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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에서 펼쳐진 대동세상, 동학문화예술제 뜨거운 호응지난 11월 9일(일) 오후 2시, 경남 남해문화센터 다목적홀 및 로비에서 ‘인내천(人乃天), 모두가 어우러지는 대동세상’을 주제로 한 2025 남해동학문화예술제가 열렸다. 본 행사는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동학의 인내천 사상을 오늘의 사회 속에서 다시 구현하고, 지역 시민과 청소년이 함께 어우러지는 축제의 장을 만들고자 기획되었다. 남해군수는 축사를 통해 "남해군은 역사적으로 동학·천도교 신앙이 매우 활발한 고장입니다. 현재 천도교 박인준 교령님을 비롯해, 우리 지역에서 일곱 분의 교령을 배출했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 전통의 깊이를 알 수 있습니다. 나라가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동학은 평등·민주·생명존중의 사상을 실천하며 큰 역할을 했지만, 해방 이후에도 그 가치가 온전히 자리 잡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남해 역시 천도교 활동이 제약을 받는 환경 속에서 조용히 신앙과 선양을 이어왔습니다. 이제는 이러한 문화·정신적 자산을 제대로 드러내고 계승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적·종교적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정신문화로서 동학 정신을 더 크게 펼쳐야 합니다. 오늘 문화예술제를 통해 동학의 사상이 평등, 민주주의, 자연과 생명 존중의 철학으로 우리 마음에 다시 새겨지길 바랍니다. 저 또한 군수로서 이 가치가 지역에서 더욱 살아 움직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바쁜 일정에도 함께해 주신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김환용 이사장은 "1894년 30만 명이 참여한 동학농민혁명은 이 땅을 우리 스스로 변화시켜 '사람과 만물이 평등하고 존엄한 세상'으로, '우리 공동체를 굳세게 만들어 스스로를 편안하고 행복하게 하자'는 기치로 희망의 문을 열고자 한 위대한 혁명이었다"고 평가하고 "이러한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행사를 마련하였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에서는 박인준 천도교 교령의 축사가 발표되었으며, 현장에는 이동희 경리관장이 참석해 교령의 메시지를 대신 대독했다. 이동희 경리관장은 “동학의 정신은 오늘 우리가 계승해야 할 시대적 가치”라는 교령의 메시지를 전달해 큰 호응을 얻었다. 박인준 교령은 축사를 통해 이번 남해동학문화예술제가 지닌 역사적 의미와 시대적 가치를 강조했다. 교령은 먼저 “남해는 동학‧천도교의 성지가 될 만큼 정신적 전통이 깊은 고장”이라며, 동학농민혁명 당시 남해 지역 인사들이 보여준 헌신과 희생, 그리고 이후 천도교의 신앙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 온 사실을 언급했다. 이어 동학의 핵심 사상인 시천주·사인여천·인내천을 현대적으로 조명하며 “사람은 한울님을 모신 존재이자,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함께 살아야 한다는 대동의 정신은 오늘날 민주주의의 뿌리가 되었다”고 덧붙였다. 또한 “동학농민혁명은 군사적 실패가 아니라 한국 근대정신을 열어젖힌 정신혁명이었으며, 이 정신을 계승하는 일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맡은 시대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박 교령은 이번 문화예술제가 “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잇고,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현실에 세우는 데 필요한 마음을 모으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며, 동학 사상을 지역사회와 대한민국의 정신문화 자산으로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고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행사를 준비한 남해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남해군의회, 남해군 관계자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동학의 정신이 남해에서 다시 꽃피고 대한민국 전체로 퍼져나가기를 바란다”고 축사를 마무리했다. 역사학자 심용환 강사는 ‘동학, 시대의 소리 사람의 소리’라는 특별강연을 통해 19세기 동학운동의 개혁성과 평등 사상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였다. 강연에서는 특히 인내천 사상이 “모두가 존중되고 상생하는 새 사회를 여는 출발점”이라는 메시지가 강조되었다. 남해지역에서 활동하는 ‘힐링보이스' 김경훈의 노래무대가 이어졌고, 이어서 ‘2025 신폐정개혁안 선언’이 공식 발표되었다. 이 선언은 동학정신을 오늘날의 사회개혁 담론으로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었다. 이날 남해에서는 동학정신을 오늘의 사회적 과제로 새롭게 되살리고자 ‘동학후예의 신폐정개혁안 12개조’가 공식 발표되었다. 발표된 12개 조항은 다음과 같다. 동학후예의 신폐정개혁안 12개조 ① 대한민국 정부는 동학정신을 계승해 보국안민 정책을 펼칠 것 ② 헌법 정신에 기반한 정치를 구현하고 반헌법 세력을 엄중 처벌할 것 ③ 권력자에 의한 부정부패 범죄를 자세히 조사하고 처리할 것 ④ 재벌과 자본가들의 부정을 엄중히 처벌할 것 ⑤ 우리나라의 이익에 반해 일본과 외세와 상통하는 자를 엄벌할 것 ⑥ 비정규직 차별을 해소하여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회를 추구할 것 ⑦ 탈탄소 정책과 기후위기 대책을 적극적으로 펼칠 것 ⑧ 식량주권을 확보하고, 생명을 살리는 생태적인 농업정책을 수립할 것 ⑨ 정부는 사회의 약자에 대한 차별금지법을 신속히 제정하고, 여성과 청소년, 노인과 약자에 대한 국가 돌봄을 적극적으로 실시할 것 ⑩ 무한경쟁 교육을 강요하지 말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존중하는 교육을 할 것 ⑪ 수도권과 농어촌 차별을 해소하고 지역 균형 발전을 적극적으로 도모할 것 ⑫ 그리하여 사람과 만물이 존엄하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 것 한편, 본 행사는 남해군민과 청소년, 예술인이 함께한 가운데 ‘인내천 모두가 어우러지는 대동세상’을 주제로, 남해의 역사와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현대적으로 재조명한 풍성한 프로그램들로 채워졌다. 앞서 진행된 남해동학예술제 백일장은 지역 청소년들이 동학 사상과 인권의 가치를 스스로 생각해보는 역사 교육의 장으로 마련되었다. 으뜸상에는 『동학농민군 대장 녹두장군 마법의 두루마리』를 쓴 최해린(남해여중 2학년) 학생이 선정돼 작품을 직접 낭독하며 큰 박수를 받았다. 버금상은 정지후(남해여중 1학년) 학생의 『동학에서 촛불까지』, 입금상은 김예은(남해여중 1학년) 학생의 『우리는 동학농민운동의 정신을 기억해야 합니다』가 각각 수상했다. 시상은 김환용 이사장이 직접 상장과 부상을 전달하며 청소년들의 참여에 감사와 격려를 전했다. 공연과 함께 행사장 곳곳에서는 다양한 전시가 열려 눈길을 끌었다. 