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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동학·천도교 인물 아카이브 영상콘텐츠 제작 완료동학·천도교의 역사와 교인들의 삶을 기록하고 보존하기 위한 ‘동학·천도교 인물 아카이브 사업’의 결과물이 나왔다. 동학·천도교 인물 아카이브 사업을 통해 춘천교구 교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낸 인터뷰 동영상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이번 사업은 천도교의 교인들을 통해 민족종교의 역사를 기록하고, 사회적 가치를 발견하며 보존하는 의미있는 사업으로 그 첫 번째 발걸음을 춘천교구에서 시작했다. 춘천교구는 114년의 역사를 가진 천도교의 주요 교구 중 하나이다. 현암 석영기 춘천교구장은 인터뷰에서 춘천교구의 설립 과정, 성장 배경, 발전 과정, 지역사회에 미친 영향 등을 해박한 지식으로 재미있게 알려 주었다. 또한 일반 교인들의 진솔한 인터뷰는 천도교에 입교한 계기, 춘천 지역에서의 신앙 생활, 그리고 천도교가 자신의 삶에 미친 영향 등에 관한 이야기를 진한 감동으로 전달하였다. 이번 동영상 콘텐츠를 통하여 천도교를 알지 못했던 대중들에게도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되었다. 이번에 제작된 총9편의 영상 콘텐츠는 향후 연구 및 문화 콘텐츠 창작을 위한 기초 자료로도 활용될 예정이다. 이 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의 후원으로 제작되었다. 영상 콘텐츠 링크 1. 동학천도교인물아카이브(01) -“춘천교구의 역사” https://www.youtube.com/watch?v=Uh5Mc4WtCj4 2. 동학천도교인물아카이브(02) -“유경당 양영자 선도사 인터뷰 영상1” https://www.youtube.com/watch?v=QOCk2or8pYY&t=59s 3. 동학천도교인물아카이브(03) -“유경당 양영자 선도사 인터뷰 영상2” https://www.youtube.com/watch?v=LfONC3bBD3o&t=2s 4. 동학천도교인물아카이브(04) -덕화당 유영희 선도사 인터뷰 영상 1편 https://www.youtube.com/watch?v=rR-JH6CJB3o 5. 동학천도교인물아카이브(05) - "덕화당 유영희 선도사 인터뷰 영상 2편 https://www.youtube.com/watch?v=wT-mqba8MDU 6. 동학천도교인물아카이브(06) - "현암 석영기 교구장 인터뷰 영상 1편“ https://www.youtube.com/watch?v=iGT_szwNGNA 7. 동학천도교인물아카이브(07) - "현암 석영기 교구장 인터뷰 영상 2편“ https://www.youtube.com/watch?v=or7_8MXGy-k 8. 동학천도교인물아카이브(08) "제암 명승철 선도사 인터뷰 영상 1편“ https://www.youtube.com/watch?v=zqd62MV4S3I 9. 동학천도교인물아카이브(09) "제암 명승철 선도사 인터뷰 영상 2편“ https://www.youtube.com/watch?v=efDZZkcFES4 -
[칼럼] 동학 천도교의 민초들은 위대했다그때 그랬다. 정말 그랬다. 갑오동학혁명과 기미삼일혁명이었다. 마치 허수아비가 되어버린 조선의 왕과 관료들은 영혼 없는 그들이었다. 그들은 아무 쓸모가 없었다. 일제가 커다란 입을 벌리고 나라를 통째로 삼킬 때 아무런 저항도 없었다. 나라를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일본의 개가 되어 꼬리치기에 급급했다. 그들은 백성과 나라를 버렸다. 친일앞잡이들은 역사 앞에 부끄럽다. 그때 그랬다. 정말 그랬다. 갑오동학혁명과 기미삼일혁명이었다. 동학 천도교의 민초들은 일제의 침략에 죽을지 뻔히 알면서 일어났다. 그들은 구국의 영웅이었다. 왕이 왕의 구실을 못할 때 백성들 모두가 왕이었다. 탐관오리들이 나라를 망쳐먹을 때 민초들은 하늘같은 목숨을 내놓았다. 그들은 백성과 나라를 지켰다. 선열들은 역사 앞에 자랑스럽다. 글 이윤영/동학혁명기념관장·천도교직접도훈 -
대동교구 성암 유성재 동덕(사회문화 부장), 부산광역시 의용소방대 연합회장 취임포덕 166년 2월 5일(수) 오후 6시 호텔농심 대청홀에서 대동교구 사회문화부장이자 종의원인 성암 유성재 동덕의 부산광역시 의용소방대 연합회장 취임식이 열렸다. 이날 부산광역시장과 국회의원 부산시의원, 구청장 등 부산광역시 정⸱관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취임식이 성대하게 치러졌다. 대동교구에서는 내수도 추심당 하문경 동덕과 아들 유정엽을 비롯하여 장인갑 교구장, 유재원 도훈 부부, 유문재 감사, 안동한 교무부장 부부, 김대석 동천교구장, 박인준 흥신포 도정, 성강현 도훈, 강병로 중앙감사 등 많은 교인들이 참석하여 축하의 마음을 전하였다. 유성재 동덕은 취임사에서 천도교 대동교구장의 참석에 감사를 표함으로써 내외빈들에게 천도교를 각인시켜 참석한 교인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하였다. 취임식 후 교인들은 주최측에서 준비한 저녁식사와 다과를 먹으며 유성재 동덕의 건승과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였다.(기사 및 사진 재공 : 천도교 대동교구) -
