전영랑이 불렀던 ‘약손’의 노래 가사다.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추억일 거다. 동동 구를 정도로 갑자기 배가 아팠는데, 엄마가 손으로 배를 어루만져주면 감쪽같이 배앓이가 멈춰 버린다. 그래서 엄마 손은 약손이라 했다. 엄마의 따뜻한 온기가 담긴 약손은 어느 진통제보다 효과가 좋았다. 아마도 엄마의 따뜻한 사랑으로 불안과 긴장이 풀려 심리적 안정을 되찾아 위와 장의 경련이 수그러든 게 아닌가 생각한다. 커오면서 우리는 나만 생각했지, 누구보다 헌신적인 사랑을 주었던 어머니의 건강에는 관심을 두지 못했다. 어머니가 평생 가족을 위해 희생하시다 병든 줄도 모르고, 홀로 이 긴 시간 그 고통을 참고 있는 줄 몰랐었다. 이런 불효막심한 자식이 어디 있단 말인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미리 알았으면 조기 치료를 통해 완치도 가능했을 텐데….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이 평범한 말이 이제는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나도 겪었지만, 주위에 어르신의 오랜 투병 생활로 힘들어하는 가정을 지켜봤다. 본인은 물론 가족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극진하게 환자를 돌보던 가족도 병간호가 길어지면 지치게 마련이다. 화목했던 가정이라도 해도 오랜 병치레에 당할 장사는 없다. 마지못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요양병원으로 부모님을 모시게 된다. ‘긴 병에 효자 없다’라는 옛말은 현재 진행형이다. 간혹 나이 드신 분들은 ‘자다가 편히 죽고 싶다’라는 말을 한다. 잠깐 스쳐 지나가는 말이 아니라 진심일 거란 생각이 든다. 나도 환갑을 지나고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 적이 있다. “늙으면 무엇보다 가족들에게 부담 주지 말아야지.”. 남들보다 덩치가 큰 나를 돌보기 위해 힘들어하는 가족의 모습을 생각하니 상상만 해도 끔찍스럽다. 어머니 나이를 살아보니 내 어머니도 그러셨을 것 같다. 특히 나는 외가 식구들이 대부분 당뇨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셔서 당뇨 가족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께서도 오랜 당뇨병으로 고생하셨고, 그 합병증으로 5년간 병마에 시달리다 환원하셨다. 그래서 식생활 습관 개선과 운동밖에 도리가 없다. 육식을 피하고 소식하는 습관을 기르고, 하루에 만 보씩 걷기로 목표를 잡았다. 새벽 기도식 후 걷기 운동을 시작한 지 벌써 넉 달째 접어들었다. 비가 와도 우산 쓰고 걸었고,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걷고 또 걸었다. 자기 몸은 스스로 관리해야 한다. 예전에 신문 기사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요즘 부모들은 어차피 자식에게 죽을 팔자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늘그막에 가진 재산을 진작 물려주지 않다가는 맞아 죽을 판이고, 일찌감치 다 줬다가는 굶어 죽을 지경이다. 그나마 노후를 위해 얼마간의 재산을 갖고 있다가는 졸려 죽는다고 한다.’ 예로부터 효(孝)에 관한 우리의 정서는 각별하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니 그 풍조 또한 바뀌는 모양이다. 부모 돌봄에는 관심이 없고 상속재산에만 눈독을 들여 법정 다툼까지 벌이는 비정한 자식들은 그냥 두고 보자니, 참 세상이 말세다. 아는 지인의 일이다. 평소 어머니를 제대로 모시지도 않았던 사람이 돌아가시고 나니, 갑자기 세상에 둘도 없는 효자가 돼버렸다. 제단도 꽃도 아끼지 말고 제일 거창하고 아름답게 꾸며달라고 부탁한다. 돌아가신 후에는 아무 소용이 없는데 낳아준 부모라고 어머니와의 마지막 이별은 슬픈 모양이다. 마지막 가는 길만은 편안하고 안락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겠지. 효자 트롯 신동 김태웅 어린이의 효심에 커다란 응원의 박수를 보내면서 부모님의 사랑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좋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엄마 꽃’ 노래를 들으면서 어머니의 고마움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글_용암 주용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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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살았을 때 죽자글 제목이 참 요상하다. 이런 제목은 낚싯밥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어쩌랴. 나는 현실에서건 글에서건 낚시를 모른다. 