박금만 작가의 목탄화, 남해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회원들의 캘리그라피 작품이 전시되어 관람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동학 농민군의 정신과 남해 역사문화의 정체성을 예술로 풀어낸 이번 전시는 ‘예술이 곧 기록’임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 올해 남해동학문화예술제는 청소년부터 예술가, 군민 참여까지 폭넓은 참여가 돋보인 행사로, 남해의 역사문화 콘텐츠가 지역 사회와 공감 속에서 재해석되고 확장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사음악회 〈모심의 길, 동학의 노래〉가 무대에 올랐으며, 가수 문진오와 작가 신채원이 함께 창작곡 <빛이 된 사람 해월 최시형>, <남해바다 시천주>, <보성사 이종일 바람의 혁명>을 비롯하여 <죽창가>, <내 나라 내 겨레>, <돌아와요 부산항에>, <홀로 아리랑> 등 서사와 노래가 어우러지는 형식으로 동학농민혁명 정신과 ‘모심’의 철학을 예술적으로 풀어냈다. 특히 ‘남해바다 시천주’라는 창작곡을 통해 남해 동학의 역사적 흐름과 신앙적 정신을 담아내어 참석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했다. 이번 문화예술제는 지역공동체가 함께 ‘대동(大同)’의 공동체적 비전을 공유하는 장으로 자리매김하였으며, “인내천 사상을 지역문화와 시민참여 중심으로 되살리는 시도였다”고 평가된다. 또한, 청소년 부문의 참여율이 높았다는 점에서 동학공동체의 미래세대 연계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남해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는 폐회 선언에서 “남해동학문화예술제를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며 소회를 밝혔다. 이어 “우리는 사람과 만물이 조화롭고 평등한 남해, 서로의 다름을 차별하지 않고 존중하는 조화롭고 평화로운 남해를 만들어가겠다”고 다짐했다. 이는 동학의 근본정신인 *인내천(人乃天)*을 오늘의 남해 공동체 정신으로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선언이었다. 2025 남해동학문화예술제는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동학의 핵심정신을 지역과 시민의 일상 속으로 불러온 의미 있는 자리였다. 앞으로도 이 행사가 단발성 축제가 아닌 지속가능한 지역문화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주최·참여자·시민이 함께 실천해 나가는 전환점이 되길 기대한다. -
제64차 천도교연원회 동원포 모임 개최연원회 동원포(도정 철암 김영욱)는 11월 9일 오후 1시부터 부산시교구에서 32명의 관내 교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64차 동원포연원회 회의를 개최하고 동원포 연원의 발전과 교화 사업을 위한 현안을 논의하였다. 이날 연원 모임에는 부산과 경주, 창녕, 영산 등 경상남북도는 물론 서울에서도 참여하여 심화기화의 흐뭇한 장을 연출하였다. 정신당 박차귀 도훈의 집례로 각 교구 교역자 및 참석 동덕 소개에 이어 올해 환원하신 고암 한한숙 선도사(서울)와 수신당 박선희 선도사(부산시)의 성령출세를 기원하는 추모 심고를 한 후 연원회를 개회하였다. 연원회는 철암 김영욱 도정의 개회사, 휘암 하명출 고문의 격려사에 이어 현황 및 경과보고, 지역별 동정 보고에 이어 의안을 심의하였다. 김영욱 도정은 인사말에서 “연원회 모임은 우리 천포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 안부를 묻고, 유대를 강화하며, 포덕교화의 정보도 교환하고 친목을 도모하는 모임”이라면서 이를 위해서 “매매사사 한울님께 심고 드리고, 오관을 생활화해서 한울님을 염념불망, 영세불망하는 수도생활을 해 나감으로써 한때 두 분의 도정을 모시던 활발한 모임이 되도록 노력하자”고 당부하였다. 제1호 의안으로 포덕,교화 방안을 협의하여 사인여천의 마음으로 신입 교인에게 늘 관심을 갖고 신앙 안내에 정성을 다하자고 결의하였다. 제2호 의안으로 유대강화, 조직 활성화를 위하여 정기 연원회 모임 참여를 독려하고, 다음 번 모임 때는 더 많은 소식과 성과들을 보고할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결의하였다. 박차귀 도훈은 “이번 모임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 환담을 나누며 모범적인 동원포가 되기 위해 심기일전 할 것을 다짐하는 장이 되었습니다. 모두들 아쉬워하며 헤어지면서 다음 모임을 기약하였습니다.” 동원포는 포덕 120년(1979) 5월 20일 경암 김경태 관내와 석암 성낙헌 종법사 관내 교인을 통합 개편하면서 연비모임을 시작하고 포덕 123년(1982) 11월 9일 ‘동원포(東源布) 이름을 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 포덕 126년(1985) 12월 25일에는 일본 신호교구가 수보 편입되어 현재 7개 지역을 교도하고 있다. 사진 및 자료 제공 박차귀 부산시교구장 -
2025 수운문화제 미술 특별전, 인사아트프라자서 성황리 개최포덕 166년 11월 9일(일), 오후 3시 인사아트프라자 4층에서 ‘2025 수운문화제 겸 제35회 천도교미술인회 한마당전 개막식이 열렸다. 이번 수운문화제는 천도교중앙총부 주최, 천도교미술인회 주관, 문화체육관광부 후원으로 제35회 천도교미술인회 한마당전과 제6회 인내천 예술명인 모심전, 미래세대 어린이학생 작품전이 함께 진행되어, 교단 안팎의 예술인들이 참여한 다채로운 작품 세계를 한자리에서 조망할 수 있는 뜻 깊은 자리였다. 전시 기간은 11월 5일(수)부터 11일(화)까지 7일간 진행되는 가운데 개막식은 많은 교인들의 참여를 위해 9일 시일식 후에 개최된 것이다. 개막식 행사에는 염정모 미술인회 회장과 박인준 교령, 윤석산, 송범두 전 교령, 이순종 미술인회 명예회장과 교인 등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부 개막식과 2부 축하공연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1부 개막식은 변종제 수운예술제운영위원장의 개회사 박인준 교령, 염정모 미술인회 회장의 인사말, 조민환 전 서예학회 회장의 축사 등으로 진행되었다. 변종제 위원장은 개회사에서 “우리는 동귀일체 정신을 실천하는 예술인들”이라고 밝히며 “이번 전시회가 많은 분들에게 감동과 깨달음을 전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인준 교령은 “바야흐로 세계는 K-문화 전성기로 접어들었다”고 전제하고 “이 K-문화와 예술의 저변에는 분명히 우리 천도교의 정신이 하나의 에너지로 작동하고 있다”면서 오늘의 K-문화 전성시대에 천도교의 정신과 예술은 K-문화의 ‘에너지이자 원류’로서, 이번 전시가 미래세대와 교단 예술인의 성장을 잇는 귀중한 장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또 전국의 동덕·청년·어린이 작가들이 함께한 이번 전시가 “교단 문화예술의 유종의 미를 거두는 뜻 깊은 시간”이 되기를 기원했다. 염정모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천도교는 ‘문화는 곧 국력’이라는 관점에서 문화예술 부흥을 지향하며, 사회에 공헌하는 차원에서 예술명인 모심전을 개최하고 있다”면서 제6회 인내천 명인모심전에는 전국의 예술 명인 150명이 천도교경전과 3·1정신, 민족의 정체성을 고양하는 작품을 출품하였다고 밝혔다. 염 회장은 “천도교의 지속적인 문화예술 사랑과 지원은 작가들에게 창작 의욕을 북돋우고, 발표의 장을 제공해 국민 정서 순화와 국가 정체성 고양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면서 ‘문화보국’의 관점에서 지원을 해준 천도교 주옥같은 작품으로 참여해 주신 명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1부 마지막 행사로 개막을 알리는 테이프 커팅에 이어, 2부 기념공연 순서가 진행되었다. 