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11.22 17:08
TODAY : 포덕165년 2024.11.25 (월)
모시고 안녕하십니까?
다사다난했던 무술년도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연초에 계획했든 사업 들은 잘 마무리가 되셨는지요. 내년에는 삼일운동 백 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천도교에 위상이 더욱 충천하기를 기원합니다. 동덕님들 내년에도 건강과 행운이 가득하시길 축원합니다.
오늘은 ‘올바른 신앙으로 생활에 활력을 찾자’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신앙생활을 함으로써 무엇을 얻을 수 있으며 어떠한 보람을 느낄 수 있으며 천도교를 신앙함으로써 무엇이 달라질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신앙은 다음과 같이 3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 직접 신앙
인간의 흥망을 신에 의한 위력으로 믿어 지배와 간섭을 받고자 하는 민속화 한 다신 사상의 신을 믿고 모르는 것을 위탁하고 한 일을 감사하다고 보고하는 미신의 다신 주의 신앙은 예로부터 민속화 하여 전하여 오는 것입니다. 화복 길흉을 기원하는 신, 직접 신앙은 우리나라에 전통화하여 가정에서는 토주신, 산신, 수신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다신 숭배로 전하여 내려오는 신앙입니다.
둘째, 간접신앙
한울님을 직접 믿지 못하고 한울님과 통하는 중보자를 중간에 내세워 간접으로 믿는 계급적인 중보자 신앙입니다. 사람은 한울님을 직접 믿고 상통할 수 없으므로 한울님을 직접 통할 수 있는 중보자를 중간에 내세워 그 이름으로 믿는 신앙이 간접신앙입니다. 보통 사람은 기원할 자격을 갖추지 못하여 신의 절대 신임 자인 위대한 자를 중보자로 내세우고 믿는 의존적인 계급적인 신앙입니다.
의존적인 신앙은 항상 잘못에 대해 속죄하면 된다고 믿고 속죄를 기원하는 자와 신을 대신해서 속죄를 받아들여 용서해 주는 자와 사후 천당을 가게 해주는 자가 따로 있어 인간을 초개 같은 존재로 저하하는 제도의 신앙입니다.
셋째, 자주 신앙
한울님을 직접 믿고 한울님과 사람 사이를 가정적인 분위기로 되게 하는 자주 신앙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살리고 평등 자유 분위기로 한울님과의 사이는 둘이 아닌 하나로 동화되는 가정적이면서 자주적이고 지공무사한 한울님을 믿는 신앙입니다.
한울님을 직접 믿는 자주 신앙은 자주독립 국가의 국민으로서 자기 고향에서 자유로이 살며 부모 처자가 원만한 가정에서 서로 뗄 수 없는 윤리·도덕으로 같은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것과 다름이 없는 인내천 진리의 자주 신앙입니다. 신앙이 없으면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 메이는 사람처럼 방황하거나 금수 같은 사람으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신앙하는 사람은 믿음이 있으므로 침착해서 기도와 노력으로 어떠한 어려움도 슬기롭게 극복하여 전화위복이 될 수 있습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은 어려운 일을 닥쳤을 때 두렵고 괴로운 마음으로 허둥대다가 더 큰 불행으로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힘이 됩니다.
신앙은 신념을 가지는 것이며 신념은 심주를 세우는 결심이며 그 사람의 면목을 세우는 기운이요 힘이요 주인입니다. 대 신사께서 경신년 4월 5일에 득도하시고 후천개벽 한다고 하신 말씀은 천사 문답에서 얻은 한울님을 믿는 형언할 수 없는 힘의 표현입니다. 신앙은 일상 기거에서부터 가정생활로 국가·민족의 의무로 인류 전체에 이르기까지 그 힘이 됩니다.
대 신사는 보국안민 포덕 천하 하신다고 하며 지상 신선 즉, 천사가 된다고 전 인류의 희망이 되는 힘을 주신 것은 한울님을 믿는 데서 한울님의 힘을 얻어 말씀하신 것입니다. 인간을 위하여 자신의 의무를 다하며 조금도 두려움과 불평이 없이 태연한 태도로 대구 장대에서 참형을 받으신 대 신사의 힘은 한울님을 믿는 신앙의 힘입니다.
갑오동학혁명, 갑진개화운동, 기미삼일운동, 일제하에 반일 사상의 고조로 비롯된 무인년 황해도 반일 기도사건 등 현재의 이르기까지 남북한에서 사상의 대립으로 수많은 신도의 희생과 옥고와 불우한 세파의 역경에서도 일관해서 백수십 년을 버티고 내려오는 것은 한울님을 믿는 신앙의 힘이며 천도와 천운을 믿는 신앙의 힘입니다.
한울님을 믿으면 천도를 알게 되고 천도를 알고 믿게 되면 시대가 향상 발전됩니다. 그것은 사인 여천 주의를 실행한 신앙의 힘이 합기덕 되어 무위이화로 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정신과 마음의 영양소요 강장제가 되는 것입니다.
현실의 인간사회를 낙원으로 만들 수 있다는 긍정적인 신앙.
현실의 인간사회를 낙원으로 할 수 있다는 신앙은 인내천 진리의 신앙입니다. 이 지구는 무형한 한울의 모든 성령과 영기를 화생 시킨 곳이므로 한울님의 뜻대로 인간의 낙원을 이루는 곳입니다. 인생은 한울님의 죄를 지고 온 것이 아니라 무형의 한울님이 유형의 한울님으로 귀화하여 태어난 것입니다.
화초의 씨가 나와서 성공적으로 본연의 꽃을 피우듯이 성령의 화신으로 된 사람을 영광스럽게 알고 즐거워 하여야 합니다. 이 지상의 천국을 실현하고 지상 신선이 되어 생활하는 안락한 인간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의무와 책임을 완수하자는 신앙이 인내천 진리의 신앙입니다.
