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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와 3 · 1운동(21) 3.1운동이 있었기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오늘의 우리나라가 있다『천도교와 3.1운동』은 천도교중앙총부 교화관에서 발행한 책으로, 3.1운동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천도교의 역할을 깊이 있게 조명하고자 이창번 선도사가 집필하였으며 동학을 계승한 천도교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에 앞장선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그 사상적·조직적 기여를 알기 쉽게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은 3.1운동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함께 천도교가 지닌 민족사적 의미를 되새기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유익한 자료로 제공하고자 저자의 동의를 얻어 천도교인터넷신문에서 연재한다. - 편집자 주 - 2. 잊혀져 가는 3.1운동 우상화로 왜곡된 3.1정신 (참고 박성수 자료) 우리에게 자장 중요한 사실은 3.1운동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고 오늘날의 우리나라가 있다는 사실이다. 3.1운동의 결과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당시의 연합국은 승인하지 않았다. 이 같은 국제승인이 있건 없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단지 우리민족의 요구와 선언만으로 수립된 것이다. 굳이 연합국의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미국의 독립이 미국의 독립선언만으로 가능했듯이 우리의 독립도 우리 민족의 자결만으로 독립조건이 충족된 것이다. 민족대표 33인을 잊지 말자 올해로 3.1운동 90주년을 맞는다. 당연히 축하해야 하지만 반성할 것도 많다 3.1운동이 일어난 해는 1919년 3월 1일 나라가 망한지 10년이 되기 직전 인 9년차였다. 우리민족이 돌연 세계를 향해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이 독립선언을 하기까지 민족대표 33인, 그중에서도 손병희 선생의 노력은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3.1운동이 아무 준비도 없이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33인이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이어 학생들이 탑골공원에서 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부르기 까지 무척이나 많은 사람들이 노력한 결과 3.1운동이 성공한 것인데 그런 것이 제대로 기술되지 않았다. 준비과정이 모두 생략되어 있는 것이다. 자칫하면 발각될 뻔 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나고 보면 그런 일들은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세월의 물결에 씻겨 가지와 잎이 떨어져 태백산 정상의 주목처럼 되고 마는 것이다.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사람이 육당 최남선이었다는 사실, 선언서를 인쇄한 사람이 천도교 보성사의 이종일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모든 준비를 손병희 선생이 했다는 사실은 확실한데 학생들이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을 낭독한 사실만 교과서에 뚜렷이 남아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학생의 이름은 밝혀지지 않았다. 내가 읽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많으나 모두가 거짓이다. 일이 잘되면 자신이 했다며 공을 내세우지만 일이 잘못되면 아무도 나서지 않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서울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난 뒤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가면서 많은 사람이 태극기를 만들고 독립선언서를 품에 감추고 혹은 걸어서 고향을 찾아갔다. 