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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음악’의 길 개척하며 천도교 음악의 새 지평을 연 늦깎이 국악 작곡가 정수당(正守堂) 김정희 동덕지난 8월 14일 제162주년 지일기념식. 의례를 마친 뒤 무대에 오른 문화공연은 많은 교인에게 오래 남는 감동을 주었다. 판소리 〈흥보가〉의 흥에 이어, 『해월신사 법설』을 가사로 삼은 창작곡 〈수심정기〉, 천덕송 가운데 민족적 선율을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는 〈영부의 노래〉가 이어졌고, 마지막에는 온 장내가 함께 부른 〈진도아리랑〉이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다. 이 공연을 기획하고 연출한 이는 북한 토속민요 연구와 천덕송 창작으로 잘 알려진 작곡가 정수당(正守堂) 김정희 동덕(영등포교구)이다. 어려운 가정형편과 뒤늦은 음악 공부, 육아와 생계를 모두 감당해야 했던 삶의 조건 속에서도, “언젠가는 작곡가가 되겠다”는 어린 시절의 다짐을 놓지 않고 여기까지 걸어왔다. 북한 민요 연구와 동학 천도교 음악 연구, 천덕송에 대한 고민과 창작은 그에게 단순한 직업을 넘어 ‘천도교인으로서의 삶’ 그 자체였다. 김정희 동덕이 작곡가로서 젊은 세대의 천도교인에게 전하는 메시지, 그리고 천덕송의 내일에 관해 그의 인생사와 함께 들어본다. “연주자와 관객이 하나 되는 동귀일체, 그것이 천도교 음악” 문. 제162주년 지일기념식 후 문화공연을 기획하고 연출하셨습니다. 의례 이후 교인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문화적 장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습니다. 기획 단계에서 가장 고민하신 부분은 무엇이었으며, 천도교 정신을 무대 위에 어떻게 담아내고자 하셨는지요? 답. 천도교가 ‘민족종교’라면 음악 문화에서도 그 정체성이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첫 곡은 우리 전통 성악의 대표 장르인 판소리, 그 가운데서도 가장 흥겹고 재미있는 〈흥보가〉의 ‘박타령’을 골랐습니다. 두 번째는 지일기념일의 의미를 살려 『해월신사 법설』 〈수심정기〉 일부를 가사로 삼고, 중모리장단에 창부타령조 선율을 입혀 제가 작곡한 곡 〈수심정기〉를 올렸고요, 마지막 곡은 천덕송 중에서 전통 선율을 가장 잘 구현했다고 보는 〈영부의 노래〉를 선택했습니다. 앵콜곡은 누구나 함께 부를 수 있는 〈진도아리랑〉으로 마무리했고요. 무대를 만들면서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 건 ‘동귀일체(同歸一體)’였습니다. 연주자는 연주만 하고 관객은 듣기만 하는 구조가 아니라, 추임새도 넣고 같이 따라 부르면서 연주자와 청중이 한마음이 되는 공연 말입니다. 우리 전통음악은 본래 그런 문화였고, 저는 그 전통이야말로 천도교의 시천주, 사인여천, 동귀일체 정신과도 잘 어울린다고 느꼈습니다. “좋은 엄마와 작곡가, 어린 시절 두 가지 꿈이 끝내 저를 여기까지 데려왔죠” 문. 선생님은 흔히 말하는 정규 코스를 밟은 음악인이라기보다, 여러모로 우회로를 걷다가 작곡가의 길로 들어서셨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음악과의 인연을 간단히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답. 제가 기억하기로는 열 살 무렵 제 인생 목표가 두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는 좋은 엄마가 되는 것, 두 번째는 작곡가가 되는 것이었어요.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서, 어려서부터 전문적인 음악 교육을 받기에는 여건이 좋지 않았습니다. 제 기억에 초등학교 때 어머니께서 『세광 애창 700곡집』이라는 노래책을 사 오셨고, 제게 악보 읽는 법을 알려주셨어요. 그 책에 수록된 세계 각국의 동요·민요·가곡 악보를 보며 하루 종일 부르고 또 부르며 놀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러 나라 언어의 발음도 익히게 되었고, 악보를 보고 부르거나, 들은 멜로디를 악보로 옮기는 일이 제게 즐거운 놀이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제 음악 인생의 첫 출발점이었고, 이후 어머니께서는 어려운 형편에도 1년 동안 피아노를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피아노 외의 음악 공부는 모두 독학이었지요. 그러나 음악은 저에게 늘 ‘해야 하는 공부’가 아니라 ‘멈출 수 없는 재미’였습니다. IMF, 해고, 재취업 실패… 그렇다면 지금은 공부할 시간! 문. 스무 살에는 공대를 선택하셨다가, IMF 시기에는 음악학원 교사로 일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다시 음악 전공을 결심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답. 삶이 계획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더군요. 대학에서는 전자공학을 전공했고, 이후에는 공장에도 다녔습니다. 결혼하고 첫 아이를 낳은 뒤에는, 시어머니를 모시며 정시에 출퇴근을 해야 하는 맞벌이를 하기가 어렵게 되어, 음악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자격증이 없어 감사에 걸려 해고됐고, IMF가 겹치면서 남편의 직장도 불안정해졌습니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지금은 일하고 싶어도 하기 어려운 때다. 그렇다면 이 시간을 공부에 쓰자.” 마침 정년퇴직하신 친정어머니께서 연금 일부를 일시불로 받아 제게 보태주셨고, 그 돈으로 부산예술대학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음악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작곡을 전공하려면 작곡과 피아노를 둘 다 배워야 했고, 작곡 레슨비가 너무 비쌌기에, 아는 언니에게 한 달에 일정액을 드리며 1년 반 정도 피아노 레슨을 받아서 피아노 전공으로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한 학기 지난 후에 작곡 전공으로 바꾸었지요. 그때까지 화성법, 대위법, 음악사 등은 모두 독학으로 공부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시기에는 육아와 살림, 공부를 동시에 감당해야 했기에 참 고단했습니다. 하지만 “좋아서 하는 일은 아무도 못 말린다”는 말처럼, 자발적으로 선택한 공부였기에 버틸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제가 나중에 제자들에게 늘 강조하는 ‘자발성’의 힘을 몸으로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북한 토속민요에서 발견한, 난생처음 들어본 독창적인 아름다움 문. 선생님의 대표 연구 분야 가운데 하나가 바로 북한 토속민요입니다. 이 분야를 본격적으로 파고들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답. 국악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던 시기에 황해도 토속민요인 <풍구소리>를 처음 접했습니다. 그 선율이 너무 좋아서 “이 곡으로 작품을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북한 토속민요에 관해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석사 논문이 단 두 편뿐이더군요. 황해도 한 편, 함경도 한 편. 평안도 토속민요에 대한 논문은 아예 없었습니다. 그때 ‘이건 보물창고가 통째로 사라질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토속민요는 한 집단의 음악적 모국어이자 삶의 기록인데, 분단과 세월 탓에 절반이 통째로 공백 상태로 남을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래서 ‘북한 토속민요부터 연구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한국민요대전』을 집대성하신 최상일 PD님을 만난 일이었습니다. 특강 자리에서 인사를 드리며 제가 “북한 토속민요를 석‧박사 과정에서 연구하고 싶다”고 말씀드리자, 선생님께서 “음원은 어디서 구할 건데?” 하고 물으시더라고요. 제가 “이주민 어르신들을 찾아다니며 모아보겠다”고 하니, “MBC에 이미 수천 곡이 들어와 있는데?”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장기간에 걸쳐 구하신 북한 현지 음원을 정리하고 계셨던 겁니다. 남북 정상회담을 기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엮은『북한 민요 작품집』 문. 