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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이어 동학과 천도교에 헌신, 정순경과 정용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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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이어 동학과 천도교에 헌신, 정순경과 정용근

정순경 교장임명장,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록 천도교중앙총부 소장


정순경임명장.jpg
천도교중앙총부가 소장하고 있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동학농민혁명 기록물 중 정순경 임명장

 

지난해 5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중 천도교중앙총부가 소장하고 있는 9건의 기록물의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천도교중앙총부가 소장하고 있는 기록물은 정순경 교장 임명장, 나동환 교장 임명장, 양수방 접주 임명장, 무장 포고문 필사본 등이다.

이 가운데 정순경 교장 임명장에 주목한다. 해월 최시형 신사는 1884년부터 교장, 교수, 도집, 집강, 대정, 중정의 육임제를 실시했는데, 1885년부터는 각 지방에서도 육임제를 확장하면서 동학의 교세가 크게 늘어났다.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기록물은 이 육임제의 직책에 따라 각각 수여한 임명장이다.


정순경(鄭淳敬)은 동학의 신앙을 깊이 믿었던 인물로, 그의 이름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정순경 임명장'을 통해 더욱 널리 알려졌다. 이 임명장은 조선시대 말기, 동학 농민운동이 일어나기 직전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정순경은 동학을 신앙하며 민중을 위한 대의에 헌신했으며, 그의 아들 정용근 또한 이를 이어받아 천도교를 신앙하고 민족의 독립과 개혁에 앞장섰다.

정용근(鄭瑢根)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 천도교의 정신을 실천하고, 독립운동과 교육 계몽 활동에도 깊이 관여하였다. 이들 부자는 근현대사 속에서 동학과 천도교의 정신을 계승하며 이신환성(以身換成), 즉 자신의 몸을 바쳐 큰 뜻을 이루려는 삶을 살았다. 이들의 헌신은 동학과 천도교의 역사적 가치와 대한민국의 독립과 근대화에 중요한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정순경의 아들 정용근은 1894년 3월 13일 동학 내에서 교장을 맡고 있던 아버지 정순경과 외삼촌 김국현(金國炫), 그리고 같은 마을에 살고 있던 오지영(吳知泳)의 영향으로 동학에 입교하였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자 정용근은 당시 대접주(大接主)였던 김방서(金邦瑞) 휘하의 중견 간부로 집강소(執綱所)에서 사무를 보았다. 동학농민혁명이 실패하자 피신 생활을 하다가 1896년 대접주 장경화(張敬化)의 휘하에 들어가 동학 교단 재건 활동에 참가하였다.


동학천도교인명대사전(개정1판, 2023)에 의하면, 정순경은 익산군, 익산시 신동 출신으로 1894년 8월 해월 최시형 신사로부터 동학 교장(敎長)의 도첩을 받는다.

같은 책에 아들 정용근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정용근(鄭瑢根) : 양암樑菴 족보 정두채(鄭斗采), 異名 정양채(鄭 亮采), 1874년 전주군(全州郡) 북일면 창동 출신(혹은 1973년 익산 군(益山郡) 신동 출신), 1894년 3월 대접주 김방서 휘하로 黃登시 장대도소에서 활동하고 10월 봉기에 참가(1894), 도집(都執), 대정(大正), 접사(接司), 대접주(大接主)로 활동, 갑진개혁 때 교인을 이끌고 태인(泰仁)에 회집(會集)하여 단발(斷髮)(1904.8), 일진회 (一進會)로부터 천도교로 귀교(歸敎)(1906.1), 도호(道號)(1906.11.30.), 교당건축 희사금(喜捨金) 3만환(1906.11), 전주교구 이문원(理文員) (1907.11), 교훈(敎訓)(1909.5.6), 전주교구장(1911-1913.2), 도선사(道 詵寺)-제2회연성인(1912.11.12.19), 교구장(1914.4), 익산대교구 총 인원(叢仁院) 의사원(議事員)(1914.8), 익산대교구장 및 교구장(191 5.11-1918.6), 도호(道號)(1917.4.5), 의사원(1918.4), 이중열, 김원근, 박성호 등과 출연하여 익산교구실을 신축(1918.9), 삼일운동으로 피검(被檢)(1919), 익산교구장(1921.1), 교인대회 대표위원(1922.6), 익산(益山)/옥구(沃溝)/김제(金堤) 포덕사(布德師)(1922.2), 제8구-종법사(宗法師)(1922.11), 익산대교구 경도사(敬道師), 수경포 주간포 덕사(1925.4), 종덕사(宗德師)(1926.8), 포덕과(布德課) 위원(1926), 종법사(宗法師)(1927-1930), 흥법포 주간포덕사(布德師)(1931) 등을 역임하였으며 제2차 분열 후 중앙종리원 감사정(監査正)(1932.5), 흥원포-주관도정(1933.4), 상무도정(道正)(1934), 익산대교구 법정 (法正)(1935.4), 중앙종리원 고문실(顧問室) 고문(顧問)(1936.4), 현 기실(玄機室) 현법사玄法師)(1937-1940)등을 역임하다. 1939년 10월부터 전라도 지방 순회 중 고향 익산에서 11월 24일에 환원하다.


동학천도교인명대사전과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에 기록된 자료와는 정용근 선생에 대한 환원 연도가 차이가 있다. 이에 대해 정정할 필요가 있으며, 향후 세계기록유산 자료와 천도교중앙총부의 자료를 바탕으로 연구와 고증이 이어질 전망이다. 


한편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185건은 동학농민군, 정부, 관료, 진압군, 민간지식인 등 여러 주체가 직접 생산한 종합적인 역사 기록이다.

이 기록물에는 동학농민군이 작성한 문서, 정부 보고서, 개인 일기와 문집, 각종 임명장 등이 포함됐다. 이 중 동학농민군이 생산한 기록물은 30건으로, 이 중 18개의 생산자가 해월 최시형 신사이다. 동학혁명의 최고지도자가 해월 최시형 신사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 기록물로서 가치를 인정받은 동학농민혁명 기록을 비롯한 천도교의 자료들이 역사를 바로잡고 국민의 자긍심을 일깨우는 데 이바지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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