물살이(‘물고기’의 생명어)의 존엄성과 존중을 대대적으로 펼칠 때라고 여기는 사람이다. 우리 경전에 이런 말이 있다. 이 말을 듣고(읽고) 나는 살아서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영(灵)의 적극적인 표현은 형상이 있는 것이고 소극적인 섭리는 형상이 없는 것이다”이다. 존재의 본령은 형상이 없다. 형상 있음은 한시적이다. 정해진 역할을 위해 형상을 띈 것이다. 잠수부가 물에 들 때 잠수복을 입는 것과 같다. 일이 끝나면 잠수복을 벗는다. 우주인이 우주에서 유영할 때 입는 우주복을 지구에 귀환해서도 계속 입고 다닌다면 미친놈(년) 소리를 듣는다. 죽고 사는 건 그런 것이다. 우리는 잠시 오욕칠정과 희노애락이라는 지구복은 입고 지구에 머무는 존재다. 자. 본론으로 들어가자. 엊그제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동행한 동료와 “살아서 죽자”라고 의기투합했다. 생전 장례식을 치르자고 했다. 우리가 태어나고 죽는 것을 애벌레가 나방이 되고 나방이 번데기가 되는 변환에 비하면 이해가 쉽다. 태어날 때를 보자. 숨을 어디로 쉬는가? 엄마 탯줄로 쉰다. 밥도 그렇다. 태어나면 어떻게 되는가? 한순간에 변한다. 숨은 허파로 쉬고 밥(젖)은 입으로 먹는다. 혁명적인 변화다.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 안다. 누구나 다 안다. 알면서 모른 척한다. 모르면서도 아는 척한다. 이럴 때는 다중우주론이 적격이다. 상상이 가능한 모든 형태로 우주가 존재하듯이 사람이 죽으면 상상이 가능한 모든 형태로 사후세계는 펼쳐진다. 내 말이 믿기지 않는가? 그러면 죽어보라. 바로 알 수 있다. 우리가 생전 장례식을 말한 건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첫째, 세상천지에 어떻게 집에 찾아온 손님에게 이런 식으로 쓰레기 같은 국적도 알 수 없는 음식을 내놓는단 말인가? 식어 빠진 싸구려 돼지비계 몇 쪽을 그것도 일회용 접시에 담아 내놓는가? 한 사람 일어설 때마다 쓰레기가 한 보따리다. 분리수거도 안 된 채 쓰레기통으로 간다. 그토록 생태적으로 살았고, 유기농 포도 농사를 알뜰히도 짓던 그 후배는 절대 님들에게 이런 식으로 허접한 음식을 일회용품 식기로 대접할 사람이 아니다. 장례식장이면은 으레 그래도 되는가? 생전 장례식을 한다면야 완전 유기농으로 플라스틱과 비닐이나 일회용품은 100미터 이내 접근 금지! 그리고 죽는 사람과 죽음을 소재로 질펀하게 잡담을 늘어놓는 장례식을 치를 수 있다. 둘째가 중요하다. 애벌레가 나방이 되듯, 생전 장례식을 준비하면서 삶의 전환을 완성한다는 것이다. 신성의(영적) 존재로 전환한다. 나는 지인의 생전 장례식을 이렇게 치른 적이 있다. 그러니 우리, 살아서 죽자. 목암 전희식('밥은 하늘입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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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공지능 시대에 천도교는 어떻게 해야 할까지난 6월 인터넷 주간조선에서 “300명 교인 앉혀 놓고 설교한 챗GPT 목사”라는 기사가 실렸는데 독일의 어느 교회에서 챗GPT(대화형 인공지능 챗봇)가 설교를 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대형스크린에 아바타가 나타나 설교, 기도 등 40분간 예배를 이끌었다고 하니 앞으로 이러한 인공지능 교회가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우리 천도교단에서도 전문가들과 교단내의 합의를 거쳐 AI 활용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 먼저 종교와 과학을 천도교식으로 어떻게 해석해야하는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과거 일제 강점기 시절 천도교는 국내 최대 종단으로서 종교, 사회, 문화,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선도적 역할을 해 왔다. 특히 과학 분야에서도 과거 종교들처럼 우주와 만물을 추상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과학지식을 기반으로 새로운 인간관과 우주관을 제시하였다. 과학기술문명은 인간을 통해 구현되기에, 인간이야말로 새 시대, 새 문명을 열어가는 원동력으로서 종교와 과학은 인간을 중심으로 구성된다고 보았으며, 구체적인 과학지식을 종교적으로 성찰하고 소화하였다. 우리는 이렇게 과학을 통하여 교단이 발전한 훌륭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은 대한민국 경제에 새로운 동력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자동화와 최적화를 통해 생산성과 효율성이 향상되면서, 기업들이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더불어 AI 기술의 도입은 의료, 교육, 보안 등 다양한 산업에 혁신적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이 기사는 필자가 쳇GPT에 “인공지능의 미래”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답을 해준 것이다. 