그렇게 연구하신 북한 민요와 창작이 2018년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하나의 작품집으로 묶였지요? 답. 북한 민요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 2002년입니다. 그 이후로 논문을 쓰는 한편, 북한 토속민요 선율을 바탕으로 곡도 꾸준히 써왔습니다. 그러던 중 2018년에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고, 세계의 이목이 한반도에 쏠리는 걸 보며 ‘이제까지 써온 곡들을 모아 한반도의 평화와 상생을 기원하는 첫 작품집을 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때까지 북한 토속민요를 바탕으로 한 곡이 일곱 곡 있었는데, 정상회담을 기념하는 의미로 한 곡을 더 만들어 여덟 곡짜리 작품집을 완성했습니다. 연주 시간으로 환산하면 65분이 조금 넘는 분량이었습니다. 저에게는 첫 작품집이자 지금까지도 유일한 작품집입니다. 북한 민요에는 정말 독창적인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들어본 어느 나라 노래와도 다른, 우리만의 음조직과 장단, 정서가 살아 있습니다. 그 음악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불러내는 작업은 남과 북을 잇는 다리이자, 동학 천도교가 지향해온 만민평등과 평화의 이상을 음악으로 풀어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불연기연>을 읽고 변증법이 떠올라 무척 놀라웠습니다” 문. 천도교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답. 부산예술대학에 다닐 때 <인간과 종교>라는 교양 과목이 있었습니다. 첫 수업 시간에 김용휘 교수님께서 “종교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보세요”라고 물으셨고, 제가 유일하게 손을 들었습니다. “종교가 없어도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성인들이 남긴 책도 있고, 양심에 비추어도 도리를 알 수 있는데 왜 꼭 종교가 필요한가”라는 것이 제 생각이었지요. 그런 제가 동학 천도교 교리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된 건 바로 그 수업을 맡으셨던 김용휘 선생님, 그리고 같은 학교 교수님이셨던 김춘성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입니다. 『동경대전』의 <불연기연(不然其然)>을 처음 공부하게 되었을 때 무척 놀랐습니다. “이게 변증법 아닌가? 헤겔 철학이 들어오기 훨씬 전인 19세기 중엽 조선에 이미 이런 사유가 있었다니.” 하는 놀라움이었지요. 이어서 해월 신사의 삼경(三敬) 사상, 이천식천(以天食天), 향아설위(向我設位) 같은 가르침을 읽으면서, 제가 평소에 중요하게 여겨온 좌우명들이 이 교리 안에 다 들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경물(敬物)’ 사상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물티슈나 일회용 기저귀를 거의 쓰지 않았고, 화악산수도원에서 화장실 쓰레기를 태우는 일을 하면서 일회용품이 남기는 잔해와 독성의 문제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런 경험들이 ‘만물을 공경하라’는 삼경 사상과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결정적인 계기는 용담정 수련이었습니다. 당시 제 삶은 여러모로 바닥을 치고 있었고, 마음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선생님들이 “수련을 하면 마음에 힘이 생긴다”고 권유하셔서 겨울방학 기간에 2박 3일 용담정 수련에 참여했습니다. 오로지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그 시간 동안 비록 특별한 체험은 없었지만 ‘이 길을 계속 가면 내 인생의 문제를 풀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수련 둘째 날 “입교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고, 마침 제 생일 바로 다음 날이 제 입교일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천도교인으로서의 삶’을 저의 중심에 두게 되었습니다. <불연기연> 등 네 곡의 천덕송으로 은사님 환갑을 축하하다 문. 천덕송 창작 역시 선생님의 작업 가운데 중요한 축을 이룹니다. 특히 포덕 157년(2016) 은사이자 전교인이신 김춘성 선생님의 회갑을 맞아 네 곡의 천덕송을 작곡해 선물하셨는데요, 그 사연을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답. 박사학위 논문을 마치고 나니 “전교인이 김춘성 선생님이신데, 나는 아직 선생님께 밥 한 끼 제대로 대접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선생님의 환갑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선생님께 가장 기쁜 선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가 결국 ‘천덕송’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한울님께 마음속으로 “김춘성 선생님께 드릴 천덕송을 만들고자 하니 도와주십시오”라고 기도하고 경전을 펼쳤더니, 맨 먼저 <불연기연>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자연스럽게 첫 곡을 『동경대전』의 <불연기연>으로 정했고, 두 번째 곡은 힘든 시기에 제가 가장 많이 읽었던 대신사님의 <시문>, 세 번째 곡은 교인들에게 꼭 필요한 가르침이 집약된 〈수심정기〉, 네 번째 곡은 『의암성사 법설』 가운데 〈진심불염〉으로 정했습니다. 집에서는 집중하기가 어려워 노트북과 경전을 들고 도서관에 가서 작곡을 했습니다. 한 달 동안 네 곡을 작곡하고, 국악기 편성으로 반주를 붙인 후 연주자를 섭외하고, 녹음과 편집, 믹싱, 마스터링까지 마쳤습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너무 촉박한 일정이라 아쉬움도 남지만, 한울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추석 전날, 인사동에서 선생님과 단둘이 식사를 한 뒤 찻집에서 “선생님, 환갑 선물입니다.” 하고 그 음원을 들려드렸습니다. 선생님께서 무척 기뻐하셨고, 그 순간 저 역시 “천덕송과 천도교 음악 문화에 내 삶을 더 깊이 바쳐야겠다”는 마음을 다시금 다지게 되었습니다. 네 곡 가운데 특히 〈시문〉과 〈진심불염〉은 지금도 제가 가장 애착을 갖는 작품입니다. "천덕송은 동귀일체를 이루는 노래이자, 평등·평화·생명을 담아내는 노래" 문. 음악 연구자이자 작곡가의 시선에서 볼 때 천덕송이 지닌 정신적·예술적 본질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답. 노래는 사람의 마음을 한데 모으는 힘이 있습니다. 말이나 글처럼 논리적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영혼의 문을 두드리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어느 집단이든 자신들의 정체성을 담은 노래를 만들어 공동체 의식을 다져왔습니다. 학교에는 교가가 있고, 군대에는 군가가 있고, 국가에는 국가(國歌)가 있듯이 말입니다. 오래전부터 농부들은 들노래를 부르며 함께 땅을 갈았고, 어부들은 뱃노래를 부르며 고기를 잡았습니다. 다투던 사람들도 같이 노래하며 일하는 동안에는 한마음이 되었지요. 천덕송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천덕송을 부르는 것은 결국 동귀일체(同歸一體)를 이루고자 함입니다. 천덕송은 천덕사은을 노래하고, 동귀일체를 추구하며, 신심을 돈독히 하고, 깨달음의 기쁨을 표현하는 종교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합니다. 동시에 약자와 소외된 이들의 편에 서서 평등과 평화에 기여하고, 어렵게 이룩한 민주주의의 열매를 더욱 공고히 하는 사회·역사적 역할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냉전과 분단을 넘어 평화로 나아가는 길에 힘을 보태는 노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외되고 메마른 현대인의 마음을 순화시키고, 따뜻한 감성과 영성을 일깨우는 문화・예술적 역할 역시 중요합니다. 저는 이런 모든 요소를 아우르는 것이 천덕송의 정신적·예술적 본질이라고 봅니다. 일본 노래에서 온 곡들은 이제 보내줄 때… 21세기 가치로 새 천덕송 지어야 문. 오늘날 교단 내부에서도 “천덕송을 다시 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전통을 지키면서도 시대와 호흡하는 새 천덕송으로 나아가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답. 