포덕 166년 2월 16일 천도교중앙대교당 시일설교 "인공지능시대와 정시정문"설교 : 인공지능시대와 정시정문 : 중암 라명재(송탄교구장) -
㈜신인간사 전국 교구에 필립스 살균기 판매를 대행한다2월 18일 오후 2시 종로구 경운동 수운회관 905호 ㈜신인간사 사무실에서 ㈜신인간사는 ㈜다시물류와 업무 협약식을 갖고, 희암 성주현 ㈜신인간사 대표이사와 금암 이종민 ㈜다시물류 대표가 협약서에 서명하였다. 협약 내용은 향후 3년간 ㈜신인간사는 천도교단 내 필립스 UV-C 살균기 판매 및 홍보 등 영업 창구 역할을 수행하고, ㈜다시물류는 필립스 UV-C 살균기 판매영업지원 및 배송, 설치, A/S를 책임지며 신인간사를 통해 판매된 수익금은 신인간사가 갖는다는 내용이다. 성주현 ㈜신인간사 대표는 협약서에 서명 후 인사말에서 “아시다시피 어려운 상황이 많았었는데 다행히 ㈜다시물류와 좋은 관계가 형성돼서 신인간사의 새로운 경영 정상화 등 여러 측면에서 훌륭한 업무 협약이 성사되었습니다. 이번 계기를 통해 신인간뿐만 아니라 천도교도 조금 더 변화하고 발전하는 모습으로 갈 수 있도록 함께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금암 이종민 ㈜다시물류 대표는 “제가 이 세계적인 대기업인 필립스 살균기를 사업 아이템으로 선택을 했던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우리 국민이 세상사람한테 덕이 된다는 측면, 돈 계산 보다도 덕이 된다는 측면입니다. 3년 전에 이 사업을 시작해서 진행하다가 그 덕의 열매가 우리 천도교에서 맺힐 줄 몰랐습니다. 전혀 생각 못 했는데 이게 한울님 감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감응이 우리 교인들한테도 덕이 되고 나아가서 우리 신인간의 덕이 되고 또 이러한 사례가 우리 천도교회 단체들의 덕이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밝혔다. -
2일, 수원교구 정기총회 열려수원교구는 포덕 166년 2월 2일 정기총회를 개최하였다. 개회에 앞서 참석인원 30명, 위임 15명으로 총회가 성원되었음을 알리고, 운암 이창용 교화부장의 집례로 개회식순에 따라 청수봉전, 심고, 주문 3회 병송 후 교구장(지암 장구갑)과 감사장(축암 김천일)의 인사말 후 포덕 165년 교구 업무보고를 하였다. 이번 정기총회에서 교화부는 업무보고를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포덕 163년부터 해마다 5월부터 10월까지 둘째 토요일마다 교인 간의 심화기화를 위하여 교당에서 하루수련을 하였다. 5시에 새벽기도식을 시작으로 새벽, 오전, 오후 3차례 주문수련과 영상시청, 경전봉독, 저녁 6시 오후 수련을 하는 일정으로 올해에는(포덕166년) ‘도심 속의 열린 수도원’으로 수원교구 교인 외에도 참석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도록 진행하겠다고 하였다. 또 매 시일식 후 30분간 주문 수련을 진행하고 있으며 올해에도 계속해서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포덕165년 1월 1일부터는 함께하는 기도식을 아침과 저녁에 교구 카톡방을 활용하여 진행하였으며, 그 결과 “새벽 기도식과 저녁 9시 기도식의 좋은 습관과 함께하고 있다는 좋은 기운으로 모아졌다”고 말했다. 성남, 송탄, 수원교구가 진행한 합동시일식이 있었으며, 포덕 166년에도 인근 교구와의 합동시일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어린이 시일(사회문화부, 장효재, 이윤정, 조인숙, 김순연 동덕 진행)은 매월 둘째 시일에 전국 어린이 온라인 시일, 매월 셋째 시일에는 인근 교구 어린이들과 함께 수원교구 1층에서 어린이 시일을 하고 있으며, 총부의 즐거운 도가 모임 지원과 수원교구 여성회의 지원으로 보다 유익하고 다양한 행사를 어린이들에게 제공하며 어린이 사업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음을 보고하였다. 이외에도 매 시일 설교내용을 녹음하여 교구대화방에 올려서 시일 참여 못 하신 분들도 설교내용을 들을 수 있고 반복 청취도 가능하도록 하였음을 경과보고하였다. 