정신과 이념에 구속되지 않으려는 신앙 불필요론.
그날그날에 일신상의 만족과 향락을 위하여 현실 주위로 내일의 인간윤리를 생각하지 않고 이념에 구애받는 생활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독선적입니다. 마치 법 없는 사회 예절이 없는 사회와 다를 바 없습니다. 이념에 근거를 두지 않는 향락과 자유는 공부하기 싫다고 공부하지 않는 행동과 같습니다.
장래를 생각하지 않고 일 안 하고 저축하지 않는 행동은 책임자 없는 조직과 같이 오래갈 수 없는 것입니다. 정신의 부담도 인간사회의 향상 발전과 존엄한 인간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제재를 달게 받는 것입니다.
신앙은 선견지명의 신념입니다.
신앙은 앞으로 보이지 않는 장래를 보고 말하기 어려운 장래를 믿어 희망을 신조로 하여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신념을 굳건히 하여 노력하고 믿도록 앞으로 장기적인 목표를 세운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은 현실 위주의 사업으로 만족하지만,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 오늘의 일 중에도 정신과 육신의 공동 관심사를 염두에 두고 매사 행동을 삼가 오늘보다도 내일인 먼 장래에 미치는 영향과 나의 의무를 다하여 자손만대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사업하는 것입니다. 보통은 오늘만을 보고 생활하나 신앙생활은 맨 앞을 본 선견지명으로 고생을 무릅쓰고 감수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잘살기 위함이다.
신앙생활이란 그리 평범한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따르는 제도와 금기가 있으므로 제도와 금기를 지키는 괴로움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 괴로움은 괴로움이 아닌 행복한 즐거운 행사가 되어야 하며 즐겁게 생각함으로써 정성이 되고 지극한 신앙이 되어 그 정성과 신앙의 결과가 진정한 행복의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정원에 화초와 수목은 나뭇가지를 잘라 주어야 하고 비료나 물도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가꾸는 행동을 고생스러운 노력으로 안다면 화초와 수목을 심은 정신과 어긋나며 진정한 재미를 모르는 것이 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약간의 비용이 들고 약간의 제도로 제재가 된다고 해도 그 돈과 제재는 괴로움이 되지 않는 행복한 생활의 한 토막이라는 생각을 가질 적에 만족한 기쁨의 희망입니다. 이 기쁨의 생활은 돈으로 살 수 없고 권리로도 만들 수 없는 행복한 신앙생활이며 훌륭한 큰 인간 사업으로 변모시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신앙이 없는 인간은 외롭습니다.
생각을 할 수 있는 상대가 없다는 것은 외로움뿐입니다. 생각이란 상대와 합하는 것이며 예를 들면 사업하는 이는 사업의 생각을 하고 연인은 연인에 대하여 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 외로움이 덜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시적인 생각은 그 시한이 지나가면 희비 양선으로 결정되어 외로워지는 것입니다. 그 생각이란 일부적이며 일신 전체의 생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종교를 신앙하는 진리의 생각은 사업하는 이나 연인이나 병석에 누운 환자나 위대한 정치가나 학자나 군인이나 누구를 막론하고 어떠한 경우라도 틈틈이 생각하고 생각하여 외로움을 잊는 가운데 본연의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종교적인 진리의 신앙입니다.
신앙이 없는 인간은 의논하고 충고를 얻을 부모가 없는 고아나 남편 없는 살림과 같고 선생 없는 학생의 처지와 다를 바 없이 외로운 것입니다. 진리의 신앙이란 목숨이 다하도록 배우자와 같은 존재가 되므로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고 나아가면서 작은 일에 구애 되지 않고 작은 일에 고통을 느끼지도 않게 됩니다.
신앙은 희락의 핵심이요 종자입니다.
신앙이 희락의 핵심이요 종자란 신앙에서 세상 모든 근심을 해탈하는 힘과 희망이 생기고 기분이 상쾌해지며 신(神)이 나서 심화기화가 되어 마음이 사라지는 것을 말함입니다. 동지 동덕 간에 만나는 즐거움이나 교회당에서 신(神)나게 노래할 때 한울님께 감사한 심고를 할 때나 주문을 외울 때 심화기화한 그 즐거움을 애연가가 주린 담배 피우거나 애주가가 목마를 적에 술 마시는 즐거움이요, 무희나 가수가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즐거움입니다.
잊어버렸던 물건을 찾은 즐거움이나 근심하든 걱정이 없어진 즐거움 못지않은 심독희 자부(心獨喜自負)하는 자랑스러운 마음은 당해 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누구나 이 사실을 체험하여 본다면 이러한 즐거움을 느끼는 신앙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신앙은 만족을 줍니다.
어린애가 울다가도 어머니의 젓만 물리면 즉시 울음을 멈추는 것은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신자로서 믿는 대상을 생각하면 즉시 정신과 마음이 안정되는 것은 신앙으로서 어린애가 어머니 젖을 문 것과 같이 만족하기 때문에 정신과 마음이 안정되는 것입니다. 고통스러울 때 이십일 자 주문 (二十一字 呪文)을 생각하고 외우면 고통을 잊을 수가 있고 시간이 지루할 때 주문을 외우면 지루한 것을 잊어버리고 피로할 때 주문을 외우면 피로가 없어집니다.
이것은 자기의 심화기화로 이해와 해탈로써 자위 되며 심신의 안정을 가지는 호신의 좋은 방법입니다. 이상으로 신앙에 대하여 다방면으로 열거하였는데 우리 동덕께서는 적극적으로 신앙의 열의를 갖고 노력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부탁드리며 오늘에 설교를 마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포덕 160년 1월 신인간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