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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학대학원 상주지역 동학유적지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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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학대학원 상주지역 동학유적지 답사

문경 초곡, 상주 왕실촌과 전성촌, 상주관아 터 등

 

종학대학원01.jpg
동학권이 점령한 상주 관아터(현 향청)

종학대학원(원장 이상면)은 4월 29일 오전 8시 서울, 부산(분원장 송봉구) 등에서 각자 출발하여 식당 (두락: 상주시 식산로 112)에서 만나 먼저 점심식사를 하였다. 부산분원은 올라오는 길에 문경 새재를 답사한 상태였다. 답사는 성주현 교수가 동학혁명의 현장인 ①상주 관아터(향청), ②해월신사 교조신원운동 전개 당시 머물렀던 왕실촌 ③그리고 동학하면 괴질도 비껴간다는 신화를 만든 전성촌 등을 안내하였다.

이번 현장체험에는 서울과 부산지역 원생과 풍기의 금주연 동덕, 대구의 이승호 동덕 등 30명이 넘게 참가하여 높은 참가율을 보였다. 상주는 대신사뿐만 아니라 대신사의 박씨사모님과 가족들 그리고 해월신사의 흔적이 여러 군데 있다. 상주 동학 천도교와 동학 혁명에 대해 간략히 소개한다.

 

대신사 유적지: 화령, 낙동

상주는 대신사께서 체포되어 압송 도중 상주 화령 (12.15)에서, 또 상주 낙동(1.4)에서 각각 하루를 묵었 다. 경주 용담에서 대신사가 체포되신 때가 계해년(포덕 4년, 1863) 12월 10일이다. 서울로 압송되던 길은 경주-영천-대구-선산-상주 낙동-상주 화령-보은-직 산-오산을 거쳐 과천(12.29)까지 갔다가, 철종이 사망 하여 국상이 나자 과천-용인-충주-요성-유곡-상주 낙동-선산을 거쳐 대구(1.13)까지 다시 압송되었다.

그리고 고문과 재판 끝에 갑자년(1864년) 3월 10일 순도하셨다.

동관음

포덕 8년(1867) 2월에 신사께서 울진군 죽변리에서 예천군 수산리로 옮겨 살게 되고, 박씨 사모님을 비롯한 대신사 가족은 상주 동관음의 육씨 집안에서 은신하였다. 화남면 동관리 (동관2리 마을회관: 경북 상주시 화남면 동관3길 84)

전성촌

포덕 26년(1885) 9월, 신사께서는 가족을 거느리고 상주 전성촌으로 옮겨온다. 여름옷을 입은 신사의 가족은 가재도구도 양식도 없었다. 6월 관졸들이 보은 장내를 급습하였을 때 급히 피신한 때문이었다. 포덕 27년(1886) 4월에 신사께서 제자들에게 일러 말씀하기를 “금년에는 악질(콜레라)이 크게 유행하리니 도인들은 기도에 힘쓰는 동시에 특히 청결을 주로 하라.” 하라 하셨다. 이 해 6월에 과연 괴질(콜레라)이 크 게 유행하여, 수만 명이 죽었고 서울에서만 만 명 넘는 사망자가 보고되었다. 그러나 동학하는 도가는 무사하였을 뿐 아니라, 신사께서 사시는 마을 40여 호에도 병에 걸린 자 한 사람도 없었으므로 충청, 경기, 전라, 경상 등에서 소문을 듣고 신사를 찾아 도에 드는 자 그 수를 헤일 수 없었다. 상주시 화서면 봉촌리 전성촌 마을회관: 경북 상주시 화서면 봉촌1길 65-4

왕실촌: 효곡로 42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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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신사가 머물렀던 곳으로 추정되는 상주 왕실촌 거주터

이곳은 해월신사께서 교조신원운동을 지도한 현장이다. 해월신사는 충청감사의 지목을 피해 포덕 33 년(1892) 5월 경 상주 왕실로 피신하여, 이듬해 3월 초순까지 머물렀다.

