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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복근무자 감사캠페인, ‘또 하나의 국가대표’ 「2024 대한민국 광고대상」 동상 수상국가보훈부(장관 강정애)는 한국광고총연합회(회장 김낙회)에서 주최하는 ‘2024 대한민국 광고대상’에서 올해 진행한 제복근무자 감사캠페인 ‘또 하나의 국가대표’ 편이 ‘공익광고 부문’ 동상을 수상했다고 밝혔다. 올해로 31회째를 맞는 대한민국 광고대상은 국내 최고 권위의 종합광고상으로, 출품된 2,100여 편 중 수상작은 총 69편이다. 시상식은 12월 3일(화) 15시, 서울 더 플라자 호텔에서 개최된다. 올해 제복근무자 감사캠페인 영상 ‘또 하나의 국가대표’ 편은 제복근무자인 군인, 경찰관, 소방관, 해양경찰관, 교도관이 국민의 안전한 일상을 위해 일등만 요구되는 ‘또 하나의 국가대표’로서의 제복근무자 헌신을 현실감 있게 잘 표현했다. 특히, 현직 제복근무자 46명이 직접 출연하여 국민을 위한 제복근무자의 헌신을 더욱 진정성 있게 담았으며, 2024 파리 올림픽을 계기로 ‘국가대표’ 선수가 관심을 받는 시기에 맞춰 ‘또 하나의 국가대표’ 캠페인 영상을 선보임으로써 제복근무자에 대한 존중과 사회적 감사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은 “이번 수상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국민의 일상을 지키고 있는 제복근무자도 존중과 감사의 대상이라는 사회적 공감대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수상으로 생각한다”라며, “국가보훈부는 앞으로도 제복근무자에 대한 감사문화를 확산할 수 있는 다양한 캠페인을 추진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
대설 피해지역 조기 안정화 대책 추진행정안전부(장관 이상민)는 지난 11월 26일(화)~28일(목) 대설로 인해 많은 피해가 발생한 경기 남부 지역 등에 오늘(12.2.)부터 통합지원센터 운영과 긴급 사전 피해조사를 실시한다. 통합지원센터*는 시설물 복구자금융자, 국세·지방세 및 국민연금 납부 유예 등 피해 주민이 생활 안정에 필요한 사항을 안내하고 지원한다. * (참여기관) 행안부, 농식품부, 경기 용인시·이천시·안성시, 농협 등 풍수해·지진재해보험에 가입한 주민들이 손해평가를 통해 신속히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있도록 절차 안내도 병행한다. 또한, 피해지역에 중앙사전조사단*을 긴급 파견해 자치단체의 피해조사 물량을 확인하고, 피해액 추계를 통해 국고지원 여부 및 특별재난지역 선포 기준을 충족하는지 확인한다. * 지역: 경기 용인·이천·안성·여주, 충북 음성 등 / 구성: 2개 반, 3개 부처(행안부·문체부·농식품부) 사전 피해조사 결과 요건을 충족하는 지역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우선 선포해 피해 주민을 신속히 지원할 방침이며, 이번 조사 지역 이외에도 피해 규모가 늘어날 경우 추가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한경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피해 주민이 하루빨리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정부 지원을 조속히 추진하겠다”라며, “정부는 주민 불편을 최소화하고 피해지원이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
수운 최제우 대신사 탄신 200년 기념순례,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마무리수운 최제우 대신사 출세 200년을 기념해 생가와 묘소, 도를 깨우친 용담정 등을 순례하는 행사가 열렸다.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이 주최하고 평화재단이 주관하는 '수운 최제우 대신사 탄신 200년 기념 순례'는 수운 최제우 대신사의 발자취를 찾아 25일부터 27일까지 3일간의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순례는 수운 대신사께서 태어나 깨달음을 얻고 묻힌 경주에서 시작해 각종 경전을 집필한 전북 남원, 동학혁명 전적지 충남 공주 우금티 등을 거쳐 서울까지 이어졌으며 마지막 날인 27일,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대화마당을 끝으로 순례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열린 대화마당의 주제는 "수운 최제우 대신사와 동학사상이 한국 근현대사에 끼친 영향"으로 조민 평화재단 지도위원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윤석산 교령의 환영사로 문을 열었다. 