먼저 염정모 미술인회 회장은 즉석에서 ‘포덕천하(布德天下)’ 서예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을 선보여 참가자들의 환호와 박수를 자아냈다. 모든 관람객 숨죽이며 지켜보는 가운데 한 획 한 획 써내려가는 염 회장의 모습은 경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였다. 이어 이관수 동덕(미술인회 감사)이 기타 및 하모니카 반주와 함께 가요와 가곡을 연주하여 전시장은 시와 그림, 글씨와 노래가 어우러진 풍성한 자리였다. 한편, 이번 전시에서는 ‘역대 어린이·학생 수상자 작품 지상전’과 ‘미래세대 어린이·학생 작품전’이 함께 마련되어 의미를 더했다. 수십 년간 이어져온 어린이·청소년 미술 공모전의 성과를 되돌아보고, 미래세대의 창의적 표현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로서 많은 관람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그려낸 생명·평화·모심의 세계는 어른 예술가들의 작품과 조응하며 전시의 폭을 한층 넓혔다는 평가다. 천도교미술인회는 “앞으로도 예술을 통한 교단 문화 확산과 인내천 정신의 현장 구현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참가자들인 “이번 전시회가 교단 안팎의 다양한 예술적 흐름을 공유하고, 미래세대와 함께하는 ‘수운문화제’의 새로운 지평을 보여주었다”면서 “종교·예술·삶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전시”라는 소감을 밝혔다. -
서운포, 해월 신사의 숨결 따라 정선 동학 유적지 순례서운포(도훈 윤석산)는 지난 10월 17일부터 18일까지 1박 2일 일정으로 강원도 정선 일대의 동학 유적지를 순례했다. 이번 답사에는 서울교구 교인을 중심으로 여주교구와 인근 교구 교인 30여 명이 함께했다. 첫날 정오 무렵, 정선 현지에 도착한 답사단은 고종호 전 정선문화원 사무국장의 안내로 황기족발과 정선의 향토 음식인 콧등치기국수로 점심 식사를 했다. 이후 5일장이 열리는 정선아리랑시장을 방문해 활기 넘치는 재래시장을 구경하는 한편, 현지 농가에서 재배한 농산물 등을 구매하기도 했다. 또 아리랑센터에서 매주 토요일 상설 공연하는 「뗏꾼」을 단체로 관람한 후 가리왕산 케이블카를 타고 정선의 가을 절경을 감상했다. 한편, 서운포 답사단이 정선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정선 도접주 유시헌의 증손자 유돈생 어르신이 답사단을 찾았다. 올해 90세인 유돈생 어르신은 정식으로 입교는 하지 않았으나 평소 주문과 수련 등 수행을 계속해왔으며, 윤석산 도훈은 이 자리를 빌려 유돈생 어르신의 복교식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첫날 저녁에는 숙소인 파인포레스트 정선알파인리조트 구내식당에서 회합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는 일부 참가자들의 소감 발표와 함께 윤석산 도훈이 서운포의 유래를 강의하는 등 깊은 교감의 시간이 이어졌다. 이번 답사 진행에 큰 도움을 준 고종호 선생은 윤석산 도훈과의 특별한 인연을 언급하면서 정선문화원 사무국장직에서 물러난 지금도 동학을 향한 열정이 식지 않았음을 열띤 발언으로써 증명했다. 둘째 날 아침, 숙소에서 아침 식사를 마친 일행은 맨먼저 정선군 화암면 미천리에 자리한 싸내(米川) 유적지를 방문했다. 이곳은 수운 최제우 대신사의 부인 박씨 사모님이 해월 최시형 신사의 도움으로 피신해 살다가 환원하신 곳으로, 정선 지역 동학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최인경 사회문화관장은 “싸내는 동학의 여성사와 신앙공동체의 뿌리를 함께 보여주는 성지”라며 그 유래를 설명했다. 그다음으로 찾은 곳은 정선 남면 무공리 무은담터였다. 무은담은 해월 신사가 포덕 16년(1875) 설법제와 포덕 17년(1876) 구성제 등 주요 의식을 거행했던 장소로, 동학 교단의 재건이 시작된 역사적 현장이다. 최인경 사회문화관장은 “이곳에서 해월 신사는 ‘사람이 곧 한울’이라는 가르침을 실천적 신앙으로 확장했다”며 “무은담은 동학 교단이 다시 일어선 출발점이자 ‘시천주’의 뜻이 생활 속에서 구현된 자리”라고 전했다. 특히 무은담은 정선 도접주 유시헌이 해월 신사를 직접 모시며 동학 교문을 재건한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유시헌은 포덕 19년(1878)년 이곳에서 『도원기서』 편찬과 『동경대전』 간행에 참여했으며, 그의 집은 정선 교단의 비밀 포교처로 쓰였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윤석산 도훈이 집필한 『도원기서 역주』와 포덕 163년(2022) 동학역사문화선양회에서 설치한 유시헌 부자 안내판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답사의 마지막 코스는 해월 신사가 포덕 13년(1872) 가을, 49일간 특별기도를 올린 적조암이었다. 이곳은 해월 신사가 영월에서 정선으로 피신한 뒤 교단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며 ‘시천주’의 참뜻을 체득한 곳이다. 이번 순례를 준비한 윤석산 도훈은 “정선은 수운 대신사, 해월 신사, 의암 성사의 사상이 맞닿은 생명 신앙의 고장”이라며 “앞으로도 교단 차원의 정기 순례를 통해 동학의 생명력을 이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
“기억 너머, 실천으로: 강원동학21 발대식”강원도 지역의 동학 및 농민혁명의 정신과 역사를 계승하여 미래를 향한 실천을 목적으로 하는 <강원동학21> 발대식이 포덕 166년(2025) 오후 4시 홍천(크리스탈 연회장)에서 “기억 너머, 실천으로”를 주제로 출범을 선언했다. 이날 출범식은 천도교중앙총부, 홍천양수건설사업소가 후원하였으며, 총부를 대표하여 최인경 사회문화관장이 참석하여 출범을 축하하였다. 행사는 1부 발대식, 2부 131주년 동학혁명군 추모음악회, 3부 만찬 순으로 진행되었다. 발대식에서는 권소영 대표는 강원도 <강원동학 21> 출범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은 홍성기 도의원에게 감사패를 수여했다. 권소영 강원동학21 대표는 환영사에서 “강원도는 동학이 다시 시작하는 땅이었다. 동학은 존엄, 존중, 공존의 미래적 가치를 이미 160년 전에 선취하고 있으며, 1894년 동학혁명으로 실천의 역사를 이루었다. 그 정신을 되살려 오늘 이후 동학을 강원특별자치도의 정신적 정체성으로 확립하기 위하여 <강원동학21>을 출범하게 되었다. 앞으로 기념사업, 교육연구, 문화콘텐츠 개발, 공동체운동, 관광과 국제교류’까지 폭넓은 활동을 전개해 나가겠다.”고 비전을 밝혔다. 발대식에는 최인경 천도교중앙총부 사회문화관장을 비롯하여 홍성기 강원도 도의원, 신영재 홍천군수, 박영록 홍천군의회 의장, 최낙인 홍천동학농민혁명 유족회장을 비롯한 지역 유지와 지역 주민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강원동학21>은 오랫동안 홍천군 서석면 위령탑 앞에서 위령제를 진행하는 외에 강원도의 다른 지역을 망라한 특별한 사업을 벌이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확대 개편을 통해 강원 동학의 미래를 새롭게 열어가기 위해 지역 유지들의 뜻을 모아 출범하게 된 것이다. 2부 추모음악회는 1섹션 “1894년 그날” 2섹션 “지금 여기” 3섹션 “미래를 향해”라는 주제로 오케스트라 연주와 <앙상블 누리>의 합창공연으로 진행되었다. 최인경 관장은 “<강원동학21>이 출범하기까지 중앙총부는 물밑 지원을 계속해 왔다. 