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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님의 은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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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한울님의 은덕으로

유재원 선도사를 만나다
홍암 나인협 선생 흉상에 힘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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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일식에 앞서 주문수련을 하고 있는 유재원 선도사

 

“나는 천도교를 안 한다고 했는데, 우리 고모부가 나를 포덕 시키기 위해 대구에서 부산까지 오셨어요. 저를 포덕 시켜야 집안이 다 포덕이 된다고요. 새벽에 5시 기도식을 하시는데, 가만히 혼자서 생각하니 아, 이거는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고모부가 나 때문에 이렇게 오셨는데 안 되겠다. 벌떡 일어나서 고모부, 저 입교하겠습니다, 말씀드리고 입교를 했습니다.”


대동교구에서 만난 유재원 선도사는 입교 후 열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해왔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오랜 신앙의 역사를 이어온 집안의 이야기를 들으며 대를 이어 지극한 정성으로 살아온 삶의 궤적이 느껴졌다. 


천도교를 하시면서 어떤 점이 큰 힘이 되었는지 말씀해주세요. 

한울님 잘 모시고 항상 우리가 수시로 뭔 일 있으면 아이고 한울님, 아이고 우리 스승님 하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건강합니다. 크게 걱정 안 하고 사는 것, 제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그게 전부입니다.

제 형제들이 7남매인데 거의 다 천도교를 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 6.25가 끝나고 그 이후에 이북 평양사람인 우리 고모부가 거제 수용소에 계시다가 나오면서 우리 집 주소를 갖게 되셨죠. 거기 계시다가 나오시니 갈 곳이 없으니까 우리 집을 찾아오신 거예요. 우리집이 고모부의 처갓집이죠. 우리 집에 계시게 되면서 우리 집안이 천도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도 옛날부터 천도교를 신앙을 좀 하신 분이니, 고모부가 집에 오시면서 우리 집안이 전부 다 천도교 집안을 만드신 거죠. 저는 천도교를 젊을 때는 안 한다고 했지만 지금은 천도교를 하게 되었고요.

 

집안 어르신들이 천도교를 하셨으면, 어릴 때 어르신들이 어떻게 신앙생활 하셨는지 혹시 기억나시는 거 있으세요? 

선대에서부터 천도교를 열심히 하셨어요. 내가 한 예닐곱 살 됐을 때 시골 동네에 자라면서 우리 외갓집 외할아버지가 저녁이 되면 나를 무릎에 앉혀놓고 밥 먹는 걸 좋아하셨어요. 외할아버지가 21자 주문을 자꾸 외우면 병도 안 오고 건강해지고 똑똑해진다고, 무서움도 없고 귀신도 없다고 하시면서 가르쳐주셔서 제가 팔을 흔들며, "지기금지 원위대강.." 온 동네를 뛰어 다니면서 주문을 외웠던 기억이 나요. 

 

천도교 신앙을 하게 되면서, 외할아버님 말씀처럼 21자 주문이 두려움을 없애주기도 하던가요?

저는 그런 경험을 여러 번 했습니다. 제가 교통사고도 세 번이나 크게 당했습니다. 차가 완전히 다 부서져 버렸는데 몸에는 조그만 털끝 하나 다친 곳이 없어요. 급발진 사고였는데, 한올님이 돌보지 않으셨으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보고 대동교구 일 잘 하고 인재를 양성시키라고 살려준 것 같아요. 죽음의 고비를 세 번, 네 번 겪으면서 이렇게 멀쩡한 걸 보면 정말 기적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어요. 항상 한울님이 돌보고 계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님께서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시는 모습을 보고 자랐고 그 덕에 우리들이나 또 우리 아이들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고 또 그 덕에 다 편안하게 살아가고 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홍암 나인협 선생의 흉상을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 세우다

 

유재원 선도사는 현재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 조성된 나인협 선생의 흉상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과거 대연교구 시절 직접 화단을 정비하다가 비석을 발견하는데, 바로 나인협 선생의 묘비였던 것. 

그때의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듯했다. 

나인협 선생을 기리고 선생의 업적을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했고 그 일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그때부터 지자체와 협력하여 흉상을 세우는 일에 힘썼다. 그리고 부산시 남구의 적극적인 협조와 지원으로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 선생의 흉상이 조성된 것이다. 

나라를 잃고 땅을 빼앗긴 식민지 시기, 천도교신앙이 보국안민의 실천으로 이어진 것처럼 유재원 선도사의 신앙이 실천으로 이어지기까지 한울님의 은덕이 모든 순간마다 운명처럼 펼쳐졌다고 말하며 아직 할 일이 많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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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암 나인협 선생의 흉상(부산일제강제동원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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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암 나인협 선생과 부산 남구와의 인연, 표지석(같은 곳)

 

나인협 선생은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1인으로서, 1872년 10월 8일 평남 성천에서 태어나 포덕 47년(1906) 11월 30일 의암성사로부터 홍암(泓菴)이라는 도호를 받았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했고 19세인 1892년 동학에 들어 동학혁명에도 참여하였다. 나인협은 의암성사를 비롯하여 권병덕, 나용환, 박준승, 이종훈, 임예한, 홍기조, 홍병기와 함께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동학혁명에도 참여한 9명 중 한 사람이다. 

해방 후 평남 성천에 머무르면서 교회 원로로서 활동하다가 1.4후퇴 때 월남하여 부산 피난민촌에서 살다가 포덕 93년(1952) 환원하였으며 빈소는 천도교부산시교구에 마련되었다. 부산 대연동 산 중턱에 안장되어 있던 선생의 유해는 포덕 114년(1973) 서울현충원으로 이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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