윤석산 교령은 환영사를 통해 "수운 대신사 출세 200년을 맞이해서 행사를 열어주신 평화재단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참석해 주신 종교인 여러분들 고맙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위해, 무너진 세상의 균형을 잡기 위해 ‘보국안민’을 위해 우금티 전투에서 수많은 분들이 희생됐다는 것은 여러분들이 너무나 더 잘 아실 겁니다. 그러한 시대를 겪고 동학을 천도교로 대고천하한 이후에 바로, 이 대교당에 우리가 정착했습니다. 이 교당을 지으며 우리 동덕들이 내주신 성금을 모아 3·1독립운동과 이후의 독립 자금으로 썼습니다. 돌이켜본다면 당시 우리 독립운동을 위해 세워진 역사적인 건물이라 하겠습니다. 이제 100년이 지났습니다. 어려운 시대에 이런 건물을 지었습니다. 바로 오늘 여기에서 여러분들께서 모이셔서 말씀 나눠주시고 수운 대신사 출세 200년에 대한 의미를 짚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법륜 스님을 비롯한 종교계 많은 여러분들, 그리고 평화재단 여러분들께서 방문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으로 환영 인사를 대신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박종화 경동교회 원로 목사의 인사말, 신낙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축사가 있었다. 이어진 대화마당의 각 주제는 다음과 같다. 마중물 1 : 동학이 동학농민혁명에 끼친 영향(임형진 동학학회 회장) 마중물 2 : 동학이 삼일독립혁명에 끼친 영향(윤경로 한성대학교 명예교수), 마중물 3 : 동학사상이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끼친 영향과 앞으로의 과제(구해우 <미완의 평화혁명가 손병희> 저자) 이번 순례에는 박남수 천도교 전 교령과 주선원 동학유족회 회장, 박경조 대한성공회 주교, 박종화 경동교회 원로 목사와 권오성 전 NCC총무, 김대선 원불교 교무, 김홍진 천주교 서울대교구 신부, 법륜 평화재단 이사장 등 종교인과 김홍신 소설가, 신낙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정재숙 전 국가유산청 청장,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 김성곤 (사)평화 이사장 등 40여 명이 참가했다. -
춘천교구, 즐거운 도가모임춘천교구는 지난 1일, 즐거운 도가 모임을 하였다. 이번 즐거운 도가 모임은 네분의 도가에서 일곱명의 학생이 참여해서 시일식 후에 장기자랑을 하고 상품 증정식을 하였다. 또한 다같이 점심식사를 하였다. 학생들은 이날 모닝빵을 만들어 어른들께 맛 보여드리고 커피와 따뜻한 차를 대접하였으며 큐브 빨리 맞추기, 줄넘기 등 장기자랑을 통해 친교와 나눔의 시간을 가졌다. 맛있는 닭갈비를 점심으로 먹으며 친목도 다질 수 있는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즐거운 도가모임은 천도교중앙총부에서 교구 활성화를 위한 지원 프로그램이며 다양한 체험활동을 통해 어린 한울님들의 신앙생활과 함께 친목을 도모하는 데 힘쓰고 있다. -
천도교중앙대교당 · 천도교중앙총부 현판식 봉행, 중앙대교당 전기설비 교체공사 준공식 함께 봉행'천도교중앙대교당'과 수운회관의' 천도교중앙총부' 현판 교체를 위해 도암 도상록 동덕이 큰 마음을 내어주었다. 도상록 동덕은 기존의 낡은 현판을 교체하기 위해 성금을 기탁하며 교단의 귀감이 되고 있다. 이번 성금은 대한민국 서예대전 수상작가인 진공재 작가(서울교구)가 참여하여 특별 제작한 천도교 현판을 제작하는 데 사용되었다. 새로 제작되는 현판의 글자체는 천도교 경전인 용담유사(계미중추판)의 글자체를 사용하여 의미를 더했고, 용담유사의 ‘쳔됴’두 자는 현대적으로 ‘천도’로 변용하였다. 천도교중앙총부는 지난 12월 1일 현도기념식을 마치고 천도교중앙대교당 현판식 및 중앙대교당 전기설비 교체공사 준공식을 봉행하였다. 정갑선 교무관장의 집례로 개최된 현판식에서, 정갑선 교무관장은 낡고 위험해 보이던 대교당 전기설비 공사를 서울시와 종로구청, 천도교유지재단의 도움으로 새로운 설비를 갖추게 되어 전기 화재에 안전한 대교당이 되길 심고드린다며 경과를 보고했다. 윤석산 교령은 현판 식사에서 “오늘 뜻깊은 날입니다. 현도기념일을 맞이해 현판식을 열게 되었습니다. 해월 신사님의 용시용활 가르침에 따라, 의암 성사님께서 천도교로 대고천하한 오늘 현도기념일에, 한자로 써 있던 "천도교중앙대교당" 글자를 시대가 변함에 따라 한글로 바꿔, 세로에서 가로쓰기로 한 것 역시 용시용활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에 새롭게 제작한 현판의 글씨는 용담유사 계미중추판의 판본에서 글자를 집자하여 서울교구 진공재 작가가 새긴 글씨이다. 