포덕 159년(2018), 『신인간』에 〈천덕송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 글에서 현재 부르고 있는 천덕송의 문제점을 몇 가지 짚고,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가장 심각한 점은 몇몇 곡의 선율이 일본 노래에서 왔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목적풀이〉는 일본의 〈철도창가〉에 노랫말만 바꾼 곡이고, 〈검가(기 2)〉와 〈배 떠나간다〉는 일본 특유의 ‘요나누키’ 단음계로 된 일본풍 노래입니다. 일제강점기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 민족을 침탈하고 동학군을 학살했던 역사가 분명한데, 그런 노래들을 아무 문제의식 없이 “오래 불러왔으니까 계속 부른다”는 태도로 유지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사 측면에서도 교리·교사와 어긋나는 표현, 어법에 맞지 않거나 뜻이 모호한 구절, 품위가 떨어지는 내용, 현재 맞춤법, 띄어쓰기와 맞지 않는 부분들이 있어 정리가 필요합니다. 운율 또한 중요합니다. 우리 전통 시가의 기본 운율은 대체로 3·4조, 4·4조에 2음보인데, 7·5조에 3음보라는 형식은 일본 전통 시가에서 온 것입니다. 이런 부분은 우리 고유의 리듬과 말맛을 살릴 수 있도록 바로잡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오늘의 천덕송은 21세기 인류가 함께 고민하는 가치들―생태·문화다양성, 상생, 인권, 연대, 복지, 평등, 평화 등―을 적극 반영해야 합니다. 이런 가치들은 수운 대신사, 해월 신사, 의암 성사가 가르쳐주신 바와도 직결됩니다. 동시에 전통 양식과 민족적 요소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작업도 병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천도교 음악 문화의 정체성을 세우면서도 다양성을 보완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방향에서 ‘내일의 천덕송’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학 천도교의 서사와 민요의 서정을 만나게 하는 것이 제 작업" 문. 선생님은 북한 민요뿐 아니라 경기·서도·남도 등 다양한 민요를 연구하고 창작에 활용해오셨습니다. 민요 속에서 천도교 정신을 어떻게 발견하고 재현해내고 계신지, 구체적인 사례를 소개해주신다면요? 답. 제가 2016년에 작곡한 네 곡의 천덕송 가운데, 『의암성사 법설』을 가사로 삼은 〈진심불염〉은 전남 영광군 논매는소리 〈문여가〉의 선율을 주제로 삼아 만든 곡입니다. 두레 공동체가 함께 논을 매면서 부르던 그 노래에는 꿋꿋하고 유장한 선율, 서로를 북돋는 공동체 정서가 잘 녹아 있습니다. 저는 그 선율에서 의암 성사의 기상을 떠올렸고, 그래서 그 음형을 〈진심불염〉의 주제 선율로 삼았습니다. 민요를 바탕으로 새 천덕송을 짓는 작업이 제 첫 번째 과제라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연구 작업입니다. 포덕 162년(2021)에는 ‘동학농민혁명의 음악 양상과 문화콘텐츠로서의 잠재성’을 주제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한국민요대전』을 보면, 우리가 잘 아는 〈새야 새야〉 외에도 여섯 가지 다른 선율의 〈새야 새야〉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이나 천도교와 관련된 노래는 그 수가 많지 않지만, 넓은 지역에 퍼져 있고, 비슷한 가사가 <논매는 소리>, <무덤 다지는 소리>, <정월 대보름 새 쫓는 소리>, <둥당애타령> 등 여러 갈래 민요에서 나타납니다. 이런 사례들을 찾아내고 분석해 논문으로 공유하는 것이 제 두 번째 작업입니다. 동학 천도교의 주체도 백성이고, 민요의 주체도 백성입니다. 저는 동학 천도교의 서사와 민요의 서정을 만나게 하고, 여기에 ‘지금 이곳’의 지향과 정서를 담아 예술적 숨결을 불어넣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민요는 역사성과 지역성, 시대성과 정체성을 모두 갖춘 새로운 천도교 음악 문화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겁니다. 장구·단소와 함께 부르는 천덕송, 어린이에게는 ‘진짜 전래동요’를! 문. 앞으로 교단의 주요 의례나 행사에 민요적 요소와 국악을 더 깊이 접목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구상을 하고 계실 줄 압니다. 민요의 서정성과 공동체성이 교단 문화 속에서 어떻게 살아날 수 있을까요? 답. 우선 우리 어린이들에게 ‘진짜 전래동요’를 돌려주고 싶습니다. 널리 알려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두껍아 두껍아〉, 〈쎄쎄쎄〉, 〈여우야 여우야〉 같은 노래 가운데 상당수는 사실 일본 와라베우타(동요)입니다. 와라베우타는 대부분 2분박, 2/4나 4/4 박자가 많고, 특정 음으로 종지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반면 한국 전래동요는 3분박이 많고, 12/8 박자가 가장 흔합니다. 이런 차이를 바로잡기 위해 포덕 162년(2021) 서울우리소리박물관에서 『전래동요 자료집』과 음원을 제작해 보급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런 ‘진짜 전래동요’를 천도교 어린이들이 널리 부를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천덕송 가운데 〈영부의 노래〉, 〈지일기념가〉처럼 민요풍으로 작곡된 곡들은 피아노 대신 장구와 단소로 반주하면 훨씬 흥겹습니다. 장구와 단소는 이미 초등 교과 과정에도 들어가 있으니, 역량이 되는 교구에서는 유소년부를 활성화해 ‘장구·단소로 천덕송 연주하기’ 프로그램을 운영해 보았으면 합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민요라는 보물창고를 잘 활용해 새 천덕송을 작곡하는 작업도 병행할 수 있겠지요. 이번 지일기념식에서처럼 교단의 각종 의식과 행사에 국악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중앙총부와 각 교구의 음악 문화도 점차 뚜렷한 정체성을 갖게 되리라 기대합니다. 잘못된 것은 바로잡고, 제대로 된 우리 문화를 만드는 일이 곧 ‘천도교인의 길’ 문. 안익태 애국가 문제 제기, 북한 민요 연구, 천도교 음악 연구 등 선생님이 다뤄온 주제들은 기존 음악계가 쉽게 손대지 않는 어려운 분야였습니다. 이런 작업들이 결국 천도교 음악과 문화적 자산으로 어떻게 연결될지요? 답. 한국 근대사에서 천도교는 3‧1운동을 비롯한 항일운동뿐 아니라 『천도교회월보』, 『개벽』, 『농민』, 『신여성』, 『어린이』 등 다양한 잡지를 통해 대중의 의식과 문화를 선도한 주역이었습니다. 천일기념식, 어린이날 행사 등도 온 나라가 주목하는 문화행사였지요. 스승님들은 우리에게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제가 하는 작업들은 제가 속한 영역에서 잘못된 것들을 하나씩 바로잡으면서, 앞으로의 우리 문화를 ‘제대로 만들어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색이 짙은 곡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우리 정서와 양식에 기반한 새로운 천덕송을 짓고, 한국적 색채와 천도교 정신이 어우러진 공연을 기획해 무대에 올리고, 동학·천도교와 관련된 음악 문화를 학문적으로 정리해나가는 일들이 모두 그렇습니다. 결국 이 모든 작업은 ‘천도교인으로서의 행위’입니다. 제가 걸어온 길과 그 결과물들이 조금이라도 천도교의 문화자산으로 이어진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의 노래만큼 우리 노래도, 남의 학문만큼 우리 자신도 연구합시다” 문. 오늘날의 천도교인, 특히 젊은 세대 교인들에게 음악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시다면요? 답. 세 가지 정도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남의 노래를 듣고 부르는 만큼 우리 자신의 노래도 듣고 부르자는 것입니다. K-팝이 세계를 누비는 시대지만, 그 바탕에는 우리의 민요와 전통음악, 그리고 동학 천도교의 노래들이 있습니다. 천덕송과 우리 민요를 사랑하는 마음이 곧 천도교 음악의 미래를 여는 힘이라고 믿습니다. 둘째, 남의 학문을 배우고 연구하는 만큼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연구하자는 것입니다. 저는 동・서양 철학과 음악을 두루 섭렵하면서도, 결국 우리 안에 이미 있는 지혜와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해준 것이 동학 교리와 우리 음악이라고 느꼈습니다. 