한편 교무부는 매달 진행하고 있는 교인 생일축하식과 기념일행사 등 교내활동과 제암고주리 추모 행사 등 대외행사에 대한 평가도 하였으며 기존의 도서관리와 교적부관리를 전산화시켜서 보관하고 있으며 1년 동안의 활동사진을 영상으로 제작하는 사업과 기타 경조사 관련 등 교무부 활동 보고를 하였으며 마지막으로 사회문화부는 어린이 시일활동과 3.1운동 기념사업회, 경리부는 지면자료를 교인들과 함께 보며 항목별 수입. 지출내역 등을 교인들에게 경과 보고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이어서 임시의장(운암 이창용 교화부장), 서기(순심당 조인숙 교무부장)신임 교구장 및 감사장 선출을 진행하였다. 임시의장께서 교구장, 감사장 선출 방식에 대한 교인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지암 안춘보 교구장, 축암 김천일 감사장(연임)으로 만장일치 추대하였다. 신임교구장으로 추대된 지암 안춘보 교구장은 첫째, 어린이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어린이 전담교사를 두어 어린이 시일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하였다. 이어, 청년회 사업, 여성회 활성화의 사업계획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축암 김천일 감사장은 오고 싶은 교구, 즐거운 교구가 되도록 노력하는 교구가 되자고 말했다. 포덕 166년, 수원교구가 새로운 교역자들과 함께 힘차게 교구를 발전시켜 나아가기를 기대한다. -
해월신사 법설 : 천지이기 p.241~242 -
동학교서에 나타난 동학혁명기 일본군의 인식(2)3. 일본군의 동학군 진압과 그에 대한 인식 일본군의 개입과 경복궁 점령으로 재기포한 2차 동학혁명은 관군과 일본군으로 구성된 조일 연합군과 동학군의 직접적인 전투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동학군 진압에 참여한 일본군은 이미 밝혀진 바와 같이 후비보병 제19대대의 3개 중대를 중심으로 후비보병 제18대대의 1개 중대, 후비보병 제6연대 제6중대의 1개 중대, 후비보병 제6연대의 제4중대와 제7중대의 일부 병력, 그리고 부산수비대의 1개 중대, 해군 츠쿠바함(筑波艦)과 죠코함(操江艦)이었다. 동학군 진압의 주력부대인 후비보병은 만 20세에 상비병으로 3년간 군복무를 하고 예비역으로 4년을 보낸 후 다시 5년의 복무를 한 군 경험이 많고 노련한 병사들로 구성되었다. 특히 동학군 진압의 주력부대라고 할 수 있는 후비보병 제19대대는 일본 에히메(愛媛) 지역 출신들이었다. 후비보병 제19대대는 11월 12일(음 10월 15일) 용산을 출발하였다. 출발에 앞서 전달된 훈령에 의하면, 첫째는 동학군의 근거지를 찾아내어 이를 초절(剿絶)할 것, 둘째 동학군을 격파하고 그 화근을 초멸(剿滅)함으로써 동학군이 재흥하는 후환을 남기지 말 것, 셋째 조선군의 진퇴에 대해서는 일본군의 지휘 명령을 받을 것, 넷째 보병 1중대는 서로(수원-천안-공주-전주), 보병 1중대는 중로(용인-죽산-청주-성주), 보병 1중대는 동로(가흥-충주-문경-낙동-대구)로 행진할 것, 다섯째 동학군을 동북쪽에서 서남쪽으로 내몰도록 하며 가능하면 러시아 국경으로 향하지 않게 할 것 등을 지시하였다. 이후 동학군은 조일연합군(朝日聯合軍)에 의해 철저하게 진압당하였다. 그렇다면 일본군의 동학군 진압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자. 먼저 『천도교창건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동학군이 일본군과의 첫 교전은 괴산이었다. 이에 괴산에 당도하니 괴산군수, 충주군 주차 일병을 청하여 영전함에 포환(砲丸)이 여우(如雨)라. 도중(道衆)이 사(死)를 서(誓)하고 교전하여 피차 살상이 상당하더니, 마침 일모(日暮)한지라. 다수 교도 일제히 눌함(吶喊) 전진하여 일군(日軍)을 습살(襲殺)하였다.(『천도교창건사』) 동학군과 일본군은 괴산에서 첫 교전이 있었는데, 이 괴산전투에서는 동학군이 비록 승리하였지만 많은 희생을 해야만 했다. 당시 동학군은 2만여 명에 달하였으며, 일본군은 2개 분대였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의 피해는 하라다(原田) 소위 등 부상 4명, 병사 1명 즉사에 불과하였지만, 동학군은 2백여 명의 사상자를 내었다. 이외에 일본군과의 전투는 공주 우금치전투를 비롯하여 태인전투, 용산전투, 광양과 섬진강전투 등에 관해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다. 즉 (전략) 때에 마침 관군의 원병인 일군이 대거 합류한지라. 동군(東軍)이 공주 효포에서 혈전 7일에 전세 불리함을 보고 퇴각하여 태인에서 일군과 교전하고(『천도교창건사』) 동군(東軍)이 용산에 이름에 뒤로 일군의 추격이 심하고 앞으로는 관군이 영격포위(迎擊包圍)하여 진퇴유곡이 된 지라.