인공지능(AI)은 과학에서 출발하여 전산학(Computer Science)의 학문분야로서 인간지능과 연결된 인지문제와 해결책을 제시한다.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차세대 기술들이 주목을 받고 있는 가운데 인공지능(AI) 기술은 가장 혁신적인 기술로, 산업뿐 아니라 인간의 삶 자체를 변화시키는 핵심 기술로 등장하고 있으며, AI 기술의 확보와 활용 능력이 곧 기업과 국가, 개인의 경쟁력을 좌우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AI를 구현하려면 여러 가지 융합기술이 필요한데 자연어 처리기술(Natural language processing)과 인공신경망(Artificial Neural Network) 기술이 지금의 AI 시대를 가져오게 한 핵심 기술로서 두뇌 신경세포인 뉴런(neuron)과 뉴런 간의 신호 연결 지점인 시냅스(Synapse)를 프로그래밍으로 구현한 것이다. 약 3천억개의 단어와 5조개의 문서를 스스로 학습한 챗GPT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데 쳇GPT가 출현한 지 2달 만에 사용자가 1억명이 넘어선 실정이다. 이제 누구든 쉽게 챗GPT를 실험해 볼 수 있고, 생활 곳곳에 적용하여 사용할 수 있다. 슈퍼 AI가 구현되면 인류가 그동안 풀지 못했던 기아, 기후변화, 우주개발 등 난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반면에 이에 대한 사전 준비와 대응 조치가 없을 경우 인류가 AI 기계를 제어하지 못하고 오히려 정복당해 노예가 되는 미래가 점쳐지기도 한다. 그래서 AI는 동전의 양면처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인류에 도움이 될 수도 있고, 해를 끼칠 수도 있다. 이제는 종교인들 스스로 AI시대의 변화에 주목하고 비판적으로 검증하여 능동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 세계 여려 종교단체들에서도 AI를 활용하기 시작하고 있다. 천도교도 이러한 AI 중요성을 인식하고 “천도교 AI 위원회”를 만들어 전문가의 의견과 함께 교단내의 합의를 통하여 천도교 미래 전략을 세웠으면 한다. 천도교단내에서 AI활용 가능 예를 들어보자면 천도교단의 가장 큰 문제인 “교인수가 적은 문제”를 AI를 통해 해결책을 찾아본다든지, 교리, 교사, 경전의 내용들을 AI Big Data에 넣어서 필요할 경우 문제 해결을 요청할 수 있다. 신앙상담도 가능할 것이고, 또한 전국의 교구에 시일설교자 수가 부족한 문제 역시 AI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의암성사님께서 “天道敎는 天道敎人의 私有物이 아니요 世界人類의 公有物이니라”라고 하셨는데, 사회와 소통하면서 AI를 적극 활용하고 연구하여 시대를 선도하고 중흥하는 천도교가 되기를 바란다. 울산시교구 이암 정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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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부모없는 자식이 어디있으랴지난 5월 유네스코 집행위원회에서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의 등재가 확정되었다. 다소 아쉬운 점이 있지만 이번에 동학농민혁명 관련 기록물 총 185점이 선정되었다. 문화재청은 “동학농민혁명은 부패한 지도층에 저항하고 외세의 침략에 반대하며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민중이 봉기한 사건으로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인간의 권리와 평등, 식민주의에 대한 반대 등을 다양한 시각에서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기록물”이라고 등재의 의미를 밝혔다. 유네스코는 동학농민혁명을 조선 백성들이 주체가 되어 자유, 평등,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기 위해 노력했던 세계사적 중요성을 가진 사건이라고 보았다. 특히 집강소를 민관 거버넌스의 원형이라고 규정하며 19세기 어디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민주주의 실험이라고 주목했다. 이는 동학의 시천주 사상에 기반한 보국안민과 광제창생을 위한 ‘다시개벽’의 역사를 세계가 인정했음을 의미한다. 이번 등재로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을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이 또 한 번 달라졌다. 2004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정은 1907년 대한제국 정부가 “최제우와 최시형의 죄안 삭제”로 동학을 공인한 것에 이어 대한민국 정부가 동학혁명군을 우리 역사의 주역으로 품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어 2019년 정부는 5월 11일을 “동학농민혁명 기념일”로 확정하고 국가기념일로 삼았다. 