『동경대전』의 불연기연, 삼경 사상, 특히 경물 사상은 오늘날 생태위기와 인류 문명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큰 자산입니다. 셋째, 나의 모든 말과 행동이 천도교인의 것이라는 점을 항상 명심하자는 것입니다. 저는 제 삶을 돌아볼 때, 특별한 재능이라기보다 물욕이 적고, 의지가 강하고,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붙드는 성향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성향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준 것이 바로 천도교 신앙과 수련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남북한 민요 연구를 더 깊게 이어가고, 새로운 천덕송을 작곡하고, 제자들을 길러내며, 천도교 음악 문화의 정체성을 세우는 일에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가 남의 노래만큼 우리 노래를, 남의 학문만큼 우리 자신을 사랑하고 연구할 때 천도교의 노래와 문화도 다시 한번 꽃피울 수 있으리라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인터뷰 진행 노은정 전 편집장) 김정희 동덕이 작곡한 <불연기연> 악보와 가사 및 유튜브로 감상하기 https://www.chondogyo.com/bbs/board.php?bo_table=news&wr_id=1975 김정희 동덕이 작곡한 <시문> 악보와 가사 및 유튜브로 감상하기 https://www.chondogyo.com/bbs/board.php?bo_table=news&wr_id=1976 김정희 동덕이 작곡한 <수심정기> 악보와 가사 및 유튜브로 감상하기 https://www.chondogyo.com/bbs/board.php?bo_table=news&wr_id=1977 김정희 동덕이 작곡한 <진심불염> 악보와 가사 및 유튜브로 감상하기 https://www.chondogyo.com/bbs/board.php?bo_table=news&wr_id=1978 -
제162주년 지일기념식 봉행포덕 166년(2025) 8월 14일, 천도교중앙총부는 천도교중앙대교당 및 전국 각 교구에서 제162주년 지일기념식을 일제히 봉행하였다. 해월신사의 숭고한 정신, ‘수심정기’로 울려펴져 이번 기념식은 시암 전명운 교화관장이 집례를 맡았으며 ▲개식 ▲청수봉전(여성회본부 이정녀 부회장) ▲심고 ▲주문 3회 병송 ▲경전봉독(여성회본부 김명덕 회장) - 해월신사 법설 守心正氣(수심정기) ▲기념사 ▲천덕송 합창 ▲심고 ▲폐식 순으로 진행되었으며, 이후 문화공연에는 천도교연합합창단 ‘샘’과 국악공연팀 ‘지음’의 무대가 이어졌다. 박인준 교령은 기념사에서 “오늘은 해월신사님께서 수운대신사님으로부터 도통을 이어받으신 뜻깊은 날”이라며, 이 날을 ‘사해 운중 밝은 달이 솟아 세상을 밝힌 날’로 비유한 지일기념가의 의미를 되짚었다. 이어 해월신사의 일생을 소개하며 “해월신사님은 정성과 공경, 믿음이 한울에 사무쳐 천명을 받고, 평생 수심정기의 독공수련에 매진하셨다”고 강조했다. 해월신사의 삶과 사상, 그리고 유산 기념사에서는 해월신사가 ‘민중의 성자’이자 ‘일하는 한울님’으로 추앙받는 이유가 상세히 전해졌다. 해월신사는 전국을 걸으며 수백만 명을 포덕했고, 『동경대전』·『용담유사』·『도원기서』를 간행해 올바른 가르침이 전승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또한 공주·삼례·광화문·보은에서 교조신원운동을 전개하여 평화적·민주적·비폭력 종교운동으로 확산시켰고, 나아가 보국안민·제폭구민·척양척왜의 기치를 들고 동학농민혁명을 지휘하며 시대의 고난 앞에 서슴없이 나섰다. 해월신사는 신분 해방, 어린이 해방, 여성 해방, 생태 해방을 주창하고 모든 사람을 한울님처럼 섬기는 사인여천(事人如天)의 정신을 몸소 실천했다. 특히 박 교령은 “해월신사님의 경천·경인·경물의 삼경사상은 물질만능주의와 인간 탐욕으로 인한 지구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 생명사상”이라며 “이는 오늘날 인류 문명의 전환기를 밝히는 희망의 등불”이라고 평가했다. 포덕 168년 탄신 200주년 향한 3개년 기념사업 이날 천도교중앙총부는 포덕 168년(2027) 해월신사 탄신 200주년을 앞두고 올해부터 3개년 기념사업에 돌입한다고 발표했다. 주요 계획으로는 △기념식 및 학술대회 △세계 어린이 인권문화제 △다큐멘터리 제작·상영 △기념 공연 △해월신사 동상 건립 △상설 및 기획 전시 △경전 목판본 제작 등이 제시됐다. 이 사업들은 동덕과 일반 시민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열린 형태로 추진될 예정이다. 박 교령은 “동덕 여러분의 적극적인 동참과 정성을 간곡히 요청드린다”며, 이번 기념사업이 교단 중흥과 더불어 인류 보편 가치 확산의 전기가 될 것임을 밝혔다. 광복 80주년과 평화통일 기원 기념식의 마지막에서 박 교령은 “내일이면 광복 80주년을 맞이한다”며, 남북 평화통일과 국가 발전, 국제 전쟁 종식, 지구촌 평화 환경 구축을 기원했다. 박 교령은 “해월신사님의 뜻을 잇는 우리는 세계 속에 평화를 전하고, 개벽의 이상을 실현하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교단 공헌자에 대한 시상 이날 지일기념일을 맞아 교단 발전에 헌신한 교인 포상 및 공로패 시상식도 함께 열렸다. 시상은 박인준 교령이 직접 맡았으며, 선구교구 성심당 최진심 선도사와 대구 대덕교구 정암 김정수 전임 교구장이 <공로패>를 수상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최진심 선도사가 직접 참석해 수상의 기쁨을 나누었다. 이번 시상은 교단 발전을 위해 헌신해온 이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앞으로도 신앙과 봉사의 길을 이어가기를 격려하는 의미를 담았다. 축하공연,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무대 2부는 대학생단 조화정 단장의 사회로 축하공연이 이어졌다. 첫 무대는 천도교 ‘샘’ 연합합창단이 <천덕송 이음곡>과 <도나도나>를 선사하며 큰 박수를 받았다. 이어 ‘지음’의 무대가 펼쳐졌다. 소리꾼 양현태, 가야금의 이서희, 대금의 장한백, 장단의 이주아 단원이 함께 꾸민 판소리 흥보가 중 ‘박타는 대목’은 흥과 웃음을 자아냈고, ‘수심정기(김정희 작곡)’, 천덕송중 ‘영부의 노래’는 깊은 울림을 전했다. 공연이 끝날 때마다 객석에서는 뜨거운 환호와 박수가 이어졌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250여 명의 교인과 내외빈이 참석해 뜻깊은 이날을 기념했다. 다음은 이날 발표한 기념사의 전문이다. 기 념 사 공경하는 국내외 동덕 여러분! 모시고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해월신사님께서 천명(天命)에 따라 수운대신사님으로부터 도통을 전수받은 지 162주년이 되는 지일기념일입니다. 이 날을 지일기념가에서는 ‘사해(四海) 운중(雲中) 밝은 달이 솟아 올라서 어둔 세상 명랑(明朗)하게 비춰주신 날’, ‘이세(二世) 교조(教祖) 되셔서 세상 건지신 날’, ‘창생 살아난 날’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뜻 깊은 날을 맞이하여 우리는 해월신사님의 위대한 삶과 발자취를 더듬어 보고, 깊고 높은 가르침을 가슴속 깊이 되새기며 새롭게 결의를 다지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해월신사님께서는 만고 없는 무극대도인 천도를 얻으셔서 후천개벽의 새벽을 여신 수운대신사님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은 이후에는 평생토록 일편단심(一片丹心)으로 수심정기(守心正気)의 독공수련에 매진하셨습니다. 해월신사님은 진정으로 정성과 공경과 믿음이 지극하신 분이셨습니다. 정성이 한울에 이르러 천명을 받으셨고, 공경이 한울에 이르러 조용히 천어를 들으셨고, 믿음이 한울에 사무쳐 한울님과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르셨습니다. 이후 포덕에 진력하여 북도중주인(北道中主人)이 되셨고, 천도교 2세 교조로 도통을 이어받아 창생을 구제하셨습니다. 해월신사님의 가르침은 가물던 하늘에서 단비가 내리는 것 같았고, 그 절개는 겨울 산마루에 외로운 소나무 같았으며, 그 법도는 가을 서리 같았습니다. 해월신사님을 한 번 뵈온 사람들은 모두 감복하여 입도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성인의 덕화(徳化)’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엄혹한 관의 탄압 가운데에서도 36년 동안 보따리 하나 둘러메시고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시면서 ‘수백만 명 포덕’이란 기적을 이루어내셨습니다. 해월신사님은 이러한 교세를 바탕으로 공주와 삼례, 광화문과 보은에서 교조신원운동(教祖伸冤運動)을 적극 전개하여 평화적이고 민주적이며, 비폭력적인 종교인의 진면목을 보이셨습니다. 