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11.22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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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채길순의 작품집이 나왔다. 1983년 〈충청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작가는 주로 동학농민혁명의 소재로 쓴 소설을 써왔다. 장편소설 『흰옷 이야기』 『동트는 산맥』 『조 캡틴 정전』 『웃방데기』 외에도 ‘발로 쓴 동학 이야기’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오랜 시간 곳곳으로 동학 이야기를 찾아다니며 집필한 역사기행서 『새로 쓰는 동학기행』 등을 출간하였다.
작가를 “동학농민혁명 신봉자였다”고 회고하는 강민숙 시인은 해설을 통해 이번 작품집이 “여전히 혁명이 필요한 사회에 대한 소설가의 역설이”이라고 평한다. ‘혁명’은 80-90년대의 이야기라 치부되고 ‘광장’은 꽃길로 포장되고 있는 지금, 작가는 광장에 서서 사회 정의에 대해 기억하고 열망해야 할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때가 되면,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이곳을 가득 메울 것이다!”
소설 「어느 바닷가의 픽션」에서 아버지는 ‘나’에게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했다가 참수당한 증조부의 묘 이장을 전하며 두 장의 이미지 파일을 전송한다. “128년 만에 증조부의 유체를 발견했다는 신문기사”와 “황토 무덤에서 나온 구멍이 숭숭 뚫린 해골” 사진이다. ‘나’는 명령조의 아버지에 반발해 회사 일을 핑계 대며 바닷가 마을을 찾는다. 우럭 머리를 미끼로 매단 통발을 내리던 ‘나’는 우연히 바닷속 물고기들의 공연을 관람한다.
바닷속 공연 제1장에서는 미끼가 되어 머리만 통발에 걸려서도 억울한 죽음에 저항해서 “그 악의 순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형 우럭과 그런 형을 안타까워하며 “광장은 비었고, 이제 광장에 기웃거릴 사람조차 없”다는 동생 우럭의 논쟁이 이어진다. 제2장에서는 형 우럭의 아들들과 아내의 대화가 이어진다. 생명이 끊어지는 형 우럭에게 아내는 “당신이 떠나던 날 생태탕을 드시지 못했으니 대신 살아남은 사람의 몫으로 아이들이 더 많이 먹었”으니 “부디 편안하게 길을 떠나”라며 남편 우럭의 마지막 길을 슬퍼한다. ‘나’가 집으로 돌아갈 날에 태풍이 몰아쳤다. 마지막 통발을 올리기 위해 바닷가를 찾은 ‘나’는 사고로 스크루에 목이 잘려 바닷속 갯벌에 처박힌다. 그리고 마지막 3장, 날리는 붉은 깃발과 붉은 띠를 두른 혁명의 무대를 본다.
오늘도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광장’이 필요하다
“이렇게, 혁명이 픽션 장치를 통해서, 그것도 사람 세상이 아닌 어류 세상에서 벅찬 혁명이 이뤄졌다. 이는 여전히 혁명이 필요한 사회에 대한 소설가의 역설이다. 왜냐하면 지금 세계는 신자유주의와 신냉전 시대를 구가하며, 민초는 점차 거대 자본의 노예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강민숙, 「해설」에서)
소외받는 치매 노인을 향한 보편적인 사회제도가 필요하다
소설 「구빈원」, 베트남전쟁 유공자이자 오랜 시간 도서관 사서로 일을 했던 ‘나’는 치매 판정을 받는다. 의사는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 “천국”이 될 것이라며 천사양로원 입원을 권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나’는 결국 “치매환자 신분을 넘어서 통제 불능의 광인으로 취급”된다.