(『천도교창건사』) 퇴각 중의 도인 수만은 광양 섬진강 안에 둔하였다가 관군과 일군의 피습한 바 되어 강수(江水)에 빠져 진멸(盡滅)하고(『천도교창건사』) 이라고 하여 동학군과 일본군과의 교전을 한두 줄로 언급만 하였다. 하지만 이들 전투는 동학혁명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우금치전투는 동학혁명 기간 가장 규모가 큰 전투였으며 동학군 역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내었다. 그러나 『주한일본공사관기록』에는 동학군 전사자가 37명에 불과하다고 보고하였다. 이에 비해 『동학사』에서는 일본군의 동향에 대해 더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다. 즉 공주 우금치전투에서 “관군과 일병은 세를 합하여 동학군의 앞을 막아들어 온다”라고 하여 일본군의 진압과정에 대해 축소하였다. 이후 동학군의 퇴로과정에서 적지 않은 일분군과의 교전이 있었지만, 일본군의 동학군 진압에 대해서는 더이상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다만 일부 지역 교정에서 일본군의 활동을 간단하게 언급하고 있다. 즉 “수원부를 점령하고 남군(南軍)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바, 관병과 일병을 만나 여러 날을 두고 싸우다가 (동학군이) 마침내 패하였고, (중략) 황해 일도의 동학군 수만을 일으켜 장차 남군과 세를 합하여 경성을 치고자 해주감영을 점령하고 있었던 바, 또한 관병과 일병을 만나 수십 일 동안을 두고 서로 싸워 양방의 많은 사상을 내었고, 마침내 동학군은 관일병에게 패한 바 되었다”(『동학사』)라고 하여, 수원전투와 해주전투에 대해서만 언급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각지의 교전에서 “관병과 일병도 많이 죽고”라고 하여 일본군도 적지 않은 피해자임을 밝히고 있다. 그렇지만 동학혁명이 끝나가는 1894년 12월 이후부터는 “조선의 남쪽은 관병과 일본군의 천지”가 되었다고 할 정도로 일본군의 영향이 적지 않았음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일본군을 포함한 관군, 수성군, 민보군 등의 동학군을 참살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광경이었으며, 그 결과 3, 40만 명의 동학군이 피살되었다고 적고 있다. 『천도교창건사』도 20만 이상의 동학군이 죽임을 당하는 대참(大慘)이었다고 하였다. 그럼 해방 후에는 어떻게 기록하였을까. 먼저 『천도교백년약사』를 살펴보자. 우선 동학군이 재기포한 배경은 “범궐(犯闕)한 일군들이 국왕을 핍박하고 국권을 유린”과 일군이 각지에서 동학군을 마구 참살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반봉건에서 반침략으로 전환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동학군이 재기포하자 일본군은 관군과 연합하여 동학군 진압할 것을 제안하고 관군을 지휘하여 작전계획에 따라 동학군을 초멸코자 하였다. 동학군과 일본군은 안동을 비롯하여 괴산, 세성산, 홍성, 이인, 공주, 해주, 원평과 태인, 은률, 서흥, 홍천, 하동 등지에서 치열하게 교전을 하였으며, 수백 명의 동학군이 살해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특히 전봉준의 피체와 재판과정에 일본군의 영향력이 적지 않았음도 아울러 밝히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천도교백년약사』는 앞서 살펴본 『천도교창건사』와 『동학사』보다는 구체적으로 폭넓게 일본군의 동향을 다루고 있다. 특히 동학혁명이 끝날 무렵에는 “일본군의 수색이 극심해지자 전국적으로 전토(田土)가 황폐해지고 도시와 농촌이 모두 일군의 왕래를 꺼리어 수확을 포기하고 촌민(村民)들이 도망하여 마을이 모두 비었다”할 정도로 일본군의 폐해성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인식은 『천도교약사』에서도 여전히 보이고 있다. 즉 세성산전투에서 “동학군이 일본군과 관군에 의해 전멸당하였다”거나 공주 우금치전투에서는 “일본군 연합군이 최신무기로 무장한 채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우금치전투 이후 “일본군과 정부 연합군은 계속 동학군을 추격 공격하였다”하고 하여, 동학군을 섬멸하고자 하는 것을 밝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태인전투와 종곡전투에서도 관군과 일본군에게 패전하였음도 아울러 서술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일본군의 동학혁명 개입에 대해 “아시아에서 저지른 일본군의 최초 대량학살”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방 이후 간행된 교서에서는 동학군과 일분군과의 전투과정 뿐만 아니라 그 실상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흡하다고 판단된다. 