진공재 동덕은 인터뷰를 통해 "50년 간 글씨를 쓰고 새기는 일을 해 온 제게 이제서야 인연이 닿아 이 일을 하게 되어 감격스러웠고, 신중하게 작업에 임했습니다. 기존에 대교당에 걸려 있던 현판은 한자로 쓰여진 데다, 세로로 되어 있어 현 시대에는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한자를 잘못 읽는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교당을 오갈 때마다 벽에 새롭게 써서 붙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에 제가 글씨를 쓸 기회가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작업을 할 때마다 속으로 21자 주문을 외우며 한 글자씩 새겼습니다. 이 아름다운 대교당이 우리 문화재로서 오래오래 잘 보호가 되면 좋겠습니다" 라고 소감을 밝혔다. -
중편소설 <하얀 혁명>(1)중편소설 <하얀 혁명>(1) 1. 출진 “이보게, 규석이. 소식 들었는가?” 이창진은 접소 안을 민틋하게 정리한 후 청수상(淸水床)을 닦아 선반 위에 올리며 물었다. “무슨 소식?” “해월선생께서 드디어 기포령을 내리셨다네.” “전봉준의 호남동학군이 기포했다는 소식은 들었네만 우리 경기동학군에서도 기포를 했단 말인가?” “그렇다네.” “경거망동하지 말라 하신 게 칠월 아니었던가?” “그랬었지.” “그런데 왜 이리 경황이 없으신 게야?” “오늘은 접주(接主)와 접사(接司)들만 은밀히 모이라 했으니 도소(都所)에 가면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있을 걸세. 어서 서두르세나.” 이천포의 이창진 접주와 한규석 접사는 교인들이 빠져나간 접소의 문을 꼼꼼히 닫아걸고 길을 나섰다. 들판 가득 누렇게 일렁이던 벼가 아름 단으로 묶여 누워 있는 논두렁길로 접어들었다. 늦장마가 길어진 탓에 개울물이 벙벙하게 흐르고 있었다. 논바닥이 쩍쩍 갈라질 때는 코빼기도 뵈지 않던 비가 사흘돌이로 쏟아지는 바람에 베어둔 낟가리에서 싹이 틀 지경이었다. 이천의 도소까지는 걸어서 한 시간 거리. 둘은 마음이 바빠져 볏단 거둬들일 생각 대신 동학의 주문을 소리 내어 외우며 걸음을 재촉했다.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 영세불망만사지(永世不忘萬事知)” 이천의 도소에 당도하니 평소에 보이지 않던 도인들이 여럿 모여 있었다. 인근의 여주와 안성, 지평, 양근 쪽에서 온 사람도 보였다. 그들의 눈에 묘한 불안감과 기대감이 뒤섞여 있었다. 불안감의 원인은 아무래도 경기동학군에 내려진 기포령 때문으로 짐작되었고, 기대감은 작년 보은 취회(聚會) 이후 늘어난 동학 입도자의 증가세에 힘입은 것으로 보였다. 특히나 지난 4월, 전봉준 장군의 전주성 입성과 전라도 각지에서의 집강소(執綱所) 개소 소식은 오랜 세월 가렴주구(苛斂誅求)에 시달려왔던 경기도 지역 농민들에게도 칠년대한(七年大旱)에 쏟아진 단비였고, 지주나 마름들까지 동학도 되기를 서슴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아직 가을걷이가 끝나지 않은 농번기였지만 각 접에서 모여든 도인들로 도소 안이 그득했다. 좌중이 갈라지며 이천포 수접주가 도소의 임원을 대동하고 접소 안으로 들어서자 곧바로 회의가 시작되었다. “모시고, 강녕들 하셨는지요? 추수하느라 분주하실 텐데 왕림하신 동덕님께 감사 말씀드립니다. 오늘 오전에 각 접소에서 제례를 올리셨을 터이니 지금은 청수를 모시는 것으로 식전 의식에 갈음하겠습니다.” 수접주가 인사의 서두를 떼자 도인 하나가 청수상을 모셔왔다. 수접주가 잔을 높이 들어 절하고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각설하고, 작년 봄, 서울 광화문에서의 수운대선생 신원(伸冤)을 위한 복합 상소(伏閤上疏)와, 보은 취회에서 기치로 내걸었던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를 기억하실 겁니다. 그 당시 서울에 모인 동학도의 통곡이 백악(白岳)과 인왕(仁旺)을 흔들었고, 보은 장내리에 모인 동학도의 숫자가 무려 3만 명 이상. 그런데 조정에서 약속한 서정쇄신(庶政刷新)의 언약은 어찌 되었습니까? “무리를 풀고 집에 돌아가 그 업을 편안히 하면 소원에 의하여 실시하리라.” 하던 임금의 칙교(勅敎)는 간데없이 사라지고, 오히려 그 일이 있은 후 제읍(諸邑)의 수령과 토호들은 우리 동학도를 죄없이 붙잡아 가두고, 가솔들까지 화적의 패당으로 몰아 함부로 능멸하고 있으니 그 원성이 하늘을 찌를 듯합니다. 다행히 전봉준 장군의 전주성 입성을 계기로 다시금 서정(庶政)을 쇄신하겠다는 언약을 하였기에 이제야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제할 기회가 왔다 싶었는데, 그러나 이 또한 어찌 되었습니까? 