이로써 동학농민혁명에 관한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국가가 공식화했다. 이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를 독립유공자로 추서받는 일이 남았다. 이번 등재는 동학농민혁명이 국내를 넘어 세계사적 사건으로 평가받았음을 의미한다. 최근 등재 기념식과 학술대회도 개최되었고, 기록물을 소장하고 있는 지자체에서는 발빠르게 전시회를 열어 동학농민혁명의 참된 의미를 찾고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잼버리 참가자들도 기록물 전시회를 다녀갔다고 할 정도로 관심이 뜨거웠다. 부모 없는 자식이 없듯이 모든 역사적 사실과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 동학농민혁명도 마찬가지다. 동학농민혁명의 근원은 동학이다. 최제우는 안으로는 폭정과 혼란, 밖으로는 서양의 침략 속에서 방황하던 민초들의 살 길을 열어주기 위해 20여 년간 고행의 구도 끝에 “시천주(侍天主)”를 핵심 교의로 하는 동학을 창도했다. 수운은 자신의 노비 2명을 해방시킴으로써 시천주의 ‘다시개벽’의 역사를 열었다. “한울님은 부엌에서 감응한다.”, “저 새소리도 한울님의 소리이다”, “아이 치는 것은 한울님을 치는 것이다”라고 말한 해월의 메시지는 수운의 가르침을 계승해 시천주 인간의 승화를 더욱 구체화시켰다. 해월의 노력으로 동학교단은 수십만의 교도를 지닌 전국적인 교단으로 성장하였다. 1892~3년의 교조신원운동에서 동학교단은 수운의 신원과 함께 국정 쇄신 및 외세 배격을 요구했으나 조정에서는 이단이라고 탄압했다. 이에 동학도와 민초들은 인간의 권리와 평등를 지키고 식민주의에 맞서고자 동학농민혁명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번 등재를 위해 노력한 여러 단체에 깊은 감사를 보낸다. 그러나 기록물에 동학의 경전인 동경대전과 용담유사가 빠진 것은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부모 없는 자식이 없듯이 동학 없는 동학농민혁명은 있을 수 없다. 동학농민혁명이 세계사적 사건으로 자리매김하고 세계인이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근대 문명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인 동학의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사유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이번 등재를 세계 속에 가치롭게 뿌리내리는 길이다. 이를 바로잡은 일에 교단의 고군분투를 기대한다. 글_성강현 / 동의대학교 역사인문교양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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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병자호란의 영웅 최진립 장군수운 최제우 대신사는 글을 남겼다. “우리 선조 험천 땅에 공덕비를 높이 세워 만고유전 하여보세. 송백 같은 이내 절개 금석으로 세울 줄을 세상 사람 뉘가 알꼬.”, “선조의 충의와 절개는 용산에 남아 있네. 해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의 우리 임금님 성덕을 다시 돌아보네.” 수운 최제우 대신사가 언급한 ‘선조’는 잠와 최진립 장군으로 수운 최제우 대신사의 7대조이다. ‘용산’은 경주 내남면 이조리에 있는 용산서원을 말한다. 유림에서는 최진립 장군의 충절과 학문을 기려 용산서원을 창건하여 공을 제향하고 후학을 가르쳤다. 숙종 37년에 임금이 친히 ‘숭렬사우崇烈祠宇’로 글을 내린 사액 사당이다. 당시 무신으로 사액 사당을 받은 이는 이순신과 김시민 장군뿐일 정도로 드문 일이었다. 용산서원 입구에 공의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정무공貞武公 최진립(崔震立, 1568~1636) 장군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최진립 장군은 신라시대 고운 최치원 선생의 17세 후손이며 사성공 최예의 6세 후손이다. 1568년 경주 현곡면 하구리 구미산 아래에서 참판공 최신보와 평해황씨 사이에서 셋째로 태어나 자랐다. 1592년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4월 21일 경주성이 함락됐다. 당시 25세였던 장군은 아우 최계종, 당숙 최신린, 최봉천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그해 5월 27일 김호, 손엽, 권사악, 이눌 등의 의병장들과 힘을 합해 계연(김유신 장군 묘 아래 경주 서천 일원)에서 왜적을 무찔렀다. 6월 2일에는 언양에서 경주로 쳐들어오는 왜적을 김기 의병장과 함께 열박재(충의당과 울주군 두서면의 중간)에서 가로막았다. 