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11.22 17:08
TODAY : 포덕165년 2024.11.24 (일)
탑골공원 성역화 발기인회(회장 이종찬)는 9월 14일~15일 ‘탑골공원 성역화를 위한 학술회의’를 종로2가 YMCA 대강당에서 개최한다.
이 학술대회는 3·1운동의 가치를 잃어버린 채 낙후·노후되어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탑골공원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진정한 가치를 되찾기 위한 사업추진을 위한 협력 공감대를 조성하고자 종로구(구청장 정문헌)가 주최하는 ‘탑골공원 성역화 사업’의 일환이다.
9월 14일 오후 1시 개막식에서 광암 박상종 천도교 교령은 “일제강점기 최대규모의 민족운동으로 대한민국 건국의 출발점이 된 3·1독립운동이다. 의암 손병희 성사 등 민족대표 33인이 서명한 독립선언서를 1919년 3월 1일 하오 두시에 탑골공원에서 학생대표가 낭독을 하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를 기화로 3·1운동은 전국으로 뻗어나갔고 해외로 확산되었다. 3·1운동의 성공은 10년 내로 나라를 되찾겠다고 하신 의암성사의 결단과 치밀한 준비과정 결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탑골공원에 있는 의암성사의 동상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탑골공원의 역사적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라며 학술대회의 의미를 강조하였다.
이어서 종로구 최재형 국회의원, 정문헌 종로구청장이 인사말을 하였고 오후 5시까지 학술회의가 진행된다.
축 사
모시고 안녕하십니까.
저는 천도교 교령 박상종입니다.
탑골공원은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근대적 공원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의 탑골공원의 위상을 더 높이고 우리 역사의 주목을 받은 것은 기미년 3·1독립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일제항쟁기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으로 대한민국 건국의 출발점이 된 3·1독립운동은 천도교・기독교・불교의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으로 국내⦁외에 조선의 독립을 선언한 민족운동의 쾌거였습니다.
의암 손병희 성사님 등 민족대표 33인이 서명한 독립선언서를 1919년 3월 1일 하오 2시에 탑골공원에서 학생대표가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고, 이를 기화로 3·1운동은 전국으로 뻗어 나갔고, 해외로 확산되었습니다. 3·1운동은 국내⦁외 민족운동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국내에서는 제2의 3·1운동 등 수많은 독립운동과 민족운동이 전개되었고, 해외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고, 만주와 연해주에서는 무장 독립 전쟁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천도교단은 3·1독립운동에서 인적 물적 자원을 총동원 하였습니다. 3·1독립운동 이후에도 천도교는 국내에서는 어린이 운동으로 대표되는 신문화 운동, 6·10만세 운동, 신간회 운동, 조국광복회 운동, 멸왜기도 운동 등을 전개하였고, 국외에서는 항일무장 독립전쟁을 지원하고 적극 동참하였습니다.
이렇게 천도교가 일제항쟁기 국내 최대의 역량을 가진 조직으로 성장하고 민족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의암 손병희 성사님의 내 나라를 반드시 되찾고야 말겠다는 결단과 치밀한 준비과정, 지도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의암성사님의 결단이 3·1운동의 성공을 가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탑골공원의 의암 손병희 성사님 동상은 평생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탑골공원의 역사적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개최되는 <3·1운동 성지 탑골공원 성역화의 역사적 의미>에 관한 학술대회는 보다 더 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학술대회를 통해 소중한 문화유산인 탑골공원의 역사적 가치가 재조명되기를 심고합니다.
끝으로, 이번 학술대회를 주최하신 정문헌 종로구청장님을 비롯하여 바쁘신 일정 속에서도 참석하여주신, 이종찬 광복회장님, 최재형 국회의원님, 발표와 토론을 맡아 주신 모든 분들과 참석해주신 내⦁외 귀빈 여러분, 그리고 행사 관계자 분들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