조정의 탐학한 무리들이 동학도와 맺은 맹약을 깨고 외국 군대를 끌어들이는 우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조선은 어찌 되었습니까? 청군과 왜군이 전쟁을 벌여 청국은 쫓겨나고, 날카롭게 벼려진 일본의 독수(毒手)가 조선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지 않습니까? 본시 조선과 일본은 빙탄(氷炭)의 관계라 과거 임진(壬辰)과 정유(丁酉)의 묵은 원한을 모르는 이 없건마는, 근간 들어 일본은 조선의 개화와 내정개혁을 구실삼아 더욱 오만방자하게 굴고, 야밤에도 경복궁을 침탈하여 주상(主上) 능멸하기를 공깃돌 굴리듯 한다 하니, 우리가 애초에 혁명의 기치로 내걸었던 보국안민(輔國安民)과 광제창생(廣濟蒼生)보다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티인 왜군(倭軍)을 몰아내는 일에 골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애초 복술(福述)께서 무극대도(無極大道)를 깨달아 동학을 창도하시고 한울님을 모시게 된 것은 사인여천(事人如天)을 실천하여 만민이 평등한 세상을 만들고자 함이었건만, 그가 순도하신 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교조 신원(敎祖伸冤)은커녕 풍전등화 조선의 국운처럼 우리 동학도 역시 광대한 시련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소문을 들어 알겠지만, 지난 구월 열여드렛날 최시형 법헌(法軒)께서 햇곡 갈무리를 마치는 즉시 작년에 모였던 보은 대도소로 출정하라는 기포령(起包令)을 발하셨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 이천포에서도 전량(錢糧)과 무장(武裝)을 갖추어 광혜원(廣惠院)에 모이기로 하였으니 촌각을 다투어 기병하시기 바랍니다. 곧 엄동설한이 닥칠 것이니 출진을 서둘러야 합니다. 생(生)의 말은 이상으로 줄이고, 다수의 논의가 있을 듯하니 각자 품은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내기 바랍니다.” 유학자 출신인 수접주의 진서(眞書) 풍 언변에 평생을 농투성이로 살아온 사람 중에 더러 못 알아듣는 이도 있었으나 어조의 비장함으로 말미암아 그의 말이 끝나자 곳곳에서 분분함이 일었다. 수접주가 유건(儒巾)을 고쳐 쓰고 좌정하는 사이 나이 지긋한 지평(砥平) 고을의 이재현 접주가 좌중을 살피며 입을 뗐다. “자고로 기포라 함은 무장을 갖추어 일어남을 뜻하거늘, 한갓 농촌에서 들고 나설 것이라곤 쇠스랑이나 낫, 삽자루가 고작일 터인데 과연 무슨 강단으로 총 든 일본군을 대적한단 말이오?” 지당한 말이었다. 신식 총은 고사하고 구식 화승총 하나 변변히 없는데 무슨 수로 싸움을 하겠다는 것인가? 수접주의 연설을 듣는 동안 다들 말은 안 했어도 미구에 곧 닥칠 일인지라 질문이 끝나자마자 옳거니 소리가 절로 쏟아져 나왔다. 그러자 수접주의 대답보다 빨리 황산의 강용구 접주가 냉큼 나섰다. 입도(入道)한 지는 오래되었어도 나이는 제법 젊은 접주였다. “작년 보은 취회 당시 해월선생께서 마음이 굳고 뜻이 독실하면 능히 대업을 성취할 수 있다 하셨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무장이 없다 하나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이가 기호(畿湖)와 호중(湖中)만 하여도 수백, 수천이라 인(人)으로 무장한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듣건대 음죽과 안성 관아의 방비가 허술하고 병기가 많다 하니 야음을 틈타 불시에 짓쳐 들어가면 능히 무기를 탈취하여 무장할 방도가 나설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 황산접에 천보조총(千步鳥銃) 가진 날랜 포수가 다수 있으니 제가 이들과 도모해 두 곳 관아를 깨뜨려서 병기 부족의 근심을 덜어볼까 하옵니다.” 황산 접주의 말에 여기저기서 우리 접에서도 십시일반 나설 테니 힘을 모으자는 의견이 빗발쳤다. 지평 접주의 질문이 다시 이어졌다. “관아의 군기고(軍器庫)에는 어떤 것들이 있다 하오?” “화승총(火繩銃)과 궁전(弓箭), 창, 죽창이 무수하다 들었소.” “화승총이라 함은 노끈에 불을 붙여 화약을 터뜨리는 총을 말하오?” “그렇소이다.” “그렇다면 일본군이 갖고 있는 총은 무엇이오?” “주력은 스나이더 소총이라 들었소. 무라타 소총을 가진 자도 있고.” “명중시킬 수 있는 거리는 몇 보(步)나 된답디까?” “자세히는 모르오나 삼백 보는 장히 난다 하오.” “그렇담, 화승총은?” “오십 보쯤 되겠지요.” “삼백 보에 오십 보라? 어허, 오십보백보도 아니고…… 이래서야 어찌 싸움이 되겠소? 화승총, 활, 창이 아무리 많다 한들 스나이더 한 자루만도 못할 터인즉.” “대신에 우리는 수효가 많소이다. 일시에 달려들면 중과부적이라 능히 대적할 자신이 있습니다.” “아무리 수가 많아도 멀리서 날아오는 탄환을 어찌 피한단 말이오. 