‘나’는 대기 중이던 호송원들에게 들려 이동침대에 묶인 채 앰뷸런스에 실려 천사양로원으로 보내진다. ‘나’의 추방은 “사회로부터,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한 인간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런 조치는 세상 사람들 모두의 평화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는 대의명분에 의해 자행”된다. ‘나’가 천사양로원에 갇힌 후 바깥세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109(SARS-CoV-109)가 창궐한다. ‘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109(SARSCoV-109) 예방 프로젝트”라는 회의 자료에서 “캡슐에 의한 29일 맞춤형 AI닥터 임상시험”에 관한 대외비 문서를 발견한다. 천사양로원 입소자들을 살처분 계획을 외부에 알리려 했으나 실패하고 죽어간다.
“이년아! 내가 의사냐? 그러고 세상에서 네년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네년이 그냥 소리 소문 없이 죽어주기를 기다릴 뿐이라고!”
“아녀! 하늘이 두 쪽 나도 우리 애들이나 그 양반은 그럴 사람이 아녀! 오매불망 나 나오기를 기다린다구.”
저년이 착각하고 사는 것이다. 어쩌면 온 가족이 회의를 열어 ‘보내버리자’라고 작당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구빈원」에서)
혁명이란 아픈 날을 기억하고 새롭게 떠오르는 해와 같다
소설 「구빈원」의 인물 ‘나’의 기억처럼 우리에게 광장의 지난 시간은 하나씩 지워지고 무채색의 텅 빈 공터로 남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작가는 이 질문에 대해 “보내버리기”로 작당하고 살처분을 당하며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도 찔레꽃 그늘을 찾아 앉는 자신에게 “얘야, 비켜 앉아라. 가시에 찔릴라” 걱정하던 아버지와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전사한 남편과의 애틋함을 기억하는 ‘나’를 그린다. 시간이 지워지는 순간까지 끝내 망각하지 않는 기억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 기억이란 아픔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아픔은, 동학농민혁명에 수괴로 참수당한 증조부의 잘린 목에서, 통발에 걸려 두 동강이 나는 우럭에게로, 스크루에 목이 잘리는 화자에게까지 이어진다. 작가는 이번 작품집에서 “혁명이란 아픈 날을 기억하고 새롭게 떠오르는 해와 같”(「작가의 말」)다고 말하며 끝까지 망각하지 말아야 할 역사에 대한 신념을 의연히 전한다.
지난 시대의 혁명적 사건은 오늘을 색칠할 수 있어야
“채길순의 소설에는 우리가 열망하고 환호작약했던 저 1970, 80, 90년대의 격동과 격론들, 페레스트로이카, 혁명론과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 2000년대 이후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무슨 무슨 리얼리즘, 포스트모더니즘……, 이 같은 시대의 격정이 박제되었다. 그것들은 때때로 불꽃처럼 화려하게 피었다가 사라졌다. 그토록 절실한 시대의 산물이었던 소설이 오늘의 저울로 가치 없다고 하지는 못할 것이다.”(-강민숙, 「해설」에서)
책 속으로
나는 땅끝마을 어느 한적한 바닷가에 머물렀다. 그날, 바닷속 무대에서 물고기들의 공연을 관람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어느 바닷가의 픽션」에서)
순간, 아버지가 내게 보내준 사진 파일 속 증조부의 머리가 내 눈앞에 불쑥 나타났다. 황토 무덤에서 나온 구멍이 숭숭 뚫린 해골. 나는 머릿속에서 그 사진을 애써 지웠지만, 자꾸만 되살아났다.(-「어느 바닷가의 픽션」에서)
형 : 억울한 일을 당하고 어떤 식으로든 저항하지 않으면 이런 억울한 죽음은 계속되잖아. 누군가는 저항하여 그 악의 순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동생 : 인류는 일찍부터 원수 갚는 법을 합리적으로 정립해왔어. 아버지가 호랑이에게 잡아 먹혔다면 호랑이를 잡아 죽이거나, 그러지 못하면 아예 엎드려 산신령으로 섬겨왔지.(-「어느바닷가의 픽션」에서)
동생 : 끝났어. 둘러보라고! 광장은 비었고, 이제 광장에 기웃거릴 사람조차 없잖아.