강원도는 물론이고, 경상도, 전라도, 경기도 각 권역별로 동학 관련 사업과 단체들이 활발하게 활동함으로써 동학-천도교의 저변을 확대하여 K-동학의 전국화와 세계화를 목표로 앞으로도 지원과 연대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청년회·대학생단, 동천고 ‘모시고 동학부’와 1박 2일 역사·문화캠프 진행천도교 청년회와 대학생단은 지난 11월 1일(토)부터 2일(일)까지 동천고등학교 ‘모시고 동학부’ 학생들과 함께 1박 2일 역사·문화 체험캠프를 진행하였다. 이번 캠프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마련된 행사로, 청년 교화와 미래세대 육성 사업을 지속적으로 확장하기 위한 취지에서 기획되었다. 첫째 날 참가자들은 한복을 대여해 창덕궁, 북촌 한옥마을, 운현궁을 둘러보며 우리 전통문화의 아름다움과 역사적 의미를 직접 체험했다. 저녁 시간에는 한강으로 이동해 간단한 식사와 여가 시간을 함께하며 소통의 시간을 가졌다. 둘째 날 일정은 덕수궁과 ‘하이커 그라운드’ 방문으로 시작되었다. 학생들은 복합문화공간을 탐방하며 현대적 감각의 문화예술을 접했고, 이후 천도교중앙대교당과 ‘어린이 운동 발상지’를 답사하여 천도교 역사와 교단의 정신을 배우는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청년회와 대학생단은 “이번 캠프는 청소년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하며 천도교의 가치와 문화를 공유하는 귀중한 자리였다”며 “내년에는 더 많은 청소년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앞으로도 미래세대를 위한 교화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며, 청소년들이 ‘사람이 하늘’이라는 동학·천도교 정신을 삶 속에서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마련할 계획이다. -
제암리·고주리 학살사건 106주년 기획전 ‘1919.4.15, 빛을 향한 시간들’ 개막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은 11월 5일(수) 오후 3시 30분, 제암리·고주리 학살사건의 기억과 추모를 주제로 한 기획전시 〈1919.4.15, 빛을 향한 시간들〉의 개막식을 개최했다. 이번 전시는 일제의 잔혹한 학살로 희생된 제암리·고주리 주민 29명의 넋을 기리고, 유족들의 증언과 기록을 통해 비극을 넘어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마련되었다. 학살의 현장에서 피어난 기억과 빛 1919년 4월 15일, 3·1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파견된 일본군은 제암리와 고주리 주민을 교회에 가두고 불을 질러 29명을 무참히 학살했다. 마을은 잿더미로 변했고, 참혹한 현장은 전 세계에 알려져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는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됐다. 이번 전시는 ▲‘그해 봄, 그 기억들’ ▲‘어둠을 넘어 빛으로’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삼일운동비사』, 《천도교월보》, 상해판 《독립신문》, 학살 현장 사진 등 역사 자료와 함께, 생존자 김금화의 증언과 영상 기록을 통해 그날의 비극을 되살린다. 2부는 1945년 이후 유족들의 추모와 복원 노력, 제암교회 재건, 기념비 건립 등 평화와 화해를 향한 행보를 담았다. “김금화의 눈으로 본 비극의 현장” 한동민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 관장은 “이번 전시는 제암리·고주리 학살사건의 최대 피해자 김금화의 눈으로 본 참혹한 순간을 조명하고, 진실 규명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유족들의 노력을 담고자 했다”고 밝혔다. 이어 “유족들의 증언, 영상, 사진 등을 통해 우리는 함께 역사적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며 “특히 이번 전시를 위해 자리를 제공해주신 천도교 강병로 종무원장, 제암교회 최영훈 목사, 자료를 제공한 김덕룡 순국소년의 후손 김명기 님, 안경순·안상용 순국사 후손 안용욱 님, 유영수 님, 그리고 ‘1945년 제암동 학살 희생자 추도의 제’를 최초로 전시 공개한 박현철 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전했다. 역사를 잊지 않는 것이 미래를 여는 길 이날 개막식에 참석한 천도교 중앙총부 강병로 종무원장은 축사에서 “화성시는 전국에서도 가장 치열한 독립운동의 현장이며, 이곳에서 벌어진 제암리·고주리 학살은 민족의 아픔이자 정의의 불씨였다”고 강조했다. 이어 “단재 신채호 선생이 말씀하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경구처럼, 역사의 기록보다 기억이 더 중요하다”며 “광복 80주년을 맞은 올해, 선열들의 숭고한 애국정신과 인내천의 가르침을 되새기고 다음 세대에 계승하기 위한 이번 전시의 의미가 매우 깊다”고 말했다. 또한 “특히 3·1운동 당시 천도교 지도자였던 김흥열 선도사님의 후학으로서, 선도사 일가의 희생을 추모하며 그 나라사랑 정신을 잇는 이 전시가 매우 뜻깊다”며, “이 땅에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전시의 메시지가 시민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번 전시는 비극의 어둠을 넘어 평화의 빛으로 나아가는 시간여행이다. 제암리와 고주리의 아픔을 기억하고,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기원하는 이번 전시는 우리 모두에게 기억의 책임과 평화의 다짐을 일깨운다. ■ 전시 개요 전시명: 〈1919.4.15, 빛을 향한 시간들〉 기간: 2025년 11월 5일(수)부터 상설전시실 특별전시관 장소: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 관람시간: 10:00~18:00 (입장마감 17:00)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추석 당일 문의: 031-5189-1950 주소: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고주로 34 -
“동학 정신을 우리 삶의 가치철학으로 가져가는 것, 그것이 제 꿈이자 바람”나이 마흔에, 서울살이를 끝내고 강원도 홍천 서석면에 새로 둥지를 튼 권소영 대표는 원래 동학과 특별한 인연이 없었다. 프랑스 출장길, 관계자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친 프랑스혁명을 뛰어넘어, 세상 모든 존재의 존엄성을 인정한 동학사상에 대해 현지인들에게 설파한 뒤, 그다음 날 회의가 믿기지 않을 만큼 술술 풀렸던 경험이 동학과의 인연이라면 인연일 터였다. 한데 2007년, 그가 살러 온 홍천 서석면 풍암리가 동학혁명 전적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아, 인연이 오려는 길이었구나.” 하고 직감했다. 홍천에 내려온 뒤에는 마을 주민들 요청으로 4년 동안 아이들에게 동학과 동학혁명을 이야기했다. ‘시천주’ 사상에 담겨 있는 존엄과 평등, 공존과 존중을 가르쳤다. 홍천에 자리 잡을 때만 해도 집안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대상으로 코칭도 하고 인성과 실력을 겸비한 인재를 키우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2017년, “동학 사업을 좀 키워보자”는 서석면 면장의 제안으로 국가유산청 공모사업에 나선 것이 본격적으로 ‘동학 사업’에 뛰어든 계기가 됐다. 