7월 27일에는 경주 손엽, 권복시, 권사민 의병장들과 함께 영천성 수복 전투에도 참전해 공을 세웠다. 정유재란 때는 결사대 100여 명을 이끌고 울산 서생포에 주둔 중인 적을 기습하여 전과를 올렸다. 장군은 이와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1605년(선조 38) 선무원종공신 2등을 받았고, 훈련부정, 도총도부사, 마량진 첨사, 경원 부사 등을 역임했다. 1636년 12월 13일, 병자호란을 일으킨 청나라 군대는 며칠 지나지도 않은 12월 16일에 인조가 피신한 남한산성까지 포위했다. 최진립 장군은 69세라는 많은 나이에도 군사를 일으켜 남한산성을 향해 진격했다. 그가 전장으로 달려가기 직전, 충청감사 정세규가 ‘늙어 전장에 나가기 마땅치 않다’고 만류했지만 최진립 장군은 “내가 늙어 싸워서 이길 수 없더라도 한번 죽어 나라에 보답할 수는 있다”고 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1637년 1월 2일, 청나라 장수 양고리(楊古利·양굴리)가 이끄는 적과 대치했다. 열세인 상황에서 최진립, 나성 현감 김홍익, 남포 현감 이경징, 금정 찰방 이상재 등은 포기하지 않았다. 훈련이 부족하고 전투력이 미약한 소수 부대지만 잘 통솔하여 적과 대등하게 싸웠고, 하루종일 10여 차례 전투가 벌어졌다. 이후, 아군은 탄약과 화살이 바닥나고 군사도 이미 반이나 잃었다. 최진립 장군은 공주영장으로 군사를 이끌고 용인 험천 전투에 참여하여 용전하다가 장렬히 순절했다. 다음 해에 시체를 수습했는데 ‘그 모양이 살아 있는 듯하고 화살과 총알이 고슴도치처럼 박혀 있었다’ 기록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이름을 떨쳤던 장수 중 1636년 병자호란 때까지 생존한 이는 거의 없었다. 일본군 선봉장으로 참전했다가 조선에 귀화한 김충선이 당시 63세의 고령으로 병자호란에 참전한 사실이 두드러지는 정도다. 그런 만큼 불과 25세의 나이로 임진왜란에 의병으로 참전했던 최진립 장군의 69세 병자호란 참전과 순절은 특별한 이력으로 평가되고 있다. 최진립 장군 묘소는 나라에서 내린 명당 터에 장지를 마련하여 장례를 치르고, 병조판서에 추증하고 정무貞武라는 시호를 내렸으며 청백리에 녹선하였다. 고향 내남면 이조리에 정려비각을 세워 충절을 만대에 전하도록 하였다. 최진립 장군 묘소 뒤편에는 3년 동안 시묘를 살았던 셋째아들 현감공 최동량의 묘소가 있다.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훈을 실천하며,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보내고, 해방 후 대구대학을 설립하여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경주 최부자의 현조이다.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99호인 충의당은 경주 최씨 종가로 최진립 장군이 살았던 집이다. 본래 당호는 흠흠당欽欽堂이었는데, 1760년 무렵 건물을 고쳐 지으면서 집 이름을 충의당으로 바꾸었다. 충의당 일대는 ‘충의 공원’으로 조성하였고, 장군의 기마동상과 유물관인 충의관이 건립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취재진이 충의당 종택을 방문한 날 종손을 만나 집안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중에는 수운 최제우 대신사와 한씨 사모님 이야기도 있었다. 사당인 충렬사와 닫혀있던 최진립 장군 위패도 열어서 보여주셨다. 사당 들어가는 입구에 200년 된 매실나무가 세월의 인고를 견디며 잘 자라고 있다. 기나긴 겨울의 혹한을 이겨내고 꽃 활짝 피는 날 다시 방문하고 싶다. 수운 최제우 대신사가 탄신하신 비슷한 시기에 심어졌으리라 여겨진다. 동학 3대 교주 의암 손병희는 마지막 경주 최부자인 최준을 나이로는 22살이나 많았지만 늘 존중했다고 한다. 최준에게 수시로 “동학은 경주 최씨와 최부자 가문의 가르침”이라며 예우했다. 경주 최씨, 그중 최진립 장군으로 시작되는 가계도를 이해하고 있었기에 이런 표현을 했을 것이다. 최진립 장군 묘소 아래 사패지賜牌地에 울산과학기술원(UNIST)이 건립되니 어찌 우연이라 하겠는가! 동학을 창명한 수운 최제우 대신사가 최진립 장군의 7세손이니 공의 위대한 정신은 자손 대대로 이어졌다. 글 조성갑 사진 최인경 (탐방 팁) 용산서원 : 경북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 659 충의당과 충의공원 : 경북 경주시 내남면 충의당길 15 최진립 장군 정려비 : 경북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 513-1 최진립 장군 묘소 :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반연리 산 157 (울산과학기술원 교수아파트 입구) * 이 글은 천도교중앙총부 동학혁명정신선양사업단에서 발행한 매거진 <동학집강소>에 게재된 글을 재구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