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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의 심법 ; 모심에서 정시정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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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천도교의 심법 ; 모심에서 정시정문으로

송탄교구장 중암 라명재

번잡한 세상사에서 잠시 떠나 공기 좋고 조용한 산속 수도원에서 마음을 닦는 하계 수련의 때입니다만, 무병지란의 어려움 속에서 재가수련 해야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수련은 왜 해야 할까요? 살다보면 세상일이나 사람들이 내 맘같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지요. 그렇게 푸념하면, “원래 세상일이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라 한울님 순리대로 되는 거야”라는 답이 돌아옵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한울님 순리인지 알아야겠지요?

 

1. “심학이라 하였으니 불망기의 하였어라”(교훈가)

도를 몰라서 못하나요?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자신이 옳다고 아는 것을 지킬 수 있으려면 마음의 힘이 필요합니다. 당장 시비가 붙어 싸우면 서로 손해지만, 알아도 그 화나는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사고를 치는게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떻게 마음이 몸의 기운을 움직여 육신이 일을 하는지. 그 마음을 살필 줄 알고, 다스릴 줄 아는 것이 마음공부지요. 요즘엔 명상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마음이 변화하는 것을 바라보는 또 다른 마음, 즉 내 안의 참 마음, 한울 마음을 알아채고 그 마음을 지키며, 그 마음에 따라 행하는 것이 천도교의 수행이 됩니다.

 

2. 내 마음을 어떻게 잘 조절할 것인가?

모든 수행의 시작은 내 안에 나를 움직이는 참 생명, 즉 한울님의 내유신령을 모시고 있음을 자각하는데서 시작됩니다.

“「시」라는 것은 안에 신령이 있고 밖에 기화가 있어 온 세상 사람이 각각 알아서 옮기지 않는 것이요,”(논학문)

모심은 주문의 핵심이자 동학의 핵심 요의지요. 내유신령은 내 안의 생명, 외유기화는 나와 소통하는 내 밖의 모든 생명 내지는 나를 둘러싼 빈 듯하나 가득 찬 신령한 영기를 뜻합니다. 사람은 내 안의 생명이 없어도, 내 밖의 생명(공기, 음식, 물과 동식물, 미생물, 그리고 나와 소통하며 교류하는 생명과의 교감)이 없어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유신령과 외유기화는 서로 떨어지거나 옮길 수 없는 하나의 큰 생명, 기운, 한울이고 이를 지극한 기운 즉 지기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로 연결 되어 있는 생명의 그물망을 알고 한울생명으로의 삶을 실천하는 것이 각지불이고 그렇게 자각하고 삶에서 실천하는 것까지가 모심의 뜻이 됩니다. 그로써 모든 생명은 한울로 동귀일체하게 되므로 모심은 각지불이의 실천이 있어야 완성됩니다.

의암 성사께선 온전한 생명의 조건을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마음(내유신령)과 나를 비롯한 우주를 관통하는 원리(성품, 외유기화) 그리고 그것을 행하는 몸(각지불이)의 세 가지로 설명하셨습니다.(성심신삼단) 궁을장이 표상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그중에서 우리 몸을 움직이고, 이치를 알고자 하는 것이 마음이니 마음공부가 우리 삶을 어떤 모습으로 만들고 또 바꿀 수 있는지 결정하는 핵심이 되겠지요.

그럼 이 마음은 어떻게 생긴 걸까요?

모든 생명은 누구나 태어날 때 한울의 신령한 기운, 한울마음을 받아 태어납니다.

“안에 신령이 있다는 것은 처음 세상에 태어날 때 갓난아기의 마음이요, 밖에 기화가 있다는 것은 포태할 때 이치와 기운이 바탕에 응하여 체를 이룬 것이라.”(해월신사법설, 영부주문)

“마음은 바로 성품이 몸으로 나타날 때 생기어, 형상이 없이 성품과 몸 둘 사이에 모든 이치와 일을 소개하는 요긴한 중추가 되느니라.”(성심신삼단)

 

이렇게 신령한 마음을 누구나 받아 태어나니 이를 거울에 비유하셨습니다.