유관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유관순 이전에 많은 사람이 고향을 찾아가서 독립운동을 일으켰으나 그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다. 더욱 놀라운 일은 매국노 이완용까지도 민족대표의 한사람이 될 뻔했다는 것이다. 그는 분명히 나라가 독립되면 나는 죽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거절한다고 말했으나 만세운동 준비를 일본경찰에 알리지는 않았다. 3.1운동 앞에 매국노의 양심이 무릎을 끓은 것이다. 3.1때처럼 모두가 한 몸 한마음이 되어 애국심을 발휘한 적은 없었다. 세계화 운운하는 바람에 애국심이 하나둘 사라져가고 개인주의만 꽃피는 요즈음 배워야할 역사의 교훈이다. 북한의 3.1운동 왜곡 최근 몇 년 사이 3.1운동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학생이 많아지고 있다는 통계가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건망증은 본래 노인들의 지병으로 알고 있는데 요즈음 젊은이들도 건망증에 걸린다는 것이니 세태가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심지어 젊은 학자들도 3.1운동이 별로 중요한 사건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니 용서받을 일이 아니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3.1운동의 나라 한국을 동방의 등불이라 한 사실은 유명하다. “일찍이 아세아의 황금시대에 빛나던 등불 그대 한국이여 네가 다시 한번 불을 켜는 날엔 한국아 너는 동방의 빛이 되리라.” 이 시는 3.1운동이 일어난 지 10년이 되던 1929년 4월 2일 동아일보에 실려서 지금도 우리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있다. 3.1운동의 비폭력 정신은 인도의 간디와 네루까지도 고개를 숙였다는데 우리는 왜 3.1운동을 잊어만 가는가? 역사는 기억해야 역사라고 한다. 잊으면 역사는 영원히 망각의 세계로 사라지고 무가 되고 만다. 그러나 망각보다 더 무서운 범죄는 역사를 왜곡하는 일이다. 한번 왜곡된 역사는 다시 살리기 어렵다. 3.1운동을 가장 심하게 왜곡하고 있는 나라가 북한이다. 북한의 역사왜곡은 날조라 할 정도다. 폐쇄된 공간 북한은 우리 근대사를 온통 김일성 위주의 역사로 개악하였다. 철창 속에 갇힌 북한 인민민주주의 인민들은 독립운동을 김일성 혼자 한 것처럼 꾸민, 아니 날조한 연극을 보고 박수치라고 강요받고 있다. 1911년을 김일성이 태어난 해라하여 주체 원년으로 삼고 조금 있으면 대대적인 주체 100년 축제를 할 모양이니 이쯤 되면 비극이 아니라 희극이다. 북한에서는 3.1운동 때 여덟 살 난 김일성이 시위대를 이끌고 평양 대동문까지 갔다는 거짓말을 믿어야한다. 거기에 더해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이 서울의 민족대표보다 먼저 만세운동을 일으켰다는 사실도 믿어야한다. 북한에서는 이 거짓말을 믿지 않으면 강제수용소에 가야한다. 한편 남한에서도 3.1운동에 대한 역사인식이 불완전하다. 3.1운동은 학생들이 먼저 일으킨 학생들만의 운동이 아니었다. 만일 민족지도자들의 독립선언이 없었다면 그야말로 학생과 군중들의 무질서한 시위운동으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만일 그랬다면 그야말로 일제가 바라고 바라던 폭동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민족지도자들은 미리 못을 박고 당부하기를 질서를 지키고 비폭력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렇기에 3.1운동은 훌륭한 독립운동으로 네루와 간디 그리고 타고르까지도 부러워했던 독립운동으로 기억된 것이다. 민족자결로 충분하였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사실은 3.1운동이 있었기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오늘의 우리나라가 있다는 사실이다. 3.1운동의 결과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당시의 연합국은 승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스위스에서 열린 국제사회당 대회는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승인하였다. 