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11.22 17:08
TODAY : 포덕165년 2024.11.25 (월)
신춘호 박사는 연행노정 전문가로 꼽힌다. 한중연행노정답사연구회 대표인 그는 방송카메듀서로서 연행노정에 대한 기록 사진을 공공전시한 바 있다. 또 실학박물관, 천안박물관, 심양 총영사관과 TV다큐멘터리 ‘열하일기-길 위의 향연’(촬영·공동연출)을 제작했다.
신 박사는 “길(路·路程)은 단순한 교통로를 넘어 문화와 문화가 교류하고 문명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전통시대 한국과 중국 사이에 600여년 이상의 교류역사가 서려있는 연행노정 또한 인문유대의 현장이자 동아시아 문화로드”라면서 “연행노정은 조선을 벗어나서 세계를 볼 수 있는 기회였다”고 강조했다.
신 박사는 또 “연행노정 영상기록 작업은 연행록의 내용에 기반한 역사공간 기록”이라면서 “연행노정은 비록 중국에 산재하고 있지만 우리역사의 한 장면이 깃든 역사의 현장으로 우리의 역사지리에 대한 공간의 변화를 확장해 살펴볼 의미 있는 곳”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신 박사가 연행노정을 주기적으로 관찰하고 변화를 기록한 영상역사학적 가치를 가리킨다.
신 박사는 2000년 8월 연행노정을 처음 답사한 이래 현재까지 연행노정의 변화를 추적해왔다.
노정이라는 키워드로 글을 쓰시던데 어떻게 쓰시게 되었는지?
회사 업무와 관련된 일을 하게 된 것이 시작이었어요. 문화의 현장, 역사의 현장 프로그램 제작을 자주 하다 보니 관심도 있었고, 원래 문학이나 역사를 좋아하다보니 그 현장을 다녀보는 것을 즐겨했죠. 제 관심사와 맞았어요.
방송대학 TV 카메라 감독님이시죠? 방송대학은 교육 현장에 나올 수 없는 장애인이나 재소자들도 학습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역사의 현장을 찾는 프로그램은 많은 관심을 갖고 시청할 것 같습니다.
그런 분들까지 포괄해서 교육의 기회를 줘야하는 것이 방송대학이니 그렇게 맞춰가고 있습니다. 저는 25년동안 방송대학 촬영을 해 왔어요. 교육채널이지만 방송대학교 교육프로그램 제작, 일반인 대상으로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제작하니, 학과의 교과목이면서도 일반인들도 많이 좋아하더군요.
동학은 언제 관심있게 보셨나요?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제가 일하는 스타일이 연출자는 카메라를 알아야 하고 촬영은 연출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일을 해 오는데, 그렇다 보니 프로그램을 맡아서 나가면 주제에 대해 자료를 찾아보고 공부하는 습관이 있어요. 동학을 할 때도 다른 사람이 출장을 가야 하는데, 제가 가겠다고 했어요. 특히 동학은 동학 자체보다는 그 당시 전봉준이나 동학의 지도자들에 대해 관심이 있었어요. 역사를 좋아하니까. 그때 관심이 생겼고, 5~6년이 지나고 천도교중앙총부에서 주관한 독립대장정 참가자로 참여하면서 독립운동사를 공부하다보니, 그러려면 의병을 공부해야했고, 의병을 공부하다 보니 동학을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겠더군요. 그렇게 독립대장정 다녀와서 관심이 더 생겼어요.
피체노정이라는 용어 자체도 낯설어요. 피체노정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먼저 관심을 갖게 된 부분은 해월의 피체노정이었어요. 지금은 수운 선생의 피체노정 작업을 하고 있고요. 이후엔 손병희 선생님까지도 순차적으로 계획하고 있어요.
신체가 구속되었다,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기까지의 여정을 말하는 것인데, 연행노정을 하면서 병자호란 때 중국으로 끌려간 조선 백성들의 피로노정, 노예로 끌려가는 노정. 연행 길을 연구하면서 연행에 중첩된 600년 역사에 병자호란, 조선 포로들, 길 위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양하게 생긴 것 같습니다.
우리가 연행이라고 하는, 외교 사신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양한 각자의 시선들로 연행을 바라볼 수 있고 특정한 시기, 대한제국 시절 유럽으로 갔던 사절단까지 시대적으로, 또 인물로 사건으로 다양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피체노정의 경우도 동학의 지도자들 중 특히 수운 선생님 보다는 해월 선생님 이야기가 더 풍부합니다.
선생님에게 길은 어떤 의미인가요?
제 전공은 문화콘텐츠학입니다. 저는 길에 대해 논문과 강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길은 단순히 교통로의 의미를 넘어선다고요. 교통로의 역할 뿐만 아니라 그 안에 문화가 있고 교류하고 소통하는 공간이 길입니다.
피체노정의 경우도 끌려간 행적뿐만이 아니라, 예를 들어, 끌려간 과정에 나룻배가 있는 주막에서 잠시 쉬어가며 호송되고 근처에서 잡힌 사람들이 같이 끌려가고, 길 위에 남긴 역사들이 기록으로 남아 있어요. 주막, 나루, 물길의 풍경들이 어떠했는지를요.
당시의 호송체계를 보면, 관헌이 이동하는 길, 수로 등이 정해졌어요. 뱃길이기도 하고 관로이기도 하고 상인들이 이동하는 무역로이기도 하고요.
피체노정 하나에 예를 들어 최시형 선생이 붙잡혀서 한양까지 압송되던, 조선시대의 사회상, 문화상을 볼 수 있으니 그것까지 보고 싶은 거예요
끌려가고 고난 당한 일뿐만이 아니라 그 당시의 문화를 같이 이야기해줄 수 있어요. 그 당시 문화에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풍부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길은 교통로뿐만이 아니라 문화사적 측면에서 볼 수 있어요.
연암 박지원의 일기를 보면 한양에서 북경까지 다녀와서 기록한 것, 길을 가면서 지역마다 문화를 봤습니다.
길 위에서 만난 역사와 문화를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위대한 문학 작품이며 기록물입니다. 단순한 여행기록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책의 가치가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길은, 우리의 삶의 영역, 문화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면 교통로의 의미를 벗어나는 겁니다.
‘동아시아 문화로드’라고 명명합니다. 그런 관점으로 바라보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한 사람의 이야기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다.
신춘호는 길 위에서 길을 묻는 사람이다.
“최동희 선생을 이야기하려면 최시형 선생 이야기를 해야 하고,
최시형 선생 이야기를 하려면 손병희 선생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수운 최제우 선생을 이야기하려면 해월 최시형 선생의 이야기를 해야겠죠.
과연 이 이야기들을 분리할 수 있을까요? 다 연결됩니다.”
길을 연구하는 사람 신춘호에게 묻고 싶었다.
그래서, ‘신춘호의 노정’은 어떻게 연결됩니까?
* 이 글은 천도교중앙총부 동학혁명정신선양사업단에서 발행한 매거진 <동학집강소>에 게재된 글을 재구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