동학 도인들의 높은 도덕성을 바탕으로 전개한 교조신원운동은 오늘날 ‘현대 시민운동의 원류’로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이후 민중의 염원과 시대의 요청에 따라 보국안민(輔国安民), 제폭구민(除暴救民), 척양척왜(斥洋斥倭)의 기치를 높이 들고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을 지휘하는 위대한 지도자로서의 삶을 사시다가 거룩하게 순도하셨습니다. 공경하는 국내외 동덕 여러분! 천도교 2세 교조로서 해월신사님이 쌓으신 업적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대지(大地)와 같은 넓은 덕으로 수백만 명을 포덕하고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추어 향후 개벽운동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고, 둘째로는 수운대신사님의 유훈에 따라 경전『동경대전』과 『용담유사』, 천도교의 초기 역사를 기록한『도원기서』를 간행하여 올바른 가르침을 전승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한 것이며, 셋째는 교조신원운동과 동학농민혁명을 통하여 도인과 민중에게 신앙의 자유와 보국안민의 정신, 자주와 평등 의식을 일깨웠습니다. 이러한 위대한 삶의 발자취를 보이신 해월신사님을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민중의 성자’, ‘일하는 한울님’으로 부르면서 추앙하고 있습니다. 공경하는 국내외 동덕 여러분! 해월신사님은 수운대신사님의 가르침을 올곧게 계승하였으며, 민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말씀을 실천하고 확장한 영적 스승인 동시에 대사상가이셨습니다. 해월신사님이 설파하신 경천(敬天), 경인(敬人), 경물(敬物)의 삼경사상(三敬思想)은 오늘날 물질만능주의와 인간 탐욕으로 인한 지구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인 생태중심주의 가르침으로서, ‘생명 사상의 원천’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또 해월신사님은 후천개벽을 밝히시면서, 문명 전환기의 어둠 속에서 절망하는 도인과 민중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셨습니다. 신분 해방, 어린이 해방, 여성 해방, 생태 해방을 가르치셨으며, 모든 사람을 한울님처럼 섬기라는 사인여천(事人如天)을 실제 행동으로 가르쳤습니다. 또한 앞으로 “우리 도의 운수에 영웅호걸들이 많이 나서 세계에 포덕사로 나가 형체 있는 한울님 소리를 들을 것이라 ”고 말씀하셨으며, “장차 천도교가 세계 인류의 정신을 지도하고, 우리나라가 세계의 선도국가가 되리라”는 비전을 제시하여 당시 도인들과 민중에게 커다란 희망을 주셨습니다. 해월신사님의 이러한 구원과 희망의 정신은 스승님께서 직접 지으신 강시에서도 은유적으로 잘 나타나 있습니다. “때는 그 때가 있으니 때는 곳곳이라 산에 있는 새야! 너는 그것을 알지 않느냐? 세속이 비록 무엇을 외로이 듣는다 해도 다른 날 능히 못 가운데 죽게 된 고기를 건지리라” 공경하는 국내외 동덕 여러분! 우리는 해월신사님의 용시용활(用時用活)하신 삶과 수행에서 길어 올린 높은 가르침을 깊이 체득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선양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중앙총부에서는 포덕 168(2027)년 해월신사 탄신 200주년을 앞두고 동덕님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그 의미를 널리 알리고자 올해부터 3개년에 걸쳐 기념사업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기념식과 기념 학술 대회 개최, 세계 어린이 인권 문화제 개최, 다큐 영화 제작/상영, 기념 공연, 동상 건립, 상설/기획전시, 경전(동경대전, 용담유사) 목판본 제작 등의 사업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동덕 여러분의 적극적인 동참과 협력을 간곡하게 요청합니다. 함께 교단 중흥의 계기를 마련하는 대업에 참여하여 지혜와 정성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내일 뜻깊은 80주년 광복절을 맞이하여 평화적인 남북통일과 국가 발전, 국제적인 전쟁의 종식, 지구촌의 평화 환경 구축을 기원하며, 모든 동덕님께 한울님과 스승님의 감응이 늘 함께 하시길 심고합니다. 감사합니다. 포덕 166년 8월 14일 천도교 교령 박 인 준 심고 -
제162주년 지일기념식 봉행 예정천도교는 포덕 166년(2025) 8월 14일 천도교중앙대교당 및 전국 각 교구에서 제162주년 지일기념식을 봉행한다고 밝혔다. 지일(地日)은 해월신사(海月神師) 최시형 선생이 수운대신사로부터 도통을 전수받은 날로, 해월신사의 위대한 삶과 사상을 기리고 그 뜻을 계승하는 의미를 지닌다. 이번 기념식은 시암 전명운 교화관장이 집례를 맡아 진행하며 ▲개식 ▲청수봉전 ▲심고▲주문3회 병송 ▲경전봉독 해월신사 법설 守心正氣(수심정기) ▲기념사 ▲천덕송 합창 ▲심고 ▲폐식 순으로 진행되며, 이후 문화공연에는 천도교연합합창단 "샘"과 국악공연팀 "지음"의 문화공연이 이어질 예정이다. 천도교중앙총부는 "해월신사(海月神師, 최시형)께서 천도교 제1세 교조(敎祖) 수운대신사(水雲大神師, 최제우)로부터 도통(道統)을 이어받아 제2세 교조가 되신 지 162주년이 되는 기쁜 날을 맞아, 다함께 신사님의 삶과 수행을 통한 가르침을 실천하고 이웃에게 실천하여 더불어 살아가는 한울세상을 이루어내길 심고합니다."라고 밝혔다. 한편, 천도교는 포덕 168(2027)년 해월신사 탄신 200주년을 앞두고 올해부터 3개년에 걸쳐 다양한 기념사업을 준비하여 해월신사의 용시용활의 삶과 수행에서 길어 올린 가르침을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그 정신이 오늘의 사회와 인류에 새롭게 살아 숨 쉬도록 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일 예정이다. -
온라인으로 천도교 경전과 교화상품을 만나봐요천도교 교인들의 온라인 직거래 장터인 「동학장터」가 오는 8월 14일 지일기념일부터 정식 운영에 들어간다. 동학장터는 경전과 염주 등 교화용품은 물론, 천도교인이 운영하는 사업체의 제품이나 판매 상품을 자유롭게 홍보할 수 있는 인터넷 기반의 홍보 플랫폼이다. 교인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직거래를 활성화함으로써, 신앙 공동체 내 경제적 연대와 교류의 공간을 마련하고자 기획되었다. 정식 운영에 앞서, 현재는 예비 운영 기간으로 교역자를 비롯한 교단 관계자들이 사이트를 미리 둘러보고 의견을 제안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 동학장터 운영자는 “교역자 여러분의 관심과 조언이 동학장터의 안정적이고 유익한 운영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며 많은 참여를 당부했다. 이번 동학장터 개장은 천도교 교단 내 자립과 상생을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 실천의 장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지일기념일에 맞춘 정식 개시 또한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동학장터 바로가기 => http://chondogyo.net -
제 127주년 인일기념식 봉행오는 12월 24일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는 제127주년 인일기념일 기념식을 봉행한다. 올해는 의암성사께서 해월신사님께 도통을 이어받은 지 127주년이 되는 해로 12월 24일 인일기념식은 서울 천도교중앙대교당 및 전국 교구에서 일제히 봉행된다. 이날 기념식은 개식, 청수봉전, 심고, 주문3회병송, 경전봉독, 천덕송 합창, 기념사 등의 순서로 예정되어 있으며 교인 및 내외 귀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개최될 예정이다. 윤석산 교령은 기념식을 앞두고 보도자료를 통해 “의암성사님께서 해월신사님으로부터 도통(道統)을 이어받으신 지 127주년이 되는 인일기념일입니다. 우리는 이 뜻깊은 날을 맞이하여 위대한 의암성사님의 삶과 사상을 다시 한번 살펴보면서, 결의(決意)를 새롭게 다져야 하겠습니다.”라고 127주년 인일기념일을 맞이하는 소감을 밝혔다. 이어 “ 공경하는 동덕 여러분! 우리는 의암성사님이 유시에서 당부하신 것처럼 뒷일을 책임져야 합니다. 천도교를 더욱 굳건하게 지켜내고, 침체된 교단을 중흥시켜 중원포덕을 넘어 세계포덕을 실현해내야 합니다. 이것은 천명(天命)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대업(大業) 실현은 오직 우리의 믿음과 공경과 정성의 힘이 모일 때만이 가능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인일기념식에 이어 인일기념 문화공연도 개최될 예정이다. 한편 천도교의 5대 기념일 중 하나인 인일 기념일은 의암 성사께서 해월 신사로부터 도통을 전수받은 날로, 천도교의 주요 기념일은 다음과 같다. 천일기념일 : 매년 4월 5일 수운 대신사께서 한울님으로부터 무극대도인 천도를 받아 동학을 창명한 날을 기념함 지일기념일 : 매년 8월 14일 해월신사께서 수운대신사로부터 도통을 전수받은 날을 기념함 인일기념일 : 매년 12월 24일 의암성사께서 해월신사로부터 도통을 전수받은 날을 기념함 도일기념일 : 매년 1월 18일 춘암상사께서 의암성사로부터 도통을 전수받은 날을 기념함 현도기념일 : 매년 12월 1일 의암성사께서 동학을 천도교로 세상에 선포한 날을 기념함 -