이 같은 국제승인이 있건 없건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단지 우리민족의 요구와 선언만으로 수립된 것이다. 굳이 연합국의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미국의 독립이 미국의 독립선언만으로 가능했듯이 우리의 독립도 우리민족의 자결만으로 독립조건이 충족된 것이다. 자칫하면 이 같은 대원칙을 우리는 잊는다. 민족자결의 원칙은 미국 대통령 윌슨이 발명한 것이 아니다. 우리민족의 자율적인 의사결정으로 독립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독립을 선언하고 1910년의 국권침탈조약을 무효화시킨 것이 3.1독립운동이었다. 우리는 1965년 한일양국 간에 기본조약을 맺어 오랫동안 끊어졌던 국교를 정상화 하였다. 만일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역사가 없었다면 기본조약 제 2조 “1910년 8월 22일에 체결된 한일병합조약과 그 이전의 모든 조약은 무효”라는 조문을 고집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국민은 그때 한일회담을 반대하였고 한일국교정상화를 반대하였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가 3.1독립정신에 입각하여 일제 36년간의 식민통치를 무효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외쳤던 독립만세의 함성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기억을 1965년 한일기본조약 제2조에 명문화한 것이니 어찌 우리가 3.1운동을 잊었다 할 수 있는가. (계속) 글 지암 이창번 선도사 1934년 평안도 성천 출생 1975년 육군 소령으로 전역 1978년 천도교유지재단 사무국장 직을 시작으로 천도교종학대학원 원감, 천도교종학대학원 교수, 천도교당산교구장, 천도교동명포 도정, 상주선도사, 의창수도원장, 천도교중앙도서관장을 역임하였다. -
오늘의 소사(小史) ○ 9월 30일○ 1955년, 미국의 영화배우 제임스 딘 교통사고로 사망 헐리우드의 대표적 청춘스타였던 제임스 딘(James Byron Dean, 1931~1955)은 「이유 없는 반항」, 「자이언트」 등으로 전 세계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었으나, 24세의 나이에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해 「에덴의 동쪽」으로 아카데미상 최초로 사후에 남우주연상이 주어졌다. 그의 요절은 ‘영원한 반항아’라는 이미지를 더욱 굳히며 대중문화의 전설로 남았다. 1999년 미국영화연구소가 선정한 최고의 남자 배우 25명 중 18위에 선정되었다. ○ 196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발족 유럽경제협력기구(OEEC)를 확대, 편한 OECD가 이날 공식 출범하였다. 회원국들은 경제 성장과 무역 확대, 개발도상국 지원을 목표로 협력하며, 오늘날 세계 경제 질서를 이끄는 핵심 기구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 1966년, 아프리카 보츠와나공화국 독립 아프리카 남쪽에 자리 잡은 보츠와나가 이날 영국의 보호령에서 벗어나 독립을 선언했다. 독립 이후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며 경제 성장의 기반을 다져, 아프리카 내에서 비교적 민주주의가 정착된 국가로 평가받는다. 서부 지역 대부분은 칼라하리사막이 뒤덮고 있어서, 남아공과의 접경지대인 남동부에 인구가 집중되어 있다. ○ 1981년, 서울, 1988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되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총회에서 서울을 1988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최종 선정했다. 이는 대한민국이 세계 무대에 본격적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서울올림픽은 냉전 시대 화해와 교류를 상징하는 대회로 기억되고 있다. ○ 1995년, 이준 열사 유해, 56년 만에 돌아오다 이준은 조선 그리고 대한제국의 검사이자 외교관이다.