이후 홍천 서석면 풍암리 동학혁명군 전적지를 알리는 프로그램을 구상하기 시작해, 2024년까지 동학혁명 전적지 탐방, 휘호대회, 백일장, 보드게임, 메모리카드, 동학탑놀이, 동경대전·용담유사 목활자 퍼즐, 선양극과 추모음악회, 명상과 심리 치유 프로그램 등 수많은 콘텐츠를 탄생시켰다. 그 무수한 콘텐츠의 아이디어 창구이자 이를 실제 구현으로 이끈 장본인이며, 11월 6일 발대식을 갖는 '강원동학21'을 이끌어나갈 권소영 대표를 만나, 그의 삶과 동학, 앞으로의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터뷰 진행: 노은정 전 편집장) ▶ ‘강원동학21’이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와 단체 설립 과정, 지금까지의 주요 활동을 소개해 주신다면? ‘강원동학21’이라는 이름에 세 가지 축을 담았습니다. 하나는 강원 지역 동학의 역사예요. 인제, 정선, 영월, 평창, 원주, 강릉, 고성, 홍천 등 곳곳에서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고, 「동경대전」이 발간되고 보국안민의 기포가 다시 일어난 지역이기도 합니다. 둘째는 동학의 핵심 사상, 시천주와 삼경사상, 인내천과 사인여천 정신입니다. 셋째는 이 사상을 21세기 현재의 언어와 삶으로 풀어가겠다는 목표입니다. 그래서 ‘강원동학’ 뒤에 ‘21’을 붙였습니다. 제가 홍천에 온 지 20년이 되어 갑니다. 2017년에 당시 서석면 면장님이 제가 기획·컨설팅하는 걸 알고 “서석면에 동학혁명 유적지가 있는데, 이걸 제대로 키우고 싶다”며 동학 관련 사업을 제안하셨어요. 당시 서석면동학혁명추모사업회라는 이름은 있었지만, 주축 어르신들만 남아서 사실상 활동이 거의 없던 상태였어요. 한데 공모사업을 하려면 단체에 소속돼야 하니, “단체 이름을 좀 빌려 달라”고 요청했고, 그렇게 해서 2017년 국가유산청 지역유산활용사업에 선정되면서 본격적으로 동학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2017년부터 2024년까지 14개의 프로그램 개발은 거의 완성된 상태라고 할 수 있어요. 동학 정신을 서예로 표현하는 전국 휘호대회와 학생들이 동학농민혁명 과정을 공부하며 글을 쓰는 백일장, 역사 흐름과 인물을 게임으로 배우는 보드게임과 메모리카드, 시천주·존엄·존중·공경 같은 키워드를 몸으로 익히는 ‘동학탑놀이’, 「동경대전」과 「용담유사」 목활자본 퍼즐과 인쇄 체험, 지역주민이 만든 선양극과 추모음악회, 동학 아카데미, 초등학교 체험, 중학교 자유학기제 프로그램, 동학사상과 명상을 결합한 심리 치유 프로그램과 동학군 복장을 입어보고 행진하는 체험과 동학 관련 유튜브와 캐릭터, 이모티콘 대회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초등학생, 중·고생, 학부모, 마을 주민과 군인들까지 합치면 대략 5천 명 정도가 홍천 동학과 동학혁명을 경험한 것 같습니다. 이제는 이 기반을 바탕으로, 홍천을 넘어 강원 전역으로 확장하기 위해 ‘강원동학21’이라는 새 이름으로 출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 지금까지 개발해 오신 프로그램이 매우 다양합니다. 휘호대회, 보드게임, 심리 치유 프로그램, 음악회 등 조금 더 자세한 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저는 기획을 할 때 ‘한정된 틀’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예산 1,000만 원이면 2,000만 원 이상의 효과를 내야 한다는 마음으로 늘 고민합니다. 그래서 동학 프로그램들도 교육, 놀이, 예술, 심리를 한데 묶어 설계하고 있어요. 먼저 휘호대회는 강원도 교육감님께서도 칭찬하신 행사입니다. 대회에 참가하려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동학농민혁명의 전개 과정을 공부하게 되거든요. 그 과정에서 우리가 지금 누리는 민주주의와 인권이 어디서 왔는지를 생각해 보게 되고, 글씨에 담긴 마음도 달라집니다. 지금까지 다섯 번 진행했습니다. 심리 치유 프로그램은 동학사상을 현대 심리학 기법과 결합한 것입니다. 참가자들이 시천주·삼경사상, 수심정기를 체험형으로 접하도록 설계해서, 프로그램이 끝나면 마음이 굉장히 차분해졌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습니다. 이건 제가 아이들 코칭과 부모 상담을 오랫동안 하면서 쌓은 경험과 동학 공부가 만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축이 음악회입니다. 저는 어릴 때 클래식을 전공해볼까 고민할 정도로 음악을 좋아했습니다. 지금도 해마다 동학 스토리텔링 음악회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이번 11월 6일 강원동학21 발대식에서도 음악과 동학 이야기를 엮으려 합니다. 이번 행사에서 첫 곡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시작합니다. 인트로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내가 어떤 존재인지 돌아보게 되는 자각의 느낌이 있거든요. 이어서 「나 하나 꽃 피어」라는 가곡이 불립니다. 나 혼자만 피어서는 숲이 되지 않지만,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꽃을 피울 때 어떤 세상이 열리는지를 동학 정신과 연결해 설명하지요. 또 영화 「미션」에 나오는 「가브리엘스 오보에」를 들려줍니다. 이 곡을 들으며 동학군들이 목숨 걸고 지켜낸 존엄과 평화의 가치를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다는 메시지를 나눕니다. 이렇게 곡마다 스토리텔링 해설을 붙입니다. 음악적 분석만이 아니라 이 곡이 동학과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감응 매치하여 이야기하면, 관객들이 깊게 공감합니다. “난 동학은 어려운 줄 알았는데, 이렇게 들으니 마음이 편해진다”고 하시죠. 아이들 교육 프로그램에서도 비슷합니다. 밥을 먹을 때 “농부가 쌀을 안 만들었으면 우리는 어떻게 했을까?”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엄마가 밥을 해 줄 때와 안 해 줄 때의 차이, 그 사이의 정성과 마음을 아이들이 스스로 깨닫게 하면, 생각의 폭과 깊이가 확실히 달라집니다. 저는 그 과정을 ‘동학식 수심정기 교육’이라고 부릅니다. ▶ 최근 홍천군의회 본회의에서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 지원 조례안’이 부결되면서 지역사회에서도 논란이 있었습니다. 당시 어떤 생각이 들었고, 이후 어떤 대응을 준비하고 계신지요?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는 말씀드린 대로 어이없기도 하고, 화도 많이 났습니다. 그동안 쌓아 온 기념사업과 주민들의 호응, 전국적인 평가를 생각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었거든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동학 정신을 이야기하는 내가, 동학이 말하는 수심정기와 시천주를 어느 만큼 실천했는가를 먼저 돌아보게 됐습니다. 일부에서는 군의회 내 갈등, 몇몇 기사에 따른 감정적 반향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그동안 해 온 활동의 진정성과 필요성을 더 깊이 이해시키는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지금은 2026년 재발의를 목표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군의회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기념사업의 의미와 내용, 강원특별자치도 조례와의 연계, 홍천이 갖는 상징성을 차분히 설명할 예정입니다. 또 하나는 추모일에 대한 인식의 차이입니다. 