12월 1일, 제 119주년 현도기념일 봉행천도교중앙총부는 포덕165년 12월 1일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제 119주년 현도기념식을 봉행한다. 이날은 의암성사께서 동학을 천도교로 세상에 널리 선포하신지, 119주년이 되는 기쁜 날로 천도교에서는 5대 기념일에 해당한다. 현도기념일 행사는 포덕 165(2024)년 12월 1일(일) 제 119주년 현도기념일을 맞이하여 천도교중앙대교당 및 전국 교구에서 일제히 봉행되며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열리는 현도기념식은 현암 윤석산교령을 비롯하여 내, 외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봉행된다. 오전 11시 기념식은 인화당 이미애 교화관장이 집례를 맡아 진행하며 개식-청수봉전-주문 3회 병송-경전봉독<권도문>-천덕송 합창<제13장 기념송(1절~3절)>-기념사-천덕송 합창<포덕행진곡(1절~3절)>-심고-폐식 등의 순서로 진행될 예정이다. 또한 기념식에 이어서 사인여천국민화합문화제 공연도 개최된다. 의암성사는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하여 선포하였다. 의암성사께서 은도시대를 마감하고 현도시대를 여신 업적을 되새기며, 앞으로 스승님 시절처럼 한 마음 한 뜻으로 동귀일체하기를 기대한다. 현암 윤석산 교령은 현도기념일을 앞두고 "12월 1일은 동학을 천도교로 대고천하하여 세계에 널리 알린 지 119주년이 되는 현도기념일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뜻깊은 현도기념일을 맞이하여 이날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면서, 새로운 도약의 결의를 다져야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천도교의 5대 기념일 1. 천일기념일 : 매년 4월 5일 수운대신사께서 한울님으로부터 무극대도인 천도를 받아 동학을 창명한 날을 기념함 2. 지일기념일 : 매년 8월 14일 해월신사께서 수운대신사로부터 도통을 전수받은 날을 기념함 3. 인일기념일 : 매년 12월 24일 의암성사께서 해월신사로부터 도통을 전수받은 날을 기념함 4. 도일기념일 : 매년 1월 18일 춘암상사께서 의암성사로부터 도통을 전수받은 날을 기념함 5. 현도기념일 : 매년 12월 1일 의암성사께서 동학을 천도교로 세상에 선포한 날을 기념함 -
수원교구에서 지일기념식 봉행수원교구에서는 제 161주년이 되는 지일기념일을 맞아 8월11일 시일날 교인들과 함께 지일기념식 행사를 봉행하였다. 장구갑 교구장의 기념사대독을 통해 어둠 속에서 절망하는 민중과 도인들에게 희망의 횃불을 밝히신 해월신사님의 귀한 가르침을 잊지않기로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기념식 후 축하공연에는 수원교구 어린이들의 사계명 낭독과 천덕송 합창, 칼림바연주로 교인들의 많은 박수가 있었으며 특히 정서현 어린이와 현수당 김정숙 동덕이 리코더로 청수봉전가를 연주해 많은 감동이 있었다. 또한 시천주기타밴드(단장 명암 이갑식 선도사)의 기타공연과 하모니카 공연으로 즐거워하며 단합되는 시간이 되었다. -
제 161주년 지일기념식 봉행포덕 165년 8월 14일 오전 11시 천도교중앙대교당 및 전국 교구에서는 제161주년 지일기념식을 봉행하였다. 지일기념식은 현암 윤석산 교령을 비롯하여 내빈들이 참석하였다. 집례는 인화당 이미애 교화관장이 맡았으며 기념사-천덕송-해월신사법설_守心正氣(수심정기) 등의 순서로 진행하였다. 이번 지일기념식에는 교단 발전에 기여한 바를 인정하여 명암 정윤택 교당관리실장과 북암 김선배 천도교유지재단 서무과장에게 공로상을 수여하였다. 기념식이 끝나고 천도교연합합창단 '샘'의 "한울세상, "아름다운 나라", 서울교구 삼경 합창단의 "임진강", "해월신사 가신 길", 역사음악연구소 어린이역사음악합창단의 "빛의 자손들", "해월 최시형" 등의 문화공연이 이어져 참석한 교인 및 내외빈으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한편 현암 윤석산 교령은 기념사를 통해 "신사님의 삶과 수행에서 길어 올린 귀한 가르침을 몸으로 체득 체행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나가야 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아래는 제161주년 지일기념사 전문이다. 기념사 국내외 동덕 여러분! 모시고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포덕 4년(1863) 8월 14일 해월신사님께서 천명(天命)에 따라 수운대신사님으로부터 도통을 전수받은 지 161주년이 되는 지일 기념일입니다. 이런 뜻 깊은 날을 맞이하여 우리는 거룩한 신사님의 삶과 사상을 가슴속 깊이 되새기고 새롭게 결의를 다져야 하겠습니다. 대신사님의 가르침을 받은 이후부터 평생토록 지극한 정성으로 쉼 없이 수도(修道) 정진한 신사님은 수행자의 표상(表象)이셨습니다. “내 눈을 붙이기 전에 어찌 감히 수운대선생님의 가르치심을 잊으리오. 삼가서 조심하기를 밤낮이 없게 하느니라”고 말씀하셨으며, 일이 있으면 사리를 가리어 일에 응하고, 일이 없으면 조용히 앉아서 마음공부를 하셨습니다. 그러한 독실한 수련의 결과 하루아침에 활연관통(豁然貫通)하니, 길을 가면 발끝이 평탄한 곳을 가리키고 집에 있으면 신(神)이 조용한데 엉겼으며, 자리에 앉으면 숨결이 고르고 편안하고, 누우면 신이 그윽한 곳에 들어 하루 종일 어리석은 듯하며 기운이 평정하고 심신이 청명하였습니다. 마침내 수운대신사님의 말씀 그대로 ‘지극히 지기와 화하여 지성 (至聖)의 경지’에 도달하셨습니다. 그 가르침은 가물던 하늘에서 단비가 내리는 것 같았고, 그 절개 는 겨울 산마루에 외로운 소나무 같았으며, 그 법도는 가을 서리 같 았습니다. 이에 따라 신사님을 한 번 뵈온 사람들은 모두 감복하여 입도하였으니, 이것이 이른 바 ‘성인의 덕화(德化)’입니다. 그 결과 당대에 보따리 하나 둘러메시고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시면서 마당 포덕이란 위업을 이룩하셨고, 후대에 ‘민중의 성자’ 소리를 듣게 되셨습니다. 우리는 평생 일하시면서 수심정기(守心正氣) 공부로 일관하신 신사님의 더 없는 수도자상에서 깊은 감명과 감화를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신사님은 어렸을 적에 성인과 같은 위대한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번 수운대신사님을 뵙고 심법(心法)을 배운 후에는 ‘성인도 별 사람이 아니요, 누구나 다 마음으로 작정(作定)하고 독실하게 마음 공부를 하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도 한울님을 모셨으니 누구나 독실하게 공부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더욱 수련에 매진하여 자아 완성하고 포덕광제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하겠습니다. 중앙총부에서도 동덕 여러분의 수도 생활에 도움을 드릴 수 있도록 수도원의 활성화를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존경하는 동덕 여러분! 신사님은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셨기 때문에 어렵고 힘든 생활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머슴의 설움을 익히 알았고, 가난을 뼈저리게 겪었으며, 세상의 부조리와 모순을 온몸으로 체득하셨습니다. 그래서 해월신사님은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는 당시 민중의 열망을 그 누구 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민중의 열망을 실현시킬 방법이 없어서 절망스런 나날을 보내고 계셨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다가 천운(天運)으로 수운대신사님이 동학을 창명하여 세상을 새롭게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가 흔연히 입도한 후에 천도(天道)를 터득하시면서, 모든 것을 천명에 부치고 천리(天理)에 순응하여 시운(時運)에 따라 용시용활(用時用活)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수운대신사님의 순도 후에는 35년간 고비원주(高飛遠走)하는 삶을 살아 내시면서도 전국적인 포덕 교화망을 구축하셨습니다. 