상주시 화서면 하송리 높은터, 상주 은척원, 청계사

경북 상주시 화서면 하송3길 213. 동학혁명 이후 포덕 37년(1896) 3월초, 지목이 심하여 신사께서는 상주 높은터로 거처를 옮겼다. 3월에 호남 도인 이병 춘이 신사의 거처를 찾아 사방 다니다가, 하루는 청계 사에서 자게 되었는데, 꿈에 신사를 뵙고 물었더니 신사께서 ‘근처에 있노라’ 하므로 꿈을 깨어, 화전민들이 모여 사는 높은터에서 신사를 만났다. 이병춘의꿈 이야기를 듣고, 신사께서 “네 힘써 호남 일을 보라” 하고 도의 장래를 말씀하셨다. 이 무렵 신사께서 각지의 두령을 임명할 때첩장(帖狀)에 해월 장(海月章)을 사용 하였다.

4월에서 6월 사이 충주, 음성, 청주로 거처를 옮겼 다가, 8월에 신사께서 다시 상주 은척원(銀尺院)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때 호남도인 손병규, 홍계관, 최익서 등이 찾아와서 포(包)를 설치할 뜻을 고하였다. 이에 신사께서 말씀하기를 “이 시기에 포(包)를 설하는 것은 불을 다시 불어 일으킴과 다름이 없으니, 한갓 인심(人心)을 어지럽게 할 뿐이라” 하였다. 황해도 도인 방찬두가 방문하였다.

 

상주지역의 동학혁명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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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왕실촌 마을

1890년대 상주에서 동학이 가장 왕성했던 곳은 화동면 덕곡이었다. 신광서, 정기복 등이 접주였고, 화남면의 강선보(선희), 모동면의 남진갑, 이화춘, 모서면의 김현영, 김현동, 김현양 삼형제, 구팔선, 서치 대, 정항여, 조재하 등도 접주였다. 이관영은 상공대 접주로 임명되었다.

포덕 35년(1894) 9월 22일(양10. 22) 상주관아를 점령하였고, 9월 28일 일본군과 민보군에 패하여 많은 동학군이 학살되었다. 2008년 10월 상주동학농 민혁명기념사업회에서 무양동 북천교 북천공원에 기념비를 세웠다.

동학혁명과 관련하여 둘러볼 곳은 상주관아(남성 동), 임곡리(동학군 근거지), 낙동면의 일본군 병참소 (낙동파출소), 모서면의 김현영 집터, 동학군 처형터 로는 화남면의 광주원터, 남성동의 남사정터, 모동면의 중모장터, 화서면의 화령장터 등이 있다.

 

천도교 상주교구

황우원(中菴,1854~1929)이 1893년 입도하여 청계 동에서 수련을 하며 해월신사를 모셨다. 그는 편의장 으로 동학혁명에 참여하여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천도교 상주교구장을 역임하며 모서면의 전교실을 낙양리로 옮겼다. 황신오(鎭菴, 1898년생)는 1905년 입교하여 순원포 선정(1935), 상주종리원장(1937), 종의원(1963), 선도사(1967) 등을 역임했다. 해방 이전 상주 옥산(공성면) 지역은 도촌(道村)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이곳에서 묵암 신용구가 포덕활동을 하였다.

황우원의 손자 황국환(靑菴, 1922년생)은 동학회 상주지회 위원장, 천도교 상주교구장(1977) 등을 역임 했다. 현재 천도교 상주교당을 유지하고 있는 경암(鏡 菴)황숙 동덕은 동학사상연구소, 상주동학회 추진위 원장 등의 직함을 맡고 있다.

 

은척동심교구_상주시 은척면 우기리33-6

은척면에는 천도교 은척동심교구가 있다. 김근오 (1924~2020) 전 용담수도원장의 마당포덕으로 ‘동학 교’인 다수가 천도교에 입교하여 만든 교구다. 수련을 열심히 하는 교구로 “스승님 수련을 따라 하신다고 2

만 독, 3만 독을 날짜를 정하고 1년에 몇 차례 하며, 천도사업을 위하여 봉고차를 준비해서 시일은 교인 수송, 수련 때마다 교인들을 모시고 먼 수도원을 다니 면서 수련을 시키는 천도가 살아있는 교구”라는 평이 있었다. (사진.글 제공 천도교종학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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