동학농민혁명 관련 추모일이 양력 10월 23일로만 알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은 음력 10월 23일입니다. 올해부터는 이 부분도 바로잡고, 음력 추모일을 기준으로 강원동학21이 준비하는 추모·기념 행사를 체계화해 보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과 논쟁도 결국 조금 더 좋은 길로 가기 위한 성장통이라고 보고, 끝까지 책임 있게 풀어가려 합니다. ▶ 조례 제정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조례가 통과될 경우 지역사회와 동학 기념사업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시는지요? 조례는 결국 공공의 약속입니다. 강원특별자치도에는 이미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 조례’가 있어서, 큰 틀에서 강원동학21 사업을 하는 데 제도적 장애는 없습니다. 하지만 홍천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의 실제 무대는 홍천군입니다. 홍천군에 조례가 제정되면, 다른 시·군에 선도적인 모범 사례가 될 수 있고, 기초자치단체가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과 동학 정신 계승을 법적 책무로 인식하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민간의 열정과 자발적 재능기부에 의존한 측면이 크다면, 조례 제정 이후에는 예산·인력·교육·관광 정책과의 연계가 훨씬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동학 정신을 강원도 정체성의 한 축으로 삼겠다는 공적 선언이 되는 셈이지요. ▶ 강원동학21이 비영리 사단법인, 궁극적으로 재단법인 설립을 추진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현재 추진 상황과 법인화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인지요? 현재는 비영리 사단법인 설립을 준비하고 있고, 최종 목표는 재단법인화입니다. 사단법인은 사람 중심의 조직이고, 재단법인은 재정과 자산을 기반으로 한 안정적인 플랫폼입니다. 강원동학21이 장기적으로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 재단법인이 꼭 필요합니다. 지금은 강원도 곳곳에서 동학과 동학 정신에 공감하는 분들을 모아 ‘강원동학21 재단법인 추진위원회’를 꾸리고 있습니다. 이 법인을 통해, 재정적 안정화를 이루고, 동학 해설사, 강사, 프로그램 기획자 등 전문 인력을 양성하며, 학교·지자체·문화재단·시민단체·천도교 교구와의 협력 구조를 정비해, 동학 정신을 강원의 정체성과 공동체성으로 뿌리내리게 하는 플랫폼을 만들고자 합니다. 특히 저는 천도교 입교 여부와 상관없이, 현대화된 동학 정신을 삶의 철학으로 전하고 싶어 하는 일반인들의 네트워크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동시에 천도교중앙총부와도 마인드 교육, 직무·인성 교육 등에서 협력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천도교도 함께 알려지고, 강원도의 정체성 확립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 강원 지역의 동학 유적을 잇는 ‘동학길’ 사업과 2027년 해월 최시형 신사 탄신 200주년을 앞두고 준비 중인 계획이 궁금합니다. 강원동학21이 준비하는 큰 축 중 하나가 ‘강원 동학길’ 역사 투어예요. 원주–홍천–인제 권역, 홍천–평창–횡성 권역, 홍천–고성–강릉 권역, 홍천–영월–정선–원주 권역으로 나누어 1박 2일 또는 2박 3일 코스를 구상하고 있어요. 단순히 “여기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설명하는 수준이 아니라, 동학농민혁명 전개 과정과 시천주·삼경사상, 인내천·사인여천의 의미를 몸으로 느끼는 여행이 되도록 설계 중입니다. 특히 2027년 해월 최시형 선생 탄신 200주년을 앞두고, 해월 선생 평전을 쓴 분들의 책을 거의 다 구입해 읽었습니다. 그 내용을 바탕으로 해월 신사의 삶과 사상을 담은 선양극·뮤지컬 시나리오를 세 편 정도 써 두었고, 앞으로 검토를 받아 무대에 올려보려 합니다. 해월 선생이 걸었던 길을 실제로 따라가며, 공연과 강의, 명상과 음악을 결합한 프로그램을 ‘해월의 길을 따라서’라는 이름으로 강원도와 함께 개발하는 것이 목표예요. 이 과정에서 춘천교구, 원주교구, 강릉교구 등 강원 지역 천도교 교구들과의 네트워크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합니다. 각 교구가 지닌 역사와 인적 자원을 살리면, 교구 입장에서도 창조적인 선도 역할을 할 수 있고, 강원동학21은 종교색을 과도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동학·천도교의 가치를 넓게 알릴 수 있다고 봅니다. ▶ 여러 자리에서 “정치는 멈춰도 동학 정신은 멈출 수 없다”고 말씀해 오셨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동학 정신은 어떻게 되살아나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동학은 1860년 수운 최제우 선생께서 창도하신 이후, 해월 최시형 선생, 의암 손병희 선생으로 이어지는 차원이 다른 생각의 가치혁명이었습니다. 희망이 거의 없던 시대에 ‘하늘이 사람 안에 있다(시천주·인내천)’는 말은 글자 그대로 빛이었죠. 지금 우리는 겉으로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누리는 것 같지만, 자기 삶의 주권을 온전히 행사할 자질은 오히려 부족해진 부분을 많이 보곤 합니다. 무엇이 잘못되면 환경과 타인 탓만 하고, 정치·사회적 문제도 내 마음과는 별개라고 생각하지요. 시천주 사상은 한울님을 모시기 위해 수심정기, 마음을 닦고 기운을 바로 세우라고 가르칩니다. 삼경사상은 만물을 공경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저는 이걸 오늘의 언어로 정리하면 존엄, 존중, 공존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자기 자신을 존엄한 한울님으로 여기며 수심정기를 실천하고, 타인과 다른 존재들을 존중하는 태도를 기르고, 함께 어우러지는 공존을 목표로 삼는 것. 소통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소통 이전에 존중이 없습니다. 만나서 각자 자기 말만 하고 돌아가면서 그걸 대화라고 부르기도 해요.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과 감정이 앞서다 보니 조율과 조화가 설 자리가 적습니다. 그래서 저는 동학 정신을 AI 시대, 포스트휴먼 시대의 K-철학, K-동학으로 정리하고 싶어요. 인간의 존엄과 마음의 평화, 타인과 자연과의 공존이라는 동학 정신이 오늘의 사회 가치로 뿌리내린다면, 정치적 양극화와 혐오, 차별, 공동체 붕괴 같은 문제의 뿌리가 조금씩 바뀔 수 있지 않을까요? ▶ 조직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가장 크게 느끼는 어려움, 그리고 시민사회나 지방정부, 중앙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서석면동학혁명추모사업회는 1976년부터 있었지만, 오랫동안 일부 주축 인물 중심으로 돌아가며 조직의 임무와 기능, 목표와 가치가 거의 사장된 상태였어요. 2018년부터 제가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공모사업을 따오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예산을 끌어오며 조직의 틀을 새로 짜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서석면 원주민도 아니고, 여성, 그것도 아줌마라는 이유로 괜한 트집과 반발을 겪기도 했습니다. 