이로 볼 때 일본군에 대한 인식은 초기 동학교서에서는 가급적이면 필요 이상으로 학살 등에 대해 표현하지 않고 있지만 후기에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동학혁명에 관한 새로운 자료의 발굴과 연구의 확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일제에 대한 책임을 보다 강조하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희암 성주현(신인간 주필, 선도사) -
˝경주시 동학 정신 계승과 문화관광 자원 활용에 대한 방안˝ 제안경주시의회 이강희 의원은 13일 제288회 경주시의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경주시 동학 정신 계승과 문화관광 자원 활용에 대한 방안’을 주제로 5분 자유발언을 실시했다. 먼저 이강희 의원은 동학이 1860년 외세의 침략 등으로 혼란한 시대적 위기 속에서 수운 최제우 선생의 시천주 사상을 바탕으로 등장했고, 후천개벽·보국안민이라는 가르침을 통해 국가와 백성을 지킨다는 사명을 강조하며, 동학농민운동으로 이어져 근대 민권운동의 초석이 되었음을 설명했다. 이처럼 동학은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사회개혁운동이자 자주정신의 표출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므로, 그 정신을 보호·계승하기 위한 정책과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최제우·최시영 선생 관련 유적지에 대한 복원 사업의 추진, 동학 역사교육 프로그램의 운영 및 학술 연구 지원, ‘동학문화제’ 개최 등을 제안했다. 특히 동학 관련 사료의 보존을 위한 자료관의 효율적 관리와 연구 지원금을 마련하는 규정이 필요하다고 언급하는 등, 동학 관련 정책 마련과 조례 제정을 통해 경주시가 동학 정신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이강희 의원은 동학의 사상이 오늘날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민주주의와 인권존중 등의 가치와 맞닿아 있다고 강조하고, 경주가 동학의 발상지이자 성지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경주시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요청하며 5분 자유발언을 끝맺었다. 다음은 이강희 의원의 5분 발언 내용이다.(제공기관 : 경상북도 경주시의회) 존경하는 경주시민 여러분 그리고 이동협 의장님과 선배동료 의원 여러분! 그리고 주낙영 시장님과 관계공무원 여러분! 더불어민주당 이강희 의원입니다. 오늘 저는 경주시가 동학의 발상지이자 성지로서 그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경주를 생각하면 신라 천년의 수도이자 불교문화의 중심지로 먼저 떠올립니다. 그러나 경주는 동학의 발상지이자 동학의 정신이 태동한 곳이기도 합니다. 동학의 창시자인 수운 최제우 선생과 2대 교주 해월 최시형 태어난 곳이 바로 이곳 경주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민들은 물론 경주시민들조차도 경주와 동학을 연결 짓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경주시가 동학의 성지로서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보존∙계승하기 위한 정책과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동학은 1860년 경주에서 탄생하였습니다. 당시 조선사회는 봉건적 신분제와 외세의 침략으로 혼란을 겪고 있었고 이러한 실제적 위기 속에서 수운 최제우 선생은 ‘사람은 누구나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라는 시천주(侍天主) 사상을 내세우며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선언하였습니다. 최제우 선생이 창시한 동학은 후천개벽의 사상, 즉 억압받는 민중이 주체가 되어 새로운 세상을 열어야 한다는 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보국안민(輔國安民)이라는 가르침을 통해 국가와 백성을 지키는 것이 동학의 사명임을 강조하였습니다. 