“사람이 태어난 그 처음에는 실로 한 티끌도 가지고 온 것이 없다. 다만 보배로운 거울 (같은 마음)한 조각을 가진 것 뿐이니라.”(성범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 보배로운 거울, 신령한 마음을 잊고 욕심 가득한 어리석은 마음을 갖고 살게 될까요? 이를 의암성사는 제이천심이라고 하셨습니다.

“나에게 두 마음이 있으니 하나는 사랑하는 마음이라 이르고, 하나는 미워하는 마음이라 이르느니라. 사랑하고 미워하는 두 마음이 (참된)마음을 가리운 것이 티끌과 같으니라.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은 어디서 온 것인가? 모든 물건이 마음에 들어오면 자연히 사랑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이 생기나니라. 이렇듯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은 물건의 반동심이라, 비유하면 젖먹이가 눈으로 물건을 보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어 기뻐하며 웃다가 물건을 빼앗으면 성내어 싫어하나니, 이것을 물정심(물건에 정든 마음)이라 이르느니라. 물정심은 곧 제이 천심이니 억만 사람이 다 여기에 얽매어 벗어나지 못하느니라.”(진심불염)

내 몸의 감각에 의해 좋아하고 싫어하는, 분별하는 자의식이 생깁니다. 이런 제이의 마음이 거울에 먼지가 앉듯이 참된 마음을 가리게 되면, 진실을 보는 현명한 눈이 가려집니다. 좋아하는 물건이나 맛있는 음식을 보면, 거기에 독이 들어 있는지도 모르고 덥석 움켜쥐게 되는 것이지요.

거기다 자라면서 받는 제도권의 교육들도 규격화된 국민을 양산해내고, 국민국가를 형성하는 데는 역할을 했을지 모르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지 못하고, 진실을 올바로 보는 힘을 약화시켰습니다. 무조건 답을 외우기만 했지 그것이 맞는 답인지, 왜 답이 되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답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저 점수만 잘 나오면 되고, 좋은 학교만 가면 됩니다. 가치 기준이 학생 때는 점수로, 성인이 돼서는 돈으로 획일화되니, 과정이 어찌되건 성적만 좋으면, 돈만 잘 벌면 성공한 삶이라고 가르친 겁니다.

그러니, 다른 피부색의 사람이나 동물 심지어 물건들을 차별하고 함부로 대하는게 우리사회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모든 생명, 나아가 물건까지도 신령한 차별 없는 한울입니다. 그러나 제도권의 교육은 그것이 얼마나 효용가치가 있는지, 나에게 어떤 이득이 있는지에 따라 차별하여 바라보고 대하는 것만 훈련시켜왔던 게 사실입니다.

이 모든 오해들이 먼지처럼 참된 마음의 거울을 가리고 있고, 이를 닦아내 본래의 깨끗한 참 마음을 되찾는 것이 마음공부요 수행이 됩니다.

 

3. 그러한 수행의 기장 기본이 모든 일에 습관적으로, 제이천심으로 행하기 전, 내유신령-참된 마음에 고한 뒤 행하는 심고입니다.

“사람이 움직일 때에 마음을 먼저 발하여 사지에 혈기와 정신이 통한 뒤에 동작하여야 서로 어김이 없는 것이다. 또한 말할 때에도 마음으로 먼저 생각하여 (마음과)정맥이 서로 통한 뒤에 말을 하면 혈기가 감손되지 아니하나, 무심코 말을 하면 기운과 피가 크게 상하고 음식도 무심 중 급하게 먹고 마시면 해가 되며, 보통 기거할 때에도 무심중 급하게 움직이면 해가 되는 것이니 삼가고 삼가라.”(위생보호장)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을 내 생명의 근원인 한울에게 고하며 함께 움직이는 겁니다. 이를 해월신사님은 물물천 사사천이라고도 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한울 이치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그에 고하고 감사하며 행하는 것, 이것이 심고입니다.

그렇게 일상을 행하는 것 모두가 수행이요, 기도가 되니 천도교에선 기도와 삶이 분리되지 않고, 성과 속이 하나가 됩니다.