또한 다양한 교조신원운동을 적극 전개하여 평화적이고 민주적이며, 비폭력적인 종교인의 참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이러한 높은 도덕성을 바탕으로 전개한 교조신원운동은 오늘날 학자들에 의해 ‘현대 시민운동의 원류’로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해월신사님의 ‘때에 가장 적절하게 사신 삶’을 본받아서, 우리 사회의 변화와 시대정신에 따라 적의하게 대응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하겠습니다. 독립 유공 서훈 문제로 논쟁이 있는 듯한데, 2차 동학농민혁명 지도자들은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제4조에서 규정한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위하여 일제에 항거하다가 그로 인하여 순국한 자’에 해당하는 역사적 증거가 분명히 있으므로 서훈 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따라서 정부는 이러한 국민들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여 조속한 시일 내에 독립유공자로서 서훈해 주기를 오늘 지일기념일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촉구합니다. 중앙총부에서는 앞으로 관련 단체와 적극 협력하여 서훈이 조속한 시일 내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힘써나가겠습니다. 존경하는 동덕 여러분! 해월신사님은 엄혹한 시절 경전 간행을 완수하여 대신사님의 가르침을 전승토록 하였으며, 시대에 응하여 민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교리를 재해석하고 확장한 영적 스승인 동시에 대사상가의 면모를 보이셨습니다. 수운대신사님의 ‘다시 개벽’ 사상을 인문개벽 사상으로 밝히시면서, 어둠 속에서 절망하는 민중과 도인들에게 희망의 횃불을 높이 치켜들으셨습니다. “우리 도의 운수에 요순 공맹의 성스러운 인물이 많이 나리라”고 하셨으며, 장차 천도교가 세계 인류의 정신을 지도하고 우리나라가 세계의 선도 국가 역할을 할 것이라는 비전을 제시하셨습니다. 이는 신사님이 영적 능력으로 미래를 예지하고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틀림없이 실현되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신사님은 경천(敬天)과 경인(敬人), 경물(敬物)의 삼경설 (三敬說)을 가르치셨습니다. 이 중에서 특히 경물 사상은 현대의 고질적인 병폐인 생태계의 파괴를 막고, 목전에 닥친 지구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인 생태철학으로서, 오늘날 부각되고 있는 ‘생명 사상의 근간’이 된다는 것을 현재 많은 석학이나 생명 평화 운동가들이 모두 인정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반려동물의 시대’라고 말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반려견이나 반려묘 등을 기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동물 학대자는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등, 동물보호단체가 동물권을 보호하기 위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사님이 지으신 <내수도문>을 살펴보면 거기에는 ‘육축 (六畜)이라도 다 아끼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는 오늘날 강조되고 있는 ‘동물권(動物權)’ 혹은 ‘생명권(生命權)’에 대한 선각자로서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신사님은 여성과 어린이를 존중하고, 모든 사람을 한울님 처럼 섬기라는 사인여천(事人如天)의 가르침을 늘 강조하셨고 몸소 실천하여 본을 보이셨습니다. 이러한 신사님의 가르침을 계승하여 훗날 천도교에서는 어린이운동, 여성운동, 노동운동 등 7대 부문의 신문화 운동을 전개하게 됩니다. 이러한 인권 존중의 민주적인 평등사상은 우리 사회가 점점 수평 사회로 변화하면서 더욱 빛을 발하리라 생각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신사님의 삶과 수행에서 길어 올린 귀한 가르침을 몸으로 체득 체행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나가야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동덕 여러분! 요즘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것을 계기로 전국적인 동학 공부 열풍이 불고, 경북 영양의 해월신사 은거 유허비 제막식 등 각종 동학 선양 사업들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중앙총부에서는 이러한 시운을 맞이하여 특히 올해 스승님들의 위대한 삶과 사상을 현창하고, 시급하고 중요한 교단 혁신책을 우선 시행하여 ‘교단 중흥의 원년’으로 삼고자 합니다. 동덕 여러분의 적극적인 동참과 협력을 간곡하게 요청합니다. 다 함께 교단 중흥의 전기를 마련하는 대업에 참여하여 지혜와 힘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대신사님의 출세 200년을 맞이하여 우리의 마음 가짐을 다시 굳건히 하고 교인 여러분의 적극적 참여도 기대합니다. 모든 동덕님께 한울님과 스승님의 감응이 늘 함께 하여 만사여의 하시길 심고합니다. 감사합니다. 포덕 165(2024)년 8월 14일 천도교 교령 윤 석 산 심고 -
8월 14일, 제161주년 지일기념식 봉행포덕 165(2024)년 8월 14일(수) 제 161주년 지일기념일을 맞이하여 기념식이 서울 중앙대교당 및 전국교구에서 일제히 봉행한다. 서울 중앙대교당에서 열리는 지일기념식은 현암 윤석산교령을 비롯하여 내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봉행한다. 오전 11시 기념식은 인화당 이미애교화관장이 집례를 맡아 진행하며 ▲기념사 ▲천덕송 ▲해월신사법설_守心正氣(수심정기)▲해월신사 약력 등의 순서로 진행한다. 또한 기념식에 이어서 천도교연합합창단 [샘], 서울교구합창단 [삼경], 역사음악연구소 [어린이역사음악합창단]의 문화공연이 있을 예정이다. 이날은 해월신사(海月神師, 최시형)께서 천도교 제1세 교조(敎祖)이신 수운대신사(水雲大神師, 최제우)로부터 도통(道統)을 이어받아 천도교 제2세 교조가 되신지 161주년이 되는 날이다. 천도교중앙총부는 지일기념일을 앞두고 "기쁜 날을 맞아 다함께 신사의 삶과 수행에서 길어 올린 귀한 가르침을 몸으로 체득 체행하고, 이웃에게 실천하여 더불어 살아가는 한울세상을 이루어 내길 심고한다"고 밝혔다. 한편 천도교의 5대 기념일은 다음과 같다. 천일기념일 : 매년 4월 5일 수운대신사께서 한울님으로부터 무극대도인 천도를 받아 동학을 창명한 날을 기념함 지일기념일 : 매년 8월 14일 해월신사께서 수운대신사로부터 도통을 전수받은 날을 기념함 인일기념일 : 매년 12월 24일 의암성사께서 해월신사로부터 도통을 전수받은 날을 기념함 도일기념일 : 매년 1월 18일 춘암상사께서 의암성사로부터 도통을 전수받은 날을 기념함 현도기념일 : 매년 12월 1일 의암성사께서 동학을 천도교로 세상에 선포한 날을 기념함 -