활이나 창이 가당키나 하오?” “접주께서는 어찌 싸워보지도 않고 질 궁리부터 한단 말입니까?” 황산 접주 강용구가 젊은 기운을 다스리지 못해 말꼬리를 가파르게 올렸다. 분위기가 초장부터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수접주가 말막음을 하고 나섰다. “두 접주의 말씀이 모두 옳소. 왜군은 무장이 우량하고, 우리는 인재(人才)가 우량하오. 그런 점을 염두에 두면서 다른 의견이 있으면 개진들 해보시오.” 이때 양지(陽智) 마을의 오세당 접주가 빈 장죽을 목깃에 꽂으며 일어섰다. “무릇 전장에서 이기려면 군사를 부리고 먹일 금전과 군량이 있어야 하오. 이에 대한 방도는 어찌 갖추려 하시오?” 이에 대해 즉답을 하고 나서는 이가 있었다. 익히 보았던 인물이 아니었다. 좌중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로 쏠렸다. “각 고을 접주님께 인사 올립니다. 소생의 자는 일섭이라 하오며, 미력하나마 도소에서 전량도감(錢糧都監)의 소임을 맡고 있습니다. 제가 연전에 작청(作廳)에서 아전(衙前) 일을 보았던 바 있어 감히 사뢰옵니다. 전량의 중요함은 비단 전장뿐 아니라 관가나 민가의 살림살이에서 가히 으뜸이라 할 만합니다. 지금은 햇곡이 그득하여 연중 가장 풍요한 때인지라 거사를 도모하기에 적기로 사료되옵니다. 또한 각 관아의 곳간에는 환곡(還穀)이 즐비하게 쌓여 있고, 백성에게 늑탈한 전엽(錢葉)이 가득 들어차 있어 관아 한두 군데만 탈취해도 능히 천 리를 운행할 만하옵니다.” 그러자 양지마을 접주의 질문이 이어졌다. “우리가 관아를 공성(攻城)하려 들면 관군들이 수어(守禦)에 진력할 것은 불 보듯 뻔할 터, 동학도의 기포 연유가 장차 왜군과 대적하려 함이거늘 되레 우리끼리 접전하는 꼴이 되는 게 아니겠소?” “우리가 갖춘 무장이 없으니 별도리가 없을 듯하옵니다.” 일섭이 쓴 입맛을 다시며 곰삭은 말을 입속에서 우물거렸다. 오세당 접주가 답답한 듯 목깃에 꽂았던 장죽을 칼처럼 빼 들고 일섭의 눈자위를 겨누었다. “내 말의 진의는 우리가 상대해야 할 적이 일본군에서 관군을 더해 곱절로 늘어난다는 것이오. 하나도 감당키 어려운데 둘은 말해 뭣 하겠소? 게다가 기포에 동참한 우리 동학도가 아무리 심성수련의 내공이 깊다 한들 군율이 엄중한 군대가 아닌 바에야 이들과 대적하기 난감하고, 이에 더해 양반이나 유생 또한 우리 동학도를 사교(邪敎)로 보고 있어 필시 민보군(民補軍)을 조직해 싸우려 나설 것인즉, 우리가 대적할 상대가 도합 셋으로 늘어날 것이오. 하나도 당키 어려운데 셋을 어찌 감당하겠소?” 생각지도 않았던 민보군 얘기까지 나오는 통에 전량도감의 소임을 맡은 일섭이 할 말을 잃고 머뭇거리자 다시 수접주가 갈라서며 나섰다. “그 말도 장히 옳소. 허나 양반이나 유생들 역시 조선 백성이 분명한 터, 열에 칠팔은 우릴 돕지 않겠소? 어찌들 생각하시오?” 수접주의 간곡한 되물음에 초치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수접주의 말에 동의해서가 아니라 솔직히 일본군이나 관군, 민보군을 이겨낼 자신이 없음에서 기인한 침묵이었다. 투지 하나만 믿고 기포하기에는 너무 지난한 싸움이 되리라는 고심의 결과였다. 접주들의 속이 타들어갔다. 심기를 일전할 획기적인 방책이 나서길 고대하며 침만 꼴깍거리고 있을 즈음 이창진 접주가 한 걸음 썩 나서며 큰 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동학에 입도하여 한울님을 모시게 되었다함은 곧 한울님의 뜻에 한 치도 어긋남 없이 살기로 맹약했다는 것입니다. 곧 나와 한울님이 동화(同化)를 이루어 하나가 되었음을 깨닫고, 신인합일(神人合一)의 경지를 실천하여 천심(天心)을 회복하기로 언명했다는 뜻입니다. 천심이란 무엇입니까? 사람 섬기기를 한울님 섬기듯 하여 사인여천의 세상을 만드는 것, 나라의 잘못을 바로잡고 빈부 귀천이 없는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것, 임금을 핍박하고 국권을 유린하는 왜양(倭洋)을 몰아내어 보국안민(輔國安民)의 나라, 후천개벽(後天開闢)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계속) 작가소개 김현종 -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동대학원에서 『해방기의 북한소설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간문예지 《한국문학시대》 소설 부문 신인상을 수상했다. 작품으로는 장편소설『천살의 시대』, 소설집 『보다 보이다』가 있다. * 이 작품은 김현종 작가의 창작 작품이며,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수운 최제우 대신사 출세 200년,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기념식 열려수운 대신사의 탄신일인 10월 28일 오전 11시 수운 최제우 대신사 출세 200년 기념식이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봉행되었다. 