 

4. 또한 일상 중에 판단이 필요할 때는 재사심정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말 가운데는 옳고 그름이 있는 것을, 그 중에서 옳은 말은 취하고 그른 말은 버리어 거듭 생각하여 마음을 정하라.”(수덕문)

 

다만 여기서 재사심정은 자기의 자의식으로 다시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생각을 두 번 한들 같은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지요. 두 번째 생각은 내 입장이 아닌 한울님 마음으로 생각해 보는 겁니다. 해월신사께서도 “심령으로 생각하는 것이요, 육관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수심정기)고 하셨습니다.

육관은 몸의 감각기관입니다. 그것은 얼마나 부정확하고 주관적인가요?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 이외에는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런 육관에 의지한 생각은 거짓된 정보에 혹하게 하고, 잘못된 판단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고하면서 오직 자신의 본래 내유신령, 성령性靈으로 직관해야 합니다.

 

5. 정시정문 합시다.

성사님은 심고와 재사심정, 심령으로 생각하는 가르침을 발전시켜 정시정문의 심법을 말씀하셨습니다.

“ 바르게 보고 바르게 듣는 것은 성․심․신 삼단이 합하여 보이고, 나누어 보임이니 세 가지에 하나가 없으면 도가 아니요 이치가 아니니라. 나도 또한 이 세 가지를 합하여 깨달아 홀로 황황상제의 자리에 앉았노라.”(신통고)

나의 육관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성심신삼단, 즉 한울님의 시각에서 보고 판단해야(正示正聞) 바른 진실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모든 사안을 성품과 마음과 몸의 시각으로 나누어 보고 합하여 보는 정시정문이 천도교 특유의 심법입니다.

어떤 사건이나 사물을 볼 때 단편적으로 자신의 입장에서만 보고 다투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들은 이런 성심신삼단의 심법으로 각각의 입장을 나누어 보고, 합해서 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실을, 한울의 모습을 보는, 정시정문하는 수련입니다.

 

한 사람이 암에 걸렸습니다. 몸을 주로 보는 사람은 암을 제거하는 수술과 항암치료 등 질병을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한다고 말 합니다. 물론 때를 놓치지 말고 적절한 치료를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심주가 굳지 못하고 이치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이럴 때 몸의 욕심을 좇느라 검증되지 않은 치료에 매달리고, 시간과 비용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환자의 마음을 같이 살펴야 하는 이유지요.

마음을 주로 보는 사람은 치료를 하되, 환자의 종합적인 상황을 살핍니다. 힘든 수술과 긴 치료를 견딜 수 있는 체력과 경제력이 되는지, 나이 들고 치료를 안 해도 병의 진행이 더뎌서 기대수명의 차이가 별로 없는지 살펴봅니다. 또한 암이 생긴 원인이 무엇인지, 교정해야할 생활습관이 있는지를 살핍니다. 암을 수술로 제거해도 원인이 된 생활습관이나 마음가짐이 바뀌지 않으면 다시 재발할 테니까요. 한 발 더 나아가 암도 자신이 살아온 인과의 흔적입니다. 이를 부인하고 제거하려고만 할 게 아니라, 고통스러워도 정직하게 직시하고 받아들여야 그를 반성하고 삶의 방식을 바꿀 수 있습니다.

성품을 주로 보는 사람은 어떨까요? 암세포도, 암을 일으키는 발암물질이나 바이러스도 모두 하나의 성령이고 하나의 한울 성품입니다. 본래 있는 게 아니고 수명은 다 달라도 곧 소멸 되 무형으로 돌아갑니다. 내 몸도 본래 있는 게 아니라 잠깐 유형화된 한울 성령일 뿐입니다. 내가 본래 있는 게 아니니 병도, 암도 본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견성하면 그 모든 인과가 사라지고, 병도 물약자효되는 거지요. 마치 대신사께서 빗속에 성묘 다녀오셔도 옷이 젖지 않았다는 것과 같습니다. 비도, 옷도, 내 몸도 다 같은 한울 성품이니 어디 물들고, 젖고 할 것이 없는, 물아일체, 나와 주변이 경계가 터져 하나 된 인내천의 경지인 것이지요.

 

코로나로 아직 온 세상이 힘듭니다. 코로나 얘기도 이젠 지겹지요? 그럼 마음공부 하는 사람은 달리 보고 달리 얘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시정문 심법으로 얘기해 볼까요?