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1907년 고종의 밀명으로 이상설, 이위종과 함께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파견되었다. 그러나 임무를 완수할 수 없게 되자 지병이었던 뺨 종기가 도졌으며, 울분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지병이 악화되어 사망했다. 이날 이준 열사의 유해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조국으로 봉환되었다.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 유해는 민족 독립을 위해 헌신한 그의 뜻을 되새기게 한다. -
김현성, 동학을 노래하다…경전에서 길어 올린 신작으로 문화운동의 새 물꼬가을밤, 천도교중앙대교당 앞마당이 노래와 이야기로 환해졌다. 9월 25일 오후 7시, 「이등병의 편지」와 「가을 우체국 앞에서」의 싱어송라이터 김현성이 ‘자유와 독립을 향한 동학혁명의 이야기와 노래’를 주제로 단독 콘서트를 열고, 동학 천도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신작들을 처음 공개했다. 공연은 1부 ‘민족 시인의 노래·독립군의 노래’, 2부 ‘동학, 아름다운 사람들’로 나뉘어 진행됐다. 관람석에는 박인준 교령과 강병로 종무원장, 서소연 교무관장, 최인경 사회문화관장, 남연호 도서관장을 비롯해 100여 명의 관객이 자리해 기타 선율과 서사에 귀를 기울였다. 서막은 김민기의 「아름다운 사람」. 이어 이육사의 「청포도」, 윤동주의 「별 헤는 밤」, 한용운의 「나룻배와 행인」이 잔잔하면서도 힘 있는 편곡으로 무대에 올랐다. 「나는 자랑스런 의병이에요」와 신곡 「홍범도의 묘비」는 청중의 호흡을 낮추며 독립군의 마음을 불러냈고, 「이등병의 편지」와 「술 한잔」이 1부의 여운을 길게 남겼다. 무대 양옆 대형 스크린의 자막과 영상은 곡의 메시지를 선명하게 했다. 2부는 『동경대전』과 『용담유사』, 『해월신사법설』에서 가사를 뽑아 쓴 신곡으로 채워졌다. 2부 공연 시작에 앞서 최인경 사회문화관장이 초대 손님으로 나와 동학 천도교가 3‧1혁명에서 촛불에 이르는 한국 근현대사의 심장부에 서 있었음을 환기시켰다. 최 관장은 “작은 문화운동이 국민의 마음에 스며들도록 전국 순회 프로그램으로 이어가겠다”고 밝히면서 대중을 향한 천도교 문화운동의 지향점을 명확히 했다. 김현성 역시 “음악은 시대를 기록하고 메시지를 건네는 유용한 통로”라며, 전국 소극장 투어와 음악극·뮤지컬 등으로의 확장을 예고했다. “동학은 미지로 보일지 몰라도, 여기서 길어낼 에너지는 엄청나다”는 그의 기대가 덧붙었다. 이어진 「해월 선생 내게 물으시네」는 「대인접물」의 문장을 경쾌하게 풀어 천도교 교리를 자연스레 각인시켰고, 「탄 도유심급」은 바른 마음을 다잡는 경구를 리듬으로 새겼다. 『용담유사』 「흥비가」 구절을 인용한 「아름드리나무」의 흥겹고 포근한 결이 관객의 어깨를 들썩이게 했다. 배우 김진휘의 ‘일하는 한울님’ 낭독이 이어지며 서소문 옥중 해월 최시형 신사의 육성이 현재의 시간 위로 포개졌다. 뒤이은 「해월, 작별의 인사」와 「세상에서 참 기쁜 일」은 수운 최제우 대신사를 만난 기쁨과 해월의 결연한 마음을 절제된 선율로 그려 깊은 공명을 만들었다. 김현성은 “(이 노래들은) 경전의 문장을 노랫말로 발췌해서 처음 들려드리는 것”이라고 창작 배경을 전했고, 무대는 「주먹밥」, 「기미독립선언을 노래함」으로 이어졌다. 앵콜로 「가을 우체국 앞에서」를 관객과 함께 합창하며 밤하늘의 여운을 길게 남겼다. 내내 공연을 지켜본 20대의 비(非)교인 정소라(가명) 씨는 “자막과 영상 덕분에 노랫말과 맥락이 또렷했다”며, 신앙 배경이 없어도 동학과 천도교의 핵심을 따라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비(非)천도교인에게도 열린 입구가 마련됐다는 평가다. 서울교구 송영기 동덕은 “중앙대교당 앞마당이 공연장으로 변한 순간, 교당이 ‘문화의 마당’이 될 수 있음을 체감했다”며 유연한 공간 활용의 가능성을 짚었다. 맑은 날씨와 어울린 선곡이 현장을 하나로 묶었다는 소감도 전했다. 강병로 종무원장은 “동학은 이런 식으로 퍼져 나가야 한다. 오늘 콘서트에 크게 감동했다. 동학이 음악, 미술, 운동으로까지 이처럼 확장되는 방식이야말로 동학이 사회 속으로 퍼지는 길”이라고 강조해, 중앙총부가 지향하는 K-동학의 좌표를 다시 확인케 했다. 권윤호 동덕은 배우 김진휘의 낭독을 언급하며 “해월 신사께서 하셨을 말씀이 자막과 함께 흐르자 울컥해 눈물을 쏟았다”고 했다. 음악과 서사의 결합이 만든 집중력, 신작에 맞춘 자막 운영의 효과가 눈에 띄이는 부분이다. 주선원 동학민족통일연구회 상임의장은 “매우 독특한 기획을 해줘서 오늘만큼은 정말 기쁘다. 경전 말씀이 오늘의 노래로 울릴 때 너무 좋았다”고 평했고, 서울교구 양윤석 선도사는 “최근 중앙총부가 추진한 행사 중 가장 빛나고 가장 탄탄한 기획”이라며 제작진의 열의와 완성도를 높이 평가했다. ‘김현성의 아름다운 사람들’은 노래로 만난 동학 천도교의 현재형 기록이었다. 수운 대신사와 해월 신사의 가르침을 오늘의 언어와 선율로 되살린 무대, 그리고 그 무대를 발판으로 전국을 잇는 순회 문화운동의 약속이 한데 포개졌다. 문화로 스며드는 교화, 생활 속에서 자라는 신앙. 중앙총부가 열어갈 다음 장을 기대하게 하는 아름다운 밤이었다. -