서석면 안에만 동학을 가둬두고 싶어 하는 분들은 “왜 홍천 전체를 대상으로 하느냐, 왜 강원 전체를 이야기하느냐”며 반대하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같이 일하자”고 나서는 사람보다, 멀찍이 서서 지켜보거나 트집을 잡고 험담하는 사람이 더 많은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참 많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시·군이나 도 단위에서 이 사업을 바라보는 분들은 ‘너무 필요한 일’이라고 평가해 주시더라고요. 사회 문제와 조직 문제로 고민하는 리더들은 동학 정신 계승 사업을 보면서 “우리 지역에도 이런 게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가까이에서는 홀대받고, 멀리서는 부러움을 사는 모습이 종종 헛헛하게 느껴지기도 하지요. 앞으로는 강원동학21 발대식을 계기로, 강원 지역의 뜻있는 인재와 명망 있는 추진위원들을 적극적으로 모실 생각이에요. 시민사회에는 “이건 종교 이야기가 아니라 삶과 공동체의 가치 이야기”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고, 지방정부에는 “정신문화의 토대가 튼튼해야 지방자치도 성공할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중앙정부에는 동학 정신을 전국적 가치로 확산하는 데 꾸준한 관심과 지원을 요청드리고 싶고요. ▶ ‘동학’과 ‘예술’을 결합한 문화기획이 권 대표님만의 강점인 듯합니다. 앞으로 꿈꾸는 음악·예술 프로젝트와 5년 안에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지요? 저는 동학을 책 속의 사상으로만 두고 싶지 않아요. 노래와 연극, 클래식과 국악, 뮤지컬, 영상과 유튜브 채널 등 사람들이 실제로 감동하고 눈물을 흘릴 수 있는 형식으로 전하고 싶습니다. 이미 홍천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유튜브 채널을 통해 여러 공연과 강연, 프로그램을 올리고 있고, 이번 강원동학21 발대식에서도 클래식과 동학 스토리텔링을 결합한 음악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는 전문 음악인들이 “우리끼리만 좋다”고 만족하는 데 머무르면 확장이 안 된다고 늘 말합니다. 예술은 결국 남이 듣고 감동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앞으로 5년 안에, 강원동학21을 재단법인으로 세우고, 해월 최시형 선생 탄신 200주년에 맞추어 해월 선생 선양극·뮤지컬을 무대에 올리고, 정치·사회·교육·문화·예술 전반에 동학 정신을 녹여낸 가치 프로젝트를 단계별로 수행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개인적으로 ‘21세기형 동학운동’을 거창한 혁명으로 보지 않습니다. 각자가 스스로를 존엄한 한울님으로 여기고, 그 눈으로 타인과 자연을 바라보는 순간부터 이미 개벽은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명상도 결국은 ‘자기라는 한울이 자기 마음을 경계하는 과정’이니까요. 그렇게 보면 매일이, 지금 이 순간이 이미 동학운동의 현장입니다. 강원동학21이 그 현장에서 작은 촛불이 될 수 있다면,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가 “강원도에는 동학으로 공동체를 다시 세우려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기억하고 느리지만 또 저 같은 분이 나오셔서 이어간다면, 저는 그걸로 충분합니다. 그 기억을 남기는 일도 있지만 누군가의 사명으로 넘겨주는게 제 마지막까지의 과업이라고 생각하고, 오늘도 한 걸음씩 걸어가고 있습니다. -
부산·울산 남정포 야외시일, 7년 만에 재개부산·울산 지역 교인들이 11월 2일(일) 남정포 일대에서 야외시일을 봉행하며 깊은 교감과 따뜻한 정을 나누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이번 야외시일은 지난 2018년 을숙도 야외시일 이후 코로나19로 인해 중단되었다가 7년 만에 다시 진행된 행사로, 부산지역 19명(어린이 포함), 울산지역 7명 등 총 26명의 교인이 참석하였다. 참석자들은 “오랜만의 야외시일이라 더욱 반갑고 기쁘다”고 입을 모으며, 앞으로는 더 자주 이런 자리를 마련하자는 뜻을 함께 나누었다. 정성으로 준비한 야외시일… 깊은 감응을 이끌어내 이번 행사는 울산유허지–점심(누마루)–고래박물관–언양 인내천바위 순으로 진행되었으며, 가을 햇살에 물든 단풍과 청명한 하늘, 장생포 바다와 고래마을 풍경이 어우러져 천도교의 영성을 깊이 체하는 시간이 되었다. 기획부터 마무리까지 세심하게 챙기고, 점심 식사와 해설까지 정성으로 준비한 정의필 도정, 감동적인 설교로 좌중을 울림으로 채워준 이용 도훈, 행사를 총괄한 수암 정의수 교훈님, 회계 결산을 맡은 예암 고봉섭 부산시교구 교화부장, 행사 촬영을 맡은 이덕오 동덕, 집례와 기념수건을 준비한 울산 중암 최중식 전 울산교구장 등 많은 이들의 정성과 봉사가 더해져 더욱 감동적인 시일식이 되었다. 행사에 함께한 교인들은 “따스한 온기를 나누며 마음이 환해지는 날이었다”, “강행군의 피로가 녹아내릴 만큼 행복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특히 가을빛이 절정에 이른 울산유허지와 장생포 고래박물관, 언양 인내천바위 일대에서 함께한 시간은 동덕들의 믿음을 더욱 단단하게 하고, 서로의 마음을 잇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11월 2일 봉행한 시일식은 중암 최중식 신훈의 집례, 이용 도훈의 설교, 경전봉독은 허혜당 허채봉 신훈이 맡았다. 가을의 정취 속에서 열린 이번 부산·울산 남정포 야외시일은 한울님의 도심(道心)을 다시금 새기는 소중한 시간이었으며, 참석자 모두에게 잊지 못할 감응과 기쁨을 안겨주었다. -
[칼럼] 태안 동학혁명을 기억하는 길지난 10월 29일 『태안동학농민혁명사』가 간행되어 출판기념식이 열렸다. 집필자의 한 사람으로 지난 여름 땡볕에 구슬땀을 흘리며 태안의 동학농민혁명 유적지를 답사한 결실을 보게 되어 기쁘다. 둘러보니 태안(泰安)은 글자의 뜻 그대로 ‘태평하고 안락한’ 곳이었다. 높고 거친 산이 없이 백화산을 중심으로 뻗어나간 모습에 포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해안과 내륙을 겸비한 태안은 전통적으로 물산이 풍부한 곳이다. 선사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태안은 삼한 시대 신소도국(臣蘇塗國)이었다. 삼한은 지금의 직산에 근거한 목지국(目支國)이 통괄했는데, 신소도국은 목지국의 제천행사인 소도를 주관했다고 한다. 그런 측면에서 태안은 신성하고 종교적인 지역이었다. 고려시대 태안으로 이름을 고친 이후 일제강점기 한때 서산에 편입되었다가 1989년에 태안군으로 회복되었는데 그 이유는 동학농민혁명이 거세게 일어났던 곳으로 격하했기 때문이었다. 충청도 서부의 동학은 1880년 공주를 시작으로, 1883년에는 내포의 동학을 이끌었던 삽교의 박인호와 아산의 안교선 등이 입교해 포덕의 발판을 마련했다. 은밀하게 교세를 유지하던 태안을 포함한 내포 일대의 동학은 1890년 들어 급성장했다. 이때 서산의 최형순은 교주 해월이 서산을 방문했을 때 입도해 서산과 태안 일대에 동학을 전했다. 특히 교조신원운동이 한창이던 1893년 2월 박희인 대접주가 그릇 장수로 변장해 방갈리 가시내에서 조운삼을 입도시켰고, 이어 방갈리 갈머리 마을의 문장준, 문장로, 문구석 등을 입도시켜 태인 동학의 중심인물로 키웠다. 물산이 풍부한 태안은 탐관오리의 가렴주구가 극에 달했고 동학의 시천주와 유무상자의 정신은 태안인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태안의 동학은 원북면 방갈리, 근흥면 수룡리, 이원면 포지리가 특히 강했다. 