이는 단순한 종교운동이 아니라 가장 평범한 사람, 민중을 중심으로 한 사회개혁운동이자 자주정신의 표출이었습니다. 특히 해월 선생은 경주출신으로서 동학을 전국적인 사상운동으로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훗날 1894년 동학농민운동으로 이어지며 근대 민권운동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동학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발상지인 경주는 동학의 성지로서 그 정신을 당연히 보호 계승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현재 동학의 역사적 가치를 기리는 일부 기념사업과 교육원 건립사업은 이루어져 있지만 이는 개별연구단체나 연구자의 노력에 의존되는 경우가 많아 체계적인 정책추진이 이루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경주시가 조례 등을 통하여 동학의 역사적 가치보존과 계승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요내용으로 다음과 같이 몇 가지를 제안드리겠습니다. 첫째, 경주시내 동학관련 유적지로 최제우 선생 탄생지, 해월 최시형 선생 생가터 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유적지 보존을 위한 정기적인 조사 및 복원사업을 추진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경주시 차원의 동학역사교육프로그램 개설, 학생 및 시민을 대상으로 한 동학사상 및 역사강좌 운영, 동학 관련 학술연구 지원 및 세미나 등을 통하여 시민들의 동학 알기에 힘을 쓰는 일입니다. 셋째, 동학문화제 등을 개최하여 경주를 동학의 성지로 알리고 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하며 동학의 역사적 가치를 반영한 관광프로그램 개발 및 홍보를 제안합니다. 끝으로 동학 관련 사료 및 문헌수집, 보존을 위한 자료관의 효율적 관리와 동학연구활성화를 위한 연구지원금을 마련할 수 있는 규정도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내용의 조례 및 정책이 이루어진다면 경주시는 단순한 역사적 유산 보존을 넘어 동학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동학이 추구했던 시천주(侍天主)와 인내천(人乃天) 사상은 모든 인간이 존엄하며 평등하다는 가치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민주주의, 인권존중 그리고 사회정의 실현의 근본적인 철학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또한 동학은 단순한 이념적 운동 아니라 민중이 직접 참여한 사회개혁운동이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동학의 정신을 오늘날 경주시가 되살린다면 시민참여형 정책 및 공동체 중심의 도시발전모델을 마련하는 데에도 중요한 방향성을 제공할 것입니다. 경주시는 신라 천년의 역사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와 근대사의 변혁을 이끈 동학의 성지로서도 그 역할을 해야 합니다. 존경하는 의장님과 동료의원 여러분! 그리고 경주시민 여러분! 동학은 단순한 과거의 역사가 아닙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숨쉬며 우리가 지속적으로 계승해야 할 민주주의와 평등의 정신입니다. 이상으로 본 의원의 5분 발언을 마치겠습니다. 끝까지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천도교산하단체, 대전 초등학생 피살사건 성명서 발표지난 10일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피살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천도교 산하단체에서 성명서를 발표했다. 피해를 당한 초등학생은 대전 서구의 한 초등학교 본관 2층에 있는 돌봄교실에서 나와 학원 차를 타려고 나오다가 40대 여교사에 의해 이 학교 시청각실 자재실로 유인된 뒤 흉기에 찔려 숨졌다. 