「2025 경주동학문화제」 동학 정신, 세계로 비상(飛上)하다포덕 166년(2025) 9월 27일, 「2025 경주동학문화제」가 ‘동학정신 세계화의 비상(飛上)’을 주제로 경주동학교육연수원에서 열렸다. 올해 행사는 의식, 공연, 비전 선포, 체험 프로그램을 촘촘히 엮어 천도교 신앙과 예술, 지역 공동체가 한자리에 어우러진 축제의 장으로서 마련됐다. 현장에 모인 천도교인과 시민들은 ‘사람이 하늘’이라는 인내천 사상을 현재의 언어로 체험하며, 세계로 향하는 동학 정신의 다음 걸음을 함께 그렸다. 개막 의례는 용담교구 최중환 동덕의 집례로 청수봉전, 심고, 주문 3회 병송, 경전 봉독 순으로 경건하게 진행됐다. 이어 박인준 교령의 기념사, 주낙영 경주시장 환영사(송호준 부시장 대독), 경주시의회 이동협 의장 축사(임활 부의장 대독), 경상북도의회 배진석 부의장, 최재필 운영위원장의 축사가 차례로 이어졌다. 이날 행사에는 김성환 연원회 의장, 강병로 종무원장, 명승철 연원회 부의장, 최상락 용담수도원장, 김명덕 여성회장, 박차귀 부산시교구장을 비롯한 각 교구장 등 교단의 주요 인사가 대거 참석해 축제의 의미를 더했다. 서울 및 지방 교구에서 참석한 교인들 외에 경주 지역 문화·예술계 및 시민사회 관계자와 시민들도 자리를 함께해 ‘경주에서 다시 밝힌 동학의 불빛’을 격려했다. 박인준 교령은 기념사에서 경주의 역사적 의미와 동학 정신의 세계적 가치를 강조했다. “경주는 신라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문화 고도로, 이곳 경주에서 동학 천도교가 창명되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라면서 “우리는 166년 전 경주에서 시작된 ‘다시개벽’의 커다란 울림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사람과 천지 만물, 너와 내가 하나 되는 삶을 살아가는 생명 사상, 모든 사람이 신분적, 인권적 차별이 없는 고귀한 인격체라는 만민 평등 사상의 정신은 동학농민혁명으로, 나아가 3·1운동으로 이어지며 대한민국 헌법 정신으로 자리매김하여, 오늘날 대한민국의 민주화운동, K-문화, K-예술로 나타나고 있다”고 역설했다. “천도교의 이름으로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꿈과 희망을 열어가기 위해 이곳에 모인 우리들인 만큼 경주동학문화제를 통해 동학 천도교의 참모습과 그 정신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경주시 가정리 출신 최해춘 시인은 『용담유사』 「검결」을 모티브로 한 자작 축시를 낭송해 오프닝 의식의 여운을 문학으로 이어 주었다. 주무대 공연은 극단 하랑시어터의 뮤지컬 「하늘을 품은 백성들」이 이끌었다. 수운 최제우 대신사의 인내천 사상과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장면을 오늘의 언어와 음악으로 풀어낸 작품으로, “하늘은 멀리 있지 않네. 내 마음속에 숨 쉬고 있네”는 합창이 객석의 큰 박수를 받았다. 이어 그룹사운드 ‘롱아일랜드’가 폭발적인 사운드로 축제의 열기를 높였고, 남성 3인조 보컬 ‘세심관’이 감미로운 하모니로 무대를 채웠다. 올해 무대에서 특히 눈길을 끈 장면은 부산예술대학교 실용무용과 교수, 학생, 졸업생이 함께한 스트릿댄스 팀 ‘하단 패밀리’의 퍼포먼스였다. 이 공연은 천도교중앙총부–부산예술대학교–동천고등학교 간 업무협약(MOU) 의 첫 결실로 마련된 무대다. 협약에는 “부산예술대가 천도교의 각종 행사에 참여해 공연·전시 등 예술 활동을 펼치고, 중앙총부는 공간과 기회를 제공하며 천도문화를 현대적 감성으로 확장한다”는 실천 과제가 담겼다. 이번 스트릿댄스는 MOU 정신을 현장에서 구현하며 축제의 메시지를 강렬하게 증명했다. 스트릿 댄스 공연이 끝나자 무대 중앙에 펼쳐진 미디어 퍼포먼스와 함께 천도교의 미래 비전이 선포됐다. “한울님 은덕을 잊지 않겠습니다.” “내 모신 한울님과 하나임을 믿고 신인간으로 거듭나겠습니다.” “가족·이웃종교·길 위의 모든 분들을 한울님으로 대하겠습니다.” “만물을 내 몸같이 돌보는 삶을 살겠습니다.” “해월신사 탄신 200주년을 내다보며 조화를 이루는 동학문화를 선도하겠습니다”라는 다짐이 스크린 속 화려한 영상과 함께 울려 퍼졌다. 