그 이유는 지리적 조건과 신망있는 지도자 등이 갖추어졌기 때문이었다. 특히 박희인은 방갈리 문구석, 가시내 조문필, 수룡리 문동하의 집에서 동학 교리를 가르쳤다. 태안의 동학도는 보은 장내리의 신원운동에 참여할 정도로 성장했다. 1892~3년 교조신원운동 시기를 거치면서 박인호는 덕의대접주, 박희인은 예산대접주로 임명되어 내포 일대에 상당한 세력을 형성했다. 동학 세력이 커지자 태안부사 신백희는 충청감사 조병식과 공모해 태안 관내의 동학도로부터 속전(贖錢, 죄를 면하기 위해 바치는 돈) 6만6천 냥을 강제징수하는 횡포를 부렸다. 조석헌과 문장준을 중심으로 태안의 동학은 2~3년 만에 급성장했다. 태안을 포함한 내포의 동학도들은 새로운 세상을 염원하며 시천주를 가까이 했다. 1894년 1월 고부에서 전봉준이 기포(起包)하자 내포의 동학도는 2월 6일 전직 고관 출신 이정규의 팀힉과 수탈에 저항하는 덕산기포를 감행했다. 내포 최초의 동학농민혁명인 덕산기포는 4월 농민을 괴롭히던 토호 이진사의 응징을 위한 원벌기포로 이어졌다. 태안은 내포 동학의 핵심으로 전라도의 동학농민혁명과 호응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전봉준이 전주화약으로 타협한 후 내포의 동학도는 시세를 관망했다. 그러나 일본군의 경복궁 침탈과 청일전쟁으로 상황이 급변하였고, 평양 전투에서 승기를 잡은 일본군은 조선 정부에 동학군 탄압을 승인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이어 전봉준을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삼례에 대도소를 설치했고, 교주 해월은 9월 18일 총기포령을 내렸다. 태안의 동학도는 해월의 총기포령을 기다려 분연히 일어났다. 10월 1일 내포의 동학군은 서산 관아를 점령해 군수 박정기를 처단했다. 이튿날인 2일에는 태안 관아를 공격해 부사 신백희와 안무사 김경재, 이방 송봉훈을 처단하고 사전에 붙잡힌 동학접주 30여 명을 구출했다. 이후 내포 동학군은 대흥군 관아를 점령하고 홍주성을 차지하기 위한 준비에 나섰다. 홍주 목사 이승우는 예포 대도소를 습격해 어려움을 겪었다. 흩어졌던 태안의 동학군은 10월 15일 태안 경이정에서 재집결했다. 승기를 잡은 관군과 일본군은 내포 동학군을 추격했고, 동학군은 이들을 승전곡으로 유인해 크게 무찔렀다. 승전곡 전투 승리는 일본군에 대한 최초의 승전이었다. 이어 내포 동학군은 관작리 전투에서 승리하고 홍주성으로 향했으나 일본군의 우세한 무기와 전술로 인해 패배했다. 이후 동학군은 해미성, 매현에서 거듭 패했다. 태안의 동학군은 매현 전투 이후 백화산에서 최후의 항전에 돌입했다. 일본군과 관군은 백화산을 포위해 동학군을 고립시켜 몰살시키려 했다. 백화산의 동학군은 동짓달의 추위 속에서 굶주림을 견디며 11월 11일부터 16일까지 치열하게 조・일 연합군과 항전했으나 끝내 새 세상을 보지 못한 채 산화했다. 백화산 동학군들은 비록 역부족이지만 구차하게 삶을 구걸하지 않고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이후 태안에서는 대대적인 동학군 체포와 참혹한 학살이 곳곳에서 자행되었다. 지금의 태안 동학농민혁명기념탑이 있는 백화산의 교장(絞扙) 바위에서는 동학군 수백 명을 붙잡아 10여 명씩 포승으로 묶어 목을 조르고, 몽둥이로 때려 죽였다. 백화산 북쪽의 모래기재, 태안여고 개울, 샘골 마을, 남문리 냇가, 정주내 등 여러 곳에서 동학군이 잔인하게 학살되었다. 근흥면 토성산에 숨어든 동학군은 총개머리로 잔인하게 때려죽였고, 작두로 머리를 잘랐다. 산 아래로 던져진 머리는 집 추녀에 매달았다. 산 사람을 집에 가두고 방화하는 만행도 저질러 토성산은 도살장을 방불케했다. 다소 장황하게 태안을 포함한 내포의 동학혁명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에 대해 아는 이가 적고 한편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전라도를 중심으로 이야기되는 동학혁명에서 충청도의 서부 태안에서 전개된 동학혁명은 그에 못지않게 크게 전개되었다. 태안을 포함한 내포 지역에서만 대접주(大接主)가 박인호, 박희인, 최형순, 장세헌, 한영교 등 5명일 정도로 내포의 동학군 조직은 탄탄했다. 태안군에 한정해서 보면 수접주(首接主)가 11명, 차접주(次接主)가 1명, 접주(接主)가 55명, 접사(接司)가 28명, 접장(接長)이 1명이었고, 육임(六任)의 직책으로 도집(都執) 14명, 집강(執綱) 2명, 대정(大正) 3명, 중정(中正) 3명, 이밖에 다른 호칭의 직책 등 동학군을 이끌었던 지휘부만 121명에 달했다. 이처럼 태안의 동학혁명은 장엄했다. 태안의 동학혁명에 관한 내용이 잘 정리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지역 동학군의 기록과 이를 이은 후예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태안 동학혁명을 이끌었던 조석헌은 『조석헌역사』, 문장준은 『문장준역사』를 남겨 동학군의 시각으로 바라본 동학혁명의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태안은 해방 후 전국에서 대표적으로 동학혁명에 관한 기록을 정리한 곳이다. 1965년 천도교 태안교구 문원덕 교구장은 『갑오동학혁명 당시 순도한 순도자 명단』를 작성했다. 문 교구장과 교인들은 동학혁명 참여자의 후손을 일일이 찾아 당시의 기록을 정리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동학정신선양회’를 조직해 태안의 동학혁명을 숭고한 뜻을 기리는 일에 앞장섰다. 태안의 동학군 후예들은 힘을 모아 1977년 교장바위에 “갑오동학혁명군추모탑”을 건립했다. 문 교구장은 토성산에서 동학군의 목을 자르던 작두를 발굴해 천안 독립기념관에 기증했다. 이 작두는 동학군 학살의 유일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뒤를 이어 ‘동학농민혁명태안유족회’를 이끌었던 문영식 등의 노력으로 2015년에는 태안 동학의 중심지인 원북면 방갈리 태안 화력발전소 내에 “동학농민혁명기포지” 비를 건립했다. 60여 년간 꾸준하게 태안의 동학혁명 선양 노력이 결실을 맺어 2021년 10월 22일 전국 지자체로는 3번째로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이 동학군이 순절한 백화산 아래 건립되었다. 그러나 태안의 동학혁명의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 여름 답사를 다녀보니 아직 태안 동학혁명 유적 가운데 제대로 정리된 곳은 교장바위와 방갈리, 태안 관아 정도 밖에는 없었다. 동학군이 학살된 토성산, 태안 동학군이 집결한 진벌, 동학군이 학살된 모래기재와 개구랑, 통개, 목네미샘, 정주내 등에는 이곳이 동학혁명의 유적임을 알리는 표식이 하나도 없다. 통개에는 고사리손으로 만든 작은 나무 팻말이 하나 있었다. 이런 점에서 아직 태안의 동학혁명은 진행 중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태안이 동학혁명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까지 태안은 그 어느 곳보다 동학혁명의 역사를 지키려고 애쓴 곳이다. 이제 이에 대한 답을 우리들이 해야 하겠다. 태안 동학혁명 유적지를 연결하는 태안 동학길도 만들고, 백화산 항쟁이 벌어졌던 날 가운데 하루를 택해 “태안동학혁명 기억일”을 만들어 동학군의 고귀한 뜻을 기리는 추모제도 이어 나가자. 다행히 이번에 『태안동학농민혁명사』가 간행되어 그 바탕이 마련되었다. 이번 기회에 태안의 동학혁명을 알리고 기리는 일에 나서자. 태안 동학혁명을 기억하는 일에 나서 새로운 세상을 염원했던 동학군의 마음과 하나 되자. 그 힘으로 그들이 꿈꾸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자. 성강현(동의대학교 기초교양학부 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