형 : 때가 되면,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이곳을 가득 메울 것이다! (-「어느 바닷가의 픽션」에서)
이로써 한 생명이 생을 마감한 것이다. 내가 지켜본 참수로 생명이 사라지는 과정은 길고도 길었다. 이를 숨죽여 지켜보면서, 행여 머리와 몸통이 기적같이 연결되는 이적(異蹟)이 일어나지 않을까, 저 허옇게 두 눈을 부릅뜬 원한이 내게 미치지 않을까, 길지 않은 시간에 많은 생각이 오갔다.(-「어느 바닷가의 픽션」에서)
마치 아까 무대에 등장했던 형 우럭이 아닌 듯, 눈앞에 다가온 죽음에 대해서 한 가닥의 근심도 없이 활달했다. 나는 이런 이유만으로도 살의가 충분히 솟구쳐서 단숨에 도마에 올려 몸을 단단히 누르고 칼을 들어 목을 내리쳤다.(-「어느 바닷가의 픽션」에서)
아내 : 당신이 떠나던 날, 내가 생태탕을 준비한 것처럼, 이제 내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야지요. 당신이 떠나던 날 생태탕을 드시지 못했으니 대신 살아남은 사람의 몫으로 아이들이 더 많이 먹었어요. 이제 당신을 잊고 살아갈 것입니다. 부디 편안하게 길을 떠나세요.(-「어느 바닷가의 픽션」에서)
노인들은 아침 식사 때 빈자리로 누군가와의 결별을 알아챈다. 그렇더라도 그뿐,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러니 저녁 식사 때면 말없이 작별 인사를 나눈다.(-「구빈원」에서)
마치 임종을 앞둔 노인의 혼이 저승의 문턱까지 이르렀다가 가까스로 기력을 회복하여 깨어난 듯, 그래서 아침은 언제나 적막하다.(-「구빈원」에서)
나의 추방은 사회로부터,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한 인간의 종말을 의미하고 있었다. 이런 조치는 세상 사람들 모두의 평화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는 대의명분에 의해 자행되었다.(-「구빈원」에서)
“얘야, 비켜 앉아라. 가시에 찔릴라.”
살아생전에도 근심이 많던 아버지가 저승에서도 연신 근심이었다. 오늘은 아버지가 여기까지 따라와 찔레꽃이 되어 서 있었다. 살아생전에 상두꾼으로 상여를 이끌던 아버지는 늘 흰두루마기 바람이었다.(-「구빈원」에서)
“빨리 나가! 양로원에 살처분이 시작되었어!”
청년이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말았는지 잠깐 눈을 껌뻑이다가, 일시에 작동이 멎고 나무토막처럼 뒤로 넘어졌다. 청년의 몸이 빠르게 녹는가 싶더니 내 눈앞에서 아지랑이처럼 사라져 버렸다. 곁에 있던 자장면 배달통과 달러와 스마트폰도 함께 사라졌다. 오직 내가 금방 건넨 사탕과 요구르트만 남았다.(-「구빈원」에서)
공석이 된 의사 자리는 새로 채용하지 않고 AI닥터로 대체하여 임상시험을 계속 진행했다. 임상시험의 최종 목표는 ‘29일 자동 생명 소멸’이다.(-「구빈원」에서)
쓰러진 자의 꿈을 딛고 일어나 여명을 맞이해야겠다. 혁명이란 아픈 날을 기억하고 새롭게 떠오르는 해와 같으니까. (-「작가의 말」에서)
지은이: 채길순
1955년 충북 영동에서 출생하였다.
1983년 〈충청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95년 〈한국일보〉 광복50주년기념1억원고료 장편소설 공모에 『흰옷 이야기』가 당선되었다. 이외 저서로 장편소설 『어둠의 세월』(상·하) 『동트는 산맥』(전7권) 『조 캡틴 정전』 『웃방데기』, 역사기행서 『새로 쓰는 동학기행』(전3권) 등이 있다. 명지전문대학 명예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