이어 21자 주문 합송이 진행됐다. 무대에 올라온 박인준 교령은 “대신사님, 해월신사님이 마당 포덕을 할 때도, 동학혁명군이 죽창을 들고 싸우러 나가면서도 주문을 외웠다. 3·1혁명을 앞두고 의암성사께서 전국 지도자들을 모아 49일 기도를 봉행할 때도 주문의 힘으로 나아갔다. 오늘의 천도교가 세상에 널리 펼쳐지려면 주문 공부로 힘을 채우고, 그 힘으로 세상을 선도해야 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 말에 호응하듯 모든 교인이 함께 21자 주문을 21회 합송했다. 한편, 주무대 뒤편에서는 궁을장 노리개 만들기 체험, 활쏘기 체험, 신인간사·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전시, 홍보 부스 등이 운영됐다. 본 공연 뒤에는 라임&붐업MC의 디제잉으로 EDM 트로트 파티가 이어져, 세대와 장르의 경계를 넘어 하나가 되는 축제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이번 경주동학문화제에 참가한 교인들은 한목소리로 “젊어진 축제, 알찬 프로그램”을 꼽았다. 원주교구 김영덕 교구장은 “전반 구성과 완성도가 최고였다”고 평했고, 부산시교구 박차귀 교구장은 “21자 주문 합송과 함께 젊은 무대가 자부심을 일깨웠다”고 말했다. 용담교구 노상규 동덕은 “시천주 사상이 더 널리 퍼질 수 있는 계기”라고 평가했고, 대동교구 선영숙 동덕은 “가장 젊은 축제였다. 앞으로도 젊은 무대를 통해 새 세대 교화가 활기를 얻길 바란다”고 말했다. 동시에 개선을 바라는 의견도 솔직하게 이어졌다. 대구시교구 서광우 동덕은 “내용은 뛰어난데 관객 동원이 아쉬웠다”고 지적했고, 울산교구 정의필 도정은 “햇빛 가리개 모자 등 현장 편의가 조금 더 세심했으면 좋겠다. 외부 주요 내빈이 참석한 만큼 앞줄 좌석 운영도 더 빈틈없었으면 한다”고 제언했다. 서울교구 방자명 동덕은 “전반 연출과 그래픽은 훌륭했지만 사전 홍보가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같은 의견은 내년 프로그램 기획과 지역 시민 참여 확대, 현장 운영의 디테일을 가다듬는 실천 과제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사람이 곧 하늘(人乃天)’이라는 가르침은 오늘날 환경, 평화, 인권의 의제를 관통하는 세계 보편가치로 확장되고 있다. 이번 문화제는 동학 천도교의 언어로 예술, 시민사회가 함께 만드는 교화 생태계의 가능성을 엿보는 기회였다. 2025 경주동학문화제는 그렇게 참석자들의 가슴에 ‘비상(飛上)’의 약속을 남기고 막을 내렸다. -
오늘의 소사(小史) ○ 9월 29일○ 1504년(연산군 10년), 갑자사화가 일어나다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는 성종의 계비였으나 폐위된 뒤 사약을 받고 죽임을 당했다. 연산군은 즉위 초기까지 이 사실을 몰랐다가 임사홍의 밀고로 진상을 알게 되었고, 폐비 윤씨 사건에 연루된 주변 인물들과 신하들을 포함해 자신에게 대항하는 세력을 잔혹하게 숙청했다. 이 과정에서 사림파가 큰 피해를 보았고, 유교적 정치 질서가 크게 흔들렸다. ○ 1890년, 성공회 주교 코프, 인천에 도착하다 영국 성공회에 소속된 조선교구 초대 교구장 존 코프(Charles John Corfe, 한국명 고요한, 1843~1921) 주교가 인천에 도착했다. 이후 코프 주교는 인천 중구 송학동에 큰 집을 얻고 병원을 꾸미고 첫 포교의 방편으로 삼았다. 한국 성공회 선교의 토대를 마련하는 한편, 선진 의료와 교육을 보급하는 데 힘쓴 코프 주교는 1905년 조선을 떠나 중국 베이징에서 3년여간 선교 활동을 하다가 영국으로 돌아갔다. ○ 1970년, 월간지 『사상계』 등록 말소 『사상계』는 1953년 4월, ‘못난 조상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장준하의 신념에 따라 창간됐다. 이후 정론 월간지의 대명사로서 이승만, 박정희 정권에 맞서 자유, 민주, 반독재 투쟁에 크게 이바지했다. 그러나 군사정부는 인쇄시설 미비라는 이유로 『사상계』의 등록을 말소했다. 신민당은 정부의 이 같은 처사가 헌법에 보장된 언론과 출판의 자유에 대한 묵과할 수 없는 침해 사건이라고 보았다. 1972년 4월, 대법원의 등록 취소 청구 소송 확장 판결에서 승소했으나 끝내 복간되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 1972년, 중국과 일본, 중일 공동 성명 체결로 국교 정상화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와 다나카 가쿠에이 일본 총리가 베이징에서 공동 성명을 발표하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단절되었던 국교를 정상화했다. 이로써 양국은 전쟁 이후 27년 만에 공식 외교 관계를 수립했고, 동북아 정세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경제·문화 교류의 길이 열리면서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 환경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