[칼럼] 동학·천도교, 사월이라 초오일의 천일기념일을 아십니까?용 담 가 (龍潭歌) 『··천은(天恩)이 망극(罔極)하여 경신사월(庚申四月) 초오일(初五日)에 글로어찌 기록(記錄)하며 말로어찌 성언할까 만고(萬古)없는 무극대도(無極大道) 여몽여각(如夢如覺) 득도(得道)로다··』 「수운 최제우 대신사님은 경전 곳곳에 4월 5일 득도의 기쁨을 노래하였습니다.」 지난 4월 5일은 포덕 165주년 천일기념(天日記念日)일이었습니다. 천도교의 많은 기념일 가운데 최대경축일이 천일기념일입니다. 다시 말씀드려 수운 최제우 대신사께서 동학 즉 천도교를 창도한 기념일입니다. 그런데 현재 국민들은 천일기념일을 잘 모릅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천도교에 대해서도 아는 분들이 적습니다. 지난 근현대사 1백여 년간에 천도교는 우리나라 역사를 이끌어왔습니다. 그 대표적인 역사를 거론하자면 동학혁명과 3.1독립운동을 주도한 것은 물론 어린이운동, 청년운동, 농민운동, 여성운동 통일운동 등을 줄기차게 열어왔었습니다. 또한 개벽, 어린이, 농민, 신여성, 신인간, 만세보, 조선독립신문 등 문화출판운동도 선두에서 이끌어갔습니다. 오늘날 고려대학교(보성전문학교), 동덕여자대학교(동덕여자의숙) 등 전국에 수십 개의 초중등학교를 운영한 역사도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교세는 약화 되었고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졌는지 반성과 대안을 마련해야 하겠습니다. 《천일기념일의 어제와 오늘을 알아보겠습니다.》 그럼 지난 4월 5일 천도교중앙총부에서 전국의 천도교 교구로 보낸 천일기념일 홍보 현수막 시안을 살펴보면서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경축 천일기념일_포덕 165년 4월 5일 11시〉 천일기념일(天日記念日)_포덕 1년(1860년) 4월 5일은 대신사(수운 최제우)께서 한울님으로부터 무극대도인 천도를 받아 천도교를 창명한 날이다. 천도교에서는 이날을 ‘천일기념일’로 정하고 기념식을 봉행한다.』 천도교중앙총부에서 나름대로 국민여러분께 천도교와 천일기념일을 알리고 홍보하는데 그 노력을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다른 종단과 비교해서 무엇이 부족하고 더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할 내용은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불교의 최대경축일은 음력 4월 8일, ‘부처님 오신 날’ 즉 석가모니 부처님 탄신기념일(아기부처 오신 날)입니다. 기독교의 최대경축일은 양력 12월 25일 ‘성탄절’ 즉 예수님 탄신기념일(아기예수 오신 날)입니다. 하나 더 추가하면 천도교와 가깝다는 원불교입니다. 원불교의 최대경축일은 양력 4월 28일, ‘대각개교절’ 즉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께서 크게 진리를 깨달은 날입니다. 최근에는 대각개교절을 ‘원불교 열린 날’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이렇게 이웃종단의 최대경축일을 간단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우리 천도교와 무엇이 다른 것인지 비교해보았으면 합니다. 천일기념일(天日記念日)에서 天日(천일)을 직역하면 ‘하늘 날’입니다. 다시 말씀드려 천일기념일은 ‘천도교 열린 날, 또는 한울님의 날’이 됩니다. 오늘날 천일기념일을 보다 알기 쉽고 대중적인 홍보를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천일기념일이 과연 무슨 뜻이 자리하고 있는지 그 역사와 사상의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동양고대전설, 삼황오제(三皇五帝)에 나오는 삼황 즉 天皇(천황), 地皇(지황), 人皇(인황)을 먼저 살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천도교에서 승통기념일을 삼황三皇(천황씨 수운 대신사_천일기념일, 지황씨 해월신사_지일기념일, 인황씨 의암성사_인일기념일, 또 춘암상사_도일기념일)에서 그 첫 번째 ‘천황씨’에 천일기념일 제정 배경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천일기념일에 대한 처음 기록은 해월신사 최시형에 의해, 포덕 13년(1872년) 영월 직동 박용걸 집에서 4월 5일 대신사 득도를 기념하여 향례(享禮)를 행하였다고, 천도교회사 등에 전해옵니다. 또 포덕 17년(1876년) 4월 5일 단양 자택에서 득도향례를 지내는 등 이후 해월신사께서 대신사 득도기념향례를 지속적으로 행하였습니다. 특히 1898년 원주 원진여, 원덕여의 집에서 마지막 피체되시기 전 4월 5일 향례를 지낸 것으로 전해옵니다. 천일기념일을 천도교에서 공식적으로 제정한 것은 포덕 47년(1906년) 4월 5일이었으며, 포덕 47년 4월 24일 종령으로 반포하였습니다. 의암성사 손병희 선생께서 동학을 천도교로 세상에 크게 선포(대고천하大告天下)한 뒤에 대신사 득도일인 4월 5일을 천일기념일이라 명칭하고 기념식을 거행하였던 것입니다. 《국문은 한글, 국교는 천도교라 할 수 있습니다.》 국민여러분께 천도교가 어떤 종교인지 한글과 비교해서 어린이와 청소년의 눈높이로 질의응답으로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1. 묻기를: 우리나라 글(國文국문)이 무엇입니까? 답하기를: 한글입니다. 그럼 우리나라 종교(國敎국교)가 무엇입니까? 답: 천도교입니다. 2. 묻기를: 한글 즉 훈민정음을 창제한 분은 누구입니까? 답하기를: 이름은 이도(李祹)요, ‘세종대왕’이라 합니다. 동학 즉 천도교를 창도한 분은 누구입니까? 답: 이름은 최제우(崔濟愚)요, ‘수운 대신사’라 합니다. 3: 묻기를: 한글을 요약해서 설명해 주세요? 답하기를: 조선전기 제4대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창제하여 반포한 우리나라 고유의 문자입니다. 천도교를 요약해서 설명해 주세요? 답: 1860년 수운 최제우 대신사께서 동학이라는 이름으로 창도하였습니다. 천도교라는 이름은 1905년 제3세 교조 의암성사 손병희 선생께서 동학을 천도교로 '대고천하'한 우리나라 고유의 종교이며, 또한 세계적인 종교입니다. 4. 묻기를: 천도교의 신앙과 사상은 무엇입니까? 답하기를: 천도교 제1세 교조 수운 대신사 최제우 선생의 ‘모든 사람은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시천주(侍天主) 신앙입니다. 제제2세 교조 해월신사 최시형 선생의 ‘사람섬기기를 한울님 같이 하라.’는 ‘사인여천(事人如天) 윤리입니다. 제3세 교조 의암성사 손병희 선생의 ‘사람이 곧 한울님’이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입니다. 또한 제4세 대도주 춘암상사 박인호 선생의 ‘참에 살고 거짓에 죽는다.’는 말씀도 실천하고 있습니다. 5. 묻기를: 우리나라 글이 한글이라는 것은 어린이들도 다 아는데, 우리나라 종교가 천도교라는 것은 대부분 모르는 것에 대한 설명을 해주세요? 답하기를: 우리의 한글이 우리나라 글이듯이, 우리나라 최초의 종교는 천도교입니다. 부연하여 설명하자면,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전봉준 장군은 보국안민과 척왜창의 주창으로 일본을 물리치자는 최초의 항일독립운동을 주도하다 순국하였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김구선생은 동학혁명 당시 동학 접주로 활략한 역사가 있습니다. 또한 천도교에서 소파 방정환 선생을 중심으로 5월 5일을 세계 최초로 ‘어린이날’을 제정하였으며(처음 어린이날 제정은 1922년 5월 1일), 또 ‘어린이’라는 아동잡지를 창간했습니다. 소파 선생은 천도교 3세 교조 의암 손병희 선생 사위이며, 천도교 청년회 지도자였습니다. ‘어린이’라는 말과 글도 천도교에서 창제한 것을 보면 우리나라 한글은 국문(國文)이요, 우리나라 국교(國敎)는 천도교라는 것입니다. 6. 묻기를: 한글날이 국경일이듯이 천일기념일도 국경일로 제정되어야 하겠네요? 답하기를: 천도교는 동학혁명과 3·1독립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 어린이운동은 물론 일제로부터 해방 후 남북분단에 반대하는 통일운동에 앞장선 종단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계승··’이라고 하였습니다. 천도교 제3세 교조 의암 손병희 선생이 독립선언서 민족대표 33인의 대표이며, 3·1독립운동을 영도한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이러한 헌법 전문을 비롯한 동학·천도교의 역사와 사상 등을 살펴보면 분명 천도교는 대한민국 국교(國敎)는 물론 천일기념일의 국경일(국가가 지정한 공휴일)로서 충분한 자격이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종교로서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7. 묻기를: 우리나라 헌법에 정교분리의 원칙과 종교신앙의 자유, 즉 국교를 둘 수 없습니다? 답하기를: 물론 헌법에 정교분리의 원칙에 국교가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국교는 분명 천도교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남북으로 분단된 조국을 통일하자면 북한(북조선)의 천도교 교세가 다른 종단보다 앞서가고 있다는 것도 참고해야 합니다. 문제는 천도교단이 어떻게 과거 우리나라 최대의 종단이요, 최고의 역사를 창조한 종단처럼 다시 소생하느냐의 숙제를 남기고 저의 글을 마무리합니다. 글 이윤영 (천도교 직접도훈, 동학혁명기념관장, 동학민족통일회 공동의장, 평화민족통일원탁회의 공동의장, 2차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국민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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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특별기고] 『신인간』 통권 900호 특집 - 권두언
- 10 수운 최제우 대신사 흉상 제막 봉고식 봉행