방정환어린이도서관,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 천도교여성회본부, 천도교청년회, 동학소년회 등 이들 단체는 성명서를 통해 “정부와 관계 기관은 더 이상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대책을 즉시 마련할 것, 이에 더해 12일 정부가 밝힌 ‘정신질환 등으로 교직 수행이 곤란한 교원에게는 일정한 절차를 거쳐 직권휴직 등 필요한 조치를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은 실질적인 예방책이 될 수 있도록 반드시 실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성명서에는 정부 및 사법 기관에 대한 요구 사항이 포함되었으며, 재발 방지 대책 및 추가 요구 사항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되었다. 천도교 산하 단체 관계자는 성명서를 발표하며 “천도교는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어린이 보호를 위한 사회적 연대와 지원 활동에 적극 동참할 것입니다. 다시 한번 피해 아동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분들께 깊은 위로의 뜻을 전합니다.”라고 밝혔다. 아래는 성명서 전문이다. 대전 초등학생 피살사건에 대한 성명서 대전에서 발생한 초등학생 피살사건은 우리 사회가 어린이를 보호하는 데 있어 얼마나 부족한지 다시금 드러낸 비극입니다. 사랑하는 자녀를 잃은 부모님의 깊은 슬픔과 고통을 감히 가늠할 수 없습니다. 천도교인은 피해 아동의 성령출세를 심고합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개인의 범죄를 넘어, 우리 사회가 아이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구조를 얼마나 견고하게 마련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정부와 관계 기관은 더 이상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대책을 즉시 마련해야 합니다. 특히, 12일 정부가 밝힌 ‘정신질환 등으로 교직 수행이 곤란한 교원에게는 일정한 절차를 거쳐 직권휴직 등 필요한 조치를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은 실질적인 예방책이 될 수 있도록 반드시 실행되어야 합니다. 해월신사님은 “아이를 때리지 마라. 아이를 때리는 것은 곧 한울님을 때리는 것이니 한울님이 싫어하고 기운이 상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울님을 모시고 있는 모든 생명이 귀하다 할 것이나 특히 어린이들은 우리의 미래이자 희망이기에 더욱 소중히 대하고 돌보아야 할 것입니다. 올해는 천도교에서 세계 최초로 어린이인권선언을 한 102년이 되는 해이고, 우리나라에서 어린이날을 제정한지 103년(천도교 어린이날 104년) 되는 해입니다. 어린이를 위한 운동이 시작된 지 100년이 지났으나 우리 사회가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 가고 있는가 성찰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어린이 보호를 위한 사회적 책임을 다할 것을 촉구합니다. 정부는 ▲학교 및 지역 사회의 아동 보호망 강화 ▲위험 감지 및 즉각 대응 시스템 구축 ▲아동 대상 강력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 등의 실질적인 조치를 신속히 시행해야 합니다. 또한, 교육부는 ▲교사 대상[전문 심리 상담]프로그램 강화 및 의무화 ▲각급 학교에 학생 생활 책임 교감 별도 임명 ▲학교 내외에서 발생하는 범죄 예방을 위한 아동 안전 전담 인력 배치 확대 ▲학생 ‘안심 귀가 시스템’ 구축 등을 하여 학생 안전을 위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더불어, 근본적으로는 늦은 시간까지 아이들을 학교에 맡겨야 하는 현실 자체를 개선하는 사회적 논의를 해야 합니다. ▲노동시간 단축 ▲육아 휴직 제도 개선 ▲양육자와 양육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 등의 노력을 통해 아이들이 안전하고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비극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어린이 보호를 위한 사회적 연대와 지원 활동에 적극 동참할 것입니다. 다시 한번 피해 아동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분들께 깊은 위로의 뜻을 전합니다. 포덕 166(2025)년 2월 14일 방정환어린이도서관,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 천도교여성회본부, 천도교청년회, 동학소년회 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