천도교영등포교구, 월산 김승복 종법사 환원 21주기 추모시일식 봉행천도교영등포교구는 지난 9월 28일, 월산 김승복 종법사 환원 21주기를 맞아 추모시일식을 봉행했다. 시일식은 홍성웅 교화차장 집례로 개식–청수봉전–심고–주문 3회 병송–경전 봉독(경월당 김성자)–천덕송 합창(제12장 ‘안분가’)–약력 소개(박정연 감사)–월산 선생 음성 설교–추모사(조광걸 교구장)–천덕송 합창(제14장 ‘위령송’)–심고–폐식–주문 21회 합송–사계명 합송의 순으로 진행됐다. 영등포교구는 교구 곳곳에 경전 구절과 함께 월산 종법사의 설교 말씀을 전시하여, 참석 교인들이 뜻을 마음 깊이 새길 수 있도록 했다. 조광걸 교구장은 추모사에서“저희는 오늘 월산 김승복 종법사님을 추모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종법사께서 환원하신지 어느덧 스물한해가 지나고 있습니다. 종법사님의 환원 추모식을 저희 영등포 교구에서 조촐하게 나마 모시게 되어 다행스럽고 한편, 송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라고 추모하며, “영등포교구가 ‘수련 열심히 하는 교구, 도력이 높은 교인’으로 인정받는 것은 스승님이 남기신 큰 유산”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무심행·무애행, 천체공도의 체천행도를 온전히 따르며, 지상천국 속에서 만민이 행복을 누리는 인내천의 세상이 하루속히 구현되도록 매진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참석한 교인들은 월산 종법사의 뜻을 기리며, 일상에서의 경건한 수련과 실천으로 교단의 중흥과 인내천 사회 구현에 앞장설 것을 한마음으로 다짐했다. -
성충모 강남교구장 환원성충모 강남교구장이 환원하였다. 빈소는 쉴낙원김포장례식장 7호실이며, 10월 1일(수) 오전 5시 30분 발인한다. 강남교구에서는 9월 30일(화) 오후 9시에 추도식을 봉행할 예정이다. 부고안내 https://fd.fdnara.com/share/funeralNotice/mourner/FNTC000004197/MUN000031593 -
우암 김명진 종법사 환원 35주기 추모식 봉행포덕 166(2025)년 9월 13일, 우암 김명진 종법사 환원 35주기를 맞아 남해 선구교구에서 추모식이 봉행되었다. 이날 추모식은 선구교구 박철 교구장의 집례로 진행되었으며, 송범두 도정을 비롯해 김환용 도훈, 김덕칠 선도사, 송장호 동서울교구장 등 남해와 서울, 부산에서 모인 40여 명의 교인이 함께하여 종법사의 삶과 뜻을 기렸다. 추모식은 교회 의식에 이어 박완주 선도사가 약력을 소개하고, 최수덕 선도사가 추모사를 전했다. 이어 참석자들의 분향과 김용 동덕의 유족 대표 인사가 이어지며 종법사를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우암 김명진 종법사는 포덕 48년(1907) 남해군 남면 선구리에서 태어나 남명보통학교와 남해불교중학을 거쳐 포덕 70년(1929) 천도교에 입교했다. 학창 시절부터 송범계 모금 운동을 주도하는 등 일찍이 지도자의 기질을 보였으며, 평생을 지역사회와 교단을 위해 헌신했다. 포덕 87년(1946) 해성중학교 설립에 앞장서 초대 교장을 맡아 청소년 교육에 힘썼고, 교단에서는 선구교구장, 상주선도사, 종무원장, 종학원장 등을 역임하며 교단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 포덕 112년(1971)에는 종법사에 추대되어 교세 확립과 교화 활성화에 헌신했으며, 포덕 117(1976)년 교령에 취임하고 포덕 118(1977)년에는 연원회 부의장에 선출되어 교단을 이끌었다. 포덕 130년(1989)에는 지역 유자들이 뜻을 모아 공적비를 세웠으며, 포덕 131년(1990) 향년 84세로 환원하였다. -