기념식은 대신사의 사상과 업적을 기리고, 동학 천도교를 통해 이룩한 사회적, 역사적 가치를 되새기며 계승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번 대신사 출세 200년 기념식을 통해 수운대신사의 생애와 동학의 창명 이념을 되새기고, 대신사의 사상이 한국 역사와 사회에 미친 영향을 기억하고 재조명하여 그 가치를 현대 사회에서 실천하는 기회가 되며, 동학 천도교와 수운대신사의 정신적 유산을 보존하고, 이를 미래세대에게 전하기 위해 다양한 문화적, 학술적 행사를 통해 그 의미를 재확인하였다. 기념식은 인화당 이미애 교화관장의 집례로 이루어졌으며 청수봉전(수성당 김명덕 여성회본부 부회장)-심고-주문 3회 병송-경전봉독<포덕문>(성수당 박징재 여성회본부 회장)-천덕송 합창(제13장 기념송 1~2절, 30쪽)-기념사(현암 윤석산 교령)-천덕송 합창(제15장 1~2절, 34쪽)-심고의 순서로 봉행되었다. -
포덕 166년 동계수련 대비 수도원장회의 개최11월 28일(목) 오후 2시 수운회관 907호에서 포덕 166년 동계수련계획에 대한 수도원장 회의가 개최되었다. 회의를 주재한 이범창 종무원장은 “신앙회복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기다. 수련의 생활화를 통해 이를 이루어가야 한다. 각 수도원에서 잘 협조하여 주기 바란다.”라고 당부하였다. 이날 회의에서 포덕 166년도 동계수련 기간을 정하였다. 동계수련기간은 49일[166년 1월 1일(수) ~ 2월 18일(화)]을 원칙으로 하되 수도원의 사정에 따라 가감할 수 있도록 하였다. 수도원의 수련은 수도원장의 재량에 따라 실시하고 개인도 기간중 7일 또는 21일 재가수련할 것을 권고하기로 하였다. 중앙총부는 동계수련기간중에 수도원에 보조금을 지원한다. 일반인(10,000원), 학생(30,000원), 신입교인(100%, ※ 포덕 165년, 166년 입교자)으로 동계수련 기간중 4일이상 참석자에 한하여 1인당 1회(4일)에 한하여 수도원에 보조금을 지원한다. <심고문(예시)> 한울님 스승님 감응하옵소서. 저희는 ‘모심으로 하나되는’ 신앙회복과 수련의 생활화를 위하여 동계수련을 봉행합니다. 대신사님 출세 200년을 보내며 다시 스승님의 뜻을 새겨 서로를 위하고 격려하며 한울세상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수련을 통해 무궁한 이 울 속에 무궁한 나임을 깨달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한울님 스승님 은덕을 염념불망하겠습니다. 내가 살아감이 모두 한울님과 스승님의 특별한 감응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아무쪼록 저희들은 한울님의 뜻과 스승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참된 교인이 되어 포덕천하 광제창생 보국안민의 큰 꿈을 이루고자 하오니 모든 이의 건강함과 우리가 목적하는 바가 훌륭하게 성취되어 행복한 한울나라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심고합니다. -
제 119주년 현도기념식포덕 165(2024)년 12월 1일(일) 제 119주년 현도 기념일을 맞이하여 천도교중앙대교당 및 전국 교구에서 일제히 봉행되었으며,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열린 현도기념식에는 현암 윤석산교령을 비롯하여 내, 외빈들이 참석하였다. 오전 11시 기념식은 인화당 이미애 교화관장이 집례를 맡아 진행하였으며 개식-청수봉전-주문 3회 병송-경전봉독<권도문>-천덕송 합창<제13장 기념송(1절~3절)>-기념사-천덕송 합창<포덕행진곡(1절~3절)>-심고-폐식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기념식에 이어서 사인여천국민화합문화제 공연도 개최되었다. -
정성과 지혜를 모아 새로운 천도교 역사를 함께 써 나가자포덕 165년 12월 1일 제119주년 현도기념식이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봉행되었다. 이날 기념식에는 교인, 내, 외빈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으며, 기념식과 함께 문화공연 등으로 다채롭게 구성되어 그 의미를 더했다. 이날은 의암성사께서 동학을 천도교로 세상에 널리 선포하신 지, 119주년이 되는 기쁜 날로 천도교에서는 5대 기념일에 해당하며 행사는 천도교중앙대교당 및 전국 교구에서 일제히 봉행되었다. 오전 11시 기념식은 인화당 이미애 교화관장이 집례를 맡았으며 개식-청수봉전-주문 3회 병송-경전봉독<권도문>-천덕송 합창<제13장 기념송(1절~3절)>-기념사-천덕송 합창<포덕행진곡(1절~3절)>-심고-폐식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기념식에 이어서 사인여천국민화합문화제가 개최되었다.