몸을 주로 보는 사람은 질병이 종식 될 때까지 거리두기와 방역에 계속 힘써야 한다고 할 겁니다.

마음을 주로 보는 사람은 어떨까요? 벌써 1년 반 이상 지속되는 방역으로 피해가 심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영업자들부터 시작해서 취업기회를 잃은 젊은이들에 이르기까지, 실제 감염된 사람 뿐 아니라, 감염되지 않았지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지, 격리되고 치료과정을 겪은 사람들의 심리적 상처는 어떻게 돌볼 것인지 마음 써야합니다. 또한 전염병으로 생긴 타 지역, 타국인 혐오증은 또 다른 각자위심입니다. 이건 또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도 생각해야겠지요.

성품을 보는 사람은 어떨까요? 이젠 코로나가 계절 독감처럼 토착하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노인과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을 제외한 건강한 젊은 사람들은 가벼운 감기처럼 앓고 지나갈 수 있는 것도 확인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노인과 기저질환이 있는 고 위험군에 대한 예방접종과 치료에 집중하고, 어느 정도 예방접종이 이루어진 뒤엔 더 이상 과도한 방역과 전체 확진자 수 집계를 멈추고 일상을 회복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그 모든 바이러스도 한울이고, 질병과 죽음을 포함한 생로병사의 과정이 자연의 자연스러운 순환이고 무왕불복지리임을 일깨워 줘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악질이 생긴 원인을 생각한다면 이제부터라도 한울을 거스르지 않는, 천지부모를 상하지 않는 삶을 생각하는 큰 시야를 잃지 않도록 해야겠지요. 그리고 이런 질병으로 인한 삶의 변화가 우리 사회를 어떤 모습으로 바꿀지 걱정하고 이 어려움이 타인과 다른 생명에 대한 존중이 일상화 되는 문명의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고 말 할 겁니다.

 

이렇게 모든 판단이 필요한 상황에서 자기가 아는 대로, 습관된 의식으로만 판단하지 말고, 한울님께 고해서, 한울 이치에 맞는지, 한울님 마음에 흡족한지, 우리 몸으로 실천할 수 있는지, 이렇게 성심신 삼단을 나누어 보고 합하여 보고 판단하는 정시정문의 수행을 하는 것이 천도교의 심법이요 수행입니다. 이 심법을 따르는 것이 한울님 순리를 따르는 것이고, 그렇게 바르게 보고 바르게 들으면, 모든 일을 한울님과 같이 행하니 만사여의, 무위이화할 것입니다.

 

“지나간 옛 현인과 철인이 스스로 구하고 스스로 보이는 것으로 서로 다투었으나, 우리 도에 이르러서는 사람이 스스로 구하여 도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한울님이 반드시 바르게 보이고 바르게 들으니, 만에 하나도 의심이 없느니라.”

요즘도 각자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통합해서 판단하지 못하니 사안마다 얼마나 다툼과 갈등이 많습니까?

하지만 이렇게 어떤 사안이 있을 때, 먼저 한울님 이치로 냉철히 보고(성), 그것이 모든 생명을 살리고 위하는 길인가(심;한울님 마음) 보고, 내가 어떻게 실천할지를 생각합니다(신).

옛 현인과 철인은 지엽에 그쳤지만, 이 정시정문의 심법으로 “만에 하나도 의심이 없다” 즉, 천도교에 와서 진리가 완성되었고, 이로써 이전까지 있었던 역사의 모든 논란(부분적인 앎으로 인한 종교와 철학의)을 해결했다는 선언을 하신 겁니다. 이는 깨달은 성인(의암성사)의 확신이지, 제자(일각의 주장처럼)의 글이라면 나올 수 없는 것이지요.

이것이 천도교가 해야 할 일입니다. 각자의 시각으로 오해해서 비롯된 세상의 모든 갈등과 다툼을 통합된 정시정문으로 바르게 이해해서 합의와 화합으로 이끄는 것. 이게 동귀일체입니다.

올 여름, 이같이 좋은 도를 열심히 닦아, 한울님 순리대로, 나의 삶과 우리 사는 세상이 순리대로 되는, 개벽되는 세상이 되도록 수련 해 보자는 말씀드리며 마치겠습니다.

 

 

 

 

162년 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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