경주동학문화제, 인내천 사상 시민과 함께 현대적으로 계승(1보)지난 27일 경주 동학교육수련원에서 열린 경주동학문화제가 시민들의 뜨거운 참여 속에 성황리에 개최됐다. 이번 행사는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평등과 인류애, 자연 존중의 가치를 시민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마련되었다. 기념식과 비전선포, 전통과 현대의 어우러짐 이날 기념식과 함께 축하공연과 비전선포식이 이어졌다. 축하공연에는 ▲하랑씨어터의 해설 뮤지컬, ▲롱 아이슬랜드 밴드, ▲부산예대 한단 패밀리, ▲세심관, ▲DJ 라임의 트로트 EDM 공연팀이 무대에 올라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다채로운 공연을 선보였다. 관객들은 함께 호응하며 공연을 즐기며 동학정신의 가치를 문화와 예술을 통해 체험했다. -
21세기 문명 전환 프로젝트, K-동학의 비전과 실천K-팝과 K-드라마가 세계를 사로잡았다면, 이제는 ‘K-동학’이 그 길을 잇는다. 이번 호에서는 정의필 도정의 종합적 비전과 더불어 음악과 미술 분야 교인·예술가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종교와 문화가 만나는 현장을 통해 K-동학이 제시하는 새로운 시대의 길을 독자 앞에 힘 있게 펼쳐 보인다. 남정포 정의필 도정은 최근 중앙대교당 시일식 설교에서 “이제는 K-동학”이라며 새로운 시대적 화두를 던졌다. 정의필 도정은 K-팝, K-드라마 등 한류 문화가 세계를 휩쓸고 있는 지금, 그다음으로 세계 무대에 내놓아야 할 것은 한국형 대문명 전환 프로젝트인 “K-동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오늘의 인류가 직면한 위기와 과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길이라는 설명이다. 정의필 도정은 먼저 K-동학의 출발 문제의식을 짚었다. 기존 동학이 19세기 봉건과 외세에 맞선 민중적 자각 운동이었고, 천도교가 20세기 민족적 자각 운동이었다면, K-동학은 21세기 인류 공동체적 자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 위기, 불평등, 공동체 해체라는 현대적 문제 앞에서 K-동학은 내적 수양을 통한 자기혁신과 공동체 참여를 통한 사회혁신을 동시에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동학의 핵심 사상인 ‘인내천’과 ‘사인여천’을 21세기 언어로 새롭게 풀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인내천은 “모든 사람과 생명은 존엄한 존재”라는 뜻으로, 사인여천은 “사람을 대할 때 그 존엄을 하늘처럼 존중하라”는 의미로 현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교육, 사회, 지구 공동체 전반에서 존엄과 상생을 실천하는 새로운 선언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어 그는 K-동학을 실천할 가장 시급한 영역으로 ‘교육’을 꼽았다. 청년과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교리와 가치를 전달하고, 생활 속에서 존중과 친환경적 삶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한류와의 연결 가능성도 강조했다. K-팝과 드라마가 세계인의 마음을 열었다면, K-동학은 그 안에 사람과 생명 존중의 철학을 담아 인류 공동체적 연대의 길을 열 수 있다는 것이다. 첨단기술과의 만남도 언급했다. 정의필 도정은 AI, 빅데이터 시대에도 기술은 수단일 뿐 목적이 될 수 없음을 강조하며,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원리에 입각한 ‘K-동학 알고리즘 헌장’을 제안했다. 알고리즘은 인간 존엄을 해치지 않고, 차별과 배제를 넘어 모두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 청년과 지식인들에게도 K-동학은 중요한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 인내천은 경쟁과 불평등 속에서 자존감을 잃기 쉬운 청년들에게 힘이 되고, 사인여천은 다름을 존중하는 새로운 관계의 길을 제시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국제적 포럼이나 청년 리더십 프로그램 같은 모델도 구상할 수 있다고 밝혔다. 끝으로 그는 교단과 교인들이 먼저 살아 있는 K-동학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교리 언어의 현대화, 사회적 약자 보호, 지역사회공익 활동 참여, 환경·생명 운동, 공동체적 공간 조성 등을 구체적 과제로 제시하며, “포덕천하, 보국안민, 광제창생, 지상천국 건설은 교인들의 실천 속에서 현실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