집례는 조영은 천도교대학생단장이 맡았으며, 샘 합창단, 가야금 병창 박혜련 동덕, 삼경합창단, 역사어린이합창단의 공연이 이어졌다. 샘 합창단은 <현도일>, <별이 되어>, <밀양 아리랑> 세 곡으로 문화제 첫 번째 무대를 열어 교인들의 마음을 활짝 열었다. 이어진 무대에서 박혜련 동덕은 가야금 병창 공연으로 그 의미를 더했다. 박혜련 동덕은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음악학 박사 학위를 받은 재원으로 현재 동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날 축하공연에서 <춘향가>의 한 대목으로 공연을 시작하자, 교인들은 추임새를 넣어가며 공연을 즐겼다. 또한, 박혜련 동덕이 대신사님 말씀으로 작창하여 만든 <안심가>를 선보여 큰 감동을 주었다. 삼경합창단은 <임진강>, <생명을 키우리니> 두 곡을 불렀다. 교단 각 행사에 초청되어 공연을 이어가고 있으며 평화합창제 등에 참가하는 삼경합창단은 이번 현도기념일 기념 사인여천국민화합문화제에서도 시대의 깊은 울림이 담긴 노래와 스승님의 가르침을 노래에 담아 뜻깊은 무대를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역사어린이합창단은 <아름다운 세상>, <태극기>, <손병희> 세 곡을 불렀다. 특히 의암 성사의 일대기를 노래로 만든 <손병희>는 참석한 교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아래는 제 119주년 현도기념사의 전문이다. 기 념 사 존경하는 동덕 여러분! 모시고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의암성사님께서 포덕 46년(1905)년 12월 1일 동학을 천도교로 대고천하하여 세계에 널리 알린 지 119주년이 되는 현도기념일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뜻깊은 현도기념일을 맞이하여 이날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면서, 새로운 도약의 결의를 다져야 하겠습니다. 해월신사님은 “때를 따라 숨고 운(運)을 응하여 나타나는 것은 이것이 대도의 활용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것은 은현자재(隱顯自在)의 용시용활(用時用活)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대한제국이 성립된 후에 우리 도의 운에 대한 질문을 받고 대답하시기를 “우리 도도 이 운수를 당하여 한번 변한 뒤에라야 반드시 크게 번영하리라. 우리 도의 이름과 주의를 멀지 아니하여 세계에 펴 날리고, 서울 장안에 크게 교당을 세우고, 주문을 외우는 소리가 한울에 사무치리니, 이 때를 지나야 현도라고 이르느니라”하고 예언하신 바가 있습니다. 이 말씀은 후에 그대로 이루어졌는데, 그것이 바로 ‘천도교로의 대고천하’ 입니다. 따라서 천도교의 대고천하는 의암성사님이 시운(時運)에 응하여 천명(天命)과 해월신사님의 유훈(遺訓)에 따라 이루어 내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존경하는 동덕 여러분! 스승님들은 천운의 순환을 꿰뚫어 보시고, 천명에 순응하여 시대를 선도(先導)하는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 오셨습니다. 수운대신사님은 후천 오만년 대운을 타고 동학을 창명하셨으며, 해월신사님은 용시용활하시며 동학을 전국 조직으로 키우셨고, 이를 바탕으로 교조신원운동과 동학혁명을 암중지휘(暗中指揮)하셨습니다. 그리고 의암성사님은 가혹한 탄압 속에서 동학을 지키고 키워내시던 해월신사님이 순도하신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 상황 속에서, 천도교로 대고천하 함으로써 오히려 새로운 시대를 열으셨습니다. 그야말로 위기를 기회로 만든 용단(勇斷)의 리더십을 발휘하셨습니다. 정말 천도교로의 대고천하는 ‘용시용활’ 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천도교를 창건함으로써 오랜 숙원인 수운대신사님의 신원(伸冤)과 신앙의 자유까지 얻어내셨습니다. 그리고 천도교를 300만 교단이라는 당대 제일의 교단으로 육성해 내셨습니다. 이러한 위업이 어떻게 가능했겠습니까? 그것은 풍운대수(風雲大手)인 의암성사님의 타고난 기국(器局)과 초인적인 독공수련으로 얻은 도력(道力)의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도 이러한 스승님들의 행적을 거울삼아 현재의 침체된 교단을 일신할 수 있도록 수도연성(修道煉性)에 힘쓰고, 정성과 지혜를 모아 새로운 천도교 역사를 함께 써내려가야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동덕 여러분! 그러려면 우선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정확한 인식(認識)이 필요합니다. 이 시대를 일러 학자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 ‘인류세(人類世)’, ‘문명의 대전환기’ 등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은 ‘기후 재앙 시대’라는 말을 체감하고 있고, ‘6차 생명 대멸종 시대’가 닥칠 것으로 예측하며 인류는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이 시대에 ‘후천 개벽 운수’가 펼쳐지는 징후(徵候)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 상황에 따라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는 현대 문명의 병폐를 치유하고, 인류를 구원할 사상이 무엇인지 논의하는 모임이 열리고,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흐름을 타고 현대 문명의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는 생태 문명의 기반이 되는 생명 사상으로서 ‘동학’에 대한 관심이 점점 더 고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국적인 동학 열풍에 비하여 천도교에 대한 관심은 적은 것 같습니다. 특히 천도교로 대고천하한 의암성사님에 대한 오해가 아직도 우리 사회 일각에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현 시대 상황에 알맞은 신(新)포덕 전략을 강구하여 천도교의 가치를 제대로 알리고, 특히 의암성사님의 위대한 생애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진력해야겠습니다. 존경하는 동덕 여러분! 우리 중앙총부에서는 그동안 천도교의 현도를 위하여 다음과 같은 사업들을 추진했습니다. 첫째, 수운대신사 출세 200년을 맞이하여 다양한 기념사업을 전개하여 수운대신사의 삶과 사상을 널리 선양했습니다. 현대적으로 읽기 쉬운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간행하였고, 수운 대신사님 태묘를 정비하였습니다. 또한 수운문화제와 수운 대신사 출세 200년 기념 학술대회도 개최하였고,「용담 가는 길」이라는 대신사 생애를 노래한 뮤지컬도 공연하였으며, 수운대신사님 피체노정(被逮路程)을 실제로 답사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하였습니다. 둘째, 해월신사님의 경북 영양 은거 유허비를 건립하였고, 충북 청산 총기포령 기념 행사와 학술대회도 개최하여 해월신사님의 삶과 사상을 재조명하였습니다. 셋째, 지방 교구나 종학대학원, 관련 기관이나 단체를 중심으로 동학 천도교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으며, 이웃 종교와 연대활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등 동학 천도교의 외연을 확장하는 사업을 다각도로 추진하였습니다. 넷째, ‘천도교 소장 유물 전시회’와 목활자본을 비롯하여 천도교중앙총부에서 간행한 모든 종류의『동경대전』을 수합하여 전시하였고,『수운 최제우 대신사 자료집』도 발행하였으며, 유튜브를 통해 매 시일 설교영상을 전세계에 내보내고 있습니다. 다섯째, 대신사 출세 200년 특별기도를 실시하여 신앙심 회복을 위해 수도연성에 성지우성(誠之又誠)함으로써 첫째도 수련, 둘째도 수련, 셋째도 수련의 각오를 새롭게 하였습니다. 앞으로 남은 기간에는 교단 발전의 전기(轉機)를 마련하고 ‘제2의 현도’를 위한 제도개선에 노력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교헌과 규정에 대한 개정작업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동덕 여러분께서도 많은 관심과 지혜를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존경하는 동덕 여러분! 올 한 해도 이제 한 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연초에 계획하고 설계했던 일들을 되돌아 보시고, 남은 기간에 잘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모두 유종(有終)의 미(美)를 거두시기를 충심으로 기원합니다. 끝으로 한울님과 스승님의 감응 속에서 도가에 건강과 행복이 늘 함께 하시길 심고드리면서 기념사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포덕 165(2024)년 12월 1일 천도교 교령 윤 석 산 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